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72
172. 청혼하는 소영
“강호의 각대문파에는 심목풍의 첩자가 숨어 있어 언제라도 독수를 뻗칠 수 있었지. 그들이 일
제히 들고 일어난다면 강호에 미치는 손상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목숨을 걸고 미리
싸움을 건 거야.”
“그래요. 나도 오빠의 뜻을 알고 있었어요. 이제는 강호 무림의 영웅들도 모두 오빠의 업적을 찬
양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노골적으로 백화산장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럼 각대문파 속에 숨어 있는 심목풍의 첩자들을 찾아냈느냐?”
백리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했어요. 그것이 아직도 큰 골칫덩어리예요. 각대 문파의 장문인들은 그 첩자를 색출해 내는
것을 우문선생에게 부탁했어요.”
소영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러나 우문선생은 오빠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아직 강호에 나가지를 않은 거예요.”
“우문선생은 첩자를 색출해 낼 확신을 갖고 있더냐?”
백리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몰라요.”
소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문선생은 오랫동안 백화산장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백리빙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빙아야, 요. 며칠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대강 설명해 주겠느냐?”
“각대 장문인들이 이곳에 달려온 이유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몰라요. 오빠가 부상당한 후부터
줄곧 오빠 곁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마 우문선생께서는 잘 알 거예요.”
“아니다. 자세한 것은 필요 없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그러니까 아무 이야기라도
해줘.”
백리빙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을 꺼냈다.
“그럼… 우선 오빠의 상처부터 이야기할까요? 오빠를 이곳으로 모시고 와서 우문선생과 몇몇 의
도들이 삼 일 동안을 애써 보았지만 별 효과를 얻지 못했어요. 삼 일째 되는 날 낮에 독수약왕이
찾아왔어요. 그는 오빠의 맥을 짚어 본 후 몇 시간 동안 고민을 하더니 품속에서 단 한 개의 영
단을 꺼냈어요. 그것은 마치 콩알만 하고 초록빛을 띤 것이 었어요. 그것을 먹고도 오빠는 나흘만
에 정신을 차린 거예요.”
소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는 내 상처가 어떻다고 말하지 않더냐?”
“그런 말은 없었어요. 저는 줄곧 그의 곁에서 지켜 보았지만 서로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어
요.”
소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무공은 조금도 변화가 없겠지?”
“나는 그런 것을 모르나 오빠는 원상태로 무공을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길 바랄 뿐이다.”
소영은 말을 끝내더니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무공이 전과 동일한가가 염려되었다.
‘혹시 내상으로 인하여 내 무공까지도…’
소영은 암암리에 운기를 조식할 기회만 엿보았다.
마침 백리빙이 자리를 뜨고 창가로 갔다.
‘옳지! 이 기회에…’
소영은 서서히 진기를 유통시켜 보았다.
그의 진기가 가슴에 이르자 돌연 참지 못하는 진통을 느꼈다. 마치 날카로운 비수로 사정없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소영은 이를 악물고 그 통증을 참았다.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었는지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다행히 백리빙은 아무것도 모르고 창 밖만 내다보고만 있었다.
소영은 큰 숨을 들이마신 후 얼굴에 배인 땀을 씻었다.
소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소리는 무의식중에 낸 것이므로 백리빙에게까지 들렸다.
백리빙은 창 밖을 보던 시선을 소영에게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오빠, 주무시지 않았군요.”
소영은 억지 웃음을 띠며 말을 받았다.
“잠이 오지 않는구나. 빙아야, 너는 무슨 근심이 있는 듯한데…”
“악언니를 생각하고 있어요.”
소영은 내심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다그쳐 물었다.
“누님을 생각하고 있다니…”
“언니는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원수를 찾고 있잖아요? 그리고 원수와 생사를 판가름할 대결을
한다는데 지금 오빠가 움직이지를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으니 누가 언니를 도와 주겠어요? 우
문선생께서는 각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설복시켜 언니를 돕도록 노력하였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다
지 신통치가 않아요. 그리고 오빠와 나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소영은 어느 정도 그 뒷말을 눈치채었으나 짐짓 다그쳐 물었다.
“무엇이냐? 내가 어떻다는 것이냐?”
