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57
157. 미녀의 참혹한 살수(殺手)
이들이 하나의 골짜기를 들어서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흥! 어서들 오너라.”
동시에 네 개의 싸늘한 섬광이 유성처럼 곧장 날아와 소영의 앞가슴과 아랫배를 노렸다. 소영은
양 손을 재빨리 날렸다. 그러자 탁탁, 하는 소리가 나며 날아 오던 물체는 그의 장풍에 부딪쳐 떨
어졌다.
그는 손에 교피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무기를 겁내지 않았다. 그래서 날아오는 암기를 손을 뻗
쳐 쉽게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때 사람의 그림자가 휙 나타나며 네 명의 사나이가 비호같이 달려나와 무용과 소영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 때 또다시 냉랭한 음성이 들렸다.
“낭자, 어서 오른쪽 암석 뒤로 숨어라.”
그 말에 눈길을 돌리니 그 오른쪽 산벽 곁에 하나의 튀어나온 큰 암석이 있었다. 이곳에 매복해
있는 사람은 그 암석 뒤에 숨어 있었다.
무용은 나타난 네 명의 사나이 뒤에 숨으며 급히 말했다.
“저는 부상을 당했어요 그의 무공이 매우 고강하니 조심하세요.”
날아 오던 암기를 쉽사리 떨어뜨릴 소영은 본래 연자삼초수(燕子三抄水)의 경공을 펼쳐 그녀를
구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사나이들 등 뒤에 숨었고 다시 생각을 달리하여 심목풍의
손 안에 투신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즉시 손을 거두었다.
‘무용은 어려서부터 무노파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므로 성격이 나빠졌으니 어찌 정과 사의 구분
을 할 줄 알겠는가? 이기적이고, 위험을 당하면 변절하는 것이 그녀의 본성인데 정으로 돌아오기
를 바란 내가 어리석고 기대가 너무 컸다.’
그는 타고날 때부터 선량한 성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무용이 다시 적에게 가담하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는 냉랭히 입을 열
었다.
“그대들은 이번에 나하고 어떻게 싸울 작정이오?”
“그렇소. 일진으로 그대와 진실한 무공으로 승패를 판가름짓겠소.”
말과 동시에 커다란 암석 뒤에서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고, 얼굴이 넓적하고, 턱이 큰 노
인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소영이 바라보니 이 노인은 생소했으며 일찍이 본 기억이 없는 사람이었다. 즉시 손을 모아 공
손히 절을 하고 소영은 물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그 노인은 소영의 질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시선을 소영에게 못박고 한동안 살펴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계속 다섯 관문을 뚫을 수 있었으니 훌륭한 인재로다.”
소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투를 들어보니 심목풍의 수하는 아닌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길을 가로막고 있는 네 명의 사나이들 복장은 한결같이 특수한 것이었다.
어떠한 빛깔의 옷이든 가슴에 모두 한 마리의 노란 호랑이 머리가 수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
의 표식임이 분명했다.
다만 소영이 이 표시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애써서 기억을 더듬어
그 표시 내력을 찾아 내려고 했다.
그러나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스승 장산패가 이 표시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이 다시 냉랭하게 말했다.
“소영,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소영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앞가슴에 수놓은 호랑이 머리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몰라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오.”
그 긴 수염의 노인은 얼음장같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대같이 어린 나이에는 이 표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오.”
“내가 알아 볼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나는 귀하들이 절대로 백화산장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 심목풍이 초청해 온 사람들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소.”
그 노인은 핫하,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대는 비록 경험은 별로 없으나 상당히 총명하군. 심목풍이 나의 사노들을 초빙하는 데 있어
서 풍부한 보수를 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가 응한 주요 원인은 아니다.”
소영이 말했다.
“심목풍은 콧대가 굉장히 높으며 천하 무림은 거의가 그에게 항복하고 있는데 귀하가 그의 초빙
을 받을 수 있다니 귀하는 분명 유명한 인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소. 무림에서 심목풍의 이
러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긴 수염의 노인은 껄껄 웃었다.
