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Scalpel RAW novel - Chapter (99)
신의 메스-99화(99/249)
99화 왕자와 거지 (5)
게다가 한숙영의 태도로 볼 때, 그녀는 남편인 신창균을 살리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내심 기다리는 듯했다.
“도대체 수술비가 얼마나 들어가길래 원무과에서 설명한답니까? 교수님, 말씀해 주세요! 수술비가 얼마입니까? 천만 원이에요? 이천만 원?”
한숙영이 얼굴을 들이밀며 악을 썼다.
“흠흠, 글쎄요.”
당황한 이상효 교수가 주먹을 말아 쥐며 헛기침을 했다.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레지던트 한 명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 이상효 교수의 옷소매를 붙잡고 있는 한숙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이고, 우린 수술 못 받습니다. 입원비에 약값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인데, 수술이라뇨. 못 받아요! 못 받아!”
한숙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악을 썼다.
‘예상대로야! 저 여자는 신창균 환자를 살릴 맘이 전혀 없다! 이대로 두면 신창균 환자는 죽을지도 몰라! 반드시 그 두 사람을 바꿔야 해!’
돈이 필요한 신창균. 그리고 신창균의 병이 필요한 방윤석 부회장.
‘그래,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두 사람을 서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두 사람 다 살릴 수 있어!’
박상우가 어젯밤, 머릿속에 그렸던 계획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 * *
“교수님, 한 가지 좀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다음 날, 박상우는 자신의 계획을 상의하고자 조현오 교수실을 찾았다.
“흠, 말해 보게나.”
“부회장님과 관계된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부회장님?”
“네.”
“흐음, 어떤 걸 물어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는 말해 주도록 하지. 뭐가 궁금한가?”
“부회장님은 왜 삼원 병원에 가지 않고 우리 병원에 입원하신 겁니까?”
“그게 궁금했나?”
조현오 교수는 박상우를 보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이유는 무슨. 그냥 남들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지. 원래 재벌가라는 곳이 말이 많은 곳이지 않은가? 괜히 병원에 입원하면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아지고 하니 말이야.”
조현오 교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병원도 있을 텐데 굳이 우리 병원에 오신 겁니까? 협심증 정도라면 굳이 우리 병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 박 선생이 부회장님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구먼.”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흐음, 궁금한 게 많으면 일도 손에 안 잡힐 테고, 내가 그 궁금증을 풀어 줘야겠지?”
“…….”
“사실은 말이야. 방윤석 부회장과 나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야. 요즘 그룹 일로 힘들어하길래 생각을 정리하게 할 겸, 요양도 할 겸, 치료 명목으로 우리 병원에 오도록 내가 먼저 제안한 거야. 이제 좀 궁금증이 풀리나?”
“아, 그러시군요. 두 분께서 많이 친하셨나 봅니다.”
“자네 혹시 깨복장구 친구라고 아나?”
“네. 어릴 때부터 지내온 친구라는 의미 아닙니까?”
“맞아! 방 회장과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야. 이 친구가, 나중에 내가 의사를 하면 병원 하나 차려 준다고도 했는데…….”
조현오 교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교수님, 그 약속은 제가 반드시 지키도록 만들겠습니다.’
박상우는 어금니를 굳게 다물며 다짐했다.
“그랬군요.”
“그래. 나도 그쪽 일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최근에 심신이 많이 지쳐 보이더라고. 워낙 능력 있는 친구라서 주변에 적이 많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살라고 충고했건만, 그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닌가 보더군.”
조현오 교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후계 구도가 심각한가 보군요.”
“그건 나도 모르겠고, 아무래도 옥석을 가리는 것이 급선무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가 보더군. 아무튼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자네는 그저 치료만 열심히 하면 될 거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교수님! 외람되지만 제가 교수님께 제안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박상우가 조현오 교수를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
“제안? 무슨 제안을 말하는 건가?”
“교수님, 사실은 말입니다…….”
박상우는 조현오 교수에게 방윤석 부회장과 똑 닮은 신창균을 데려다 놓고, 신분을 서로 바꾸는 건 어떻겠냐고 차분히 설명했다.
