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42
42. 결렬된 회담
팽운은 사방을 두루 살피더니 개방사람이 보이지 않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리 개방 사람들이 모진 고초를 겪어 가며 파수를 보고 모든
관문도 열어 놓고 있는데, 개방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참으로 이
상한 일이구나!’
마문비는 소영에게 다시 한번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
“이왕 이곳에 오셨으니 마음껏 술이나 마셔 봅시다. 삼장주께서
는 미남이신데다 풍채 또한 근엄하시고 재능도 뛰어나시군요. 이렇
게 뵙게 된 것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오.”
소영은 마문비가 말 속에 비꼬는 기색을 담는 것을 보고 대꾸하
려는데, 두구가 먼저 옆에서 냉랭히 말하였다.
“마문비,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이 도리에 너무 어긋나지 않소?”
“난 중주이고를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는데 그렇게 높으신 분들
께서 뜻밖에 백화산장에 접근하려고 하는군요.”
두구는 울화가 울컥 치밀었다.
“마문비, 말조심 하시오.”
그곳에 모여 있던 무리들이 갑자기 일어서서 칼을 빼어 들고 마
문비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덤벼들 기세가 보이자,
장중(場內) 분위기는 순간 살벌해졌다.
상팔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장중을 훑어 보며 말하였다.
“여러분, 이렇게 흥분하여 싸움을 벌이겠소? 우리는 장사꾼인고
로 항상 하는 게 장삿속뿐이오. 우리는 손해 볼 기미가 보이면 절
대로 싸움을 하지 않소. 백화산장을 도우러 왔다면, 이렇게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호랑이 소굴로 들어왔을 것 같소?”
어렵게 마련한 회담이 뜻밖에 살벌한 자리가 되자 팽운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마형, 이 거지같은 놈의 말좀 들어 보시오.”
순간 격한 어조가 옆에서 들려왔다.
“개방 제자들은 충실하며 인의(仁義)가 있고, 일진풍 팽운은 더
욱 우리 무림 동지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뜻밖에 이 순
간 죽음을 두려워하고 오직 자기 목숨만을 위해 무림정의(武林正
義)를 배신했으니 그 몰염치한 제자를 배출한 신방주가 애석하기
그지없소이다.”
팽운은 얼굴을 돌려 자기를 욕하는 자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불
과 이십 남짓한 소년이 손에 장검을 들고 서 있었다.
팽운은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
나 그 옆에 있는 늙은 사람은 바로 유명한 상대해(商大海)였다.
이때, 돌연 옆에서 냉랭하면서도 청아한 음성이 들렸다.
“여러 무림 선배님과 후배가 과거 귀주성의 한 술집에서 주조룡
을 죽이려 할때 바로 이자가 저지하여 내 억울함을 풀지 못했는데,
그가 오늘 우리들이 있는 곳에 들어 왔으니 절대로 그냥 보내선 안
됩니다. 그는 또한 소대협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며 강호 곳곳을 다
니면서 뭇 사람을 속이니, 여러분께서는 그의 꾀에 넘어가지 마십
시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포영에게 집중되었다. 모든
눈동자에 원한과 살기가 가득차 있었다.
상팔은 성난 군중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졌다.
‘앉아 있는 사람은 모두 강호에 유명한 사람들이니, 악전을 전개
한다면 승패는 어떻게 되었든간에 처참한 꼴이 빛어지겠구나!’
소영은 할 말이 많았다. 하나,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좋을지
몰라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몇 사람이 손에 무기를 들고 서서히 접근해 왔다. 이 사람
들이 공격을 해 오면 다른 사람들 역시 합세할 것이 분명하니 눈앞
이 캄캄했다. 금란과 은란은 여전히 양쪽에 서 있었다. 이들 역시
무공이 한정돼 있어 약간의 힘이 될 수는 있으나, 이 많은 사람들
에겐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은란, 금란, 어서 내 뒤로 와요.”
둘은 자신들의 무공이 여럿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
고, 소영의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중주이고는 많은 싸움에 경험이 풍부한지라, 재빨리 정세를 살피
고는 소영의 양쪽에 각각 서서 소영을 보호하면서 이 쪽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과시하듯 어깨를 펴고 꿋꿋이 있었다.
이때, 부대(浮臺)위에 있던 무리들은 전부 일어나 겹겹으로 포위
하고 서서히 전진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팽운은 우선 자신
이 위급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앞 뒤로 적이 포위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망설이고 서 있었다.
