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00
100. 악소채와 만나는 소영
소영은 이미 그 푸른 옷을 입은 철수인(鐵手人)과 대적해 본 경험이 있어 그 실력을 알고 있었다.
주인의 신분을 지닌 옥소랑군의 무공은 필시 철수 하인보다 위일 것임을 알아차리고 은연중 경계
를 하고 있었으므로 옥소랑군이 손을 들어 피리로 일격을 가해 올 무렵 소영도 오른 손으로 퉁소
를 향해 일장을 퍼붓고 동시에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날리며 말하였다.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걸.”
그러나 소영은 그 말을 끝맺기도 전에 한 줄기의 광풍이 가슴에 격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영은 이미 암암리에 강기를 모아 호신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그의 가슴을 때린 장풍이 부상을
입힐 만한 것은 못 되었지만 속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한 줄기의 암공은 언제 쳐 낸 것일까? 만약 그 옥퉁소를 따라 쳐 왔다면 결코 이렇듯 빠르지
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큰소리 칠만 했겠지만….. 만약 나의 강기가 막아 내지 못했다면 이는
필시 내 혈도를 파괴하고 말았을 것이다.’
옥소랑군은 자기가 쳐 낸 공력이 소영의 가슴에 적중한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놀랍게도 소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버티고 선 채 오히려 반격을 가하기 위해 암공을 운행하는 게 아닌
가!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제 보니 그는 당대 현문절기(玄門絶技)의 지고지상(至高至上)인 호신기를 연마하였구나. 정말
놀라운 일이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상대방의 묘기에 감탄하면서 피차간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옥소랑군은 수중의 옥퉁소를 내리 쳐서 소영이 뿜어 낸 다섯 손가락의 공력을 막아 내고 즉시 옥
퉁소를 위로 쳐 올리며 소영의 오른쪽 팔의 급소를 찔렀다.
소영은 재빨리 오른팔을 굽혔다 펴며 왼손으로 일장을 쳐 냈다. 동시에 갖가지 묘수를 발휘해서
마치 전광석화와 같은 무섭고 빠른 공격을 펼쳤다.
옥소랑군은 걷잡을 수 없이 공격해 오는 소영의 무공을 막아 내기에도 힘에 겨워 순식간에 삼장
이나 뒤로 물러난 뒤 말했다.
“당신이 지금 사용한 무공은 혹시 남일공의 비법이라 일컫는 섬전연격장(閃電連擊掌)이오?”
소영은 옥소랑군이 저만큼 물러나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역시 공격을 멈추고 싸늘하게 노
려 보며 말했다.
“그렇소. 역시 당신의 견식은 넓군요.”
소영은 아무렇게나 대답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무공이 높고 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세상 무림의 견식도 매우 깊고 넓구나.’
다시 옥소랑군이 말했다.
“그 장법은 어디서 배웠소?”
소영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 그건 알려 드릴 수가 없소.”
옥소랑군이 다시 물었다.
“나는 남일공이 친히 가르쳐 주었는지 아니면 당신이 비급에서 스스로 터득하여 배운 것인지 알
고 싶은 거요.”
“물론 그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것이오.”
소영이 대답하자 옥소랑군은 깜짝 놀라며 다그쳐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남일공이 아직 죽지 않고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이오?”
옥소랑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소리를 더듬거렸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소?”
“그 노인장이 아직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만 알지 지금 어디에 계신지는 알려드릴 수 없소.”
소영이 딱 잘라 말하자 옥소랑군은 코웃음을 쳤다.
“흥!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가 조사해서 알아 내고 말 것이오.”
옥소랑군은 말을 마치자마자 옥퉁소를 들어 일격을 가했다.
소영은 들어 오는 옥퉁소의 일격을 가볍게 옆으로 쳐 내며 비스듬히 장세를 몰아 옥퉁소를 향해
덮쳐 갔다.
‘이 사람은 매우 민첩하고 절기를 지녔구나. 놀랍게도 장풍으로 나의 옥퉁소를 막다니. 하지만 어
디 혼 좀 내 줘야겠군.’
옥소랑군은 옥퉁소를 질풍같이 내렸다가 재빨리 소영의 손을 향하여 맞받아 찔러 냈다.
