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89)
신의 메스-89화(89/249)
89화 살인마의 기억법 (6)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천기수는 실없는 농담을 자주 했기에, 박상우는 단순한 천기수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마무리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박상우의 어깨에서 손을 뗀 천기수는 수술복을 벗고 의사 가운을 걸치며 말했다.
“이상한 거?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줄래?”
“카테터가 조태수 환자 밑에 깔려 있길래 그거 빼내려다 보게 된 건데, 조태수 환자 옆구리와 등 쪽에 자상이 있더라고.”
“자상? 조태수가 칼에 찔린 적이 있다는 거야?”
천기수의 ‘자상’이란 말에 박상우는 관심을 보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칼에 찔린 상처는 아닌 것 같고……. 송곳이나 못처럼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로 보였어.”
천기수는 어떤 상처였는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우도 자연스레, 얼마 전 홍상태 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조태수는 분명 피해자와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을 겁니다. 뭔가 단서가 나올 거예요.’
“못이라고? 확실해?”
“그래, 인마! 내가 흉부외과 써전만 안 됐으면, 국과수에 들어가서 최고의 법의학자로 명성을 날렸을 거다. 척 보면 딱 답이 나오거든. 모르긴 몰라도 못이 찔린 상처가 틀림없어. 꽤 깊었거든.”
“못에 찔린 상처라…….”
“흉터를 보니까 진피까지 손상을 입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다친 거지? 공사장 같은 데서 넘어져 찔린 건가? 이 정도면 테타너스(Tetanus: 파상풍) 위험도 있었을 텐데…….”
천기수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파상풍이라고? 확실해?”
박상우의 심장도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사용했든, 못이면 먼지도 많고 녹이 슬어 있었을 테니까 당연히 파상풍 위험은 있지. 넌 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 하여간, 수술만 잘했지 일반적인 상식에는 젬병이라니까!”
천기수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래, 무조건 네 말이 맞아. 당연히 고통도 심했겠지?”
“말해서 뭐해? 아마 숨도 쉬기 힘들었을 거다.”
“그러면, 당연히 병원에 갔겠네?”
박상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수술 잘해 놓고 싱거운 소리나 하긴. 당연히 갔겠지. 인마! 너 같으면 안 갔겠어?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문 걸 보니까 치료는 이미 받은 것 같던데.”
“고맙다, 기수야!”
박상우는 갑자기 와락 천기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뭐야, 지금? 뭐가 고맙다는 건데?”
“그런 게 있어. 정말 고맙다, 기수야!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박상우는 당장이라도 나갈 듯 문을 향해 걸어갔다.
“뭐야, 밥 먹으러 가기로 했잖아!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건데?”
“잠시만, 일단 먼저 가서 음식부터 시켜 놔 줘. 밥은 내가 살게.”
“야, 그거야 당연히 네가 사야지!”
“알겠어. 나 잠시만!”
박상우는 핸드폰을 들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띠띠띠띠~!
박상우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홍상태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 형사님, 박상우입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사건 당일 조태수의 알리바이가 있습니까?”
“알리바이요?”
“사건 당일 조태수가 어딘가에 있었다고 했나요?”
“미심쩍긴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상천에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몇몇 지인들이 증언을 해 줘서 알리바이가 성립된 것으로 압니다. 아직 저는 의심스럽지만 말입니다. 그나저나 그건 왜요?”
“만약, 사건 발생 후 1~2일 사이에 조태수가 서울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면 그 알리바이는 깨지는 건가요?”
“물론이죠.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태수는 한 달 전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집을 떠난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요. 당연히 알리바이는 깨지는 거죠.”
“형사님, 조태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적어도 2~3일은 서울에 있었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보아, 홍상태 형사 역시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사람이 다치면 어디를 가야 할까요?”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예를 들어 음식을 만들다가 칼에 베이거나, 잘못해서 실수로 유리를 밟았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박상우는 홍상태 형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환자의 의료정보를 임의로 공개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 그, 그렇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야 눈치를 챘는지, 홍상태 형사가 목소리 톤을 높였다.
“반드시 뭔가 나올 겁니다.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상당히 긴장한 홍상태 형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반드시 뭔가 나올 거야. 반드시!’
전화를 끊은 박상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세상에, 이렇게 회복 속도가 빠른 인간은 나도 처음 봐. 검사 결과가 죄다 정상이야. 이건 뭐, 천하장사냐?”
수술이 끝나고 며칠 후, 천기수는 차트를 들여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이런 회복력은 처음 봐.”
“타고난 거지. 역시 체력이 뒷받침되니까 큰 수술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내는 것 같아. 우리도 평소에 운동 좀 하고 살아야겠어.”
“틈틈이 운동해야지. 나는 잠깐 조태수 환자한테 가 볼게.”
“그래, 다녀와라. 몸조심하고.”
“몸조심은 무슨…….”
“아냐, 인마. 내가 누누이 경고하지만, 그 사람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니까?”
“다른 사람들은 서글서글해서 좋은 인상이라고 하던데?”
“분명 뭔가가 있어. 정말이라니까!”
