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7)
신의 메스-47화(47/249)
47화 날개 잃은 천사 그리고 격투기 선수 (5)
박상우가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케이지 위로 올라가, 최상호 선수를 바로 뉘었다.
‘희미하지만 아직 의식은 있다!’
박상우가 펜 라이트를 꺼내 최상호의 동공을 살폈다. 퉁퉁 부어 제대로 눈을 뜰 순 없었지만 미세하게나마 동공이 빛에 반응했다.
“최상호 선수, 제 말 들리시면 손가락을 움직여 보세요.”
박상우가 자세를 낮춰 최상호의 귀에 대고 말했다.
까딱, 까딱.
그 말에 최상호가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다행이야! ……ICP(Intra-Cranial Pressure: 두개내압) 28mmHg!’
박상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기도 잠시, 최상호의 손끝을 응시하던 박상우가 불현듯 그의 뇌압을 떠올렸다.
‘이제 뇌압까지 알 수 있게 된 건가?’
박상우가 잠시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위급 상황!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정리했다.
ICP 정상 구간은 0~15mmHg인데, 28mmHg라면 셀레브로스피널 플루이드(Cerebrospinal fluid: 뇌척수액)가 고여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렇다면 뇌부종이 생겼다는 의미!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역시, 뇌 쪽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여기, 여기 좀요!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트레이너가 황급히 케이지 위로 올라왔다.
“길게 말씀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최상호 선수가 위험해요!”
“의, 의사십니까?”
“네. 명성대 병원 의사입니다. 빨리요!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지하 1층으로 가면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업고 갈 테니 도와주십시오.”
박상우가 트레이너의 등에 최상호 선수를 업혔다.
이미 케이지 주변엔 많은 기자와 사람들이 몰려들어 길을 막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최상호 선수가 위급한 겁니까?”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기자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마이크를 들이댔다.
“비키라고요! 지금 사람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습니다. 제발 비켜 주세요!”
박상우가 기자들을 밀치며 통로를 확보했다. 그와 트레이너, 최상호가 가까스로 경기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 * *
“빨리요! 빨리!”
이내 그들은 최상호를 들것에 실어 주차장으로 향했다. 김인선이 경기장 근처에 있는 한성 병원 구급차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상우야! 어떻게 된 거야?”
박상우를 보자 김인선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윤성이는?”
“어, 윤성이는 괜찮아. 여기 의무실에서 응급조치는 해 뒀어.”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바로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러다가 혈압 떨어지면 큰일이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이게?”
김인선은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옮겨지는 최상호를 바라보았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는 눈은 그대로였다. 그는 얕은 숨을 내뱉으며 점점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개골 골절에 뇌부종이 의심돼! 당장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
“어머, 어머. 어쩌다 이런 일이?”
김인선은 깜짝 놀란 듯했다.
“지금 길게 설명할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아, 알았어.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같이 갈까?”
“아냐.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윤성이 챙겨 줘.”
“아, 알았어.”
“기사님! 빨리 병원으로 옮깁시다.”
“네. 알겠습니다.”
삐뽀삐뽀.
구급차가 경적을 울리며 황급히 출발했다.
구급차 안.
최상호의 호흡은 희미했지만, 아직 의식이 완전히 소실된 건 아니었다.
‘ICP가 29mmHg까지 올라갔어!’
하지만 무척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의 얼굴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야 숨소리가 들릴 만큼 호흡이 희미했다.
‘ICP가 29mmHg라면 경막 내 혈종까지 생겼단 말인데……. 일단 ICP부터 낮춰야 해!’
“글리세린(Glycerin: 뇌압 강하제) 있습니까?”
박상우가 아무런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는 응급 요원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아, 아뇨.”
“만니톨(Mannitol: 삼투압 이뇨제)은요?”
“그것도…….”
응급 요원이 멋쩍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제길, 그럼 준비되어 있는 게 뭐야?’
“할 수 없군요. 인공호흡기는 있죠?”
“네. 그건 구비되어 있습니다.”
“산소마스크 씌워 주시고 농도는 최대로 높여 주세요.”
박상우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네. 알겠습니다.”
부랴부랴 산소마스크를 씌우는 응급 요원. 그가 밸브를 돌려 산소 농도를 높였다.
ICP 30mmHg, 31mmHg…….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하는 최상호의 뇌압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잔존 수명: 1시간 34분 23초, 22초, 21초…….]점점 옅어져 가는 최상호의 의식과 시시각각 줄어드는 잔존 수명에, 박상우 또한 무척 초조해졌다.
‘서두르지 않으면 윤성이 아빠는 죽는다!’
“기사님! 속도를 더 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속이 타는지 박상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후, 한 5분 정도면 도착할 듯싶습니다.”
끼이이익!
5시간 같은 5분이 흐른 뒤 한성 병원 앞에 도착했다. 구급차가 긴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미 한성 병원의 의료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덜컥, 드르륵.
구급 요원이 뒷문을 열고 이동식 침대를 내렸다.
“아직 미세하게 의식은 남아 있는데, ICP가 30mmHg를 넘긴 것으로 볼 때 브레인 에드마(Brain edema: 뇌부종)가 의심되고, 뇌경막 상하에 심각한 해마토마(Hematoma: 혈종) 또한 의심됩니다.”
박상우가 이동식 침대를 밀고 가며 마중 나온 의료진들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의사십니까?”
의료진은 이동식 침대를 인계받아 환자를 스트레처 카에 태웠다. 한 의사가 박상우를 힐끗거렸다.
“네. 명성대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단, ICP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셔야 합니다!”
