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4)
신의 메스-74화(74/249)
74화 가시고기 (3)
당직을 서고 있던 박상우는 한상훈을 당직실로 불렀다.
“상훈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네? 무, 무슨 말씀을요?”
한상훈은 심상치 않은 박상우의 표정을 읽고 말을 더듬거렸다.
“네 몸 상태가 좀 좋지 않은 것 같아.”
“신장내과에서 결과가 나온 겁니까?”
박상우의 말에, 한상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차피 나온 결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신장내과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너 크로닉 레날 페일리어(Chronic Renal Failure: 만성 신부전)야. 이미 4단계는 지난 것 같다.”
박상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상훈을 응시했다.
“네? 제, 제가 만성 신부전이라고요?”
“그래. 좀 더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GFR(Glomerular Filtration Rate: 사구체 여과율)이 18mL/min 이하인 거로 볼 때,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것 같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어!”
박상우가 답답하다는 듯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모, 몰랐어요. 그냥 좀 피곤한 줄로만 알았는데…….”
한상훈은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박상우를 응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장이 망가진 것과 피곤한 걸 구분 못 하는 게 말이 되니? 물론 만성 신부전이 4단계까지 증세가 거의 없다지만, 넌 의사잖아. 몸에 이상 징후가 발생했으면 확인했어야지. GFR이 18이면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너도 알 거 아냐?”
박상우가 목소리 톤을 높여 호통을 쳤다.
“입원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당장 입원에서 정밀 검사받고, 헤모다이얼리시스(Hemodialysis: 혈액 투석) 시작해야 할 거다. 물론 궁극적으론 신장 이식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레지던트 시작했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지금 문제야?”
“그래도…….”
한상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했다.
“그래도는 뭐가 그래도야. 군소리 말고 내일 당장 입원해. 조현오 교수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꼭 입원해야 하나요?”
한상훈의 눈가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한상훈! 너 내가 만성 신부전이라고 한 말 헛들었어? 의사인데, 적어도 만성 신부전이 어떤 병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냐? 어린애처럼 왜 이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입원해!”
박상우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병원에 입원하도록…….”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병원 의사가 왜 다른 병원에 입원해?”
“그게, 불편해서요. 다른 사람들 눈도 있고…….”
한상훈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한다. 다른 사람 눈이 뭐? 안 되겠다. 입원 수속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그런 줄 알아. 그리고 오늘부터 넌 업무 열외야. 알아들어?”
박상우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한상훈은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쩔 수 없이, 박상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흉부외과 의국.
한상훈은 병원에 입원했고, 그가 만성 신부전에 걸렸다는 소식은 흉부외과 의료진들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인마! 네가 하도 애들을 갈구니까 상훈이가 저 모양이잖아. 상훈이 아픈 것도 전부 너 때문이야.”
천기수는 손가락으로 지수창의 눈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제, 제가 뭐요! 그게 왜 제 책임이에요!”
지수창은 고개를 돌려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뭐긴, 인마. 맨날 옥상으로 불러들여 빠따 굴렸잖아. 그게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야. 상훈이가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으면 신장까지 아작이 났겠냐?”
천기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원래 그렇게 해 왔잖아요.”
지수창이 몸을 웅크리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 아래 연차들 군기 잡는다고 헛짓거리하면 죽을 줄 알아라.”
천기수는 2년 차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훈계했다.
“알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 순간, 박상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2년 차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상우야. 상훈이는 어떻게 된 거야?”
천기수는 박상우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글쎄다. 정밀 검사가 나왔는데, 예상대로 신부전이 맞는 것 같아. 지금 신장내과 병동에 입원했어.”
“그러면 헤모다이얼라이저(Hemodialyzer: 혈액 투석기) 받아야겠네?”
천기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분간은 그래야겠지. 신장 확보하기 전까지는…….”
“깝깝하게 됐네. 허구한 날 투석기에 매달릴 순 없잖아?”
“그렇지. 일단 신장 기증자가 나타나면 이식 수술을 하는 게 최선이야. 신장 협회에 등록은 해 뒀는데, 쉽지도 않고. 가족 중에서 기증자를 받는 게 가장 좋겠지.”
“그러게나 말이다. 돈 많은 금수저면 뭐하냐, 저렇게 쓰러지면 답도 없는걸. 그래도 돈 많은 집안이니까 기증자만 나오면 별문제 없겠지.”
천기수가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식 수술만 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으니까 잘 되겠지. 나 인공 신장 센터 들러서 상훈이 좀 만나고 올게.”
“오후 2시에 403호실 아올틱 디스섹션(Aortic Dissection: 대동맥 박리) 환자, 컨퍼런스 있는 거 알지?”
“그래. 시간 맞춰서 갈게.”
