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6)
신의 메스-46화(46/249)
46화 날개 잃은 천사 그리고 격투기 선수 (4)
박상우와 윤성이가 경기장으로 가기 위해 병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박상우. 타!”
끼이이익!
두 사람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여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김인선이었다.
“어? 인선아! 어떻게 된 거야?”
“나도 오늘 오프야. 같이 가! 윤성아, 누나도 같이 가도 되지?”
“그럼요! 누나라면 대환영이죠.”
“들었지? 뭐 해, 안 타고!”
박상우가 멀뚱거리며 서 있자 김인선이 손을 들어 타라는 시늉을 했다.
“어, 알았어.”
박상우와 윤성이는 엉겁결에 차에 올라탔다.
“윤성아, 누나가 이렇게 야리야리해 보여도 격투기 광팬이거든. 게다가 내가 최상오 선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오늘 같은 기회를 놓칠 수야 있겠니?”
두 사람이 차에 타자 김인선이 액셀을 밟으며 능청스레 말했다.
“크크크크.”
윤성이가 그 말에 손을 가리고 웃었다.
“왜 그렇게 웃어?”
“우리 아빠 이름은 최상오가 아니라 최상호인데요?”
“뭐야? 김인선! 너, 정말 격투기 팬인 거 맞아?”
박상우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게. 내가 혀가 좀 짧아서 그래. 맞아! 최상호 선수!”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으니까 빨리 가기나 하자.”
“윤성아, 저, 정말이야. 믿어 줘!”
김인선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알았어요! 누나, 그런데 아빠 경기 어디서 하는지는 알고 가시는 거예요?”
“자, 장충체육관 아닌가?”
김인선이 룸미러를 쳐다보며 윤성이의 눈치를 살폈다.
“크크크크.”
“왜……? 아닌가? 올림픽경기장인가?”
“이보세요. 김인선 선생님! 아시려면 제대로 좀 아시죠? 경기장은 삼성동 무역센터 특설 링입니다요.”
“하하하, 알아, 알아! 다들 긴장한 것 같아서 내가 농담 좀 해 본 거야. 알지! 무역센터!”
“아무래도 누나 좀 수상해요! 솔직히 말해 봐요. 아빠 경기를 보는 것보다 상우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죠?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아냐, 아냐. 저렇게 멀대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해? 난 저렇게 멋대가리 없는 남자는 관심 없다, 뭐!”
“그래? 나도 인선이 너 같은 선머슴은 별로야!”
“진짜…… 너!”
박상우의 말에 김인선이 눈을 흘겼다.
“하하하!”
그렇게 세 사람은 즐겁게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와와!”
오뚝이 최상호와 사무라이 나카야마의 세기의 대결.
입추의 여지 없이 관중들이 들어차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윤성아! 여긴가 보다.”
윤성이 아빠가 보내 준 티켓의 좌석은 VIP석이었다. 케이지와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가까운 위치였다. 셋은 경기장 중앙, 가장 관전하기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윤성이, 괜찮니?”
윤성이가 걱정되는지 박상우가 윤성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요. 저 괜찮아요! 아빠 경기 볼 수 있어서 신나는데요!”
윤성이는 해맑게 웃었다.
‘다행히 아무런 숫자도 보이지 않는군.’
심장병을 앓고 있는 윤성이는 자칫 흥분하게 되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상우가 의식적으로 윤성이의 앞머리를 뒤로 넘겨 보았다.
“와! 윤성아! 저분이 네 아빠시니?”
빠바바밤, 빰빠라밤~.
드디어 두 선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빨간 트렁크를 입고 수건을 둘러쓴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링에 올랐다.
“뭐예요? 누나! 저 선수는 사무라이 나카야마 선수잖아요! 에이, 진짜 격투기 좋아하는 거 맞아요?”
“아…… 그게.”
“와아아아아!”
