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
신의 메스-9화(9/249)
9화 양 갈래 머리 소녀 (4)
수술실.
은서는 스트레처 카에 실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수술 중’이라고 쓰인 녹색 등에 불이 들어왔다.
“서, 선생님! 우리 은서, 괜찮은 거죠?”
어느새 얼굴이 반쪽이 된 은서 엄마가 박상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응급조치도 잘했고, 저 교수님이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자십니다. 그나저나 은서 아버님에게도 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상우가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이이가 엄청 놀랄 텐데…….”
그녀는 정신없이 손가방을 뒤적거렸다. 부르르 떨리는 손을 보아하니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 전화기가 어디 있지? 분명히 여, 여기에 놓아뒀는데?”
여자가 바닥에 가방의 내용물들을 쏟아 늘어놓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다.
“서, 선생님!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을 두고 왔나 봐요! 어쩌죠?”
그녀가 넋 나간 표정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제 전화를 쓰십시오.”
박상우가 그녀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띠, 띠, 띠, 띠.
그녀가 정신없이 다이얼을 눌렀다.
“여, 여보! 우리, 우리 은서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이 마구 흔들렸다.
몇 시간 후.
‘수술 중’이라고 쓰인 등이 점멸되었다. 아직 마취가 깨지 않은, 퉁퉁 부은 은서와 함께 집도의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밝은 표정으로 볼 때, 수술이 성공적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장장 7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대수술!
박상우의 예상이 맞는다면 비장 절제술과 함께, 파열된 한쪽 신장을 떼어 내는 대수술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수술에 성공했나 보군!’
후, 집도의가 마스크를 벗어 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분명 안도의 한숨이 틀림없었다.
박상우 역시 지난날 수도 없이 반복했던 모습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은, 은서야!”
“서, 선생님! 우리 은, 은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은서가 누워 있는 스트레처 카가 나오자 은서 아빠가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그가 스트레처 카 기둥을 부여잡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잘 끝났습니다. 다행히 은서가 나이에 비해 잘 견뎌 주었습니다.”
집도의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떨리는 양손으로 스트레처 카를 잡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도 느릿하게 미소가 번져 갔다. 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집도의의 양손을 붙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집도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을 감았다.
“후후후, 저보다는 저기 있는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셔야 할 것 같군요.”
집도의, 김 교수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려 박상우를 가리켰다.
“네, 네. 애 엄마한테 이미 얘기는 들었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박상우를 쳐다보았다. 박상우를 보는 두 눈에 굵은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남자와 시선이 겹치자 박상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게 부모의 마음인가?’
박상우는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부모’의 마음이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어렴풋이 남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정말 우리 은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은서 아빠가 박상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저 친구가 정확하게 진단하는 덕에 은서, 살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은서가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아이라서 자칫 낭패를 볼 뻔했는데, 저 친구가 아주 노련하게 잘 해결했거든요.”
집도의 김 교수가 박상우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선, 선생님! 정말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면 내놓겠습니다.”
또르르, 그의 볼이 벌겋게 상기됐다. 그의 눈에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열기가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듯 삭막했던 박상우의 가슴에까지 와 닿는 듯했다.
사경을 헤매고 있던 딸을 살려 준 은인. 목숨인들 아까울까?
그 순간만은 그리 말한 게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니에요. 아버님! 이러지 마십시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서가 정말 잘 견뎌 냈습니다. 파열된 한쪽 신장까지 적출한 큰 수술이었을 텐데, 아이가 씩씩하게 견뎌 내 줘서 다행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서의 부모가 박상우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부여잡고는 놓을 줄 몰랐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기까지 하다! 너무 뜨거워서 심장이 간질거린다!’
박상우는 지난 20년 의사 생활 동안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화끈거리는 뺨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 * *
– 선생님,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수술이라뇨? 아까 다른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집에 가도 좋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수술입니까? 네? 네? 선생님! 이,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박상우의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둘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 제가 그랬습니까?
박상우가 그들을 향해 냉소적인 시선을 흩뿌렸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황한 부부가 눈을 깜빡거렸다.
– 아니, 제가 그랬냐고요? 응급실 한 선생이 그렇게 말했나 본데, 전 보호자들께 그런 말씀을 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아무튼, 바로 수술 들어갈 것 같으니까 수속이나 밟으세요.
박상우가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 네? 수술이라뇨? 그, 그러면 우리 상은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수술하면 살 수 있나요?
– 글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상우는 그들의 시선을 피한 채, 차트만 펼쳐 볼 뿐이었다.
– 최, 최선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망연자실한 표정의 부부.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술하실 건가요? 수술 동의 안 하신다면, 다른 병원으로 환자 트랜스퍼 하겠습니다. 빨리 결정하시죠.
