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87)
신의 메스-87화(87/249)
87화 살인마의 기억법 (4)
“야, 박상우! 너 무슨 죄라도 지었냐?”
다음 날 오전, 흉부외과 의국에 온 박상우를 보자마자 천기수는 땅콩을 우물거리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박상우는 천기수의 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고 차트를 정리했다. 중요한 수술을 앞둔 상황이었기에, 천기수의 쉰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야! 솔직히 말해라. 하나밖에 없는 절친 빵에 보내놓고 내가 마음이 편하겠냐? 뭐야? 무슨 짓을 저지른 건데? 조태수 환자 차트냐?”
천기수는 가자미눈을 뜨며 박상우의 어깨너머로 차트를 힐끗거렸다.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수술방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신 사납게 굴지도 말고.”
박상우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수술 못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후……. 자꾸 장난칠래?”
박상우는 탁 소리가 나게 차트를 덮고,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런데 경찰이 왜 널 찾냐?”
“뭐? 경찰?”
“새벽 댓바람부터 경찰이 널 찾더라. 너 보면 전해 달라고 하던데? 자기는 8층 휴게실에서 기다리겠다고.”
천기수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경찰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는 거야?”
“몰라, 인마. 그거야 네가 더 잘 알지 않겠어? 그나저나, 무슨 죄를 지은 건데? 절친인 나는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래야 집도 절도 없는 네놈 옥바라지라도 하지.”
천기수는 박상우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이죽거렸다.
“그런 거 없다!”
박상우는 달라붙은 천기수의 몸을 밀쳐 버렸다.
“휴게실에나 가 봐라. 아마, 딱 보면 ‘경찰이구나’ 싶은 사람이 있을 거다. 여기 연락처!”
[서울 남부 경찰서, 형사 홍상태]천기수가 박상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경찰이 무슨 일로…….’
명함을 받아든 박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8층 휴게실에 올라간 박상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찰로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저 사람인가?’
천기수의 말은 정확했다. 한눈에 봐도 경찰일 것 같은 남자가 8층 휴게실에 있었다. 조폭인지 경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우락부락한 외모, 짧게 잘라 각진 머리에 수염,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은 분명 조폭이 아니면 경찰을 할 것 같은 남자였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손가락이 아닌 엄지발가락처럼 두꺼운 남자의 손안에 폭 들어가 있는 핸드폰이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그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혹시 홍상태 형사님이십니까?”
박상우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홍상태 형사가 맞는지 물었다.
“네, 박상우 선생님이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홍상태는 박상우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일단 앉으시죠. 전달받으신 것처럼, 전 경찰입니다.”
홍상태는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박상우에게 보여 주었다.
“네.”
“이 병원에 조태수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요?”
“다름이 아니라…….”
홍상태 형사는 다른 말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은 말입니다.”
홍상태 형사는 몇 달 전에 발생한 상종동 보험사기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조태수이며, 현재 그를 추적하고 있단 이야기를 박상우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네. 조태수의 아내 안선영과 그녀의 7살짜리 아들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집에 불이 나서 모두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요. 께름칙한 것들만 모아도 하나둘이 아닙니다. 단순 사고로 보이진 않아요.”
홍상태 형사의 의심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조태수의 아내와 그의 의붓아들 이민성 앞으로 들어둔 생명 보험이 무려 7억 원이었던 것과, 무직인 조태수가 작년부터 거액의 보험료를 납입했던 정황이 파악된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 사기라는 건데, 법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현재로선 증거가 없습니다. 보험 회사에서도 철저하게 조사해 봤는데,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어서 현재로선 보험료를 지급한 상황입니다.”
홍상태 형사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경찰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결국 조태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것이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뭡니까?”
“저는 여전히 조태수가 이번 사건의 진범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인간은 이대로 법망을 빠져나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흉악한 놈이에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조태수의 주치의란 소식을 듣고, 부탁을 하나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입을 꽉 다문 홍상태 형사는 쥐고 있던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이쯤 되면 내 기억이 맞는다는 건데…….’
박상우도 적잖이 긴장되는 듯,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침을 묻혔다.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려야 합니까?”
그 순간, 박상우는 기사로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조각조각 어렴풋했던 기억들이 홍상태 형사의 말에 퍼즐처럼 맞아들어 가는 듯했다.
조태수는 자신의 아내와 의붓아들에게 거액의 생명 보험을 들어 두곤 사고를 가장한 방화를 통해 아내와 의붓아들을 살해했고, 거액의 보험료를 수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혐의를 입증을 찾지 못해 처벌을 받지 않았고, 유흥비로 보험료를 탕진했던 조태수는 보험금을 탄 지금으로부터 2년 정도 지난 후 희대의 연쇄 살인마가 되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조태수는 내가 알고 있는 살인마와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일인이라는 소리인데……. 내가 여기서 막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 거야.’
박상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치료 도중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저에게 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뭐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요. 이 자식은 반드시 제 손으로 잡고 싶습니다.”
