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43
43. 독수약왕의 끈질긴 흡혈기도(吸血企圖)
독수약왕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고수이므로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팔은 조용히 뒤로 물러서며 은란과 금란에
게 개를 데리고 멀리 피신하라고 하였다.
“아우, 독수약왕의 무공은 막강하고 형님도 그의 수중에 있으니
우리는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되네. 이 좁은 묘 안에서 싸움을 할
수는 없으니 조심하게.”
“형님 명령에만 따르겠소.”
상팔은 두구를 데리고 무덤 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순간 무덤 안에서 소영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당신은 독수약왕이라는 칭호가 있고 의도(醫道)와 약물에 초인
간적인 재능이 있는데, 왜 그러한 재능으로 당신 딸을 구하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딸을 구하려 하오?”
“나는 몇 년 동안 대강남북이며 명산 등 좋은 곳을 빼놓지 않고
찾아 헤맸으나 아쉽게도 딸을 구할 만한 명약을 찾지 못했소. 또
딸의 체질에 맞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지. 허나, 오직 그대만이 내
딸의 체질에 적격이니 원컨데 피를 내 딸에게 준다면, 그 고마운
은혜는 두고두고 갚겠소.”
소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미 당신에게 생포된 몸이고, 오직 당신의 손아귀에 있는
데 왜 이렇듯 나에게 부탁하고 있소?”
“내 딸이 너무나 선량하여 내가 강제로 수혈을 했다는 것을 알면
큰일이오. 그렇게 되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나도 할
수 없이 강제로 할 수밖에 더 있겠소?”
“나에게 요구하는 뜻은 내가 자진해서 수혈하여 구하겠다는 말을
하라는 거요?”
“바로 그것이오. 좌우간 그대는 어차피 죽을 몸이니 좋은 일을
하여 내 딸을 살려 주오.”
상팔은 이 말을 듣자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생사를 흥정하다니……’
소영은 어찌할 바를 몰라 긴 한숨을 쉬었다.
“남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아직 죽고 싶지
않소.”
갑자기 불빛이 번쩍하며 등불이 켜졌다.
상팔이 또다시 안을 들여다 보니, 관 위에 담요를 깔고 소녀가
누워 있었다. 관 옆에 있는 홀은 이미 파 내려져 있었고, 사방 벽
에는 붉은색의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독수약왕의 은신처라는 것을 대번 짐작할 수 있었고, 그가 은신
처를 많은 공을 들여 만들었다는 것이 역력히 나타났다.
소영과 독수약왕은 관 옆에 앉아 있었다. 동굴 입구와는 상당한
거리이기 때문에 직접 보이지는 않고, 그림자로 두 사람의 거동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소.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내
가 약물을 쓰면 고통을 덜고 편안히 죽을 수 있지.”
“난 생전에 해야 할 일이 있소. 만약 할 일을 못하면 죽어도 눈
을 감을 수 없소.”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 딸을 구출한다면 내가 그대가 원하는
일을 도와 줄 수 있소.”
“말해야 소용이 없으니 말하지 않겠소. 어서 나를 죽이시오.”
상팔은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독수약왕이 앉아 있는 곳은 무덤의 맨 끝부분의 구석이니 몰래
손을 쓸 수도 없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구나!’
상팔은 지모가 많고 일의 실행에 있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성격
이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형세를 살핀 뒤, 독수약왕의 반격에 대처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나왔던 배가 들
어가더니, 동굴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왼손으로 금산반을 휘두르며 조심성 있게 안으로 들어가 오른손
으로 재빨리 관 위에 누워 있는 소녀를 잡았다.
독수약왕은 천만 뜻밖에 이 황량한 묘지에 사람이 찾아들자, 깜
짝 놀라며 상팔에게 공격하려 하였다.
하나, 상팔은 관 위에 있는 소녀를 수중에 넣고 있으니, 독수약
왕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며 공격하려던 자세를 바꾸었다.
“그녀를 놓으시오. 그 애는 허약하고 곧 숨이 넘어 가니 죽어가
는 애를 놀라게 하지 마시오.”
상팔은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독수약왕이 죽어 가는 자기 딸을
천금의 보배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
다.
“나도 분수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대가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한, 나도 그대의 딸을 해치지는 않겠소.”
독수약왕은 풀이 죽어 한숨을 쉬었다.
