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63)
신의 메스-63화(63/249)
63화 섬마을 소녀 (2)
현무도에서의 의료 봉사활동은 여느 봉사활동과 다를 것이 없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쇼잉!”
“이렇게 많이 차리실 것 없는데…….”
“아니어라. 훌륭한 의사 선상님들이 오셨는디, 이 정도도 안 내놓으면 섭하지라.”
“그럼 잘 먹겠습니다.”
명성대 의료진은 섬마을 이장이 준비한 만찬을 먹고 휴식하며 여독을 풀었다.
다음 날, 현무도 주재 보건소에 캠프를 차리고 본격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현무도 의료 캠프에서는 서울에서 공수한 의약품들, 의료 기기 등을 세팅하며 새하얀 가운을 갖춰 입은 의료진들이 환자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의아한 상황이 벌어졌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비스를 시작했고 오후가 한참 지났지만, 캠프를 찾는 섬 주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왜 아무도 안 오는 거지? 오늘부터 진료 시작하는 거 다 알 텐데…….”
김인선이 청진기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편하고 좋지 뭐.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살다 보니 다들 건강한가 보지.”
천기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럴 리가 있냐? 저 보건소를 좀 봐. 보건의가 공석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하잖아?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천기수.”
김인선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곧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하늘이 도운 거지 뭐. 휴가라고 생각해라.”
“천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순간, 봉사활동 대장 신정국이 미간을 좁히며 나타났다.
“아…… 선생님!”
천기수가 황급히 올려둔 다리를 거두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린 한가하게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는 점 명심해. 대충 시간이나 때우자고 이곳에 온 거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선생님.”
“신 선생님, 제가 봉사활동을 여러 번 다녀 봤지만, 여긴 좀 이상한데요?”
이은주 간호사의 목소리에 우려가 섞여 있었다. 환자가 오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듯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보통은 시작하자마자 찾아오는데……. 예전에 가약도에 봉사활동 갔을 때도 환자분들이 씨암탉이나 생선 말린 거, 심지어 뱀술도 들고 오셔서 난감했는데 여기는 좀 이상하군요.”
신정국의 생각도 이은주 간호사와 다르지 않았다.
“흠, 생업에 바쁘거나 쑥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으니, 하루 이틀 정도 기다리다 영 찾아오시지 않으면 개별 방문을 해 보죠.”
“네. 그게 좋겠네요.”
야심 차게 시작한 봉사활동 첫날, 의료 캠프를 찾은 마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그리고 이튿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캠프를 찾는 이는 없었다.
“좀 심한데? 상우야, 좀 이상하지 않아?”
신정국이 난감한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이 벌써 3일째인데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오질 않을까요?”
“일단, 이장님과 상의해서 내일부터는 방문 진료를 해야겠어. 아무래도 시골 사람들이라 쑥스러워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의료진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순진한 섬마을 주민들이 쑥스러워 캠프를 찾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날 저녁, 신정국과 이은주 간호사 그리고 박상우가 이장 장국진의 집을 찾았다.
“이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우리 의사 선상님들이 웬일로 누추한 집을 찾으셨소. 어서들 오쇼잉.”
장국진은 반갑게 의료진들을 맞이했다.
의료진들이 이장의 집을 찾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건장한 남자들이 속속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드십시다.”
“네, 이장님.”
이장의 안내에 따라 의료진들이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이 밤중에 집을 찾으신 겁니까?”
“다름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섬 주민들이 아무도 찾지 않아서요.”
“허허허, 그랬습니까? 우리 섬이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무병장수하기로 소문이 났다 안 혀요.”
“그래도, 정기 검진도 제대로 못 받은 어르신들이 많으신데 진찰을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암만 암만, 늙으면 이곳저곳 성한 데가 없어라. 그란디, 어째쓰까? 우리 마을 사람들이 워낙 신세 지기를 싫어라 해서요.”
장국진 이장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그러신 것 같아서 내일부터는 저희가 직접 방문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움직이시는 게 힘든 것 같기도 해서요.”
“흐음, 그건 좀 곤란한디.”
곤란한 듯, 장국진 이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죠?”
“그게, ……아무튼 곤란혀요. 내는 그렇게 안 혔으면 좋겄는디?”
“그러면 어떻게 진료를 합니까? 아무도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으면 저희가 이곳에 온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대책 없는 이장의 말에 신정국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들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선상님이 화가 단단히 났는가베.”
장국진이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신정국을 향해 치켜뜬 눈에는 날카로운 눈빛이 싸늘했다.
“아뇨.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다만…….”
“알았어라. 그라믄 할 수 없지. 내일부터 사람들이 캠프로 나가면 되는가요?”
장국진이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를 재떨이에 털어 내었다. 그러곤 신정국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물론 그렇죠. 환자분들이 오신다면 저희가 집까지 방문할 이유가 없겠죠.”
“하하하, 알았어라. 나가 그렇게 조치를 취해 둘 테니께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셔라.”
“……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뜻밖의 반응에 신정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야, 야. 선상님들 가신단다. 어두우니께 캠프까지 바래다 드려라.”
“예. 이장님!”
장국진이 뒷짐을 진 채 신정국을 따라나서다가, 남자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선생님들, 저희가 모시겠어라. 어서 가시죠.”
“아뇨. 저희가 알아서 갈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이고, 여자 선상님도 있는디 여기가 얼매나 무서운 곳인지 모르는갑네. 누구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뒈져도 암시랑 안 헌 곳이어요. 알지도 못하믄서?”
