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1)
신의 메스-71화(71/249)
71화 섬마을 소녀 (10)
의료 캠프 앞마당.
“아야! 이쪽으로 올려 봐!”
“아놔. 무식한 새끼, 대가리로 밀어 넣어야지, 배때기를 밀어 넣으면 어떡해!”
캠프 앞마당에서 한가롭게 축구를 하는 지산파 조직원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박 선생! 수술은 마치신 겁니까?”
이상천은 박상우가 나오자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왔다. 바지 위로 양말을 걷어 올린 것으로 봐선, 본인도 축구를 했던 모양이었다.
“네. 덕분에 수술 잘 마쳤습니다.”
박상우는 가볍게 묵례했다.
“다행이군요.”
이상천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냈다.
“간만에 뛰어 보니 숨이 차네요.”
이상천이 스탠드 위에 놓인 주전자째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들은?”
박상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물맛 시원하다! 제 놈들이 별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주먹을 쓴다 한들 아마추어들인데……. 눈치만 슬금슬금 보더니 돌아갔습니다. 뭐, 이장한테 가서 상황 보고나 하겠죠.”
이상천이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 냈다.
“그렇군요. 이사님 때문에 무사히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상우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인사는 됐고요. 그나저나, 박 선생! 나와 저쪽에서 얘기 좀 합시다.”
이상천이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네?”
“아까 캠프에서 와서 난동을 피웠던 놈들에 대해서 할 얘기가 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이상천과 함께 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수술이 잘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며칠이나 됐다고 녀석이 눈에 밟히네요.”
“네, 맞아요.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입니다.”
“저도 그런 딸내미 하나 있으면 좋겠네요.”
“낳으시면 되죠.”
“아서요. 아들 새끼 하나 있는 것도 건사하기 힘듭니다. 이젠 다 컸다고 목 빳빳이 세우고 대들던데요.”
이상천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비밀인데, 저 사실은 묶었습니다.”
손을 입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이상천. 서슬 퍼런 눈매가 부드럽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카리스마 넘치는 그 역시, 아이 얘기가 나오는 그저 평범한 아빠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 네.”
“민주가 건강을 되찾아서 진짜 기분이 좋네요.”
“다행히도 수술이 잘 끝났어요. 덕분입니다.”
“제가 뭐 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제가 애들을 풀어서 좀 알아보니 재밌는 게 나오더군요.”
이상천이 금세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재밌는 거라뇨?”
“이 섬마을 이장이 정포의 필성파와 깊게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필성파요?”
“조필성이라고, 양아치 같은 놈이 만든 조직입니다. 악랄하기로 유명하죠.”
이상천이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 남자들도 그 필성파란 조직의 조직원들인가요?”
“아뇨. 하고 다니는 행색을 봐서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까 왔던 그 사람들은 필성파 애들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 필성파라는 조직은 어떤 곳입니까?”
어느덧 박상우의 표정도 진지해지고 있었다.
“조필성이라고 한때 전국구 조직이었던 강치파에서 똘마니 짓 하던 놈이 있는데, 그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쫓겨나서 차린 소규모 조직이죠. 시장 상인들이나 유흥업소 아가씨들을 대상으로 고리 사채나 뜯고, ‘매미집’이라는 싸구려 룸살롱을 몇 개 운영하는 양아치예요. 그놈들이 이장의 뒤를 봐주고, 이장에게서 리베이트를 받아 챙기나 보더군요.”
이상천이 박상우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뒤를 봐준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요?”
“흠, 추노꾼이라고 하면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이장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잡아 족치는 거죠. 다신 그런 생각도 못 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섬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거군요.”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탈출하는 족족 놈들이 애들을 풀어서 잡아들이나 보더군요. 사람이라는 게, 한번 매맛을 보면 매를 향한 두려움, 아니 공포를 떨쳐 내기 힘들죠. 한번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으면 허튼 생각은 절대로 못 합니다.”
이상천의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히는 듯했다.
“…….”
“필성파는 이쪽 바닥에서도 야비하기로 소문난 조직입니다. 우리도 기본적인 상도가 있는데, 이놈들은 완전 황소개구리처럼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입에 처넣으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어요.”
이상천이 손가락 마디를 눌러 뚝뚝 소리를 냈다.
“사실 이번 기회에 민주와 민주 엄마를 이 섬에서 탈출시키려고 했거든요. 근데, 조직이 그렇게 뒤를 봐준다면 쉽지 않겠네요?”
박상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선생님이 저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네요.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뭐, 이왕 도와주는 거, 화끈하게 도와줘야 나중에 생색을 내도 내죠. 안 그래요? 박 선생!”
이상천이 어깨를 으쓱이며 가슴을 내밀었다.
“정말요? 근데 말씀대로 그렇게 무지막지한 조직이라면…… 힘들지 않을까요?”
박상우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박 선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래 봬도 우리가 전국 넘버 원 조직입니다. 우리 조직 자회사만 10개가 넘고, 전국에 조직원만 수천 명입니다.”
“……정말 엄청나군요.”
“당연히 정포도 우리가 접수한 상태고요. 그런 양아치 새끼 하나 접수하는 건 문제 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한번 손봐 줘야 하는 놈이기도 하구요. 이런 식으로 놔뒀다간 나중엔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싹을 밟아 놔야겠습니다.”
