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3)
신의 메스-73화(73/249)
73화 가시고기 (2)
“아…… 그게…….”
노년의 남자는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해했다.
“어! 한상훈 선생, 아는 사람이야?”
“네. 우리 집에서 집사 일을 보는 아저씨세요.”
한상훈은 자신의 뒤쪽으로 남자의 몸을 잡아당겼다.
“아, 그렇구나. 일하시는 분이구나.”
멍한 표정의 천기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남자를 응시하던 한상훈은 이마를 긁적거리고 입술을 잘근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 네, 도련님. 회, 회장님이 이걸 좀 가져다드리라고 하셔서…….”
안색을 바꾼 남자가 한상훈을 향해 굽신거렸다.
“그, 그래요. 그럼 연락을 하셔야지, 이렇게 병원에 불쑥 찾아오시면 어떡합니까?”
한상훈이 남자를 향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회장님께서 도련님이 식사도 제때 못하시는 것 같다고, 이걸 좀 가져다…….”
“됐대두요! 전 여기서 잘 먹고 있으니까, 이런 건 필요 없어요! 앞으로는 제 허락 없이 절대 병원에 찾아오지 마십시오.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그래도, 이게 유기농이라 맛이…….”
남자는 들고 온 보따리를 내보이며 머뭇거렸다.
“필요 없다니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예요? 이리 오세요!”
한상훈은 남자의 팔목을 잡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러면, 아, 안녕히 계십시오.”
“아…… 네.”
남자는 한상훈의 손에 끌려나가며, 어색한 표정으로 천기수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잠시 후.
“뭐야, 저거? 아무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데, 저렇게 무례해도 되는 거야?”
“그러게요. 몸도 불편해 보이시는데…….”
간호사들도 한상훈의 손에 질질 끌려가는 남자를 목을 쭉 뽑아 바라봤다.
“그러게 말입니다. 금수저면 다야? 자기 아버지가 돈 많은 거지, 지가 많아? 싸가지 없는 새끼.”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기수가 투덜거렸다.
* * *
“이쪽으로 오세요!”
한상훈은 너스 스테이션에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복도 모서리에 다가서자마자, 한상훈은 남자의 팔목을 잡아챘다. 얼마나 모질게 잡아챘는지, 남자가 절뚝거리며 힘없이 끌려갔다.
“아버지. 도대체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병원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한상훈은 잡아먹을 듯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네가 한동안 집에도 안 오고, 연락도 뜸해서……. 밥은 제대로 챙겨 먹나 궁금해서 이렇게…….”
남자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한상훈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그런 걸 걱정해 달래요? 내가 밥을 먹든 말든 아버지가 무슨 상관이세요? 제발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와서 놀라게 하지 마세요. 제발!”
한상훈이 남자의 양팔을 잡고 흔들었다.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오른 한상훈의 볼이 꿈틀거렸다.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가끔, 연락이라도…….”
“네, 때 되면 하겠죠.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한상훈은 남자의 손에서 보자기를 낚아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한상훈은 바닥에 보자기를 내팽개쳐 버렸다.
와장창~!
보자기가 풀어지며 안에 있던 음식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정갈하게 담긴 김밥 찬합, 그리고 잡채를 비롯한 밑반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또르르르~!
바닥을 타고 새빨간 사과가 굴러떨어졌고, 마침 지나가던 박상우의 발끝에 부딪히며 멈춰 섰다.
“한상훈 선생! 왜 여기 있어?”
박상우가 자신의 발끝에 멈춰진 사과를 들어 올렸다.
“아, 박 선생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상훈은 떨어진 음식물을 부랴부랴 주워 담으며, 박상우가 쥐고 있던 사과도 낚아채듯 빼앗았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박상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두 사람을 번갈아 응시했다.
“아저씨, 얼른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 네. 도, 도련님, 나중에 집에서 뵙겠습니다.”
“알았어요. 빨리 가세요!”
한상훈이 거칠게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한 선생,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야. 연세도 있으시고 다리도 불편하신 것 같은데…….”
박상우가 쩔뚝거리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 일하는 아저씨인데……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한상훈이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일하시는 분이라도…….”
“아! 아까 보니까 신정국 선생님이 급히 찾으시던 거 같은데. 가, 같이 가시죠.”
한상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으며 말했지만,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한상훈은 횡설수설하며 한쪽 팔로 박상우의 허리를 감았고, 다른 손은 빨리 가라는 듯 남자를 향해 거칠게 내저었다.
그렇게 한상훈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순간, 박상우의 눈앞에서 붉은 숫자가 출렁거렸다.
[17일 03시간 34분 22초, 21초, 20초…….]어이없게도 한상훈의 잔존 수명은 채 3주도 남지 않았었다.
“상훈아! 너, 어디 몸 안 좋은 데 있어?”
깜짝 놀란 박상우가 한상훈의 팔을 잡아당겼다.
“네?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아무렇지 않은데요.”
“아냐. 잠시만…….”
박상우는 한상훈의 안색을 살폈다.
“솔직히 말해 봐. 최근에 몸에 어떤 이상 증후도 없었어?”
“아, 그게. 입맛이 좀 없어서 밥을 못 먹었더니 빈혈 증세가 좀 있는 것 말고는…….”
한상훈은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욕 부진이라……. 소화는 잘돼?”
“아, 그거야, 뭐. 제가 원래 소화 기능이 떨어져서 소화제는 달고 삽니다. 별거 아니에요. 원래 체질이…….”