백리빙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들 사이도 확실한 결정을 지어야지…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요.”
“무슨 결정이냐?”
백리빙은 쓴웃음을 띠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야기할 때가 아니예요. 오빠는 몸이나 편히 쉬세요. 몸이 완쾌되시면 자연 알게 될 테니
까요.”
소영은 더욱 궁금하였다.
“빙아야, 우리들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너와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우문선생의 지혜가 개입한
다 해도 우리의 일은 결정짓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서 이야기해 보아라. 네가 무슨 결정을 했
느냐?”
백리빙은 우수가 서린 눈빛으로 소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빠, 오빠와 나 사이는 어디까지나 남매지간이에요. 오빠가 나를 돕고 내가 이렇게 오빠 곁에
있는 것도 모두가 남매간의 정일 뿐이에요. 오빠는 역시 악언니와 한 쌍이 되어야 해요. 나는 오
빠의 몸이 완쾌만 되면 즉시 중원을 떠나겠어요.”
소영은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로 간단 말이냐?”
“집으로 가야지요. 나는 얼음과 눈속에서 살던 몸이니 다시 그 곳으로 가야지요.”
소영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침묵을 지키러니 미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데려다 주겠다.”
그러자 백리빙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건 안 돼요.”
“어째서?”
“나의 가부께선 오빠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고 있어요. 오빠가 만약 나를 데려다 준다면 틀
림없이 싸움을 하게 될 거예요.”
“싸우게 된다면 너는 어느 쪽을 돕겠느냐?”
소영의 이 물음은 사실 짓궂은 것이었다.
백리빙은 미리부터 그런 물음을 할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는 나를 데려다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소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내가 너를 꼭 데려다 주겠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의 영존과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
다.”
“안 돼. 저의 아버님은 성격이 괴팍하여 아무도 말리지 못해요. 더군다나 상대의 변명은 전혀 듣
지도 않고요.”
“그럼 너의 자당께서 나서서 말리시면…”
백리빙은 장탄식을 하였다.
“오빠는 어째서 나를 데려다 주려고 하세요?”
소영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빙아야, 자고로 사위를 죽이는 장인을 보았느냐? 너의 영존께서 아무리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해도 아마 사위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백리빙은 언뜻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잠시 멍하니 소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럼 나에게 구혼을…”
그녀는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다.
소영은 그녀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내심 흠칫 놀랐다.
“빙아, 화가 났느냐?”
백리빙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닦았다.
“아니예요. 기뻐서 그래요. 오빠께서 나를 그토록 생각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그녀는 소영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다음 말을 이었다.
“나는 정말 바보였나 봐요.”
소영은 손을 돌려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빙아야, 우리 자세한 이야기나 하자. 오늘은 내 마음속에 있던 모든 이야기를 모두 해주겠다.
그러나 듣고서 화를 내지는 마라.”
백리빙은 눈물을 말끔히 닦고 단정히 앉았다.
“저는 이미 오빠의 아내예요. 남편이 무어라 하는데 어찌 순종치 않겠어요?”
“현재는 아직도 남매다. 우리는 부모님이 있으니 먼저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돼.”
백리빙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을 수 있어요. 다만 오빠의 양친께서 이 못난이를 며느리로 맞
으실는지가 궁금하군요.”
“그것은 염려 마라. 나의 아버님께서는 이미 명리를 멀리하셨다. 물욕을 모르고 사람을 모두 선
으로 여기시고 있다. 어머님도 역시 사리를 명석하게 판단하실 줄 알아 항상 나를 편들어 주었다.
게다가 너는 예쁘고 지혜가 많으니 오히려 내가 부족할 것이다. 만약 내 부모님들께 허락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면 그렇게 실없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백리빙은 애정이 넘치는 눈빛으로 소영을 바라보며 살며시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은 힘차게 엉켜졌다.
“만약 오빠의 부모님들께서 허락치 않으신다면 언제까지라도 땅에 엎드려 허락을 빌겠어요.”
“우리는 몇 번이나 생사의 고배를 함께 겪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난을 이겨 냈다. 부모님들이 이
것을 아신다면 꾸중은커녕 너를 칭찬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양해를 구할 것이 있다.”
백리빙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는 이내 무엇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악언니 때문이군요? 그렇지요?”
