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58)
신의 메스-58화(58/249)
58화 무명 여배우 (5)
박상우가 VIP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환자, 아직 의식이 없어요.”
“언제부터 의식이 없었던 겁니까?”
박상우가 펜 라이트를 꺼내 한수지의 동공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이은주 간호사의 말대로 의식을 잃은 상태, 코마 상태였다.
“글쎄요.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어요. 제가 링거 확인하려고 들어왔었거든요!”
이은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
“오늘 이 환자, 뭘 먹었죠?”
박상우가 청진기를 꺼내 한수지의 가슴에 대 보았다. 불규칙한 심장 박동. 분명 급성 부정맥이 틀림없었다.
“내일 정밀 검사를 해야 해서, 오후 6시경에 저녁 식사를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금식 때문에.”
한수지의 상태는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급격히 혼수상태가 왔고, 급성 부정맥이 일어난 것에 더해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박상우는 한수지의 양손을 펼쳐 보았다. 역시나 그녀의 양손이 식은땀에 잔뜩 젖어 있었다.
‘이건 하이포글라이세믹(Hypoglycemic shock: 저혈당 쇼크)에 의한 혼수상태야!’
“선생님, 빨리 한수지 환자 혈액 채취해 주시고 혈당 좀 확인해 주세요! 빨리요.”
“네. 선생님!”
박상우의 오더에 이은주 간호사가 황급히 채혈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 선생님은 고용량 포도당 좀 가져다주세요. 급합니다.”
박상우는 같이 들어온 정지수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바로 혈당 검사 하고 올게요.”
이은주 간호사는 채혈을 마쳤다.
“네.”
“혹시 환자, 저혈당 쇼크인가요?”
역시 베테랑 전문 간호사다운 추론이었다.
“네. 검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일단 그런 것 같습니다. 빨리 검사 좀 해 주세요. 잘못하다간 저혈당으로 뇌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빨리요!”
“바로 확인해 오겠습니다.”
여전히 한수지는 의식이 없었다. 그녀는 축 늘어진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박 선생님! 한수지 환자, 저혈당 쇼크가 맞는 것 같아요. 혈당 수치가 35mg/dL입니다!”
잠시 후, 이은주 간호사가 정지수 간호사와 함께 돌아왔다.
역시 박상우의 예상대로였다. 공복임을 고려하더라도 35라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박상우는 당뇨병도 없는 환자가 왜 저혈당 쇼크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금식했다고 쇼크가 오진 않기 때문이었다.
‘누가 고의로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고서야…….’
– ……제가 얼마 전에 당뇨병 진단을 받아서요.
– 그러시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여기가 한수지 씨가 입원한 병실 맞나요?
그 순간, 박상우는 며칠 전 병실 앞에서 부딪혔던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머리털이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서, 설마……?’
“선생님, 뭐 하세요? 포도당 가지고 왔습니다.”
정지수 간호사가 트레이에 담긴 포도당 주사를 박상우에게 넘겨주었다.
“이리 주세요.”
박상우가 황급히 포도당 주사를 투여했다.
잠시 후,
“으으으으!”
한수지는 포도당을 투여하자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정신이 드세요?”
“여기가 어디죠?”
정신을 차린 한수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실입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박상우가 한수지의 팔을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선생님? 제가 정신을 잃었었나요?”
“네. 혼수상태였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기억나시나요?”
“저도 모르겠어요. 잠들었는데,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빠지더니…… 그 이후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수지가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선생님!”
“이 선생님. 1시간 후에 한수지 환자 혈당 검사 다시 한번 해 주시고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체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나 이번 코마로 인한 뇌 손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내일 뇌 CT 의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 선생님! 힘드시겠지만, 오늘은 한수지 환자 신경을 좀 써 주십시오.”
“네. 선생님.”
“환자분. 뭐 좀 하나 여쭤볼게요.”
차분하게 간호사들에게 오더를 내린 박상우가 한수지에게 물었다.
“네.”
“환자분 병간호해 주시는 아주머니요. 누구시죠?”
“아……. 그 언니요?”
“네.”
“그 언니는 간호사 출신이에요. 제가 피곤할 때마다 피로회복제나 비타민 주사 놔 주시는 분이긴 한데……. 제가 필요해서 그런 거라, 그 언니는 별 잘못이…….”
이러한 방법으로 주사를 맞는 것은 의료법에 저촉하는 사항이기에 한수지가 말을 머뭇거렸다.
“불법 의료 행위를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요.”
“아…… 저 같은 연예인들은 생활이 불규칙해서 병원 가기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대신 상황 봐 주는 사람을 우린 ‘주사 언니’라고 불러요. 그런데 왜요?”
‘간호사 출신……?’
“아닙니다. 그럼 오늘은 몇 시까지 있다가 간 건가요?”