마문비는 무리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고, 공격하라는 말도 없이
잠잠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부대 위는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질식할 정도로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이때, 푸른 옷을 입은 한 소녀가 손을 휘두르며 소영의 가슴을
향해 공격해 왔다. 소영은 날쌔게 몸을 살짝 돌려 가슴의 급소를
피하여 어깨로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공격이 상상외로 세어 소영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두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
“계집이 통이 크군.”
두구는 말을 끝내자마자 손을 휘둘러 공격을 하였다.
소영은 재빨리 손을 내밀어 두구의 공격을 저지하고 씁쓸하게 웃
었다.
“아가씨가 한 번 공격했으니 분이 좀 풀릴 거야.”
소녀는 냉정한 표정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왜 반격하지 않지요?”
“전에 아가씨가 복수를 할때, 내가 무심코 제지한 것이 아가씨는
아직까지 분이 안 풀린 모양이군! 하나, 내가 저지하지 않았더라도
아가씨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주조룡을 처치할 수 없었을 것이오.”
두구가 공격을 할 때 무리들도 공격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소영
이 저지하자, 모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조룡이 우리 부모를 죽였으니 그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해요.
그런데, 당신이 나를 저지했으니 그 분풀이를 대신 당신에게 해도
괜찮겠지요?”
“아가씨, 그날 그 장소의 사정을 잘 생각해 봐요. 내가 저지하지
않았어도 절대로 주조룡을 죽이지 못했을 거요.”
소녀는 잠시 묵묵히 서서 심사숙고하였다.
“당시 사정을 기억할 수 없으나, 오직 당신이 나를 저지했다는
것만 생각나요.”
순간, 처량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얘야, 그 분의 말이 옳다, 그 분이 저지하지 않았다 해도 너는
절대로 주조룡을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말한 자는 호랑이 눈에 얼굴이 둥글고 암기(暗器)의 명수인
팔수 신룡(八手神龍) 단목정(端木正)이었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장중을 뒤흔들면서 한 대한이 벌렁 넘어졌다.
소영은 잠자코 그 대한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가 입
에서 피를 토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다.
일인즉 이러했다. 이 공명심 높은 대한은 소영을 공격하여 명예
를 높이고 싶어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때 내가 공격하여 성공한다면 내 명예가
높이 오르고 무림 동지들의 선망이 되겠구나.’
그는 그러한 생각으로 남몰래 철사장력(鐵沙掌力)을 운기하여 소
리없이 소영에게 다가서서 내리쳤다. 그러나 소영의 신경이 예민함
이 보통 사람과 달라 그의 행동을 이미 알아챘다.
소영은 만약 이 험한 분위기 속에서 잘못 처리한다면 싸움은 크
게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하여 내력을 최대한 운기하여 그 철사장력
을 보이지 않게 튕겨냈다.
소영의 내공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닿아 있어 단지 소리 없이 튕
겨냈을 뿐인데도 대한은 몸 전체가 진동할 정도였기에 피를 토한
것이다.
소영은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척했다.
청의 소녀가 쓰러진 대한을 보니 그는 철사장력으로 유명한 취미
수왕의(吹眉手王意)였다.
소녀는 무척 의아했다.
‘방금 내 공격은 나를 생각해서 양보한 것이었구나! 이 왕의의
장력은 나보다 훨씬 강한데도 저렇게 허무하게 떨어졌는데….’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소영을 바라보았으나 소영과 시선이 닿자 맞
서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필수신룡 단목정 뒤로 피하였다.
마문비는 재빨리 왕의에게 다가섰다.
그는 왕의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왕형, 상처가 중하오?”
왕의의 눈, 코, 입에서 시커멓게 죽은 피가 솟았다. 이 죽은 피
는 내장 깊숙이에서 나온 것이며 심맥이 끊어진 징조였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도저히 살릴 가망이 없었다.
왕의는 가까스로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는 호신강기(護身强氣)가 있…..”
왕의는 말할 때 전신을 떨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말이 끝나자 그는 즉시 숨을 거두었다.
마문비는 숨을 거둔 왕의를 서서히 내려 놓으며 군중들에게 말했
다.
“여러분, 우선 앉으시오.”
