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2)
신의 메스-72화(72/249)
72화 가시고기 (1)
“아, 아냐. 서울에서 보자.”
김인선은 뭔가를 말하려다 거둬들였다. 하지만 얼굴엔 서운한 기색이 가득해 보였다.
‘인선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너의 영원한 짝은 내가 아니라 기수란다. 기수와 행복하게 잘 살아. 괜히 이혼한다고 펄쩍 뛰지 말고!’
박상우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보인 채 김인선을 응시했다.
“어…… 그래. 병원에서 보자.”
잠시 후,
“자자! 배 출발합니다. 다들 탑승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야, 망치! 너희들은 박 선생 이하 의사 선생님들 잘 지켜 드려라. 만약에 무슨 일 생기면 니덜 모두 돌아올 생각 말고!”
이상천은 섬에 남은 조직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조직원들도 일렬로 늘어서 목청을 높였다.
* * *
얼마 후, 장국진 이장의 자택.
“이장님, 아무래도 경찰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여. 지석진 서장한테 당장 전화혀 봐.”
“그게…….”
“왜 꾸물거리는 겨? 후딱 전화 안 걸고?”
“그게, 이미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도 이번 일은 어쩔 수가 없답니다.”
“머여? 나가 그 자슥 똥구멍에 찔러 둔 돈이 얼맨디, 그따위 느자구 없는 소리를 혀?”
장 이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버럭버럭했다.
“그게, 저도 잘은 모르겠어라. 이번에는 광역 수사대에서 움직인 거라고 하드만요. 아무래도 이장님, 일단은 몸을 피하시는 것이…….”
“미쳤냐? 나가 뭔 죄가 있다고 몸을 숨겨?”
“장국진 씨, 계십니까?”
그 순간, 광역 수사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누여? 누가 싸가지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거여?”
맨발의 장 이장이 대청마루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장국진 씨 맞습니까?”
“그려. 나가 장국진이여. 근디?”
“네. 지금부터 잘 들으십시오. 장국진, 당신을 사기, 공갈, 특수 협박 등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체포 적부심을 신청할 수 있고…….”
경찰 한 명이 체포 영장을 펼쳐 보이며 미란다 고지를 했다.
“이런 얼어 죽을 것들을 봤나? 니덜 내가 누군 줄 알고 개수작이여?”
그러나 장국진 이장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제가 선생님을 어떻게 압니까? 아무튼, 서까지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김 형사! 체포해!”
“네. 알겠습니다.”
김 형사라 불린 경찰이 성큼성큼 다가가 장국진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놔! 이 썩을 놈들아! 내가 니들을 가만둘 것 같어? 정포 시장이 내 고향 후배여! 니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고!”
장국진 이장이 끝까지 반항하며 몸부림을 쳤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순진한 마을 사람을 현혹하여 착취했던 장국진 이장의 전횡이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 * *
민주는 천기수의 극진한 보살핌에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거기에 더해, 이상천의 경제적 지원으로 민주와 민주 엄마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놔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던가? 그건 명성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난히 추웠던 2000년 겨울도 지나고, 2001년이 찾아왔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의학적 지식이 꽃 피울 레지던트 3년 차. 그래서 흔히들 레지던트 3년 차를 ‘대학 병원의 꽃’이라고 불렀으리라. 그렇게, 박상우는 치열한 레지던트 3년 차를 시작하게 되었다.
개나리가 노랗게 꽃봉오리를 피우는 2월 말이지만,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는 명성대 병원 옥상은 여전히 쌀쌀한 겨울이었다.
“이 새끼들 봐라? 대가리 안 박아? 우리 때는 말이야…….”
수련의들은 일렬로 나열한 채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최대한 물기를 피하려는 듯, 마른 땅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응시하는 한 사람. 그는 박상우의 1년 차 후배, 지수창이었다. 지수창이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쇳소리를 토해냈다.
쿵, 와르르~!
지수창은 조용히 자리를 옮겨 일렬로 늘어선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고, 1년 차 수련의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뭐야? 피죽도 못 먹었어? 이래서 열혈 흉부외과에서 버틸 수 있겠어? 이렇게 빈약해서 리트렉터나 당기겠어! 나 때는 말이야, 2박 3일 동안 대가리 박고 서 있다가 바로 수술 방에 들어가서…….”
지수창은 입에 게거품을 물어 가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잡아먹을 듯이 신입 1년 차들을 응시했다.
“한심한 것들, 전부 기상!”
지수창은 쯧쯧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깔짝거렸다.
“야, 기생오라비! 뭐야? 설마 이 정도로 힘들어서 이러는 거야?”
지수창이 유독 힘들어하는 수련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 채, 수련의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1년 차 수련의인 한상훈은 눈에 띄게 힘들어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새하얀 피부,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외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급 승용차에 명품 시계, 그리고 옷차림까지. 누가 봐도 부잣집 도련님같이 보이는 그였다. 평소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지수창이 오늘을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한상훈은 옷소매로 이마에 가득한 땀을 닦아 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머리에선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따라선 비지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어라? 똑바로 안 서?”
한상훈이 비틀거리자 지수창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알겠습니다.”
균형을 잡아 보려는 한상훈. 하지만, 빈약한 체구에 균형을 못 잡고 몸을 비틀거렸다.
“쇼를 하네!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집 좀 잘산다고 유세를 떨어?”