“나는 그대가 똑똑하다고 말했는데 과연 틀림이 없구려.”
노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갑자기 쌀쌀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계속했다.
“나와 사도들이 한 좌의 비호진(飛虎陣)을 마련했는데 수십 년 동안에 이 비호진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내가 그대를 만난 것도 인연이니 그대가 나의 두 가지 요구에만 응한다면
나는 심목풍의 후한 보수를 사양하고 그대를 통과시키겠다.”
‘만약 기력을 소모치 않고 이 매복을 통과할 수 있다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영은 이런 생각으로 대답했다.
“귀하께서 나더러 무슨 요구에 응하라는 것인지 먼저 밝혀 주시오? 듣고 나서 고려해 보겠소.”
그 노인은 냉랭히 반문했다.
“고려해 보겠다고?”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귀하가 제시한 조건이 부당하면 나는 거절할 것이오.”
“이녀석 봐라! 네가 나의 조건을 고려해 보겠다고?”
노인은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너의 이런 담력이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전례를 깨뜨리고 그럼 먼저 너에게 알려
주겠다. 이 비호대진은 내 필생의 정력을 들여 연구하여 성공한 것이다. 도합 열 명이 있어야만
비로소. 비호대진의 위력을 절정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홉 명의 제자를 두었을
뿐이라 전체 진용으로 하여금 한 쪽이 구멍나게 되어 강적을 만나면 내가 직접 출진해서 그 진세
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나는 이것을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양재(良材)는 구하기
어려운 법이라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네가 만약 나의 문하로 투신하여 비호진의
결함을 보충하겠다면 나는 너를 통과시키겠다.”
소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듣기에는 그대가 계집애 하나를 구하러 간다는데 과연 그런가?”
소영이 곧 대답했다.
“그렇소! 귀하가 그것을 어찌 아시오.”
노인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심목풍이 그러더군. 나의 문하는 여색을 엄금하니 네가 말약 나의 문하로 들어온다면 내 그대
를 도와 그 계집애는 구해 주겠다. 그러나 그런 후에 그녀를 떠나 보내 이후로는 영원히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
그는 여기서 소영을 지그시 훑어보았다. 말을 잠시 멈추고 껄껄 웃더니 뒤이어 다시 말을 계속
했다.
“어떤가? 나의 조건은 너무 간단하지?”
소영은 마주 웃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조건은 비록 간단하지만 나는 응할 수가 없소.”
노인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 재차 물었다.
“뭐라고? 응하지 않겠다고?”
소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귀하의 두 가지의 조건을 나는 한 가지도 응할 수 없소.”
“그대는 세상 살기에 싫증을 느긴 모앙이로군.”
그는 손을 흔들며 또다시 다섯 명의 사나이를 큰 암석 뒤에서 불러냈다.
소영은 오른손으로 단검을 꺼내 가슴 앞에 반듯이 세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두르지 마시오. 나는 귀하의 진이 마련된 후에 손을 쓰겠소.”
사나이들의 동작은 숙달되어서 암석 뒤에서 달려 나오자 각기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섰다. 그리
고 곧 진세가 완성되었다.
소영은 단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여러분, 조심하시오. 나도 손을 쓰겠소.”
그의 표정은 경쾌한 것 같았으나 기실은 강적을 얕보지 못하여 긴장해 있었으며 진기를 몰래 모
아 쏜을 쓰자마자 기선을 장악할 심산이었다. 갑자기 진세에 배치한 아홉 명의 사나이는 각기 한
자루씩 도끼를 빼 들었고 단지 노인만이 빈손으로 진세의 중앙에 서 있었다.
