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48)
신의 메스-48화(48/249)
48화 날개 잃은 천사 그리고 격투기 선수 (6)
“죄송하지만, 치료에 방해되니까 밖으로 나가세요.”
간호사가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CT 결과 나왔습니다.”
그 순간 수련의 조상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사선과로 갔다가 황급히 응급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 화면 띄워 봐.”
“네. 선생님.”
그가 컴퓨터 화면에 영상을 띄웠다. 이동수가 서둘러 컴퓨터 쪽으로 이동했다.
“어디 보자. 뭐가 문제냐?”
뒷짐을 진 채, 이동수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전두부 외상성 뇌출혈은 별거 아닌데, 후두부 뇌경막상 혈종이 심각하네. 그래. 그래서 ICP가 높았던 거야.”
뭔가 알아냈다는 듯이 이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생, 당장 보호자 동의 받아 와. 수술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이동수가 표정에 자신감을 내비치며 말했다.
하지만 박상우는 그 이상을 알아채고 있었다.
환자는 단순히 상혈종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환자의 상태로 볼 때 후두골 하방 및 우측 측두골 골절도 의심되었고, 고도의 뇌부종 때문에 뇌압이 32mmHg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전두엽 하방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뇌좌상이 있을 터였다.
‘CT를 확인해 봐야 한다!’
“자, 잠깐만요! 제가 화면을 한번 봐도 될까요?”
그 모습에 박상우가 컴퓨터 앞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호준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사람 당장 내보내랬는데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틱, 이동수가 컴퓨터 화면을 꺼 버리곤 이호준 선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 그게 자꾸 이 사람이 막무가내로…….”
“당장 끌어내. 얼른!”
“잠깐만요! CT 한 번만 더 보겠습니다.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자꾸 이러시면, 의료 방해 행위로 고소하겠습니다. 당장 나가세요. 당장!”
“한 번만 보면 됩니다. 제발 화면 한 번만 보여 주세요.”
박상우가 이동수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당신도 의사니까 환자의 건강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 의료법 위반이란 걸 모를 리 없고. 경찰에 신고할까요?”
“후, 맘대로 하십시오. 그러니 한 번만 CT 결과를 봅시다.”
“아. 미치겠네. 이 인간, 진상이네. 야! 당장 경비 불러서 이 사람 끌어내. 빨리.”
“네. 알겠습니다.”
박상우의 팔을 잡아끄는 두 명의 수련의.
“그리고 한 선생은 마취과에 연락하고 수술방 하나 잡아 주세요.”
박상우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이동수가 간호사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네. 선생님!”
“그나저나 프로세마이드는 투여할까요?”
“미쳤습니까? 의료 사고 날 일 있어요? 우선 환자 하이퍼벤틸레이션 시켜 주시고 만니톨 투여해 주세요.”
“네? 아…… 네.”
박상우는 응급실 앞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떡하지? 뇌경막상 혈종만이 아닐 텐데…….’
박상우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응급실 안쪽을 살피며 움찔거렸다.
“거기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쇼.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내 목이 달아나요!”
박상우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흠, 어떻게든 내가 차트를 확인해 봐야 하는데…….”
박상우가 답답한 듯, 계속해서 응급실 복도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추켜올렸다.
‘맞아! 이 병원에서 재욱이 형이 근무하지!’
이내 박상우가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 저 상우예요. 잘 지내시죠?”
박재욱은 박상우의 의대 3년 선배로, 춘천의 같은 동네에서 자라 평소에 호형호제할 만큼 친한 사이였다. 박재욱은 현재 한성 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로 진료를 보고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너 명성대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네. 운 좋게 그렇게 됐어요.”
“운은 무슨. 네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잘된 거지. 그나저나, 우리 만나서 술 한잔해야 하는데,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얼굴도 못 봤네.”
“그러게요.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에이, 레지던트가 시간이 어딨어? 그나저나 웬일이야?”
“그게 말이에요…….”
박상우가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박재욱은 망설이는 듯 뜸을 들였다.
“도와주세요. 제가 반드시 차트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어요.”
박상우가 절절한 말투로 박재욱에게 부탁했다.
