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34
34. 납치된 부모님
소영은 재빨리 손을 뻗어 은추에 달린 줄을 잡았다. 강한 힘이
은추를 끌어 당기자, 소영의 몸도 곧장 딸려 갔다.
은추를 휘두른 사람은 신전진건곤(神箭鎭乾坤) 당원기(唐元奇)
였다. 당원기는 소영의 몸이 은추의 줄에 딸려 오자, 솥뚜껑같은
손을 소영을 향해 휘둘렀다.
소영은 급히 오른손을 휘둘렀다. 서로 마주치자 그는 어깨에 통
증을 느꼈다. 소영은 은추의 줄을 놓으며 왼손으로 수라지력(修羅
指力)을 발출해 당원기의 무릎을 찔렀다.
오른쪽 무릎 관절을 지력으로 찔린 당원기는 소영이 어린 나이로
무공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격공타혈의 지력을 전개할 줄은 미처 몰
랐다.
당원기는 신음을 뱉으며 푹 거꾸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소영은
재빨리 손을 놀려 몇 군데의 혈도를 찍었다.
소영은 한숨을 내쉬며 일행을 향해 급히 몸을 돌렸다. 그는 쇠붙
이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흠칫했다.
“당삼고와 금란, 은란이 저지를 당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오늘
밤은 포위망을 뚫으려고 손발이 닳도록 싸워야겠구나.”
그가 급히 숲을 빠져 나와 앞을 바라 보니 세 명의 사나이가 당
삼고, 금란, 은란에게 손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매우 치열
했다. 소영은 그제서야 숲 속에다 장검을 두고 온 것을 알고 후회
했다.
“삼성곡을 떠나 올때 유선자가 준 교피(較皮) 장갑이 있지. 이
장갑은 칼과 창을 막을 수 있다고 하니, 장갑을 끼고 맨손으로 싸
울 수밖에 없겠다.”
소영은 급히 장갑을 꺼내 손에 끼었다. 교피 장갑은 사람의 피부
색을 닮았기 때문에 얼른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때 당삼고가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검을 버려라!”
그녀는 장검을 재빨리 휘둘러 중앙에 있는 사내의 오른팔을 베어
갔다. 그 검법은 매우 빨랐다. 상대방이 할 수 없이 칼을 버리려는
데 곁에서 칼이 들어와 당삼고의 검을 막았다.
당삼고는 독침을 뿌리려 했다.
“당낭자! 안 되오!”
소영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었다. 그는 우선 금란을
향해 내리치는 칼을 막으며 신룡탐조(神龍探爪)의 수법으로 상대
방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칼을 빼앗았다.
소영이 맨손으로 칼을 막았는데도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을
본 사내는 깜짝 놀랐다.
소영은 칼을 뺏아 들자, 번개처럼 몸을 날려 두 사내의 칼을 후
려 쳤다. 금속성이 두 번 울리자, 두 사내는 모두 칼을 거두며 물
러서고 말았다.
“빨리 가시오!”
소영의 말에 당삼고와 금란, 은란은 재빨리 몸을 날려 앞으로 달
려 갔다. 세 여자가 삼 장 밖으로 몸을 날리자 소영은 칼춤을 추듯
세 사나이에게 절묘한 검법을 전개했다.
세 사내는 소영의 칼을 피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순간 한 사내
가 비명을 지르며 오 장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소영이 몸을 돌려
다른 사내의 칼을 후려치니, 그는 기겁을 하고 물러서며 칼을 떨어
뜨렸다.
소영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생명을 없애려면 십합 이내에 죽일 수 있다. 허
나, 나는 너희와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죽이진 않겠다.”
소영은 들고 있던 칼을 던져 버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세 사내는 질린 표정을 지은 채, 소영의 앞을 막을 엄두도 못 내
고 있었다. 소영은 걸음을 재촉하여 당삼고 일행을 따라 갔다.
당삼고는 중천에 높이 걸린 달을 바라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소
영에게 말했다.