그녀는 방그레 웃으며 소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안심하세요. 저 역시 오빠와 마찬가지로 언니를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언니가 우리의 사이를 싫어하신다면 미련없이 오빠를 언니에게 양보하겠어요.”
그녀는 의자를 끌어 바싹 다가앉으며 말을 계속했다.
“오빠는 무공이 고강하고 그 명성이 천하에 알려져 이후 강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오빠를 찾
을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자유스런 몸으로 오빠를 따라서 사방을 돌아다니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면 그렇지 못할 거예요. 나는 시부모님을 모셔야 되고 집안일도 보살펴야 되니까요. 오빠는 강
호로 난가시면 나 혼자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악언니가 함께 있다면 말동무도 되고…”
소영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너는 제법 어른다운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또하나, 너에게 미리 설명해 줄 것이
있다.”
백리빙은 눈빛을 빛냈다.
“독수약왕의 딸인 남궁낭자의 이야기겠지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너도 들었겠지만 내 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구궁산을 찾아가
야 된다. 그의 딸이 다쳤다 하니 응당 문병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너는 그것을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백리빙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나는 오빠를 믿을 수 있어요. 오빠는 대장부이며 무림의 영웅이기 때문이죠 오빠는 내가 질투
를 하리라 생각하세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다만…”
“다만 무엇이냐?”
백리빙은 싱겁게 히죽 웃었다.
“다만 내가 오빠의 아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정은
주지 마세요. 악언니를 제외하고 말예요.”
“염려 말아라. 나는 내 처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소영은 말을 끝내고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백리빙을 바라보았다.
백리빙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빙아야, 네 스스로 악누님의 이야기를 들추고 또한 주저없이 아내가 되겠다니 난 뭐라고 단안
을 내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웃음으로 너의 말을 받았지만 내심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
었다. 너는 무엇보다도 이것만은 알아 두어야 된다.”
백리빙은 눈빛을 빛내며 들었다.
“악누님은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선녀로서 비유한다면 나는 그녀와 감히 어울릴 수도
없다. 남옥당은 이미 모든 것을 깨닫고 누님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옥소랑군은 아직도 누님에게
정을 주고 있으나 그것도 잠시뿐일 것이다. 강호 무림의 모든 남자가 누님을 따르려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실증하고 있다…”
백리빙이 소영의 말을 끊었다.
“아니예요. 언니가 오빠에게 대하는 것만은 틀려요. 언니는 영전에서 천하 영웅들에게 약속했어
요. 언니는 틀림없는 오빠의 아내라고요. 특히 언니의 모친께서 유서에 남긴 말도 기억하시고 있
을 거예요. 설마 오빠는 악언니의 정을 저버리지는 않으실 테지요.”
“악누님도 나에 대하여 정을 주는 것 같더냐?”
백리빙은 고개를 긴덕였다.
“만약 정을 주고 있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있겠어요?”
“그러나 누님이 나에게 정을 주었다면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동정심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님께선 유서에 누님과 나를 부부로 정하셨지만 정녕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에 보답하고 또 내 건강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희생이었던 것이다.”
소영은 처음으로 악소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오늘에 와서는 그런 보답도 내 몸도 모두 유서와는 달라졌다. 그러니까 그 유서는 자연 무효가
되는 것이야. 악누님은 너무나 비범한 여자로 그 마음대로 살아가야 돼, 나도 그녀를 누님으로 생
각할 뿐 조금의 정도 기울이고 있지 않다.”
백리빙은 눈살을 찌푸리며 화제를 바꾸려 했다.
“오빠,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해요.”
“왜 너는 내 말을 못 믿겠느냐?”
“믿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이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사정이 변할 수도 있잖아요. 또한 우리
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예요. 나는 오빠의 마음만 믿고 있을 뿐이에요.”
소영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 그래, 그래.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러나 오늘 너에게 구혼을 했다는 것을 잊지
는 말아라.”
백리빙은 얼굴을 붉혔다.
“빙아야, 밖에 나가서 우문선생을 불러다 주겠느냐? 내 그에게 몇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구나.”
“오빠는 아직도 몸이 완쾌되지 않았어요. 그런데다가 오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셨으니 그만
쉬세요.”
