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20
120. 천인대사의 붉은 가사
심목풍은 다시 여섯 구의 시체를 훑어본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여섯 사람이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은 모두가 비슷하므로 그 일 검으로 포일천의 등을 찌른
사람은 이 여섯 사람 중에는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그것으로 한 가지 일이 증명되었습니다.”
심목풍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우문한도의 대답.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금궁 속에는 또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다만 우리들
은 그들의 거처를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오.”
심목풍은 잠깐 깊이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금궁 속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체에 불과하오. 목전에 제
일 중요한 일은 우리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들이 남긴 무공 책자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심대장주의 의욕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오.”
심목풍이 말을 받았다.
“우리들이 금궁에 들어온 의도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오. 그러니 십대 고수가 남긴 무공을 찾는
다는 것이 어찌 나 한 사람만의 뜻이라 할 수 있겠소?”
우문한도가 말했다.
“심대장주께서는 저의 뜻을 오해하고 있소. 내 말뜻은 그들이 남긴 무공을 찾기 전에 우리는 먼
저 그들에게 무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과연 있었을까 여부를 알아낸 후에 그 무공
책자를 찾아 보자는 거요.”
심목풍은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
“우문형의 말에는 일리가 있소. 그렇다면 먼저 우문형이 고견을 말씀해 보시오.”
우문한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여섯 분의 고수들은 핏줄과 근육이 모두 말라 버렸소. 사망한 지 이미 수십 년이 경과되어
그들을 목격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을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풀기 어려운 비밀이 되
고 말았소. 그러니 우리들은 다만 지혜로써 추단(推斷)할 수밖에 도리가 없소…..”
우문한도가 시선을 돌려 심목풍과 소영 등을 번갈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소제가 이 여섯 사람의 표정을 관찰해 볼때 이들은 임종시에 그 심정이 안정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목풍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만약 그들이 포일천이 자기네들을 모해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토록 의
자에 앉아서 평안히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반드시 힘껏 반격을 했을 것이므로 이
대청 안도 한바탕 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당노부인이 또 갑자기 말참견을 했다.
“이 늙은이의 소견은 좀 다르오.”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중지(衆智)를 합하면 나라라도 세울 수 있다고 했소. 이 의문을 풀어내는 데는 절대로 한두 사
람의 지혜만으로는 될 수 없소. 그러하오니 당부인께서는 서슴지 마시고 고견을 말씀해 주십시
오.”
당노부인이 말을 받았다.
“이 늙은이의 식견이 꼭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혹시 벽돌을 던졌는데 옥이 굴렀다는 말과
같이 여러분의 지혜의 문을 열어 놓을지도 모르오…..”
당노부인은 시선을 돌려 이 여섯 구의 시체를 자세히 훑어보면서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오. 포일천은 이 여섯 사람이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독수를 썼
다고 합시다. 그래서 이들의 몸에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극독이 스쳐 들어갔다 치고, 이들이 그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소. 그러나 이들이 때가 늦었음에도 불
구하고 심후한 내공을 운기하여 그 극독을 제거하려고 이처럼 한곳에 모여 앉아서 진기조식을 했
는지도 모를 일이오. 그러나 만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끝내 극독을 제거하지 못
하고 독이 몸에 퍼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오.”
심목풍은 말을 받았다.
“만약 제가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절대로 이런 수양을 하지 않고 반드시 출수를 하여 반격을 가
했을 것이오. 하지만 이 여섯 사람은 수양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으므로 이렇게 참고 견딜 수 있
었는지도 모를 일이오.”
당노부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 당가에는 수십 종의 독약과 암기가 있는데 이것들은 오두 그 독을 사용하는 법이 다르오.
그래서 그 중 제일 독성이 강한 것은 제아무리 무림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일단 중독되기만 하면
반격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지요.”
이때 금화부인이 또 말참견을 했다.
“그렇죠. 독을 쓴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묘강에 있는 금누에와 독벌레는 가히 독중의
독이라 할 수 있소. 저는 독을 쓰는 데는 능하지 못하지만 독벌레를 구사하는 데는 자신이 있습
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 독벌레의 독에 중독되기만 하면 당장에 반항할 기력을 잃고 말지요.”
금화부인의 이와 같은 말을 듣자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다. 그들은 모두 속으로 비
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여인이 우리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암암리에 우리에게 독벌레를 구사한다면 우
리는 영락없이 그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군호들은 모두 금화부인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심목풍이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저는 일찌기 지금의 강호에서 독을 쓰는 데는 그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독수약왕에게 들은
적이 있소. 독충에 중독되었다고 하더라도 살리는 방법이 전연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오.”