왕의가 죽자 조금 전까지도 살기 등등하게 공격태세를 취하던 그
들은 마문비가 하라는 대로 자기들의 좌석으로 돌아갔다.
마문비는 소영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소형은 무슨 일로 여기에 왔소?”
“난 이미 백화산장을 이탈했고…..”
이 말을 듣고 마문비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심목풍이 말을 보내 무림 영웅들을 초청하여 소형이 백화
산장에 가맹한 데 대하여 축하하려는 걸로 아는데…. 소형이 백화
산장을 이탈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소.”
“그런 일이 있었소?”
“저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데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내가 사실 그대로 말을 한다고 해도 군중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이고, 백화산장에 남아 있는 부모님은 살아날 수가 없겠구나.’
소영은 이런 생각에 주저하며 결정을 못 내렸다.
상팔이 마문비에게 다가서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밀리에 할 말이 있소. 여기서 말할 순 없고…. 잠깐 저쪽으
로 갑시다.”
마문비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부대 한 구석으로 갔다.
상팔은 재빨리 다가서며 마문비와 머리를 맞대고 무어라고 소곤
거렸다.
마문비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서서히 걸어와 소영 앞에 다가
섰다.
“소형, 앉으시지요.”
소영은 상팔과 마문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때 격분하였던 군중들은 소영의 실력에 은근히 질렸는지, 아니면
그 담력과 우아한 풍채에 놀랐는지 제각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마문비는 군중들을 돌아 보고 나서 소영에게 말했다.
“소형의 참뜻을 몰라 경솔했음을 용서하시오.”
“연락없이 왔기 때문에 마형과 군중들이 몰라서 그랬는데 어찌
마형 탓이겠소?”
“오늘밤의 군호(軍豪)대회에서 비록 나를 주사(主事)로 추천을
했으나, 많은 사람을 다스릴 아무 재능도 뛰어남도 없으니, 소형이
주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군중들이 따를지 의심스럽소만.”
소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숙연히 말했다.
“마형, 할 말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시오. 힘이 닿는 한
전력을 다하겠소이다.”
“지금 백화산장은 소형의 가입을 경축하느라고 야단들인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내가 전력을 다해 소형의 입장을 설명
해도 지금 군중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소. 그러니 우선 소형께
선 이곳을 잠깐 피하시고, 내가 군중들에게 양해를 얻은 후 부하를
보내 정중히 소형을 다시 집회에 모시겠습니다.”
소영이 오게 된 원래의 목적은 구원을 청하려 한 것인데, 지금
상황으로 보아서는 더 이상 머물다가는 손해만 볼 것 같고 자기 부
모를 구출할 수가 없게 될 것 같았다.
“기왕 군중들이 내 입장을 몰라 준다면 하는 수 없이 가야겠군.”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돌려 나갔다.
상팔, 두구, 은란, 금란 등도 모두 소영의 뒤를 따라 나갔다.
팽운이 갑자기 뛰어와 소영이 가는 앞을 막았다.
“소대협은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군중들이 나를 이해 못하니 이 집회에 참여할 수 없어 떠나오.”
“이 거지가 무능하여 군중들의 신임을 얻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
다. 저도 이 대회에 참석치 않으렵니다.”
이때 마문비가 급히 팽운을 만류하며 나섰다.
“팽형은 오해하지 마시오. 팽형은 무림에서 협객으로 알려졌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팽형을 존경하고 있소. 더구나 당신의 스
승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고, 지금 오직 팽형만이 있는데 팽형마
저 가신다면 개방에선 한 사람도 참석한 사람이 없게 되오.”
팽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군중들이 백화산에 대해 너무 공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소. 난 이름없는 졸장부에 지나지 않지만 군중
들이 소형을 알아보지 못하는 점은 정말 안타깝고 한심할 뿐이오.”
소영이 씁쓸하게 말했다.
“얼음이 석자(三尺) 깊이 얼기까지는 하루 아침 추워서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오. 팽형, 진정하오. 난 이만 가봐야겠소.”
말을 끝내고 소영은 나갔다.
팽운은 마문비의 허락도 없이 소영의 뒤를 따라 나서며 말했다.
“여러분을 전송하겠소.”
목판으로 깔려 있는 길 끝으로 다다랐으나 배는 보이지 않았다.
두구는 욕설을 퍼부었다.
“나쁜 놈들 같으니. 우리들에게 집회에 참석치 못하게 하였으면
타고 갈 배는 구해 줘야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일이군.”