소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우문선생께 아주 급히 물어 볼 말이 있어서 그런다.”
백리빙은 더 말리지를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문한도는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왔다. 그는 침상 가까이로 다가 서며 입을 열었다.
“소대협, 무슨 분부라도 있으시오?”
소영은 조금 전에 백리빙이 앉았던 의자를 가리켰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제가 몇가지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우문한도는 그 의자에 앉으며 다급히 물었다.
“불초에게 무슨… 무엇을 물어 보시려오?”
“우문선생께서는 너무나 공손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렇게 목숨을 건진 것도 모두가 우문선생의
덕분인데…”
우문한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소대협께서 불초를 여기까지 끌어 올려준 것만도 과분한 일이오. 그 덕분에 강호 무림
에 불초의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이오.”
“우린 피차 서로 돕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이후부터는 너무 겸손하게 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제가 무안하오이다. 저는 우문형이라 부르고 우문형께선 소제라고 부르는 것이 어떻소?”
우문한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건, 대협이라 부르던 것이 습성이 되었으니…”
소영은 이 말이 우문한도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믿었다.
그는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우문형, 저에게 솔직이 말하여 주시겠소?”
“무엇을 물으시려오? 불초는 조금도 거짓없이 대답해 드리리다.”
소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심목풍이 정말로 죽었습니까?”
“소대협께서는 그 일에 대하여 의문을 느끼시오?”
소영의 신색은 심각하였다.
“저는 믿지를 못하겠소. 심목풍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심목풍의 일행은 모두 죽었소. 그리고 심목풍도 죽었다고 믿고 있소.”
소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그쳐 물었다.
“우문형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우문한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소대협께 숨기지는 않겠소. 불초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지 않소.”
“어째서입니까?”
“현장에서 심목풍의 유물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소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심목풍은 구렁이 같은 계략으로 자신의 처신을 생각해 놓았을 것입니다. 그가 도망갈 준비를
해놓지 않았을 리 없지요.”
소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심목풍이 도망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말이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점이오. 미리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명의 부하에게 심
목풍을 감시하라고 하였는데 그들도 못 보았다는 것이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의 생사에 관해
확신을 못 갖는다는 말이…”
“그렇기도 하군요.”
우문한도는 침상 끝을 만지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우문한도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심목풍의 지혜로서는 과히 어렵지 않게 그곳을 피했을 것이오. 그러나 그의 팔이 잘렸기 때문
에 앞으로는 그의 무공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오. 이후 다시 소대협과 겨룬다면 몇 수 버티지
못할 것이오.”
소영은 워낙 경황이 없어 그 때의 처절했던 대결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우문형,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말하여 주시겠소?”
우문한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산신뢰(破山神雷)의 폭발 당시 그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소. 그것도 무참하
게 말이오. 모두의 살과 뼈가 걸레처럼 되었을 정도요. 물론 우리 편도 몇이 부상을 당했으나 미
리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었소. 그 폭발이 있은 직후는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없어야 될 생지옥이었소.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서 적과 우리 편이 뒤범벅이 되었지요.
그 틈에 심목풍이 도망갔을 것이오.”
“그럼 무공자는 어떻게 되었소?”
우문한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중상을 입고 간신히 도망쳤소.”
“우문형께서 직접 보셨소?”
“남옥당에게서 들었소.”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말을 계속했다.
“저는 각대문파의 사긴를 돋우려고 확실치도 않은 말을 하였소. 심목풍이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
린 것이오. 아직도 심목풍이 두려워 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소. 강호 사람들은 심
목풍이 죽은 줄로만 알고 이제는 마음놓고 백화산장을 공격할 것이오. 만약 훗날에 심목풍이 다
시 나타난다 하여도 그는 단지 처량한 도망자에 불과하오. 각대문파가 지금 백화산장의 잔당을
쫓는 것은 모두 심목풍이 죽었다고 믿기 때문이오.”
소영은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우문형의 이야기에 깊은 뜻이 들어 있군요.”
우문한도는 멋적은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게라도 수를 써서 우리의 힘을 키을 수밖에 없었소.”
“그것이 강호를 위하고 인의를 지키는 일이라면 하늘에서도 용서하실 것이오.”
