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83)
신의 메스-83화(83/249)
83화 스승의 은혜 (3)
박상우는 벼랑을 우회해 노승욱이 낙상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노승욱은 건축 폐자재가 쌓인 곳 한쪽에 쓰러져 있었다.
“교수님! 교수님!”
박상우가 노승욱의 몸을 열심히 흔들어 봤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아직, 호흡은 있다!’
박상우는 먼저 노승욱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았고, 옅지만 분명 호흡은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잔존 수명: 38분 23초, 22초, 21초…….]그 순간, 붉은 숫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느닷없이 나타난 노승욱의 잔존 수명이었다.
“아, 안 돼!”
노승욱의 의식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호흡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축 늘어지고, 복부에 출혈이 있는지 등산복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추락하면서 건축 폐자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게다가, 시체처럼 하얗게 보이는 노승욱의 얼굴 군데군데엔 청색 증세까지 보여 매우 위중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안 돼요! 교수님은 아직 돌아가실 때가 아닙니다!”
노승욱의 얼굴을 부여잡은 박상우의 손이 마구 떨렸다.
박상우는 잔존 수명이 뜬 노승욱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벅벅 문질러 보았지만, 빨간색 숫자는 잠시 일그러질 뿐 더욱더 선명해졌다.
“제길, 그냥 있었어야 했어! 교수님을 뵈러 오는 게 아니었어. 모두 내 탓이야! 내 탓이라고!”
박상우가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어떡하지…… 아냐, 이렇게만 있으면 안 돼. 살려내야 해. 교수님을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박상우는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바짓단에 문질러 닦아 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툭!
박상우는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려 했지만, 손이 마구 떨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바닥에서 핸드폰을 주워 다이얼을 눌렀다.
‘1……1……8! 제길! 번호를 잘못 눌렀어.’
박상우는 거칠게 종료 버튼을 눌렀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119 다이얼을 눌렀다.
‘숫자 3개를 누르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야속하게도, 산 중턱에선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이대로 멈출 순 없던 박상우는 또다시 다이얼을 눌러 보았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통화권 이탈이었다.
“제길!”
박상우는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박상우! 침착하자. 넌 의사야! 정신 차려! 지금 구조 요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시간은 부족해. 반드시 내가, 내가 해결해야 한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박상우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볼을 짝짝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때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박상우는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교수님의 잔존 수명은 30여 분……. 지금 119에 신고한다고 해도, 이곳까지 오는 데 아무리 빨라도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래, 전화를 걸고 기다려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 게다가, 교수님을 모시고 산에서 내려가는 건 더 위험해. 지금 두부, 복부, 흉부 모두 상처를 입으신 상태다! 어떻게 되든 내가 해결해야 해.’
박상우는 다시 한번 자신의 볼을 세차게 때렸다.
‘우선, 비장 파열부터 해결하자.’
비장은 복부 좌측 상층부에 자리한 장기였다. 비장은 맥관 장기, 즉 혈관이 흐르는 장기이기에 내부가 혈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고 물리적 충격에 강한 것도 아니어서, 두부처럼 연약한 성분을 얇은 막 하나가 둘러싸 보호하는 게 다였다. 그렇기에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서 두부가 뭉개지듯 파열될 수도 있었고, 비장이 터지면 지금처럼 엄청난 출혈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일단 지혈부터 하자!’
박상우는 입고 있던 셔츠를 벗은 후, 이빨로 러닝셔츠를 찢어 냈다. 그리고 찢은 러닝셔츠 조각을 이용해서 신속하게 상처 부위를 압박했다.
‘비장은 이 정도면 괜찮아. 아무리 피를 많이 흘리게 되더라도, 혈압이 떨어지면 비장 동맥과 비장으로 흐르는 피의 양은 저절로 감소하게 돼 있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혹시 안 좋아지더라도 내려가서 비장 절제술로 떼어내면 된다!’
응급조치를 마무리한 박상우의 시선이 노승욱의 가슴 쪽을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폐야!’
