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62
162. 거짓 장례, 거짓 조문
무위도장은 제자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소대협에게 제사를 올린 사람들이며 제가 여러분을 이곳으로 즉시 모이라고 한
것은 여러분이 모두 소대협을 깊이 존경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지금 개방에 계신 여러분
들이 이곳에 제사를 모시려 왔으니 여러분은 잠시 천막 속에서 휴식하시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
근처에서 거닐며 소일해도 좋습니다. 삼 일 후 정오에 소대협의 복수를 다짐하는 대회가 열리니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오. 그리고 이 대회에 참석치 않은 사람도
그 때 모이면 그 뜻을 표시한 것으로 치겠습니다.”
무위도장의 말이 끝나자 영당 안에 모였던 군호들은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군호들이 몰려 나가자 영당 안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는데
아직도 한쪽 구석에 열 명쯤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소영이 재빨리 그 쪽을 살피니 백리빙도 그 중에 남아 끼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즉시
그곳으로 갔다.
이 때 손불사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들에게 포권의 예를 올렸다. 그는 무림에서 덕행이 높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그들에게 포권의 예를 올리니 모두들 당황하여 급히 몸을 숙여 큰절을 하며
말했다.
“노선배께서 어찌 저희들에게 이처럼 큰절을 하십니까? 실로 감당할 길이 없소이다.”
손불사는 그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여러분이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은 소대협을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인 줄 아오. 그러나
심목풍이 바로 이 근처에 무림고수를 데리고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막을 준비를 해야겠
소이다. 여러분, 영당의 서쪽으로 모여서 영당을 지키며 다가올 변고에 대비를 하십시오.”
그들은 일제히 그 말에 응하며 영당의 서쪽으로 모였다. 소영과 백리빙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
이 때 사마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개방의 신방주께서 친히 왕림하셨소.”
소영은 눈을 돌려 입구를 바라보았다.
오십쯤 되어 보이는 바싹 마른 중년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 사람의 뒤에는 육십 안팎의
노인이 네 사람 따라 오고 있었다.
그들은 미투리를 신고 회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으며 앞가슴에는 한 송이
조화를 꽂고 있었다.
소영은 내심 중얼거렸다.
‘맨 앞에 마른 사람이 개방의 신방주인 것 같다.’
신방주는 엄숙한 표정으로 소영의 영전에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정중히 몸을 굽히고 큰절을 하
더니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 때 휘장 안에서 별안간 애절한 주악소리가 들려왔다. 그
음향은 무척 처량하여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뒤따라 온 네 명의 노인들은 신방주의 뒤로 약 너덧 자 가량 떨어진 곳에 한 줄로 서 있었다.
신방주가 무릎을 꿇자 수행해 온 네 사람의 노인도 모두 따라서 땅바닥에 꿇어 앞드렸다. 그들이
제사를 마치자 은은히 들려오던 주악소리도 뚝 그쳤다. 손불사는 큰 걸음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방주,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나?”
신방주는 공손히 손불사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사숙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소생은 벌써부터 사숙께서 다시 강호에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숙을 뵈옵고자 했으나 다만 방중의 사고로 인해서 뵈옵지 못했습니
다.”
손불사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 지금은 번거로운 일이 모두 끝났나?”
신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의 덕분으로 조카는 이미 배반한 놈들을 잡았으며, 방의 규칙에 따라 처치해 버렸습니다.”
소영은 내심 고개를 끄덕거렸다.
‘개방 속에도 간신들이 있었구나. 이제 보니 강호에 풍운이 이처럼 긴급한 이 시기에 중요 인물
들이 시종 보이지 않은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
손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나도 마침 자네를 찾던 중이니 우리 가서 이야기 좀 하세.”
신방주는 곧 손불사의 뒤를 따라 네 사람의 수행원을 데리고 영위 뒤로 들어갔다.
‘개방 방주가 이번에 친히 이곳까지 조문을 온 것을 보니 아마 개방의 고수들을 집중시켜 심목
풍과 격전을 준비할 모양이구나.’
이 때 다시 사마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림사의 고승 세 분이 소대협의 영위에 애도의 뜻을 표하러 오셨소.”
