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70
170. 금검(金劍)
우문한도가 가볍게 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소대협, 심중에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내가 무공자를 석방한 것에 대해 묻는 것이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자의 악독함과 음침함은 심목풍보다 결코 못하지 않소이다. 그를 놓아 준 것은 호랑이를
산으로 보낸 것과 같소이다.”
소영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소. 무공자를 풀어주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그 심목풍과 결투를 결행키로 작정했
소.”
우문한도가 눈을 빛내며 급히 반문했다.
“소대협께서는 직접 심목풍에게 도전을 하실 작정이오?”
“그렇소. 우문선생께서 천하 무림에 알려 심목풍으로 하여금 도전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해
주셔야겠소.”
우문한도가 곧 대답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오. 그러나 소대협이 혼자서 심목풍을 누를 자신이 있으시오.”
“대강 생각을 해 보았소. 그의 공력은 나보다 심후할 것이오. 그러나 나의 무공 초식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절묘하며 또한 심목풍의 연령은 이미 노령에 접어들어 지구전에는 힘이 겨울 것이
오. 만약 내가 천 초까지 싸움을 연장시킨다면 그는 아마 지탱하지 못할 것이오.”
우문한도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소영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호의 대국은 점차 우리들에게 유리하게 변하고 있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한 극단적인 방법
을 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심목풍은 연거푸 좌절을 당했으므로 이미 기가 죽어 있소. 지금은 그가 새로이 강호에 나온 이
래로 가장 암담한 시기일 것이오. 만약 내가 요행히 그를 물리칠 수 있다면 비단 그의 위명을 크
게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일장의 큰 선공이 될 수 있소.”
우문한도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심목풍은 이미 이달 십오 일을 기해 동시에 서신을 날려 각대문파 속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에게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라고 지시를 했소. 그 행동이란 각대문파의 영도적 지위를 수중
에 장악하는 것인데 그는 그것을 이미 결정지은 것이오.”
우문한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그는 황급히 소리쳤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소? 그 음모가 성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소영도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소! 그래서 우리들은 십 오일이 되기 전에 그와 결전을 벌여야 하오.”
우문한도는 이번에는 정면으로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드시 결전을 해야만 하겠구려.”
하더니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계속했다.
“불과 닷새밖에 남지 않았군요.”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래서 나는 우문선생에게 하루 이틀 사이에 심목풍이 나서 서 나와 결전을 벌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오.”
“좋소. 소생은 능력껏 일을 진행시켜 보겠소.”
소영도 얼굴에 긴장이 가득 나타나 있었다.
“불초 역시 이틀 밤 안으로 체력을 보강시켜야 하오. 만약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우문선생께서
모든 것을 처리해 주시고 나를 깨우지 말기 바라오.”
우문한도는 믿음직스럽게 말했다.
“소대협은 안심하고 휴양하시오.”
소영은 가볍게 탄식하며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멈추고 천천히 백리빙의 방으로 들어갔다.
“빙아야, 우리는 한 이틀 푹 쉬어야겠다. 체력을 보강하고 무공을 연구하면서 설사 일초 일식을
배운다 해도 노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무슨 일이 있어요?”
“이틀 후에 나는 심목풍과 생사를 결판내는 일대 결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백리빙이 깜짝 놀라며 소영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심목풍이 오빠의 도전에 응하겠어요?”
소영이 빙긋이 웃으며 백리빙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우문선생에게 심목풍을 출전케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았으니 그는 이미 손을 쓰기 시
작했을 것이다.”
“그를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세요?”
소영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백리빙은 다그쳐 물었다.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 심목풍에게 도전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소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요?”
“심목풍은 이미 각대문파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장문의 권력을
탈취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의 명령을 받들 수 있게끔 말이다.”
“그래서 오빠는 그전에 심목풍을 잡으려고 하시는 건가요?”
“바로 그렇다.”
“그러나 오빠 혼자서 심목풍의 적수가 될 수 없지 않아요?”
“그래서 네가 나를 좀 도와주어야 한다.”
