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8)
신의 메스-98화(98/249)
98화 왕자와 거지 (4)
심각한 표정의 조현오 교수가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 모은 뒤 말했다.
“당연하죠. 환자의 개인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면 안 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 거라면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천기수가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이봐, 천 선생! 그것뿐만이 아니야. 방 부회장님에 관한 모든 정보는 오로지 자네들과 나만 공유해야 해. 혈액 검사, CT, 엑스레이 사진, 어떤 링거를 맞았는지. 모든 사항은 절대 외부로 유출되면 안 돼.”
“네.”
조현오 교수의 단호한 어조에 박상우와 천기수도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노파심에 다시 당부하네. 두 사람 다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게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천기수는 조현오 교수의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손을 들어 올렸다.
“특별한 건 아니야. 워낙 유명세를 타는 환자라서, 괜히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우리가 곤란해지잖나? 사전에 이를 방지하자는 차원이야.”
조현오 교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알겠습니다.”
“물론이죠. 교수님 지시인데 당연히 따라야죠.”
천기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앞으로 방 부회장님에 관한 사항은 모두 나한테 직접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박상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긴장할 건 없지만, 조심은 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천기수 역시 살짝 긴장되는지, 입술에 연신 침을 묻혔다.
“여기까지네. 바쁠 텐데 나가서 일들 봐.”
말을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조현오 교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하느님과 동급이라는 담당 과장의 명령. 조금 과하다 싶긴 했지만, 방윤석 부회장의 신분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박상우와 천기수는 일어나서 인사한 후,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야, 상우야. 확실히 대기업 회장이라 다르긴 다르다.”
불만 섞인 표정의 천기수는 교수실에서 나오자마자 볼펜으로 박상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하나도 다를 거 없어. 일반 환자들도 개인 건강 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거야. 이건 사회적 신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지.”
“야,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과 일반인이 어떻게 같냐? 조 교수님도 각별히 당부하시는 것 봐라. 방 회장님이 일반인이었으면 그렇게 하셨겠어? 어림도 없는 소리지. 돈이든 권력이든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니까?”
천기수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물론, 보통 환자는 아니니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시겠지만, 조 교수님은 일반 환자들 치료하실 때도 항상 주의를 당부하셨던 부분이야. 괜히 색안경 끼고 보지 마, 그러실 분 아니니까. 특별히 대우해 주는 건 없어.”
박상우는 손을 내저으며 조현오 교수를 두둔했다.
박상우의 말에 천기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가 애제자 아니랄까 봐, 편 드냐?”
“지금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아무튼, 너도 촐싹대지 말고 말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
박상우는 천기수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켰다.
“알겠어, 인마. 꼭 저렇게 지만 잘났지? 난 409호 병실로 간다!”
천기수는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상우도 남은 업무를 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 * *
모든 업무를 마친 박상우는 파김치처럼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흉부외과 당직실에 들어왔다.
의자에 힘없이 걸터앉은 박상우는 눈을 감고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
‘삼원 전자의 후계자, 방윤석 부회장이라…….’
박상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회귀하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왕자의 난!
삼원 전자는 이 무렵, 왕위 쟁탈전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후계 구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사람은 방윤석 부회장이었다. 그는 미래를 보는 안목,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그리고 사업을 이끌어가는 추진력까지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2년 후에 의문의 사고로 실종됐고, 끝내 행방을 찾지 못했기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가장 약세를 보였던 둘째 아들, 방준석 삼원건설 회장이 패권을 쥐었다.
박상우가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렇다면, 결국 방윤석 부회장이 그룹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인데…….’
방윤석 부회장의 병명은 심부전증. 검사 결과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계열사 병원을 놔두고 이 병원에 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할 목적이었음이 분명했다. 자신의 지병도 치료하고, 복잡한 그룹 승계 전략도 세울 겸, 고교 시절부터 절친했던 조현오 교수를 찾아온 것이다. 조현오 교수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결국,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눈을 뜬 박상우는 답답한 마음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1층 로비로 발길을 옮겼다.
