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
신의 메스-7화(7/249)
7화 양 갈래 머리 소녀 (2)
“아, 아주머니. 잠깐만요.”
박상우가 황급히 건널목을 되돌아 건너, 아이 엄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네? 무슨 일이시죠?”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계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아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 뒤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박상우를 응시했다.
“어머님. 전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의사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좀 아픈 것 같은데, 제가 아이를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박상우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이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요, 뭐.”
여자는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후, 어머니. 전, 명성대 병원 수련의입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심상치 않아요!”
박상우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여자에게 내보였다.
“아…… 그래요? 멀쩡한 우리 애가 어디가 아프다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도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여자가 신분증을 힐끗 보더니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주머니, 잠시면 돼요. 제가 잠시만 아이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아뇨, 아뇨. 됐어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박상우가 여자 뒤에 숨어 있는 소녀의 팔을 잡으려 하자 아이 엄마가 완강히 거부했다.
“어, 엄마. 근데…… 나, 여기가, 여기가 너무 아파.”
그 순간, 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가 여자의 치맛단을 잡고 흔들었다.
“에이, 우리 은서가 또 꾀병이네. 엄마가 인형 사 준다고 했잖아. 이제 그만하세요. 공주님!”
여자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냐, 아냐. 나 정말 아프단 말이야. 여기가 너무 아파!”
울먹거리는 아이. 금세라도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아이가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어허. 자꾸 그러면 진짜 인형 안 사 준다! 얘가 왜 이래? 아까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잖아.”
여자가 나를 힐끗 보곤 짜증이 나는지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 그건 의사 선생님이 주사로 아야 하려고 해서 그랬단 말이야.”
아이의 눈에서 금세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했다. 눈두덩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머님, 자, 잠시만요. 제가 한 번만 아이를 보겠습니다. 아이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네? 후. 오늘따라 얘가 왜 이렇게 투정이야. 그래요, 뭐.”
그때야 여자는 슬며시 잡고 있던 아이의 팔을 놓아 주었다.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었다.
“예쁘게 생겼네! 꼬마야, 이름이 뭐지?”
박상우가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은서요. 정은서예요.”
“예쁜 이름이구나. 그런데, 어디가 아파? 아저씨한테 어디가 아픈지 말해 줄래?”
“여기요. 여, 여기가 아파요.”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은서가 가리킨 곳은 갈비뼈 사이 가로막 아래 왼쪽 윗부분.
이곳이면 스플린(Spleen: 비장)인데…….
“여기 누르면 아프니?”
“아아아악!”
박상우가 아이의 배를 살짝 누르자 은서가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스플레닉 럽처(Splenic rupture: 비장 파열)에 의한 인트라페리토니얼 블리딩(Intraperitoneal bleeding: 복강 내 출혈)! 출혈량이 많다면 위급한 상황이다! 이대로 놔두면 안 돼!’
[잔존 수명: 2시간 32분 12초, 11초, 10초, 09초…….]그 순간, 또다시 보이는 붉은 숫자. 은서의 이마에 나타난 숫자가 출렁거렸다.
‘은서의 상태로 볼 때, 어쩌면 저 숫자가 진짜 잔존 수명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박상우의 심장박동이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머님, 지금 병원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네. 저기 저 정형외과에서 진료받고 오는 길이에요. 엑스레이 찍어 봤는데,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던데…….”
은서가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지, 아이 엄마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요?”
휙, 박상우가 아이의 팔을 잡아당겨 윗옷을 들쳐 보았다.
‘멍 자국!’
아이의 등과 배 부위에 선명한 멍 자국이 산재해 있었다.
“어머님, 이 멍 자국 어떻게 된 거죠? 은서가 어디서 넘어졌나요?”
“그게, 은서가 유치원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갔다고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깜짝 놀라 가 보니 그렇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별거 아니라고 하셔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여자의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그래서요? 정형외과에 가신 겁니까?”
“네. 단순한 타박상이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셔서요. 그, 그런데 무슨 일이죠?”
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입술마저 떨리기 시작했다.
‘유치원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충격으로 비장이 파열된 게 틀림없어! 지금 심각한 상황이야. 아직 나이가 어린 걸 고려할 때, 이대로 놔뒀다가는 이 아이, 죽는다!’
꿀꺽, 박상우가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어머님, 병원에서 CT 찍어 보셨어요?”
“네네. 머리 쪽 CT하고 엑스레이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셨어요. 우, 우리 애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뇨. 머리 CT 말고, 복부 CT 찍어 보셨냐고요!”
박상우가 다급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요. 그건 안 한 것 같은데…… 했나? 아니요. 안 찍었던 것 같아요.”
아이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가자 여자가 당황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후, 큰일이다. 비장이 완전히 찢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엄청나게 아팠을 텐데, 은서가 인형 욕심에 아프단 소리를 안 했던 거야. 시팔, 복부 CT나 초음파만 찍어 봤어도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 돌팔이 같은 것들!’
