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65)
신의 메스-65화(65/249)
65화 섬마을 소녀 (4)
“기수야, 이 아이 어떻게 된 거야? 머리에 핀은 다 뭐고?”
천기수의 앞머리에는 붉은색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겠어. 나랑 놀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천기수는 그제야 머리에 꽂힌 붉은 핀을 떼어내 주머니에 넣었다.
“놀다니? 그게 무슨 소린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아이부터 살려야 할 것 아냐?”
“알았다. ……아이 이름이 뭐지?”
박상우는 회귀 전에 천기수에게 종종 들었던 이름인지라 익숙히 민주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자신이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의아해할 것이 분명했기에 재차 물어보았다.
“민주, 송민주야.”
아이는 가는 숨을 몰아쉬었다.
“민주야, 선생님이 민주 심장 소리 좀 들어볼게.”
“……네.”
잔뜩 열이 올라 상기된 얼굴. 아이의 숨소리가 위태로웠다.
“자…… 민주야! 숨을 들이마셔 봐.”
“……이렇게요?”
민주는 배를 부풀려 보았다.
“옳지! 이번에 내쉬어 볼래?”
“네…….”
박상우는 청진기를 들고 민주의 가슴 곳곳에 대 보았다.
쌔액쌔액 쇳소리를 내는 민주의 심장박동은 불규칙했다.
“가슴이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발작성 빈맥 같은데…….”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뭐? 발작성 빈맥이라고? 어린애가 무슨 발작성 빈맥이야? 민주가 선천성 부정맥이라도 있다는 거야?”
깜짝 놀란 천기수가 물었다.
“아니, 선천성 부정맥이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숨소리가 심상치가 않아. 심실 세동 같아.”
“그럼 어떡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거 아냐?”
민주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천기수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마도 그렇게 해야 할 듯싶다. 게다가 열이 엄청난데? 옆에 체온계 좀 줘 봐.”
박상우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올려놔 보았다. 손난로를 올려놓은 듯 민주의 이마가 펄펄 끓고 있었다.
“여기.”
천기수는 박상우에게 체온계를 건네주었다.
“뭐야? 열이 40도가 넘잖아? 큰일인데…… 자, 잠깐만!”
민주의 체온을 확인한 박상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톱 왜 이래?”
아이의 손톱을 들어 올려 보더니, 박상우는 아이의 손톱 끝을 유심히 관찰했다.
“손톱이 왜?”
천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점상 출혈이 보이잖아!”
“그러네? 왜 그런 건데? 빨리 좀 말해 봐.”
천기수가 박상우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잠깐만! 민주야, 우리 민주 혹시 손가락 다친 적 있어? 음, 소꿉장난하다 다쳤거나 아니면, 흙 같은 거 가지고 놀다가…….”
“아…… 뇨.”
민주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민주가 얼마나 깔끔한 아인데. 흙 같은 거 안 가지고 놀아. ……뭔데? 민주, 뭐가 문제인데?”
“미치겠네. 판막에 생긴 세균 덩어리(우종, 혹)가 떨어져 나가면, 그 세균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막아 버리면 손톱이나 피부 아래에 점상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 지금 민주 손톱 밑이 그렇잖아.”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천기수가 답답한 듯 다그쳤다.
“잠깐만 기다려 봐.”
박상우는 황급히 신발을 벗겨 아이의 발을 살펴보았다.
“이게 문제야. 발바닥에 생긴 제인웨이 리즌(Janeway lesion: 붉은 반점)!”
“붉은 반점? 그, 그렇다면?”
그 순간, 천기수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는 듯했다.
“맞아. 아무래도 이 아이 감염성 심내막염이 의심된다!”
“심내막염? 그거 심각한 거 아냐? 급성이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초조한 눈빛의 천기수가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맞아. 뇌나 눈으로 가는 혈관을 막을 경우에는 뇌졸중이나 시각 장애가 올 수도 있고, 비장 혈관이 막히면 비장 경색이 올 수도 있어!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미치겠네. 그럼 어쩌지?”
천기수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랐다.
“박 선생! 무슨 일이야?”
그 순간, 제2 캠프에서 진료를 보던 신정국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이 아이 진료 중인데 확실하진 않지만, 감염성 심내막염이 의심됩니다.”
“심내막염? 확실해?”
심내막염이라는 박상우의 말에 신정국은 시선을 아이의 손끝으로 옮겼다.
신정국이 민주의 손을 들어 올려 손끝을 살폈다. 그 역시 손톱 끝의 점성 출혈을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점성 출혈이 보이네?”
“네. 40도가 넘는 고열에 손바닥 점성 출혈 그리고 발바닥에 붉은 반점이 보이는 거로 볼 때, 급성 심내막염이 의심됩니다.”
“일단 그렇게 볼 수 있긴 한데, 아직 확진은 무리야.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안 되잖아.”
신정국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있는 장비로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항생제 투여라도 하죠. 지금 당장 육지로 나갈 수도 없잖습니까?”
“좋아. 천기수! 초음파 가져와. 당장!”
“네! 선생님.”
잠시 후, 득달같이 달려간 그는 초음파 기계를 공수해 왔다.
“여기 있습니다.”
박상우는 초음파 기기에 초음파 젤을 발라 신정국에게 건네었다.
“고맙다.”
지체하지 않고 기기를 받아든 신정국은 민주의 가슴 부위에 초음파 탐촉자를 가져다 댔다.