“소대협은 이제 강호 무림을 위해 혼자서 애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각대문파와 수많은 영웅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을 상기하시오.”
우문한도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백화산장이 다시 중흥할 것이란 것은 조금도 생각지 마시오. 지금 백화산장에는 심목풍
이 없으니 오합지졸이오. 그런데 강호의 각대문파가 일제히 쳐들어 가니 아무리 막강한 세력을
지녔던 것이라도 일시에 무너질 것이오. 앞으로 백화산장은 강호에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오.”
소영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틀리오이다.”
“소대협의 고견을 뒤담아 듣겠소.”
“심목풍은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며 그의 일부 세력도 건재할 것이오. 각대문파에 침투해 있는
그의 첩자들도… 만약 심목풍의 상세가 좋아져 다시 나타나면 그 남은 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
란 말이오. 그 때는 더욱 잔인한 수법으로 강호를 괴롭힐 것이오.”
우문한도는 미간을 크게 찡그렸다.
“소대협께서는 지금 하신 말씀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오. 어느 우연한 기회에 땅굴 속에서 살고 있는 무림 인물을 보았소.
그들은 모두 예사 무공을 지닌 것이 아니었소. 그들은 인적이 드문 숲속에 은거해 있으면서 강호
와의 연락을 취하고 있었소. 심목풍의 수하들도 그런 식으로 때를 기다리는 것일 것이오.”
우문한도는 어두운 신색을 보였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거리요. 저는 지금 곧 각대문파와 개방의 인물들을 만나 상세한
계획을 논의하겠소. 하여튼 이번 기회에 백화산장은 뿌리채 없애 버릴 터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형께서 직접 나서시겠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는 우문한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제가 두 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 사적인데…”
“무엇이오? 소대협께서는 서슴지 마시고 분부하십시오.”
소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부터 화(禍)는 물어도 복(福)은 묻지 않는다고 하였소. 내 상세를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우문
형은 의도에 능통하니 분명 내 상세를 알고 있을 것이오.”
우문한도는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소대협께선 과분한 칭찬을 하십니다. 저의 의도는 일 푼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흐뭇함이 엿보였다.
소영은 가볍게 따라 웃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문형,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의도의 영험을 논하는 것이 아니오. 제 무공이 전과 다름없이
건재하는가를 묻는 것이오.”
우문한도는 이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한참 동안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무공이? 소대협의 무공이 없어졌다면… 안 되지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우문한도는 미친 사람처럼 입을 씰룩이더니 무겁게 말을 꺼냈다.
“소대협, 그럼 무슨 불편이라도 있소?”
“진기를 순환시켜 공력을 모을 수가 없구려. 약간만 진기를 순환시키면 가슴이 무척 아프오.”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협께선 혼미상태에서 깨어난 지가 얼마 안 되니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있을 수 있소. 소대협은 바로 가슴에 일장을 맞은 것이니까. 독수약왕이 주고간 영단이 남았으니
우선은 시일을 기다려 봅시다. 그 약을 먹고도 아무런 효험이 없으면…”
우문한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영은 말을 받았다.
“알겠소이다. 우문형의 이야기는 제 무공이 원상태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로구려.”
그의 신색은 매우 어두워졌다.
이제까지 듣고만 있던 백리빙이 급히 입을 열었다.
“오빠, 너무 섭섭히 생각 마세요. 오빠는 이미 강호에 혁명을 남겼으니 아무런 미련도 없을 거예
요.”
“나는 무공을 잃었다고 미련을 갖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몇 가지 일이 남았으므
로…”
백리빙은 눈빛을 빛내며 곧 말을 받았다.
“오빠 대신에 우문선생께서 나머지 일을 처리하실 거예요.”
소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우문형께서는 강호의 여러 복잡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 일에 신경쓸 여유
가 없다.”
우문한도가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소대협, 무슨 일인지 나에게 말하여 주실 수 있겠소? 저는 몸이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소
대협의 소망을 이루게 하겠소. 더군다나 소대협의 무공이 폐쇄된 것도 아니고… 그러나 다만…”
소영은 다그쳐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무엇이오?”
“소대협의 무공은 독수약왕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오.”
백리빙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그쳐 물었다.