양 주먹에 힘을 준 홍상태 형사가 중얼거리듯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해요. 반드시 뭔가 단서가 있을 겁니다.”
홍상태 형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서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놈의 인권 때문에 몸수색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제 예상이 맞는다면 조태수 몸에 반드시 단서가 있을 겁니다. 혹시 멍이나 최근에 다친 흔적이 보이면 알려 주십시오.”
“그 부분은 조금 곤란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을 어기는 일이 되니까요. 게다가, 아직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렇기는 하지만…….”
홍상태 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진술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라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놈의 팔에 수갑을 채워야겠습니다.”
홍상태 형사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박상우에게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홍상태가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으로 박상우의 양손을 움켜잡았다.
* * *
그날 오후, 수술실 스크럽 스테이션.
박상우와 천기수는 수술 준비를 하고자 멸균 솔을 이용해 손, 손톱, 팔꿈치까지 꼼꼼히 스크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봐. 조태수 환자 좀 이상하다고 했지? 혹시, 너 찾아온 경찰도 조태수 때문인 거 아냐?”
천기수는 조태수의 변태적인 행동을 말하는 듯했다. 눈치가 빠른 천기수가 박상우를 슬쩍 떠보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을 신경 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쏴아~!
박상우가 발로 레버를 건드리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
박상우는 손과 팔을 세척한 뒤 멸균 타월로 물기를 닦아 내며 말았다.
“아냐, 가끔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눈빛도 왠지 찜찜해. 마치 생선가게를 훔쳐보는 도둑고양이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떨 때 보면 섬뜩섬뜩해지더라고. 조태수 환자한테 뭔가 있는 게 분명해. 틀림없어.”
천기수도 타월로 팔을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지금 우리에겐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환자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새끼, 잘난 척하기는.”
“잡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긴장 좀 해.”
“알겠어, 알겠어.”
“선입견은 버리고, 지금은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자. 저 수술실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은 카데바가 아냐. 살아서 팔팔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았다고, 쨔샤.”
천기수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들어가 볼까?”
두 사람은 가슴을 부풀려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수술실 안으로 체외 순환기에서 뻗어 나온 링거줄이 뱀처럼 환자를 휘감고 있었고, 조태수의 몸에 연결된 각종 줄이 검사 기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수술실 안 풍경이었다.
“주무시기 전까지 가슴이 부풀어 올라올 수 있도록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세요.”
마취가 시작되자, 이은주 간호사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걸었다.
“…….”
말없이 눈만 깜박거리던 조태수는 조금씩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정 선생, 옆방으로 가서 혈액 가스 분석해 줘.”
조태수의 팔에서 피를 뽑은 이은주 간호사가 주사기를 정지수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알겠습니다!”
정지수 간호사는 주사기를 받아들곤 바로 옆의 분석실로 신속히 이동했다.
키트에 혈액을 묻혀 검사를 시행하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모든 수술진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 오늘 빨리 끝내고 소주나 한잔하러 갑시다!”
긴장을 풀려는 듯, 마취과 한정훈 선생이 밝은 표정으로 손바닥을 짝짝 마주쳤다.
마취과 한정훈, 체외 순환 기사 장철주, 그리고 간호사 이은주와 정지수 등 10여 명의 인원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수술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박상우는 밝은 표정의 수술진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뚜뚜뚜뚜~!
조태수는 전신마취로 인해 깊은 잠에 빠져든 상황이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힘겹게 호흡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가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일 흉악범일지라도 말이다.
박상우의 의지에 따라서, 다시는 저 감은 눈을 뜰 수 없을 수도 있는 무방비 상태의 조태수가 눈앞에 있었다.
‘저 산소 호흡기를 뽑아 버리면 무고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텐데…….’
박상우의 손이 순간 움찔거렸고,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산소 호흡기로 손을 가져갈 뻔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사람은 환자다! 게다가, 아직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의사로서 나는 이 사람을 살려야 할 의무만 있을 뿐이야. 절대로 사적인 감정에 휩싸여서는 안 돼!’
박상우는 머리를 한번 흔든 뒤, 금세 냉정과 평정심을 되찾았다.
“박 선생, 뭐 해? 오늘 집도의는 박 선생이야. 수술 방에서 하는 집도의의 잡생각은 치명적이라고! 집중하자.”
마취과 한정훈이 박상우를 향해 검지 하나를 들고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바이탈부터 체크해 주세요. 환자 상태 어떤가요?”
박상우는 한정훈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깜박거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호흡, 맥박 모두 정상이야. 완전 수면 상태니까 이제 수술 들어가자. 이 환자, 생각보다 건강 상태가 양호해! 심장 말고는 거의 천하장사급인데?”
‘천하장사급이라…….’
한정훈의 말에 박상우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의 자네 명성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려고 여기 들어왔으니까, 실력을 맘껏 발휘해 봐. 얼마나 고수인지 좀 볼까?”
한정훈이 박상우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