“장비도 없었을 텐데 ICP는 어떻게 측정하셨습니까?”
“후,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지금 이 환자 응급조치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박상우가 답답한 듯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선생님은 이곳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의료진들이 스트레처 카를 붙들고 있던 박상우의 팔을 밀쳐 냈다.
지이이잉.
서너 명의 의료진이 응급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박상우는 못 미더운 듯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선생님! 프랙처 오브 스컬(Fracture of skull: 두개골 골절) 의심 환자입니다.”
“그래? 의식은?”
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의사 한 명이 다가와 최상호의 동공을 살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신경외과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 이동수였다.
“다행히 아직 의식은 있네. 일단, CT부터 찍어 보자고. 김 선생님! 이 환자 CT 찍고 ICP 측정해 봐야 하니까, 준비해 주세요.”
잠시 후, 최상호는 CT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의료진들이 그를 조심스럽게 베드 위에 올려놓았다.
“거즈!”
소독 장갑을 낀 이동수가 손을 내밀자 간호사가 그에게 거즈를 전달했다. 이동수는 압력계에 연결된 0점 라인을 환자의 귀 높이에 일치하도록 맞춘 후, 압력계를 IV 폴에 고정했다. 제법 능숙한 모습이, 수차례 해 본 솜씨였다.
“카테터!”
“여기 있습니다.”
이동수가 카테터를 두피에 삽입했다. 나머지 의료진들은 그가 드레싱 하는 동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연결되었다.
“지금 환자 ICP 얼마야?”
잠시 후, 이동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ICP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32mmHg요!”
“뭐? 32라고? 시팔, 수술 바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일단은 조치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ICP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니톨 정맥 주사해.”
삼투 작용을 통해 두개강 내의 수분을 혈관으로 내보내 뇌압을 감소시키는 기본적인 조치였다. 여기까지는 타당한 조치로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별로 효과가 없는데요? 여전히 위험 수치예요!”
간호사가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니톨을 투여해 봤지만, 뇌압은 미세하게 떨어질 뿐 여전히 위험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큰일이네?”
답답한 듯 입술을 잘근거리는 주치의, 이동수.
“선생님, 아무래도 과장님께 노티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련의로 보이는 한 남자가 전화 거는 시늉을 했다.
“너, 돌았니? 오늘 과장님 따님 연주회인 거 몰라? 핵전쟁이 나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그, 그래도…….”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의 수련의 조상기가 이마를 긁적거렸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괜한 오지랖 떨지 말고 방사선과 가서 CT 결과 나왔나 확인해 봐.”
“네.”
이동수가 버럭거리자 조상기가 지하 1층, 방사선 과로 향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패럴리틱스(Paralytics: 신경 차단제) 투여해야 할 것 같아. 석시콜린 60mg 투여해.”
해당 약품은 신경근 차단제로, 일종의 마취에 쓰는 약제다. 몸속의 대사를 중지시켜 산소 소비를 줄임으로써 뇌압을 낮출 방법이긴 하지만, 의식이 완전히 소실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처치는 매우 위험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몇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의료진들을 헤집고 들어왔다.
“뭡니까?”
“지금 환자 의식이 있는데 신경 차단제라뇨? 지금 제정신인가요?”
“이 선생, 저 사람 뭐야?”
이동수가 근처에 있던 수련의에게 물었다.
“네. 이 환자를 데리고 온 사람인데, 명성대 병원 의사라네요.”
“그래? 흠흠. 만니톨로도 뇌압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석시콜린을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명성대학교 병원이란 말에 이동수가 어느 정도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가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 갔다.
“네. 그 방법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아직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60mg이라뇨? 환자 죽일 셈입니까?”
“뭐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왜 환자를 죽여? 최대 허용량이 60mg인 거 몰라?”
“다시 말하지만 그건 다른 방법이 전혀 없을 때 극약 처방 아닙니까? 그리고 뉴로머슬러 모니터링(Neuromuscular monitoring: 신경 근육 모니터링)도 없이 그렇게 함부로 석시콜린을 투여해도 되는 겁니까?”
“아…… 그게. 흠흠, 한 선생님. 측정기 준비된 거죠?”
이동수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
“그, 그게…….”
당황한 건 한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측정기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다 의료 사고 납니다. 석시콜린은 그렇게 함부로 처방하는 약제가 아니에요. 200mg 이상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아, 알았으니까,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나가서 대기하세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명이 밝으면 어떡합니까? 최대한 불빛을 줄여 뇌 자극을 줄여 주십시오.”
박상우가 밝은 조명을 가리켰다.
“알았다고요! 여긴 명성대 병원이 아니니까 당장 나가라고! 치료 방해하지 말고요!”
이동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발악했다.
“그럼 똑바로 치료하십시오. 제발!”
“알았으니까 당장 나가! 한 선생, 프로세마이드 투여해 주세요.”
“프로세마이드는 더 위험합니다. 이 환자의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어요. 이 환자 역시 심장이 좋지 않을 확률이 높은데 프로세마이드라뇨? 레스피어토리 디스트레스(Respiratory distress: 호흡 곤란 증후군)가 온다고요!”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이퍼벤틸레이션(Hyperventilation: 과호흡) 실시하세요. 과호흡하게 해서, 동맥혈의 Pco2를 8~33mmHg로 맞추면 뇌압이 25~30% 정도는 감소합니다. 그리고 모니터 주시하면서 만니톨을 주입해 주면 ICP가 떨어질 겁니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좀 밖으로 나가라고요! 이 선생, 이 사람 밖으로 내보내! 당장!”
목 밑까지 붉어진 이동수가 게거품을 물며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