소영은 다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관문을 지날 때 심목풍의 곁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그들은 정사를 분간
하지 않고 각자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흰 천을 몸에 결친 승려 셋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한 사람
은 육십이 넘은 노승이었고 양쪽에 있는 두 승려는 모두 삼십 안팎으로 보였다.
세 사람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소영의 영전에 다가서자, 합장을 하고 불호를 외우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휘장 뒤에서 다시 애도의 주악이 울려 나왔다. 소영이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 악기의 소리를 들으니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 소리는 마치 퉁소 소리와 같았고 비파의 음과도 같았으나 도무지 누가 그것을 연주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승려 셋은 애절한 주악에 맞추어 정중히 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일어서자 주악소리도 따라
그쳤다.
무위도장은 큰 걸음으로 다가가며 환영하였다. 그는 합장을 하며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세 분께서는 뒤로 들어오셔서 제식(祭食)을 드십시오.”
그러자 가장 나이 많은 노승이 애조띤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빈승은 소시주의 대명을 오래 전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요. 따라서 마음 속에 깊이 경모하
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세상을 뜨시니… 불초는 그 분을 기어코 한 번도 뵈옵지 못하고 말
았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무위도장의 뒤를 따라 영위 뒤로 들어갔다.
‘그 세 분의 승려들은 소림사 안에서 어떠한 신분일까? 무위도장은 그들과 잘 아는 사이인가 보
군. 그러나 사마건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 혹시 일부러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게
아닐까?’
백리빙은 천천이 남들이 눈치채지 않게 몸을 움직여 소영의 곁에 바싹 다가왔다.
이 때 또다시 사마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명객께서 소대협의 영위를 조상하러 오셨소.”
그 말을 듣자 소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것 참 이상이다. 조상하러 온 사람이 어찌하여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을까? 도대체 어떤 인
물인가?’
백리빙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오는 사람마다 유심히 주의해서 바라보았다.
들어온 사람은 청의를 입었으며 또한 흰 헝겊으로 만든 상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천천
히 영당 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소영은 흠칫 놀랐다. 그는 바로 옥소랑군이 아닌가!
옥소랑군은 비록 강호에 날마다 나타났으나 그의 무공이 너무도 고강하여 보통 무림의 인물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는 인피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으나 진짜 얼굴로 나타났더라도 그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
물었다.
옥소랑군은 소영의 영위 앞에 다가서자, 꿇어 앉지도 않았고 예의도 차리지 않았다. 다만 영위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더니 중얼거리는 것이 었다.
“소영, 소영 너는 정말 죽었느냐? 아니면 사망을 가장했느냐?”
영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옥소랑군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옥소랑군은 곁에 사람이 있
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 때 손불사, 무위도장 등은 모두 영위 뒤에 있었으나 그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옥소랑
군의 거동을 간섭하지도 않았다.
한동안 혼자서 중얼거리던 옥소랑군은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영당의 임자는 누구요?”
영위 뒤에서 흰 수염을 가볍게 나부끼며 초곤산이 걸어 나왔다.
“젊은 친구, 무슨 일로 그러시오?”
옥소랑군은 초곤산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는 누구십니까?”
“이 몸은 초곤산이라 부르오.”
옥소랑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명은 많이 들었소이다.”
초곤산은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겸손한 말씀이오. 그런데 친구는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소.”
“초노인장께서는 이 영당의 주인입니까?”
“그렇소이다. 바로 제가 담당이올시다.”
“마침 잘 됐군. 제가 한가지 무리한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노인장께서 들어 주실는지 모르겠군
요?”
“무리한 청이라면 생각컨대 좋은 일은 아닐 것 같구려. 친구가 먼저 이야기해 보시오. 들을 수
있는 부탁인가 어디 봅시다.”
옥소랑군은 서슴지 않고 말했다.
“저는 소영의 시체를 직접 보고 싶습니다. 승낙하여 주시겠습니까?”
초곤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은… 그것은 좀…”
그러자 옥소랑군은 곧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소이다.”
초곤산이 급히 답했다.
“친구, 어서 말씀해 보시오. 상세히 말씀해 주시면 더욱 좋겠소이다.”
옥소랑군은 천천히 말했다.
“저는 소영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 보고 싶소. 만약 그가 정말로 죽었다면 나는 힘을 다하여 복
수를 도와 드리겠소. 그러나 혹 그의 시체가 아니라면…”
초곤산이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소?”