한상훈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빈혈이 있었단 말이지? 평소에 혈압은?”
“약간 고혈압이 있긴 한데, 크게 무리 되는 정도는 아닙니다. 약 먹을 정도는 아니에요.”
“팔 이리 내놔 봐.”
“파, 팔은 왜요?”
“군소리 말고 옷소매 걷어 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아…… 네.”
한상훈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껌뻑거리며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박상우는 한상훈의 팔을 잡아당겨, 팔목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맥박이 빠르게 뛴다. 그렇다면, 아리스미아(부정맥)?’
“한상훈! 너 혹시 PSVT(Paroxysmal SupraVentricular Tachycardia: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 있어?”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
일명 선천성 부정맥이라고 하는 질병으로, 갑자기 가슴이 뛰거나 답답해지는 게 특징이다. 증세가 자주 나타나는 건 아니기에, 본인이 조절 가능하다면 치료하지 않고도 그냥 지낼 수 있는 가벼운 질병이었다.
“아, 아뇨? 그런 것 없는데요?”
“그래? 그러면 왜 아리스미아(부정맥)가 잡히는 거지?”
“그래요? 난 잘 몰랐는데…….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좀 답답하긴 한 것 같지만…….”
한상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이 바보야! 넌 흉부외과 써전이라는 사람이 소화 불량하고 부정맥도 구분 못 해? 제정신이야!”
“그, 그게 아니라…….”
박상우가 버럭거리자 한상훈은 눈만 껌벅거렸다.
“작년에 종합 검진받았지?”
“그, 그게…….”
“뭘 망설여? 받았어, 안 받았어?”
한상훈이 우물쭈물하자, 답답했던 박상우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사정이 있어서 못 받았습니다.”
“미치겠네. 넌 의사라는 사람이 몸 관리를 이따위로 하는 게 어딨어? 최근에 소변은 잘 봐?”
“그러고 보니, 요즘 소변량이 좀 줄긴 한 것 같은데……. 변 색깔도 좀 검고…….”
이제야 조금씩 걱정이 되는지, 한상훈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혹시, 그래서 위장약 복용해?”
“네. 속이 조금 메스껍고, 구토 증세가 있어서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전형적인 핍뇨에 빈혈, 식욕 저하 소화 불량이 나타나고 있어. 만성 콩팥 기능 상실에 의한 하이퍼가스트리네미어(Hypergastrinemia: 고가스트린 혈증)가 의심된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위장약을 복용했다면 콩팥 내에서 마그네슘 배설이 섭취를 감당하지 못했을 텐데……. 하이퍼마그네세미어(Hypermagnesemia: 고마그네슘 혈증)가 왔을 수도 있어! 게다가 지금 상훈이는 크로닉 레날 페일리어(Chronic Renal Failure: 만성 신부전)도 의심된다. 빨리 검사를 받게 해야 해!’
“너, 군소리 말고 나 따라와.”
박상우는 한상훈의 팔목을 낚아챘다.
“어, 어디로 가시는 건데요?”
“아직 식전이지?”
“오전 내내 속이 메스꺼워서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식당에 가시는 거라면 전 괜찮…….”
“식당은 무슨 식당이야. 지금 당장 신장내과에 가 보자.”
박상우가 한상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네? 지금 천 선생님이 오라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아무래도 네 신장이…… 아니다. 아무튼, 기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군소리 말고 따라와.”
박상우가 한상훈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 * *
며칠 후, 신장내과.
한상훈은 박상우의 성화에 못 이겨 신장내과에서 소변 검사, 혈액 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마쳤다. 결과가 궁금했던 박상우가 신장내과 치프, 조성수를 찾아왔다.
“선배님, 한상훈 선생, 어떻게 된 겁니까?”
“흐음,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은데?”
검사 결과를 확인한 조성수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어떻게 심각하다는 거죠?”
“프로테인 양성 반응에다가, 무엇보다도 사구체 여과율이 18mL/min이야.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었지? 이 정도면 신장이 너덜너덜해졌을 텐데 말이야.”
사구체 여과율은 만성 신부전증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정상적인 사구체 여과율은 90~100 정도이며, 평균 100을 정상 수치로 보고 30mL/min 이하로 내려가면 4단계로 만성 신부전 판정을 받는다. 14mL/min 이하로 내려가면 5단계로 투석과 이식이 필요한 말기 상태를 의미했다. 따라서, 사구체 여과율이 18mL/min이란 것은 거의 이식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만성 신부전증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환자들 대다수가 4단계에 도달했을 때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한상훈 역시 자각 증세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 증세가 있었지만, 과로에 의한 증세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18mL/min이라고요?”
“그래.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야. 아무래도 바로 입원시켜야 할 것 같은데? 가뜩이나 흉부외과 막노동이라고 소문났는데, 이대로 뒀다가는 TS에서 송장 친다. 한상훈 선생, 빨리 입원시켜.”
“상훈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니, 아직 몰라. 결과 확인하러 오라니까 안 오네.”
조성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제가 먼저 한상훈 선생을 만나 보겠습니다.”
“충격받지 않게 잘 설명하고, 되도록 빨리 입원시키는 것이 좋을 거야. 절대 무리해선 안 돼!”
“알겠습니다.”
‘역시, 만성 신부전증이었어!’
신장내과를 나서는 박상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