소영은 속으로 계산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손을 써서 그들 중 두 사람을 부상시켜 적진의 변화운용을 마비시킨다면 혹시 일거
에 통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이 비호진의 위력을 한동안 감소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 선 두 사나이가 호랑이 대가리인 듯 다섯 자 정도 가까이 다가와서 일제히 큼직한 도끼를
치켜 들었다.
소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흥! 저들은 기필코 내게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그는 탄지신공을 펼쳐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먼저 처치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두 마디의 윽 하는 비명 소리를 지르며 선두에 섰던 두 사나이가 손에 든 무
기를 놓치고 아랫배를 움켜 잡으며 주저앉았다.
긴 수염의 노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봐라! 어찌 된 일이냐?”
두 사나이는 일제히 대답했다.
“사부님, 갑자기 복통이…”
“어째서 갑자기 복통이 일어났느냐?”
이 때 무용이 한 옆으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중독되었기 때문이지요.”
노인이 흠칫하고 물었다.
“네가 어떻게 아느냐?”
무용은 깔깔대며 웃었다.
“내가 내린 독인데 내가 모를 리가 있어요.”
노인이 격분해서 소리쳤다.
“이 못된 계집애야! 내가 먼저 너를 죽이겠다.”
무용은 몸을 날려 재빨리 피하며 여전히 웃었다.
“당신의 무공이 이중에서 가장 강한 것 같기에 나 역시 독을 가장 많이 사용했지요.”
그 노인은 일장을 뻗치더니 돌연 두 눈썹을 찌푸렸다. 더 이상 제 이장을 펼칠 힘이 없었던 것
이다.
흰 수염의 노인은 무용에게 일장을 뻗어낸 후 갑자기 아랫배가 칼로 도려내는 듯이 몹시 아파왔
다. 그 아픔은 무공의 경지에 이르러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력이 범인과 같지 않은 노인에게도 이
루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뒤에 나머지 여섯 명도 저마다 무기를 버리고 배를 움켜 잡으며 쭈그리고 앉았다.
갑자기 이렇게 모두 복통으로 신음하는 모양이, 지난날 그 음식점 안에서 본 것과 똑같음을 본
소영은 무용이 독을 사용했음을 알았다.
그는 심중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나를 배신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녀가 계략적으로 기회를 노리다가
독을 사용했구나! ‘
비호대진의 열 사람 중 아홉 명이 배를 안고 쩔쩔매고 있었다. 오직 그 긴 수염의 노인만이 엄
연한 자세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억지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
다.
“소대협, 저들을 죽일까요? 지금 저들은 모두 반항력을 잃고 있어요.”
소영은 무용의 얼굴에 시선을 박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용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껴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왜 그렇게 저를 쳐다보세요?”
소영이 가볍게 탄식했다.
“낭자는 어느 틈에 독을 사용했소? 내가 어찌 보지 못했을까?”
무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소대협이 그것을 알 수 있었다면 제가 어찌 다른 사람을 중독시킬 수 있겠어요?”
소영이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낭자는 이미 할머님의 솜씨를 그대로 계승했구려.”
무용은 고개를 저었다.
이 때 그 흰 수염의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서히 쭈그리고 앉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을
참느라고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제자 아홉 사람은 공력이 그 노인보다 못하였기에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실성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소영이 나직이 물었다.
“낭자, 저 사람들은, 이제 죽게 되오?”
무용은 고개를 저었다.
“독 때문에 죽지는 않아요 그러나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모두들 자살을 해 버릴 거예요.”
소영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독물은 굉장히 지독하군.”
무용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남이마가 저의 할머니를 죽인 후 저로 하여금 강호상의 험악과 공포를 몸소 겪게 했지요 저
의 무공은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할 만큼 높지를 못하여 독을 사용하는 방면에 정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므로 제가 독을 사용하는 기술은 그 당시보다 많이 진보되었지요.”
땅에 쭈그리고 앉아 고통을 못 이겨 신음하는 열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는 서서히 말을 이었다.