소영은 다섯 손가락을 모아 달려드는 옥퉁소를 재빨리 나꿔챘다.그러자 옥소랑군은 적이 놀라면
서도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것은 당신이 화를 자초한 것이니 결코 나를 탓하지 마시오.”
온 몸의 운기를 모아 옥퉁소를 돌려 버렸다. 이것은 옥소랑군의 계획적인 흉계였다.
옥퉁소는 극히 작고 칼날같이 예리한 돌기가 많아 옥소랑군과 같은 심후한 내공으로 운기를 모아
옥퉁소를 돌리면 그 돌기에 누구라도 부상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영은 여전히 옥퉁소를 꽉 움켜 쥐고 있었다. 부상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옥소랑군이
쩔쩔매고 있있다.
옥소랑군은 당황한 나머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의 내공의 힘은 과연 고강하오. 하지만 내 옥퉁소를 내 놓으시오!”
소영은 여전히 옥퉁소를 움켜 쥔 채 잠시 생각하였다.
‘피차 적이거늘 내 어찌 수중에 들어 온 적의 무기를 돌려 주겠는가? 더구나 이 옥퉁소는 이름있
는 고귀한 것이어서 옥퉁소가 부러질까 봐 두려워하는 게 옳겠지.’
그러나 소영은 슬그머니 옥퉁소를 놓아 주었다.
옥소랑군은 자기의 외침에 소영이 옥퉁소를 놓아 주리라곤 생각도 못하다가 뜻밖에도 소영이 옥
퉁소를 놓아 주자 날쌔게 삼 장이나 뒤로 물러 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소형은 참 신통하게도 내 말을 잘 듣는구려.”
돌연 옥퉁소를 들어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느다랗고도 싸늘한 빛이 옥퉁소의 구멍에서
수없이 날아 나왔다. 알고 보니 아름답고 우아한 옥퉁소 속에는 가느다란 용수철이 있어서 숨겨
진 독침을 튀겨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소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옥퉁소와 옥소랑군을 번갈아 노려 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제 보니 당신의 그 옥퉁소는 그렇듯 악독한 암기로 상대방의 안목을 높여 주는구려.”
옥소랑군은 냉소했다.
“만약 네가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면 벌써 이 독침에 상하고 말았을 것이다.”
“당신이 그 옥퉁소 속에 독침을 숨긴 방법이 제법 기묘하고 악독하여 막아 내기 힘들겠지만 결코
이 소영을 해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오.”
옥소랑군은 소영이 손에 칼로도 끊지 못하는 천 년 묵은 교피 장갑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이 옥퉁소 속의 용수철은 매우 강해서 네가 비록 암기로 호신하려 하지만 이 날카로운 독침을
막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나로 하여금 옥퉁소를 놓게 한 것은 하나의 호의를 보인 것이니 그와 더 이상 따질 것이
없다.’
소영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옥소랑군이 거듭 소리쳤다.
“나는 아직까지 인정으로 봐 주었는데도 너는 여전히 물러날 줄을 모르느냐?”
‘내가 만약 저 사람의 말대로 순순히 물러난다면 저 사람은 필시 독수를 사용하여 한바탕 살상을
저지를 것이니 내 어찌 순순히 물러 갈소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옥소랑군을 굴복시켜야겠다.’
여기까지 생각한 소영은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서서히 등에 짊어진 장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당신의 옥퉁소의 술법은 정말 놀랍도록 절묘함을 알았소. 나는 당신에게 몇 수의 절묘한 수법을
배우고 싶소. 부디 아끼지 말고 가르쳐 주기 바라오.”
소영이 점잖게 말하자 옥소랑군은 냉소를 터뜨리며 일갈했다.
“소영, 너는 내가 어째서 번번이 너에게 사정을 봐 주는지 아는가?”
“나는 모르겠소.”
소영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다시 옥소랑군이 말했다.
“한 사람 때문이다.”
“누구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옥소랑군의 살기 띤 얼굴이 일그러지며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무림에서 지내왔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이토록 참아 본 적이 없었다. 소영, 너에겐 정
말 예외인 줄을 알아야 한다.”