백리빙은 방긋 웃었다.
“우리 둘은 생사를 함께 하는 것입니까?”
소영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틀 동안 최대한 체력을 보강하고 무공
을 연마해야 한다.”
백리빙은 소영과 함께 결전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기쁜 듯하였다.
이틀은 눈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 이틀 동안 소영과 백리빙은 같은 방에서 꼬박 무공을 연습했다.
우문한도는 귀빈을 접대해야 하였으며 또한 소영과 심목풍과의 결투를 안배해야 하였기 때문에
눈코 뜰 새없이 바빴다.
삼 일째 되는 날 오시쯤 소영과 백리빙은 방에서 나왔다.
우문한도와 손불사가 일제히 다가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우문한도가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지금 소대협을 부르려고 하던 참이오.”
“어떻게 됐소? 일은 잘 마련되었소?”
“다행히 명령을 어기지 않았소이다. 내일 오정에 백석파(白石坡)에서 승패를 가리기로 심목풍과
약속이 되었소이다.”
백리빙이 나서며 물었다.
“백석차가 어디에 있어요? 여기와는 거리는 어떻게 되지요?”
이번에는 손불사가 대답했다.
“대략 십여 리는 되지요. 우문선생은 이미 그곳에 사람을 보내서 준비를 시키고 있지요.”
“매우 잘하셨소! 나와 백리낭자는 아직도 몇 초식의 검법이 완성되지 않고 있으니 지금부터 그
것을 다시 연습해 보기로 하겠소. 내일 오정까지는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그러자 손불사가 돌아서는 소영을 불러 세웠다.
“소대협 잠깐만!”
“무슨 일이 또 있으신지요?”
“내일 오정 소대협은 단독으로 심목풍과 싸울 생각이오?”
손불사가 이렇게 묻자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소대협, 내가 몇 마디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을 들은 후 꼭 기억해주기 바라오.”
“무슨 일입니까?”
“소대협의 나이는 어리며 앞으로 수십 년을 통해 무림상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 분쟁은 모두 소
대협이 해결을 해주어야 하니 함부로 생사를 논하지 말기 바라오. 만약 소대협이 심목풍의 적수
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에는 즉시 초식을 거두고 물러서 주시오. 우문선생은 이미 거기에 대응할
안배를 해놓았소.”
소영은 신기한 듯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미 무엇을 마련했다는 말씀이오?”
우문한도가 그의 말을 받았다.
“요즘 며칠 동안에 많은 무림동도들이 또다시 이곳에 달려왔소. 그들은 모두 소대협이 불길 속
에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자 미친 듯이 기뻐하고 있소이다. 소대협이 무림의 정의를 옹호하겠다
고 결심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그들은 모두 감격하여 흥분에 휩싸여 있소이다.”
소영이 결심한 듯 잘라 말했다.
“내일 그들도 모두 나와 심목풍치 결전에 참석케 하시오. 나를 위해서 사기를 높여줄 수 있으니
까요.”
“그 중에 중주에서 오신 한 분이 꼭 소대협을 만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나를 대신해서 우문선생이 사절해 주시오. 나 소영이 우쭐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내일
오정의 결전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준비할 것이 많아 그러는 것이오.”
“그분은 중요한 일로 꼭 소대협을 만나야 한다고 우기고 있소. 나이가 팔십에 가까우며 새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노인이요. 저는 더 이상 사절할 수가 없소이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곧 만나러 갑시다.”
“그 노인은 지금 대청에 계시오.”
우문한도가 앞장서 걸어갔다.
소영은 우문한도의 뒤를 따라 대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청 안에는 백 명이 넘는 무림동도
들이 운집해 있었는데 모두가 소영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우문한도가 손을 올리자 떠들썩하던 대청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분이 바로 소대협이시오!”
소영은 포권을 하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저의 일 때문에 여러분께서 먼 길을 오셨으니 소제는 지극히 송구할 따름입니다.”
군호들은 일제히 이에 대꾸했다.
