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8)
신의 메스-8화(8/249)
8화 양 갈래 머리 소녀 (3)
박상우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혹여 은서가 희귀한 혈액형이라면 혈액 조달이 힘들 수 있었다. 그러면 수술에 차질이 생길 터였다. 박상우가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돌려 은서 엄마를 응시했다.
“어머님, 혹시 은서 혈액형은 어떻게 되죠? 수술하려면 은서의 혈액형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Rh- O형이에요. 예전에 아이 출산할 때, 우, 우리 은서가 전국에 3만 명밖에 없는 희귀한 혈액형이라고, 출혈에 각별하게 주의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
여자가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혹시나 했는데, 하필 ‘Rh- Negative O형’이었다. 박상우는 급하게 다시 물었다.
“네? 그러면 어머님 혈액형은요?”
“그게, 전, 전 A형인데…….”
‘큰일이군!’
“그렇다면 은서 아버님은요?”
“그이도 저와 같은 A형이에요.”
“집안에 은서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아, 아뇨. 은서 말고는 없어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항상 조심하라고……. 어, 어떡하죠? 우리 은서 잘못되는 건가요?”
울상이 된 여자가 울먹거렸다.
‘제길, 큰일이군. 하필이면……. 새한 병원에 해당 혈액형의 혈액이 부족할 수도 있다. 미리 혈액을 확보해야 해. 그래! 일단 혈액은행에 연락해 보자!’
“네. 너무 걱정 마세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띠리리리링.
박상우가 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14죠. 대한 혈액은행 연결해 주세요. 급합니다.”
“네. 지금 바로 연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우가 114의 안내를 통해 혈액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혈액은행이죠? 지금 응급한 어린 환자가 있어서 새한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이 혈액형이 Rh- Negative O형이에요. 아무래도 응급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혈액을 확보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전화 거신 분은 누구시죠? 의사신가요?”
“네. 의사 맞습니다. 지금 바로 새한 병원에 연락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그쪽에 연락을 취해 뒀습니다.”
“알겠습니다. 병원 쪽에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아이가 위급합니다.”
딸깍, 박상우가 황급히 전화를 끊고는 운전기사를 재촉했다.
“아저씨! 빨리요.”
“네! 우리 공주님이 위급한데 그깟 과속 딱지가 문제겠습니까? 저도 저만 한 딸아이가 있어 남 일 같지 않군요!”
부웅, 운전기사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룸미러를 힐끗거리더니 이내 액셀을 깊게 밟았다.
잠시 후.
“여기, 여기에 내려 주세요.”
“네.”
그렇게 달리길 10여 분, 박상우와 일행은 새한 병원에 도착했다. 조현오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이미 의료진들이 스트레처 카와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어머니, 내리세요.”
박상우가 반쯤 정신을 잃은 여자의 팔을 흔들었다.
“네? 네…….”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급합니다! 빨리 플루이드(Fluid: 수액) 달고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교감신경 흥분작용 호르몬) 1 앰풀 식염수에 희석해서 투여해 주세요. 아이의 혈압이 자꾸 떨어집니다.”
박상우가 양팔로 은서를 안은 채 차에서 내렸다.
“일단, 여기에 환자를 태우세요.”
드르륵, 의료진들이 택시 앞까지 스트레처 카를 밀고 나왔다.
[잔존 수명: 1시간 48분 32초, 31초, 30초…….]박상우가 차에서 내려 스트레처 카 위에 아이를 올려놓았다.
점점 의식을 잃어 가고 있는 은서의 이마를 쓸어 넘기자 숫자가 드러났다. 아이의 이마 위에 쓰인 붉은 숫자가 깜빡이며 줄어들고 있었다.
‘하아, 이를 어쩌지?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
“어, 어떡해! 우리 은서 좀 살려 주세요. 선생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 버린 아이 엄마가 박상우의 팔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은서, 수술만 받으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드르륵
박상우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던 아이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풀어내었다. 그러고는 은서를 스트레처 카에 싣고서 의료진들과 함께 병원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이 아이,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혈압이 자꾸 떨어집니다. 현재 수축기 혈압 65mmHg. 아이가 더는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빨리요!”
“혈압도 측정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보세요! 아이 상태를! 이 상태라면 수축기 혈압이 정상일 리 없잖습니까?”
박상우가 턱짓으로 은서의 얼굴을 가리켰다.
“심전도 연결하고, 빨리 혈압 측정해 봐.”
“네. 선생님!”
의료진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은서의 팔에 수액과 심전도기를 걸고 혈압을 측정했다.
“선생님, 저분 말대로 수축기 혈압, 지금 65mmHg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떡하죠? 이제 곧 어레스트가 올 것 같은데…….”
“저, 정말? 어이없군. 인간 혈압 기기야, 뭐야. 일단, 에피네프린 1 앰풀 투여해. 그래도 안 잡히면 하나 더 투여하고.”
획, 의사가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쳐다보았다. 그가 얼핏 보기에 박상우의 외관은 레지던트 2년 차, 잘해 봐야 펠로우급이었다.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였다.
