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68)
신의 메스-68화(68/249)
68화 섬마을 소녀 (7)
“야, 박상우!”
박상우가 캠프의 숙소 입구로 들어설 즈음, 천기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는 박상우를 보자 크게 외쳐 부르며 달려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땀을 그렇게 흘려?”
“상우야. 아무래도 여긴 지옥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 잘못 온 것 같다.”
천기수는 양 무릎에 손을 올려놓은 채 헐떡거렸다.
“왜 그래? 그나저나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 들어오는 거야?”
어느새 시계 초침은 새벽 3시 30분을 가리켰다.
“잠시만, 일단 물부터 좀 마시고!”
천기수가 수돗가로 가 바가지에 물을 가득 받아 들이켰다.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 낸 천기수가 박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무슨 얘긴데?”
“들어보면 알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
천기수는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고 캠프 쪽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은 캠프 진료실에 들어섰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라. 이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니까, 믿기 싫어도 무조건 믿어야 해.”
천기수가 박상우의 양팔을 잡아 의자에 주저앉혔다.
“알았으니까, 무슨 일인지 말이나 해. 실없는 소리 하면 죽는다.”
“완전 다큐멘터리니까 놀라지나 마라. 한마디로 여긴 마굴이야. 마굴!”
천기수가 몸에 묻어 있던 흙을 털어 내며 말했다.
“마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지난번에 마을 사람들이 밤에 떼로 몰려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거 봤다고 했지?”
천기수가 손가락으로 산 쪽을 가리켰다.
“그거야 뭐, 마을 회관에 마실 가는 것 아니었어?”
“말이 되니? 마실 가는데 코흘리개 어린애들도 데리고 가?”
박상우 역시,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기에 천기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 봐.”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야.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천기수가 과도하게 손을 내저었다.
“표면적이라고? 그럼 밤마실을 나간 게 아니라면 그 사람들이 왜 거기에 모인 건데?”
“다른 목적이 있었어. 그들이 모이는 목적은 단순히 수다나 떨자고 모이는 게 아니야.”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그래. 마음 단단히 먹어라. 지금부터 이 형님이 두 눈, 두 귀로 보고 들은 걸 말해 줄 테니.”
꿀꺽, 천기수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사실은 이장댁에 가서 민주 수술받을 수 있도록 사정이라도 해 보려고 했는데…….”
천기수는 이장 집으로 가는 도중,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행렬을 수상하게 여긴 그가 그들의 뒤를 밟았다. 천기수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충격적인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종교 모임이었다고?”
“그래. 겉보기엔 그냥 예배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까 전혀 아니야.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라고. 마치 사이비 종교 집회 같았어.”
“사이비?”
“그래. 사이비!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니까.”
“네가 잘못 본 것 아냐?”
“진짜라고! 다들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질렀다니까!”
천기수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내리쳤다.
‘기수가 본 게 사실일지 모른다. 민주 엄마도 그렇고 이장이나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볼 때 충분히 그럴듯해.’
박상우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아! 상우야!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와서 이장댁에서 식사하던 날 말이야. 그날 기억해?”
“얼마나 지났다고 그걸 기억 못 해? 그건 왜?”
“그때, 키 작고 머리칼이 백발이던 아저씨 있잖아. 이장 옆에서 조용히 술만 마셨던…… 그 왜 있잖아. 눈빛이 매서웠던?”
천기수가 눈매를 가늘게 만들며 손을 내저었다.
“꽁지머리 하고 있던 사람 말이지?”
“그래. 그 사람이 거기서 설교를 하더라고.”
“무슨 설교를 했는데?”
“몰래 엿듣느라고 잘 듣지는 못했는데, 아무래도 민주 문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같았어. 민주가 그렇게 아픈 게 민주 엄마가 한울님의 뜻을 거슬렀다는 거야. 그러더니 앞으로 한울님의 말씀을 어기면 다 그렇게 된다고 ‘의심하지 마라. 무조건 믿고 따르라’ 이러면서 그 아저씨가 눈이 회까닥 뒤집히면서 열변을 토하니까, 사람들이 아주 울고불고 난리블루스를 떨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랬다니까.”
천기수가 입 옆에 게거품을 물어 가며 자신이 본 것을 상세히 설명했다. 절대 지어낸 얘기는 아니었다.
방금, 민주 엄마가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었다.
“한울님? 그게 뭐야?”
“그건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마을 이장이 이 종교 집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내가 그건 장담한다.”
툭툭, 천기수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마을 회관 내부를 이장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놨더라고. 무슨 흰색 가운 같은 걸 입고 양팔을 하늘을 향해 펼친 사진인데, 포토샵질을 하긴 했지만 분명 이장이었어. 어쩌면 그 한울님이 이장일지도 몰라.”
천기수가 손짓 발짓을 해 가며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이쯤 되면 민주 엄마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일 수도 있겠어!’
“그래서?”
“그게 다야.”
천기수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게 다야?”
“응. 나도 솔직히 살 떨려서 더 확인은 못 하고 내려왔거든. 하지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냐?”
“이왕 거기까지 갔으면 좀 더 자세히 알아 와야지.”