그 순간, 경기장이 떠내려갈 것 같은 함성이 들렸다. 좀 전의 환호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저 선수가 윤성이 아빠, 최상호 선수야!”
고개를 숙인 채 트레이너의 어깨에 팔을 걸친 한 남자. 빨래판 같은 복근에 단단한 근육을 지닌 그는 ‘오뚝이’ 최상호였다.
“그, 그래. 나도 알아! 저 선수가 최상호 선수지! 암, 암!”
김인선이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며 헛기침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추켜올렸다.
“최상호 선수, 파이팅!”
“아빠! 파이팅!”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윤성이. 양손을 입에 모아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여전히 불안한 듯 박상우의 시선이 윤성이의 이마에 고정되어 있었다.
윤성이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최상호 선수가 윤성이를 발견했는지 그쪽으로 몸을 돌리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 어머, 상우야! 최상호 선수가 우리 보고 웃은 거지?”
김인선이 손가락으로 최상호 선수를 가리켰다.
“우리가 아니라, 윤성이를 보고 웃으신 거지.”
“이거나 그거나! 최상호 파이팅!”
김인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잠시 후, 화려한 오프닝 순서가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흠흠흠.”
나카야마를 소개한 아나운서가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최상호 선수가 소개되려는 찰나.
“K-1 미들급 랭킹 1위,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승부사. 오뚝이 최상호~!”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장내가 들썩거릴 정도로 우렁찼다.
“와아아아!”
“나카야마 발라 버려라!”
“너만 믿는다. 오뚝이!”
그와 동시에 고막을 찢을 듯한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띠리링~.
1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팡팡!
그와 동시에 양 선수는 주먹을 맞부딪히며 기세 좋게 케이지 중앙으로 나섰다.
퍽퍽, 퍽퍽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카야마의 펀치가 정확히 최상호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그리고 이어진 로우킥과 하이킥의 이단 콤보! 예상과는 달리 초반부터 나카야마가 거칠게 최상호를 몰아붙였다.
“코너로 몰리는 최상호 선수! 나카야마가 초반부터 최상호 선수를 밀어붙이네요. 최상호 선수, 당황한 듯 보입니다.”
작정한 듯 나카야마가 쉴 새 없이 주먹과 발을 내뻗었다. 방어하기에 급급한 최상호는 어느새 눈두덩이가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악!”
김인선이 그 모습에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차마 볼 수 없었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최상호 선수는 평소보다 몸이 무거워 보였다.
박상우는 그때까지는 그저 윤성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다.
“윤성아, 괜찮니?”
“그럼요. 우리 아빠는 원래 초반엔 저렇게 방어만 해요. 아무렇지 않아요. 아빠는 원래 나중에 승부를 내거든요.”
윤성이는 박상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고사리 같은 윤성이의 주먹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3분. 1라운드가 끝이 났다.
“하악, 하악…….”
변칙적인 나카야마의 공세에 당황한 최상호가 코너로 돌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퉁퉁 부어 있는 눈. 어느새 광대를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띠리링.
2라운드를 알리는 소리는 이내 충격적인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경고음으로 변모했다.
‘이, 이럴 수가!’
박상우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들고 있던 팝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 휘둥그레졌다.
최상호 선수가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링 중앙으로 나오는 순간, 그의 이마에 붉은 숫자가 나타났다.
[잔존 수명: 2시간 45분 54초, 53초, 52초…….]응급조치 후 바셀린을 발라 번들거리는 그의 이마에 선명하게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숫자가 왜 나타난 거야? 마, 말도 안 돼!’
박상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매를 좁히며 최상호의 이마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잘못 본 거야. 분명히!’
박상우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렸다. 하지만 숫자는 잠시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해졌다. 분명, 박상우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퍽퍽, 퍽퍽퍽!
2라운드 역시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나카야마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졌다. 얼굴, 복부 그리고 정강이까지 때리며 나카야마는 파상공격을 벌였고, 최상호는 그저 가드를 올리며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어느새 표정이 굳은 윤성이의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어억!”