옥소랑군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나는 이 영당을 불질러 버리겠소.”
초곤산은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친구, 그대의 이름은?”
옥소랑군은 차갑게 거절했다.
“나의 이름은 밝힐 수 없소. 노인장께서는 이해해 주시오.”
초곤산은 씁쓸하게 웃었다.
“친구의 인사는 어느 때는 점잖고 어느 때는 벌컥 화를 내고 불평하니 도대체 친구는 적인지 우
리 편인지 알 수가 없군.”
사실상 옥소랑군의 지금 심정은 초곤산의 말대로 매우 모순된 점이 많았다.
옥소랑군의 얼굴은 싸늘하게 변하여 냉랭히 말했다.
“노인장, 만일 당신의 담당시간에 번거로운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사실대로 나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시오.”
초곤산은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좋소. 나는 사실대로 대답하겠소. 소대협의 시체는 이곳에 없소이다.”
옥소랑군의 얼굴이 싹 변했다.
“그럼 어째서 죽었다고 이렇게 장사를 지내고 있소?”
초곤산이 천천히 말했다.
“그 때 심목풍이 그를 원시림 속에 유인하여 사방에 불을 질렀소. 순식간에 암석과 산천이 모두
재로 화해 버렸는데 어찌 그가 살아날 수 있겠소?”
옥소랑군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고 그가 꼭 죽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 않소?”
초곤산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천하 무림 동도들이 한결같이 소대협의 생환을 기다렸지만 그는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소이다.”
옥소랑군이 재차 물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죽었다면 어찌 그의 시체가 보이지 않소?”
초곤산이 되물었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맹렬한 불길에 모든 암석이 녹아 버렸는데 사람의 시체가 남아 있을 것 같
소?”
옥소랑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내뱉었다.
“그럼 노인장께서는 소영이 죽었다고 믿으시오?”
초곤산은 숙연히 대답했다.
“당연히 살아날 수 없으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지.”
옥소랑군은 갑자기 사나운 표정으로 싸늘하게 대답했다.
“만약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초곤산은 곧 대꾸했다.
“그야 물론 천하무림의 경사이지.”
그러자 옥소랑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흥! 오히려 천하대란의 근원이 된단 말이오.”
초곤산은 그를 쏘아 보며 말했다.
“나는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남북을 두루 돌아다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 보았으
나…”
옥소랑군이 곧 말을 받아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말이오?”
초곤산도 지지 않고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보지도 못했거니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아직 보지 못했소.”
옥소랑군은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늙었소. 늙었기 때문에 머리가 신통치 않지.”
초곤산은 화를 벌컥 내며 호통을 쳤다.
“젊은이, 나는 소대협의 영당 앞에서 자네와 싸우기를 원치 않네!”
옥소랑군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총명한 생각이오.”
그는 그렇게 비웃더니 별안간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찾고 있소. 노인장께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태도는 금방 이랬다저랬다 하였으므로 많은 경험을 쌓으며 살아온 초곤산은 도저히 그의
빛과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찾고 있소?”
그러자 옥소랑군은 급히 물었다.
“혹시 노인장께서는 악소채라고 하는 낭자를 알고 있소?”
초곤산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소.”
옥소랑군은 눈을 빛내며 다그쳐 물었다.
“그럼 그 악소채 낭자는 지금 이곳에 있소?”
초곤산이 천천히 대답했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그 악소채 낭자가 소영의 죽음을 들었다면 즉시 이곳으로 왔을 것이라는
것뿐이오.”
옥소랑군은 다시 쌀쌀하게 말했다.
“내가 묻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오.”
초곤산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요? 그럼 그녀는 이곳에 꼭 올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초곤산은 슬쩍 말을 피했다.
“그야 물론. 그녀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옥소랑군은 벽력같이 소리쳤다.
“당신은 늙어서 도저히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구려.”
초곤산도 화를 내며 대꾸했다.
“내 말은 분명하여 모든 사람들이 잘 알아 듣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만약 영당의 일을 상관하는 사람이 또 따로 있다면 노인장은 제발 뒤에서 쉬시고 그 사람을 내
보내시오.”