금화부인은 갑자기 깔깔 웃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놓으십시오. 저는 절대로 여러분에게 독충을 구사하지는 않소.”
우문한도가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부인께서 독충을 구사한다면 제일 먼저 심대장주께서 당신을 용서치 않을 것이오.”
우문한도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어젖혔다. 이윽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당부인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소.”
당노부인이 말을 받았다.
“이 늙은이는 그저 가르침을 받을 뿐이오.”
우문한도가 말했다.
“만약 이 여섯 사람이 극독을 입은 것을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꼭 의자 위에 앉아서 운공하여
독을 뽑아낼 필요는 없지 않소?”
당노부인이 말을 받았다.
“가령 그들이 독이 발작하여 죽은 후에 포일천이 그들을 의자 위에 앉혀 놓았다고 할 수도 있잖
아요?”
우문한도는 여전히 반론을 펼쳤다.
“아마도 그때 포일천은 칼에 맞아서 자기 자신도 돌볼 틈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럴 마음의 여
유가 있었겠소?”
백리빙이 갑자기 말참견을 했다.
“혹시 이 의자 위에는 어떤 기관이 설치돼 있어 그들이 앉기만 하면 일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지도 모르죠.”
군호들은 그 말을 듣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들 의자를 돌아보았다.
심목풍이 말했다.
“우문형께서는 기관학에 대해서 정통하시니 자세히 한번 관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의자에 어
떤 기관이 장치되어 있는지…..”
우문한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가령 이 의자 위에 어떤 기관이 장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제 일류
의 고수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들 여섯 분의 무공으로 말하면 바위라도 쪼갤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뿐더러 이 바퀴 달린 의자에는 제가 보기에는 기관이 장치되어 있는 것 같지
도 않습니다.”
심목풍의 말.
“우리들이 여태껏 갑론을박한 것은 다 헛되고 말았소. 조그마한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이
오.”
소영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들이 주고받은 말은 모두가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여섯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지는 못
할 것 같구나.’
우문한도가 말을 이었다.
“혹시 이럴지도 모르지요. 이 금궁 속에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은 같이 죽지 않고 남아서 시체를
이 의자 위에 얹어 놓았는지도 …..”
심목풍.
“그 사람이 누굴까요?”
우문한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금궁 속으로 들어온 십대 고수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
기도 하지만…아직 세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소.”
심목풍은 정색을 하면서 다시 물었다.
“우문형, 십대 고수들 중에 혹시 금궁을 빠져나간 사람이 있을까요?”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글쎄요. 절대로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심목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여섯 사람이 바퀴 달린 의자 위에 앉아서 사망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반대로 그
것은 이들 여섯 구의 시체를 죽은 후에 이 의자 위에 얹어 놓았다는 결론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은 포일천이 아니고…..”
우문한도가 말을 잘랐다.
“이 금궁 속에 들어온 고수가 열 사람이 틀림없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우리들이 아직 발견해 내
지 못한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오.”
심목풍의 말.
“만약 열 사람이 동시에 사망했다고 가정한다면 이와 같은 추리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우리들 여섯 사람이 이 금궁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증명도 되는
것입니다.”
우문한도는 그 말을 듣자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그것…..”
우문한도는 정말 아리송해서 뒷말을 잇지 못했다.
기실 장내의 군호들은 모두 이 말을 듣자 속으로 크게 놀랐으며 모두 가슴이 답답해 왔던 것이
다.
만약 이 금궁에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왔다면 그 십대 고수가 남겼을지도 모를 무공의 책자는
그들이 가지고 갔을 것이며 그들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걸고 금궁에 들어온 목적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모두들 한참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우문한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들 여섯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지 못함으로써 문제는 난관에 봉착했소. 하지만 우리들이 다른
세 구의 시체를 찾아내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왔다는 단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오.”
심목풍은 갑자기 걸음을 옮겨 천인대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천인대사의 시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천인대사의 붉은 가사가 후루루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천인대사가 입고 있던 붉은 가사는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 삭아서 심목풍의 손이 닿자마자 즉
시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모두들 시선을 모아 그 바퀴 달린 의자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 의자는 윤택이 나도록 매끄럽
기만 할 뿐 기관을 장치해 둔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천인대사는 옷이 찢어지자 알몸뚱이가 드러났는데 그 몸뚱이는 마치 바짝 마른 북어를
연상시켰다. 수십 년 동안에 피와 살이 말라 버린 것이다.
심목풍은 천인대사의 시체를 다시 의자에 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한 가지 확정은 내릴 수가 있소. 이들은 죽기 전에 결코 손을 써서 싸우지는 않았다는 것
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