절벽 아래에 있던 건설 폐자재에 의해 노승욱의 가슴엔 상처가 나 있었고, 폐 쪽의 흡인성 흉부 상처(Sucking Chest Wound)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어떡하지. 응급조치를 하려면…… 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이대로 두면 교수님은 죽는다. 어쩌지? 조금만 시간이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박상우는 오전에 차에 실었던 의료 기기를 떠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가 있는 곳까지 아무리 빨리 내려간다 해도 10여 분, 왕복으로 따진다면 20분이 소요될 것이기에 지금처럼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잔존 수명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새 2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시계의 째깍째깍하는 초침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계속 울리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그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100m 달리기의 스톱워치를 눌러 놓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 듯했다.
박상우는 안절부절 발을 구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천하의 박상우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 돼! 제발 어, 어떻게 좀 해 줘! 제발!!”
박상우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고,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규했다.
[잔존 수명: 17분 10초…… 9초……… 8초………….]“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박상우가 절규하는 순간, 노승욱의 잔존 수명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줄어드는 속도가 1/4로 정도로 감소한 것처럼 보였다.
‘잘못 본 건가? 아냐, 분명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박상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을 닦은 뒤, 다시 한번 노승욱의 잔존 수명을 살폈다.
‘아냐! 분명히 느리게 가고 있어!’
박상우는 자신의 손목시계와 노승욱의 이마에 적힌 잔존 수명을 번갈아 살펴보며 시간의 흐름을 확인해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잔존 수명이 실제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확실해!”
한줄기 희망이 생긴 박상우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박상우는 잔존 수명이 새겨진 노승욱의 이마 옆에 손목시계를 대 보며, 줄어드는 시간이 어느 정도로 다른지 한 번 더 체크했다.
“됐어! 이 정도 시간이면 어떻게든 해볼 만하다!”
박상우는 양손을 불끈 쥐었다. 잔존 수명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느려진 이유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백지장같이 하얗게 변해 버린 박상우의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분명, 잔존 수명이 줄어드는 속도는 실제 시간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약 1시간여가 남았다는 소리였고, 1시간이라면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교수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반드시 교수님을 살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잠시만 버텨 주세요!”
박상우는 벗어 놓은 외투로 노승욱의 몸을 감싼 후, 산 아래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 * *
“허억! 허억!”
‘그래. 이 정도만 있으면 할 수 있어!’
박상우는 정신없이 내달려 차가 주차된 곳으로 달려갔고, 트렁크를 뒤적여 압박붕대와 에피네프린, 국소 마취제 등 응급조치에 필요한 장비들을 가방에 욱여넣었다. 물론, 뒷좌석에 있던 무릎 덮개용 담요와 자동차 시트까지 모조리 챙겼다.
모든 장비를 챙긴 박상우는 곧장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아, 아주머니!”
박상우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네? 무슨 일이세요?”
풀어헤친 셔츠 차림으로 땀에 흠뻑 젖은 젊은 남자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주인 여자가 놀란 듯 눈을 깜박거렸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혹시, 랩 같은 것 있습니까? 아니면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지라도 없을까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산 위에, 실족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응급조치에 필요하니까 가지고 계시면 좀 부탁드릴게요! 전 의사입니다!”
“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만 기다리슈!”
아주머니는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이, 이거면 되겠수?”
아주머니는 둘둘 말린 식품 포장용 랩을 가지고 나온 후 박상우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바셀린 같은 연고는 없습니까?”
박상우는 가방에 랩을 욱여넣으며 물었다.
“그, 그건 없는데……. 연고 같은 거야, 집에나 있지.”
“혹시 집은 여기서 멀리 있나요?”
“한…… 30분 걸릴걸요?”
‘그러면 안 되는데…….’
박상우는 난감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면…… 맞다! 버터! 버터나 마가린은 있죠?”
그것도 잠시, 박상우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목소리 톤을 높여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빠다? 그건 당연히 있죠. 그것도 치료에 필요한 거요?”
“네, 버터 한 덩이만 좀 주십시오. 빨리요!”