“당신이 만약 조상하러 왔다면 어서 영위에 분향하고, 트집을 잡으러 왔다면 밖으로 나가서 나
와 결판을 냅시다.”
군중들 틈에 끼어 묵묵히 듣고 있던 소영은 깜짝 놀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옥소랑군은 무공이 심후하며 퉁소의 수법 또한 악랄하다. 그런데 어찌 초곤산이 그를 상대할
수 있으랴. 만약 정말로 손을 쓴다면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옥소랑군은 고개를 돌려 초곤산을 힐끗 보더니 냉랭히 말했다.
“당신을 상대하는 데는 무기가 필요 없지.”
그는 초곤산을 바라보며 연이어 말했다.
“소영의 생사가 확정되기 전에는 나는 당신들을 적인지 친구인지 결정할 수 없소.”
초곤산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했다.
“자네가 일을 귀찮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늙은 탓인지 우리는 서로 말을 이해할
수 없구나.”
옥소랑군은 딴청을 부렸다.
“지금 이곳에 두 사람은 있겠군… 그렇지 않다면 그네들도 심목풍에 의해서 불타 죽었는지…”
초곤산이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옥소랑군은 잘라 말했다.
“중주이고!”
초곤산은 곧 대답했다.
“맞소. 그 사람들은 이곳에 있소.”
그러자 옥소랑군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노인장이 중주이고를 좀 나오라고 해서 나와 만나게 해주시오. 당신과는 더 이상 이야기
할 수가 없군요.”
초곤산이 말을 더하려고 했을 때 상팔이 영위 뒤에서 나왔다.
그는 포권을 하고 읍을 하면서 말했다.
“초형, 뒤에 가서 쉬시오. 이분이 나를 만나 보시겠다니 나도 그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소이다.”
초곤산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 있던 일은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오.”
그는 말을 하며 영위 뒤로 들어갔다. 옥소랑군은 다시는 초곤산을 거들떠보지 않고 눈길을 상팔
에게 돌리고 말했다.
“당신은 나를 알겠소?”
상팔은 그를 보며 대답했다.
“어디서 본 것 같소이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있소이다. 아마 그 때 나는 가면을 썼을 것이오.”
“지금은?”
옥소랑군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진짜 얼굴이오.”
상팔은 천천히 옥소랑군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만약 나의 추측이 틀림 없다면 당신은 옥소랑군일 것이오.”
옥소랑군은 싸늘하게 웃으며 상팔에게 말했다.
“맞았소이다. 바로 나올시다.”
상팔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장형은 무슨 일로 이 상팔을 찾으셨소?”
옥소랑군은 기침을 한 번 하며 진지하게 대응하였다.
“당신에게 한 가지 묻겠소이다.”
옥소랑군은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소영은 참으로 죽은 것이오. 아니면 죽지 않은 것이오?”
상팔도 엄숙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곳 십 리 내 사람들은 전부 다 흰 옷으로 상복을 입었으며 무림에 있는 동지들은 다같이 그
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있소이다. 우리가 이렇게 영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일은 천하에
널리 알려졌는데 당신이 보기에 진정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죽은 것을 가장하고 있는지 어느 쪽으
로 보이오?”
옥소랑군은 상팔의 이 말을 듣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그는 정말로 죽은 모양이구려.”
상팔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렇게 제사를 지내고 있으나 속으로는 그가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터이오.”
옥소랑군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 불은 암석까지도 녹였다는데 그가 어찌 살 수 있겠소.”
상팔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침울하게 말했다.
“우리 무림 동토들은 행운이 있기를 바랄 뿐이오. 그리고 그는 길인천상이니 그 무서운 재난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오.” 옥소랑군이 다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막 입을 열었을 때 갑
자기 사마건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심목풍이 조상하러 왔소이다.”
그의 이 한마디는 청천의 벽력처럼 영당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옥소랑군은 앙천대소를 했다. 그는 혼자 좋아서 중얼거렸다.
“마침 잘왔다. 잘왔어!”
이 말을 들은 상팔이 싸늘하게 물어 보았다.
“당신은 심목풍과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하셨소?”
옥소랑군은 곧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부인했다.
“아니오, 우연히 만난 것뿐이외다.”
상팔이 추궁했다.
“그렇다면 어찌 그리 반가와하며 뭐가 그리 잘 됐다는 것이오?”