신정국은 복장뼈와 갈비뼈가 정확히 만나는 부위와 심첨부에 초음파 탐촉자를 가져다 대며 곳곳을 살피었다.
“이름이 민주라고 했니?”
“…….”
“선생님이 재밌는 얘기 해 줄까?”
두려움에 잔뜩 긴장한 민주를 풀어 주려는 듯했다.
“…….”
호기심이 생긴 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옛날에…….”
그동안 신정국은 감염으로 인해 심장 내에 생긴 우종을 찾으려 했다. 이리저리 환부를 문질러 보는 그의 눈빛이 심각했다.
“박 선생, 여기 좀 봐 봐. 정확하진 않지만, 하트 발브(Heart valve: 심장 판막) 표면에 신우 종양이 보인다! 아무래도 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신정국은 20여 분의 검사 후에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신정국이 정확하게 진단했다. 맞아. 신우 종양, 레날 팰빅 튜머!’
“그런 것 같군요. 어떡하죠?”
“글쎄. 당장 큰 병원으로 옮기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나갈 배편도 없고. 큰일이네…….”
신정국이 난감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이 정도로 튜머가 큰 것으로 볼 때, 문제가 심각합니다. 심장 판막에 심한 손상이 생겨 폐쇄 부전증이나 심부전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우종에 의해 반복적인 혈전증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심장 판막 치환술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육지로 나가 입원시켜야 합니다.”
“그래. 내가 봐도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잖아. 일단, 정맥 주사로 항생제와 해열제 투여해 주고 나서 이장님과 상의해 보자. 내일이라도 배편을 마련할 수 있는지 말이야. 아마, 경찰서에 연락해 보면 방법이 있을 거야.”
“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민주, 참 씩씩하구나. 잘 참아 줘서 고마워요.”
신정국이 민주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
“이렇게 용감한 것 보니까, 우리 민주 주사도 잘 맞겠네? 그치?”
“네.”
신정국이 민주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마법과도 같았다. 공포심에 떨고 있던 민주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나이는 어려도 환자를 대하는 저런 자세는 내가 배워야겠네.’
박상우는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야, 천기수! 이 아이 안쪽으로 데려가서 항생제 정맥 주사하고 수액 걸어 줘. 아이가 많이 탈진한 것 같다. 난 진료 남은 것 보고 가 볼 테니까. 그리고 상우 너는 민주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곁에 있어 줘라.”
“네. 선생님.”
“그럼 수고하고.”
진료를 마친 신정국이 제2 캠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우야! 민주 괜찮겠지?”
천기수의 눈 밑에 생긴 다크서클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듯했다.
– 아니! 난 비겁했어. 그렇게 민주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회귀 전에도, 이따금 이 아이의 이야기를 하며 괴로워하곤 했지. 이번엔 내가 꼭 도움을 보태서 살려야겠어!’
회귀 전, 천기수가 했던 말을 떠올린 박상우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내가, 내가 꼭 살릴 수 있게 해 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기수야!”
천기수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수건을 들고 이마를 닦아 주었다.
“오빠, 나 괜찮은 거야?”
“그래. 우리 민주, 착하니까 주사 한 방 맞으면 괜찮아질 거야.”
“정말? 주사 안 아파?”
“그럼. 하나도 안 아파. 오빠가 안 아프게 놔 줄게. 우리 민주 씩씩하니까 괜찮아.”
마치 친오빠처럼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는 천기수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아이 엄마는? 엄마한테 알려야 할 것 아냐?”
“글쎄. 그러고 보니 나도 민주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천기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주, 어매가 어제 왔던 그 미친 여자지라.”
박상우와 천기수의 대화에 끼어든 걸걸한 목소리. 진료를 받기 위해 캠프를 찾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제 여기 와서 지랄발광을 떨었던 그 여편네가 말이여. 쟈…… 어매라니까.”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헛기침했다. 시큰둥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턱짓으로 민주를 가리켰다.
“아냐, 아냐. 우리 엄마는 미치지 않았어! 절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민주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빽빽거렸다.
“기수야. 얼른 민주 캠프 안으로 데리고 가.”
“아, 알았어. 민주야. 얼른 가자.”
천기수가 황급히 아이를 안아 올렸다. 민주가 울먹이자 박상우가 상황을 피하려는 듯 천기수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 그 아주머니가 아이 엄마라고요?”
멀어지는 민주를 확인한 박상우가 물었다.
“그려. 나가 말했잖어. 그 여자가 민주 어매라고. 민주 어매가 서방질해가, 남편 잡아먹는 바람에 민주가 저주를 받은 겨. 이 모든 것이 그 여자 때문이랑께.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여편네.”
할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독설을 퍼부었다.
비단 이 할아버지만은 아니었다. 마을 모든 사람 역시 민주 엄마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아니, 곱지 않은 차원이 아니라 경멸하고 있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한 듯했다. 이 동네 사람들의 눈에 민주 엄마는 천하의 대역죄인인 듯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민주 엄마 일과 민주가 아픈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박상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허! 허! 시방 나한테 따지는 겨? 의사 선생은 모르면 잠자코 있더라고. 그런 게 있으니께. 실없이 알려고도 하지 말고!”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는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내저으며 캠프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제 그 여자가 민주의 엄마라고? 회귀 전에 기수는 이 여자아이를 필사적으로 살리려고 하다 실패했다. 그리고 민주의 엄마라는 그 여자는 미친 척 연기를 했어. 도대체, 이 섬마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박상우가 멀어져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