“왜요? 그렇다면 그 독수약왕은 오빠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다시 독수를 뻗쳤단 말이에요?”
“그가 다시 독수를 뻗쳤는지는 자세히 모르오. 그러나 분명 그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소.”
우문한도는 눈길을 백리빙에게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낭자는 매우 총명하니 벌써 그 내막을 알고 있을 것이오.”
백리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은 가요. 독수약왕은 암수로써 오빠가 싫더라도 구궁산으로 찾아가게 만든 것이로군요. 그
의 딸을 만나게 말이에요.”
“그렇소.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직은…”
“왜요?”
“독수약왕이 주고간 영단이 아직도 여섯 알이나 남았으니 육 일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오.”
소영과 백리빙은 다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한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소대협께선 아직도 상세가 완치된 것이 아니니 과로해서는 안 되오. 되도록 말을 줄이고 무리
해서 움직이지 마시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정중한 예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편히 쉬도록 하시오.”
“우문형!”
“무슨 분부라도 있으신지요?”
“악누님에 대하여 묻고 싶소이다.”
“저는 그녀가 동쪽으로 달려갔다는 것만 알고 있소이다.”
“이모께선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누님은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켰소. 이제 내가 이만큼 성
장했으니 누님을 도와야 하겠소. 우문형께선 어디 짐작되는 곳도 없소.”
우문한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오. 그러나 전심을 다하여 악낭자의 흔적을 찾겠소. 그동안 아무 걱정 마시고 몸이나 휴양
하시오.”
소영은 우문한도의 손을 힘껏 잡았다.
“저는 우문형께 모든 것을 맡기겠소. 잘 처리해 주시기 바라오.”
그는 말을 끝내고 곧 눈을 감았다.
우문한도는 백리빙에게 다가와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낭자, 시간 맞추어 약을 복용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칠 일의 시간은 순간에 지나쳐 버린 것처럼 빨랐다. 우문한도의 지대한 노력으로 칠 일 동안 조
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소영은 마지막 영단을 복용하자마자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내 무공이 여전한가?’
소영의 상세는 이미 완쾌되었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고 말소리도 크게 낼 수 있었
다.
그는 운기를 조식했다.
진기가 가슴에까지 다다랐을 때 별로 장애가 없었다.
‘아! 무공은 괜찮은 것 같구나.’
다시 운기를 조식시켜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진기가 겨드랑이께에 다다랐을 때 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앗!”
하는 비명을 질렀다.
전날 가슴께가 아팠던 것처럼 겨드랑이가 아픈 것이다. 양쪽 겨드랑이가 비수로 찔리는 것 같이
통증이 심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백리빙은 소영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을 보고 슬며시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소영에게서 심각한 표정을 찾아내고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아! 무공이…’
백리빙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오빠! 좀 어때요?”
소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백리빙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을
지니고 있었다.
“빙아야, 이제 나는 끝장이다.”
백리빙은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오빠가… 악언니와의 약속도 있는데… 이걸 어쩌나.’
소영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백리빙은 그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하여 무어라 위로의 말도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녀
는 우문한도가 묵고 있는 거처로 줄달음쳤다.
마침 그는 상팔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문한도는 달려오는 백리빙을 보고 벌떡 자리
에서 일어났다.
“낭자! 무슨 일이라도 있소?”
“오가… 오빠가 견디어 내지 못할 것 같아요.”
상팔은 깜짝 놀라며 다그쳐 물었다.
“무엇이라고? 형님의 상세에 무슨 변고라도 있단 말이오?”
“아니예요. 상세는 이미 다 나았어요.”
백리빙이 말끝을 잇지 못하자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무공을 잃었군.”
“그래요. 오빠는 전날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했지만 막상 무공을 잃었다고 단정하면 아마… 아
마 자결이라도 할 거예요.”
백리빙은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문한도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실내를 왔다갔다 했다.
“낭자,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오. 그래 소대협이 무어라 합니까?”
“오빠는 책상다리를 하고 운기를 조식하더니 캄자기 비명을 질렀어요.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이제는 끝장이다, 라고… 오빠는 마치 혼나간 사람처럼 천정만 바라보고 있어요. 제가 옆에 있다
는 것도 모를 정도예요. 정말 오빠가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백리빙은 비로소 흐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