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0)
신의 메스-90화(90/249)
90화 살인마의 기억법 (7)
“개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박상우가 조태수에게 사진을 넘겨주며 말했다.
“당연하죠. 이놈들은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놈들이 아니니까요. 뭘 보든 입이 무거운 놈들이죠.”
조태수가 목젖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하하하 웃었다.
“그렇군요.”
“겨우 이런 사진 한 장 보려고 오신 건 아닐 테고, 뭐 이런 거라도 검사하려고 오신 거유?”
조태수는 손가락으로 혈압 측정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혈압을 좀 체크하러 왔습니다.”
“그럼 얼렁 하시지, 뭐 하슈?”
조태수는 옷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며 말했다.
“네.”
잠시 후, 박상우는 조태수의 혈압을 체크했다.
“125에 78이군요.”
“정상입니까?”
“네. 이제 많이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박상우가 차트에 혈압을 기록하며 말했다.
“언제쯤 퇴원할 수 있겠습니까? 병원에만 있으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서요. 내가 워낙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아주 답답해 죽겠수다.”
조태수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큰 수술이라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수술이니까요.”
“부작용은 무슨 부작용? 이렇게 멀쩡한데……. 아무튼, 선생님 덕분에 살았수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리다. 나중에 제 고향 상천에 내려오시면 보신탕 찐하게 대접할게요.”
조태수는 팔 운동을 하는 시늉을 하며 박상우를 응시했다.
“보신탕이요? 개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예뻐한다고 잡아먹지 말란 법은 없잖수?”
조태수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결국, 정말 내가 연쇄 살인마를 살린 꼴이 된 건가?’
그 모습에 박상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새 생명을 얻으셨으니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십시오.”
박상우가 한 말은 무언의 경고였다.
“암요! 어떻게 얻은 삶인데, 대충대충 살겠습니까?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조태수는 좋은 사람인 듯한 모습을 보이며 껄껄 웃었다.
“따로 말씀드리기 전까지 당분간 외출은 절대 안 되고, 사제 음식도 금물입니다.”
“그래야죠. 아이고, 이 귀여운 놈들! 빨리 병원에서 나가야 이놈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조태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럼 쉬십시오.”
“선생님도 들어가슈!”
* * *
박상우는 일과를 마치고 흉부외과 당직실에 들어와 불을 켰다.
간의 침대 위에 몸을 내던지듯 풀썩 누워 버린 박상우는 무척 지친 듯,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셰퍼드와 함께 찍은 사진!’
박상우는 눈을 감고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이미지메이킹, 자신의 숨기기 위해 찍은 사진.’
회귀 전에 읽었던 기사를 떠올리며 하나둘씩 조각을 맞춰 나갔다.
회귀 전 기억으론, 조태수는 실제로 개 농장을 경영했다. 하지만 농장은 오로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타깃을 정한 조태수가 여자들을 유인할 때 이 사진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개를 키우며 선하게 웃는 조태수의 사진은 희생자들을 심적으로 안심시켰고, 조태수는 그 점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손쉽게 유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태수는 자신의 차에 개들과 다정히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었다. 다시 말해, 조태수가 가지고 있는 사진은 잔인한 살인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쇄 살인의 귀공자’라 불린 테드번디, 게리 리지웨이와 같은 수법을 조태수가 도용한 것이었다.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박상우가 과거로 회귀한 것을 꿈에도 모를 그의 방심이었을까? 어쩌면, 사이코패스들이 가진다는 전형적인 우월감의 발로였을지도 몰랐다.
조태수는 결정적인 증거를 내보였고, 박상우도 마침내 그가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것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것도 있어. 아직 연쇄 살인의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을 텐데 이 사진은 뭐고, 아까 혼자 중얼거렸던 말은 뭐지?’
“설마……! 그렇다면?”
그 순간, 박상우는 스프링처럼 튕기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쩌면……! 조태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살인을 시작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박상우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듯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띠리리링~!
그 순간, 박상우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홍상태 형사의 전화였다.
“박상우입니다.”
“선생님!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이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사건 당일 오후 6시! 사건 현장에서 약 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병원에서 조태수가 치료를 받았더군요.”
“정말요?”
“워낙 행동이 특이했던 환자여서 간호사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조태수 사진을 내보이니까 바로 알아보던데요?”
홍상태 형사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다행이군요.”
“전부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일 시간 되시면 병원 앞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 * *
박상우는 당직이 끝난 아침,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야, 어디 가려고?”
“약속이 있어서 잠깐 나가려던 참이야.”
“어디 가는데? 나도 같이 가자.”
박상우가 나가려 하자, 천기수도 덩달아 따라나서려고 했다.
“아냐, 네가 따라나설 자리는 아니고…….”
“뭐야, 너 수상해? 여자 만나냐?”
천기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박상우를 흘겨봤다.
“여자는 무슨……. 고향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서 잠시 만나는 거야.”
“그래? 근데 그 고향 친구, 혹시 여자냐? 여자면 나 좀 소개해 줘.”
천기수가 히죽거리며 눈을 빛냈다.
“키 180에 몸무게는 한 100킬로쯤 나가는데, 그래도 만나 볼래?”
“잘 만나고 와라. 난 708호실 환자나 보러 가야겠다. 잘 다녀와!”
