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7)
신의 메스-97화(97/249)
97화 왕자와 거지 (3)
남자는 곧 ‘신창균’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침대로 올라가 몸을 눕혔다. 그가 신창균이었다.
‘진짜 놀랍도록 닮았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신창균은 얼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체형까지도 방윤석 부회장과 똑같았다.
“후…….”
박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신창균 환자입니까?”
“네. 제가 신창균이올시다.”
조금 전에도 느꼈지만, 신창균은 방윤석 부회장과 목소리까지 비슷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창균 씨 담당 의사 박상우입니다.”
“그러시군요. 아이고, 그런 줄도 모르고 좀 전에는 제가 실례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신창균도 그제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혹시 형제분은 없으십니까? 쌍둥이나, 뭐 그런…….”
지금의 상황에서 박상우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아뇨. 제 위로 누님만 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그 순간, 신창균의 이마 위로 붉은 숫자가 나타났다. 깊게 팬 주름 위로 일렁거리는 건 그의 잔존 수명이었다.
[잔존 수명: 33일 14시간 43분 31초, 30초, 29초…….]‘뭐야? 이 사람의 잔존 수명이 왜 보이는 거지? 우연인가?’
그러나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외모와 체형, 목소리까지 거의 같은 두 사람.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잔존 수명이 동시에 박상우의 눈에 보인 것이다.
방윤석 부회장은 2년 뒤에 벌어지는 사고로 사망할 예정이니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신창균은 달랐다. 잔존 수명이 확인되었으니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박상우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아, 아닙니다. 몸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당황한 박상우가 말을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신창균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이 양반 검사 결과는 나왔어요?”
좀 전에 봤던 다소 경망스러운 여자가 물었다. 신창균의 부인인 것 같았다.
“환자분과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박상우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제가 이 사람 마누라예요.”
여자는 여전히 껌을 씹고 있었다.
“아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그럼 이 사람, 병원에는 언제까지 입원해야 하는 거예요? 저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빨리 퇴원해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다 할지라도, 입원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퇴원을 운운하는 모습에 박상우는 답답하다는 듯이 볼을 부풀렸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박상우가 다시 한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우린 그렇게 오래 머물 수가 없는데…….”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덜미를 벅벅 긁어내렸다. 남편의 건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환자분은 내과 소견상 심부전증이 의심되어서, 한동안 퇴원은 힘듭니다. 조금 더 정밀하게 검사해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겁니다.”
박상우는 불쾌하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어휴, 그러면 안 되는데. 가게를 오래 비워 두면 단골들 다 떨어져 나가는데…….”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박상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잠깐 여자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평소에 걸으실 때도 숨이 차십니까?”
여자를 응시하던 박상우가 고개를 돌려 신창균에게 물었다.
“네, 조금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차올라요.”
신창균은 맥없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최근에 체중은 많이 불으셨나요?”
“갑자기 체중이 늘더라고요. 한 10kg 정도 늘었어요. 이것 보시죠.”
신창균이 환자복 바지 끝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퉁퉁 부어 있는 종아리가 드러났다.
하지 부종이었다.
‘심장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심부전증으로 심장 기능이 좋지 않으면 혈액 순환도 원활하지 않았다.
박상우는 신창균의 양쪽 다리를 계속 살피며 물었다.
“술이나 담배도 하십니까?”
“제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담배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독약과도 같은 것이니 절대로 흡연만은 삼가세요. 그리고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외부 음식도 삼가세요. 특히 짠 음식은 절대로 드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바지를 내리며 대답했다.
“술도 절대 안 되는 거 아시죠?”
“네.”
“그러면, 이따 저녁에 혈압 체크하러 다시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 말한 뒤 떠나는 박상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병실을 빠져나온 박상우는 의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곤 의자에 털썩 몸을 내던졌다.
심장병 환자의 종착역이라는 심부전증!
심장이 혈액을 받아들이는 충만, 이완 기능 혹은 심장을 짜내는 펌프의 수축 기능이 감소하여 신체 조직에 필요한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치명적이었고, 치료가 잘되었다 해도 재발률이 높은 위험한 병이었다.
신창균 환자의 경우, 수술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인공 심장 삽입 또는 심장 이식 수술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성공률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조금 전 부인의 태도로 볼 때, 수술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수술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박상우가 눈매를 좁히며 신창균의 진료 차트를 응시했다.
