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50)
신의 메스-50화(50/249)
50화 내 편이 될 수 없다면 (1)
산더미 같이 쌓인, 환자 상태에 관한 차트들.
박상우는 여느 때와 같이 당직실에서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덜컹!
그때 천기수가 발로 문을 걷어차며 휘적휘적 들어왔다. 한 손에는 과자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잔망스럽게 과자를 우물거리며 박상우에게 다가왔다.
“박상우! 뭐 하냐? 졸라 바빠 보인다?”
천기수는 박상우의 뒤로 다가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말하면서도 쉴 새 없이 과자를 꺼내 입안에 욱여넣었다.
“뭐 하긴, 보면 모르냐? 차트 정리하지.”
박상우는 그런 천기수를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하나 먹을래?”
천기수가 과자를 꺼내 박상우에게 내밀었다.
“아니. 됐다.”
박상우는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래? 졸라 맛있는데, 먹기 싫으면 할 수 없지. 나 혼자 다 먹어야지. 그나저나 누구 차튼데?”
천기수가 입을 삐죽거리며 경박스럽게 과자 봉지를 뒤적거리다가 과자를 꺼내 입에 물고는 우물우물했다.
“308호, 김연순 할머니.”
“아…… 심근경색 환자?”
“그래. 생각보다 상태가 별로 안 좋네.”
박상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매를 좁혔다.
“어휴, 그 할머니도 참 안됐어. 자식들이라고 코빼기도 안 비추더만. 자식이 없으신가?”
천기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들이 셋이나 있다더라.”
“뭐? 그게 말이 돼? 그런데 그렇게 어머니를 방치해?”
흥분한 듯 말하는 천기수의 입에서 과자 부스러기가 마구 튀어나왔다.
“너나 나중에 부모님께 잘해라. 부모님 건강하게 계시는 게 얼마나 복 받은 건데.”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우리 엄마, 아버지 건강검진 예약해 뒀다. 1박 2일짜리 특별 코스긴 한데, 직원가로 하니까 부담 없고 좋더라.”
“정말 잘했다. 의사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맨날 속만 썩이다가 오랜만에 아들 노릇하네.”
“얀마. 속을 썩이긴!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아 참. 너, 전용석 환자 알지?”
“알지. 엡스타인 기형(Epstein’s anomaly: 심장 기형) 환자잖아?”
엡스타인 기형이란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오른방실판막이 우심실 아래로 전이되는 증상을 보인다.
“이번에 최중현 교수님이 수술했잖냐? 내가 수술방에 같이 들어갔는데, 최 교수님 손놀림이 예술의 경지더라. 마술 쇼를 보는 줄 알았어. 완전 가위손이야!”
천기수가 침을 튀겨 가며 최중현 교수를 추켜세웠다.
“최 교수님이야 그 방면에서는 우리나라 톱급이시니, 당연히 잘하셨겠지. 교수님이 쓴 엡스타인 기형에 관한 논문도 미국 심장학회(AHA)에 다수 올라가 있잖아.”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천기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나도 그건 아는데, 실제로 보니까 진짜 어마어마하더라. 무슨 무협 영화 보는 것 같더라고.”
천기수가 허공에 휙휙 손을 휘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좋은 경험 했겠네. 앞으로도 잘 봐 둬라. 다 살이 되고 뼈가 될 거니까.”
“새끼, 말투 봐라. 아주, 자기가 과장쯤 되는 줄 알아. 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역전해 줄 테니까!”
천기수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기대하마. 이번에 최 교수님이 맡은 수술이 꽤 힘든 복합 수술이었다던데?”
“맞아! 흉부외과에서 할 수 있는 수술은 다 한 것 같아. 수술 소요 시간만 8시간에 삼첨판 치환술, 승모판 성형술, 메이즈 수술, 심방 중력 결손 폐쇄술, 글렌 단락술, 우심방 축소 성형술, 영구형 심방 조율 유도 이식술까지 완전히 수술 종합 선물 세트였다고! 그런데 거짓말 안 보태고,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니까! 이 시대 최고의 칼잡이셔!”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천기수의 입에 들어 있던 과자들이 사방팔방 튀어나왔다.