소영이 말했다.
“생각컨데 무슨 대책이 있을 거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치 마시
오.”
두구가 상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님, 그놈과 무슨 말을 했소? 우리가 이렇게 무서워서 도망하
는 것처럼 되었으니 중주이고의 명예가 손상되었소.”
상팔은 어이없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절대로 손해 볼 장사를 하지 않으니 안심하게.”
팽운이 말했다.
“뱃사공은 모두 우리 개방 사람들이니 내가 개방에 가서 그들에
게 배를 가져 오게 하라고 말하겠소.”
“팽형, 그러지 마시오. 생각컨데 마문비에게 꼭 어떤 배려가 있
을 것이니 우리는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좀더 기다려 봅시다.”
이때 멀리서 노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보니 조그마한 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작은 배는 재빨리 기다리고 있는
이들 앞에까지 왔다.
사공은 과연 개방의 제자였다.
팽운이 방의 암호로 자기의 신분을 밝히자, 두 사공은 즉시 방에
서 행하는 대로 허리를 굽히고 두 손 모아 예를 갖추었다.
“너희들은 이분들을 모셔다 드리고 즉시 돌아오너라.”
두 개방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말
했다.
“우리는 마타주의 명을 받고 이곳에 배를 댔습니다. 이번엔 은패
타주의 명을 받았으니 어느 분의 분부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습니
다.”
팽운은 약간 머뭇거렸다.
“이번엔 예외이니 내 명을 받고 즉시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마타주의 분부를 받아라.”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팽운은 여러 사람을 둘러 보았다.
“여러분, 배에 오르시오. 내 꼭 소형의 입장을 해명하여 마문비
가 손수 소형을 겸손히 모시게 하겠소.”
“모두 내가 부족한 탓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남을 탓하지는 마시
오.”
소영은 말을 끝내고 배에 올랐다.
뒤따라 중주이고와 금란, 은란도 배에 올랐다.
두 개방 제자들은 물줄기를 따라 익숙하게 노를 저어 빠른 속도
로 갈대숲을 벗어났다.
개방 제자 한 사람이 소영을 돌아 보았다.
“여러분, 어느 곳에 상륙(上陸)하시겠소?”
“아무데나 빨리 상륙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두 개방 제자들은 재빨리 노를 저어 동쪽으로 몰아 잠시 후 나무
들이 무성한 강가에 배를 댔다. 소영과 여러 사람이 서서히 상륙하
자, 개방 제자들은 즉시 뱃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상팔은 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어디로 갈 계획이오?”
“남을 구하느니 차라리 자신을 구해야겠소. 기왕에 그 군중들의
집회에 참석치 못했으니, 내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부모님을 위험
에서 구출해야겠소.”
은란이 다가서며 말했다.
“안 돼요. 백화산장 사람들은 모두 공자를 알고 있고, 백화산장
에 접근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공자를 발견할 거예요.”
“변장하고 가지.”
“백화산장의 경계는 극히 엄하여 보통 변장술로는 속일 수 없어
요.”
“변장만이라면 아주 쉽지요.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게 변장할
수 있는 약이 있으나, 어떻게 백화산장에 들어갈 것이냐가 문제지
요.”
상팔의 눈빛은 순간 예리해졌다.
그는 은란을 바라보았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은란 아가씨에게 좋은 묘안이 있을 거
야.”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데…. 될지 모르겠어요.”
소영이 급히 물었다.
“무슨 방법인지 어서 말해 봐요.”
“제가 알기로는 백화산장 동북방 쪽으로 조그마한 문이 있는데,
출입하는 사람은 오직 주방사람들과 잡역부들이며 백화산장으로 잠
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지요.”
상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우, 우리는 주방 사람으로 변장하여 그 문으로 들어가
자!”
소영이 다그쳤다.
“나는?”
“형님을 위해 한 방법을 생각해 냈소. 형님과 은란은 변장하고
백화산장에 초청받은 고수들로 가장하면 들어갈 수 있을 거요.”
“어떻게 백화산장에 고수를 초청한 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소?”
심목풍이 말을 보내 고수들을 초청, 영웅 대회를 거행하여 겉으
로는 형님이 백화산장에 가입한 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해 놓았소.
