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77
77. 강호에 떠오른 큰 별
신풍방의 커다란 신상 속에서 상냥하고 애교있는 음성이 들렸다.
“고맙다는 인사는 할 필요가 없어요. 어서 가 보세요.”
“가세!”
하고 손불사는 소영과 함께 달려 갔다. 두 사람은 공력이 고강하
므로 나란히 달려 순식간에 상팔 등 일행을 따를 수 있었다.
손불사는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었다.
“소대협, 신풍방주의 말투를 들으니 우리에게 아무런 적의도 없
는 것 같던데 소대협은 어떻게 생각하나?”
“후배 역시 그녀가 어째서 갑자기 적의를 버리고 친구로서 대했
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자의 마음은 가장 맞추기 힘드니, 우리는 그런 것에
신경을 낭비하지 맙시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소. 그것
을 소형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모르겠소.”
“무슨 일입니까?”
손불사는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목하, 소형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그 반면에
원수를 맺는 횟수도 늘어나고 있지…. 심목풍은 소형을 눈에 가시
로 여기고 있으며 백화산장의 세력이 점점 방대해져서 당금의 각
대문파를 능가하는 느낌마저 드는구먼. 지금 소형은 자연적으로 일
반 협의도의 가슴 속에 영수로서 군림해 있으니 대세에 묶여 손을
뗄래야 뗄 수 없지. 지금의 강호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분란과 복
잡으로 인해 앞으로 사, 오 년 안에는 평정이 될 것 같지 않은 실
정이며……”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소영을 지그시 바라 보더니 다시 계
속했다.
“나는 소형에게 중임을 맡으라고 권했으니만큼 전력을 다해서 소
형을 도와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그러나 소형의 양친 어른은 하나
의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소그려. 누군가가 두 분 어른을 손아
귀에 넣기만 하면 소형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배반케 하여 남에게
이용을 당할 우려가 있소.”
소영은 긴 한숨을 내쉬고 묵묵히 듣고 있었다.
손불사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소형의 양친 어른을 하나의 안전하고 은
밀한 곳에 모시고 보호하는 것이오. 그래야만 소형도 안심하고 전
력을 기울여 강적과 맞설 수 있소.”
“노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이 안전한 곳입니
까?”
“우리 개방의 본거지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양친께
서 온종일 거지들과 생활을 함께 하셔야 되니 괴로운 노릇일 것이
오.”
“귀방의 본거지는 비록 방비가 삼엄하지만 벌써 백화산장의 첩자
가 침입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만약 귀방의 본거지에서 살
게 되면 그 소식이 순식간에 심목풍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
하고 손불사는 놀랐다.
소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철대로 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비단 귀방의 본거지 외
에도 심목풍의 첩자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신풍방도 마
찬가지입니다.”
“내 개방은 충성으로써 대대로 이어 왔는데 만약 이러한 불상사
가 있다면 체면이 크게 손상되는 일이로구료.”
여기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소영에게 물었다.
“소형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심목풍이 그들을 소집할 때 모두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저는 알
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미 우리 개방내의 일에 간섭하지 않은 지 오래되지만 이
일만은 간섭하지 않을 수 없군. 분명히 색출해 내야겠다!”
소영은 가볍게 탄식을 하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
다. 그는 이 일이 큰일이라 함부로 말을 했다가는 즉시 개방 중에
서로 죽이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심중에 확고한 자신
이 없이는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손불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과거에 심목풍이 몸에 중상을 입고 도주했을 때, 그를 뒤쫓던
군호들이 끝까지 추격해서 그 당시에 죽여 버렸다면 오늘날 무림에
이토록 어지러운 상황은 없었을 것인데, 아아! 풀을 뽑을 때 뿌리
까지 뽑아야 하는 것을, 그렇지 않아 오늘의 화근을 남겼으니…
그때 심목풍을 죽이려던 군호들의 생각이 모자랐었지…..”
“심목풍은 비단 무공이 정심하여 추측을 불허할 뿐 아니라 마음
의 음흉함과 수단의 악랄함은 역시 뒤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상히 여기는 것은 그가 어떻게 그 많은 고수들을 끌어 모아
그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의 사람됨은 남이 원치 않고 남이 행하지 않는 짓을 하며 게
다가 음침한 심술과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두려
워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하더니 잠시 말을 끊고 물었다.
“이미 개방도 그런 상태라면 안전하지 못하니 소형은 두 분 어른
을 어디로 모셔 갈 생각인지요?”
“저 역시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하겠습니다.”
“소형, 두 분 어른의 일을 적절히 처리해야지만 비로소 소형은
마음을 놓고 강호에서 활약할 수 있소. 내가 보는 바로써는 지금
소형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라 앞으로 이삼 년 후에는 틀림없이 무
림의 지도자로 추대되어 그 심목풍과 소요자 등과 강호에서 대항케
될 것이오. 지금은 수백 년 동안 일찍이 없었던 혼란한 시기이며
또한 가장 비참하고 살벌한 시대라오. 이것은 내가 소형을 추켜 세
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무림 형세로 보아 소형 말고는 이 마지막
난국을 수습할 인물이 없기에 그러는 것이오.”
소영은 손불사의 말을 듣고 탄식하며 겸손한 태도로,
“노선배님은 너무 후배를 과장해서 칭찬하십니다.”