“야, 입속에 과자나 다 처먹고 말해라. 이게 뭐야?”
박상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옷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 냈다.
“미안! 아무튼, 최 교수님이 이제부터 내 롤 모델이야. 앞으로 그분처럼 성장해서 존스 홉킨스 가야지. 아무래도 흉부외과 쪽은 미국에서 활동해야 하지 않겠냐? 흠, 하버드가 더 나으려나?”
천기수가 입술을 쭉 내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이없네. 언제는 조현오 교수님이 롤 모델이라면서? 무슨 롤 모델이 그렇게 쉽게 바뀌냐?”
박상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짜샤! 조현오 교수님이 꾸준하게 3할을 치는 교타자라면, 최중현 교수님은 2할을 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뻥뻥 쏘아 올리는 거포라고 할까? 아무튼, 난 최중현 교수님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들어.”
“하여간 너란 놈은…….”
박상우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난 이제 팬 서비스 하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천기수가 박상우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어딜 같이 가? 그리고 네가 연예인이냐? 팬 서비스를 하게?”
“짜샤, 어디긴. 너스 스테이션이지. 거기가 나, 천기수의 성지 아니냐?”
“미치겠네. 간호사 선생님들이 네 팬이라고?”
박상우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어제 뻐꾸기 좀 날려 주니까, 강 선생 이 선생, 아주 뻑이 가더라. 뻑이 가.”
천기수가 손을 입가에 대고 흔들어 대며 말했다.
“미친놈, 착각도 자유라지만 좀 심한데? 신경정신과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진짜라니까? 네가 이렇게 못 믿으니까 내가 그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 주겠다는 거 아니냐. 같이 가자고!”
천기수가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됐고, 나 이거 오늘 다 정리해야 하니까, 가려거든 너나 가라.”
박상우는 천기수의 팔을 뿌리쳤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졸라게 뺑이 쳐라. 사랑하는 친구야!”
천기수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알았다.”
“그럼, 나 간다.”
“가서 쓸데없이 간호사 선생님들 괴롭히지 마라. 그분들, 한가하게 네가 수작 부리는 거 받아 주실 상황 아니니까.”
“네 걱정이나 하셔.”
천기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직실을 빠져나갔다.
박상우는 자리에 남아 환자들의 차트를 다시금 살펴보았다.
순간, 박상우의 머릿속에 회귀 전의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전용석 환자? 맞아! 그 환자가 틀림없어!’
고혈압을 진단받았던 전용석 환자는 이후 하급 상원 병원에서 엡스타인 기형을 진단받았고, 당시 그 병원에서 수술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는 해당 병원에서의 수술을 거절하고 상급 병원인 명성대 병원으로 왔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초음파와 MRI 검사 결과 삼천판 역류증, 엡스타인 기형 등의 진단을 받고 최중현 교수의 집도 하에 수술했다. 수술은 잘 끝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급격히 악화하여 결국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사망하였다.
그러자 전용석 환자의 보호자는 병원을 상대로 의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주치의는 TS 치프인 버섯돌이 정현웅이었는데, 의료 소송 결과 그의 과실이 인정되어 전용석 환자 측에 피해 보상금을 지급했고, 이를 계기로 정현웅은 의사 가운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박상우에게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던 정현웅이 연루된 사건이며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기에 머릿속에 담아 둘 필요가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했고,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그 사건이 이맘때 있었군.’
박상우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맞부딪히며 푸르르 소리를 냈다.
그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머릿속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최중현 교수가 수술했다면 실수했을 리도 없는데, 왜 그렇게 갑자기 악화한 걸까? 게다가 정현웅 정도면 팔로업을 제대로 못 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야…….’