그들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박상우가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 수술하면 우리 아이 살 수 있는 거죠? 그렇죠?
아이의 보호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박상우의 옷소매를 잡고 매달리며 그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 그건 수술을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장담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말의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 박상우. 그가 보호자의 손길을 뿌리치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 서, 선생님!
콰당, 두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 * *
난생처음 느껴보는 뿌듯함.
의사 생활 20년 만에 처음 느껴 본 뭉클한 감정과 감격스러운 듯 코끝이 시큰했던 것도 잠시였다. 불현듯 지난날이 떠오르자 박상우의 촉촉한 눈빛이 잦아들어 갔다.
‘제길!’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박상우가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이봐. 명성대 병원 인턴!”
그 순간 남자가 다가와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은서의 집도를 맡았던 새한 병원 집도의, 김 교수였다.
“네. 교수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야 뭐.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나저나 수술하는 내내 자네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잊히지 않았는데, 뭐 하나 묻지!”
“네, 교수님. 물어보시죠.”
“자네. 아이가 스플레닉 럽처에 네프론 럽처까지 겹쳐 복합적으로 문제가 생긴 걸 어떻게 알았지?”
김 교수가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코끝을 찡그렸다.
“그, 그건 아이가 혈뇨를 보이기도 했고…….”
“아니, 아니. 소아 청소년의 경우 혈뇨를 보이는 건 대부분 시스타이티스(Cystitis: 방광염)나 파이얼론프라이티스(Pyelonephritis: 신우신염)와 같은 염증성 질환 때문이야. 혈뇨가 보였다고 해도 곧바로 신장 파열을 의심할 순 없다고. 집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아니면 짚을 수 없는 진단이거든. 그런데 인턴인 자네가 정확히 진단했단 말이야. 이게 가능한 건가?”
“평소에 실사례를 공부해 뒀습니다.”
“사례? 아니, 단순히 사례만 가지고는 안 되지! 임상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해!”
김 교수가 더욱더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흠, 그게 말입니다.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 보니 알 수 있겠더라고요.”
박상우가 김 교수를 쳐다보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하하하, 뭐? 손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 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아, 맞다! 평소에 조 교수가 술만 마시면 내뱉던 레퍼토리잖아! 그 교수에 그 제자란 말인가.”
“과찬이십니다.”
박상우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다네. 자네 말이 맞아.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기적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내는 거니까.”
김 교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손이 아닌 가슴으로 환자의 상태를 읽는다……. 흐음, 오늘 자네를 보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난 그냥 조 교수의 넋두리쯤으로만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 말이 결국 오늘 같은 기적을 만들어 냈어!”
김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교수님!”
“아무튼, 자네가 정확히 진단하고 응급조치를 취해 줘서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네. 아무튼, 대단해! 결국, 이론적으로만 공부했어도 벌써 이 정도 안목이 생겼다는 건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먼. 허허허.”
김 교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어 자신의 이마를 두들겼다.
“사실, 아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네. 아버지는 건물 청소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계단에서 굴러떨어지셨거든요. 그때 비장이 파열되셨는데, 병원에 가시지 않는 바람에 수술 시기를 놓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은서를 보는 순간, 아버지가 떠올라 쉽게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박상우의 말에 김 교수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
“네.”
“아무튼, 오늘 은서를 살려 낸 주인공은 바로 자넬세. 앞으로도 열심히 경험을 쌓아 인술을 펼치는 좋은 의사가 되길 바라네. 내가 보기엔 자넨 앞으로 훌륭한 외과의가 될 가능성이 보여!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사람을 살려 내길 바라네.”
툭툭툭, 김 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박상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훌륭한 외과의? 사람을 살리는? 내가 과연 그런 의사가 될 수 있을까?’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박상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꽁꽁 얼어붙었던 그의 가슴에, 조금씩 온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의국.
“야, 야. 박상우! 넌 어제 무슨 삽질을 하고 다니면서 사고를 쳤길래 흉부외과 미친개가 눈에 불을 켜고 널 찾냐?”
박상우가 출근해서 의국에 도착하자마자, 천기수가 그에게 바짝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후후후, 선은 잘 봤냐?”
박상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곤 무심히 캐비닛을 열고 가운을 꺼내 몸에 걸쳤다.
“지금 그게 중요해? 막가자는 거냐? 미친개가 널 찾는다니까?”
“뭐. 볼일이 있나 보지.”
“하, 이 새끼!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용감한 거냐, 무모한 거냐?”
천기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선은 어땠냐니까?”
“말도 마라. 선보는 자리에 나와서 그렇게 많이 먹는 여자…… 아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제 무슨 사고를 쳤냐고?”
천기수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 곁가지! 나와 봐.”
쾅!
그 순간 의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흉부외과 바이스 치프, 장준호.
그가 박상우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