“이미 삼경이 지났군요. 우리가 무림 인물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
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심목풍의 함정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만일 심목풍이 끝끝내 나의 앞길을 막고 형제로서의 정의를 돌
아보지 않는다면, 나도 그에게 순순히 체포되진 않겠소.”
당삼고가 주위를 훑어 보며 다시 소영에게 말했다.
“소대협은 심목풍이 얼마나 악랄하고 간교한 인물이라는 것을 모
르세요. 나는 할머니가 그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정
말 무섭고 잔인한 사람이에요.”
이 때였다. 일 장쯤 떨어진 풀밭에서 긴 탄식소리와 함께 몇 개
의 회색 그림자가 뛰쳐 올랐다.
그 사람들의 신법이 너무도 빨라, 소영은 감히 쫓아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뒤늦게서야 쫓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그
들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화상(和尙)들인 모양이에요.”
당삼고의 말을 받아 금란이 입을 열었다.
“소녀가 우문한도에게 들었는데 소림사에는 무공이 놀라 운 화상
여덟 사람이 있다더군요. 그들은 강호의 시비를 가리기 좋아해서,
팔대금강(八大金剛)이라고 부른대요.”
소영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림사의 고승들 말고는 그렇게 빠른 신법을 쓰는 화상은 없을
거야.”
“그들은 어두운 곳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
데 셋째 나리께서 심목풍에 대한 감정을 솔직이 털어 놓는 것을 듣
고는 나리의 본심을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달리 먹고 급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금란의 추리에 당삼고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소림사의 중이 아니고 심목풍이 파견한 부하들인지 몰라
요.”
“소녀가 알기로는…. 백화산장의 사람들은 승복을 입지 않아요.
낭자께서도 보셨지만, 방금 그 사람들은 승복을 입고 있었어요. 절
대로 백화산장의 사람들은 아니에요.”
소영은 머리를 끄덕여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아뭏튼 우리는 더욱 빨리 달리는 것이 좋겠소.”
네 사람은 최대한의 경공을 발휘해서 달렸다.
날이 밝았을 때, 장벽호에 도착했다. 호숫가에 우뚝 선 하얀 담
이 보이자 소영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소영은 하얀 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메인 음성으로 말했다.
“저것이 우리 집이오! 아아…. 내가 집을 떠날 때에는, 불과 열
두세 살에 불과한 아이였는데… 이제 이만큼 컸고 신체도 튼튼해
졌으니, 부모님도 나를 알아 보지 못하실 테지.”
소영은 갑자기 화살처럼 내닫더니 순식간에 대문 앞에 다다랐다.
그는 옷깃을 여미고 먼지를 털며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담
너머로 울창한 수목은 보이는데, 굳게 닫힌 대문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소복이 있나?”
소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
도 들리지 않았다.
“소복이 있나? 나야! 소영이야!”
소영이 목청을 돋구어 불렀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거듭해서 불러도 집 안은 무덤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웬일일까?”
소영의 감격에 넘치던 얼굴이 차츰 변해 불안과 초조의 기색이
떠올랐다.
“무엇인가 잘못된 모양이구나.”
은란이 소영의 창백한 얼굴을 훔쳐 보며 곁으로 다가섰다.
“셋째 나리, 댁의 위치를 심장주에게 말씀드렸어요?”
은란의 말에 소영은 천천히 머리를 흔들더니 갑자기 발을 들어
대문을 걷어 찼다.
대문이 활짝 열렸다. 깨끗하게 손질된 정원이 보였으며 뜰은 깨
끗했고 꽃나무들도 잘 다듬어져 있었다.
소영은 긴장을 풀고 안으로 들어 갔다. 집은 옛날의 모습을 그대
로 지니고 있었으나,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소영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채 사랑방을 향해 크게 외쳤다.
“누구 없소? 나 소영이오.”
그러나 그의 외침에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었다. 우당탕거
리며 방문마다 열어 보던 소영은 소대인의 서재로 들어섰다.