그러면 형님과 무림 정파 인물들을 갈라놓게 되고 실력을 과시하며
많은 고수들을 그가 이용하려는 것이오. 마문비도 초청 대상에 들
어 있소.”
“그럼 나더러 마문비를 따라다니는 사람으로 가장하여 백화산장
에 들어가란 말이오?”
“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니 용서하시오.”
소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었다.
“나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데 있어 감격해도 시원치 않은데, 무
슨 용서가 있고 말고 하오.”
“나와 마문비는 이미 약속을 했으며 내일 일찍 나가기로 했소.
그리고 백화산장으로 들어갑니다.”
소영은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어림잡았다.
“내일 아침이라면 아직도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겠
소.”
소영이 선선히 제안을 받아들이자 상팔이 말했다.
“난 두 마리의 맹견이 있고, 이미 그놈들은 모든 훈련을 다 받았
지만 오랫동안 돌보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가서 좀 돌보고 오겠
소. 형님과 아가씨는 이 숲에서 자리를 잡고 좀 쉬십시오.”
“좋소,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겠소.”
“길면 몇 시진 걸릴 것이고, 짧으면 두 시진 내로 돌아오겠소.”
말을 끝내자 상팔은 두구와 함께 가버렸다.
소영은 멀어져 가는 중주이고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소영은 강호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무림의 옳고 그름의 시비와
싸움에 휘말려 동지들의 오해를 샀고, 이미 몸을 빼낼 수 없는 지
경이 되었다. 또한 부모는 인질로 백화산장에 잡혀 있어 지력(智
力)을 다투는 양 세력 사이에서 난처하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
도 못하는 중간 인물이 되고 말았다. 부모의 정을 생각하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고 태산같으며, 그것을 생각할 땐 소영의 정신적인
부담이 너무나 컸다. 부모가 죄없이 인질로 잡혀 있으니 한시라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가 없었으며 사무치도록 마음이 아팠다.
은란과 금란은 시름없이 앉아 눈물을 흘리는 소영을 보고 그 대
담하고 씩씩한 사나이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마음을 헤아리며
자기들도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금란은 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소영에게 주었다.
“공자, 지금 공자께서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데 몸을
중히 여기셔야지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은란은 슬픔을 억제하여 부드럽게 위로했다.
“지금 공자는 슬픈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줄 압니다. 마음을
약하게 가지시면 일을 성사치 못하오니 그만 진정하시고 용기를 내
십시오.”
소영은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고 긴
한숨을 내뿜었다.
“아들된 도리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면 천생에 죄를 씻지 못
하는 것인데 아들 대신 죄없이 고생하시니 후일 무슨 낯으로 뵙겠
소.”
“기왕 일은 이렇게 되었지만 후일에 잘 처리하면 될 거예요. 두
어른께서는 좋은 분들이니 비록 지금 고난을 겪고 계시지만 꼭 살
아 나오실 것이니 안심하셔요. 공자께서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지
고 있는 이때, 이렇게 너무 고민을 하시면 오히려 몸에 해로우니
진정하시고 내일 일이나 상의해요.”
“낭자들의 권고는 참으로 고맙소이다.”
소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에 들어갔다.
취미수 왕의가 철사장으로 공격한 후 소영에게 호신강기한다 했
지만, 그는 공력이 부족하여 약간의 손실을 입었다.
소영은 두 여인의 권고로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생각했다.
‘천하 무림 사람들은 심목풍을 적잖이 미워하고 무서워하지만,
부모를 구하는 일은 역시 내 스스로 해야 할 텐데, 약간의 상처라
고 도외시해서 후일에 다시 악화된다면 완전히 자멸행위다. 부모를
구한다는 것도 우선 성한 몸이어야 한다.’
그의 지혜는 남달리 총명하여 이런 생각을 하자, 땅에 주저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금란과 은란이 소영을 염려하는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
큼 컸다. 이런 때 외부에서 타인이 침공한다면 하는 생각에 두 여
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철저히 했다.
한참 후, 별안간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은란은 즉시 장검을 뽑아 들면서 낮은 소리로 금란에게 말했다.
“언니는 공자를 돌봐 주시오. 난 저기 오고 있는 자가 적인지 확
인해 보겠어요. 만약 적이라면 딴 곳으로 유인하여 보내고 올 테
니, 언니는 공자를 잘 보살피고 나의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단 몇 마디의 말이지만 정이 담뿍 담긴 어조에 금란은 눈물이 핑
돌았다.
