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8)
신의 메스-78화(78/249)
78화 가시고기 (7)
“몸은 좀 어때?”
“그럭저럭 버틸 만합니다.”
한상훈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짝 마른 입술과 퉁퉁 부어오른 눈을 보니,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야. 그냥 누워 있어.”
박상우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한상훈의 몸을 다시 눕혔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저를 다 찾아오셨습니까? 지금 한창 회식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난 원래 술도 별로 안 좋아하고, 네 걱정도 되고 해서 말이야.”
박상우는 한상훈의 눈치를 보며 대충 둘러댔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박상우의 말에 한상훈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만들었다.
“회식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괜히 선생님들 눈 밖에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곧, 한상훈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실은 말이야. 내가 얼마 전에…….”
박상우는 한상훈 본인도 모르는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아야 할지 망설이며 머뭇거렸지만, 친부의 존재를 알아야만 향후 치료를 할 수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작은아버지를 만나셨죠?”
“아, 알고 있었니?”
한상훈의 뜻밖의 반응에 말을 더듬는 모습이, 박상우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네. 작은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으니까요.”
“그, 그래. 괜찮아?”
한상훈도 출생의 비밀을 이미 알아 버렸다. 이미 그의 작은아버지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한상훈이 받았을 충격이 걱정된 탓에, 박상우는 한상훈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 아들이 아니라는 말에 충격받았을까 걱정되세요?”
한상훈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거리기도 하지 않는가?
“정말 괜찮은 거야?”
믿을 수 없는 그의 담담함에 오히려 박상우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아무렴요. 청소부의 아들이나 노름쟁이인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이나, 달라질 게 뭐 있나요? 어차피 구질구질한 인생이니까 저는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위로 같은 걸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요.”
한상훈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일반적인 경우라면 충격이 엄청났을 테지만 놀랍도록 침착한, 아니 냉정한 한상훈의 모습에 박상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다 밝혀진 마당에 우리 그런 시시껄렁한 신파 같은 얘기는 그만하고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상훈은 결심이라도 한 듯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본론? 무슨?”
“작은아버지 말로는, 선배님이 제 생물학적 친부라는 사람을 만났을 거라던데…… 맞나요?”
“그게 말이야…….”
“걱정 마세요. ‘어떤 분이냐? 나를 잊지 않고 있느냐?’ 같은 감상적인 건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포천에 살고 계시더라. 얼마 전에 찾아가서 만나 뵀어.”
박상우는 한상훈의 태도에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을 받았는지, 손을 말아쥐었다가 펴는 행동을 반복했다.
“뭐라던가요? 신장 떼 준다고 하던가요?”
한상훈은 뭘 하든 상관없다는 듯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냉정한 말투였다.
“…….”
“긍정적인 말은 못 들은 모양이네요. 왜요, 신장 떼 주는 대가로 돈이라도 달라던가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부정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박상우가 말이 없자, 한상훈은 다시 한번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런 건 아닌데…….”
박상우는 한상훈의 태도를 이해되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며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그런 게 아니긴요. 저 같아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한몫 잡으려 들겠네요. 말씀해 보세요. 신장 떼 주는 대가로 얼마를 달라고 하던가요? 3천? 5천? 아니면 1억? 얼마가 필요한지 말하라고 하세요. 제가 사채를 끌어다가도 줄 테니까요!”
한상훈은 서랍을 열고 통장과 도장을 꺼냈다.
“한상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선배님, 이왕 이렇게 도와주시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좀 도와주시죠. 어떻게 되든, 일단은 살아야겠습니다.”
한상훈은 박상우의 앞에 통장과 도장을 놓았다.
“이게 뭔데?”
박상우가 턱으로 통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겠습니까? 돈이죠. 주위 사람들에게 불효막심한 놈, 후레자식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면서도 악착같이 모아 둔 돈입니다. 신문 배달, 우유 배달, 막노동, 불법 과외까지 안 해 본 게 없어요. 악착같이 모아 둔 피 같은 돈입니다. 대충 8천만 원 정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걸로 뭘 하라는 거야?”
침대 위에 놓인 통장을 들어 올리는 박상우.
“솔직히, 그런 더러운 인간의 피가 내 몸속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차라리 신장 투석기에다가 피를 전부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전 어떻게든 살아야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직접 만나고 싶지는 않군요. 선배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잖아요! 시팔, 개고생해서 번 돈인데…….”
한상훈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고개를 떨구더니 허탈한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한상훈! 이런 건 아버님과 상의해야 하는 것 아니야?”
박상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상훈에게 쏘아붙였다.
“아버지요? 어떤 아버지요? 원수의 자식을 키워 준 오지랖 태평양인 지금의 아버지? 아니면, 노름쟁이 알코올 중독자인 그 인간이요?”
한상훈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 눈에 힘을 주었고, 입가에 게거품을 물며 대들었다.
“오지랖? 지금 보니까 너 아주 형편없는 놈이구나. 당연히 지금의 아버지를 말하는 거지. 그분은 지금까지 널 친아들처럼 키워 주셨으니까! 너한테 그분 말고 아버지가 어딨어?”