몇 권의 책이 책꽂이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책상이나 방
바닥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소영은 눈앞이 아찔함을 느끼며 급히 서재를 나오려다가 우뚝 멈
춰 섰다. 벼루에 눌려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소영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편지였다.
편지를 읽은 소영은 이를 뿌드득 갈며 부르르 떨었다.
“소대협, 무슨 편지에요?”
어느새 들어 왔는지 당삼고가 소영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금란, 은란도 서재에 들어 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심목풍이 먼저 와서 부모님을 백화산장으
로 데려 갔소.”
금란이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대장주가 여길 왔었어요?”
“이 편지를 읽어 보시오.”
소영은 그녀들에게 편지를 내 주었다. 금란이 편지를 받아 들자,
당삼고와 은란이 머리를 내밀어 함께 읽었다. 편지를 읽은 그녀들
은 한동안 말을 못하고 침통한 표정만 지었다.
이윽고 금란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셋째 나리,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상심만 하면 뭘해요? 선후책
을 강구해야지요.”
“만일 우리 부모님에게 눈꼽만한 상처라도 입힌다면. 내가 백화
산장을 피로써 씻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마세요. 대장주는 결코 어른들을 상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셋째 나리를 끌어 들여 충
성하게 하자는 뜻일 거예요.”
“수단이 너무 야비하다. 형제의 정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가 있느
냐?”
“화를 내셔도 소용 없어요.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지….”
“백화산장으로 돌아가는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방에 먼지 하나 없는 것을 보니, 두 분께서는 이곳에서 떠나신
지 얼마 안되는 모양이에요. 우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따라 간
다면, 중도에서 막을 수도 있겠어요.”
“맞았소! 그들은 우리집을 모르고 있었소. 필경 우리들의 뒤를
밟다가 한 걸음 앞서서 달려 온 것에 불과하오. 지금 쫓아 가면 금
방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소영이 급히 뛰쳐 나가려고 하자 금란이 앞을 막았다.
“나리, 망동해선 안 됩니다. 제 말씀을 들어 보세요.”
“무엇이 망동이냐? 불과 수십 리밖에 가지 못했을 텐데.”
“나리께서는 대장주를 너무 가볍게 보시는군요.”
“가볍게 보다니?”
“우리가 비록 쫓아가 잡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구출할 수는 없어
요. 쌍방의 체면만 손상될 뿐이지요.”
금란의 말에 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당삼고가 금란에게 말했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일제히 손을 써서 호송인들을
처치하고 어른들을 구하면 되잖아요?”
“만일 대장주가 직접 호송한다면 어떡하겠어요?”
“심목풍이 아니라 그보다 백 배 더한 사람이 호송한다 하더라도,
우린 소대협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거예요.”
“그들이 어른들을 방패막이로 우리를 위협한다면?”
“그건…그 때에는….”
당삼고가 대답을 못하자 금란이 말을 이었다.
“그 때에는 손을 묶고 발을 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 대장주는 셋
째 나리의 무공을 아끼지만, 셋째 장주가 그를 버릴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는 셋째 장주의 이용가치가 떨어진다면 금방 죽이려고
할 거예요.”
은란이 말참견을 했다.
“금란 언니의 말이 옳아요. 대장주의 속셈은 셋째 나리를 위협해
백화산장으로 끌어 들이려는데 있으니 어른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
예요.”
당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소영이 금란과 은란을
바라 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디 의지할 곳이 있느냐?”
금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백화산장에서 자라났어요. 설혹 어느 집에
서 저희들을 받아 들인다 해도 죽음을 낳는 결과밖에 안 돼요.”
“세상이 넓은데 어디 가서 몸을 숨길 곳이 없겠느냐? 너희들은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해서 살도록 해라.”
“셋째 나리는요?”
“그 나리란 소리 좀 이제 치워라. 나는 너희들의 나리가 아니다.
내가 갈 곳은 백화산장이다. 가서 부모님을 뵙겠다.”
은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셋째 장주께서 소녀들을 데리고 백화산장을 떠나셨는데, 혼자서
돌아가시면 반드시 대장주의 의심을 받을 거예요.”