소영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도 꺼려할 필요가 없소. 나 소영은 어디까지나 소영이며 어느 누구와도 관련이 없으니 자
어디 마음 놓고 손을 써 보시오.”
옥소랑군은 두 눈에 번쩍 빛을 모아 날카롭게 쏘아 보며 말했다.
“너는 끝내 나로 하여금 손을 쓰게 할 작정인가?”
“천만에 당신이 손을 쓰도록 억지를 부릴 의사는 없소. 그러나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은
내게 인정사정 볼 것도 없으며 우리는 서로가 자기의 무공을 발휘해서 승부를 가리는 것 뿐이
오.”
소영이 말 끝도 맺기 전에 옥소랑군은 허리를 제치고 호탕하게 한바탕 웃으면서 한 마디 던졌다.
“좋다. 조심하라.”
옥소랑군은 고함소리와 함께 갑자기 퉁소를 들어 휙 뿌렸다.
소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적할 것처럼 말을 하긴 했지만 옥소랑군의 실력을 파악치 못하고 있었으
므로 내심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옥소랑군이 고함소리와 함께 옥퉁소를 뿌려 공격하자 소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가볍게 몸을
날려 뒤로 물러 섰다.
옥소랑군은 연속 세 번이나 공격을 퍼부었다. 세 번 공격이라 하지만 그것은 눈깜빡할 사이였다.
쳐 내리는 퉁소는 보이지 않고 사면 팔방으로 마구 흩어져 맹렬히 쳐 오는 불꽃만이 일고 있었
다.
그때 손불사가 무위도장을 바라 보고 나직이 말했다.
“저 사람의 초식은 참으로 기이하군요. 나는 평생에 처음 보는 듯하오.”
무위도장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것은 승부를 예측키 어려운 싸움이오…..”
그는 무엇을 망설이는지 중간에서 말을 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소영은 사면 팔방으로 흩어져
쳐 오는 불꽃을 피하려고 연속 오 장이나 물러 서며 간신히 급공을 물리쳐 냈다.
옥소랑군은 여전히 비웃듯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이 나의 이 퉁소의 공격을 그것도 세 번이나 연속된 공격을 피해 낸 것은 정말 힘든 일이
오. 정말 장하오.”
입으로는 지껄이면서도 옥소랑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옥퉁소를 더욱 빠르게 휘둘러댔다. 마
치 돌풍처럼 몰아 닥치는 퉁소의 공격은 거듭될수록 더욱 빠르고 날카로와져서 마치 전광석화처
럼 닥쳐 와 소영을 덮쳐 누르면서 안개처럼 일어나는 불꽃의 연기 속으로 몰아 넣었다.
소영은 강호에 발을 들여 놓고 무림의 물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 오늘과 같은 싸움은 처음이 아닌
가 생각했다. 분명 이것은 악전고투였으며 자신의 경험 부족을 내심 부끄러워했다.
옥소랑군의 공세가 번개불이 번쩍이듯 사면 팔방에서 불꽃을 몰아 오는 바람에 소영은 반격할 틈
도 얻지 못했지만 공격할 힘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깜빡할 사이에 그들은 십여 합의 격투를 벌였
으나 소영은 반격은커녕 손 쓸 사이도 없이 계속 밀리기만 하였다. 그것은 소영 자신도 안타까운
일이었으며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조이게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소영은 조급하게 굴지 않고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 내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소영이 계
속 밀리며 막아 내기에 급급하자 손불사는 참을 수 없는지 초조한 눈길을 들어 무위도장을 바라
보며 나직이 물었다.
“도장,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전세가 심상치 않소이다. 소영이 줄곧 수세에 몰리며 반격의 기회마
저 얻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찌 싸움을 계속 지탱해 나가겠소? 내가 가서 조금 도울까 하는데 어
떻게 생각하시오?”
무위도장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대답했다.
“노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대협은 그 무공의 실력이 경이로우나 아직 싸움에 경험이 없어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를 판단하지 못한 것 뿐이오. 게다가 저 사람의 퉁소 공격법 역시 오묘하고
괴이한 것이어서 저도 처음으로 보는 공격이오. 만일 우리들이 나아가 소대협을 돕는다면 오히려
소대협의 심사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와 더욱 불리할지도 모르니 차라리 좀더 전세를 살핀 뒤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위도장 역시 손불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속으로 놀랍고 위험스
러운 싸움의 결과를 볼 것만 같은 불안을 억제치 못하고 있었다.