“소대협은 우리 무림에 있어 구원의 별이신데 저희들애 먼 길을 좀 오기로서니 뭐가 그리 대단
하오.”
굵직한 음성이 소리쳤다.
“길인은 천상의 법, 소대협께서는 변을 당하셨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았는
데 과연 내 추측이 적중됐소이다.”
또 다른 칼칼한 음성이 들렸다.
“소대협께서 우리들을 구하기 위하여 마도 속에 뛰어들어 수고해 주셨는데 우리들은 보답을 할
능력이 없으니 응당 일배(一拜)로써 예의를 표시해야 하오.”
일호백응(一呼百應), 대청 안에 모여 있던 백 명 이상의 영웅들이 일제히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하
였다.
손불사는 이 광경을 보자 탄성을 질렀다.
“고금을 통해 이처럼 무림동도의 존경을 한 몸에 모은 사람이 우리 소대협 말고는 아무도 없소.”
소영은 군호들이 일제히 큰절을 하는 것을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급급히 땅에 엎드려 마
주 절을 했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하신다면 나 소영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우문한도가 그의 말을 이었다.
“소대협은 기남(奇男)이시니 여러분께서 속된 예의로써 그를 난처하게 하지 마시고 어서 일어나
기 바라오.”
과연 이 말은 크게 효력이 나타났다. 엎드렸던 군호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 때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인 한 사람이 베옷으로 된 상복을 걸치고 군호들 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천천히 소영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포권을 하고 입을 열었다.
“소대협!”
그러나 소영도 공손히 그에게 답례하였다.
“고(古) 노선배님이시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고공도(古公道)라 하오.”
“고노선배님께서는 저에게 무슨 말씀이 있으신지요?”
고공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수십 년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더 못 기다리겠소.”
밑토끝도 없는 말에 어리둥절해진 소영이 의아한 낯으로 물었다.
“선배님,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경청하겠소이다.”
고공도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한 분의 기인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의 물건을 한 가지 보관해 왔었소. 그는 저에게 그
를 대신해서 무림에서 공인된 대협을 한 분 선택해서 그의 물건을 기증하라고 했지요. 나는 그
동안 몇 십 년을 두고 그것을 받을 인물을 물색해 왔었소. 그러던 차에 소대협이 나타났소. 소대
협만이 이 물건을 받을 자격이 있소.”
소영은 뜻하지 않은 말을 듣자 별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노선배님은 무슨 물건을 보관하고 계십니까?”
고공도는 품에서 노란 비단으로 싼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것은 한 자루의 금검이오. 요기를 소탕하고 무림을 보호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외다.”
말을 끝내자 양 손으로 그 팜검을 받들어 공손히 소영에게 주었다. 이런 경우 사양을 할 수 없
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소영은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노란 비단을
천천히 풀어 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서 금빛도 찬란한 검집이 드러났으며 두 자도 되지 않는 그
검집에는 고양이 눈알만한 일곱 알의 빛나는 보석이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그 검집 속에 들은
검은 볼 것도 없이 단지 이 검집만 보더라도 이미 굉장히 값어치 있는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었
다.
그것을 본 소영이 검에서 눈을 돌려 고공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검은 너무 고귀하여 소생은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고공도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검은 이미 협사에게 을렸으니 임자가 된 소대협께선 어서 검을 뽑아 보십시오.”
소영은 금검의 검집을 들었다. 그리고 솜씨좋게 검을 뽑았다.
한 줄기 싸늘한 한기가 얼굴을 스쳤다.
“좋은 검이오. 훌륭한 보검이외다.”
소영은 감탄하며 격찬해 마지않았다.
싸늘한 섬광 속에 한 가닥 금빛이 눈을 쏘았다. 한 자 여덟 치의 보검 중간에 한 줄기 금줄이
박혀 있어 눈부시게 빛났다.
우문한도가 입을 열었다.
“마를 항복시키는 금검이 삼백 년 전에 강호에 한 번 출현하여 크게 위력을 떨쳤었소. 육십 사
명의 마두를 쳐 없애서 무림을 계속 팔십 년 동안 평정케 했으며 분쟁도 없게 했었소이다.”