천기수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조태수는 느낌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박상우는 개의치 않으려 노력하며 조태수의 병실로 향했다.
수술 경과는 최상이었고, 천기수의 말대로 조태수의 회복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수술을 직접 했던 만큼, 박상우는 조태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의 병실을 찾았다.
‘뭐야? 문도 열어 두고…….’
열려 있는 병실 문틈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박상우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저, 환자분…….”
박상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저런 병신 새끼! 저런 식이니까 걸리는 거 아냐?”
그 순간, 조태수의 음성이 텔레비전 소리를 넘어 들려왔다.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 목소리와 섞이는 걸걸한 목소리에 박상우는 곧장 문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 상판대기를 하고 꼬시면 넘어오냐? 그러니까 증거를 남기는 거야. 꼬라지 하고는! 노력해라, 자식아! 세상에 노력 없이 되는 게 있는 줄 알아?”
최근에 검거된 서울 서남부 살인 사건 용의자, 박도수에 관한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조태수였다. 그가 손가락질하며 이죽거렸다.
박상우는 숨을 죽이며 그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저 새끼 완전 초짜네. 그렇게 완력만 가지고 덤벼들면 여자들이 넘어와? 알아서 ‘나 잡아먹으슈’ 하게끔 만들어야 처리가 쉽지. 저렇게 강제로 하면 ‘나 잡아가라’ 하는 거 아냐? 병신 새끼!”
조태수는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들어 갈 듯 집중하며 박도수의 어설픈 범행을 힐난했다.
조태수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손마디를 눌러 우두둑 소리를 냈다. 아무도 없는 병실이지만, 마치 과시욕을 드러내듯 목을 빳빳이 세웠다.
“호구 새끼, 일단 최대한 젠틀하게 보이는 게 중요하지. 조금만 있어 보여도 침을 질질 흘리는 것들이야. 세상에 제일 쉬운 게 여자 꼬시는 건데……. 이런 것도 차에 딱 걸어 두고 하면, 믿음이 가잖아.”
조태수는 서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 뒤,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내려다봤다.
“그런 다음에…….”
이어진 그의 발언들은 마치 범죄 프로세스를 나열하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예전에 봤던 사건 일지와 같아. 이상하다, 아직 연쇄 살인은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
조태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든 말은 박상우가 회귀 전에 들었던,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을 고백한 조태수의 말과 대부분 일치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건 왠지…… 마치 자신이 했던 범행을 복기해 보는 것 같잖아. 그렇다면 설마……!’
박상우의 축 처진 입술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조태수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조태수 환자!”
박상우는 흠흠, 소리를 내고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냈다.
틱!
“아, 의사 양반! 어서 오슈. 인기척 좀 하슈!”
조태수도 헛기침을 하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 뭐, 괜찮습니다. 내 목숨 살려 주신 선생님인데요.”
“컨디션은 좀 어떠십니까?”
조태수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박상우의 시선은 여전히 서랍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날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좋습니다.”
“수술과 회복 경과 모두 매우 좋아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방금 서랍에 뭔가를 넣어 두시는 것 같던데요……. 그건 뭔가요?”
박상우는 넌지시 그의 의중을 떠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쇼.”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사식 같은 거 숨겨 두신 거면 안 됩니다. 아직은 아무거나 드실 수 없어요.”
“에이, 별거 아니라니까?”
조태수는 양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저도 한번 보여 주시면 안 되나요?”
박상우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턱짓으로 서랍을 가리켰다.
“그렇게 보고 싶어요?”
조태수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럴수록 괜히 더 궁금해지네요.”
박상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거, 보면 충격받을 텐데…….”
조태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박상우를 한번 쭉 훑어보았다.
“사진 한 장인데 충격받을 일이 뭐 있겠어요?”
“그래요?”
조태수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박상우를 응시했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서랍에 넣어 둔 게 사진인 걸 우리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알았을까?”
조태수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섬뜩한 미소가 조태수의 입가에 생겨났다.
‘아뿔싸! 실수다!’
박상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역시나, 상황 판단력이 빠른 조태수였다.
“그게 아니라, 하얀 종이가 얼핏 사진 같아서요. 그냥 뭐, 가족사진이나……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박상우는 대충 둘러댔지만, 이미 목까지 벌게진 모습은 숨길 수 없었다.
“아까는 먹는 거라면서요?”
“아, 그게…….”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요? 생선 훔쳐먹다 걸린 고양이처럼?”
“아닙니다.”
“싱겁긴. 자, 보슈. 이게 내 가족이나 다름없는 놈들이니까. 대충 반은 맞는 거죠. 안 그래요?”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쿠쿵!
조태수가 박상우에게 내보인 한 장의 사진.
조태수가 셰퍼드 몇 마리의 털을 골라 주며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이, 이건!’
사진을 보자마자, 박상우의 심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상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사진을 들고 있던 손가락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 멋진 사진이네요!”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은 박상우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그렇죠! 이 녀석들이 내게는 보물 같은 놈들입니다. 내 새끼들이나 다름없죠. 저는 이놈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조태수는 사진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