“나와 당신 중주이고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당신들이 내 딸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상팔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이 사람을 잘못 택했소.”
독수약왕은 이상하다는 듯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떤 사람을 잘못 택했다는 거요?”
“소영! 소영이 우리 중주이고와 어떤 관계인 줄이나 알고 있소?”
“소영은 백화산장의 삼장주인데, 중주이고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오?”
“그렇지. 그는 백화산장의 삼장주도 되지만, 또한 우리 중주이고
의 웃어른이 되신다.”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중주이고는 사십대이고, 이 소영은 불과
소년에 지나지 않는데… 또한 강호에 출현한 지 불과 일 년이야.”
“우리 형제가 소영과 이미 오 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믿지 못
한다면 할 수 없지.”
독수약왕은 맥이 쭉 빠지는 모양이었다.
“무슨 조건을 원하는가? 좌우간 중주이고는 항상 이익을 바라니.
……”
“이번만은 약왕이 알아 맞히지 못했군. 우리의 이번 흥정은 우리
의 웃어른이신 소영을 놔주라는 거야”
독수약왕은 깜짝 놀라며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무엇이? 소영을 놔주라고?”
“그렇소. 소영을 놔주오.”
“소영을 놔주면 누가 우리 딸을 구한단 말이오?”
“당신은 의술에 정통하여 무림에서는 제일인자이니 필히 좋은 약
이 있을 것이오.”
“난 십여 년을 애써 기다렸고 비로소 이 사람을 발견했는데, 나
더러 그를 놓아 주라면 내 딸을 죽이라는 것밖에 안 되지.”
“자기 딸의 목숨만 생명이고, 소영의 목숨은 생명이 아니란 말인
가?”
독수약왕의 바싹 마른 작은 체구가 부들부들 떨리며, 눈에는 살
기가 서려 있었다.
“당신들의 오늘 나의 일을 방해한다면 후일 당신들의 잘못을 가
르쳐 주게 될 거요.”
상팔은 머뭇거리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후일의 일은 후일이고, 나와 지금 말하는 것은 지금 눈앞에 보
이는 일이니 만약 당신이 소영을 놔주지 않는다면 당신 딸은….”
“당신은 내 딸 목숨으로 나를 위협하는 건가?”
“이것은 위협이 아니고 사실이며, 내가 감히 당신 딸을 해치지
않고 있지 않소?”
독수약왕의 살기등등한 눈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는 자애스
러운 눈으로 관 위에 누워 있는 자기 딸을 바라보았다.
“내가 소영을 놔주지!”
독수약왕은 손을 휘둘러 소영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소영은 서서히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였다.
“난 죽을 운이 아닌가 봐요. 약왕은 두 번이나 헛일을 하셨군요.
그러나 나는 그 지극한 부성애에 탄복하였고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
소.”
“비록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그대를 잡아 그대의
피로 내 딸을 살릴 것이다.”
소영은 관 위에 누운 핼쓱하게 여윈 소녀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을 죽여서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을 어찌 의술이라고….”
“내 딸을 구할 수만 있다면, 천만 명을 죽여서라도 꼭 구하고야
말겠다.”
“허나, 당신 딸의 마음은 약하고 너무 착하여 당신 생각과는 다
를 것이오.”
“내 딸이 오해하고 미워해도 나는 딸을 구할 것이다.”
“이런 부모는 가련도 하군! 당신은 선천적으로 악독하고 냉혹하
지만,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자비롭고 정이 두터움에 적지않이 놀
랐소.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내 피 아니고는 좋은 약이 없어 당신
딸을 살릴 수 없다는 거요?”
독수약왕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세상엔 좋은 약이 있겠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소영은 만약의 일에 대비하여 경계를 하고 상팔에게 한 발 다가
섰다.
“먼저 나가시오.”
상팔은 소영의 무공이 자기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
고 소녀의 팔을 놓고 몸을 날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독수약왕은 상팔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번개같이 소영의 오른손
맥을 향해 찔렀다. 그러나 소영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
에 공격을 허용치 않고 재빨리 손을 휘둘러 독수약왕의 공격을 막
으며 오히려 반격하였다.
독수약왕은 폈던 손을 오무리며 주먹으로 공격을 막았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서로의 힘은 막상막하였다.
독수약왕은 소영이 동시에 서로 공격한 찰나, 독수약왕의 왼손은
소리없이 소영을 잡으려고 뻗어왔다.