그러자 고공도가 곧 그의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우문선생은 과연 견식이 매우 넓으시구려. 이 복마금검(伏魔金劍)은 강호의 마도들을
없앤 후 감쪽같이 사라져 보이지 않아 어떤 사람은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구천을 날아갔다고 했지요. 그러나 사실은 인간 세상에 간직되어 있었소이다. 이 검을 맡긴 사람
은 이 금검이 훌륭한 주인을 만나야 한다고 했소.”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음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떠났소.”
대청 속에 군호들이 크게 소리쳤다.
“당대에는 소대협만이 그 검을 찰 자격이 있소!”
소영이 얼굴을 붉혔다.
“여러분께서는 용서하십시오. 제가 무슨 덕이 있다고…”
그러자 고공도가 단호한 말투로 엄숙히 입을 열었다.
“소대협은 사양할 수 없소이다. 나는 이미 재삼 숙고를 한 후에 결론을 내린 것이니 소대협께서
는 금검을 거두어주시기 바라오.”
소영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어,
“그럼 소생은 우선 노선배님을 대신하여 보관하겠소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고공도는 껄껄 웃었다.
“이 금검은 나를 수십 년 동안 눌러 편안히 숨 한 번 못 쉬게 했는데 지금 이렇게 주인을 찾았
으니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소.”
그는 몹시 유쾌한 듯이 소영을 바라보고 앙천대소했다.
대청을 찌렁찌렁 울리던 그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지더니 그는 그대로 땅에 쓰러지고 말
았다.
소영은 황급히 고공도를 부축해 일으키며 소리쳤다.
“노선배님… 노선배님!”
손목을 짚어 보니 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는 게 아닌가. 우문한도는 가볍게 탄식을 하며 침울
하게 입을 열었다.
“이분은 오랫동안 품어 온 소원을 이루었으니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오. 자아, 보십시
오. 이분의 입가에는 아직도 웃음이 이렇기 남아 있지 않소? 심중의 유쾌함을 알 수 있구려.”
군호들의 눈이 일제히 고공도의 죽은 얼굴로 쏠렸다. 과연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
지 않고 입가에 서려 있었다.
소영은 우문한도를 힐끗 돌아보고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우문선생, 될 수 있는 한 장례를 후하게 치르도록 하시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이다.”
그는 눈길을 돌려 사방을 한 번 보고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겨러분, 이분께서는 천리를 달려 소대협에게 검을 넘긴 후에야 크게 안심하고 유쾌하게 웃으며
숨을 거두었소. 이것은 한 가지 일을 증명하는 것이오. 하늘에서 굽어 살피는 눈이 있어 우리 무
림동도들의 대난은 곧 사라진다는 징조이오.”
그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소대협께서 내일 심목풍과 백석파에서 결전을 벌이기로 되어 있소. 이 일은 우리 전체 무림동
도들의 운명에 관계되니 여러분들의 관심도 소대협 못지않다고 생각되오.”
군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우리들은 소대협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소.”
우문한도가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께서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다니 소대협은 감격하여 더욱 용기백배할 것이오. 내일은 여
러분들도 모두 그 결전장에 나가셔서 우리의 희망인 소대협을 위해 사기를 높혀 주기 바라오. 그
러나 지금 소대협께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여러분과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만
자리를 뜨시게 합시다.”
군호들이 일제히 포권으로 대답했다.
우문한도가 소리쳤다.
“좋소이다. 여러분과 함께 한 잔 들어서 여러분들을 접대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소.”
군호들이 자기를 이렇게 추대하는 것을 보자 소영은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
다.
그는 즉시 포권을 하고 말했다.
“여러분 마음껏 드십시오. 소영은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그러자 대청 안에 군호들티 일제히 포권의 예를 올렸다.
“소대협, 몸조리를 잘하시길…”
이 소리를 뒤로 하고 소영은 정실(靜室) 안으로 들어왔다.