박상우는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나, 확증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저 잠들기 전까진 있었어요. 피곤해 보이길래, 저 잠들면 가라고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니까, 절대로 무리하지 마시고 우리 의료진 지시에 잘 따르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선생님, 저 좀 잠시 봐요.”
“네.”
박상우가 이은주 간호사를 향해 턱짓했다.
* * *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은주 간호사와 함께 흉부외과 당직실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신데요?”
“한수지 환자, 다이아빗 멜리셔스(Diabete mellitus: 당뇨병) 없는 거 확실하죠?”
“네. 혈액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왜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인슐린을 투여한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상인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면……!”
이은주 간호사가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공복이라도 이렇게 심한 저혈당 쇼크가 올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고의로 인슐린을 투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50에서 100단위 고용량을 정맥에 주사하거나, 링거에 꽂았을 수도 있습니다.”
“100단위요? 정상인에게 그 정도면 치사량인데…… 누가?”
순식간에 이은주 간호사의 표정이 굳어 갔다.
“췌장에 특이한 튜머가 생긴다면 인슐린을 과다 분비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습니다. 내일 바로 췌장 종양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다면 누군가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한 것이 맞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어요. 누가 그런 위험한 짓을…….”
이은주 간호사는 양손을 입에 대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일단 오늘 한수지 환자 병실에 출입했던 사람들 좀 확인해 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이 일은 선생님과 저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합시다. 괜히 소문이 새어 나가면 병원이나 환자에게 좋을 게 없어요. 좀 더 명확해지면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CCTV 확인해 볼게요.”
“그럼 수고해 주세요.”
100단위 정도의 인슐린을 일시에 주입하면 1~2분도 안 돼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인슐린을 피하에 주사한 경우라 해도, 의식을 잃기까지 적어도 10~15분 정도면 저혈당에 의한 뇌 손상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만약 췌장에 특이 종양이 없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살인 행위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은주 간호사가 떠난 빈 당직실. 박상우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 *
다음 날, 박상우가 VIP 병동 의국 앞을 지나고 있었다.
“박 선생님, 저 잠시만 봐요!”
이은주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박 선생님, 한수지 환자 검사 결과 나왔어요.”
이은주 간호사가 박상우에게 차트를 내밀었다.
“차트 보시면 아시겠지만, 췌장 종양 검사도 음성이에요. 아무래도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이 일을 어쩌죠?”
이은주 간호사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흠, 역시 그랬군요. 아니길 바랐는데…….”
차트를 읽어 내려가는 박상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혹시 CCTV는 확인해 보셨나요?”
“네. 오후 6시까진 한수지 환자 동생분이 병실에 있었고, 그 이후로는 간병인이 있었어요.”
“그래요? 그 사람, 병실에서 언제 나왔나요?”
“자정 좀 넘어서 나갔습니다. 한수지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기 한 30분 전쯤 됩니다. 혹시, 그 여자가…….”
이은주 간호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휴, 무서워 죽겠네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겉보기엔 인상도 참 좋던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진 비밀로 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박상우는 단단히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정말 무섭네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지.”
이은주 간호사가 몸을 부르르 떨며 양손으로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 * *
박상우는 고비를 넘긴 한수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박상우가 들어오자 한수지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저는 잠들어 있었던 상황이라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한수지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누군가가 환자분의 링거에 약물을 투여했던 것 같습니다.”
“야, 약물이요?”
“상당량의 인슐린을 투여한 것으로 판단되어요.”
“인슐린이라면, 당뇨병 환자들이 사용하는 것 아닌가요? 전 당뇨병이 없는데…….”
“맞습니다. 환자분의 췌장은 지극히 정상이에요. 환자분처럼 정상인 몸에 다량의 인슐린이 투여되면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고,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누…… 누가 그런 무서운 짓을……?”
당황한 한수지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그래서 제가 환자분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뭔가 집히는 데는 없습니까?”
“글쎄요. 그럴 만한 사람이 없는데…….”
한수지가 말라비틀어진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여자, 지금 뭔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맞죠?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다분히 고의로 한 짓이에요. 심각한 범죄라고요.”
“그럴 만한 일은 없었어요! 병원에서 실수한 게 아닐까요?”
“아뇨. 병원에서는 인슐린 처방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외부에서 조달된 것입니다. 어제 환자분이 혼수상태에 빠졌던 시간에, 이 병실에 있었던 사람은 간병인뿐이었어요.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주사 언니요? 그 언니는 집에 일이 있어서 오늘은 병원에 못 온다고 했어요. 그 언니가 한 짓은 아닐 거예요. 그 언니가 왜 그런 짓을…….”
한수지가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댔다.
“그러니까요! 왜 그분이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환자분! 도대체 환자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다소 흥분한 박상우의 목소리가 커지는 듯했다.
“아니에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피곤하니 돌아가 주세요!”
한수지는 침대에 누워 시트를 머리끝까지 덮어 버렸다.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