그러나, 소영이 오른손으로 독수약왕의 맥혈을 치자, 독수약왕의
공격은 점차 느려지고 팔은 힘없이 처졌다.
이때 독수약왕은 가까스로 소영의 공격을 막았다.
“내 딸을 해치지 말아라.”
“만약 당신 딸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대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이미 두 번이나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세 번
째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소영은 날쌔게 몸을 날려 동굴 밖으로 나왔다. 상팔과 두구는 무
기를 들고 파수를 보고 있다가 무사히 나온 소영을 보고 동시에 물
었다.
“독수약왕을 처치했소?”
“독수약왕은 악독하고 잔인하지만 그의 딸은 좋은 사람이오.”
두구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독수약왕과 싸웠소?”
“번개같이 몇 번 주고 받았지만 무승부였고, 그는 자기 딸이 상
할까봐 더 공격하지 않았소.”
“잘 됐소.”
두구는 항상 저기압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또한 말투도 몹
시 냉랭하여 그의 웃음짓는 얼굴을 보기란 드물었다.
그러나 오늘 두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상대방에게 한층 더
친밀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 독수약왕은 전신이 독이며 무림의 고수들 중에 독을 제일 잘
쓰니 우리는 여기서 오래 머무를 수 없소. 그러니 속히 떠나도록
합시다.”
두구가 맨 먼저 앞장을 서 두 낭자가 있는 곳으로 가 같이 걸어
갔다.
소영은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오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독수약왕이 오늘밤 일을 심목풍에게 이야기하면, 필시 고수들을
보내 내 부모가 갇혀 있는 곳을 더욱 엄중히 파수를 볼 것이니, 만
약 우리가 백화산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헛수고일 것이오.”
은란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안심하셔요. 독수약왕이 공자를 추격한 것은 전부 자기
개인 사정이며, 심목풍과 우정이 두텁다고는 하지만, 심목풍의 성
격으로 봐서 독수약왕의 사심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에요. 그
러므로 저의 소견으로는, 독수약왕은 절대로 심목풍에게 이 말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전부 심목풍을 무서워하는 모양인데, 그렇소?”
“그래요. 심목풍은 보통 악독하고 음흥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
서 그의 부하뿐 아니라 그의 절친한 친구도 사실 그에게 공포감을
느끼지요.”
상팔이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좋소. 우리는 예정된 계획대로 진행합시다. 그리고 마
문비는 이미 나에게 약속했으니…..”
소영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무엇을 약속했소?”
“그는 형님의 기묘한 무공에 놀랐으며, 형님이 이미 백화산장을
이탈하였다면 그는 전력에 다해 우리를 돕겠다고 나와 약속했소.”
“그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만 하군! 심목풍은 너무
나 악명이 높고 수단방법이 악랄하여, 백화산장과 친분관계가 있어
왕래하는 자나 무림동지도 모두 그에게 공포감을 느꼈군.”
“바로 그렇소. 난 이미 마문비와 만날 장소를 정해 놓았으니 모
든 준비를 해놓고 우리들을 대할 것이오.”
은란이 말했다.
“제가 말 많은 것을 용서하세요. 상팔 아저씨! 아저씨는 그와 무
엇을 상의하셨어요?”
“그건 그도 말하지 않았지, 지금 그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숨기
고 있고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런 것까지 밝히지 않았지.”
“제가 알기로는 심목풍이 요 몇 년 동안 백화산장에 은신하면서,
자신의 몇 가지 좋은 기술을 애써 연마하여 암암리에 사람을 훈련
시키는 비밀 지하실이 망화루 뒤에 아주 견고하게 건축되어 있는
데, 그 지하실은 심목풍 이외는 수하를 막론하고 들어갈 수 없으며
저는…..”
은란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더니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상팔은 은란의 슬픈 사정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하였다.
“심목풍은 극히 악랄하여 그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수천이니,
아가씨는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은란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저는 전에 일시적으로 그에게 총애를 받아 그의 곁을 잠시도 떠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
어요.”
“아가씨는 그 지하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소?”
“없어요. 그때 그는 나를 극히 총애했지만, 절대로 나에게 들어
갈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허나, 들리는 말에는 그 비밀 지하실
은 심목풍이 심혈을 기울여서 자신의 부하를 훈련시키는 곳이라 합
니다. 그는 원래 간사하여 수하를 막론하고 믿지 않고, 오직 자기
가 친히 훈련시킨 부하들에게만 좋은 기술을 가르쳐 주지요.”