“이 자들은 소대협과 아무런 원한도 없고 평소에 알지도 못하는데 어째서 소대협을 죽이려고 했
나요? 그들이 만약 심목풍의 수하라면 생각할 여지가 없겠지만 그들은 그의 수하가 아니며 우리
들과 적대시하는 원인은 순전히 명리를 쫓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들에
의해 우리가 피살되는 것이니 죽이는 수밖에 없어요.”
그녀는 몸을 숙여 땅에 떨어져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그녀의
도끼 밑에 하나씩 죽어 갔다.
순식간에 열 명이 머리가 잘리고 골이 반쪽씩 빠개져 딩굴었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소영은
암암리에 탄식했다.
‘이 무용의 마음속에는 격노와 비분으로 가득차 있구나. 훗날 시간을 내어 잘 선도해야겠다.’
무용은 연거푸 열 사람을 죽인 후 손에 든 피묻은 도끼를 던지며 웃었다.
“소대협, 이제 그만 가세요.”
소영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 열 구의 시체를 묻어 주고 가는 것이 어떻소.”
그러나 무용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요. 이 양쪽 봉우리에는 모두 심목풍의 수하가 매복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지금 우리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 우리가 간 다음에 즉시 이 시체를 묻어줄 거예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무용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낭자, 심목풍은 낭자가 백화산장을 배반할 것을 각 매복에게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낭자는
이렇게 쉽사리 성사할 수 있었소. 그러나 한 번은 어떻게 그것이 통했다고 하나, 두 번은 되지 않
소. 그들은 이번에 반드시 낭자의 배반을 나머지 매복진에게 통지할 것이오.”
무용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소대협이 무슨 말을 했는지 뜻을 이해할 수 없군요. 쉽게 말해보세요.”
소영이 잘라 말했다.
“내 뜻은 낭자가 다시는 출수하지 말고 내 뒤에서 구경만 하라는 것이오.”
무용은 재빨리 반문했다.
“제가 소대협을 도울 기회가 있어도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지요? 분명히 그렇지요?”
소영은 분명하게 말했다.
“그건 아니오. 나의 뜻은 다시는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것이오. 만약 정정당당히 나를 도와 주면
나는 감격해 마지않겠소.”
무용은 가볍게 탄식했다.
“그렇게 저를 생각해 주시니 고마와요. 제 할머님이 세상을 떠난 후 대협은 진정으로 저에게 관
심을 표명한 단 한 사람이에요.”
소영은 이 말에 흠칫하고 황급히 걸어 나갔다. 무용은 소영의 말대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들은 어둠을 헤치며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계속 걸어갔다. 다시 두 개의 산허리를 돌자 값자
기 귓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바라보니 눈앞에 나타난 좁은 계곡 속에 한 줄기 벽수가 흐르고 있었으며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양쪽 산벽 사이에 냇물이 흘러 내리면서 하나의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그 넓이는 약 오 장 정도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할지라도 껑충 뛰어서 맞은편에 내려
설 수는 없었다.
소영은 가로막은 냇물을 보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무용은 몹시 의외인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소대협, 당신은 물속에서의 무공을 아시나요?”
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무용도 한숨을 쉬었다.
“저 역시 몰라요.”
소영은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심목풍은 이미 내가 물에서의 무공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니 기왕 이렇게 천연적인
장애를 그가 버려 두고 이용하지 않을 리 없지요.”
무용이 물었다.
“소대협의 말씀은 심목풍이 이 연못을 이용해서 다시 사람을 보내 우리를 막는다는 말씀인가
요?”
“그렇소. 심목풍은 반드시 이 천연적인 장애를 이용해서 악독한 매복을 마련했을 것이 틀림 없
소.”
무용은 갑자기 걸음을 옮겨 연못가로 걸어 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한편으로는
손을 들어 손짓을 해 보았다.
소영은 서서히 앞으로 걸어 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낭자는 무엇을 손짓하고 있소?”
