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4)
신의 메스-94화(94/249)
94화 복마전 (4)
흉부외과 병동 옥상.
“선배님, 자료는 준비되었습니까?”
“그, 그래. 상우 네 말대로 하긴 했는데…….”
서류 봉투를 쥐고 있는 정현웅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리 주십시오.”
“자, 잠깐만! 미리 약속 하나만 해 줘.”
박상우가 서류 봉투를 잡으려 하자, 정현웅이 서류 봉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약속이요?”
“나, 나는 아무런 문제 없는 거지? 나는 최 교수님이 하라는 것만 했을 뿐이야. 네 말대로 난 10원짜리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고! 게다가, 최 교수님이 주신 돈도 한 푼도 안 쓰고 놔뒀고…….”
정현웅은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 보였다. 통장에는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된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최 교수님이 이번 일로 조사를 받게 된다면 선배님도 필연적으로 조사를 받으실 거고, 그간 받은 향응의 책임은 어쩔 수 없이 지셔야 할 겁니다.”
“그거야…… 이미 각오하고 있어.”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하, 하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정도 일로 의사직을 관둘 필요는 없겠지? 안 그래? 시장에서 노점상 하시는 우리 엄마는 아들이 서울에서 의사가 됐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난 절대로 무너지면 안 돼, 상우야!”
정현웅은 떨리는 목소리를 한 채, 모든 것을 박상우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 교수님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공익 제보자의 신분이라면 정상 참작도 되실 겁니다. 그래도 문제가 된다면, 명망 있는 변호사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정말이지? 나, 정말 상우 너만 믿으면 되는 거지?”
박상우에게 영혼까지 저당 잡힌 정현웅이었다.
“네. 하지만, 이 사건이 터지면 최 교수님과의 관계도 끝이 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지. 솔직히 최 교수님을 모시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상우 너도 자료를 보면 잘 알겠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거든. 게다가 요즘 와서 느끼는 거지만, 최 교수님은 날 그렇게 신뢰하는 것 같지도 않아.”
박상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 정현웅은 박상우에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넘겨주었다.
“선배님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셔야 해요. 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래. 난 너만 믿는다, 상우야!”
정현웅이 박상우의 양손을 꽉 부여잡으며 말했다.
* * *
‘이, 이럴 수가…….’
그날 밤, 흉부외과 당직실에서 정현웅이 넘겨준 자료를 보고 있던 박상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봉투에 담긴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삼진제약에서 받은 리베이트 4억, 의료 기기 업체 메디메디 T&C로부터 받은 뇌물이 10억, 심지어 흉부외과 병동 하늘 정원 매점을 허가해 주는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만도 5천만 원!
흉부외과의 살림을 도맡아 했던 그였기에, 뇌물 및 리베이트 액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돈이 되는 곳은 어디든 빨대를 꽂아 댔던 최충현 교수였다.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회귀 전 역사처럼 100억대가 넘는 최충현 게이트가 열렸을 것이 분명했다.
‘이쯤에서 도둑고양이의 목숨 줄을 끊어 놔야겠어!’
비자금 장부와 증거 자료를 확인한 박상우가 눈을 빛냈다.
* * *
흉부외과 과장 선거를 하루 남긴 시점, 박상우는 판도라의 상자를 들고 최충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자네가 여길 무슨 일이야?”
최충현 교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신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현오 교수의 애제자인 박상우가 달가울 리 없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난 자네한테 들을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좀 바쁘거든.”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린다고? 흉부외과 치프면 손발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데, 자넨 한가한가 봐?”
최충현 교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켠 뒤, 서 있는 박상우가 잘 볼 수 있도록 모니터를 비스듬히 돌려 게임 화면을 띄웠다.
“내가 지금 학회 준비하느라고 바쁘거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뭐, 그러시던가! 뭐야, 씨! 왜 안 죽어?”
최충현 교수는 마치 박상우가 보란 듯이 키보드를 탁탁 쳤다. 그러곤 박상우에게 앉으라는 소리도 하지 않은 채, 컴퓨터 게임에 열중했다.
30분,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
“이제야 깼네!”
최충현 교수는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양팔을 추켜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박상우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고, 팔, 다리, 허리야! 드디어 끝났네. 벌써 5시?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최충현 교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난 오늘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최충현 교수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외투를 꺼내 입었고, 의도적으로 박상우를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며 조롱했다.
“5분이면 됩니다, 교수님.”
2시간 만에 입을 연 박상우는 뒤로 숨겨 두었던 서류 봉투를 최충현 교수가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자네도 참 답답하구먼. 조 교수가 자네한테 일을 안 주나? 여기서만 벌써 몇 시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야. 어떻게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과의 치프가 된 거지?”
최충현 교수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못마땅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잠깐이면 됩니다, 교수님.”
하지만 박상우는 미동도 없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여간 자네도 진상 스타일이구먼. 눈치 없는 건 누구랑 빼다 박았어. 빨리 용건만 말해!”
최충현 교수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바쁘다고 하셨으니,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흉부외과 과장 선거에 나오지 말아 주십시오.”
박상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최충현 교수를 응시했다.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야?”