“적을 유인하는 것은 내가 하겠어. 넌 지모(智謨)로 평소에 공자
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어. 그러니 네가 그분 곁에서 보살피고 또한
힘이 될 수도 있으니 네가 여기 있어. 내가 적을 유인하겠어.”
“그러나 언니는 힘이 나보다 못해요. 이 중요한 일은 언니가 할
수 없어요.”
은란은 대답도 듣지 않고 질풍같이 몸을 돌려 날아가듯 나갔다.
금란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소영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의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다시 금란은 은란이 간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벌써 간 곳이
묘연하였다.
금란은 사방을 살피기 위해 큰 나무에 몸을 숨기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만약 이쪽으로 사람이 온다면 사정 볼 것 없이 습격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금란은 귀를 세우고 들어 보았다. 아
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은란이 벌써 딴 곳으로 유인했는지, 아니
면 그자가 방향을 바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한데, 한참 후에도 아
무 소식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하니 오히려 금란은 공포감을 느끼
며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그자가 은란을 죽였을까? 아니면 지금쯤 조용히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일까?’
금란은 사방을 두루 살폈다.
밤이 깊어 마치 나무 뒤마다 사람이 숨어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고요속에 적막은 흘러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에 사로 잡혔다.
또한 바람 소리와 가끔 들리는 밤새 소리는 사람이 대화하는 듯
한 소리로 들리고, 모든 나무는 사람으로 보였다.
이때 갑자기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금란은 놀라 졸도할 뻔하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뒤를 돌
아보았다. 나무 옆에 검은 그림자가 사람인 듯 보였다.
밤이 깊어, 갑자기 숲 속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는 마치 유령같
기도 하였다.
금란은 정신을 차리고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누구냐?”
검은 그림자는 금란에게서 몸을 돌려 갑자기 소영쪽으로 다가갔
다. 금란은 다급해졌다. 장검을 빼어 들고 쫓아 갔다.
“멈춰라!”
금란은 검은 그림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
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금란을 바라보았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소영인가?”
금란은 그를 자세히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손에
맥이 쑥 빠졌다.
“독수약왕이오?”
“그렇다. 저기 앉아 조식하고 있는 사람이 소영이냐고 묻지 않느
냐?”
금란은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 독수약왕의 무공은 막강하여 내가 상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싸워 시간을 지연시킨다면, 그만큼 소대협에게 유리할 것이
다. 나는 공자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이런 기회에 나는 죽음으로
그 은혜에 보답해도 아쉽지 않다.’
금란은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대담해졌다.
금란은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약왕은 백화산장에나 있지, 이곳에는 무엇 때문에….?”
독수약왕은 화를 버럭 냈다.
“저 사람이 소영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듣지 못했어?”
“듣지 못했다면 어떡하겠어?”
독수약왕은 혼자 중얼거렸다.
“하늘도 무심치 않군! 고생한 사람의 심정을 알아주니… 결국
그를 여기서 찾게 되었구나.”
“소공자는 심목풍의 명을 받고 나와 은란을 데리고 백화산장을
떠나 딴 일로……”
“내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심목풍과의 우정도 생각할 수
없다.”
약왕은 갑자기 금란을 밀치고 소영이 있는 쪽으로 갔다.
금란은 잽싸게 장검으로 그의 길을 가로 막았다.
독수약왕은 무공이 어찌나 강한지 금란이 몸을 날려 막으려는 순
간 이미 소영에게 다가서며 손으로 그의 혈도를 세 곳이나 짚었다.
소영은 정신을 집중시켜 운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옥신
각신하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독수약왕이 혈도를 눌러도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금란은 몹시 다급해져 장검을 계속 휘두르며 몇 번이나 공격하였
다. 독수약왕은 별 힘 안 들이고 한 손으로 금란이 휘두르는 검을
막았다.
“심목풍의 체면을 봐서 너를 죽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비위를 거
슬리면 심목풍과의 우정도 생각치 않고 너를 죽일 것이니 원망하지
마라.”
“어서 그 사람을 놓아라.”
금란은 계속 장검을 휘둘렀다.
독수약왕은 한 손으로 금란의 장검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
영의 경맥을 짚어 진기(眞氣)를 없애고 있었다.
오래 가면 상처가 생길까봐 두려워서였다.