옥소랑군은 상팔을 쏘아보며 냉랭히 대답했다.
“나는 직접 심목풍의 입에서 소영의 죽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오.”
이 때 영위 뒤에 드리워진 휘장이 움직이더니 손불사, 무위도장, 그리고 긴 수염이 앞가슴까지
점잖게 늘어져 있고 몸에 상복을 걸친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나왔다.
소영은 군중 틈에서 그 긴 수염의 사람을 보자 무척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도 역시 왔구나. 이번에 이렇게 영당을 세우고 초혼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는 일은 필시 그의
안배일 것이다. 아마 내 추측이 틀림없을 게다.’
소영이 반가움을 금치 못한 그 긴 수염의 소유자는 바로 선기서여의 우문한도였던 것이다. 손불
사와 무위도장은 상팔의 입을 통하여 소영이 우문한도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러므로 그들은 우문한도를 매우 정중히 대우했으며 그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었다.
무위도장은 우문한도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문형께서 결정하십시오.”
우문한도는 사마건에게 눈길을 돌리고 천천히 물었다.
“사마형, 그 심목풍은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왔습니까?”
“주조룡과 금화부인 그리고 남색 옷을 입은 젊은이, 이렇게 모두 네 사람입니다.”
우문한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그들을 들여 보내시오. 그러나 상복으로 바꿔 입혀야 합니다. 그들이 만약 바꾸어 입지 않겠다
고 우긴다면 우리도 전력을 다하여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사마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그렇게 전하지요.”
우문한도는 다시 무위도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도형께서는 수고스럽지만 그들을 경계하라고 전면적으로 명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절대로
저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출수하지 말라고도 아울러 분부해 주십시오.”
무위도장은 대답을 하고 곧 영위 뒤로 사라졌다.
우문한도는 잠시 옥소랑군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물었다.
“장형께서는 심목풍에게 소대협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하시오?”
그러자 옥소랑군은 냉랭히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저는 그링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우문한도가 묘한 질문을 했다.
“소대협의 생사가 판명되기 전에는 당신과 우리들의 사이는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오. 그렇지
요?”
옥소랑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분명히 말했다.
“옳소! 바로 그렇소이다.”
우문한도는 재빨리 말했다.
“그러시다면 장형은 영당 옆에 잠깐만 앉으시오. 심목풍이 소대협의 영위에 제사를 지낸 다음에
정식으로 소대협의 생사문제를 질문하시는 게 어떻소?”
옥소랑군은 코웃음치며 냉랭하게 말했다.
“심목풍은 마음속 깊이 소영을 증오하고 있는데 그의 영위에 제사를 올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우문한도는 옥소랑군을 비웃는 듯이 입가의 냉소를 띠고 점잖게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심목풍은 일개 효웅이므로 당신 장형같이 그렇게 예의를 못 차리는 몰상식한
사람은 아닐 것이외다.”
옥소랑군은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격분을 누를 길 없어 발작하려고 했으나 억지로 그것을 누
르며 입가의 냉소를 띠었다.
이 때 우문한도와 손불사는 다시 영위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교대하여 무위도장이 영위에서 걸
어 나왔다.
이 때 마침 사마건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화산장의 대장주 심목풍께서 영당에 왕림하셨소이다.”
무위도장이 싸늘하게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전하시오.”
무위도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목풍이 천천히 들어왔다.
소영은 그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심목풍은 왼쪽에 주조룡을 거느리고 오른쪽에는 금화
부인을 대동하고 있었으며 그의 뒤를 따르는 남색 옷을 걸친 젊은이는 바로 자기를 사지로 유인
한 남옥당이었다.
천천히 걸어 들어온 심목풍은 재빨리 눈길을 돌려 우선 영당을 슬쩍 살폈다. 그리고 그는 주위
에 고수들이 없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눈길을 무위도장에게 돌리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도장, 그동안 무고하셨소?”
심목풍이 이렇게 묻자 무위도장은 냉소를 하고 싸늘하게 말했다.