하지만 조현오 교수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교수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방윤석 부회장님은 지금 곤경에 처한 상황입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일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기업 경영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주변에 자신의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춘다 해도 무용지물이라는 건 교수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다른 사람 같았으면 단칼에 말허리를 잘랐을 조현오 교수였지만, 자신의 애제자인 박상우가 하는 말이었기에 묵묵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번 기회는 분명, 방윤석 부회장님이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죽을병에 걸린 상황이라면 누구나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요! 끝까지 남아 있는 자가 방윤석 부회장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박상우는 차분한 어조로 조현오 교수를 설득하려 했지만, 조현오 교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말이 되지 않아! 일단, 두 사람의 병을 바꾸자는 건데, 그렇게 되면 모든 의료 정보를 위조하자는 말밖에 되질 않지 않은가. 그건 명백한 불법이라고. 게다가, 아무리 닮아 봐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인데 얼마나 닮았겠는가? 무모한 계획이야.”
조현오 교수는 여전히 생각의 변화가 없었다.
“일단 이 사진부터 보고 말씀해 주십시오.”
박상우는 주머니에서 신창균의 사진 한 장을 꺼내 조현오 교수에게 내보였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건 방윤석이 분명한데…….”
사진을 들어 빤히 들여다보는 조현오 교수의 눈동자가 부풀어 올랐다.
“교수님께서 보고 놀라신 것처럼, 저도 처음엔 깜짝 놀랐습니다. 닮은 수준을 떠나, 거의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흡사합니다. 10만 명당 1명꼴로 자신의 외모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이렇게 똑같은 경우는 처음이에요.”
박상우도 사진을 가리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그래도 안 돼! 사적인 일로 불법을 저지를 순 없는 거니까.”
조현오 교수는 여전히 완고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자칫 신창균 씨는 수술도 받지 못한 채로 유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일만 성사된다면 그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적인 일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게다가 방윤석 부회장님도…… 아, 아닙니다.”
2년 후에 방윤석 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고 한들, 조현오 교수가 믿을 리는 없었다. 박상우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신창균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자네 맘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 자네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조현오 교수의 성격으로 볼 때,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교수님, 예전에 저에게 했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박상우는 몇 달 전 술에 취한 조현오 교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흐음, 그건…….”
조현오 교수도 기억이 나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교수님은 분명 적당히 때를 묻히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때가 더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요!”
박상우는 눈에 힘을 주며 굳은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그것과는 경우가 다르지 않나! 난 자네가 외부의 변수로 인해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거야.”
“아뇨,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꿈이 저의 꿈이기도 하니까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한 심장센터를 설립하시는 것이 교수님의 꿈이잖습니까? 저도 교수님과 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번 일만 해결된다면, 그 꿈을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제가 반드시 이뤄지도록 만들겠습니다!”
내면의 빛을 발산하듯, 조현오 교수를 응시하는 박상우의 눈은 영롱한 광채를 띄며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씩 심경의 변화가 생기는지, 조현오 교수는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문질렀다.
“교수님, 전 교수님의 말대로 ‘손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될 겁니다. 그 숭고한 뜻 올곧이 이뤄나갈 겁니다. 옷에 먼지가 묻으면 털어 내면 됩니다. 털어지지 않으면 세탁기에 넣고 빨면 되는 겁니다.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박상우는 양손을 모아 간곡히 부탁했다.
“흐음…… 알겠네.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나.”
한층 부드러워진 조현오 교수의 목소리로 미뤄보건대, 박상우의 설득에 어느 정도 감화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그래, 알겠네. 바쁠 텐데 나가서 일 보시게.”
“알겠습니다.”
* * *
그리고 며칠 후, 조현오 교수는 박상우를 자신의 연구실로 호출했다.
“여러모로 고민을 해 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네 계획을 진행해 보기로 했네.”
조현오 교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민 끝에 내린 결과를 박상우에게 건넸다.
“정말 잘 결정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할 것까지는 없고…….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텐가?”
하지만 여전히 일말의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조현오 교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뭐라고?”
“농담입니다, 교수님. 그래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일입니다.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네 뜻은 잘 알겠네. 일단 허락은 하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여전히 마음은 내키지 않아.”
조현오 교수는 안경을 벗고 눈을 꾹꾹 눌렀다.
“자신 있습니다, 교수님! 방윤석 부회장님, 그리고 신창균 씨.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좋아. 우선 신창균 환자를 한번 만나 보고 결정을 짓도록 하지.”
“네, 교수님! 제가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
박상우는 신창균과 함께 8층에 있는 하늘 정원으로 올라왔다.
조현오 교수를 발견한 박상우는 조현오 교수에게 다가가서 신창균을 소개했다.
“교수님, 이분이 신창균 환자입니다. 신창균 씨, 이쪽은 흉부외과 과장을 맡고 있는 조현오 교수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창균이올시다.”
“안녕하십니까? 조현오 교수입니…….”
고개를 들어 슬쩍 신창균의 모습을 살피던 조현오 교수의 눈동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