순해 보였던 이상천 이사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다른 건 모르겠고, 민주와 민주 엄마만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주십시오. 민주는 당장 중환자실로 가야 하고, 민주 엄마는 이곳에 있으면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박상우는 이상천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래요. 걱정 마세요. 제가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선생님들도 빨리 이곳을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랑 같이 나가시죠.”
“아뇨. 일단 저희는 여기에 남아 있을 생각입니다. 이장이 문제지, 마을 사람들이 문제는 아니잖아요. 저희는 끝까지 남아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박상우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이상천을 응시했다.
“지난번 응급실에서 봤던 그 눈빛이군요. 참, 탐나는 눈빛이에요. 그 눈빛!”
“아, 그런가요?”
박상우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좋습니다. 제가 두 사람을 안전하게 모시고 뭍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애들 몇 명을 여기 남겨 둘 테니까 보디가드처럼 막 부리셔도 됩니다. 깡다구 있는 놈들로 남겨 놓을 테니까요.”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박상우는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에요.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이 친구들이면 놈들이 감히 쓸데없는 짓을 하진 못할 거예요. 전 밖으로 나가서 필성파 놈들과 이장의 연결고리를 끊어 놓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이장이라도 허튼짓은 못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러면 이걸로, 형님 살려 준 은혜는 퉁치는 겁니다?”
“그렇게 되겠네요.”
박상우와 이상천이 마주 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 * *
이상천과 대화를 나눈 박상우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접니다.”
“그래. 상우구나. 섬마을로 의료 봉사 간다더니, 벌써 서울에 온 거야?”
박상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윤석환 변호사였다.
“아뇨. 아직 섬에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웬일이야? 한가한가 보지?”
“그건 아니고요. 죄송한데 형님한테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먼 또 사건이 터진 거냐? 하여간, 네 인생도 파란만장하다! 무슨 일이야, 말해 봐.”
“사실은 말이에요…….”
박상우는 윤석현 변호사에게 섬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설명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직도 그런 식으로 혹세무민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있었나? 가만두면 안 되겠네.”
“네. 생각보다 마을 사람들의 착취가 심합니다. 재산 갈취에 폭행, 협박, 게다가 부녀자들 유린까지. 이곳은 무법천지예요. 게다가 해천과 정포 경찰에까지 검은 커넥션이 연결되어 있어요.”
“알았다. 거기 관할이 장주지검, 정포 지청 소속일 거다. 그쪽에 내 동기도 있고 하니 내가 한번 알아보마.”
“네. 부탁합니다.”
“하여간, 네 주변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구나? 무슨 굿이라도 한번 해야지, 안 되겠어!”
“굿은 무슨 굿이에요!”
“아무튼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괜히 나서지 말고 빠져라. 괜히 몸 상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서울 올라가서 연락드릴게요.”
“알았다. 부디 살아서 돌아와라, 이놈아! 사고 좀 그만 치고!”
윤석환 변호사가 나무라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형님.”
* * *
이렇게 극적으로 민주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그날 이후로 마을 이장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지산파의 조직원들이 밤새 캠프를 지켜 준 것도 있었지만, 아마도 이장이 이상천의 존재를 파악한 듯 보였다.
이튿날, 섬마을 선착장.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도착한 민주와 민주 엄마 주변으로 지산파 조직원들이 두 사람을 호위했고,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뭐여? 민주 에미가 미친 것이 아니었어?”
“야, 맞어라. 지 딸내미 살릴라고 미친 척하고 다녔댜!”
“워메. 그니까 할딱 벗고 미친년처럼 돌아당긴 게 쑈라는 겨?”
“그렇다네요.”
“잠시만, 그러면 민주 엄마가 저주를 받아서 민주가 아픈 게 아닌 거여?”
“글씨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라.”
“그러면, 이장님이 우리한테 거짓부렁한 겨?”
“나도 모르겠다고요!”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 조금씩 이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듯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민주 엄마가 박상우를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단아한 옷차림의 민주 엄마는 며칠 전에 봤던 정신 나간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에요, 어머님! 저보다는 저쪽 친구가 더 많이 고생했어요.”
박상우가 그녀를 만류하며 천기수를 가리켰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천 선생님이 우리 민주, 끔찍이 생각하고 계신다는 걸요. 천 선생님, 감사합니다.”
숨어서 민주와 천기수를 지켜보고 있던 민주 엄마는 이미 천기수가 민주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힘든 수술이었는데 민주가 잘 견뎌 줘서 다행입니다. 우리 민주, 앞으로 건강하게 잘 자랄 거예요. 제가 끝까지 민주를 돌보겠습니다.”
천기수가 해맑게 웃으며 민주 엄마의 양손을 잡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민주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울먹였다.
“천기수, 김인선! 민주 잘 부탁해. 육지로 나가면 서울 병원에 연락해서 바로 입원시켜야 할 거야. 아직 민주 몸 상태가 완전히 낫진 않았어. 너희들이 돌봐 줘야 해.”
박상우는 두 사람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래. 고맙다, 상우야. 민주 살려 줘서.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
천기수가 박상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너 정말 여기 남을 거야?”
걱정되는 듯, 김인선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신 선생님과 마무리하고 올라갈 테니까. 기수랑 같이 민주 잘 좀 보살펴 줘.”
“그, 그래…….”
아쉬운 듯, 김인선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야! 박상우!”
김인선은 잠시 머뭇거리다 목소리 톤을 높였다.
“어? 왜?”
박상우는 고개를 돌려 김인선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