“빈도는 몸조심 잘하고 있습니다. 심대장주에게 묻는 수고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심목풍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장, 빨리도 오셨군요. 영당도 우아하고 훌륭하게 꾸몄고…”
무위도장은 정색을 하고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천하의 영웅들이 모두 모여 동심협력하여 하룻저녁에 이 영당을 만들었소이다. 장사 고을의 흰
비단은 전부 써서 이곳 십 리 안팎의 사람들은 모두 소복차림을 하고 있소이다. 속담에 많은 사
람의 뜻을 합치면 성도 쌓을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소이다.”
심목풍은 담담히 말했다.
“이 기풍은 참으로 휘황하군요. 아무리 도장께서 다재다능하더라도 아마 이처럼 넓은 기풍은 없
을 것이외다.”
무위도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심대장주의 말씀은 무슨 뜻이오. 빈도가 이해가 가지 않소이다.”
심목풍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도장께서는 반드시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무위도장은 냉연히 웃으며 잘라 말했다.
“빈도는 모르겠소이다.”
심목풍은 앙천대소하며 말했다.
“제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 이곳에 머물러 있을 것이오. 우리는 우선 소영의 영위에 제사
를 올린 다음 이야기를 나누어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소영의 영당 앞으로 다가가서 정중히 읍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소영은 심목풍이 자기의 영위에 이처럼 큰절을 하는 것을 보자 몹시 뜻밖이라 속으로 어리둥절
했다.
심목풍이 절을 하자 동시에 금화부인과 주조룡 그리고 남옥당 등도 모두 뒤따라 절을 했다.
백리빙은 유심히 금화부인을 주시했다. 절을 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
는 것이 보였다.
심목풍은 절을 한 다음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그는 소영의 영당을 바라보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나보다 오십 년이나 후에 태어났지만 이 형의 생각으론 아무리 꼽아 봐도 당대의 영웅
은 동생과 나뿐일세, 동생이 만약 나와 손을 잡았다면 지금의 무림은 전부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
왔을 것이네. 한 마디 명령이면 강호는 진동될 것이었네, 그렇게 되면 천하의 영웅들은 전부 우리
의 명령에 복종했을 것이며 일개 무림의 맹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정의 임금을 죽인다 해도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동생은 너무나 젊었고 철이 없었네. 목숨을 유지하고 싶은 일반 무림 사람
들이 동생에게 대협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그 대협이라는 두 마디가 동생을 죽였으며, 자네의
공명을 박탈했네. 그리고 나중에 큰 불에 타 죽는 결과가 발생했네 그려. 동생, 생각해 보게나, 그
러한 죽음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무위도장이 냉랭히 그의 말을 받아 말했다.
“소런 말씀 마시오. 그는 청사에 이름을 남기고 죽었소. 천하 무림에 있는 모든 정의의 인사들이
한결같이 그의 죽음을 비통하게 여겼소. 자고로 무림의 많은 영웅, 호걸 중 어느 누가 소영과 같
이 이처럼 영광 속에 죽은 사람이 있었소이까? 그리고 그의 죽음은 마치 몸을 재촉하는 단비처럼
이미 천하의 영웅들을 깨우쳐 주었소이다. 당신의 음모는 성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당신의 소원
이 성취된다 해도 욕된 이름만 후세에 남길 것이오.”
심목풍은 냉소를 쳤다.
“도장께선 저에게 너무 무례하시오. 이것이 만일 오전 전에 있었다면 나 심목풍은 벌써 당신의
목숨을 빼앗았을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무위도장을 쏘아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소이다.”
무위도장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빈도는 심대장주의 적수가 못 되오. 그러나 당신이 손을 쓰는 것을 원한다면 빈도는 서슴지 않
고 상대해 드리겠소.”
심목풍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쏘아 부쳤다.
“저는 도장의 그 용기에 깊이 감탄했소이다.”
무위도장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심목풍은 이미 소대협의 영위에 제사를 올렸으니 만약에 다른 일이 없다면 이제 가도 좋소이
다.”
심목풍이 눈길을 돌려 금화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소
영의 영위만 바라보고 넋을 잃은 사람같이 서 있었다. 그녀의 애통함은 분명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 때 남옥당이 냉랭히 무위도장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이오?”
무위도장도 역시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장문인이오.”
남옥당은 슬며시 시비를 걸었다.
“강호에서 당신네 무당파의 검법은 매우 신묘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부 사람
을 속이는 말 같구려?”