자판기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뽑아 손에 든 채로, 박상우는 천천히 병원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직 겨울의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그 순간, 박상우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저 여자는…… 신창균 씨 보호자 아닌가? 이 밤에 왜 나와 있는 거지?’
한 사람은 신창균 환자의 보호자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낯선 남자였다.
그녀는 남자와 조심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박상우는 본능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이 밤에 무슨 얘기를 저렇게 심각하게 해?’
박상우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걱정 말아요. 그렇게 오래가진 않을 거예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이번에는 확실한 거지?”
“그럼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래. 잘했어.”
‘당신? 지금 분명, 당신이라고 했어.’
박상우는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고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주위를 한번 살핀 신창균의 부인과 낯선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곤 진하게 포옹을 나누었고, 이내 남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든 행동이 수상한 여자. 자신의 남편을 돌보기는커녕, 수술비 걱정만 늘어놓은 저 여자를 믿을 수 없는 박상우였다. 신창균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박상우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 수상하다! 낮에 말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신창균 씨가 위험할지도 몰라!’
박상우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 바로 그거야! 돈이 없어서 수술받지 못하는 신창균 씨,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라줄 충복을 찾아야 하는 방윤석 부회장! 두 사람의 몸이 서로 바뀐다면?’
박상우는 복잡하게 얽혀 버려 풀릴 것 같지 않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를 살리는 방법으로 말이다.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라!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해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라.’
만약 방윤석이 앓고 있는 게 가벼운 협심증이 아니라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병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 방심한 적들이 그들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었다.
‘이참에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한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 않으셔도 된다.’
박상우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회귀 전 역사 속, 방윤석 부회장의 가장 큰 패착은 사람 관리였다. 그토록 자신을 믿고 따랐던 측근들의 배신으로 인해 실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방윤석 부회장이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분하기만 했어도,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 박상우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지금 저 여자의 행동이 너무나 의심스러워. 어쩌면 신창균 씨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박상우는 양 주먹에 힘을 주었다.
* * *
다음 날.
흉부외과 이상효 교수와 박상우, 담당 간호사는 회진 차, 신창균의 병실을 찾았다.
“신창균 씨, 오늘은 좀 몸이 어떠십니까?”
이상효 교수가 신창균에게 다가가 물었다.
“좀 힘이 듭니다. 숨도 차고……. 그래도 아직은 좀 견딜 만합니다.”
이창효 교수의 말에 신창균은 인상을 조금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누구신지…….”
천천히 몸을 일으킨 신창균은 이상효 교수의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로 시선을 옮겼다.
“흠흠!”
이상효 교수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했다.
“박상우 선생이 담당이라는 건 이미 들으셨겠지만, 제 소개가 조금 늦었습니다. 흉부외과 이창효입니다. 환자분의 치료를 담당하게 돼서, 오늘 회진 차 오게 되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신창균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수술 같은 걸 받아야 하나요?”
신창균은 나아지지 않는 몸 상태가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그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요.”
“어떤 수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의 신창균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망가진 심장 대신 인공 심장으로 교체하는 인공 심장 이식술입니다.”
“네? 이식 수술이요?”
신창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인공 심장 수술이라뇨?”
그보다 더 화들짝 놀란 신창균의 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인공 심장 수술은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신창균의 부인인 한숙영은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정색하며 이상효 교수의 말허리를 잘랐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는 정말 가진 게 없습니다. 빈털터리라고요. 그냥 입원해서 치료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술이라뇨? 입원비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허리가 휘는데, 그거 엄청 돈이 많이 드는 수술 아니에요?”
그녀의 입 주위로 하얗게 게거품이 올라왔다.
“그게…… 그 부분은 원무과에서 사람이 올라올 테니 그때 자세히 여쭤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황한 표정의 이상효 교수가 난감한 듯 얼굴을 붉혔다.
인공 심장 수술!
심장이 다 망가져 너덜너덜해진 신창균의 상태로 볼 때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었으나, 문제는 수술비만 1억 원이 넘는 초고가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의료 보험도 적용받을 수 없는 비급여 수술이었다. 가진 것 없는 신창균의 처지에선 난감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