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1)
신의 메스-41화(41/249)
41화 긴급 교수 회의 (3)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박상우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위원장님, 죄송하지만 제가 잠시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박상우가 단상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 그래. 그렇게 하세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이준술 교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어디 건방지게 부르지도 않았는데 여길 함부로 들어와?”
반면에 기세가 오른 최상엽 이사 쪽 인사들이 박상우를 향해 삿대질했다.
“교수님들! 지금 이 안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박상우 선생입니다. 박 선생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일단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는 봐야죠.”
그동안 침묵을 유지했던 한정석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교수의 말이 맞습니다. 일단 박 선생의 얘기를 들어나 봅시다.”
최태순 교수가 한정석 교수를 지원 사격하며 나섰다.
“집어치워! 다 끝난 마당에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거야?”
웅성웅성.
최상엽 이사 쪽 교수들이 격렬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아, 아아! 조용히들 하세요. 좋습니다. 당연히 당사자인 박상우 선생의 의견도 들어봐야죠. 박 선생,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세요.”
승기를 잡은 승자의 여유인지, 최상엽 이사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박상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교수 회의의 주도권은 완전히 최상엽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이사님.”
박상우가 공손히 인사하며 단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박 선생, 내가 여기 나오지 말라고 했잖나?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조현오 교수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박상우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이 방법만이 저와 교수님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흠, 지금 상황에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단상에서 내려가.”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교수님! 죽어 가는 환자를 살린 게 죄는 아니잖습니까? 칭찬을 받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까 믿어 주십시오.”
결의에 찬 표정으로 조현오 교수를 응시하는 박상우. 입술을 꾹 다문 그의 표정이 비장했다.
“흠, 알았네. 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길 바라네.”
박상우의 강렬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조현오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교수님! 오늘 우리가 이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단상에 올라선 박상우가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존경하는 교수님! 저는 흉부외과의 수련의 박상우라고 합니다.”
박상우가 단상에 올라가 교수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하지만 이미 판세가 기운 분위기에서 적군도 아군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저는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그가 2, 3분여 동안 자신이 장영은 환자를 집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집어치워! 너의 그 알량한 영웅심이 지금 이렇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거야.”
“맞아! 어디 감히 1년 차 따위가 수술실에서 메스를 잡아? 이건 병원의 위계질서 차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이에나들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새끼 사자는 그저 한 입 거리도 되지 못했다. 최상엽 이사 라인의 교수들이 박상우를 잔인하게 물어뜯었다.
그 모습에 최상엽과 최중현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지금쯤 올라올 시간이 된 듯한데…….’
하지만 박상우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러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교수님! 지금 앞에 놓인 노트북의 PC를 켜시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주십시오!”
시계가 3시 정각을 알리자 박상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인터넷?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겠다는 거야?”
최중현 교수가 삿대질하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일단 포털에 접속하셔서 지금 올라온 기사를 확인해 주십시오.”
박상우가 고개를 숙이며 최중현 교수에게 정중히 인터넷 접속을 요청했다.
“무슨 개수작을 부리겠다는 거야?”
“흠, 뭐. 별게 있겠어? 일단 접속이나 해 보자고.”
잠시간의 침묵.
탁탁, 틱틱틱.
그저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긁히는 소리만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웅성웅성.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뚫리는 소리냐고?”
완전히 뒤바뀐 분위기. 그동안 기세등등했던 최상엽 이사 라인의 표정이 흙색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정말이야? 낸시 여사가 우리 병원에 투자한다고?”
“와! 엄청나네. 1억 달러를 투자할 의사를 밝혔다는 거지?”
이준술 라인의 교수들은, 반면 구세주를 만난 듯 반색했다.
<미국의 낸시 캐롤라인 영부인, 한국의 명성대 병원에 에이즈 환자 전문 병원 건립을 위한 투자 의향 밝히다. 최근 명성대 병원에서 있었던…….>
미국 내에서 낸시 여사를 중심으로 유명 연예인, 기업가, 투자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에이즈 재단, FAMF(Foundation for Again My liFe)는 지금까지 모금된 기금만 20억 달러가 넘는 자선단체였다. 차기 대권 주자로 불릴 만큼 미국 내 영향력이 엄청난 낸시가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이 단체에서 명성대 병원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빅 뉴스였다.
“다들 뉴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낸시 여사가 우리 병원에 에이즈 전문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투자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리가 낸시 여사의 투자를 받아 에이즈 전문 병원을 설립하게 된다면, 방금 최중현 교수님이 언급하신 에이즈 환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은 악재가 아니라 호재가 될 수도 있겠군요! 물론 국내 최초의 에이즈 전문 병원 건립이라는 타이틀은 보너스일 테고 말입니다.”
박상우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박상우 선생의 말이 맞습니다. 독립적인 병동을 새로 건립해 에이즈 환자들을 받는다면, 기존의 환자들이 이탈할 이유도 없겠죠! 게다가 정치적, 외교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녀이기에, 정부에서 마다할 이유…… 아니죠!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원할 겁니다.”