박상우가 천기수를 채근했다.
“야. 말도 마. 오금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 예배당 같은 곳 주변에 수상한 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키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후달렸는지 알아?”
천기수가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네 말이 맞다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민주 엄마 말도 그렇고 네가 본 것도 그렇고,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듯하다.”
“민주 엄마? 네가 민주 엄마를 만나서 대화해 봤어?”
천기수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래. 민주 엄마도 너와 같은 얘기를 하더라. 그녀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미치겠네. 이곳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야.”
“…….”
박상우와 천기수는 한참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러다 민주 정말 잘못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든 민주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방법이 없잖아? 여긴 수술할 환경도 못 되고, 집도할 전문의도 없는데.”
천기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할 수 없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부딪히는 수밖에…….”
“뭐? 잇몸? 넌 또 무슨 꿍꿍이야?”
천기수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우리가 민주 수술을 해야겠어!”
“뭐라고? 너 미쳤니? 여기 뭐가 있다고 심장 수술을 해? 수술 장비는커녕,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과 선생도 없잖아? 하다못해 제대로 된 메스조차도 없는 곳이라고.”
천기수가 손바닥으로 마른 얼굴을 문질렀다.
“없으면 가져오면 되지.”
“가져와? 뭘 어떻게? 배도 없는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나, 잠시만 신정국 선생님하고 이은주 선생님 좀 만나고 올게. 넌 여기서 기다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박상우! 네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 같은 놈인 건 알겠는데, 이건 상황이 달라.”
“걱정하지 마. 내가 민주 반드시 살려 낼 테니까.”
박상우가 천기수의 손등을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정국이 기거하는 숙소로 자리를 옮겼다.
신정국의 숙소에 다다른 박상우는 늦은 밤, 신정국과 이은주 간호사를 호출했다. 그런 뒤 민주 엄마의 진술과 천기수가 목격한 사실을 설명했다.
“어머, 그게 사실이에요?”
이은주 간호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장을 맹신하고 있어요. 첫날, 둘째 날 환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도 그렇고, 마을 사람들이 밤마다 마을 회관으로 이동하는 것도, 민주 엄마가 미친 척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모두 최면이 걸린 것처럼 이장에게 조종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네 생각이 뭔데?”
신정국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대로 두면 민주와 민주 엄마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우리가 이 두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미쳐 있다면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두 사람을 구한다는 거야?”
신정국은 회의적인 눈빛을 띠었다.
“일단, 민주가 가장 급하니 민주부터 살려 놔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민주를 살리냐고!”
“우리가 여기서 수술합시다. 심장 속에 생긴 우종만 제거하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어요. 그 이후에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 민주, 살릴 수 있습니다.”
“미치겠네. 여기가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무슨 수로 우리가 민주를 살려?”
신정국이 답답하다는 듯이 거칠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가능성이 없는 박상우의 엉뚱한 제안에, 그의 반응도 천기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환경만 갖춰지면 수술하는 데 동의하십니까? 두 분!”
박상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신정국과 이은주 간호사를 번갈아 응시했다.
“민주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기본적인 것만 갖춰진다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런데, 그 기본적인 세팅을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박 선생님?”
이은주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주를 살리고 싶은 네 맘은 충분히 알겠다만, 말이 되지 않잖아. 본원에 연락해 수술하겠으니, 지원해 달라고 할래?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까? 만약에 수술 장비만 갖춰지면 민주 수술할 거냐고요!”
“하, 박 선생! 그게…….”
“할 수 있어요. 박 선생님! 마취과 선생님하고 기본적인 수술 장비, 그리고 경식도 심장 초음파만 갖춰진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이 선생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이은주 간호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신정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뇨. 전 박 선생님을 믿어요. 제가 한두 번 기적을 목격한 게 아니에요. 박 선생님이라면 어쩌면 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박 선생님을 한번 믿어 보죠.”
이은주 간호사가 신정국을 설득했다.
“그때와는 사정이 다른 것 아닙니까?”
“아뇨. 다를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 사람들도 환자였고, 민주도 우리에겐 소중한 환자예요. 우린 의료진으로서 그들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신 선생님, 우리 박상우 선생님 한번 믿어 봐요.”
이은주 간호사가 부드럽게 신정국의 팔을 흔들었다.
“나 이것 참! 뭐가 뭔지 모르겠군. 좋아! 딱 이틀 줄 테니까, 어디서 훔쳐 오든 사 오든 가지고 오기만 해. 그때는 나도 군말 없이 허락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수술 장비를 공수해 오겠습니다.”
“알았어. 딱 이틀이야. 그 이후엔 나도 어쩔 수 없어.”
“네. 알겠습니다.”
* * *
띠, 띠, 띠, 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박상우가 숙소를 나서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밤늦게 죄송합니다. 저 박상우라고 하는데 기억하실는지…….”
“박상우? 아, 그 의사 선생님?”
“네. 맞습니다. 명성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박상우라고 합니다.”
“아, 우리 형님 치료해 주셨던 박상우 선생님이군요! 그런데, 이 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
늦은 밤, 박상우가 전화를 건 상대는 지산파 넘버 2 이상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