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54)
신의 메스-54화(54/249)
54화 무명 여배우 (1)
“상우야, 너 708호 한수지 환자 봤어?”
천기수가 호들갑을 떨며 당직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또 네 이상형이냐?”
박상우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아니고, 영화배우잖아. 거, 뭐더라?”
천기수는 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쇼하네. 영화배우가 4인실 병실에 입원할 일이 없잖아?”
박상우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인마. 뭐더라…… 맞다! 「기억의 저편」! 거기서 장 회장 딸로 나왔잖아. 악역이긴 해도 무척 예뻐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한수지일 줄이야.”
천기수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진짜, 딱 내 이상형이야.”
천기수가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침까지 삼켜 댔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무리 신인급이라도 네가 얼굴을 알 정도면 적어도 1인실엔 입원했을 텐데. 4인실은 좀 그렇잖아?”
“그런가? ……아니, 내 눈은 절대 못 속여. 틀림없이 한수지가 맞다니까!”
“그래서 뭐.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영화배우든 가수든 우리한테는 그저 환자일 뿐이야.”
“고리타분한 새끼!”
천기수는 박상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TV에서 볼 때보다 더 예쁘더라. 얼굴이 어쩜 그렇게 조그마해? 호빵에다 콩으로 눈, 코, 입 찍어 놓은 것 같아! 역시, 연예인은 뭐가 달라도 달라~.”
천기수는 풀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곤 침을 튀겨 가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야, 정신 차려라. 괜히 집적거리다 개망신당하지 말고! 네가 이러는 거 한두 번이니? 환자 치료나 잘해. 괜히 경거망동하지 말고.”
얼마 전 자신이 돌보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봤던 박상우는, 우울한 와중에 천기수의 행동이 못마땅했는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너나 잘하세요. 난 하루하루 행복할 테니. 휘익~.”
천기수는 연신 휘파람을 불어 대며 돌아다녔다.
그가 지금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한수지의 나이는 23세이며 직업은 배우였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조연 혹은 단역으로 출연할 정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배우였다. 그녀는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흔히 ‘DCMP’라고 불리는 병으로, 좌심실이 확장해 늘어나 얇아지면서 수축기의 기능이 감소하는 질병이다. 일단 증상이 생기면 점점 악화하여 환자의 절반 이상이 5년 내 사망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었다. 심할 경우 반드시 수술해야 했다.
“상우야. 네 말을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 한수지가 인기 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배운데, 4인실이 뭐냐? 진짜 좀 아닌 것 같지 않냐?”
“네 말대로 연예인이 맞다면 뭐, 검소한 스타일인가 보지.”
“그런가?”
천기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DCMP에 관해서 공부나 해 둬라. 윤상부 교수님, 시도 때도 없이 질문하시는 거 알지?”
“그렇지. 시도 때도 없이 훅 들어와서 별명이 ‘뜬금캐’잖아!”
‘뜬금캐’란 뜬금없이 Question을 퍼붓는다, 해서 지어진 윤상부 교수의 별명이었다.
“그 교수님,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는 수련의들 질색하신다. 조인트 당하고 싶지 않으면 책 좀 보고 논문도 좀 읽어 보고…….”
그때까지만 해도 천기수는 박상우의 조언을 흘려 들었다.
“아이 씨, 누가 진상 아니랄까 봐. 설교 그만 늘어놔라.”
그러곤 귀찮은 듯 박상우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닐 텐데.”
“걱정 마! ‘코비약 술값임’ 이거면 돼. 학부 때 지긋지긋하게 외워서 머리에 쥐가 난다.”
천기수는 미간을 찡그리며 온몸을 털어 대었다.
‘코비약 술값임!’
학부 시절, 확장성 심근병증의 원인으로 ‘코카인, 비만, 약물, 술, 갑상선 질환, 임신’의 앞 글자를 딴 시험용 족보였다.
“기수야.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될걸? 윤 교수님이 그런 꼼수에 넘어갈 만큼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란다.”
박상우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몰라. 안 되면 말고! 난 그놈의 논문집만 들여다보면 머리에 쥐가 나. 천운에 맡기련다. 그럼, 나 708호 간다!”
천기수는 이내 휘파람을 불며 당직실을 나섰다. 팔랑팔랑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상하군. 아무리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상태가 악화했다면 한수지가 DCMP인 걸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어느 병원도 DCMP를 진단한 곳이 없어.’
박상우는 천기수가 나가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 한수지의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명성대 병원에 오기 전, 한수지는 두 차례 다른 병원을 찾았었다. 하지만 각 병원의 진단명은 감기와 폐렴이었고 이에 따른 처방만 했을 뿐, 그 어떤 병원도 DCMP를 진단한 곳은 없었다.
뚫어져라 진료 기록을 살펴보던 박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이튿날, 윤상부 교수가 흉부외과 여성 병동을 회진했다. 신임 치프 신정국, 바이스 치프 조주완 그리고 천기수와 박상우, 간호사 이은주가 그 뒤를 따랐다. 줄지어서 가는 그들은 흔히 대학 병원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수지 환자분, 몸은 좀 어떠십니까?”
윤상부 교수가 환자에게 다가가 문진을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한수지는 여동생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올렸다.
그러자 한수지의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선명히 드러났다.
박상우는 회귀 전에도 한수지가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명 배우더라도 몇몇 작품에 출연한 것을 스치듯 본 적이 있던 터라 박상우에게도 유난히 그녀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이 사람, 분명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회귀 전에 맡았던 환자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단순한 기억과는 달리, 익숙함이 느껴졌다.