“저는 이 연못이 얼마나 넓은지 계산하고 있어요.”
소영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낭자가 이 연못을 계산해서 뭘 하려고 그러오?”
무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저는 이 연못의 깊이가 얼마쯤 되는지 계산을 해 낼 수가없군요. 만약 그것을 알 수 있다면
독을 풀어 넣을 수 있을 텐데…”
소영은 놀라며 물었다.
“독을 풀어 넣는다고?”
무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는 이 연못 속에 독을 풀어 넣겠어요. 만약 심목풍이 연못 속에 사람을 매복시켰다면
반드시 제가 풀어 넣은 독에 중독돼서 죽을 거예요.”
소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반대했다.
“안 되오.”
무용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째서 안 됩니까?”
소영은 천천히 말했다.
“이 연못의 물은 샘물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으로 몇 년이 되었는지 모르오. 이 연못 속에는 반
드시 많은 고기떼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 만약 낭자가 이 연못 속에 독을 풀어 넣는다면 그 고기
떼들은 틀림없이 희생될 것이 아니겠소?”
무용은 쓰디쓰게 웃었다.
“당신은 매우 인자하군요.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떻게 그런 고기떼들까지
보살필 수 있겠어요.”
소영은 단호히 말했다.
“심목풍이 이 근방에 매복을 설치했다 해도 이 연못 속에는 있지 않을 것이오.”
무용은 입을 열어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하는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비쳤다.
그 그림자는 여러 개의 나무 기등을 연결하여 그것을 타고 서서히 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의 지금 솜씨로 삼 장쯤 뛰어오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저 부목이 연못의 중심까지만
다다르면 즉시 그 위로 뛰어올라 맞은편 언덕으로 가야겠다. 발이 땅에만 닿는다면 그들을 겁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퍼뜩 뒤에 있는 무용을 상기하자 소영은 자기의 계획이 장벽에 부딪침을 깨달았다.
소영과는 달리 무용의 경공으로는 불가능한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형편으로는 그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기만을 기다려 다시 작전을 꾸밀 수밖에 없는 노릇
이었다.
소영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가까이 접근했다.
소영은 시력을 집중하여 그것을 바라보았다. 일행은 두 사람이었다.
그 중의 하나는 다름아닌 소요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소요자는 도포를 벗고 경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어려 보였다. 그는 푸른 장삼을 걸치고 송장처럼 빳빳하게 뗏목 위에 서
있었다.
마치 예술가의 뛰어난 솜씨로 조각된 하나의 동상처럼.
‘저 사람의 모습은 매우 이상한데 도대체 누굴까? 그러나 심목풍에게 매복으로 발탁된 사람이니
깔볼 인물이 아닐 것이다.’
소영은 소요자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난 또 누구라고… 이제 보니 소요 도장이시구려 ”
소요자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과연 소대협은 무섭구려. 한 눈에 빈도를 알아 보았으니…”
소영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도장이 옷을 갈아 입은 것은 대단치 않소. 당신이 잿더미로 화했다 하더라도 나는 역시 당신을
알아 볼 것이오.”
소요자는 여전히 웃었다.
“산길은 걷기가 어려워서 도포를 입으면 행동하기가 곤란하오.”
소영은 냉소했다.
“도장과 사해군주가 기어코 심목풍에게 굴복했구려? 나는 그럴 줄 미처 몰랐기에 실망이 크오.”
소요자는 곧 대답했다.
“우리는 조건부로 합작을 하는 것이오.”
소영은 싸늘하게 쏘아 부쳤다.
“심목풍에게 굴복을 했건 그대들이 조건을 내세워 합작을 했건 나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요.”
소영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도장이 이곳에 무슨 매복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뚫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오.
나는 당신의 분부만 기다리겠소.”
소요자는 소영의 말엔 대답을 않고 눈길을 무용의 얼굴에 박고 입을 열었다.