“가뜩이나 위에서 갈구는데, 떡밥 주면 안 돼. 꼭 시간 맞춰 와라.”
“알았다. 이따가 보자.”
박상우는 천기수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신장내과 병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인공 신장 센터 앞.
한상훈은 혈액 투석을 마치고 배를 움켜쥐며 밖으로 나왔다. 허옇게 핏기 없는 얼굴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누가 봐도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모양새였다.
혈액 투석이란, 한상훈과 같이 신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피를 뽑아 노폐물을 걸러내고 깨끗해진 피를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는 과정이다. 만성 신부전 환자의 경우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해야 하는데, 투석 시간만 4~5시간 걸리기에 굉장히 불편하고 피곤한 과정이었다.
“상훈아, 괜찮아?”
박상우는 황급히 다가가서 비틀거리는 한상훈을 부축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선배님.”
그러나 배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는 한상훈의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괜찮기는 인마. 혈액 투석, 그거 만만한 거 아니다. 힘들 거야. 내가 부축할 테니까 가자.”
박상우가 한상훈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감사합니다.”
* * *
잠시 후, 한상훈은 박상우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군. 간병인은커녕 보호자가 다녀간 흔적조차 없어. 아직 가족에겐 알리지 않은 건가?’
박상우는 병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병실은 휑하니 썰렁했다. 게다가 그 흔한 과일 바구니 하나 없었다.
“한 선생, 부모님께는 알린 거야?”
“…….”
침대에 몸을 눕힌 한상훈은 말없이 이불을 끌어 올렸다.
“아무래도 간병할 사람이…….”
“선배님, 저 너무 피곤해요. 눈 좀 붙여도 될까요?”
한상훈이 박상우의 말을 끊어 버렸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으리라.
“어, 그래. 알았다. 그러면 푹 쉬어라. 나중에 다시 오마.”
눈치를 챈 박상우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아니에요. 이젠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혼자서 힘들 텐데…….”
“아뇨. 전 남한테 신세 지는 거 죽기보다 싫어요. 선배님도 바쁘실 텐데, 피해 주는 건 너무 싫습니다.”
한상훈은 언제나 샌님 같던 성격이었다. 남들에게 신세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그였기에, 박상우의 친절도 그에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아무튼, 흉부외과 일은 잊어버리고 몸이나 빨리 추슬러. 일이야 뭐, 그다음에 해도 되잖아.”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박상우 역시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멋쩍은 듯, 박상우가 이마를 긁적거렸다.
“네.”
한상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당겼다.
* * *
박상우는 한상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신장내과 조성수를 찾았다.
“상훈이 검사 결과 나왔나요?”
“흠, 물론 나왔지.”
하지만 서랍에서 검사 결과지를 꺼내는 조성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상훈이 검사 결과가 안 좋나요?”
“글쎄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 지금 투석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긴 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놔둘 순 없는 노릇이고…….”
조성수는 볼펜을 들어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신장 이식을 해야 할까요?”
“BUN(Blood Urea Nitrogen: 혈중 요소 질소 농도)도 정상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됐고, Cr(Creatinine: 혈중 크레아티닌 농도)도 최악이야.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GFR(Glomerular Filtration Rate: 사구체 여과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이미 신장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니까 이제 남은 건 신장 이식뿐이야.”
조성수가 검사지를 넘겨보며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흠, 그러면 하루라도 빨리 이식을 받아야겠네요.”
“그렇지. 유일한 대안은 그것뿐이라고 보는 게 맞아.”
“가족들과도 상담은 해 보셨나요? 가족 중에서 기증자를 찾는 게 가장 빠르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나도 상훈이에게 말은 해 뒀는데, 좀 이상한 게 있어. 상훈이가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하네.”
조성수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왜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워낙 내성적이고 민감한 놈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더 물어보기도 부담스럽더라고…….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만 물어보자.”
“말씀하세요.”
“한상훈 집이 좀 산다고 하지 않았나? 집안일 봐주는 집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도 그런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지금 1인실에서 5인실로 옮기겠다는 거지? 병실 비도 거의 내지 않는데 말이야.”
한상훈은 직원 특별 할인을 받아 1인실에 입원했다. 병실 비용의 80%를 할인해 주기에 1인실이라 해도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물론 다인실 병실보다는 비싸기는 했다.
“그래요? 저한테는 그런 말 없었는데…….”
“이상한 놈이네. 하루라도 빨리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가족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병실도 옮겨 달라니. 도저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조성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 네가 설득이라도 좀 해서, 하루라도 빨리 이식받게 해. 신장 협회에도 연락해 봤는데 영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러다간 상훈이 저 녀석, 오래 못 간다. 지금 신장이 너덜너덜해! 너라도 상훈이 가족에게 연락 좀 해 봐라.”
조성수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상훈이 가족에게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