백리빙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무림동도들의 애호를 한 몸에 지니고 있군요.”
“그들이 나를 열광적으로 추대하면 할수록 더욱더 나로 하여금 책임의 중대함을 느끼게 하여 어
깨가 무거워지는구나.”
백리빙이 방긋 웃으며 그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쟁쟁한 이름이 그 사람을 오히려 괴롭힌다는 말은 과연 틀리지 않는 말이군요. 내일의 대전에
서 부디 심목풍을 눌러 소원을 이루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소영이 심각하게 말했다.
“나는 내일의 가장 어려운 일전은 심목풍과의 일장의 결투가 아니라고 느껴지는구나.”
백리빙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심목풍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에요.”
소영이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며 침통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예감만 들 뿐 나 자신이 꼭 어떻다고 결정을 할 수는 없다만 어쩐지 자꾸 그런 생각
이 든다.”
그는 품속에서 무공이 기재되어 있는 경문을 꺼내더니 다시 입을 열 었다.
“빙아야! 이 책을 잘 보관해라. 내가 만약 내일의 일전에서 불행히 적의 손에 쓰러지거든 너는
이 경문을 꼭 악언니에게 전해주어라.”
백리빙은 소영의 손에 있는 그 경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빠, 정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세요.”
“아니 왜?”
백리빙이 비장한 결의를 얼굴에 담고 소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렇게 오래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오빠는 제 마음을 모르세요? 오빠가 죽으면 제가 어
떻게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에요?”
소영은 씁스레 웃으며 조용히 말하였다.
“빙아야, 나는 너의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이것은 준비에 불과한 것이다. 단독으로 심목풍을
상대하면 나의 승산은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되지 않는가? 악누님은
총명하니 그녀의 생각과 지혜는 이 소영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감정에 얽매어 그녀로 하
여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진보를 구할 수 없게 할 뿐이다. 만약 그 대인대사의 말씀이 옳다
면 이 경문 속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이 무공중의 대승의 학문일 게다. 그러니 역시 나의
복수를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적으로 이 경문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알겠니?”
백리빙은 멍청히 그를 바라보고 있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빠께서 저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시면 저도 이 경문을 대신 보관할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제가 경문을 악언니에게 주고 다시 오빠의 장지에 돌아와서…”
소영이 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웃으며 말했다.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내 영혼을 벗삼겠다. 이 말이냐?”
백리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저는 묘를 다시 열어 관을 뜯고 오빠의 시체 옆에서 자결하여 오빠와 함께 묻히겠어
요.”
소영은 이 말을 듣자 가슴속에 피가 들끓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진실로 감동되었다. 그
러나 그는 겉으로는 될 수 있는 한 차분한 빛을 유지했다.
“먼저 경문을 보관해라.”
백리빙도 선뜻 경문을 받아 품속에 간직했다.
“오빠, 어째서 꼭 저더러 악언니에게 전하라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을 시키면 저도
오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아요?”
소영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은 악누님을 만날 수가 없다.”
“왜요?”
소영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악누님은 틀림없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백리빙도 끄덕였다.
“악언니는 정말 불쌍해요. 어떤 남자이건 그녀만 보면 모두 반해버리니 말이에요. 악언니는 그것
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녀는 잠시 시간을 재어 보더니 말을 이었다.
“시간이 이르지 않으니 오빠는 휴식을 취해야 해요. 어서 쉬세요.”
소영이 대답했다.
“나는 몇 초식의 무공을 더 연마해야 하니 나를 일깨우지 마라.”
백리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잠시 나갔다 오겠어요.”
소영이 그녀를 쳐다보고 물었다.
“어디를 가려고 그러니?”
백리빙은 빙그레 웃으며 소영에게 대답했다.
“저의 가슴에는 명백치 못한 일이 많아요. 우문선생과 이야기하면 좀 나을까 생각돼요.”
“빙아야! 허다한 일을 많은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백리빙이 상냥하게 웃었다.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우문선생 한 사람과 이야기하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오빠를 보호하라고
하고 저는 그와 이야기를 하다 오겠어요.”
