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79)
신의 메스-79화(79/249)
79화 가시고기 (8)
김성균이 짜증 섞인 눈초리로 박상우를 쏘아봤다.
“그러니까요. 제가 찾아갔을 때는 분명히…….”
박상우가 찾아갔을 때와는 180도 다른 김성균의 행동이었기에 그의 본심을 알 수 없었다.
“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나 바쁘니까 후딱 처리해야 합니다. 바로 되는 거죠?”
김성균은 박상우의 말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무슨 생각으로 병원을 찾아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장 이식이라는 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밟아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답답하네. 무슨 절차요! 내가 한상훈이 아버지라매? 아버지가 아들한테 콩팥 떼어주는 게 뭐가 문제야?”
김성균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 좀 잘 들어보십시오. 가족 또는 친척이 아니면, 법적으로 신장을 공여할 수 없습니다.”
박가 흥분한 김성균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니, 내가 아버지라며! 그러면 된 거 아냐?”
“법적으론 상훈이 아버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덤비시면 안 되는 겁니다!”
김성균은 시종일관 안하무인격으로 박상우에게 말했고, 그의 불손한 태도에 터져 버린 박상우였다.
“시벌……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 신장도 내가 못 팔아…… 아니, 기증 못 하나?”
아차 싶었는지, 김성균은 황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신장을 팔아?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장기 기증 센터에 등록부터 먼저 해야 하는데…….”
“시벌, 그게 말이 돼? 한상훈이 목숨이 지금 오늘내일한다면서! 그런 식으로…….”
김성균이 다시 한번 박상우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하십시오. 제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박상우가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뭘 그렇게 성질을 부리슈. 그러니까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요?”
“법적으로 김성균 씨와 상훈이는 부자지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먼저 해야 합니다. 친자임이 밝혀지게 된다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래? 당장 그 유전자 검사인지 뭔지부터 하면 되겠네.”
흥분한 김성균은 이제 다 식은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뭘 또 확인한다는 거요?”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검사를 해 봐야 하니까, 먼저 검사부터 받으십시오.”
“검사? 뭐, 피 뽑는 거 말하는 겁니까?”
“네. 혈액 검사를 포함해서 몇 가지 검사를 해 봐야 이식 수술이 가능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흠, 그거야 뭐, 어려울 것 있나. 하면 되지.”
“그러면 제가 지금 신장내과에 말해 둘 테니, 오늘은 검사만 하고 돌아가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본 후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난 오늘 다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시벌, 뭐 할 수 없지. 알겠수다.”
김성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넣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럽시다.”
신장내과로 향하는 박상우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신장내과에서도 간단한 검사는 당장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고, 박상우는 김성균을 데리고 임상병리실로 들어갔다.
“식전이시죠?”
“네.”
“그럼 뽑겠습니다. 따끔할 테니까 좀 참으세요.”
“알겠수다.”
결국, 김성균은 박상우의 말대로 혈액 검사와 함께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귀가하였다.
* * *
그날 저녁, 박상우는 흉부외과 당직실에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김성균 저 사람이 자발적으로 여기에 올 리가 없어. 뭔가 있을 거야……. 게다가 저 사람의 건강 상태로 볼 때, 제대로 이식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아니! 단지 잔존 수명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놈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상훈을 걱정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의 태도를 접한 후론 만감이 교차하며 박상우의 심기를 어지럽게 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낯선 전화번호가 핸드폰 화면에 띄워졌다.
“누구십니까?”
-혹시, 한상훈이 선배님 되십니까?
잔뜩 쉰 노인의 목소리였다.
“네. 제가 한 선생 선배, 박상우라고 합니다.”
-아이고, 그러시군요. 전 한상훈이 애비 되는 사람이올시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한상훈의 아버지 한동철이었다.
“네. 아버님,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상훈이를 돌봐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아뇨,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요.”
-염치없지만, 우리 상훈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찾아봬야 했는데, 몸이 좀 불편해서 이렇게 염치 불고하고 전화드렸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선생님께서 제 동생에게 찾아가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한동철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말씀해 보세요.”
-상훈이도 이젠 모든 걸 알고 있겠죠?
“네. 그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생각보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녀석이 말은 그렇게 해도 상심이 컸을 거예요. 선생님이 잘 다독여 주십시오. 제가 함부로 나설 상황도 아니고, 참, 그러네요.
한동철은 끝까지 한상훈을 두둔했다.
“아…… 네.”
-오늘 상훈이 생부라는 사람이 병원에 갔을 텐데 어떻게…… 일은 잘된 건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병원에 따로 아는 사람도 없어서요.
‘역시, 아버님이 연관되어 있었어! 그 인간이라면 스스로 병원을 찾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한동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당신의 아들 걱정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위할수록, 박상우가 한상운에게 가지는 반감은 커져만 갔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아버님이 돈을…….”