소영은 여전히 옥소랑군이 휘둘러대는 옥퉁소의 불꽃에 싸여 한 순간도 반격할 수가 없었다. 정
말 예기치 않았던 악전고투였다.
다시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마실 동안 소영은 여전히 한바탕 험악한 격투 속에 휘몰려 악전을 거
듭하고 있으면서도 반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영은 손불사와 무위도장이 염려할만큼 두려워하거
나 급박한 위험에 몰렸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옥소랑군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소영의 장검을 빼앗거나 떨
어뜨리지는 못했다.
그때 소영이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장검을 휘둘러 겹겹이 싸인 옥퉁소의 불꽃 속에서 공격해 나
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일진의 광풍이 일며 벼락이 떨어지듯 굉음이 꽝! 꽝! 들려 왔다. 소영의
장검이 옥퉁소의 공격을 맞받아 내면서 오히려 깊숙히 찔러 들어 갔다. 그것은 소영이 계속 노리
고 있던 반격의 기회였다.
처음부터 소영은 계속 몰리고 있었지만 허점을 찾아 일순에 공격하려는 계책이었다. 그 허점이
지금 소영 앞에 크게 나타났으니 어찌 소영이 지체하겠는가!
소영은 겹겹이 싸여 오는 퉁소의 불꽃들은 뚫고 나오며 연속 세 번이나 장검으로 공격해댔다. 공
격하는 장검이 어찌나 거세고 빨랐던지 옥퉁소의 불꽃을 튕겨대며 번지는 장검의 섬광이 번갯불
이 치듯 눈부셨다.
순식간에 몇 합의 공격이 오고 가며 옥퉁소와 장검이 한데 어울려 요란한 폭음과 동시에 절묘한
술법을 발휘하면서 회오리 바람처럼 엉클어져 휩쓸었다.
그것을 근심스럽게 바라 보던 무위도장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가 옥퉁소의 그늘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것이 아니었군.”
손불사도 따라서 지껄였다.
“하지만 험악하기가 조금 전보다 더한데요.”
이때 옥소랑군의 뒤에서 싸움을 지켜 보던 철수인도 어딘지 불안했던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
다. 아무리 보아도 싸움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갈수록 싸움이 격렬해지며 살기가 돌았다. 옥퉁소
와 장검이 부딪칠 때마다 요란한 폭음소리와 함께 번갯불처럼 불꽃이 튀어 보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무위도장은 손불사를 한 번 돌아 보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선배님,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 두 사람이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손불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안 되오. 이제 아무리 말려도 저들은 손을 멈추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 이상 대적한다면 아마 둘 다 상하는 결과만 남을
것이 아닙니까?”
무위도장은 조급하게 반문하고 있었다.
손불사는 무위도장의 다급한 말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소영과 옥소랑군을 자세히 바라 보고 있
었다.
소영의 이마에 땀이 배어난 것으로 보아 이미 전력을 기울여 힘이 많이 소모된 것 같았고, 옥소
랑군 역시 미간에 땀방울이 맺혀 하나 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가 보든지 더 이상 싸움을 계
속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누군가 고함을 질러댔다.
“멈추시오!”
소리와 함께 옥소랑군은 재빨리 몸을 날리면서 세 번이나 연거푸 공격을 해댔다. 그가 세 번씩이
나 연속적으로 퍼부은 공격은 소영의 장검이 교묘히 막아 내었다.
소영은 강호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처음으로 적수다운 적수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싸
움은 정말 위험스러웠다. 더 이상 계속한다면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를 해야만 될 것이라고 순간
적으로 느꼈으며 은연중 옥소랑군에게 경의를 표했다.
옥소랑군이 퉁소를 거두고 물러 서자 소영도 즉시 장검을 거두어 들이고 물러 났다.
