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6)
신의 메스-96화(96/249)
96화 왕자와 거지 (2)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한 선생님 우리 조금 이따 다시 만나요!!”
그러나 천기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부담스럽긴……. 설레는 거지!”
그러곤 천기수가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너 진짜 병이 심각하구나? 가서 거울이나 좀 봐라. 아무리 바빠도 머리는 좀 감고 다니자. 네 머리에서 발 냄새가 나.”
천기수는 손바닥으로 자기 머리를 몇 번 문지르더니 코에 가져다 댔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구수하니 괜찮구먼.”
“우웁. 하여간 더러운 짓은 혼자 다 하는구나. 내가 졌다, 졌어!”
그 모습에 박상우가 혀를 내둘렀다.
“그건 그렇고, 빨리 병실로 가 보자.”
“가 봐야지. 그 병실 환자가 삼원전자 부회장이라면서?”
농담도 잠시, 천기수는 환자가 삼원전자 부회장이란 사실에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보더라. 병원도 초비상이 걸렸어. 오죽하면 조현오 교수님도 모든 수술 일정을 취소하고 대기하신단다.”
“와, 진짜 돈이 무섭기는 무섭구나. 진짜 돈이든 권력이든, 뭐든 간에 둘 중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니까? 그래야 대우를 받는 곳이 바로 이 헬조선이지. 푸우우…….”
천기수는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흩뜨려 눈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삼원 그룹의 후계자답게, 어느새 도착한 1301호 앞에는 경호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큰 키에 단단한 체구,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의 모습은 흡사 조폭과도 같았다.
“야, 저 사람들 깍두기냐 뭐냐? 그 조폭들이랑 생긴 게 도긴개긴인데? 오히려 망치 아저씨가 더 선해 보여!”
박상우도 천기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경계가 삼엄한 게, 재벌은 재벌인가 보다.”
박상우는 경호원에게 먼저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었다.
“1301호 환자분 담당 의사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던 경호원이 나와서 박상우와 천기수를 정중히 안내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병실 내부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소파와 대형 TV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은은한 조명에 아로마 향까지 풍기는 게, 마치 호텔 스위트룸을 방불케 할 만큼 화려했다.
‘이 병실이 이렇게 호화스러웠나? 지금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
회귀 전에는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낯설진 않았지만, 회귀한 뒤로는 구경도 해 보지 못했던 곳이었기에 박상우는 새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야, 여기 하루 입원료가 이백오십만 원이래. 내 월급보다 20만 원이나 많아, 제길.”
천기수가 박상우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그가 입을 삐죽거리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병실 안에서는 두 사람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
“그러게요. 요즘 회사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습니다. 이참에 푹 쉬면서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교수님.”
어색함 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은 이미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처럼 느껴졌다.
“박 선생, 천 선생! 어서 들어와.”
안으로 들어서자, 방윤석 부회장과 대화 중인 조현오 교수가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조현오 교수는 뒤돌아 두 사람을 확인하곤 손짓하며 불러들였다.
“네, 교수님.”
“네.”
“부회장님, 앞으로 부회장님을 모실 선생님들입니다. 뭐 해? 자네들도 인사하게나.”
“안녕하십니까, 박상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천기수입니다.”
두 사람은 득달같이 달려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방윤석이올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
방윤석은 침대에서 내려와 환하게 웃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호랑이의 눈을 가졌다!’
소탈한 모습의 방윤석 부회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서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강렬한 방윤석의 눈빛에 박상우가 몸을 움찔거렸다.
“오전에는 천 선생이, 오후에는 박 선생이 담당할 예정이니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두 사람에게 말씀하십시오.”
“교수님, 제가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는 건 아닙니까?”
방윤석 부회장의 말에 조현오 교수가 천천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러라고 VVIP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의치 마시고 편안하게 생각하십시오.”
“아, 그런가요? 제가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있는 동안만은 친하게 지냅시다. 가끔 제 말동무도 좀 해 주시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예전하고는 다르게 우리들도 젊은 감각, 새로운 트렌드를 이식해야 합니다.”
방윤석은 박상우와 천기수에게 골고루 시선을 두며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네. 당연하죠.”
박상우와 천기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렸다.
의외로 소탈한 방윤석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인사를 마친 뒤 박상우와 천기수는 병실에서 나왔다.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천기수는 박상우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의외로 소탈하고 겸손하지 않냐?”
“그러게. 굉장히 권위적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
천기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워낙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라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그냥 우리 동네 슈퍼 아저씨 같아.”
“언론 노출을 꺼린다고 해서 외모 콤플렉스라도 있나 했더니, 멀쩡하더라.”
“넌 이제 어디로 가?”
“일반 병동에 가 봐야 해. 거기 604호에 카디악 페일리어(Cardiac Failure: 심부전증) 환자가 입원했거든. 그 환자를 맡았어.”
박상우가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휴, 무슨 극과 극 체험이냐? VVIP실에서 6인실 일반 병동이라…….”