-아뇨. 그런 거 아녀라. 그 인간도 사람인데, 지 자슥이 죽어 가는 걸 어떻게 가만 보겠어요. 제가 찾아가 부탁하니까, 흔쾌히 허락했어요.”
“아, 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김정균이라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인성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박상우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형식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자기 친부가 신장을 내준 걸 알게 되면, 그놈아 성격상 수술을 안 한다고 할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잘 좀 챙겨 주십시오. 때마침 장기 기증 협회 같은 데서 신장 제공자가 나온 거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버님이 정 그러시다면 한 선생한테 말을 하진 않겠지만, 본인이 알아낸다면 거기까진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암요. 당연하죠. 우리 상훈이한테 말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한동철은 끝까지 아들 걱정뿐이었다.
“아버님. 제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셔요. 우리 선생님이 물어보시는 건데, 뭘 망설이겠습니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어찌 보면 원수의 아들일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한 선생을 챙기시는 겁니까?”
-우리 선상님이 그게 궁금하셨습니까?
“네.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그럼 제가 말씀드리지요. 무식한 늙은이지만 말입니다. 흉부외과 의사 선상님이니까, 이런 예를 들어보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심장이 썩어 문드러져서 남의 심장으로 이식을 했다 칩시다. 그 심장이 제 것입니까? 남의 것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제 심장이죠. 그 심장을 바늘로 찌른다고 제가 안 아플까요? 제 심장이 아니라서?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훈이는 절절히 제 가슴으로 키운 놈이에요. 그놈아가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
박상우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버님, 그것만으로 괜찮으신 겁니까.’
-아이고, 제가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나 봅니다. 죄송해요, 선상님!
“아닙니다, 아버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도 한 선생이 수술 잘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상님!
통화를 끊은 박상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박상우는 한상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어르신을 위해서라도 그를 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상우야, 나 성수인데, 신장내과로 내려와라. 김성균 씨 검사 결과 나왔다.
“그래요? 결과는 어떤데요?”
-글쎄다. 일단 내려와. 자세한 건 결과지 보면서 말해 줄게.
“알겠습니다.”
박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신장내과로 향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훈이보다 이 양반이 먼저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아. 엉망진창이야.”
조성수가 박상우에게 결과지를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결과지를 읽어 내려가던 박상우의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ASP, ALT, ALP 등 모든 지표가 엉망진창이야. 게다가 공복 시 패스팅 글루코스(Fasting Glucose: 당뇨 수치)가 이미 정상 범위를 넘고 있어. 다시 말해 당뇨병이 있다는 거지.”
조성수가 결과지를 흔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요. 이 상태라면 신장 이식은 불가능하겠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크레아티닌 수치 좀 봐라. 이 정도면 신장 상태가 정상 수준의 40%도 미치지 못할걸? 단백뇨도 검출됐어. 이 양반, 신장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받아야 해.”
조성수는 검사지를 손톱으로 톡톡 건드리며 비관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후…… 알겠습니다. 결국, 이분의 신장을 이식하긴 힘들겠군요.”
“이 사람이 누군데?”
“한 선생네 외가 쪽 삼촌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나저나 큰일이네. 상훈이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데, 신장 협회 쪽에선 감감무소식이고 말이야. 하루라도 빨리 이식 수술을 해야 할 텐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참, 김성균 씨가 병원에서 검사받고 갔다는 건 상훈이에겐 비밀입니다.”
“외삼촌이라면서? 굳이 속일 필요는 없잖아?”
조성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 좋은 결과도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환자 정신 회복에도 도움이 안 되니 말이에요.”
박상우는 진실을 말하기 어려워서 대충 둘러댔다.
“그야 그렇지. 그래, 다른 가족들이라도 공여자를 찾아봐라. 신장 협회에서 공여자 기다리다간 상훈이 위험해.”
“알겠습니다.”
* * *
흉부외과 너스 스테이션은 오늘도 어지러웠다.
“308호실 하트 페일리어(Heart Failure: 심부전) 환자는 베타 차단제 양을 조금 줄여 주시고, 디곡신은 당분간 투여하지 말아 주세요.”
“네. 어지럼증을 호소하던데, 괜찮을까요?”
“원래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의 부작용이긴 한데,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증세가 악화되면 심장내과로 컨설트 넣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박 선생님, 어떤 분이 선생님을 찾으시던데요?”
담당 간호사와 처방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던 박상우에게 정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누가요?”
“노인분이셨는데,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이셨어요. 이 쪽지를 좀 전달해 달라고 하셔서.”
정 간호사가 박상우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아, 네.”
[선생님, 상훈이 애비입니다. 송구스럽지만 병원 앞 커피숍에서 뵈었으면 해요.]한상훈 아버지의 메모였다.
박상우는 쪽지에 적힌 대로 병원 앞 카페를 찾았다.
“선생님, 여깁니다.”
박상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한동철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걸어 나와 아는 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