“너희들이 나를 따라 산장으로 간다 해도 심목풍은 나를 의심할
거다. 나 혼자서 대항하는 것이 후환도 없고 깨끗하다.”
“만일 심목풍이 부모님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충성을 맹세하라면
어떡하시겠어요?”
소영은 고개를 숙이며 침통한 어조로 대답했다.
“강호의 모든 사람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 해도, 나는 부모
님을 저버릴 수 없다.”
금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들이 도망한 것을 알면 대장주는 땅끝까지라도 쫓아와서 죽
일 거예요. 그러나 소녀들이 셋째 장주님을 따라 백화산장으로 돌
아가면 잔명을 보존할 수 있을 거예요. 셋째 장주님 혼자 가시는
것보다 소녀들과 함께 가는 게 조금은 경계심이 늦춰질 거예요.”
“소녀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니 셋째 장주님은 염려하시지 않
아도 돼요. 함께 가는 것이 좋겠어요.”
소영은 당삼고를 돌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당낭자의 가문은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심목풍이 찾지는
못할 것이오. 낭자는 백화산장으로 가실 것 없소.”
“소대협이 함께 가자고 하신다면….”
“아니오. 역시 낭자는 사천(四川)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그렇다면… 좋아요. 집으로 가서 할머니를 만나면 소대협을 도
와 주라고 간청하겠어요.”
소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낭자의 조모님도 나를 돕기는 어렵소. 내 일은 내가 처리하겠
소. 잠시 객실에서 기다리시오. 나는 어머님의 방을 가 보고 오겠
소.”
소영은 천천히 서재를 나섰다. 안방에 가서 문을 열어 본 소영은
가슴이 섬뜩했다. 푸른 옷을 입은 낭자가 침상에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다.
소영은 그 낭자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소부인의 시중을 들던 하
녀가 분명했다. 소영은 하녀의 앞으로 가서 손을 그녀의 코 끝에
대어 보았다. 콧김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낀 소영은 급히 그녀의
혈도을 풀어 주었다.
혈도가 풀리자, 하녀는 숨을 길게 들이쉬며 눈을 뜨더니 소영을
발견하고 새파랗게 질렸다.
“누, 누구요?”
“나는 소영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디 가셨느냐?”
“아니에요. 제가 아는 도련님은 당신처럼 건강하지 않았어요. 당
신은 누구예요?”
소영이 조급한 마음에서 큰소리로 묻자, 하녀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부인이 마님을 납치하고, 두 괴한이 영감님을 강제로 떠
메고 갔어요.”
이 말을 들은 소영이 발을 구르며 성난 소리로 부르짖었다.
하녀는 소영의 고함에 놀라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소영은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는 집을 잘 지키고 있어라.”
소영은 하녀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안방을 나왔다.
“갑시다!”
소영은 격한 음성으로 한 마디 하더니 몸을 돌이켰다. 소영은 걸
음을 멈춘 채, 강물을 바라 보며 여러 가지 상념을 떠올리다가 갑
자기 격분해서 소리쳤다.
“알았다! 참으로 악랄한 계획이었구나!”
일행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영을 바라 보았다. 소영은 어금
니를 깨물고 묵묵히 서 있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들의 계획에 넘어 갔소. 그들은 많은 물적(物的) 증거를 준비
해 백화산장의 셋째 장주가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갔다는 소문
을 퍼뜨린 것이오. 그래서 많은 무림인물들로 하여금 길을 막도록
했소. 나는 입이 있어도 변명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오. 무림인물
과 내가 싸워 서로 원수를 맺게 하여서 심목풍이 전에 맺은 원한까
지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수작이었소. 사방에 원수가 가득 차
서 설 자리가 없게 되면 자기에게 의지하게끔 만들려는 얕은 수작
이었소. 그러나 내가 무수한 굴욕을 참아 가며 한 사람도 살상하지
않자, 그는 내 부모를 납치한 것이요.”
소영의 말이 끝나자 금란이 입을 열었다.
