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22
122. 화신노인(化身老人)의 진면목(眞面目)
당노부인은 소영의 말을 듣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뜻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소.”
금화부인이 말을 받았다.
“당노부인의 문중에 있는 수십 명의 식구들은 모두 심목풍의 수중에 생사가 달려 있소. 그러므
로 만일 당노부인께서 심목풍의 협박에 응하지 않는다면 사천 당씨 가문은 강호에서 영원히 사라
져야 되는 거요.”
소영이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심목풍의 수단이 매우 악랄하니 당노선배님을 탓할 수 없지요.”
“비록 우리 당가의 식구들이 심목풍의 수중에 생사가 매어 있지만 노신은 오래도록 심목풍의 손
아귀에 쥐어 지낼 수는 없소…..”
당노부인은 무엇인가 말을 더 이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백리빙을 바라보고 있던 금화부인이 입을 열었다.
“동생, 이 낭자는 어떤 인물이오?”
소영은 백리빙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노부인과 금화부인은 모두가 적이 아니니 빙아는 얼굴의 검정을 씻어 본모습을 이 분들에게
보여 주지.”
소영의 말에 백리빙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이 금궁 안에는 재(災)가 없으므로 만일 얼굴의 검정을 지워 버리면 다시 변장할 수가 없어요.”
금화부인이 말했다.
“동생, 이 낭자는 우리들 앞에서 본래의 얼굴을 나타내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구태여 강요할 필
요는 없소. 단지 낭자의 신분이나 설명해 주구려.”
그러자 백리빙이 외쳤다.
“안 돼요. 가르쳐 주지 말아요.”
그러자 소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백리빙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 이토록 버릇이 없구나. 만일 지금 빙아의 성
격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소영은 부드러운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빙아, 금화부인은 이 오빠의 생명을 여러 번 구해 준 은인이다. 만일 금화부인의 도움이 없었다
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금화부인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 동생의 말은 너무 겸손하군요. 이 귀가 간지러워 들을 수가 있어야지…..”
백리빙은 소영이 타이르듯 하는 말에 입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소영은 백리빙의 태도가 공손해지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노선배님과 누님에게 제 동생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낭자는 바로 북천존자의 따님 백리빙입니
다.”
“오! 알고 보니 이 낭자가 바로 북해빙궁의 공주로군.”
금화부인의 말이었다. 그녀는 비꼬는 듯한 미소를 백리빙에게 던지고 있었다.
백리빙은 금화부인이 소영의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 주었다는 말에 약간의 호감을 느끼고 있었
으나 비꼬는 듯한 말을 듣자 다시 성질이 치솟았다.
“그래요. 제가 북해빙궁의 공주예요. 그게 어쨌다는 거지요?”
백리빙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에 적의의 빛이 감돌았다.
금화부인은 싸늘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소영에게 얼굴을 돌렸다.
“동생, 이 누이가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군요.”
금화부인의 다음 말이 분명 듣기 거북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한 소영은 얼른 그녀의 말 허리를
끊으며 화제를 다른 각도로 이끌었다.
“심목풍의 앞에서 나는 두 분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소. 만일 그것이 두 분에게 불쾌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사죄하겠소.”
소영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두 손을 모아 쥐며 허리를 굽혔다.
금화부인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생이 공인으로 변장해서 경계가 삼엄한 골짜기로 침투했고, 이곳 금궁 속으로 들어왔으니 그
지혜와 호기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군요. 무림의 영웅들이 이구동성으로 심목풍을 대적할 사람은
오직 소영뿐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말이 틀리지 않군.”
당노부인이 말을 받았다.
“심목풍은 하늘도 겁내지 않고 어떤 무림 고수라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직 소대협에게 만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소영은 두 여인의 칭찬에 거북해져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때 금화부인이 갑자기 소영을 팔꿈치로 건드리며 말했다.
“동생, 저기 석상(石床) 밑에 서랍이 열려 있는데,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 어서 열어
봐요.”
소영은 금화부인이 가리키는 서랍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누님이 발견한 것이니 서랍 속의 물건은 마땅히 누님의 것이오. 누님이 보시오.”
“그건 다르오. 심목풍은 나를 눈의 가시처럼 여기고 있지만 여전히 생사권을 쥐고 있소. 그 속에
금궁의 십대 고인이 함께 남긴 비록이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오.”