“조모님의 죽음을 빈도는 무한히 유감으로 생각하오.”
무용은 냉랭히 대답했다.
“당신은 거짓으로 조의를 표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가요?”
소요자는 즉시 대답했다.
“그야 물론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무용은 비웃었다.
“저의 할머님은 이미 돌아가셨으니 당신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요? 당신이 정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면 저를 한 번 도와 주는 것이 어때요?”
소요자가 급히 물었다.
“낭자를 어떻게 도와 달라는 말이오?”
무용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지요 우리가 이 연못을 건널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 주기만 하면 돼요.”
소요자는 냉랭히 말했다.
“낭자, 그대는 이 연못의 저편에 오룡대진(五龍大陣)을 마련하고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을 아시오?”
무용이 다그쳐 물었다.
“무슨 오룡대진 말이에요?”
소요자는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것은 심목풍이 무림의 고수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자랑으로 믿는 유일한 기진(奇陣)이
오. 그는 그 오룡대진에 적지않은 심혈을 쏟아 넣은 것이오.”
소영이 나서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본 일이 있소. 그러나 뭐 별로 신기한 것도 아니더군요. 다만 기이한 복장을 걸쳤
으며 그 복장에 검과 창(槍)이 들어가지 않는 괴인이 몇 명 있다는 것뿐이더군요.”
소요자는 한숨을 쉬고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소대협, 그대는 비록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이지만 지금 당신은 다만 외톨이로 한 사람뿐이 아
니오?”
소영은 그를 지그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도장, 당신의 말속에 담은 뜻을 이해 못하겠군요.”
소요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좋소! 빈도는 다시 분명하게 말씀 드리겠소. 지금 이곳에 있어서 소대협은 남의 도움을 가장 필
요로 하고 있단 말이오.”
소영은 눈을 돌려 주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도장께서 만약 어둠을 버리고 광명을 찾겠다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나는 천하 영웅들에게 잘 말
씀 드리겠소.”
소요자는 냉랭히 웃었다.
“소대협의 생각은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하구려.”
소영은 다시 입을 열어 강조했다.
“도장의 속셈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분명히 밝혀 주시요.”
소요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소대협은 금궁에 들어가셨을 때 무엇을 얻었소?”
“한 자루의 강철을 종이 자르듯 하는 단검이오. 나 역시 이 단검이 있기에 비로소. 심목풍의 오
룡대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오.”
소요자는 다시 물었다.
“그 외에는 또 없소?”
소영은 숨김없이 대답했다.
“소왕장방의 무공비록이 또 있소.”
소요자가 그의 말을 곧 받았다.
“그렇소. 내가 소식을 듣기에도 그 우문한도가 이미 장방의 무공비록을 소대협에게 줬다고 하던
데 그것이 정말이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소요자는 심중의 기쁨을 억누르고 담담히 웃었다.
“만약 소대협께서 장방의 비록을 나에게 기증하신다면 빈도는 전력을 다하여 소대협이 백리낭자
를 구하는 일을 도와 드리겠소.”
소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암암리에 소요자의 탐욕을 비웃었다.
“저 사람은 참으로 욕심이 대단하구나. 그러므로 군자의 수법으로 그를 상대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잠잠히 소요자를 바라보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요자는 다시 소영에게 말을 걸었다.
“소대협, 신중히 생각해 보시오. 그 백리낭자의 생명이 중요하시오, 아니면 장방의 무공비록이
중요하시오? 얻고 버리는 것은 소대협의 마음에 달렸으니 빈도는 절대 강제로 하지는 않겠소이
다.”