“좋아. 신경외과라고 했지? 거기 인턴 중에 이호준이라고 있는데, 그놈한테 내가 말해 둘게. 아마 도와줄 거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형!”
박상우가 핸드폰에 대고 수차례 인사를 했다.
“이거 엔간해선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인데, 천하의 박상우가 허튼짓할 리는 없고. 네 부탁이니 할 수 없이 들어주는 거야.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원상 복구해라. 괜히 누가 알게 되면 나도 곤란해지니까.”
“물론이죠.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 후,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고 수련의 이호준이 밖으로 나왔다.
“혹시 그쪽이 박상우 선생님이세요?”
이호준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제가 박상우입니다.”
“우리 병원 박재욱 선생님하곤 어떤 사이세요?”
이호준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는, 껄끄러운 듯 박상우를 훑어 내렸다.
“같은 동네에서 같이 자란 형님입니다.”
“하여간, 이 형님 오지랖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답답한 기색의 박상우가 이호준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내가 다른 사람 부탁은 몰라도, 박 선생님 부탁은 거절 못 합니다. 신세 진 게 많아서요.”
이호준은 지방에서 올라와 한성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재욱은 같은 지방 출신으로서, 이호준이 서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탓에 그의 부탁은 다소 껄끄러울지라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차트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따라오세요. 여기는 좀 그렇고, 당직실로 갑시다.”
이호준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잠시 후, 둘은 당직실에 도착했다.
“환자는요? 지금 환자 상태는 어떤가요?”
차트를 넘겨보던 박상우가 이호준에게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하이퍼벤틸레이션 실시하고 만니톨 투여해서 어느 정도 뇌압은 잡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지금 환자는 어딨어요?”
“아마 수술실로 옮겼을 거예요.”
“좀 전에 정문 쪽으로 환자 나오는 거 못 봤는데……?”
깜짝 놀란 박상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아, 저쪽 뒷문으로 나갔어요. 아까 박 선생님이 있던 쪽은 정문이고.”
“뭐라고요? 미치겠네.”
박상우가 거칠게 머리칼을 헝클이다가, 안 되겠다는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호준 씨, 저 부탁 하나만 합시다.”
“또 무슨 부탁을…… 일단 말씀해 보세요.”
“이 환자 CT 결과, 제게 보여 주십시오.”
“네? 아…… 그거까진, 좀 곤란한데.”
이호준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오늘, 윤성이라고…….”
박상우가 윤성이의 사정을 설명했다.
“사정이 딱하긴 하네요. 차트야 보여 드릴 수 있지만, 그래도 CT는 좀 곤란…….”
하지만 이호준은 여전히 난색을 보였다.
“간절히 부탁합니다. 문제 생기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박상우가 이호준의 두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원래 안 되는데…….”
“제발, 부탁드려요!”
“후, 알았어요.”
이호준이 못 이기겠다는 듯 키보드를 두드려 CT 촬영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절대로 제가 보여 줬단 말은 하시면 안 돼요!”
“물론이죠.”
* * *
“빨리 보세요. 걸리면 저 뒈집니다.”
이호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고마워요.”
마우스를 움직여 CT 결과를 살펴보는 박상우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졌다.
‘역시, 예상대로야.’
광범위한 뇌부종에 경막하 혈종도 심각했다. 윤성이 아빠는 두개골 골절에 따른 반충 손상(상처의 반작용으로 반대편을 상하는 현상)으로 전두부와 측두부에 손상을 받아 혈종이 생겨 뇌압이 상승한 것이다.
뇌경막상 혈종만 제거해서는 윤성이 아빠를 살릴 수 없었다.
“이거 봐요. 뇌경막상 혈종만 있는 게 아니에요. 경막하 혈종이 훨씬 광범위한데, 아까 그 의사가 아무래도 판독을 잘못한 거 같습니다.”
박상우가 화면의 허연 부분을 가리켰다.
“그러게요. 여기 하얀 부분이 혈종이잖아요?”
이호준이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이 CT 자료 저희 병원 교수님한테 보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 그건 심하게 불법인데?”
“잘못하면 환자 죽습니다. 그렇게 되면 호준 씨나 그 의사나, 의료 소송을 피할 수 없어요! 그때 가서 후회하시겠습니까?”