소영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하여튼 그 심목풍이란 놈은…내가 살아 있는 한 기필코 그를 굴복시켜 무림의 여러 사람을 묶
은 쇠사슬을 풀게끔 하겠소.”
백리빙은 금화부인의 언행이 매우 교만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소영에게 만은 지극히 공손하
게 대하는 것을 보고 조금씩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영이 서랍을 열기를 주저하자 당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소대협, 손을 쓰려면 어서 해요. 심목풍과 우문한도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소영은 마지 못해 석상 앞으로 갔다. 열려진 채로 있는 서랍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본 소영은 가
벼운 실망을 느꼈다. 그곳에는 종이쪽지 한 장밖에 없었다.
소영은 그 종이쪽지에 씌어진 글을 읽어 보았다.
“금궁의 물건은 이미 내가 가져가오. 먼 길을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을 텐데 미안하기 짝이 없
구려.”
소영은 도깨비에게 홀린 듯 멍한 기분이었다. 그의 뒤로 다가선 금화부인이 쪽지를 들여다 보더
니 중얼거렸다.
“믿을 수가 없군.”
소영은 종이쪽지를 집어 들고 안팎을 유심히 살펴본 후 그것을 서랍 속에 도로 넣으며 물었다.
“무슨 말이오?”
“우문한도와 심목풍의 말을 빌리자면 이 금궁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열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모
두 여섯 사람의 시체밖엔 발견하지 못했잖소?”
당노부인이 다가와 종이쪽지를 읽어 보더니 금화부인에게 말했다.
“노신의 생각으로는 금화부인의 말대로 이 종이쪽지는 십대 기인 중의 한 사람이 일부러 남긴
것 같소.”
소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소. 이 종이에 씌어진 글씨는 절대로 몇 십 년 전에 쓴 것이 아니오. 글씨가 이토록
생생하고 종이도 변색되지 않았잖소?”
금화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니 동생의 말이 맞소.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누군가가 이 밀실에 들어왔던 모양이
군.”
“확실하오. 누가 왔었소.”
소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종이쪽지를 다시 살펴보며 말했다.
“내가 보는 바로는 이 쪽지가 서랍 속에 넣어진 것은 삼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소.”
백리빙이 끼어 들었다.
“오빠의 말은 누군가가 금궁을 떠난 지 불과 삼 개월밖에 안 되었다는 뜻이에요?”
“그렇지.”
소영은 세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 인물이라면 십대 귀인이 금궁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소. 금궁을 찾기 위해
정열과 청춘을 바친 사람도 적지 않았소. 수십 년 동안 혈안이 되어 금궁을 찾으려고 애쓴 사람
들도 있소. 금궁을 찾는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수백 명이 될 것이오.”
소영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금궁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소. 하지만 그 중에는
무공과 지모가 출중한 사람이 있어서 아무도 모르게 금궁을 찾아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오.”
소영의 말을 듣고 있던 당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설혹 어떤 사람이 무공이 고강하고 지모가 뛰어났다 하더라도 건축학을 모른다면 금궁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잖겠소?”
“누구이든 한 가지 일은 알게 됩니다. 금궁을 찾아 이십 년씩 연구하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건축
학에도 자연 조예가 깊어질 수 있지요.”
소영의 견해가 타당했기 때문에 당노부인이나 금화부인이 반론을 펴지 못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금화부인이 입을 열었다.
“심목풍과 우문한도에게 이런 실망을 맛보여 줘야 할 텐데…심목풍이 금궁을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그 끈기와 인력(人力), 재력(財力), 수단을 총동원해서 심혈을 기울였는데 끝내
는 남에게 선수를 뺏기다니…..”
당노부인이 말했다.
“만일 소대협의 추상적인 논리가 사실과 일치한다면, 이 금궁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우문한도보
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오. 금궁에 들어와 중요한 물건을 내가면서도 조금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이때였다. 갑자기 윙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들은 소영은 재빨리 인피가면을 썼다.
“심목풍과 우문한도가 찾아온 모양이군.”
금화부인이 낮은 음성으로 말하자 소영은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 모아 경계심을 높이며 입을 열
었다.
“만일 심목풍이 이곳에 나타나거든 두 분께서는 여전히 나를 모르는 척해 주시오. 나는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본모습을 심목풍에게 드러낼 수 없으니 협조해 주시오.”
금화부인과 당노부인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입은 열지 않았다. 그녀들이 무엇인가 꺼리고 있는
것을 눈치챈 소영도 더 말하지 않았다.