소영은 다시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방의 무공비록은 이미 악누님에게 돌려 주었고 소림의 탄지신공과 화산검법은 등일뢰와 전엽
청에게 주었는데 지금 어떻게 그것을 주겠는가? 그들이 나의 목숨을 빼앗는다 해도 무공비록을
가져갈 수 없으니 내가 이것을 미끼로 하여 소요자를 유인하여 심목풍의 내막을 좀 털어 놓게 하
는 것이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대적하는 데 참고도 될 것이니…’
이렇게 생각을 한 소영은 슬쩍 딴전을 피웠다.
“도장의 이목은 과연 민첩하시구려.”
이 말에 소요자는 더욱 몸이 달은 듯 급히 말했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없으니 소대협의 뜻이 어떠하신지 빨리 말씀해 보시오. 지금 이렇게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니 빨리 결정을 내려 주어야 하겠소.”
소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겨우 심중의 초조함을 진정시켰다. 그는 소요자를 바라보면서 서서
히 입을 열었다.
“나는 현재 이처럼 험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데도 침착할 수 있는데 나하고 입장이 반대인 도장
께서는 어째서 이다지 급하게 서두르시오.”
소요자는 소영의 이러한 태도가 몹시 뜻밖인 듯 소영을 한동안 지그시 쏘아 보다가 입을 열었
다.
“귀하는 스스로의 안위를 고려치 않는다 치더라도 백리낭자의 생사가 궁금치 않단 말이오?”
소영은 태연히 말했다.
“심목풍이 매복을 설치해 놓고 백리낭자로 나를 유인하여 이곳까지 오게 했는데 내가 백리낭자
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심목풍이 그녀를 해치지 않을 것이리라 생각하오.”
소요자는 비웃듯이 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빈도는 소대협이 무공만 고강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뜻밖에도 소대협의 수양 공부 역시 이
처럼 고심한 경지에 도달해 있구려.”
소영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슬그머니 이렇게 말했다.
“그까짓 한 권의 무공비록으로 만약 정말로 백리낭자와 내가…”
소영은 무용을 힐끗 보고는 그녀를 덧붙였다.
“그리고 또 이 무용낭자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자연 하찮은 한 권의 소왕비록 같은
것은 아끼지 않겠소.”
소요자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소영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
다.
“보아하니 우리의 이 흥정은 성공할 가망이 매우 크구려?”
소영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렇게 말했다.
“소요 도장,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 솜씨를 지니고 있는지 그것을 나는 보아야 하겠소.”
소요자는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영은 더욱 이상한 질문을 그에게 했다.
“귀하의 무공은 심목풍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생각하오?”
소요자는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빈도는 그와 일대 일로 상대한다면 그에게 한 수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소.”
소영은 거침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머리는 쓰는 데 있어서는 어떻다고 생각하시오?”
소요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빈도와 심목풍을 비교한다면 아마 막상막하일 것이오.”
소영은 슬쩍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는 바로는 도장의 심기와 악독함은 그 심목풍보다 덜한 것 같소. 당신들이 막상막하라
할지라도 지금 양쪽 언덕의 깎아지른 듯한 저 절벽에는 심목풍의 이목이 번뜩이고 있소. 그 깔려
있는 이목들은 도장이 지금 나와 이렇게 흥정하는 것을 보고 도장이 배반한 것을 눈치챘을 것이
오. 그러니 이 사실이 즉시 심목풍에게 보고 됐음을 나는 의심치 않소.”
이렇게 말한 소영은 슬쩍 소요자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만일 이 소식에 격분한 심목풍이 도장을 응징코자 했을 때 당신은 스스로를 보살피기 어려울
터인데 어떻게 우리 세 사람을 구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소요자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소대협께서는 무공이 갈수록 강해질 뿐 아니라 머리를 쓰는 데도 역시 크나큰 진보를 이루고
있는 것 같구려?”
소영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러분의 공이 컸소. 당신들 같이 심기가 뛰어난 고수와 함께 있으니 내
가 진보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 여러 모로 발전을 보게 됐소이다.”
소영은 이렇게 말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소요자에게 시선을 고 정시키고 물었다.