그녀는 소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소영은 그녀의 눈썹 사이에 무슨 걱정거리가 많은 것을 눈치챘다.
‘요. 며칠 사이에 나는 그녀와 기거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유쾌한 얼굴을 한 것을 하루
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종일 초조해 하였고 나를 위해 무한히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가냘픈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속에는 일종의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한 감이 가득
찼다.
그러나 내일의 결전을 생각하니 이렇게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어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
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히 머리 속으로 검초식을 생각했다.
백리빙이 대청으로 걸어 나오자 대청에는 벌써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우문한도
와 무위도장, 심지어는 손불사까지 나서며 군호들과 한참 담소하고 있었다.
이것은 호걸들의 친목에 크게 이바지하는 호기있고 열정적인 분위기였다. 이 호기로 들끓는 장
면과 소영이 정실에서 사색에 잠겨 무공의 오묘한 경계를 추구하고 있는 장면과는 대조적인 것이
었다.
백리빙은 대청문 입구에서 한동안 기웃거리다가 가볍게 탄식하며 다시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떴
다.
그녀의 심중에는 많은 근심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심각한 고통도 함께 그녀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남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등 뒤에서 갑자기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돌아보니 우문한도가 빠른 걸음
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낭자, 불초를 찾고 있소?”
백리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축중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우문한도는 뜻하지 않았던 일이라 매우 놀랐다.
“낭자 무슨 일이 있소? 말해 보시오.”
백리빙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다시 침착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저는 선생과 의논을 하고 싶어요. 말해도 좋을까요?”
“무엇이건 모두 대답할 테니 낭자는 마음놓고 말씀 하시오. 저를 믿으셔도 무방하오.”
백리빙은 잠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러나 저는 무엇부터 말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군요.”
우문한도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잠시 묵묵히 있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
“소대협과 관계되는 일이오?”
백리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낭자는 내일 벌어질 심목풍과의 결전을 걱정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오? 무슨 말이건 어서 말해
보시오.”
백리빙이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기를 내일의 대결에서 심목풍 말고도 또 한 사람의 더욱 강한 적수가 있다고 하더군
요.”
우문한도는 흠칫 놀랐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구란 말이오?”
백리빙은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는 제게 그것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우문한도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백리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소대협께서 단독으로 심목풍과 대결하게 된다면 내가 보기에는 절대 소대협이 패배하지
않는다고 믿소. 그 심목풍의 공력은 소대협보다 한층 더 심후할지 모르나 그 대신 소대협은 몇가
지의 절기를 몸에 지니고 있소.”
그는 여기서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계속했다.
“더욱이 그 절기는 각기 특별한 기술이 있어 심목풍으로 하여금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게 할 것
이오. 또한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끝마치고 있으니 과히 걱정할 것은 없다고 생각되오.”
백리빙이 곧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했어요. 심목풍 말고 또 한 사람의 강적이 있으니 경우가 크게 달라지
는 것이지요.”
우문한도가 침착하게 말했다.
“소대협께서 말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니 우리 역시 알 도리가 없구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이미 알게 됐으니 내 능력껏 다시 안배를 할 것이오. 필요시에는…”
그러나 그는 갑자기 말을 끊고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았다.
백리빙은 궁금하여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필요시에는 어떻게 할 것이에요?”
우문한도가 천천히 말했다.
“소대협은 정의의 상징이오. 무위도장, 손불사 노선배님과 소생 등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소. 그것은 소대협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백리빙이 근심스럽게 우문한도를 바라보았다.
“말은 비록 그렇지만 그는 심목풍과 단독으로 싸우니 또 누가 그를 대신할 수 있겠어요.”
우문한도는 미소를 띠었다.
“필요시에는 우리가 소대협을 대신해서 죽을 것이며 절대 그를 부상당하지 않게 하겠소.”
우문한도는 미소를 띠며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반복했다.
“필요시에는 우리가 소대협을 대신해서 죽을 것이며 절대 그를 죽게 하지 않겠소.”