윙윙거리는 음향은 잠시 이어지더니 갑자기 뚝 그쳤다. 그러자 석실의 바닥 한쪽이 서서히 열리
며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이것을 제일 먼저 본 백리빙이 주의를 주었다.
“오빠, 조심하세요. 이 석실에는 이상한 장치가 있는 모양이에요.”
백리빙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구멍 속에서 한 사람의 머리가 불쑥 솟아 올랐다. 나타난
사람은 우문한도였다.
‘이제 보니 여러 갈래의 길이 한 군데로 이어져 있었구나. 그 돌문의 길도 역시 이곳으로 통했
구나.’
소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문한도의 뒤를 바짝 따라 심목풍이 나타났다.
이들 두 사람은 소영의 일행이 먼저 이곳에 나타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
리둥절한 표정으로 네 사람을 둘러 보았다.
소영은 우문한도와 심목풍을 바라보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문한도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곳에 오셨소?”
금화부인이 대답했다.
“한 걸음씩 걸어 왔지요.”
우문한도는 금화부인이 가리키는 통로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 통로는 대청으로 통하고 있소?”
소영은 약간 고개를 끄덕일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우문한도는 소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당노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느 분이 이 실내로 들어오는 문을 발견했소?”
“내가 발견했소. 벽을 더듬으며 오다가 우연히 발견했소.”
소영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우문한도에게 내주며 말했다.
“먼저 이것을 보고 얘기하시오.”
우문한도는 종이를 받아 들고 읽어 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종이는 어디서 얻었소?”
“서랍 속에서 발견했소.”
종이쪽지를 넘겨 보던 심목풍이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우문형, 만일 이 종이에 적힌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금궁에 들어온 것은
모두 허사가 되었구려.”
심목풍은 말을 끊고 금화부인과 당노부인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두 분께서는 이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 들어오셨소?”
“그래요. 우린 바짝 붙어 서서 들어왔어요.”
노부인의 대답에 우문한도가 다시 물었다.
“두 분은 그가 서랍 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는 것을 직접 보셨소?”
“내가 먼저 서랍을 발견했어요. 채 닫혀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열어 보려고 했는데 이분이 한
걸음 먼저 서랍을 열었어요.”
금화부인의 대답이었다.
우문한도는 종이쪽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글씨로 봐서는 별로 오래 되지 않았소. 만일 이 종이가 위조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금궁
에 들어오기 약 삼 개월 전에 이미 누구인가 금궁에 들어와 물건을 가져갔다는 결론이 되오.”
심목풍이 소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몇 사람 중에 심기가 매우 깊은 사람이 있어, 수 개월 전에 이리 이 쪽지를 써서 지녔다
가 이곳에 들어온 후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요.”
소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이 종이쪽지를 주운 장본인인데 여러분이 믿든 못믿든 상관치 않겠소.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측량하려고 들지 마시오.”
심목풍은 불쾌한 표정으로 소영을 노려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나는 믿겠소. 이 종이쪽지는 위조된 것이 아니며 또한 누군가 일부러 수작을 꾸민 것이 아니라
는 것을…..”
우문한도가 종이쪽지를 소영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나 역시 이 종이에 씌여진 글씨가 사실일 것이라고 열에서 여덟아홉은 믿고 있소.”
심목풍이 의아스러워하며 물었다.
“우문형은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점이 있군요.”
“그렇소. 솔직히 말해서 우린 아직 한 가지 의문과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소. 우리가 그 의문을
풀 수 없다면 바로 금궁에서 물러나지요. 그리고 일말의 희망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소.”
“우문형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군요. 무슨 의문이며 어떤 희망이 있소? 이런 상황에서 말을 빙
돌리지 말고 느낀대로 얘기해 주시오.”
심목풍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보채듯 했다.
“내가 말한 의문이란 것은 이 석실 안의 시체가 아직 덜 발견되었소. 강호의 전설에 따르면 아
직도 두 구의 시체가 있어야 할 텐데…만일 우리가 나머지 두 구의 시체만 발견한다면, 열 사람의
기인이 금궁에 모였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지요.”
“과연 그것은 의문이라고 할 수 있구려. 그러나 희망이 있다는 것은 또 무엇이오?”
우문한도가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금궁의 물건을 먼저 들어온 사람이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그가 모조리 가져가지는 못했을 것이
라는 기대지요.”