그들은 모두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시선이 못박힌 듯이 머문 곳에는 머리를
두 갈래로 따 늘이고 청색 긴바지에 짧은 웃옷을 입고 허리에는 노란 띠를 두른 십육 세쯤 되는
자그마한 소녀가 등에는 보검인 듯한 장검을 멘 채 대문 곁에 숙연히 서서 이쪽을 노려 보고 있
다.
소영은 섬뜩함을 느끼고 잠시 생각했다.
‘이 계집아이는 어제 보았던 아가씨가 아니냐? 저 아가씨는 악누님의 몸종이니 아마 누님의 심부
름을 왔을 게 틀림없다.’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슬쩍 닦아 내던 옥소랑군이 손을 모으며 소녀에게 가볍게 말
했다.
“소문(素文) 아가씨, 그 동안 별일 없었소?”
그 청의의 소녀는 크고 맑은 두 눈을 들어 날카롭게 사방을 훑어 보고는 몸을 굽혀 모여 있는 군
호들에게 정중히 예를 한 다음 간단히 말했다.
“소녀가 어찌 옥소랑군의 인사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옥소랑군이 재빨리 소녀의 말을 가로챘다.
“아가씨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말을 하는 옥소랑군의 목소리가 몹시 긴장되어 있었다.
“한 가지 일을 알려드리려 왔습니다.”
“무슨 일이오? 혹시 악 낭자가….?”
“그렇습니다. 아가씨께서 오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다고 하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옥소랑군은 안색을 변해 가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 이유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알지 못합니다.”
소녀는 소영에게 시선을 돌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소공자께서는 소녀를 몰라 보시는군요.”
소영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 번 본 사람을 나는……”
“아닙니다. 우리는 벌써 두 번째 만나는 걸요?”
하고 소녀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소영은 조금 당황했지만 차갑게 대답했다.
“그런가요? 하지만 처음에 아가씨는 남장을 하였으니까 자연 알아 보지 못했어요. 아가씨 모습을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인 셈이 아닙니까?”
소녀는 의미있는 웃음을 보이고 곧 옥소랑군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가씨께서는 기다리지 마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 만나지 않으면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옥소랑군은 안색을 흐리며 물었다.
“아가씨께서 공자를 뵙고 싶을 때 사람을 보내 찾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옥소랑군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격노한 모습을 드러냈다. 내심 크게 분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옥소랑군은 크게 발을 구르며 손을 들어 철수인을 향해 말했다.
“우린 가자꾸나.”
말을 마치기 바쁘게 옥소랑군은 훌쩍 몸을 날려 지붕 위로 날아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가볍
게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철수인은 옥소랑군을 따라 제비처럼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오
르더니 그들을 흘겨 보고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그림자처럼 사라지자 소문 소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소영 곁으로 와 속삭이듯 말했다.
“소공자, 우리 아가씨를 만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소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만약 댁의 아가씨가 그렇게 예쁘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제 저녁엔 만나게 해 달라더니 그새 마음이 변하셨나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가씨, 오해하지 마십시오. 만약에 악 누님이 나를 만나겠다면 나는 당장 달려가겠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안내해서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도 괜찮겠습니까?”
소영은 소문을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호호, 만약 괜찮지 않다거나 혹시 아가씨께서 허락치 않으셨다면 제가 무슨 이유로 소공자를 모
시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묻고 싶은데요.”
“좋습니다. 무엇인가 말씀해 보세요.”
“악낭자가 어째서 어제는 나를 만나지 않았으며 오늘은 또 왜 나를 데려 오랍니까? 나는 까닭을
모르겠소.”
소녀는 잠시 고운 눈매를 정그리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유가 있는지 없는지 소녀는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설령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해도 소녀는 소공
자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소영도 얼굴을 찡그려 보이고 말했다.
“혹시악낭자가 무슨 일로 나를 만나려는지 소녀는 아시오?”
“무엇 때문이냐구요? 그보다도 소공자께서는 지금 무엇 때문에 악 낭자를 만나지 않으려는지…..”
머뭇거리던 소녀는 음성을 낮추어 말을 이었다.