천기수는 차트를 챙겨 황급히 일어섰다.
“그래, 인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삐삐치고.”
“만고의 우정이나 잘 쌓고 와라.”
* * *
“선생님!”
홍상태 형사는 병원 인근의 카페에 미리 도착해서 박상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상태 형사는 박상우가 보이자마자 손을 흔들며 박상우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선생님 덕분에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행이네요, 도움이 되었다니.”
“당연하죠. 알리바이가 깨진 것만으로도 수사에 활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태수는 언제쯤 퇴원할 것 같습니까? 퇴원하는 데로 소환을 할까 하는데요.”
“아무리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병원에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일주일이라……. 병원 안에 있으니까 별일은 없겠죠?”
홍상태 형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몸을 함부로 움직일 만한 단계는 아니라서,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형사님.”
“말씀하십시오.”
“혹시 조태수가 전과가 있나요?”
“글쎄요. 어릴 때 소년원을 몇 번 들락날락한 것 말고 특별한 건 없어요. 왜 그러시나요?”
홍상태 형사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어쩌면 말입니다. 조태수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네? 또 다른 범죄요?”
박상우의 말에, 홍상태 형사는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으시다면 소림동부터 신로동 인근에 성범죄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 신로동이라고 하셨습니까?”
소림동에서 신로동까지는 약 10km가 떨어져 있었다. 조태수가 늦은 밤 유흥가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한 뒤, 퇴근하는 여자들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던 회귀 전 사건을 기반으로 한 박상우의 추론이었다.
박상우의 말을 듣자마자, 홍상태 형사는 눈이 크게 떠지더니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물이라도 좀 드세요.”
박상우는 컵에 물을 따라 홍상태 형사에게 건네주었다.
홍상태 형사는 박상우가 건넨 물을 단숨에 마셔 버린 뒤 말했다.
“신로동이라고…… 하셨죠?”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최근에 신로동 쪽에서 강간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노래방 도우미가 납치돼서 살해당했죠. 비공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홍상태 형사가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차로 여자를 유인해서 성폭행한 후, 교살했습니다. 피해자가 입고 있던 속옷을 이용해 결박하는 등,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40대 초반의 남자라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아서 난항을 겪고 있는 사건입니다.”
심각한 표정의 홍상태 형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런데, 무슨 근거로 조태수가 그 지역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조태수 환자의 병실에서 우연히 이걸 발견했어요.”
박상우는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홍상태에게 내밀었다.
[룸싸롱 천국, 담당 써니 : 022XXX]박상우가 홍상태에게 건넨 명함은 신로구 신로동에 위치한 룸살롱의 광고지였다.
“이게 신로동에 있는 곳이라는 거죠?”
“네. 조태수 환자는 평소에도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성적 희롱이 잦았고, 거친 행동이나 말투로 볼 때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때마침 형사님이 조태수를 용의자로 보고 있다고 하셔서 유심히 살펴보던 중, 병실 바닥에 떨어진 이 명함을 발견했습니다.”
조태수가 저지른 모든 살인사건의 패턴은 대부분 유사했다. 따라서, 만약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존재한다면 그 역시 같은 패턴이었을 것이라는 게 박상우의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충분히 근거 있는 말씀이네요. 조태수라면,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순 없죠.”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형사님께서, 꼭 범인을 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잡아야죠. 더 이상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맞습니다, 형사님! 반드시 조태수의 양손에 수갑을 채워야 합니다!’
“꼭 그래야죠.”
“그나저나, 우리 의사 선생님은 경찰을 하셔도 아주 기가 막혔을 것 같네요. 눈썰미가 저보다 나으십니다!”
엉켰던 실타래가 풀린 듯, 홍상태 형사가 하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 * *
홍상태 형사와 만나고 일주일 후, 조태수 퇴원일이 다가왔다.
완전히 회복한 조태수는 옷가지들을 챙기며 퇴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때, 박상우는 한창 준비 중이던 조태수의 병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슈!”
한결 밝아진 조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퇴원이시죠?”
“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조태수는 고개까지 숙여 가며 인사했다. 예의를 갖춘 모습에서 무척 고무된 감정이 느껴졌다.
“다 잘생긴 우리 의사 선생님 덕분이죠. 나중에 꼭 연락 한번 주쇼. 찐하게 한잔하게요.”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천국에 데려가 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천국…… 뭐? 지금 뭐라고 하셨죠?”
“아, 여기요. 이곳이 꽤 유명한 곳인가 보죠?”
박상우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조태수에게 건넸다.
“이, 이걸 어떻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보아하니, 천하의 사이코패스 조태수도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병실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환자분 거 아니십니까?”
“아, 네. 길거리에서 나눠 주길래……. 이게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조태수는 신경질적으로 명함을 찢어 버렸다.
“환자분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박상우의 입술은 약간의 조롱기를 머금고 있었다.
“뭐, 뭐요?”
“그 사진을 보고 나면, 정말 여자들이 안심하고 환자분의 차를 타던가요?”
박상우는 손가락으로 개와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뇨. 좀 궁금해서요. 지난번에 혼자 중얼거리시길래요.”
“너, 이 새끼!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야? 내 방을 훔쳐봤다는 거야?”
조태수는 토마토처럼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