상팔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지하실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오?”
“심목풍은 자기 부하들을 훈련하는 방법이 특이하여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그러므로 그가 무슨 방법을 쓰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요. 허나, 저는 심목풍이 무심코 한 호언장담을……”
소영은 호기심이 생겨 급히 물었다.
“무슨 호언이오?”
“그는 오룡(五龍)이 성할 때 자기가 천하를 재패하는 날이 될 거
라고 했어요.”
상팔은 보는 눈이 넓어 강호의 일을 모르는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은란이가 한 말은 금시 초문이었다.
“오룡이란 무엇이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다섯 사람 아니면 다섯 개의 기물이
겠지요.”
“들어보니 다섯 사람이라는 말이 기물이라는 것보다 맞는 말이라
생각되오.”
“사람인지 물건인지는 몰라도 그 오룡은 퍽 무서운 것임에 틀림
없어요.”
“물론이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잘 모르지요. 보아하니 그 심목풍이 감히 먼저 도
전한 것을 보면, 필시 오령이 성할 날이 왔나 보지요?”
“심목풍이 만약 무슨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면, 강호에 다시 나
타나 즉시 전 무림을 뒤흔들지는 않았을 것이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 말씀드렸어요. 상팔 아저씨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저씨께서 알아서 결정하세요.”
“그건 나도 쉽게 결정할 수 없고…. 마문비와 상의를 해 보고,
그때 결정할 문제요.”
은란은 갑자기 또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아저씨와 마문비가 약속을 할때, 공자를 마문비와 수행인으로
가장시켜 백화산장에 들어간다고 하셨죠? 허나 제가 알기로는 백화
산장에 들어가면, 주인과 수행인은 떨어져서 수행인은 딴곳으로 가
또 다른 사람을 초대해야 하며 서로 어디 있는 줄 모르게 되지요.”
“그것은 나도 생각했었지, 그러나 우리 목적은 백화산장에 들어
가는 것이고…..”
상팔은 말을 잠시 멎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좌우간 초청을 받은 사람은 은패(銀牌)를 하나씩 나누어 받고,
들어갈 때 은패를 소지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하나의 은패에 두 사
람이며 어떠한 수행인을 막론하고 은패 하나에 수행인을 더 중가할
수 없지.”
지금까지 듣고 있던 두구가 말참견을 했다.
“한 개의 은패에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두 개의
은패가 있어야 정정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겠군요.”
“그렇지. 하나, 어디서 그 은패를 구하지? 지금은 황금 천량을
줘도 못 구하고 말고.”
“형님과 마문비는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하셨소?”
“내일 정오에 만나서 입장하기로 했네.”
“너무 촉박하군! 시간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그것과 똑같이 만들
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인데….”
“똑같이 모방한다고?”
“안 될 것이 없지요. 우리는 한 십여 개쯤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
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화산장에 들어가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줍
시다.”
은란이 말했다.
“그 은패는 필시 무슨 암기(暗記)가 있을 것이고 위조한 것은 대
번에 발각되기 쉬을 거예요.”
“괜찮소. 우리는 사람이 제일 많이 들어갈 때를 노리고 있다가
그때 갑자기 우리도 한몫 껴서 들어가면, 파수병들은 바빠서 어쩔
줄 모를 거요.”
“방법이 좋으니 한 번 시험해 보지. 그때 우리 네 사람이 정정당
당하게 들어가게 되면, 하인과 잡부로 가장하지 않아도 되겠네.”
은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파수병들은 백화산장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에요. 우리는
쉽게 그들을 속일 수 없어요. 차라리 우리는 그 옆문으로 들어갑시
다.”
두구는 안타까운 듯이 은란을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나의 위조술을 모르는군. 조각하는 것은 정밀하게 할
수 있으니 비록 암기를 찾지 못해도 외모와 안의 그림이나 무게도
똑같이 만들어, 보기에 조금도 차이가 없을 것이오. 아가씨가 믿지
못하다면 그때 가서 보면 알겠지.”
은란은 눈을 반짝이며 두구를 쳐다보면서 생각하였다.
‘조각까지 할 줄 아는구나!’