심목풍의 눈에 광채가 돌았다.
“이곳에 아직 물건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이오?”
“그렇소. 그것이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일말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소.”
심목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우리 두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 우문형의 기지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소. 그러니 나
는 모든 일을 우문형에게 맡길 뿐이오. 우문형이 선두에 서서 두 구의 시체를 찾아 보시오.”
심목풍과 우문한도가 이곳으로 들어온 경로는 이러하였다.
심목풍이 금궁을 돌아 다니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등을 보이며 앞을 걷고 있었다. 통로가 하
나뿐이기에 심목풍은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며 위로 비스듬히 올라가고 있었다. 몸집이 비대한 심목풍은 어
쩌다가 벽을 건드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앞뒤가 꽉 막히고 말았다.
심목풍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것은 그의 몇 걸음 앞을 걷던 우문한도였다. 우문한도는 심목풍의
앞뒤를 막은 철사를 칼로 끊고 그를 구했다.
“고맙소. 우문형의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
심목풍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는 우문한도를 적으로 생각했으나 이 일로 해서 적대감정이
많이 감소되었다.
“은혜고 뭐고 앞으로 더욱 조심하시오.”
우문한도는 앞장 서서 좁은 통로를 걸었다. 심목풍은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은 여러 번의 위험을 겪으며 통로를 헤매었다. 위기에 처했을 적마다 우문한도가 용케
뚫고 나가곤 했다.
두 사람이 한동안 헤매어 결국 당도한 곳이 이 석실이었다. 비밀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이미 소
영 등이 먼저 와 있었던 것이다.
우문한도는 눈을 지그시 감고 무엇인가 한참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일 내 판단이 옳다면, 우리는 다른 두 구의 시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오.”
“그건 왜 그렇소?”
심목풍의 물음에 우문한도는 석실 안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금궁은 여기서 끝난 것이오.”
“그건 무슨 소리요? 필경 어떤 소견이 있으시겠지요?”
“내가 자세히 사방을 살펴보니 다시 뻗어 나가기가 힘들 것 같소.”
“어째서?”
“이 금궁의 사방에는 무서운 암류(暗流)가 깔려 있소. 포일천이 제아무리 하늘을 나는 수단이 있
다 하더라도 역시 그 암류의 충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오.”
“우문형의 말은 일리가 있소.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믿겠소?”
당노부인이 말했다.
“이 속에서 우리가 두 구의 시체만 찾아낼 수 있다면 우문선생의 말은 자연히 증명되지요.”
우문한도가 말했다.
“만일 십대 기인이 금궁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두 구의 시체는 이 석실 속에
있을 것이오.”
심목풍이 물었다.
“우문형의 말은 이 석실에 딸린 다른 방이 있다는 말이오?”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포일천이 이 금궁을 얼마나 절묘하게 건축했으며, 밀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그것은 모두
사방 십 장 안에 위치해 있을 겁니다.”
우문한도는 벽으로 다가서서 한동안 귀를 기울이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석실은 절대로 깊게 파고 들지 못하오. 여기서 일 장 정도만 파고 들어가면 땅 속은 소용돌
이오.”
“그게 사실일까요?”
심목풍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묻자 우문한도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심장주께서 믿지 못하겠거든 석벽에 귀를 대고 들어보시오.”
“그는 들어도 알지 못할 것 같소.”
심목풍은 이렇게 말하면서 석벽으로 다가가 귀를 바짝 붙였다. 과연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
은 땅 속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있는 듯 웅웅거리는 소리였다.
“심장주, 들으셨소?”
“들었소.”
심목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우문한도가 그것 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젠 내 말을 믿겠소?”
심목풍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영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금궁에 들어온 사람이 모두 여덟 명이었는지도 모르오. 지금 우선 할 일은 먼저 이 사
람들의 신분을 밝혀내는 것이오.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의 신분도 밝힐 수가 있을 것이오.”
이 말투는 흔히 노인들이 강호에서 쓰는 말투였다. 우문한도와 심목풍은 소영의 신분에 더욱 의
심을 품게 되었다.
심목풍이 소영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먼저 이 석실 안으로 들어왔는데…여기에 있는 시체들을 잘 살펴보았소?”
“그야 물론 살펴보았지요.”
소영은 눈길을 시체에게로 던지며
‘금궁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는 대부분이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인데…내가 이 사람들
의 신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소왕(簫王) 장방은 아닌 것 같소.”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그렇소. 장방은 아니오.”