남자들은 턱짓으로 이은주 간호사를 가리키며 기분 나쁘게 웃어 댔다.
“……그러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앞장서 주십시오.”
분위기를 눈치챈 박상우가 상황을 모면하는 듯했다.
“그라제. 여는 육지하곤 다르게 길이 험하니께 발걸음 조심하쇼잉!”
“아…… 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건들거리며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남자들의 뒤를 따라 의료진들이 캠프로 돌아왔다.
* * *
“선생님, 저 사람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캠프로 돌아온 박상우가 신정국에게 물었다.
“글쎄. 말은 험하게 해도 나쁜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은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이장님 댁에 가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끼리 한 얘기였잖아요.”
“그거야, 워낙 좁은 동네다 보니 우리가 이장님 댁으로 가는 걸 봤겠지.”
신정국은 박상우의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래도 좀 이상해요. 행동이나 말투나 기분이 개운치가 않아요.”
“저도 박 선생님이랑 같은 생각이에요. 우릴 쳐다보는 눈빛이 영 찜찜하긴 했어요.”
이은주 간호사가 박상우의 말을 거들었다.
“타지 사람이라 경계해서 그럴 거예요. 너무 신경들 쓰지 마세요.”
신정국이 이내 그들의 의견을 일축했다.
“그런데 이장님 말대로 내일 환자들이 올까요?”
이은주 간호사의 의심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글쎄요. 두고 봐야죠. 내일 되면 알겠죠. 우리는 진료 준비만 철저히 하면 됩니다. 내일 마을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계획대로 방문 진료를 시작합시다.”
“네.”
“네.”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 다들 푹 쉬세요.”
“알겠습니다.”
“네. 선생님!”
“아, 그리고 좀 전에 오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떼 지어 어디론가 올라가던데…….”
박상우가 숙소로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봤어요. 밤중에 어딜 가는 거죠?”
박상우의 말에 이은주 간호사 역시 발걸음을 멈췄다.
“글쎄요. 제 경험상 아마도 마을회관에 가는 걸 거예요. 보통 이런 오지 사람들은 낮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밤에 주로 만나 TV도 같이 보고 수다도 떨고 어르신들은 화투도 좀 치고 그래요. 아마 그래서 그럴 겁니다.”
신정국은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 네.”
‘아냐.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함께 움직였잖아? 어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은 왜?’
박상우는 여전히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 * *
“아이고, 도가니야! 선상님, 무릎이 아파 죽겠어라.”
“어디요? 여기가 아프십니까?”
“야, 야. 거기가 쑤셔 죽겠습니다.”
“이 선생님, 아무래도 이 환자분 관절염 같아요. 붓기도 심하네요. 비스테로이드계 소염제 씁시다.”
“네. 선생님!”
“선상님, 배가 끊어지게 아프다요.”
한 남자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박상우에게로 다가왔다.
“여기 누르면 아픕니까?”
박상우는 환자의 복부를 눌러 보았다.
“야, 야. 거가 허벌나게 아프다요.”
“설사가 잦으신가요?”
“맞다요. 시방도 설사 똥만 주룩주룩하고 눴어라.”
“열이 40도가 넘네요? 언제부터 이러셨죠?”
박상우가 체온을 확인한 후 물었다.
“한 며칠 됐어라. 여태까지 암시랑 안 혔는디…….”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괴로워했다.
“후우, 급성 장염 같은데…….”
“지사제를 놔 드릴까요?”
옆에 있던 이은주 간호사가 물었다.
“아뇨. 열이 40도가 넘습니다. 괜히 지사제 놨다가는 세균과 독소가 변을 배출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우선 기운이 없으시니, 정맥 주사로 수액 좀 놔 주시고 좀 나아지면 다시 처방합시다.”
“네. 선생님!”
“아이고, 삭신이야. 어깨가 빠질 것 같아요!”
“으으아앙!”
“그만 울어!”
아이를 등에 업고 나타난 아주머니가 업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난 이빨이 아파 죽겠어라!”
한 할아버지가 퉁퉁 부은 볼을 손으로 감싸고 나왔다.
장국진 이장의 말대로 물밀 듯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섬마을 사람들이 캠프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김인선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천기수 이 새낀 어딨어? 바빠 죽겠는데?”
“네? 좀 전까진 있었는데…….”
“하여간 미꾸라지 같은 새끼, 또 어디 가서 삐대고 있나 보네. 김인선, 저기 자상 환자 빨리 꿰매 드리고 항생제 처방해!”
레지던트 3년 차 박민국이 손짓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알겠습니다.”
‘뭐야? 왜 갑자기 환자들이 넘쳐나는 거야?’
어리둥절한 건 박상우도 마찬가지였다.
관절염을 호소하는 70대 노인, 자신의 배를 움켜쥐고 찾아온 아저씨, 손가락을 부엌칼에 베인 아주머니까지. 순식간에 캠프는 아수라장이었다. 마치 대학 병원 응급실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2~3시간이 흘러간 정오쯤이었다.
“내가 죽여 버릴 거야~. 하하하, 너희들 내가 살려 둘 것 같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눈이 반쯤 풀린 30대 여자. 입에 게거품을 문 채, 어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화가 나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벌쭉거리며 웃는 여자. 누가 보더라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저, 저 여자는 뭐야?”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모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