“악 아가씨와 당신 소공자와는 어떤 사이신지 소녀는 전연 알지 못합니다. 단지 아가씨께서도 당
신을 위해 밤낮으로 심혈을 기울여 왔다는 것 뿐입니다. 우리 두 자매가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처리한 남해의 오흉 사건은 그 일례에 불과하며 그녀는 당신이 자기가 도운 것을 눈치 못 채게
하려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말을 채 맺지도 않은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소영은 그녀가 계속 이야기하기를 기다렸으나 소녀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소영은 답답했다.
“아가씨, 얘긴 다 끝났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그럼 왜 이야기를 하다 마는 거요?”
“저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겠어요. 감히 더 말할 수가 없어요.”
“괜찮습니다. 모두 듣고 싶어요.”
그녀는 소영의 위압적인 언사에 눌린 듯 한숨을 길게 토해 내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이미 너무 많이 지껄였으니 소공자께서는 제게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이야
긴…..”
소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손불사를 한 번 돌아 본 후 말했다.
“아가씨에게 묻겠는데, 여기 계신 다른 몇 분들도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아가씨께서 따로 분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가씨께서는 낯모르는 분과 만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자 손불사가 참견했다.
“소대협, 난처하게 생각지 마시오. 우린 여기서 기다리면 될 테니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렇게 하시지요.”
소문 소녀도 재촉하듯 말했다.
소영은 손불사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읍을 해 보이고 말했다.
“그럼, 여러분께서는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다녀오겠습니다.”
“어서 가보시오.”
하고 손불사가 재촉했다.
소녀가 앞장을 서서 소영을 인도했다.
“어서 가시지요.”
소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문 소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웅장하고 거대한 집을 걸어
나오자 소문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좀 더 빨리 가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가 먼저 마음껏 달려 보시오. 나는 충분히 따라 갈 수 있으니까요.”
“소녀는 이미 소공자의 무공을 보고 놀란 바 있습니다. 따라서 소녀가 소공자와 경공술을 겨루고
싶은 의사는 없습니다.”
소영은 그녀가 수 차례나 암중에 자기를 도운 일을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는 것을 금치
못했다. 소영이 멋적은 모습을 보이자 소녀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갑자기 몸을 날리며 외치듯 말
했다.
“그럼 소녀가 앞장 서겠습니다.”
그녀도 무공이 높은지라 소영이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사이에 최대의 경공을 발휘하여 이미 칠팔
장이나 앞서서 달려 가고 있었다.
소영은 진기를 한 모금 깊이 들이 마신 뒤 재빨리 몸을 날려 그 뒤를 따라 갔다. 두 사람은 쫓고
쫓기는 기분으로 최대의 경신술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십여 리를 달려 나갔다.
소영이 전력을 다하여 일 장의 거리로 뒤쫓아 갔을 때 갑자기 그녀가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소
영은 하마터면 그녀와 부딪칠 뻔하였다. 황급히 진기를 들이 마시고 멈추지 않았다면 호되게 부
딪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자 소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어대며 말하였다.
“호호흣…. 역시 소공자의 무공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도록 높으시군요.”
소영은 화가 난 투로 말했다.
“어째서 멈추는 거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소.”
소녀는 여전히 웃으며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켰다.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짙은 녹음 사이로 은은
하게 보이는 초가집 한 채가 아담하게 드러났다.
“다 왔습니다. 바로 저 초가집입니다.”
소영은 격동을 눌러 참으며 지그시 그 초가집을 바라 보았다.
“소공자, 악 아가씨를 만나실 때 말을 조심해서 하십시오.”
소녀는 나직이 이르고는 얌전한 걸음을 옮겨 앞장을 섰다.
“무엇 때문에 내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거요?”
“아가씨는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려 있으니 소공자께서 더 이상 아가씨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됩니
다.”
“좋소. 그렇게 하지요.”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은 이미 초가집 앞에 당도했다.
소녀가 나무로 얽어 만든 대문을 두 번 톡, 톡, 두드렸다. 그러자 스르르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붉
은 옷을 입고 등에는 장검을 맨 갸름한 소녀가 문앞에 나타났다.
“아가씨 계시냐?”
소문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붉은 옷을 입은 소녀는 소영을 한 번 훑어 보고 말했다.
“계십니다. 소공자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소영은 흠칫 놀라 붉은 옷을 입은 소녀를 바라 보았다.