심목풍은 우문한도에게 물었다.
“우문형의 어조를 들어보니 우문형은 이 사람의 신분을 알고 계신 모양인데…누구요?”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화신노인(化身老人) 수천의(帥天儀)인 것 같소.”
“화신노인?”
“그렇소. 그가 얼굴 모습을 수시로 바꾸는 기술은 놀랍도록 뛰어났다고 하오. 강호에서는 그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함께 금궁에 들어온 십대 기인들도…..”
이 말을 듣고 소영은 생각했다.
‘흐흥, 만일 금궁의 십대 기인이 화신노인의 진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면 우문한도는 어떻게
화신노인인 줄을 알 수 있지?’
우문한도는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화신노인 수천의는 어떤 사람과 있든지 항상 세 종류의 얼굴과 신분으로 대했소. 어
느 것이 그의 진짜 얼굴인지 알 수가 없지요. 심지어는 그와 수십 년씩 사귄 친구들도 진짜 얼굴
을 가려낼 수 없었다 하더군요.”
심목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만일 이 사람이 수천의라면 지금은 그의 진짜 얼굴이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도 확실히 모르겠소.”
금화부인이 물었다.
“얼굴을 분별할 수 없다면서 어떻게 수천의라는 것은 알지요?”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오. 소왕 장방과 다른 세 사람이 아닌 이상 수천의라고 보는 것이 좋겠
지요.”
소영은 다시 생각했다.
‘강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짜 얼굴을 모른다면 화신노인의 재주야말로 세상에 짝이 없겠구
나. 이 사람은 무공이 매우 높고 신비스러운 일생을 보냈지만 결국 금궁에 갇혀 죽게 되었으니…
인간이란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지혜가 있어도 자기의 앞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는 말이 사실이구
나.’
심목풍이 우문한도에게 말했다.
“우문형의 고견과 안목에는 정말 탄복을 금치 못하겠소. 그리고 보니 이 사람은 그 수천의가 분
명한 것 같군요.”
우문한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사람의 얼굴에는 이토록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있으니…수천의 이외에는 죽음 직전에 이토
록 평화스러운 웃음을 머금을 수 없었을 것이오.”
당노부인이 말했다.
“노신은 오래 전부터 화신노인의 이름을 듣고 앙모해 왔소. 그런데 그의 진짜 얼굴이 어떤 것인
지?”
“그와 수십 년 동안 사귄 친구들도 진짜 얼굴을 몰랐는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
소?”
“허지만 그는 이미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다시 변신할 수는 없을 테니 우리는 그의 진짜 얼굴
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금화부인이 말참견을 하자 우문한도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금화부인의 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화신노인의 얼굴을 벗겨 보자는 뜻 같군요?”
“같은 말이라도 우문선생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거북하군요.”
금화부인이 비꼬자 우문한도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건 어쨌든 나는 화신노인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없소. 이 노선배는 죽으면서도 자기의 얼굴을
몰라 보게 했는데…우리가 죽은 시체를 건드려 진짜 얼굴을 가려낸들 무엇하겠소? 그대로 놔 둡
시다.”
우문한도는 제법 엄숙한 태도였다.
이 말에 소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얼씨구, 우문한도가 언제부터 이처럼 인정이 두터웠었지?’
금화부인이 차갑게 말했다.
“이 몸은 우문선생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요. 이 화신노인의 진짜 모습을 알아낸 사람이 없었
다니, 죽은 후에도 그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도 저승에서 가슴이 아플거예요. 우리가 지
금 그의 진짜 얼굴을 벗기고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잖아
요?”
금화부인은 얼굴을 심목풍에게 옮기며 물었다.
“대장주님의 생각은 어때요?”
“두 분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어 나도 얼른 답변하기 곤란하구려.”
심목풍이 대답을 얼버무리자 우문한도가 소영에게 물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떻소?”
“그의 진짜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일인 것 같소.”
금화부인이 소영의 말끝을 이었다.
“저분의 의견도 이런데 우문선생은 그래도 반대하겠소?”
“그렇다면 나는 더 고집을 세울 수가 없군요.”
우문한도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금화부인이 화신노인의 시체 앞으로 다가서더니 오른손을 쳐들었다.
“우선 이 노인이 얼굴에 인피가면을 썼는지 안 썼는지부터 알아 내겠어요.”
