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2)
신의 메스-92화(92/249)
92화 복마전 (2)
윤상부 교수는 신정국과 박상우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렀다.
“어서 와, 앉지.”
연구실은 마치 국회의원 선거 사무실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고, 옷소매를 둘둘 말아 올린 윤상부 교수가 두 사람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네.”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
윤상부 교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충 감은 잡고 있습니다.”
박상우와 신정국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답했다.
“다음 주면 흉부외과 수장을 선출하는 날이야. 이번에도 반드시 조현오 교수가 되어야 해.”
윤상부 교수는 시도 때도 없이 수련의들의 조인트를 가격했던 열혈남아이자, 흉부외과의 게슈타포였다.
‘그것도 몰라? 이래놓고 네가 대 흉부외과의 써전이라 할 수 있는 거야?’
깐깐하기로 소문난 흉부외과에서도 꼬장꼬장하기로는 넘버원이었다. ‘뜬금캐’라고 불릴 정도로 질문을 퍼붓고, 답하지 못할 땐 불같은 성정을 곧잘 드러내곤 했다. 멀쩡한 정강이의 수련의가 없을 정도였으니, 윤상부 교수는 수련의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불같은 성정을 보인 뒤, 힘들어하는 수련의들을 진심으로 챙기는 따뜻함을 지닌 상남자이자 마초이기도 했다. 선비 같은 조현오 교수와 대장군 같은 이미지의 윤상부 교수. 두 사람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윤상부 교수는 조현오 교수의 직속 후배이면서 든든한 최측근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조 교수님께서 당연히 우리 CS를 맡으셔야죠.”
신정국과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윤상부 교수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윤상부 교수의 심각한 표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현오 교수의 재임은 기정사실이었다. 인품이나 실력으로 견주어 볼 때, 조현오 교수와 대적할 만한 카운터 파트너는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병원 최충현 교수의 약진이 이뤄졌다. 막강한 재력을 등에 업은 최충현 교수가 전방위 로비를 무차별적으로 펼친 것이다. 언변과 화술이 좋은 최충현 교수의 로비는 조금씩 타과 교수들의 환심을 샀고, 조현오 교수와의 격차는 최근 들어 종이 한 장 차이로 좁혀진 상태였다. 이제 조현오 교수는 연임을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전반적인 판세는 최충현 교수가 조금씩 조현오 교수를 앞서가는 판세였다.
“저희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해 주시면 저희도 있는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흠, 일단 외과 쪽은 절대적으로 조현오 교수를 신임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고, ENT(이비인후과)나 URO(비뇨기과)는 어차피 버린 패인데, 문제는 OBGY(산부인과), PAIN(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이란 말이야……. 거긴 우리 쪽도, 그렇다고 최 교수 쪽도 아니거든. 소문에 의하면 살짝 최충현 교수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정보가 있어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도 가만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잖아. 뭐라도 해 봐야지!”
윤상부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최충현 교수와는 동기동창이자 일생일대의 라이벌이었기에, 윤상부 교수는 자존심 싸움이기도 한 이번 과장 선출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하지만 접대나 향응 같은 저급한 방법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정의로운 신정국 교수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마디였다.
“물론이야. 최 교수가 요즘 부쩍 타과 교수들과 모임을 많이 가진다는 소문이 있지만, 나 역시 최 교수 같은 비열한 짓을 하고 싶진 않아.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겨야지.”
“맞습니다. 선거판을 진흙탕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조 교수님의 인품, 그리고 실력을 무기로 싸워야 합니다.”
박상우 역시 신정국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자네들을 부른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일단 자네들도 틈틈이 그쪽 사람들을 만나서 동태를 좀 살펴봐. 아, 그러고 보니 신정국 선생은 OBGY(산부인과) 쪽과 친분이 좀 두텁지 않아? 그쪽 교수들이 자네 부친인 신 교수님의 제자들이기도 하고. 아마 자네가 간다면 잘 먹힐 거야. 신 선생이 가서, 조현오 교수님이 아니면 안 되는 사항들을 하나둘 조목조목 설명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 선생은 PAIN(마취통증의학과)하고 친분이 두텁지? 아무래도 그쪽은 박 선생이 신경을 쓰는 게 좋겠어. 난 틈틈이 집토끼들을 단속할 테니까.”
마치 국회의원 선거 전략 회의를 하는 듯한 심각한 분위기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힘들 내자고! 최충현 교수가 과장이 돼서는 안 돼. 그 인간, 야망은 보통이 아니야.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흉부외과가 아니라 병원 전체를 팔아먹을 인간이지. 절대로 그런 사람에게 우리 흉부외과를 맡겨선 안 돼.”
윤상부 교수는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불어 신정국과 박상우 역시, 눈을 빛내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 * *
최충현 교수 역시 가만히 수수방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또한 측근인 펠로우 정현웅과 레지던트 4년 차 박수찬을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들였다. 신정국, 박상우와 맞불 작전을 벌이겠다는 의도였다.
“아! 어서 와. 다들 앉아!”
“네, 교수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최충현 교수는 누군가와 하던 통화를 급히 멈추며 말했다.
“두 사람, 내가 진심으로 믿어도 되겠나?”
최충현 교수는 두 사람이 앉은 소파 쪽으로 다가가서 맞은편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야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는 최충현 교수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병원 최고의 실세이자 동성동본인 최상엽 이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입장이었기에, 최충현 교수는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언제나 교수님을 따를 겁니다!”