한수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박상우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슴 통증은 좀 어떠십니까?”
그러던 와중, 윤상부 교수가 한수지에게 부드러운 톤으로 물었다.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왼쪽 가슴에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있습니다.”
한수지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자…… 어디 봅시다.”
퉁퉁, 퉁퉁퉁.
가볍게 주먹을 말아쥔 윤상부 교수가 한수지의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이러면 아픕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여기는요.”
윤상부 교수가 좀 더 힘을 주어 한수지의 가슴을 눌러 보았다.
“아아, 거기가 아파요.”
한수지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언제 주로 아프시죠? 예를 들면 일어날 때라거나 아니면 숨을 쉴 때든가 말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아파요.”
“호흡 곤란 증세는 없나요?”
“있어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피곤합니다.”
한수지가 핏기 없는 표정으로, 바짝 말라 건조한 입술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절대로 짠 음식 드시면 안 되고 술, 담배 역시 금물입니다. 아시겠죠?”
윤상부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우리 언니 병이 확장성 심근병증이라고 하던데, 그게 심각한 병인 건가요?”
한수지 동생, 한영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간단한 병은 아니죠.”
“어떤 병인 거죠?”
한영지는 궁금한 듯 재차 질문을 던졌다.
“아, 그건 나중에 제가…….”
그 순간, 바이스 치프 조주완이 끼어들었다.
“아냐, 조 선생!”
윤상부 교수는 팔을 들어 조주완을 제지하였다.
“네. 교수님.”
조주완이 뻘쭘한 듯,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제가 말씀드리죠. 어디 보자…….”
윤상부 교수가 안경을 추켜세우며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무슨 예가 좋을까? 아, 풍선을 예로 들면 좋겠군요. 풍선 안에 공기를 넣다 보면 풍선이 확장하면서 표면이 점점 얇아지겠죠?”
“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영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보면 풍선 표면의 수축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풍선이야 바람을 빼면 다시 수축하는 반면 심장은 그러지 못합니다. 한번 늘어난 심장은 다시 정상적으로 수축하지 않아요. 그래서 수술을 통해 심장의 수축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거죠.”
윤상부 교수는 한영지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마치 심장의 수축·이완 작용을 시연하듯, 윤상부 교수가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그럼 수술만 하면 우리 언니는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저희를 믿고 지시에 잘 따라 준다면 치료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낸 사례가 많으니까요.”
박상우가 회귀하기 전인 2019년에는 의술의 발달로 인해 인공 심장 수술이 보급되면서 DCMP도 불치병은 아니었으나, 2000년에서만 해도 결코 쉬운 수술은 아니었다. 이는 최대한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키려는 윤상부 교수의 배려가 담긴 말이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결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당시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전형적인 갑을 관계였다. 즉, 상하 관계가 분명한 고압적 관계였기에 윤상부 교수가 친절히 설명하는 광경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몸조리 잘하세요. 내일 또 오겠습니다.”
“네. 선생님.”
“아이고, 어머니! 또 사제 음식 드셨네! 이러시면 평생 병원에 계실 수도 있어요!”
한수지에 대한 문진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던 윤상부 교수는 병실 문 앞 쓰레기통에 담긴 닭 뼈 더미를 발견했다.
“아, 그게. 아니라…… 아들놈이 사다 줘서.”
“어머님, 절대 기름기 있는 음식 섭취하시면 안 돼요!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음식 드시면 저 다시는 여기 안 옵니다.”
윤상부 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환자를 나무랐다.
“알겠습니다.”
민망한 듯, 환자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수술받으시면 곧 좋아지실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나중에 소를 잡아 드시든 돼지를 잡아 드시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요.”
윤상부 교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환자의 손을 잡아 주었다.
“자, 가지.”
“네. 교수님.”
윤상부 교수를 필두로 의료진이 천천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한수지 환자 담당 주치의가 누구지?”
“천기수 선생입니다.”
“그래? 천 선생, 말해 봐. DCMP의 원인이 뭐지?”
윤상부 교수는 병실을 나서자마자 천기수에게 질문했다.
“‘코비약 술값임!’입니다.”
천기수는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뭐? 코비 뭐라고? 신정국 선생, 쟤 뭐라고 하는 거야?”
“아, 그게. 학부 때 시험용으로 암기하던 족보인데…….”
“뭐? 족보? 자세히 설명해 봐.”
“교수님. 그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신정국이 눈치를 보며 윤상부 교수에게 설명했다.
“미친놈, 그걸 지금 대답이라고 하는 거야? 너, 이리 와.”
윤상부 교수가 벌게진 얼굴로 손짓하자 천기수가 쭈뼛거리며 그 앞으로 다가왔다.
“이봐. 돌팔이! 다시 묻겠다. DCMP의 원인이 뭐라고?”
“그, 그게. 코비약…….”
퍽.
“아얏!”
그 순간, 윤상부 교수가 천기수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주변 인턴들이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거렸다.
‘너희, 죽는다!’
천기수는 연신 손바닥으로 정강이를 문지르면서도 인턴들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좋아,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다. 코비약 어쩌고저쩌고에서 하나의 원인으로 ‘약물’이 있다고 했지? 그 약물의 종류가 뭐야?”
“그, 그게…….”
천기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당연히 모르겠지! 그저 학점이나 잘 받을 요량으로 잔머리나 굴렸으니 알 리가 있나! 거기, 박상우! 저 천기수랑 동기지?”
윤상부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턱짓으로 박상우를 가리켰다.
“네. 맞습니다.”
박상우는 정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너, 대답해 봐. 어떤 약물이 문제가 된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