금화부인의 오른손이 노인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우문한도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
금화부인은 손을 멈추고 우문한도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문선생, 나를 겁나게 하여 생각을 변경시킬 셈인가요? 무슨 대단한 말씀이 있나요?”
우문한도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화신노인은 심기가 매우 발달된 분이오.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밝히지 않으려고 한 데에는 어
떤 이유가 있을 것이오. 또한 죽으면서도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떤 심기를 사용했을 것
이오.”
“우문선생의 말씀은 내가 손을 써서 이 시체를 건드리면 어떤 화를 당할 것이라는 얘기지요.”
금화부인은 우문한도의 말이 꺼림칙하게 들린 모양이다.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망설였다.
“우문형, 이 화신노인이 독을 잘 사용하오?”
심목풍의 질문에 우문한도가 머리를 저었다.
“그가 독을 사용했다고 들은 적은 없소. 설혹 독을 쓴다 하더라도 얼굴에 바를 리야 없겠지
만…..”
금화부인이 머리에서 금비녀를 뽑아 들며 말했다.
“그가 독을 사용했든 안했든 나는 방심할 수 없어요.”
금화부인은 금비녀로 화신노인의 얼굴을 가볍게 찔렀다. 금비녀는 시체의 얼굴에 닿았으나 들어
가지 않았다. 시체의 얼굴은 바위처럼 딱딱했던 것이다.
“무슨 살이 이렇게 단단할까?”
금화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우문한도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 어떤 약물을 바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죽은 지 몇 해가 지났으니 근육이 굳었을 테
지요.”
“그렇지 않아요. 금비녀에 닿은 감촉이 근육이 아닌 것 같아요.”
“어디 봅시다.”
심목풍이 금화부인의 손에서 금비녀를 받아 들었다. 그는 금비녀로 시체의 얼굴을 두어 번 두드
려 보더니 중얼거렸다.
“과연 근육이 아니군.”
심목풍은 금비녀를 금화부인에게 돌려 주었다. 시체에 대한 의문은 컸지만 그것을 파괴하다가
어떤 화를 당하거나 남에게 욕을 먹을 것이 두려우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
금화부인은 금비녀를 받아 들더니 내력을 사용하여 시체의 얼굴에 쿡 찔렀다. 그러자 파삭 소리
가 나며 금비녀가 반 치 가량 들어갔다.
“여러분, 이것 좀 보세요.”
금화부인이 금비녀를 놓으며 외쳤다. 소영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시체의 얼굴로 쏠렸다. 비녀
로 찌른 자리를 중심으로 가느다란 금이 사방으로 그어져 있었다.
‘음, 화신노인의 얼굴에는 어떤 약이 두껍게 발라져 있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의 이 얼굴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군.’
소영이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심목풍이 놀란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진짜 얼굴이 아니오.”
“좋아요. 내가 가짜 얼굴을 벗기겠어요.”
금화부인은 오른손에 내공을 모아 시체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자 매우 두꺼운 껍질이 조각조
각 떨어졌다.
금화부인은 금비녀로 나머지 껍질들을 벗겨냈다. 드디어 시체의 진짜 얼굴이 나타났다.
비녀 끝에 약간씩 상하긴 했지만 얼굴 윤곽만은 뚜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나타난 얼굴은 약물로 만든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몹시 야위었고 코는 무엇에 잘린 것처럼 형체
만 조금 있을 뿐인 흉칙한 모습이었다.
시체의 진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던 금화부인이 탄식했다.
“사람이라면 미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게 마련이지. 이 사람도 보기 싫은 코 때문에 일부
러 가짜 얼굴을 만들어 사람을 대했군. 그 마음은 알 수 있겠어.”
우문한도는 금화부인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쥐며 시체에다 대고 공손하게 절을 하
더니 입을 열었다.
“노선배님의 덕행은 존경할 만합니다.”
“나는 화신노인이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단 말을 듣지 못했는데…우문형께서는 어떤 덕행이
존경할 만하다는 것이오?”
심목풍의 물음에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화신노인의 화장술이면 준수한 청년으로도 변장할 수 있었소. 그러나 그분은 시종 호호백발의
노인으로 변장하고 강호를 다녀 하나의 추문도 남기지 않았소. 그런데도 존경할 만한 분이 아니
란 말이오?”