“대장주는 언제나 실수가 없어요. 셋째 장주께서 도중에 많은 사
람들을 죽였다고 해도 그는 어른들을 백화산장으로 납치했을 거예
요.”
소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별안간 걸음의 속도를 빨리했다.
세 소녀도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이튿날에는 호북성의 경내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행은 당삼고에게 작별을 고했다. 당삼고는 몹시 서운
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우리도 어서 가지.”
소영은 당삼고의 뒷모습에 잠깐 눈길을 주었다가 금란, 은란을
재촉했다.
소영의 걸음은 여전히 빨랐다. 백화산장을 내려 올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도 앞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일사천리로 달
리던 소영이 백화산장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문득 걸음을 멈
추었다.
그의 시선은 한 마리의 비둘기를 쫓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 왔다고 비둘기가 알리러 가는군.”
비둘기는 백화산장 쪽으로 사라졌다. 세 사람이 백화산장에 도착
했을 때에는 어둠이 깔릴 무렵이었다. 언제나 조용하던 백화산장
주변에는 무슨 잔치가 벌어졌는지 오색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밝혀
져 있었다.
“이놈의 산장을 아예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까?”
소영은 백화산장을 보자 욱하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격분을 참기
위해 일부러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장문(莊門)을 향해 걸어 갔다.
세 사람이 장문에 다다랐을 때, 주조룡이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
다. 주조룡은 소영을 발견하고 말에서 훌쩍 뛰어 내리더니 빠른 걸
음으로 마주쳐 오며 손을 흔들었다.
“삼제, 마침 잘 돌아 왔소. 지금 우리 백화산장에는 많은 영웅호
걸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소.”
웃음을 띠며 말하는 주조룡의 입술을 바라 보며 소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말하자면 소제가 오는 날이 장날이었군요.”
주조룡이 다시 말했다.
“나는 삼제가 이처럼 빨리 돌아 올 줄은 몰랐소.”
말을 하며 주조룡은 금란과 은란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완연했으며 옷과 머리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이들은 굉장히 급하게 달려 온 것이 분명하구나.’
주조룡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영이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소제의 부모님이 도착하셨는지요?”
주조룡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두 노인께서도 오셨소?”
소영은 상대방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듯 꾸미는 모습을 보고 화
가 치밀었다.
“이장주님은 기밀(機密)에 참여하시면서 이런 일도 모르시오?”
주조룡이 어깨를 약간 움찔하더니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삼제는 천천히 말해 보시오. 나는 전혀 모르오.”
소영은 눈꼬리를 찌푸리며 주조룡을 바라 보다가 품 속에서 심목
풍의 필적인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이장주께서 정말 모르신다면…..이것을 읽어 보시오.”
주조룡은 편지를 받아 읽더니 가벼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큰형님은 항상 생각이 깊으신 분이니 이 일도 심사숙고 끝에 결
정했을 것이오. 두 분 노인장에게 어떤 화가 미칠까봐 염려되어 미
리 예방책을 쓰신 것인지도 모르오.”
“이제는 소제가 묻는 뜻을 아셨소?”
“대강은 알겠소. 삼제, 우리 함께 큰 형님을 뵙고 여쭙시다.”
“이장주님께 분명히 묻겠소. 우리 부모님은 이곳에 도착하셨소?”
주조룡은 소영이 말할 적마다 이장주님이라는 존칭을 붙이자, 히
죽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거짓이 없이 대답하는데…. 정말 그 일은 모르오.”
“설마 이 편지가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그것은 확실히 큰형님의 필적이오. 결코 가짜가 아니오.”
주조룡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좌우지간 큰형님에게로 갑시다. 가면 진상이 밝혀질 것이오.”
“좋소, 갑시다.”
소영이 안으로 들어 서려는데 주조룡이 금란과 은란을 바라 보며
차가운 어조로 명령했다.
“너희들은 난화정사로 돌아가거라.”
두 소녀는 소영의 뒤에 붙어선 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두 소
녀가 움직이지 않자 주조룡은 언성을 높였다.
“들었나? 난화정사로 돌아 가란 말이야!”