“급합니다.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해요!”
“네. 지금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 계세요.”
“제 말 못 들었습니까? 지금 당장 응급수술 들어가야 한다고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고요!”
박상우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의사의 팔을 잡아챘다.
“이 사람이 왜 이래? 검사를 좀 해 봐야…….”
“아뇨, 아뇨. 지금 검사할 시간이 없어요. 비장 파열에 의한 복강 내 출혈이 심합니다. 보세요! 신장 파열까지 겹쳐서 혈뇨까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의료진이 은서의 다리 사이로 흘러내린 피를 보았다.
“지금 바로 비장 절제술 들어가야 합니다. 이러다가 골든아워 놓쳐 버린다고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이러다 이 아이 죽는다고요!”
박상우가 흥건히 피에 젖은 은서의 속옷을 가리켰다.
“아니, 아니. 그래도 몇 가지 검사는 해야 수술을 들어가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 혈액형도 지금 파악이 안 돼…….”
“은서, 혈액형, Rh- Negative O 타입입니다. 혹시 몰라 미리 혈액은행에 연락을 취해 뒀습니다. 빨리 확인해 보세요.”
“그래요? 장 선생, 빨리 원무과에 확인해 봐!”
“네. 선생님!”
“서, 선생님, 우리 은서 저, 정말 괜찮겠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가 박상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은서처럼 긴박하게 혈액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혈액은행이 있는 거니까요. 반드시 은서 혈액, 확보될 겁니다.”
“당신, 외과의입니까?”
의료진 중 한 명이 박상우를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그러면서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네. 외과의 맞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 말 믿고 수술실 잡아 주세요. 제발!”
쾅쾅! 박상우가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아니 그래도, 스플레닉 럽처라면 CT는 찍어 봐야…….”
“이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순간, 중년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봐도 교수급 포스가 물씬 풍기는 베테랑이었다.
“아…… 네. 교수님!”
그의 등장에 의료진들이 정 자세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전부 비켜!”
의료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담당 교수가 이곳저곳 은서의 상태를 살폈다.
“당장, 수술실 잡고 마취과에 연락 안 해? 이거,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나? 미쳤어? 너희들, 환자 죽일 작정이야?”
담당 교수가 버럭거리며 의료진들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마취과죠? 여기 응급실입니다. 지금 응급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마취과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
“빨리 수술실 하나 잡아 주세요!”
그때야, 의료진들이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네가 명성대학교 병원 박상우인가?”
“네.”
“방금 조현오 교수한테서 얘기는 들었네. 이제, 여기는 우리가 맡을 테니까 자네는 밖에서 기다리게나.”
“네. 교수님! 지금 은서의 산소 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임상 경험이 일천할 텐데?”
담당 교수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물었다.
“그, 그건 아이가 극심한 디스피니어(Dyspnea: 호흡 곤란), 애트리얼 타키카디아(Atrial tachycardia: 심방 빈맥)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볼 때, 그 정도 수치가 될 거라 추론했습니다.”
교수의 말대로 신출내기 인턴의 경험 가지고는 잡아내기 힘든 진단이었다.
“잘 배웠네?”
담당 교수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이의 복부를 좀 살펴보십시오. 복강 내 출혈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게다가, 좀 전부터 헤마토사이트리아(Hematocyturia: 혈뇨)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박상우가 볼록 튀어나와 푸르스름하게 변해 버린 아이의 복부를 가리켰다.
“흠, 조현오 교수가 자네 말을 신뢰해도 좋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먼. 인턴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후후후, 이거 재밌군. 조 교수, 꽤 쓸 만한 제자를 뒀어. 아무튼, 자네는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이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네. 선생님!”
박상우가 담당 교수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교수님, 수술방 확보했습니다.”
“교수님, 마취과 선생님 지금 수술방으로 이동한다고 하십니다.”
그사이, 또 다른 의료진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교수님, Rh- Negative O형, 확보했습니다! 지금 막 혈액은행에서 공수해 왔어요.”
“뭐야? 뭐가 그렇게 빨라? 누가 연락한 건데?”
“저기, 저 사람이요.”
의료진들이 턱짓으로 박상우를 가리켰다.
‘허허허. 저놈 봐라. 이거 물건일세?’
획, 고개를 돌려 담당 교수가 박상우를 응시하며 피식거렸다.
“좋아. 빨리빨리 수술실로 옮겨! 이 아이 바로 비장 절제술 들어간다. 마취과 선생한테 빨리 세팅해 두라고 해!”
짝짝짝, 담당 교수가 의료진을 향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담당 교수는 박상우의 오더를 바로 인정했다. 초짜 인턴의 진단을 베테랑 담당 교수가 인정하는 셈이었다. 의료계의 오랜 관행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두르자! 환자는 아이야! 신경들 바짝 쓰라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담당 교수가 의료진들을 향해 목소리 톤을 높였다.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드르륵
의료진들이 은서를 태운 스트레처 카를 밀며 서둘러 수술실로 향했다.
그제야 박상우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다행이야!’
주르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박상우가 벽에 등을 기댄 채 미끄러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