금란은 순식간에 여러 차례 공격하였으나, 독수약왕은 어린애를
데리고 놀 듯 힘 안 들이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금란은 너무나 분하고 다급해 눈물이 핑 돌았다.
이때 옷자락 소리가 들리며 그림자가 번뜩였다. 은란이었다.
금란은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무능하여 이자를 소공자에게 접근하게 했으니….”
“경과는 조금 있다 말하기로 하고, 지금은 공자를 구하는 것이
제일 시급한 문제예요.”
은란은 장검을 휘두르며 착실하게 공격하였다.
금란도 정신을 가다듬고 검을 휘두르며 공격하였다.
독수약왕의 무공은 막강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소영의 웅결된
진기를 유통시키며, 한편으로는 두 여인의 공격을 막아내며 더구나
두 여인이 필사적으로 공격하자 도저히 응수치 않을 수 없었다.
독수약왕은 크게 노하였다.
“무지한 계집들아, 나는 심목풍의 체면을 생각해서 너희들을 봐
주고 있는데, 정말 너희들이 원한다면 상대하여 죽여 줄 테다.”
독수약왕은 소영을 잡았던 손을 놓고 금란을 공격하였다.
금란은 장검을 들고 휘둘러 독수약왕을 내려쳤다.
그러나 그 순간 독수약왕의 응수에 금란의 몸이 칠팔 보 뒤로 밀
려 가서 거꾸러졌다.
은란이 놀라 금란을 보았다. 그녀는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이때 독수약왕은 검을 금란에게 겨누고 있었다.
은란은 이 때라고 생각하며 장홍경천(長紅經天)식으로 몸과 검을
동시에 날렸다.
“계집이 죽고 싶은 모양이군.”
독수약왕은 왼손을 폈다 오무렸다 하며 공격하였다.
은란은 독수약왕의 막강한 일격에 뒤로 물러나다가 큰 나무에 부
딪쳐 넘어졌다.
독수약왕은 넘어져 있는 두 여자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을 죽이진 않겠다. 심목풍에게 알려도 난 무섭지 않다.”
독수약왕은 소영을 안고 걸어갔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독수약왕이 몇 개의 나무를 돌아 사라지니 찾
을 길이 없었다.
금란이 먼저 힘을 내어 일어섰다. 긴 한숨을 내쉬고 은란에게 다
가서서 그녀를 일으켰다.
“은란 어때?”
은란은 독수약왕의 일격에 나무에 부딪쳐 졸도하였던 것이다.
금란이 은란의 손을 잡고 흔들자 은란이 깨어나면서 서서히 일어
섰다.
“난 괜찮아요. 공자는?”
“공자는 독수약왕이 데리고 갔어.”
은란은 깜짝 놀랐다.
“데려갔다고?”
이때 옷자락 소리가 나며 두 그림자가 날 듯이 점점 다가왔다.
금란과 은란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기 때문에 온 자들이 적이
라면 생포될 수밖에 없었다.
오고 있던 사람이 발걸음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금란 아가씨요?”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중주이고였다.
금란은 반갑고 또 조금 전에 당했던 일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
졌다.
“두 분은 왜 이리 늦으셨어요?”
상팔이 어리둥절하였다.
“왜 그러시오? 형님은 어디 갔소?”
“그는….”
“독수약왕이 잡아 갔어요.”
“독수약왕! 그 괴물도 귀주에 왔었단 말이오?”
“독수약왕과 심목풍은 퍽 오래 사귀었고, 심목풍이 지금까지 쓴
약은 전부 독수약왕이 조제한 것이에요.”
상팔은 두구를 보고,
“아우,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우선 두 아가씨들을 구
하고 보세.”
두구는 재빨리 품속에서 약을 꺼내 금란과 은란에게 내주었다.
“우선 두 아가씨는 약을 잡수시오.”
“우리는 아직 괜찮으니 빨리 독수약왕을 추격하세요.”
“밤은 야심하고 나무는 꽉 차 있어 쉽사리 찾기 어려울 게요. 이
미 그는 심목풍과 잘 사귄 사이니 필시 심목풍의 명을 받고…”
“아니에요. 그는 자기 딸의 생명을 구한다고 했어요.”
상팔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자기 딸을 구한다면 소영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저는 공자의 말씀을 들어 알지만, 독수약왕의 딸은 오래 전부터
괴이한 병으로 앓고 있는데 치료법은 오직 공자의 피와 바꿔 버리
는…..”