“이장주께서 간섭하실 일이 못 되오!”
주조룡은 소영을 향해 돌아 서며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
“삼제, 뭐라고 했소?”
“금란과 은란은 대장주께서 소제에게 주셨소. 이장주님이 그녀들
에게 간섭하실 필요는 없을 텐데요?”
주조룡은 눈두덩에 주름을 잡으며 소영을 노려 보더니 맥빠진 웃
음을 흘리며 소영에게 물었다.
“허허, 삼제는 우리 백화산장의 규칙을 아시오?”
“모르오.”
“삼제는 백화산장에 가맹한 지 얼마 안 되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
오. 내가 백화산장의 규칙을 일러 주겠소. 첫째, 윗사람의 명령을
어기지 마라…..”
주조룡은 소영이 큰소리로 웃는 바람에 말을 중도에서 끊었다.
소영은 주조룡에게 반문했다.
“백화산장에서 이 소영은 어떤 사람이오?”
주조룡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왜 묻소? 당신이 백화산장의 셋째 장주라는 것은 강호에
널리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잖소?”
“그렇소. 나는 분명 백화산장의 삼장주요. 그렇다면 이 백화산장
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은 누구요? 심목풍 대장주와 당신 이장주뿐
이잖소?”
“그렇소. 그게 어쨌단 말이오?”
소영은 어깨를 추석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이장주님은 소영을 어떻게 보시오?”
“우리는 삼제를 훌륭한 아우이며 친구로 생각하고 있소.”
소영은 계속 질문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나의 부모가 대장주 이장주와 어떤 관계가 있소?”
“어떤 관계라니…..?”
“나의 부로님이 당신들의 부모가 아니란 말이오?”
주조룡은 흠칫하는 기색을 얼른 감추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오. 삼제의 부모님은 큰형님이나 나의 부모도 되오.”
“그 말 한번 잘하셨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어째서 나의
부모님을 납치해 인질로 삼았소?”
이 말을 할 때의 소영은 금방 주조룡을 잡아 먹을 듯한 표정이었
다. 주조룡은 노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백화산장의 계열로 보면 자기가 높지만, 무공면에시는 자기가 약
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었다.
주조룡은 소영의 분노를 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색한 웃
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삼제, 너무 따지고 들어 어리둥절해지는구려. 나는 이 일에 대
해 잘 모르오. 큰형님은 일을 벌이실 때 심사숙고해서 하시니까 이
일도 필경 어떤 이유가 있었을 거요. 큰형님에게 물어 봅시다.”
소영이 코웃음을 쳤다.
“흥, 정말 모른다니 할 말이 없군요, 그렇다면. 이장주라는 분은
지위는 높지만 알맹이가 없군요.”
이 비웃음에는 주조룡도 참을 수 없었다. 주조룡은 숨을 씩씩거
리며 소영을 노려 보며 간신히 분노를 누르고 타이르듯 말했다.
“삼제,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말을 모르시오? 아무리 흥분했다
하더라도 예의는 차릴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오?”
“예의요? 하하하…. 도대체 그 예의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길래
소영이만 지켜야 되고 다른 사람은 지키지 앉아도 됩니까?”
“다른 사람은 지키지 않다니? 삼제는 말을 삼가시오.”
“이장주님, 백화산장의 사람들이 아직도 소영을 헝제나 친구로
대한다면 이렇게 섭섭하게 할 수가 있소? 부모를 잡아다 인질로 삼
으며 나에게 예의를 지키라니…. 이장주께선 장유유서만 알고 붕
우유신(朋友有信)은 전혀 모르시오?”
주조룡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상대방을 겁내는 마음도 있고,
심목풍이 소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분노를 지그시 눌렀다.
“삼제,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 갑시다. 큰형님을
만나면 자연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주조룡은 더 이상 입씨름을 하기 싫다는 듯 안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좋소. 갑시다.”
소영은 주조룡의 뒤를 따랐다.
마주보며 눈짓을 교환한 금란과 은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영
의 뒤를 따라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