무위도장은 입가에 냉소를 띠고 쏘아 부쳤다.
“빈도는 당신을 본 기억이 있지만 누군지 머리에 남아 있지는 않소.”
이 말은 은근히 당신 같은 것은 기억에 없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옥당이 분연히 눈썹을 치켜 올리며 거칠게 말했다.
“나는 남옥당이올시다. 만약에 나를 믿지 않겠다면 당장에 시험을 해도 좋소이다. 나는 백초 안
에 도장을 굴복시킬 자신이 있소.”
심목풍은 손을 들어 남옥당을 저지했다. 그리고 무위도장을 향해 말했다.
“저는 도장과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싶소이다.”
곧 무위도장이 물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소?”
심목풍이 천천히 말했다.
“강호의 대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소이다.”
무위도장이 즉시 응답했다.
“좋소이다. 어서 말씀해 보시오. 빈도는 경청하겠소이다.”
그러자 심목풍은 주위를 한 번 훑어보고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도장은 믿지 않을 것이오. 지금의 강호는 이미 내가 십분의 칠을 장악하고 있소. 내가 명
령을 내리기만 한다면 아홉 개의 큰 문파도 하루아침에 이 심목풍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오.”
무위도장이 냉랭히 말을 받았다.
“빈도가 알기로는 무림의 많은 동지들이 소대협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하였소이다. 그 중에는
구대문파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소이다.”
심목풍이 흥! 하고 코웃음쳤다.
“그것이 바로 당신들이 이곳에 영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목적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
소. 그러나 당신들은 또 어긋났소이다.”
“빈도는 뭐가 어긋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소.”
“당신들이 이곳에 모두 모인 것은 마침 나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오. 나는 백화산장의
고수들을 전부 풀어 이곳을 포위했소이다. 만약 내가 당신네들을 설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불가불
당신들을 전부 이곳에서 죽여야겠소이다.”
무위도장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가 이곳에 영당을 세우기 전에 이미 우리는 준비가 되었소. 그러니 심대장주의 마음대로
될 것인지 두고 보아야 될 것이오.”
심목풍이 다시 그의 말을 받아 입을 열려 했을 때 갑자기 냉랭한 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만약에 소영이 죽지 않았다면 심대장주는 아마 이렇듯 강렬한 신심(信心)은 없었을 것이오.”
흠칫 놀란 심목풍이 소리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남옥당은 옥소랑군이 이곳에 있는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기에 그만 놀라서 앗! 소리를 질렀다.
심목풍이 재빨리 눈치채고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저 사람을 아는가?”
남옥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다시 심목풍은 다그쳐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인물인가?”
“바로 백운산장의 작은 장주이며 소왕장방의 손자올시다.”
옥소랑군은 그에게 호통을 쳤다.
“닥쳐라! 가조(家祖)는 너와 어떠한 사이인지 잊었느냐?”
남옥당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우리 사이는 이미 오래 전에 끊어졌소이다.”
심목풍은 손을 저어 남옥당을 저지했다. 그리고 점잖은 음성으로 옥소랑군에게 말했다.
“백운산장의 대명은 오래 전부터 들어 온 바이오. 오늘 이렇게 소장주를 만나게 되니 무상의 기
쁨으로 생각하오.”
옥소랑군은 쌀쌀하게 대답했다.
“겸손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심대장주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사실대로 말해주기 바
라오.”
심목풍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소장주의 말투는 과연 사람을 압박하는군. 만약에 내가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렇게 말한 심목풍은 옥소랑군이 미처 입을 열기 전에 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그 말을 듣고 싶소이다.”
옥소랑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문제는 간단하오. 그 소영은 참으로 죽었소?”
그러자 심목풍이 물었다.
“정말로 죽었으면 어떻고 가짜로 죽었으면 또 어떻소.”
옥소랑군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관계가 매우 큽니다. 나와 심대장주에게는 생사에 관계되는 일이지요.”
심목풍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몹시 엄중하군. 소장주와 같은 그런 나이에 어찌 그리 가볍게 죽는다는 말을 하오?”
옥소랑군은 날카로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는 지금 소영이 정말 죽었느냐 그것을 물었소이다.”
심목풍은 불쾌한 듯이 잠시 눈살을 찌푸렸으나 곧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정말 죽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