“소요도장은 어떻게 우리들을 구할 것인지 먼저 그것부터 알려 주시오. 만약 그것이 확실히 가
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 나는 장방의 무공비록을 기꺼이 올리겠소.”
소요자는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보니 소대협께서는 심목풍에 대하여 역시 많은 두려움을 품고 계시는구려.”
소영은 잘라 말했다.
“무림도상에서 잔인한 인물을 논한다면 심목풍을 첫 손가락에 꼽지 않을 수 없소. 도장께서 방
금 머리를 쓰는 솜씨는 그와 막상막하라고 자부했지만 실로 나는 믿기 어렵소.”
소요자는 분연히 말했다.
“소대협께서 한 가지 모르는 일이 있소.”
소영이 다그쳐 물었다.
“무슨 일을 내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소요자의 얼굴에는 자존심이 강하게 나타났다.
“심목풍은 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며 빈도는 그것을 이용하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소대협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이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아 보이나 사실은 엄청난 것이오.”
무심과 유심 그는 오른손을 내밀고 말을 계속했다.
“어서 그 소왕의 무공비록을 이리 넘기시오. 빈도가 즉시 이곳을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소.”
소영은 시치미를 떼고 반문했다.
“무엇을 넘기라는 말이오.”
소요자가 답답한 듯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장방의 무공비록 말이오.”
소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백리낭자를 아직 보지 못했소. 설사 그녀를 보았다 하더라도 역시 즉각 당신에게 그것을
넘길 수는 없소.”
소요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그쳐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소영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우리가 얘기한 것은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이오. 우리가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 정식으로 장방의 무공비록을 도장에게 기증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소요자가 노여움을 누르며 음성을 높여 말했다.
“소대협이 이처럼 빈도를 믿지 못하니 빈도 역시 어찌 소대협의 말을믿을 수 있겠소.”
소영은 딱 잘라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신임하지 않기로 합시다. 모든 것은 순서대로 하기로 하고 지금 나는 먼저 이
연못을 건널 생각이오.”
“좋소! 두 분께서 이 배로 올라 오시오.”
소영은 먼저 나지막한 소리로 무용에게 속삭였다.
“무낭자, 일단 오릅시다. 모든 것은 내가 상대할 테니 낭자는 입을 열지 마시오. 그리고 쓸데없
는 일에 참견을 삼가시오.”
무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이 웃고 배 위로 올랐다. 역시 소영도 그녀의 뒤를 바싹 따라 올라
탔다.
“소대협, 장방의 무공비록은 몸에 지니고 있소?”
소영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대답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나는 그것을 미리 밝힐 수 없소이다.”
소요자가 손을 들어 흔들자 부목으로 만들어진 배가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소요자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급히 말했다.
“우리는 저쪽에 닿기 전에 반드시 이야기를 결정합시다. 만약 흥정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맞은편
이 바로 오룡대진이라 소대협은 그곳에 올라가 오 장도 못 가서 그 오룡대진 속에 걸려들 것이
오.”
“도장은 우리 세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어서 그 방법을 제시하시오.”
소요자가 갑자기 여러 번 기침을 하자 배가 연못 중심에서 뚝 멎었다.
소영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맞은편 언덕과 삼, 사 장 거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는 모험적으로 한 번 시험해 볼 만하였으나 무용은 절대로 맞은편 언덕에 오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용을 버리고 혼자서 언덕으로 뛰어 오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영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토면하게 될까 열심히 그 방법을 강구했으나 창졸간에 적당한 대
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요자에게 그는 속으로 생각을 거듭하면서 짐짓 침착을 가장하고 말했다.
“도장은 내가 물속에서 싸울 수 없음을 알고 이렇게 물 한가운데서 수작을 부리오?”
소요자는 고개를 흔들고 나직이 대답했다.
“아니오. 소대협은 시력을 집중하여 사방을 보는데 대강 얼마의 거리까지 볼 수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