두구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 그렇게 뚫어지도록 바라보지 마시고, 그런 일을 즉시
실천해 보일 테니 아가씨께서 잘 분별해 보시오.”
두구는 시선을 상팔에게 돌렸다.
“형님, 어떻게 마문비를 찾아 그의 은패를 잠간 빌리시오. 만약
내일 정오에서야 은패를 빌린다면 난 할 수 없어요. 그 때는 할 수
없이 아가씨 말대로 옆문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소.”
상팔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왔다갔다 하였다.
“좋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내가 마문비를 찾아 보겠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팔은 몸을 돌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구는 시선을 은란에게 옮기며 말했다.
“내가 서두르지 않았으면, 형님도 애써 마문비를 찾을 생각은 하
지 않았을 거요.”
“오래 전부터 당신 중주이고는 정의(情誼)가 두터운데 어째서 형
제지간에 그런 말을 쓰는지요?”
두구는 멋적은 듯 미소를 지었다.
“큰일에 피해가 없는 한 피차간에 약간의 심기(心氣)의 자극은
오히려 원활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형님도 정말 내 말에 노했다
면 저렇게 뛰어갈 줄 아시오?”
“그렇군요.”
“이 세상의 형들은 아우보다 예리하고 솔선수범하는 법이오.”
“상팔 아저씨께서 그 은패를 꼭 갖고 올 수 있다고 봐요?”
“내가 보건데 마문비는 절대로 우리 형님을 해치지 않을 것이고,
기왕 형님이 갔으니 십중팔구 가져 올 가망성이 있소.”
“상대협은 우리 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휴식이나 취합시다.”
소영이 이렇게 말하자 두구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아가씨는 상처도 완치되지 않은데다가 뛰어다니느라고 퍽 피
로 하겠구나!’
“그럽시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에 충분한 휴식을 취합시다.”
은란과 금란은 상처가 아직도 완치되지 않았고 더구나 동분서주
하여 이미 재발되어 있었으나, 이들은 참을성과 고집이 강해 두구
가 앉자 비로소 앉아 눈을 감고 조식하였다.
두구는 두 아가씨가 조용히 조식하는 것을 보고, 소영 옆으로 다
가섰다.
“두 아가씨는 모두 독수약왕에 의해 상처를 입고, 오직 큰형님을
찾는다는 일념으로 상처를 무릅쓰고 동분서주하여…..”
“나도 알고 있소. 그녀들은 너무 피로에 지쳤고 나도 조용히 쉬
어야겠소.”
두구는 원래 말주변이 없는 사람인데다가 더구나 소영이 무슨 생
각에 잠겨 있어 말을 원치 않으니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소영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황야의 밤은 점점 깊어 만물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가끔 어디
서인지 몇몇의 짐승소리가 들려와 추운 밤에 더욱 공포감을 주었
다.
이때 갑자기 은란 옆에 앉아 있던 검은 개가 동쪽으로 뛰어갔다.
두 여인은 조식하는 중 제일 중요한 관문을 진행중이니, 비록 소
리는 들었지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소영과 두구는 개가 뛰는 것에 놀랐다. 소영과 몸을 날려 개가
뛰어간 쪽으로 질주하면서 급하게 말했다.
“두형, 두 아가씨를 보살피시오.”
그의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거의 개와 육, 칠 보의 거리에 불과
하였다.
두구는 일어서서 개를 쫓아가려 했다. 개의 선천적인 예민한 이
목(耳目)은 제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사람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일 없이 개가 놀랄 리가 만무하였다.
그러나 소영이 이미 개의 뒤를 따라갔으니, 두구 자신은 할 수
없이 두 아가씨 옆으로 돌아왔다.
두구의 큰 몸집이 은란의 시야를 가렸다.
은란은 시선을 사방으로 돌려 보았다. 방금 분명히 무슨 일이 있
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죠?”
두구는 은란을 바라보았다.
“괜찮소. 아무 염려 말고 아가씨들은 운기조식 하시오. 내가 옆
에서 두 아가씨들을 보호하겠소.”
은란은 사방을 두루 살폈지만 소영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
이 참지 못하여 두구에게 물었다.
“공자는?”
“그는 개를 쫓아 갔소.”
“공자는 비록 무공이 강하지만 강호의 경험이 부족하며 다른 사
람의 속임수에 잘 넘어가니, 빨리 뒤쫓아 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