박상우가 황급히 아이의 팔에 손을 얹어 맥박을 확인했다.
‘어어? 맥박이 왜 이래? 왜 이렇게 널뛰는 거야?’
“어, 엄마. 나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점점 잦아드는 맥박. 은서의 입술이 급격히 파랗게 변하더니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이러다가 하이포텐시브 쇼크(Hypotensive shock: 저혈압 쇼크)가 올 수도 있겠어!’
“어머님, 안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아이가 위험해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네? 어떻게, 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떡해요?”
여자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의 상태로 볼 때, 지금 119에 신고하면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너무 늦을 거야.’
박상우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 근처 병원이 어디 있지? 비장 절제술을 하려면 규모가 큰 병원이어야 하는데……. 아, 맞다. 새한대학 병원! 그곳으로 가야겠어! 지금은 차가 막히지 않을 시간대니, 택시를 타면 10분 내로 갈 수 있을 거야.’
“택시!”
박상우가 도로변을 뛰쳐나가 손을 흔들어, 지나가던 택시를 멈춰 세웠다.
“어머님, 빨리, 빨리요.”
박상우가 택시를 잡고는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어, 네.”
당황한 아이 엄마가 기운이 빠져 기진맥진해진 아이를 안고 차에 올랐다.
띠리리링.
박상우는 차에 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새한 병원이죠!”
“네. 맞습니다.”
“지금 응급 환자가 있어서 말입니다. 응급실 좀 연결해 주세요! 빨리요. 급한 환자입니다!”
“네? 누구시죠? 구급 대원인가요? 일단…….”
“아뇨, 아뇨.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길, 안 되겠네.”
‘이대로 계속 통화하면 어차피 이것저것 설명하는 데 시간 다 잡아먹는다. 지금 입원 수속을 밟을 시간은 없어! 지금 은서의 상태로 봐서는 바로 수술을 받아야 해. 그렇다면? 지름길로 곧바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어.’
뚝, 박상우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띠, 띠, 띠, 띠.
그가 다시 전화 다이얼을 눌렀다.
“교수님!”
박상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조현오 교수였다. 20년 차 베테랑 의사인 박상우. 병원 시스템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박상우는 조현오 교수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어. 그래. 지금 오는 중인가? 집사람이 콩국수를…….”
“아, 그게…… 지금 제가 교수님 댁으로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스플레닉 럽처 환자와 함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뭐? 누구?”
“5세 꼬마 여자아이입니다. 혈압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식은땀에 현기증, 구토 증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응급 스플레닉토미(Splenectomy: 비장 절제술)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래? 지금 혈압은?”
“수축기 60mmHg가량까지 떨어졌습니다. 곧 있으면 의식을 잃을 것 같아요.”
박상우가 은서의 맥을 짚어 보며 말했다.
“심각하군. 곧 어레스트가 올 것 같은데. 그나저나, 자네 지금 구급차에서 전화하는 건가?”
“아뇨. 택시입니다. 구급차를 기다리기엔 아이가 너무 위급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수축기 혈압을 자네가 어떻게 알아?”
“…….”
박상우가 잠시 멈칫거렸다.
‘은서의 맥을 짚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수축기 혈압을 가늠하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박상우는 그도 못 알아챈 사이 은서의 혈압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튼, 아이가 위험합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그래서 지금 어디인가?”
“네, 옥수동 인근입니다. 지금 새한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교수님께서 그쪽에 연락을 취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가서 설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아이가 그때까지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급합니다. 교수님!”
“음, 알았네. 내가 바로 연락을 취해 보도록 하지.”
박상우가 통화하는 도중, 점점 의식을 잃어 가는 은서의 팔을 흔들던 어머니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 어머, 은서야! 얘, 얘가 왜 이래?”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 피!”
“왜 그러세요, 어머니?”
획,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피, 피! 은서가, 은서가…….”
여자가 입을 벌린 채 눈만 껌벅였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경악했다.
은서의 다리 사이에서 새빨간 핏물이 배어난 것.
‘혈뇨! 큰일이다. 네프론 럽처(Nephron rupture: 신장 파열)까지 겹쳤어!’
꿀꺽, 은서의 혈흔을 확인한 박상우가 목울대를 꿀렁거렸다.
“교수님, 아무래도 신장까지 파열된 것 같아요. 상황이 시급합니다.”
“그래. 알았어. 병원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리나? 상황으로 봐선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네. 한 1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바로 새한 병원에 바로 연락해 봄세. 그나저나 자네…….”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닐세.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조치해 볼 테니.”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딸각, 전화를 끊는 박상우. 그가 손짓하며 운전기사를 재촉했다.
“아저씨, 최대한 빨리요! 빨리!”
“네. 알겠습니다! 간만에 액셀 한번 제대로 밟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