“제가 왜 친아들이에요? 더러운 피가 들끓는 원수의 아들이죠. 전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사람과 상의를 해야 합니까?”
한상훈은 핏기 없이 푸석하게 부어 있는 얼굴로 버럭거렸다. 악밖에 남지 않은 분노의 눈빛이었다.
“말이면 다인 줄 알아? 그게 할 소리야?”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박상우 역시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러면요? 원수의 아들을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효도할게요, 이래야 합니까? 지금까지 망나니 아들로 살아왔는데? 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인데요! 서로 불편한 거예요. 이식 수술 비용은 어디 한두 푼이에요? 차라리 모르는 게 서로 속 편하다고요!”
한상훈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리쳤다.
“나쁜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너 같은 놈은 의사가 되면 안 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천륜을 어기는 놈이 의사가 되면 뭘 하겠어? 너 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환자를 상대로 거래나 하고, 병으로 장난이나 치는 거라고!”
박상우는 한상훈에게 달려들며 멱살을 움켜쥐었다. 한상훈에게서 한때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랬기에 박상우는 더욱 화가 난 상태였다.
“이거 놓으십시오. 선배님은 저에게 그런 말할 자격이나 있습니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선배님도 출세하려고 그 깡촌에서부터 이곳까지 기어 올라오신 것 아닙니까? 그 수모를 전부 참으면서 말입니다. 남들보다 더 잘살려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요!”
한상훈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대들었다.
“불쌍한 놈. 그래도 후배라고 어떡하든 살게 해 주려고 한 내가 한심하다! 앞으로 네 몸뚱이는 네가 알아서 해라. 나도 더는 네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박상우는 강하게 쥐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뭐길래 나를 판단하고 재단해? 당신이 그렇게 잘났어?”
한상훈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대들었다.
“더는 너와 말하고 싶지 않다!”
박상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거 가져가라고! 이 돈으로 그 인간한테서 가서 신장 사 오란 말이야! 난 억울해서 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내가 왜 죽어야 해? 내가 내 돈으로 신장 사겠다는데 왜 아버지란 사람이랑 상의해야 하느냔 말이야! 이거 가져가요! 가져가란 말이야!”
한상훈이 통장을 흔들며 절규했다. 핏기가 오른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손에 쥐고 있던 통장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 순간, 박상우가 걸음을 멈춰 뒤로 돌아섰다.
“내 말 잘 들어, 한상훈! 네가 그토록 창피하게 여기며 무시했던 네 아버지의 오른발, 그건 네 목숨을 살리기 위해 포기하셨던 거야!”
박상우는 세차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뭐…… 뭐라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누가 누굴 살렸다는 거야! 으아아아악!”
한상훈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 * *
며칠 후, 신장내과는 한창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가 주세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시면 안 돼요!”
신장내과 접수처에서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한 남자.
“내가 내 콩팥 내놓겠다는데 무슨 절차가 그렇게 복잡해!”
박상우는 한상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신장내과를 찾았다가, 간호사에게 삿대질하며 악다구니를 부리는 한 남자를 보았다.
“저 사람은 뭐야?”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한상훈의 친부, 김성균이었다.
“김성균 씨,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당황한 박상우가 김성균의 팔을 잡아당겼다.
“박 선생님! 이분 아세요?”
난감한 표정의 간호사가 물었다.
“아…… 네. 그냥 좀 아는 지인분이십니다. 무슨 일이죠?”
“이분이 한상훈 환자의 아버지라고 하더니, 다짜고짜 신장을 기증하겠다잖아요.”
‘뭐? 신장을 기증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정히 거절했던 그였기에 박상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잘 왔수다. 지난번에 우리 집에 왔던 그 의사 양반이구먼. 당신이 그랬잖수. 한상훈이가 죽어 가니까 콩팥 이식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온 거 아냐? 그놈 살리려고.”
박상우를 알아본 김성균이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그렇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서…….”
“세상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내 신장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하나 떼어주러 왔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해. 참나!”
김성균은 덥수룩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인상을 구겼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덤빈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일단,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릴 테니까 저랑 차나 한잔하시죠.”
“진짜, 이래서 내가 병원하고 경찰서를 싫어하는 거야. 뭐가 이렇게 절차가 까다로워. 그냥 후딱 떼어주고 가면 되는 거지.”
김성균은 손바닥으로 바짓단을 털어 내며 투덜거렸다.
“여기서 이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일단 휴게실로 가시죠.”
박상우가 거칠게 김성균의 손목을 잡아챘다.
“알았수다. 가면 되잖아. 내가 뭔 죄 지었어?”
김성균은 박상우의 손을 뿌리치곤, 마지못해 박상우의 뒤를 따라 8층 휴게실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길 어떻게 오신 거예요?”
박상우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서 김성균 앞에 내려놓았다.
후루룩~!
“캬~ 역시 자판기 커피처럼 달달한 게 최고야.”
김성균은 종이컵 가장자리를 잘근거리며 경망스럽게 커피를 마셨다.
“김성균 씨, 제 말 듣고 있습니까?”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했수?”
김성균이 못 들은 척 되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오셨냐고요!”
“원래 의사들은 다 그런가?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내가 아까 콩팥 기증하러 왔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