“이게 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아니냐. 난 먼저 가 볼게.”
“그래. 난 의국으로 가 보련다. 요즘 1, 2년 차 놈들이 너무 빠진 건지, 흐물흐물하더라. 아무래도 손 마사지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소리지.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아.”
천기수가 뼈마디를 눌러 우두둑 소리를 냈다.
“살살해. 넌 예전에 더 심했어.”
“누가? 내가? 에이, 그럴 리가. 아무튼, 너도 오늘 하루 존나게 잘 버티고, 살아남으면 밤에 보자, 친구야.”
천기수는 박상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 수고해.”
박상우가 천기수의 뒷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방윤석 부회장의 잔존 수명: 2년 3개월 21일 12시간 34분 19초, 18초, 17초…….]조금 전 방윤석 부회장의 이마에 또렷이 남겨져 있었던 붉은 숫자.
하지만 전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방윤석 부회장님은 2년 후에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방윤석 부회장이 겪을 불의의 사고는 워낙 유명했던 사건이었기에, 회귀한 박상우는 이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상우가 관여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말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방윤석 부회장의 차트를 넘겨보던 박상우가 일반 병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 * *
천기수의 말처럼, 일반실은 VVIP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고급스러운 호텔 라운지 같았던 VVIP실과는 달리, 마치 도떼기시장에 온 것 같기도 했다.
링거를 머리에 올린 채 묘기를 부리듯 걸어가는 환자, 휴게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환자 등, 환자들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특히나 음식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기분 나쁜 냄새가 병동을 가득 채웠는데, 집에서 싸 온 음식을 휴게실에서 먹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조금 전 VVIP실과는 극과 극의 모습이었다.
박상우는 천천히 604호, 신창균 환자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6인실 병동은 명성대학교 병원 입원실 중 가장 많은 환자가 입실해 있는 곳이었다. 병실 중앙에 작은 TV와 소형 냉장고가 놓여 있었고, 양쪽으로는 베드가 세 개씩 있었다. 보호자들까지 합치면 10여 명의 사람이 종일 북적거리는 곳이었지만, 의료 보험을 적용받으면 하루 입원료가 1만 원 남짓이었기에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보다 두 배는 넓은 곳에 한 사람이 입원해 있는 VVIP실도 있는데 말이다.
박상우가 침대맡의 이름표를 살펴보며 신창균을 찾았다.
“어디 가셨나?”
왼쪽 중앙의 베드에서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으나, 그는 자리에 없었다.
‘부인인가?’
“혹시, 보호자분 되세요?”
대신, 하단에 있는 간이침대를 펼쳐 놓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껌을 경망스럽게 씹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아, 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신창균 환자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잠깐 전화 좀 하고 온다면서 나갔어요. 금방 들어올 거예요.”
여자는 여전히 껌을 씹으며 박상우의 몸을 훑어보았다. 사람이 있든 없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저 여자 저거, 진짜 웃기는 년이네?”
여자는 박상우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박상우의 코끝을 자극했다.
박상우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왠지 모를 불쾌감에 박상우는 되도록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알겠어요.”
여자는 다시 간이침대에 누워 팔로 머리를 괴고는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노숙자들이 널브러진 서울역 지하철 보도를 빠져나오듯, 박상우가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오던 그때, 힘없이 터벅터벅 604호로 걸어 들어오는 한 남자가 박상우의 시선에 걸렸다.
‘뭐, 뭐야? 방윤석 부회장님께서 여길 왜……?’
박상우는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깜빡거렸다. 방윤석 부회장과 놀랍도록 흡사한 외모의 남자였다. 아니, 흡사한 정도가 아니었다. 박상우가 아무리 봐도 그는 방윤석 부회장이었다.
박상우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걸어오던 남자는 박상우를 힐끗 봤지만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자, 잠깐만요.”
박상우는 병실로 향하던 남자를 불러 세웠다.
“네? 무슨 일이신지…….”
그는 자신을 부른 박상우를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방윤석 부회장님이 왜 여길 오신 거야? 이곳에 오실 이유는 하나도 없을 텐데…….’
“부회장님께서 여길 어떻게 오셨습니까?”
“부회장이요? 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남자가 자신을 가리키며 미간을 좁혔다. 남자의 반응에 박상우가 되레 당황했다.
“……방윤석 부회장님 아니십니까?”
“뭐요? 방윤석? 그게 누군데요?”
박상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부회장님, 저 모르시겠어요?”
“의사 선생님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그나저나, 왜 자꾸 나를 부회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박상우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 순간, 박상우는 남자의 흐리멍덩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방 부회장의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잔뜩 부어 푸석푸석한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박상우도 그제야, 남자가 방윤석 부회장과 다른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전체적인 외모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비슷하지만, 눈빛은 확실히 달라! 이 사람은 방 부회장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 있지……?’
“아, 네. 죄송합니다.”
박상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막고 있던 길을 터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박상우도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뒤를 따라서 다시 604호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 신창균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