“아, 그래도…….”
“시간 없어요! 빨리요!”
“아, 알겠습니다. 어디로 보내면 돼요?”
“여기요. 이쪽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박상우는 이호준에게 이상필 교수의 이메일 주소를 불러 주었다.
잠시 후 박상우는 명성대 병원 뇌신경외과 교수 이상필에게 CT 자료를 전송했고 곧, CT 결과를 확인한 이상필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내 준 사진 확인했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 환자 어떻게 된 거야? 경막상 혈종도 심한데, 더 심각한 건 경막하 혈종이야. 게다가 뇌부종도 심각해. 이 정도면 뇌압이 30mmHg는 넘었을 것 같은데?”
‘역시 예상대로 경막하 혈종이 문제였어.’
“교수님, 만약 CT를 오판해 경막상 혈종만 제거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경막상 혈종만 제거하는 수술과 복합적으로 경막하 혈종을 고려한 수술은 완전히 달라.”
“역시 그렇군요. 지금 집도의가 CT 결과를 잘못 해석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어떡하죠?”
“뭐?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런 돌팔이가 세상 어디 있나?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집도의가 지금 이 CT를 경막상 혈종으로 판독했다는 거잖아? 그게 말이 돼? 후두부 혈종에 두개골 골절, 게다가 희미하지만 전두엽 출혈까지 있는데? 이걸 단순 경막상 혈종으로 본다고? 미친 거 아냐? 거기 병원이 어디야?”
흥분한 이상필 교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네. 한성 병원입니다.”
“한성? 거기는 우리 협력 병원 아니야? 가만있어 봐…… 설마, 황규현 과장이 그런 진단을 내린 거야?”
“아뇨. 여기 과장님은 부재중이시고…… 아, 네. 이동수 선생이란 분이 내린 진단입니다.”
“어처구니없구나. 그 인간, 사람 잡겠네.”
“그래도 수술을 하면서 육안으로라도 확인하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사진 결과를 그렇게 해석한 인간이 잘도 확인하겠다. 그냥 경막상 혈종이라고 하고 두개골 닫을 인간이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어떻게 돼? ICP는 치솟아 오를 테고, 어레스트 와서 환자 죽는 거지! 아무튼,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환자 그렇게 두면 골로 간다. 어떻게든 그 수술 막아야 해.”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상황이거든요.”
“그래? 그럼 다른 사람을 수술실에 들여보내야지. 그 돌팔이 가지고는 이 수술 안 된다. 황 과장한테 빨리 노티하고 수술실로 오라고 해.”
“그분은…….”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이호준을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분은 오늘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 그럼 방법이 없는데……. 나라도 갈 수 있으면 가겠다만, 나도 1시간 후면 수술이 있어서 힘들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팩스로 교수님 소견서 한 장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거야 어려울 건 없지. 그나저나 환자와 자네는 무슨 관계야?”
“먼 친척입니다.”
“그래? 알았네. 바로 팩스 보내 주도록 하지.”
“네. 감사합니다.”
박상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이호준에게 물었다.
“호준 씨, 제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좋으실 대로.”
“지금 호준 씨 교수님이 오셔서 집도하시는 거 가능합니까?”
“아뇨. 불가능합니다.”
이호준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유는요?”
“지금 상황에서 교수님이 선생님 진단을 믿으시겠어요? 게다가 교수님이 워낙 따님한테는 각별하셔서, 원장님이 오라고 해도 안 오실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수차례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셨어요. 앞으로도 안 받으실 거예요. 대통령 전화면 모를까?”
이호준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네요. 대통령에 버금가는 사람의 입을 빌리는 수밖에…….”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잠시만 밖에 나갔다 올 테니 교수님 팩스 오면 잘 받아 두세요.”
“뭐, 그렇게 하죠.”
박상우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띠띠띠띠.
그러곤 어디론가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 상우 군!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야?”
박상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명성대 병원의 이사장, 최현호였다.
“이사장님, 다름이 아니고 부탁 하나만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부탁? 흠, 뭔지 모르겠지만 말해 보게나.”
“전에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소원 하나는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죠.”
“그래. 내가 그랬지. 그래서?”
“그 소원, 오늘 들어주셨으면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