‘이 계집애는 어떻게 나를 알아 보는 것일까? 성까지 알고 있으니……’
소영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 섰다. 문을 열고 들어 서자 안은 퍽 단조로웠다. 놓인 물건이라곤 한
개의 큰 탁자와 네 개의 대나무 의자가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왼쪽으로 가까운 곳에 엷은 남색의 질이 나쁜 휘장이 초가집 안팎을 두 칸으로 나누고 있었다.
소문 소녀는 방 밖에서 머뭇거리고 들어 오지 않았다. 대신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소영의 등뒤
로 바짝 따라 들어 오며 나직이 말했다.
“소공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소녀가 아가씨께…..”
그때 남색 장막 안에서 경쾌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 왔다.
“너는 물러가 있거라.”
잠시 후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조용히 물러가자 장막이 걷히며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걸어 나
왔다.
소영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다름아닌 오 년 동안이나 헤어 져 있던 악소채였다. 그 때의 모
습 그대로였지만 어딘지 조금은 세파에 시달린 듯했다. 지친 표정에 우울한 빛이 미간에 떠오르
고 있었다.
그러나 악소채는 억지로 환한 모습에 히소를 담뿍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 멍하니 보기만 하지? 넋빠진 사람처럼…. 설마 이 누나를 몰라 보는 것은 아니겠
지?”
소영은 왈칵 눈물이 솟는 것을 억제하며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읍을 해 보이고 말했다.
“누님! 이 얼마만입니까? 그 동안 저는 누님의 음성과 모습을 한시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겨
두고 있었습니다.”
악소채는 가볍게 탄식을 했다.
“그러나 동생은 많이 변하였구려. 만약 내가 우연히 지나치다가 동생을 만났다면 동생을 몰라 보
았을 거야.”
“나는 건강하게 변하였지만…..”
소영의 말을 잘라 악소채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이토록 풍채가 좋은 미소년이니, 아! 오 년의 세월이 이토록 길단 말인가?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니…..”
소영은 전에 없이 악소채가 감상에 젖어 있는 것에 놀라 속으로 매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 누님은 항상 명랑하고 외유내강의 기질을 지녔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듯 슬픔과 우수에
잠겨 있을까? 말투부터 어떤 체념에 빠진 사람처럼 연약해졌으니…..’
소영은 악소채의 크고 동그란 눈이 피로에 충혈된 채 눈물에 젖어 있음을 보고 더욱 놀라며 황급
히 그녀에게 다가섰다.
“누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나 악소채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렇지도 않아.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동생을 갑자기 만나니 형언할 수 없이 기뻐서 그러
는 거지. 우리 지난 얘기나 할까?”
소영은 그녀가 지난 몇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하자 왈칵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악소채마저 슬프게 할 수는 없었으
므로 소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치솟는 격정을 참았다.
“누님, 지난 몇 년 동안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으셨군요. 그렇지요?”
“나야 어려서부터 강호에 몸을 담고 무림에서 자라 왔으니 그깐 고통쯤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동
생이 어린 몸으로 어떻게 그 고난의 나날을 지내 왔는지, 동생은 귀엽게 자랐어야 하는데 다 내
가 덕이 없는 탓이야.”
“누님, 물론 고통을 무수히 겪기야 했지만 이제 모두 지난 일이고, 지금은 이렇듯 건장하게 자라
지 않았습니까?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정말 옛날과는 너무나 달라졌어. 자꾸만 어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이제 동생은 무림에 이
름을 날리고 강호에서 명성도 얻었으니 지난날의 고통이 보람을 찾은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기
까지 동생이 어린 몸으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제가 오늘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누님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신 덕이 아닙니까? 무엇으로 누님
께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영은 진심으로 악소채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했다.
“나는 결코 동생을 돕지 못했어. 동생이 강호무림에서 겪은 고통을 손톱만큼도 덜어 주지 못했으
니 어찌 내 도움이라 하겠어. 생각하면 참으로 덧없고 미안한 마음뿐인데.”
악소채는 그만 복받치는 설움을 억제치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사
람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악소채는 고개를 돌리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어 눈물
을 삼켰다.
“누님, 모두 지난 옛일이니 너무 생각하지 마십시오.”
소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