지수창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일로 트집을 잡았다. 그만큼, 그에게 한상훈은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야, 너희들 뒤로 빠져!”
지수창은 나머지 수련의들을 뒤로 물렸다.
“알겠습니다.”
수련의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주 오늘 지옥을 맛보게 해 주마!”
단단히 마음먹은 듯, 지수창은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잔뜩 겁에 질린 1년 차들은 슬그머니, 좀 더 뒤로 물러났다.
“한상훈! 지금부터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한다. 엎드려뻗쳐, 시작! 하나!”
“정신!”
한상훈은 힘겹게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땅을 지탱하고 있던 그의 팔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
“통일!”
한상훈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눈에 띌 정도였다.
“후아, 후아~!”
한상훈 제대로 지탱하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자식 봐라? 고문관이네! 똑바로 못 해? 너 하나 때문에 네 동기들이 고생하는 거야! 이렇게 할 거면 왜 우리 과에 들어왔어?”
지수창은 죽일 듯이 한상훈을 응시했다.
“하나!”
“저, 정신~!”
한상훈은 다시 비틀거리듯 무릎을 펴고 팔을 굽혔다. 사시나무가 떨리듯, 가느다란 그의 팔이 흔들거렸다.
“이 자식이 어디서 엄살이야!”
지수창이 구둣발로 엉덩이를 걷어차자, 한상훈은 쿵 소리를 내며 하릴없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야, 지수창! 그만 좀 해라. 그러다 애들 잡겠다.”
그 순간, 박상우와 천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막대 사탕을 입에 문 천기수가 지수창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어, 선생님! 그게 아니고…….”
“뭐가 그게 아니야? 지금이 쌍팔년도냐? 군대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시추에이션이야? 그만해라, 그만해. 애들 잡겠다.”
“그, 그래도 이게 우리 흉부외과 전통인데…….”
“그런 전통은 개나 주라고 해. 21세기에 이게 무슨 야만적인 짓이냐?”
천기수는 막대 사탕을 와드득 깨물며 손을 내저었다.
“그래. 기수 말이 맞아, 이제 이런 악습은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후배들한테 얼차려를 줘! 한상훈, 일어나!”
박상우가 손을 까딱거렸다.
“네.”
한상훈은 지수창의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이, 이 새끼가…….”
지수창이 눈치를 주자, 한상훈은 다시 엎드리려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됐고! 이쯤 했으면 됐으니까, 그만하자. 한상훈 일어나!”
천기수는 한상훈의 양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네. 선생님!”
한상훈도 그제야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야, 인마! 그나저나 넌 몸보신 좀 해야겠다. 체력이 이렇게 약해서 쓰겠니? 뼈만 앙상하잖아.”
한상훈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던 천기수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이렇게 여기서 쓸데없이 힘 빼지 마라. 그리고 다들 내 말 잘 들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TS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평소에 러닝을 하든, 아령을 들든, 틈틈이 운동들 해 둬라. 체력이 안 되면 아무것도 못 해.”
천기수는 1년 차들을 앞에 세워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기수가 많이 달라졌네. 많이 어른스러워졌어!’
박상우도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자자, 오늘은 이만하고, 이따가 저녁에 신입생 환영회 있으니까, 전원 참석하도록! 자, 해산!”
“네. 알겠습니다.”
“지수창! 너 우리 내려간다고 쓸데없이 애들 굴리면 죽는다.”
천기수는 지수창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지수창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듯했다.
“춥다. 내려가자 상우야.”
“그래.”
이렇게 해서, 박상우의 레지던트 3년 차가 시작되었다.
* * *
천기수를 비롯한 수련의들과 간호사들은 오랜만에 한가로운 너스 스테이션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기만 해라.”
천기수는 기지개를 켜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천 선생님, 환자가 없으니까 그렇게 좋아요?”
그 모습에 이은주 간호사가 빙긋 웃었다.
“그게, 솔직히 말해서, 이 선생님! 내가 꼭 몸이 편해서 좋다는 게 아니라…….”
천기수가 테이블 위에 양팔을 걸쳐 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호…… 혹시, 여기가 흉부외과 맞습니까?”
그 순간, 노년의 남자가 한 손에 메모지, 다른 한 손엔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남루한 행색에 심지어 다리가 불편한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맞습니다. 여기가 흉부외과예요. 무슨 일이시죠. 어르신?”
천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사람을 찾아왔는데, 여기가…….”
남자는 천기수에게 메모지를 내보였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 한상훈]“아, 한상훈 선생요? 이 친구, 우리 과 선생이에요. 잘 찾아오셨네요.”
“정말입니까?”
“네.”
천기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우리 한상훈이의 동료 의사 선생님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한 선생 선배예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우리 상훈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천기수를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였다.
“아이고. 어르신!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지만 이러시면 안 돼요! 일어나세요.”
당황한 천기수가 황급히 남자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 몸을 굽혔다.
“아닙니다. 우리 상훈이 선배면 하늘같은 분이신데…….”
“아니에요. 그나저나, 한상훈 선생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천기수는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아, 제가 상훈이 애…….”
“김 집사님, 여,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 순간, 천기수와 남자의 대화에 다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레지던트 1년 차, 한상훈이었다. 한상훈은 황급히 남자 곁으로 다가와 그가 들고 있던 꾸러미를 강탈하듯 뺏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