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6)
신의 메스-76화(76/249)
76화 가시고기 (5)
잠시 후,
“이 후레들놈이 인복은 있는 갑네. 흐음, 소주 한잔 하실라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낸 한강철이 소주 뚜껑을 비틀었다.
처음의 한강철은 박상우와 천기수를 철저하게 외면했었지만, 박상우의 진지한 표정을 읽었는지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허허, 오랜만에 술친구가 생겨서 좋구먼.”
한강철은 종이컵에 술을 따라 박상우에게 내밀었다.
“앵경! 자네도 한잔할 텐가?”
한강철이 턱짓으로 천기수를 가리켰다.
“아, 저는 소주는 별로라서 저걸로…….”
천기수가 손가락으로 맥주를 가리켰다.
“허허, 족제비같이 생겨가지고 입은 고급이구먼.”
“네?”
“아녀. 그랴, 뭐, 이 장사 얼매나 한다고 아끼것남.”
한강철이 맥주를 꺼내 천기수에게 내밀었다.
“그니까, 상훈이 그놈아가 얼마나 아프다고?”
한강철의 목소리에 가득했던 노기도 조금은 가라앉은 듯 느껴졌다. 한상철은 마른 멸치를 초장에 푹 찔러 넣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네. 지금은 혈액 투석기에 의지하고 있는데, 신장 이식이 아니면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썩을 놈. 지 애비가 그토록 애지중지 키워 놨더니, 효도 한 번을 안 하고 그 지랄이구먼.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
한강철은 다시 화가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멸치를 입안에 털어 넣곤 잘근거리며 씹어 넘겼다.
“아저씨, 상훈이 아버님은 회장님 아니었나요?”
“회장은 무슨 얼어 죽을 회장? 막노동판에서 십장도 못 해 본 양반인디? 하여간, 상훈이 이놈이 지 애비가 챙피한께 회장이라고 사방팔방 구라치고 다니는 겨.”
“네?”
천기수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이 어릴 때부터 그랬어. 지 아부지가 학교도 한 번 못 오게 하고 그랬지. 나쁜 놈! 지극정성으로 키워 놨더니, 천하의 후레들놈. 성님이 왜 다리를 절고 다니는 줄 알아?”
“서, 설마?”
다리를 전다는 말에 천기수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얼마 전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온 남자를 떠올리는 듯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쇼?”
“그게, 얼마 전에 어떤 남자분이 병원에 찾아오셨는데 그분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거든요. 상훈이 말로는, 집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라고 하던데…….”
천기수가 당황한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흠, 성님이 병원에 찾아갔었나 보네. 상훈이 그놈아가 자기네 집서 일하는 집사라 혔것지. 나쁜 놈의 새끼!”
한강철은 종이컵에 술을 따라 단숨에 꿀꺽 마셔 버렸다.
‘역시 그분이 상훈이 아버님이셨어!’
“그나저나, 상훈이 아버님 다리는 왜 그렇게 되신 건가요?”
“흐음, 그게 훈이 놈 4살 때던가…….”
한강철의 눈빛이 조금 흐려지는 듯하더니, 2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어 말해 주었다.
한상훈은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흙장난하며 놀고 있었는데 미처 아이를 발견하지 못해 후진하던 차량이 어린 한상훈을 덮칠 뻔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들의 위험을 목격한 상훈의 아버지가 그를 구하다가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랬군요.”
“한상훈, 이 새끼 아주 못된 놈이네! 그렇게 고생한 아버지를 집사라고 부르면서 홀대를 해? 어쩐지, 하는 짓도 영 맘에 안 들더니만.”
흥분한 천기수가 맥주를 잔에 따르곤 단숨에 벌컥벌컥 넘겨 버렸다.
“그 사실을 상훈이도 알고 있나요?”
“모를 거야, 4살 때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우리 형님은 그런 걸 말할 성격도 못되고…….”
“어찌 되었건 상훈이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신장 이식밖에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버님께 알려 드려야 할 텐데요. 이식하려면 말…….”
“이식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쇼!”
한강철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어르신, 진정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죽어 가는데,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들? 지금 아들이라고 그랬소? 그놈이 왜 성님 아들이야!”
벌게진 얼굴의 한강철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원수 놈의 자식한테 무슨 이식을 한단 말이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뇨?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박상우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한강철도 답답했는지, 술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어르신,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르르~!
당황한 건 천기수도 마찬가지였다. 천기수는 눈치껏 소주를 들고 한강철의 잔을 채웠다.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의사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고 상훈이 놈 역성을 드니까 할 수 없이 말해 드리리다.”
“…….”
천기수와 박상우는 한강철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딸깍~!
어느새 소주병의 소주는 다 떨어졌고, 한강철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꺼내와 잔에 가득 따르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흐음, 솔직히 말혀서, 상훈이 그놈은 성님 원수의 자식이여…….”
한강철이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한상훈과 그의 아버지, 한동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정리하자면, 한상훈의 친모이자 한동철의 아내인 김경자가 다른 남자와 외도해서 태어난 것이 한상훈이라는, 한상훈은 한동철의 친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난 정말, 상훈이 이놈이 싫었수다. 하는 짓이나 말투가 얼마나 그 망나니 같은 놈을 빼다 박았는지. 옛말에 씨도둑은 못 숨긴다더니……. 형님이 거두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소년원이나 들락날락했을 놈입니다, 그놈이. 그런데 지가 언감생심 지금처럼 의사질을 할 수 있간디?”