급기야 과호흡 증세를 보이는 듯했다.
“윤, 윤성아. 괜찮니?”
아이의 표정을 살피던 김인선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어머, 얘. 이 땀 좀 봐.”
이미 윤성이의 등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가 황급히 비닐봉지 하나를 집어 들어 윤성이 얼굴에 대 주었다. 과호흡 현상이 날 경우 할 수 있는 응급조치였다.
“윤성아, 천천히 천천히 숨을 쉬어!”
“네. 하악, 하아악…….”
윤성이는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인선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일단 윤성이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가.”
“그, 그래. 알았어.”
“잠깐만, 나 좀 보자.”
윤성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박상우가 슬그머니 김인선의 팔을 잡아당겼다.
“윤성이 데리고 나가면서, 119에 연락해서 이쪽으로 구급차 하나만 보내 줘. 부탁해!”
윤성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박상우가 목소리 톤을 낮췄다.
“구급차? 그건 왜?”
“아무래도 최상호 선수가 심상치 않아. 원래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민첩한 선수인데, 오늘은 초반부터 발이 느리고 상대 주먹에 대한 반응 속도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어.”
“그건 너무 수세에 몰려서가 아닐까?”
의아한 듯 김인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경기 초반부터 그랬어. 최상호 선수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걸 간파하고, 나카야마가 작정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구급차를 좀 대기시켜 줘.”
“아, 알았어.”
“무조건 지하 주차장에 대기시켜야 할 거야. 정문 쪽에 대기하면 기자들이 몰려서 시간이 지체될 수 있거든. 인선아, 서둘러.”
“아, 알았어. 넌 같이 안 갈 거야?”
“지금으로서 최선은 경기를 중단시키는 거야. 일단, 난 여기 남아서 경기를 중단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볼게.”
“후, 그게 될까?”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지. 아무튼, 서둘러! 인선아.”
“알았어.”
박상우가 케이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윤성아, 아무래도 병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싫어요! 나 아빠 경기 계속 볼 거야.”
윤성이가 인선의 팔을 뿌리쳤다.
“안 돼! 병원으로 돌아가야 해. 윤성아, 누나 말 잘 들어!”
자세를 낮춰 윤성과 눈높이를 맞추는 김인선.
“만약에 우리 윤성이가 여기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빠 심정이 어떨까?”
“그, 그건…….”
윤성이가 그 말에 울먹거렸다.
“아마 아빠는 오늘 윤성이를 초대한 걸 평생 후회하실 거야. 아빠에겐 이 시합보다 윤성이가 훨씬 더 소중하니까! 우리 윤성이 착하니까, 누나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김인선이 윤성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윤성이도 이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우리 윤성이 착하구나. 그럼 누나랑 같이 나갈까?”
“네. 알았어요.”
윤성이의 손을 잡은 김인선이 박상우를 향해 OK 사인을 보냈다.
둘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박상우는 본부석까지 달려갔다.
“이 경기, 중단시켜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최상호 선수가 위험합니다. 빨리요! 빨리 경기 중단시켜야 해요.”
“누구신데 이러시는 겁니까? 경호! 이 사람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빨리 이 사람 내보내세요.”
케이지 앞을 지키던 사람이 버럭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이 황급히 달려와 박상우의 양팔을 부여잡아 끌었다.
“이거 놓으세요! 전 최상호 선수의 주치의입니다. 지금 저 경기 중단시켜야 한다고요!”
“아, 네. 알겠어요. 저는 최상호 선수 변호사예요. 그러니까 이만 나갑시다.”
박상우의 말을 믿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경호원들이 더욱더 거칠게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안 된다고요! 사람이 죽습니다.”
쾅! 풀썩.
“으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날카로운 비명.
그 순간, 하이킥에 머리를 가격당한 최상호 선수가 고목 쓰러지듯 케이지 바닥에 쓰러졌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