박상우의 심폐소생술로 인해 기적적으로 회생한 이준술 과장이 침을 튀겨 가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웅성웅성.
그 순간, 회의실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뭐? 장영은 환자가 2차 검사 결과 음성이라고?”
“헐, 미치겠군! 하마터면 애먼 환자 죽일 뻔했어!”
“뭐라고? 장영은이 위양성이었단 말이야?”
“와! 까닥 잘못했다간 투자고 뭐고, 병원 이미지 먹칠할 뻔했군.”
“결국 박상우 선생이 해낸 거네. 우리 병원을 살렸어!”
2차 검사 결과 위양성으로 밝혀져, 장영은 환자가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는 기사가 뜬 것이었다.
“뭐, 뭐야? 최중현 교수! 당장 확인해 보세요!”
“네.”
순식간에 뒤바뀐 분위기. 당황한 최상엽 이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 *
며칠 전.
“김 기자님, 저 박상우입니다.”
박상우가 「서아일보」 김상진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우리 한국의 슈바이처 아니십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데, 잠시 뵐 수 있을까요?”
“후후후, 무슨 좋은 소스라도 있습니까?”
“물론이죠. 아마도 충분히 맘에 드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만나야죠. 어디서 뵐까요?”
시내 모 음식점.
이렇게 해서 박상우가 은밀하게 서아일보 김상진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뭐예요? 장영은 씨가 에이즈에 걸린 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쉬, 목소리 낮추십시오.”
김상진이 목소리 톤을 높이자 박상우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뭡니까?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김상진 기자.
“네. 제가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될 경우 미세하게나마 T세포가 줄어드는데, 장영은 환자의 경우 면역 체계에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국내 에이즈 검사 체계엔 아직 허점이 많아요. 생각보다 검사 오류가 자주 발생합니다.”
“흠, 그렇기는 하지만,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지 않습니까?”
“특종이란 건 남들보다 한발 앞서야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검사 결과가 발표된 후에 작성된 기사가 어떻게 특종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알고 있는 기사는 특종이 될 수 없죠.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단호한 어조의 박상우가 김상진을 향해 눈을 빛냈다.
“흠, 하마터면 멀쩡한 환자를 에이즈로 몰아 죽일 뻔한 사건이라? 구미가 당기는 건 확실하지만, 위험 부담이 좀 있는데…….”
김상진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신문사는 많으니까요.”
박상우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아! 이거, 이거 왜 이러시나? 선수끼리. 내가 생각해 본다고 했지, 안 한다고 했나?”
김상진이 박상우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러면 기사를 써 주시겠습니까?”
“흠, 다시 묻겠습니다. 장영은 씨가 에이즈가 아닌 게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만약에 제 말이 거짓이면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죠.”
“까짓것 좋습니다. 로또 한 장 사는 셈 치고 믿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특종이 두 개라고 했는데 이것 말고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김상진 기자가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차 물었다.
“흠, 기자님, 혹시 FAMF란 곳을 아십니까?”
“당연하죠. 미국의 영부인인 낸시 여사가 중심이 되어 만든 에이즈 퇴치 재단 아닙니까? 그 유명 방송인인 오로라 윈프리도 가입한!”
“후후후, 역시 의학 전문 기자답게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제가 알기론 그 재단이 한국에서 투자할 병원을 찾고 있다고 하더군요.”
박상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회귀 전, 낸시는 실제로 한국에 투자할 병원을 물색하던 중 제1 투자처로 명성대 병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장영은이 병원 측의 관리 소홀로 투신자살했고 추후 위양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에 실망한 낸시는 모든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후 낸시는 경쟁 병원인 새한 병원으로 투자처를 선회했었다.
“저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네. 미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정보입니다. 서아일보의 미국 특파원에게 연락해 알아보시면 될 듯합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특종감인데. 어떻습니까?”
“흐음, 그게 사실이라면야 제 입장에선 땡큐죠.”
“모두 믿을 만한 정보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좋습니다. 우리 슈바이처 선생님 믿고 도박 한번 해 보죠, 뭐.”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요? 그게?”
“이 두 개의 기사를 내일모레 6월 16일, 동시에 터뜨려 주시겠습니까?”
“뭐, 그 정도야 어려울 것 없죠.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말입니다. 아무튼 미국 특파원에게 연락해 팩트 체크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어디, 간만에 특종 한번 잡아 봅시다!”
김상진 기자가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긴급 교수 회의.
“이사님, 마, 맞는 것 같습니다. 지, 지금 막 결과가 나왔는데, 장영은 환자, 위양성이 맞다는군요.”
최중현 교수가 최상엽에게 황급히 달려와 귓속말을 전했다.
“뭐라고? 결과가 이제 나왔는데…… 그러면 저 기사는 어떻게 된 거야!”
최상엽 이사가 터질 듯 벌게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