‘폴모너리 에드마(Pulmonary Edema: 폐부종) 소견도 있군.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차트를 휘리릭 넘기던 박상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신창균은 심부전증뿐만 아니라 폐부종 증세도 보였다. 가래 검사 결과 혈성 가래(분홍색 가래)가 보였고, ECG(심전도)에서는 RAD(우축 편위), RVH(우심실 비대), 불완전 RBBB(우각 차단) 등이 보이기도 했다. aVL, I에서의 S wave와 V1에서의 R wave의 높이 증가 등의 소견이 유의미하게 관찰되는 걸 보면 분명 폐부종이 틀림없었다.
폐부종은 심장에서 펌프 기능을 제대로 못 해, 심장으로 혈액을 보내는 폐혈관 부위에 혈액이 정체되며 압력이 올라가서 폐에 물이 차는 질병이었다. 물론, 심부전증을 앓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합병증으로 판단할 순 있었지만, 그런데도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박상우는 꼼꼼히 검사 결과를 살펴보다가 미심쩍은 듯 눈매를 좁혔다.
‘이상하네? 치료 이력을 살펴보면 폐부종이 심부전보다 먼저 발병한 거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심부전이 악화해서 그 합병증으로 폐부종이 생긴 건 아니야……. 분명 심부전증 이전에 폐부종을 치료한 이력이 있어……!’
신창균 환자의 차트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내역이 남아 있었다.
흔히, 의사들 사이에서 폐부종 치료거 있었는지 확인할 때 서로 ‘니 ID 몰라?’라는 물음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니(Nitrate),
I(IABP),
D(Dopamine/Dobutamine),
몰라(Morphine, Oxygen, Loop diuretics, ACEI 등등).
모두 폐부종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약품들의 이름들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은어였다.
신창균의 처방 이력에는 해당 약품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폐부종이 먼저 생긴 거고, 그 이후에 심부전증이 생겼다는 말이 되는데…….’
심장 기능에 이상이 온 후, 그 부작용으로 인해 폐부종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박상우가 이마를 긁적이며 눈을 깜박거렸다.
‘혹시 신창균 씨가 마약을 복용했던 건가?’
박상우가 좀 더 자세히 차트를 살펴보았다.
마약이나 마약류를 상습적으로 복용할 경우, 폐부종 소견을 보이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박상우는 치료 내용을 통해 그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신창균 환자는 정기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받은 것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사이클로옥시게나아제(Cyclooxygenase) 계열의 아스피린으로는 폐부종이 오지 않는다. 아무리 과다 복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위출혈이나 위궤양 정도야. 아스피린은 폐부종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딱히 폐부종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되었다.
어딘가 찜찜한 느낌에 박상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여기 있었냐? 한참 찾았다!”
그 순간,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기수가 양 무릎에 손을 얹고 헐떡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박상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기수에게 물었다.
“조현오 교수님이 급히 찾으신다. 너랑 나를!”
천기수가 벌게진 얼굴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교수님이? 무슨 일인데?”
“몰라 인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우리가 모르는 뭔 잘못이 있었겠지. 아무튼, 빨리 가자.”
“아, 알았어.”
천기수가 박상우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 * *
“왔나?”
박상우와 천기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현오 교수가 집무용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네, 교수님!”
“네, 교수님!”
“뭐 해? 거기 앉아.”
두 사람이 멀뚱멀뚱 서 있자 조현오 교수가 자리를 안내했다.
“네!”
박상우와 천기수는 조현오 교수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자네들이 4년 차가 된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일은 할 만한가?”
조현오 교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네, 할 만합니다!”
천기수가 부동자세로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하하하, 자네는 언제나 밝아 보여서 좋구먼. 그래, 열심히들 해 봐. 내가 보기에 자네 둘은 훌륭한 써전이 될 자질이 있어.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흉부외과 써전이 될 거야.”
조현오 교수가 박상우를 응시하며 환하게 웃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두 사람 전부, 우리 흉부외과를 짊어지고 나갈 사람들이야. 전문의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말고.”
조현오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격려했다.
“네, 교수님.”
“물론이죠. 저희가 흉부외과를 잘 이끌어가겠습니다.”
“좋아, 좋아. 흠, 내가 자네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말이야…….”
조현오 교수가 말하기에 앞서 뜸을 들였다.
“별다른 건 아니고, 방윤석 부회장님은 병원에서도 무척 신경을 쓰시는 분이라네. 그러니까 자네들도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해.”
“알겠습니다.”
“물론이죠. 굴지의 대기업 부회장님이신데, 당연히 신경을 써야죠.”
천기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이리 가까이 와 봐.”
조현오 교수는 두 사람을 좀 더 가까이 불러 모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놔두고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야. 지금부터 방 부회장님의 건강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절대로 외부로 누출하면 안 돼.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