답답한 듯, 박상우의 시선이 손목시계로 향했다. 박상우는 계속 손을 내저으며 주인 여자를 재촉했다.
“여기 있어요, 빠다. 사람이 죽어 간다면서 빠다는 왜 필요한 건지 모르것네.”
주인아주머니는 박상우의 말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주방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버터를 들고 나와 박상우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메모를 하나 써 드릴 테니까, 119에 연락하셔서 이대로만 읽어 주세요. 아, 그리고 실족한 환자는 산 중턱, 거북 바위 인근에 있다고도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그 거북 바위에서 사달이 났구먼. 거가 하도 위험해서 난간 좀 세워 달라고 그렇게 민원을 넣었는데도 꾸물거리더니, 결국 사고가 났어!”
주인아주머니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비장 파열 의심, 흡인성 흉부 상처…….]‘제길!’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메모를 적던 박상우는 노승욱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버터 값입니다.”
“뭘 이렇게 많이 줘요! 여기 거스름 도…….”
박상우는 메모와 함께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주인아주머니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며 신속하게 음식점을 빠져나왔다.
* * *
박상우는 노승욱이 누워 있던 장소로 돌아오자마자 이마에 쓰인 잔존 수명을 내려다봤다.
[잔존 수명: 8분 45초……… 44초……… 43초……….]남은 시간은 고작 8분 정도였지만, 잔존 수명이 느리게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30여 분이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시간도 그리 길지만은 않을 터였다. 박상우는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치료를 해야만 했다.
노승욱의 가슴은 건축 폐자재 철근이 뚫고 지나가 구멍이 생겨 있었다.
상처의 지름이 충분히 큰 것만으로도 흡인성 흉부 상처를 일으킬 수 있었다. 마치, 총상에 의해 사출구가 커져 폐가 저절로 닫히지 않은 상태와도 같았다.
음압과 양압에 의해 정상적인 호흡이 이뤄지는 폐였지만, 외부의 충격으로 흉벽에 구멍이 뚫리면 상처로 날숨과 들숨 때마다 공기가 이동하여, 상처를 입은 폐는 허혈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쌔액! 쌔액!
노승욱 교수는 빨아들이는 듯한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호흡하고 있었다.
호흡 과정에 생성되는 소리는 흉강 내의 음, 양압은 공기를 순환계가 아닌 상처 부위로 밀어내고 빨아들이기 때문에 나는 것이었다.
‘흉부 압박 폐쇄 드레싱을 해야겠어!’
박상우는 가방 지퍼를 열고, 조금 전에 음식점에서 가져온 랩과 버터를 꺼냈다. 흡인성 흉부 상처가 나면, 드레싱을 할 때 피부에 최대한 밀착한 뒤 공기가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물론 공기를 밀봉해 주는 몇 가지 특수 붕대가 있었지만, 노승욱의 차에 실었던 의료 기기 중에는 없었다.
그것이 박상우가 음식점에서 랩과 버터를 가지고 온 이유였다.
박상우는 랩을 뜯어내 흉부를 감싸며 압박했다.
[잔존 수명: 4분 45초……… 44초……… 43초……….]응급조치를 하면서도, 박상우의 시선은 노승욱 교수의 이마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 잔존 수명은 4분여만이 남아 있었다.
‘후, 그래도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어!’
하지만, 박상우는 충분히 살릴 자신감이 있었기에 침착함을 유지했다. 버터를 꺼낸 박상우는 랩이 겹쳐진 구석구석마다 버터를 발랐다. 공기를 완전하게 밀봉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상처에 생긴 공기 입구를 막아 주고, 폐 자체에 구멍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구급차가 다시 올 때까지 어느 정도 팽창해 견딜 수 있을 거야! 폐는 나중에 흉관을 삽관한 다음 정상적으로 부풀리면 돼!’
응급조치를 마친 박상우의 온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너무 바쁘게 움직인 탓에 다리도 후들거렸는지, 일어서려던 박상우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후!”
박상우는 크게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승욱의 이마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