“좋아! 이번에 이비인후과 정 과장과 비뇨기과 황 과장이 우리 쪽으로 돌아선다고 하면서,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유리한 형국이야. 우리가 살짝 앞서가고 있거든.”
최충현 교수는 오른손을 들고는 검지와 엄지 사이로 작은 간격을 만들며 말했다.
한껏 고무된 표정의 최충현 교수는 구두를 바닥에 쓱쓱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몸을 사리려면, 자기들도 병원에 실세가 누군지는 감을 잡고 있어야겠지. 그래서 이번에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아선 모양이더군.”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언제 변심할지 모르는 박쥐 같은 종자들이기도 하지.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최충현 교수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한 채로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알겠습니다.”
“이번엔 반드시 내가 과장 자리에 오를 테니까, 자네들도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충현 교수는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자신의 턱을 받치며 말했다.
“이번에 교수님이 선출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확신에 찬 박수찬이었지만, 반대로 정현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확인했는지, 최충현 교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래.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표 단속 확실히 하자고! 정 선생이 주도해서 술자리도 좀 마련하고, 박수찬 선생은 4년 차들 사이에 신임이 두텁잖아. 그 능력을 좀 발휘해 보라고.”
최충현 교수는 열을 올리며 그들을 독려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게 아니잖나? 내가 과장 자리에 오르면 자네들도 확실한 동아줄을 잡는 거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 줄 알아?”
최충현 교수는 팔을 걷어붙이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박수찬과 비교하면 정현웅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자네는 목소리가 왜 그런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눈치 빠른 최충현 교수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아, 아닙니다.”
“걱정 마. 이번 선거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이기니까!”
최충현 교수는 정현웅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네, 교수님.”
“좋아! 일단 박수찬 선생은 그만 나가서 일 보고, 정 선생은 잠시 나 좀 보세.”
최충현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두 사람을 보곤, 정현웅을 멈춰 세웠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박수찬이 밖으로 나가자 최충현 교수는 문단속을 철저히 한 후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어느새 흥분한 표정을 지운 최충현 교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현웅을 응시했다.
“자네, 요새 왜 그래? 왜 매가리 하나 없이 비실비실하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일 있는 거야?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말이야…….”
최충현 교수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요즘 자넬 보면 완전히 얼이 빠져 있지 않나? 지난번 수술 때는 넋 놓고 있다가 크게 사고 칠 뻔하기도 했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정현웅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왜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다니는 거냐고, 못난 사람처럼! 지금 저쪽에 있는 신정국이나 박상우는 어떻게든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는데, 내 최측근이라는 자네는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으니 내가 답답해서 그래!”
“…….”
“가뜩이나 윤 교수 그 인간이 설치고 다녀서 신경 거슬리는데 말이야.”
최충현 교수는 심줄이 툭 불거진 목을 한 채, 코를 벌름거리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고 역정을 냈다.
“죄송합니다.”
“뭐야? 자네는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나? 정신 바짝 차리라고. 이번에 내가 당선 안 되면, 자네들도 줄줄이 꼬이는 거야. 알아들어?”
“명심하겠습니다.”
“아니, 현웅아. 우리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죽 쒀서 개 주는 꼴 되는 거야. 지금까지 네가 날 위해 헌신한 걸 모를 사람은 아니잖니, 내가? 힘내자, 현웅아. 잘될 거다.”
최충현 교수는 조금 전과 달리 정현웅을 어르고 달래듯 말했다.
“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 아니냐? 그나저나, 그거 관리는 철저히 하고 있는 거지?”
최충현 교수는 혹시 누군가 듣고 있을까 싶어 주변을 살피곤,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정현웅에게 물었다.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
최충현 교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정현웅을 흘겨봤다.
“아…… 네. 장부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현웅은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앞으로 네 출셋길을 열어 줄 황금 돼지라는 걸 하루도 잊으면 안 돼! 뼈 빠지게 고생해서 너를 의사로 만들어 주신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지금이야 이것저것 걸리는 게 있어서 신경을 많이 못 쓴다만, 어느 시점이 되면 네 어머니가 편하게 장사하실 수 있도록 한몫 단단히 챙겨 주마. 넌 나만 믿고 따라와.”
그저 허울 좋은 사탕발림이었다. 정현웅은 단순하지만 입이 무겁고 우직한 성격이었다. 게다가 어려운 가정 형편상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출세를 갈망하고 있었기에, 최충현 교수가 출세를 빌미로 정현웅을 노린 것이었다. 사실 최충현 교수는 그를 후계자로 생각지도 않았고, 때에 따라서는 적당한 시기에 미련 없이 정리할 대상이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는 하지만, 정현웅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잘못되면 너나 나나 다 죽는 거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해. 알겠어?”
최충현 교수가 몸을 정현웅 쪽으로 잔뜩 기울여 소곤거렸다.
“알겠습니다.”
“어깨 좀 쭉 펴고 다니고! 앞으로 우리 흉부외과를 이끌어갈 최고의 인재가 이렇게 기가 죽어서야 쓰나! 앞으로 자네가 내 뒤를 이어야 할 것 아닌가?”
최충현 교수는 목젖이 보이도록 큰 소리로 웃으며 정현웅의 등을 격하게 두드려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바쁠 텐데 이만 나가서 일 봐.”
최충현 교수는 정현웅 향해 손을 내저으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고, 정현웅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최충현 교수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저런 병신 같은 새끼! 레지던트 때만 해도 빠릿빠릿하고 제법 독기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병든 닭 새끼처럼 비실비실한 거야? 내가 이런 놈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하나?”
정현우가 방을 나선 것을 확인하자마자, 최충현 교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