“정말입니까?”
박상우는 한강철이 해 준 예상 밖의 말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박상우는 곧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이 마당에 비싼 밥 먹자고 괜한 흰소리를 하겠소? 형수란 여자가 바람이 나서 상훈이를 퍼질러 낳아 놓고, 키울 상황이 안 되니까 형님한테 떠넘긴 거요. 세상에! 벼룩도 낯짝이 있지. 바람피운 것도 모잘라서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러니 천벌을 받아 죽은 거 아녀! 카악, 퉤~!”
한강철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가래침을 모아 뱉었다.
“상훈이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요?”
“그려. 급살을 맞아 죽었지. 상훈이 성님한테 던져 놓고 그 망나니 놈과 내뺐다가, 객지에서 폐병에 걸려 죽었다고 하더구먼. 시상에, 법 없이도 살 우리 성님 놔두고 그 지랄병을 떠니 하늘이 벌을 준 거지.”
“후우……. 어이없다, 상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
천기수는 안경을 벗고는 눈을 꾹꾹 눌렀다.
“어르신 말씀이, 모두 사실입니까?”
박상우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내가 뭣 하러 쓸데없는 소리를 하간디? 믿든 말든 맘대로 혀. 하지만 명심들 하시게. 절대로 우리 불쌍한 성님 괴롭힐 생각은 하덜 말더라고. 그 냥반, 그 자식 아프다는 소릴 들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사람이니까. 나가 그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보니까.”
“…….”
박상우와 천기수는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눈만 껌뻑거렸다.
“그러면…… 상훈이의 친부 되시는 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박상우는 한상훈의 잔존 수명을 확인한 상태였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그로서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였다.
“왜요? 그 망나니 같은 놈이라도 찾아가 보게?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거야?”
한강철은 못마땅하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죽어 가는 동료를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허~! 다시 말하지만, 상훈이 이놈아가 인복은 타고났구먼. 잠깐만 기다려 보시게.”
한강철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술에 쩔어서 망나니짓이나 하고 있겄지. 지 새끼는 죽을병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말이여.”
“…….”
“여기 있구먼.”
수첩을 뒤적이다 뭔가를 찾은 듯, 한강철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오래된 주소라 확실하진 않지만, 찾아가 보려면 여기로 한번 가 보슈. 인자 나는 필요 없으니까. 쓰레기 같은 김가 놈, 지금까지 안 뒈지고 살아 있나 몰라.”
한강철이 한상훈 생부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찢어 박상우에게 건네주면서 중얼거렸다.
[김성균: 경기도 포천시 운암리 128번지……]“감사합니다.”
박상우는 종이를 받아 지갑 속에 넣었다.
“김 씨 놈을 찾아가서 신장을 빼 오든 창자를 발라 오든 난 아무런 상관없는디,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우리 성님한테는 일언반구도 하지 마소. 그랬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한강철은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단단히 주의를 시켰다.
“알겠습니다.”
* * *
“이게 말이 되냐, 상우야?”
한강철의 가게에서 나온 천기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이마를 문질렀다.
“글쎄. 나도 좀 당황스럽기는 하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다 있지? 자기를 위해 평생을 바친 아버지를 종 부리듯 하고, 온갖 있는 척은 다 하면서 거들먹거리더니, 결국엔 우릴 속였던 거잖아!”
천기수는 분을 못 이겼는지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잘 산다고 생각했던 건 우리 지레짐작이었지, 상훈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난 진짜, 이 새끼한테 정이 안 간다. 우리가 이런 놈을 도와줘야 하는 거냐?”
“그러면? 죽게 놔두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왜 이러냐 정말.”
천기수도 이젠 씁쓸한 듯, 바닥에 깔린 돌멩이를 걷어찼다.
“상훈이 생부라는 사람에게 진짜 찾아가 볼 거야?”
“가 봐야지. 현재로선 상훈이 생부를 만나는 일이 가장 최선이니까.”
“난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천기수는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넌 이 정도면 됐어. 포천에는 나 혼자 가 볼게.”
“진짜 가려고? 쓸데없는 오지랖 아니냐?”
“몰랐으면 어쩔 수 없지만, 상훈이가 살길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아. 난 상훈이 생부를 한번 만나 볼 테니까, 넌 오늘 들었던 얘기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마라. 병원에 가서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알겠어. 나도 생각이란 게 있는 놈인데 함부로 나불거리겠냐? 난 오늘 너무 충격받아서 같이 못 따라가겠다. 나쁜 새끼! 어떻게 불쌍한 아버지한테 그럴 수가 있어?”
천기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경기도 포천시 운암리.
박상우는 천기수와 헤어진 후 곧장 포천으로 이동해서, 주변에 물어물어 힘겹게 한상훈의 생부가 살고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한적한 곳에 있는 집은 버려진 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름했고, 슬레이트로 얼기설기 얽어 놓은 지붕과 집안 곳곳에 거미줄이 쳐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초라한 집이었다.
“계십니까?”
박상우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인기척을 냈다.
“누, 누구슈?”
만취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삐걱거리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방바닥에는 수많은 소주병이 널브러져 있었고, 문이 열리자 역겨운 술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
“여기가 김성균 씨 댁입니까?”
“내가 김성균이요. 뉘슈?”
황달기가 있는지, 샛노란 눈의 한 남자가 시커멓게 변해 버린 얼굴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