최충현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입고 있던 외투까지 벗어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말씀드리겠…….”
“집어치워, 새꺄! 이 새끼가 돌았나?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야? 정신 나갔어?”
최충현 교수는 박상우의 말을 매몰차게 잘라 버리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모양새가 빠지지 않게, 스스로 나오지 말아 주십시오.”
“이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너 이 새끼, 거기 앉아 봐.”
최충현 교수는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너 이거, 조 교수가 시키드나?”
최충현 교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며 질문했다.
“뭐야, 이건 또 왜 이래?”
최충현 교수는 라이터가 틱틱 소리만 날 뿐 켜지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흔들어 댔다. 그러자 라이터가 켜졌고, 박상우는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통해 담뱃불을 붙이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조 교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 그럼? 윤 교수가 보낸 거야? 나보고 나오지 말라고?”
“아닙니다. 윤 교수님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박상우는 최충현 교수의 말을 또박또박 받아쳤다.
“그러면 뭐야, 새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찾아와서 교수를 협박해?”
최충현 교수는 박상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바닥에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던지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물러나 주십시오.”
“꺼져, 이 개새끼야! 이게 오냐오냐하니까, 어른 상투를 틀어쥐려고 하네? 너 이 새끼, 오늘부로 병원에서 나가고 싶어? 어?”
박상우의 멱살을 움켜쥔 최충현 교수는 흥분했는지, 흰자위를 보이며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진정하시고 이것부터 확인하시죠.”
박상우는 가져온 봉투를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
“이게 뭐야, 새꺄!”
“확인해 보시면 압니다.”
“이 새끼가 뭘 쳐 가지고 와서 약을 팔려는 거야?”
“…….”
그러나, 박상우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봉투만 가리켰다.
“날 상대로 장난질하는 거면, 오늘 이 방에서 못 나갈 각오는 해야 할 거다.”
최충현 교수는 씩씩거리며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봉투 안에 있던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최충현 교수의 눈동자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연구실 안은 어느새 최충현 교수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고, 툭 튀어나온 눈은 이제 눈꺼풀조차 깜빡거리지 않고 있었다.
그의 붉어진 얼굴이 하얗게 변하기까진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이, 이게 뭐야?”
서류를 들고 있던 최충현 교수의 손이 마구 떨렸다.
“저보다는 교수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그러니까 이, 이걸 어디서 난 거냐고!”
최충현 교수의 입술과 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가 그런 것까지 교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까? 지금은 이 문서의 출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교수님은 그런 질문하실 처지가 아니십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물어보셔야죠.”
박상우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호했다.
“미…… 미친놈! 네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장난질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최충현 교수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서류 뭉치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설마 그게 원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너, 너 이 새끼!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이젠 그만하시죠.”
최충현 교수가 주먹을 들어 올리자, 박상우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지금부터 제 말씀 새겨들으셔야 할 겁니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교수님께서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수직을 사퇴하시고, 지금까지의 잘못을 자수하십시오. 아니면…… 이 모든 서류는 경찰서에 접수될 겁니다.”
“뭐…… 뭐야?”
최충현 교수는 잡힌 손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써 봤지만, 그럴수록 박상우도 팔에 힘을 주었다.
“제자로서 교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후보는 자진해서 사퇴하시고, 자수하십시오. 그 외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제야 최충현의 손목을 놓은 박상우는 냉정하게 발길을 돌렸다.
“자, 잠깐만! 박상우, 아니 박 선생! 진정하고 나랑 얘기 좀 하게나!”
기회주의자답게 태세 전환이 빠른 최충현 교수였다. 그는 돌아서려는 박상우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어떡하죠? 제가 약속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아니! 잠시, 잠시면 된다고!”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지, 최충현 교수는 연신 입술에 침을 둘렀다.
“좋습니다. 5분 정도는 시간이 되겠군요. 말씀하시죠.”
시간을 확인한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솔직해지자. 네가 이런 걸 가지고 왔을 때는 무슨 목적이 있었을 것 아냐? 돈이야? 아니면 병원에서의 입지? 뭐야, 말만 해라.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최충현 교수로선 전세가 역전된 상황이었고, 어떻게 하든 박상우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최충현 교수에겐 자존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말 뭐든지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 그럼! 당연하지! 돈, 권력, 출세,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다 해결해 줄 수도 있어. 솔직히 흉부외과 의사 하나 해서 얼마나 벌겠어? 나중에 너도 개원해야 할 것 아냐? 내가 도와줄게.”
“알겠습니다. 그러면 더러워진 그 돈, 좋은 일에 쓰십시오. 전부 자선 단체에 기부하세요.”
“기, 기부? 그, 그래.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준다면 네 말대로 모두 기부할게. 암, 하고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충현 교수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래, 뭔가? 뭐든 말해 보게.”
최충현 교수는 입술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고 느끼며 황급히 물었다.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자수하십시오. 그 길만이 교수님께서 살 수 있는 길이 될 겁니다!”
박상우는 최충현 교수의 팔을 뿌리치며 문을 쾅 닫고 매몰차게 나갔다.
“개, 개새끼!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으아아악!”
최충현 교수는 거칠게 책장을 쓰러뜨리며 절규했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