은란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몹시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상팔은 놀라며 왼손으로 은란의 등을 눌렀다.
“아가씨,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소. 독수약왕은 필시 형님을 처
치하려는 것이 아닐 거요. 아가씨가 더 위급하니 아가씨부터 치료
하고 독수약왕을 추격하도록 합시다.”
상팔은 힘을 주어 은란의 명문혈(命門穴)을 눌러 진기를 안으로
주입시켰다. 독수약왕의 일격은 금란과 은란을 즉시 죽이게 할 수
도 있었으나, 두 여인이 백화산장 사람이고 또 심목풍과 퍽 깊은
사이라 심목풍의 체면을 생각해서 두 여인에게 가벼운 상처만 입혔
던 것이다.
은란은 상팔의 치료에 고마움을 느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가까
스로 참았다.
“안 돼요. 우리는 공자를 찾아야 해요. 만약 늦으면 독수약왕이
공자의 피를 전부 빼 버릴 거예요.”
두구가 참견을 하였다.
“그렇소. 우리는 속히 가봅시다.”
상팔은 두구를 보며 다시 말했다.
“어서 가서 맹견 한 마리를 데리고 오게. 두 시진내면 그의 뒤를
미행할 수 있소.”
“내가 죽일 놈이지.”
두구가 말을 하자마자 비호같이 몸을 날려 달려갔다.
“두 아가씨는 잠시 쉬시오. 만일 독수약왕이 멀리 가지 않았다
면, 우리는 내일 예정된 계획을 착수할 것이니….”
두 여인은 약간 마음이 안정되었다. 추격할 것을 생각하니 잠시
나마 쉬어야지, 피로를 풀지 않으면 추격치 못하게 될까봐 눈을 감
고 조용히 앉아 조식하였다.
잠시 후, 두구가 검고 큰 개를 데리고 왔다.
상팔은 개에게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며 개를 몰고 사방을 한 바
퀴 돌아 보고, 갑자기 잡았던 개를 놓았다.
은란은 개가 바로 독수약왕이 간 방향으로 뛰어 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다.
“맞았어요! 의외로 저 큰 개를 이렇게 긴요하게 쓰게 되었군요.”
상팔이 휘파람을 불자, 검은 개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상팔을
바라 보며 다시 상팔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상팔이 다시 중얼거리니 개는 다시 몸을 돌려 질풍같이 달려갔
다. 은란이 이상히 여겼다.
“그게 무엇하는 거요?”
“두 아가씨는 상처도 아직 완치되지 않았고 하니 너무 빨리 갈
수 없소. 독수약왕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오. 우리가 빨
리 가면 조용한 밤중이라 옷자락소리가 십 리 밖까지 들릴 것이니,
타초경사(打草驚蛇) 식이 아니오?”
“그렇군요.”
두구가 말했다.
“저 큰 개가 숲을 두 바퀴를 돌고 왔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소?”
상팔이,
“그것은 숲 속에 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살피는 거겠지.”
은란과 금란은 조식하고 나니 비교적 아까보다 나았지만 몸속의
고통은 여전했다. 이를 악물고 길을 걸었다.
앞장 서서 가는 큰 개는 숲을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였다.
이들이 어찌나 조심하는지 발자국 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다. 검
은 개는 단숨에 약 사, 오 리를 가다가 갑자기 멈춰 큰 묘를 응시
하고 즉시 덮칠 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곳이다.”
두구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큰 묘 안에?”
“만약 개가 잘못 찾지 않았다면 바로 이곳일걸세. 자네는 개를
좀 보게. 짖지 않도록. 난 이 근처를 수색하겠네.”
상팔은 살금살금 걸어 갔다. 이 묘는 오래 묵은 무덤이었고, 무
덤 위에는 사람 키의 반쯤 자란 무성한 풀이 있었다.
상팔은 무덤을 한 바퀴 돌았다. 과연 청초(靑草) 밑부분엔 새로
깔려 있는 흙이 있었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았다, 그곳에는 두 자
정도의 구멍이 청초로 가려져 있었다.
독수약왕은 이곳이 은밀하고, 또 남이 발견치 못할 것이라 생각
했는지 구멍도 막지 않았다.
상팔은 엎드려 동굴 속으로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말소리가 희
미하게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