“그를 대신해서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저예요.”
우문한도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낭자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 꽃 같은데 벌써 살기가 귀찮아졌단 말이오?”
백리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삶에 번뇌를 느끼고 있어요. 그를 대신해서 죽는 길만이 가장 상책인 것 같이 느껴집니
다.”
우문한도가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주저하며 물었다.
“악낭자 때문이오?”
백리빙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녀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이유의 태반은 역시 저의 소윈이에요. 만
약 제가 소대협을 대신해서 죽는다면 저는 영원히 그들 두 사람의 가슴에 살아 남을 것이에요.
안 그래요?”
우문한도는 백리빙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악낭자에게는 항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타고난 것이오. 여하한 절세의 얼굴도 그
녀와 겨룰 수는 없을 것이오. 만약 소대협이 그녀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나
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오.”
백리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들은 상린(祥麟) 위봉(威鳳)이니 하늘이 만드신 한 쌍이에요. 저는 버드나무에 앉은
가련한 제비에 불과할 따름인데 제가 그들 틈새에서 살고 있으니… 소대협이 저를 생각하는 감정
은 역시 사랑보다는 연민의 정일 거예요.”
우문한도는 고개를 저었다.
“낭자, 나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소.”
우문한도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소대협은 남과는 좀 다르오. 그의 타고난 협골의담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한다는 성
격이 있어서 남보다 특출한 성격을 구성하고 있소. 그는 함부로 남에게 감정을 나타내지 않소. 그
러나 그의 심중의 감정은 다른 사람보다 더 뜨겁게…”
그는 얼굴에 진지한 빛을 나타냈다. 그리고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낭자는 이처럼 오랜 시일을 그와 함께 지내면서 밤낮을 벗삼아 왔는데 이같은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부부나 애인 이외에 젊은 남녀로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소? 소대협의 성격으로는 반드
시 엄하게 구별했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소. 그것은 그가 심중으로 낭자를 자기의 미
래의 반려자로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오.”
백리빙은 커다란 눈을 깔빡이며 급히 물었다.
“그게 정말이세요?”
“제가 언제 낭자를 속인 적이 있소?”
우문한도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계속했다.
“낭자가 못 믿겠다면 내 다시 한 가지 일을 설명하겠소.”
“저는 경청하겠으니 어서 말씀해 보세요.”
“그는 영당 안에서 악소채의 진심을 말하는 소리를 들었소. 그를 남편으로 인정한다는 말을…
그가 만약 낭자에게 대하여 무정했다면 어째서 그 말을 듣고 낭자와 떨어지지 않으며 장시간 단
둘이만 있었겠소. 지금 천하의 군호들이 이곳에 모여 있으며 그도 또한 가장 어려운 일전을 눈
앞에 두고 열심히 무공을 추구하여 조용히 적을 제압할 방법을 찾고 있는 이 마당에 아무런 꺼리
낌없이 낭자를 자기 옆에 있으라고 했잖소? 낭자가 그를 위해서 무공상의 난제라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곁에 있으라고 했겠소?”
백리빙은 방긋 웃었다.
“그의 재질과 지혜는 저로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에요.”
우문한도가 곧 받았다.
“바로 그것이오. 그럼 그는 어째서 낭자에게 자기 옆에 있어 달라고 했겠소?”
우문한도는 신중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소. 그것은 낭자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커다란 위로가 되기 때문이오. 사실
그의 마음은 이미 낭자를 떠날 수 없소. 더욱이 이목을 개의치 않고 낭자를 아끼는 경지에 이르
고 있소. 그대들은 밤낮으로 독방에 함께 있으며 낭자 또한 여자의 모습을 되찾아 여자로서 행세
하고 있으니 남들이 밖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보고 있는지 소대협이 생각 안했을 리 있겠
소?”
“우문선생은 정말 대단해요. 비단 머리를 쓰는데 일품일 뿐 아니라 여자의 사사로운 속마음도
세밀하게 다스릴 줄도 아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