이 말을 듣고 소영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화신노인이 만일 청년으로 변장했다면 그의 독특한 변장술로는 누구든 감쪽같이 속겠
지. 청년으로 변장해서 여러 가지 염문을 퍼뜨리고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우문한도의 말은 역시
일리가 있구나.’
소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금화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가 만일 준수한 청년으로 변장했다면 무림에 커다란 염문을 일으키고 다닐 수도 있었다는 말
씀이에요?”
“부인께서는 묘강에서 오셨으니 우리 중원의 일을 모르오.”
우문한도는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금화부인에게 한 가지 얘기해 드린다면 우리 중원의 인물은 묘강의 인물과 판이하게 다르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좋아요. 얘기해 보세요”
우문한도는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일백 년 전에 우리 중원에 한 분의 검수(劍手)가 출현했소. 그 사람의 무공은
그다지 고강하지 못했소. 그런데도 그는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소. 그 분쟁의 기원은 모두
여인의 몸에서 발생했던 것이오.”
시선을 심목풍에게 돌리며 말했다.
“심형은 그 일에 대해서 알고 계시오?”
“그렇소. 나 역시 들은 적이 있었소.”
“그 당시에 그는 소녀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소.”
금화부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백 년 전의 과거 일을 들출 필요가 어디 있어요? 그 일을 들춰 지금 무림에 어떤 보탬이
되나요?”
“흥, 부인께서는 묘강에서 오셨으므로 지식이 얕을 것이라고 생각했더니 역시 짐작이 틀리지 않
구려.”
금화부인이 코웃음을 치며 우문한도에게 말했다.
“나는 비록 묘강의 변두리에서 자랐지만 중원의 지식이 실린 책은 많이 읽었소. 너무 깔보지 마
시오.”
우문한도는 천장을 올려다 보며 껄껄거리고 웃었다.
“하하하, 부인, 만일 책을 읽은 것으로 논한다면 나 우문한도보다 많이 읽은 사람은 드물 것이외
다.”
우문한도는 금화부인이 대꾸하려는 것을 손을 흔들어 막으며 말을 이었다.
“부인은 나의 말을 들어보시오. 그 일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지만, 그의 일대기(一代記)를 책으
로 저술한 사람이 있었소. 내가 알기로는 그 책은 민가에 널리 퍼져 있소. 규방의 처녀들이 그 책
을 간수하며 예물로 주고받기도 한다더군요.”
우문한도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 책에는 일일이 주석과 그림이 있소. 비록 검수는 죽었지만 그의 혼은 모든 규방처녀들의 마
음속에 살아있는 것이오.”
우문한도는 시선을 화신노인의 시체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만일 화신노인이 청년으로 가장했다면 그의 분장과 무공으로써 천하를 진동시켰을 것이오. 검
수보다도 더 유명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는 일이오.”
우문한도는 자신이 한 말의 효과를 기다리려는 듯이 잠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나 그의 말
에 그럴 듯한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심목풍 등은 마땅찮은 얼굴을 했다.
“우문형이 읽은 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우리는 지금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직접
관계되지 않는 이야기는 더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소.”
이어서 당노부인이 말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나머지 두 구의 시체를 찾는 일이오. 무림의 전설로 미루어 추측컨데 그
두 구의 시체는 소왕 장방과 무당파의 명숙(名宿)일 것이오.”
심목풍이 다시 말을 받았다.
“그 두 구의 시체만 찾아내면 금궁에 들어온 우리의 목적은 일단 달성했다고 보아도 무방하오.
따라서 금궁을 물러서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다음 순서가 되겠지요.”
우문한도가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심대장주께서 금궁에 들어온 목적은 십대 기인이 남긴 (秘錄手冊)을 찾기 위해서인데…만일 몇
구의 시체만 보고 금궁을 물러난다면 실망이 너무 크잖소?”
심목풍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 우문형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로서는 뭐라고 답변을 해야 되지요? 하지만 나에게도 생각
이 있소.”
심목풍의 말에 우문한도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을 했다.
“심장주께선 어떤 생각이 있다는 것인지 들려 주시겠소?”
“나는 일찍 금궁을 떠나고 싶소. 그 이유는…..”
심목풍은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시선을 보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무엇을 꺼리는지 눈동
자만 굴리면서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심장주, 왜 말씀을 중단하시오? 궁금하니 어서 들어 봅시다.”
우문한도가 재촉하자 심목풍은 여러 사람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