박상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불현듯 박상우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박상우는 얼마 전 우연히 목격한 정현웅의 치료 장면을 떠올렸다.
– 피그민(자율신경 용제)하고 타미눌(자율신경 용제) 투여해!
당시 정현웅은 전용석 환자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자율신경 용제 투여를 지시했다.
– 네. 선생님.
– 환자분! 오른손 들어 보세요. 그리고 제 말이 들리시면 고개를 끄덕여 보세요.
환자는 정현웅의 지시에 따라 오른팔과 고개를 움직여 보였다. 의료진의 지시에 정확히 따르는 모습을 볼 때, 전용석 환자의 의식은 또렷해 보였다.
– 장 선생님, 울티바(진정 치료제) 투여해 주세요.
– 네. 선생님.
그 모습을 확인한 정현웅이 진정제 투여를 지시했다. 정현웅이 행한 일련의 과정은 교과서적이었고 적절한 조치였다.
‘흠, 그렇다면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박상우는 생각하기를 미루고, 차트 정리를 끝낸 후 전용석 환자를 직접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그날 오후, 박상우가 흉부외과 ICU에 들어왔다.
전용석 환자는 인공호흡기와 인공 심박동기(AAI 모드)에 의지한 채 잠들어 있었다. 큰 수술을 받아서인지 한층 야윈 모습이었다.
천기수는 환자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박상우! 네가 웬일이냐?”
그러다 박상우가 어깨를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그냥 전용석 환자 상태 어떤지 궁금해서 왔어. 이 환자 처음에 병원 왔을 때 내가 맡았잖냐.”
“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나서 그러냐?”
천기수가 안경을 벗어 눈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뭐, 그렇기도 하고. 환자는 좀 어때?”
박상우는 EKG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보다시피 혈압 110/82mmHg, 동맥혈 가스 분석 결과 pH 7.543. 그 밖의 수치들은 모두 양호한 편이다. 좀 전에 심전도 검사를 했는데, 약간의 부정맥 소견이 보여서 인공 심박동기의 모드를 DDD 모드에서 AAI 모드로 변경했어.”
천기수가 차트를 살펴보며 설명했다.
“그렇군.”
박상우는 유심히 환자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정현웅 선생님은 왜 안 보여?”
“말도 마라. 오늘만 기다린 인간처럼 나한테 풀 스테이 때려 놓고 친구 만나러 갔다. 시팔, 오늘 술에 절어서 기어오겠지.”
천기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오늘 최 교수님 지방에 내려가셨지?”
“그래. 부산대에 특강 가셨잖아.”
“이때가 기회다 싶었군.”
“당연하지. 그 인간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썩히겠냐?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나야 내가 살지, 더러워서 이 짓도 못 해 먹겠다.”
“정현웅 선생님이 언제 병원을 나갔는데?”
“아까, 한 5시쯤 나갔을걸?”
천기수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넌 여기 언제 왔어?”
“몇 시더라…… 8시 반쯤인가? 그쯤에 연락받고 왔지.”
“미쳤군.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한 환자를 3시간이나 그냥 방치해 뒀다는 거야?”
“에이, 뭐. 무슨 일 있겠어? 혈압, 맥박, 호흡 이렇게 다 정상인데?”
천기수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에 반해 박상우는 미간을 좁히며 눈을 깜박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내 기억대로 전용석 환자가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사망했던 것이 맞고, 보호자 측에서 소송을 건다면…… 지금의 안일한 대처는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해!’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돼. 이 환자, 중증 환자야. 수술 후 예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알았다! 누가 박상우 아니랄까 봐, 훈계질이냐?”
“훈계가 아니라…….”
“됐고! 상우야,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온다. 며칠째 똥을 못 쌌는데 이제야 신호가 왔어. 안 바쁘면 여기서 30분만 스테이 해 줘. 금방 올 테니까.”
천기수가 손을 내저으며 박상우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