하자 손불사는 핫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는 일평생 남을 과장해서 평가해 본 적이 없소. 나는
다만 혼란에 빠져 있는 비참한 무림의 동지들을 위해 도움을 청하
는 것 뿐이오.”
그리고 갑자기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그러나 두 분 어른은 지금 현재 큰 부담이 되고 계시지…. 심
목풍은 틀림없이 소형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을 것이고, 모든 심혈
을 기울여 소형 양친 어른의 행방을 찾아 미끼로 삼으려는 심산일
것이오. 소형,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소형을 도와 주겠
소. 그러니 소형은 무림을 짊어질 담력을 길러야 하오.”
소영은 그의 말 속에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고 잠시
묵묵히 침울한 표정을 하였다.
이때 상팔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소생이 은밀한 곳을 하나 알고 있는데 심목풍의 이목이 닿기 어
려운 곳입니다.”
“어느 곳인데?”
하고 손불사가 물었다.
“그곳은 멀리 남해에 있는데 사면이 바다에 둘러 싸인 외딴 섬입
니다. 어부들이 한 백 가구쯤 살고 있으며 경치도 매우 아름답습니
다. 만약 금란, 은란을 시켜 두 분 어르신네를 모시게 하여 그 섬
안에 은신케 하면 심목풍의 눈이 닿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손불사는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안 되지, 그 고도에는 통틀어 백 가구에 불과하니 두 분께서 그
섬에 거처하시게 되면 틀림없이 온 섬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오.
그리고 어선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어디서 정박할지 모르니 그들
의 말끝에서 이 소식이 언젠가는 틀림없이 중원에까지 전해질 것이
오.”
상팔은 한동안 잠잠히 있더니,
“노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럼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야 하
겠군요.”
“아니오. 그곳은 소형이 십분 마음을 놓고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
도 되는 곳이라야 하오.”
소영은 한숨을 내쉬며,
“천하가 이처럼 광범한데 나 소영은 부모에게 폐를 끼쳐 그 분들
이 안심하고 편히 사실 수 있는 땅조차 없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
구나……”
하고 탄식했다.
상팔은 그를 위로하였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우리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서로 머리를
짜 내면 형님께서 안심하실 수 있는 곳을 언젠가는 찾아 낼 수 있
을 것이오.”
그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을 때, 갑자기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가까이 다가 오고 있었다.
손불사는 낮은 음성으로,
“어서 길 옆의 숲 속으로 몸을 숨기시오!”
하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들이 모두 숲 속으로 숨기가 무섭게 두 필의 건마가 앞뒤로 나
란히 달려 왔다.
뒤따르는 말 위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하룻밤을 꼬박 새고 달려 왔는데도 소식을 조금도 들을
수가 없었으니 내 생각에는 틀림없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소.”
선두에서 달리는 사람이 대답했다.
“당형! 마음을 푹 놓으시오. 나의 점은 절대로 틀림없소. 이 방
향에 있을 것이오.”
이때 상팔이 나지막한 소리로 소영에게,
“형님, 저것은 동해신복 사마건의 목소리가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소영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음성이 흡사하군요. 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오거든 똑똑히
확인하고 부르도록 하지요.”
눈을 똑바로 뜨고 살피니 선두에서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은 과연
사마건이었다. 뒤따르는 사람은 등에 큰 활을 메고 있었으며 허리
춤에는 화살이 가득 꽂힌 전대를 메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신전
진건곤 당원기였다.
소영은 껑충 뛰어나가 길 복판에 버티고 서서 웃으며 말했다.
“사마형! 오랜만이오. 누구를 쫓고 있는 중이오?”
불쑥 뛰어 나온 사람이 소영인 것을 보자 사마건은 반색을 하며
곧 말고삐를 끌어 당겼다. 최고의 속도로 달리던 말이 길게 부르짖
더니 급정거를 하였다.
“소형이구료. 마침 형을 찾고 있던 중이었소.”
하며 말 위에서 뛰어 내려 달려 오더니 소영의 손을 덥석 잡았
다. 그리고,
“형을 얼마나 애타게 찾았다고…..”
하더니 소영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당원기를 향해서 소리쳤
다.
“당형, 나의 점괘가 어떻소?”
하자 당원기도 웃으며,
“과연 영험하구료.”
하더니 역시 말에서 뛰어 내려 소영의 앞으로 다가서서 두 손을
모으고 깊숙이 절했다.
“마총타주가 중상을 입은 후 그는 소형을 추대하면서 이렇게 말
했소이다. 만약에 무림동도들이 이번에 비참한 살상을 무난히 넘기
려면 소형을 모시고 대국을 수습하여야 된다고 말이외다.”
소영이 다급히 물었다.
“마총타주의 상처는 좀 어떻소?”
“비록 중상을 입긴 했으나 다행히 무당파의 장문인 무위도장의
도움을 얻어 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소영은 안도의 빛을 나타내며 말했다.
“길인(吉人)은 천상(天相)이라 참으로 다행한 일이오. 아무쪼록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길 빌어 마지 않겠소.”
사마건은 천천히 물었다.
“중주이고와 함께 있지 않나요?”
상팔은 두구를 부축하며 모습을 나타냈다.
“중주이고는 여기 있소이다.”
사마건은 그들을 보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매우 잘됐소. 여러분들이 무사하니 나도 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됐소.”
두구가 냉랭히 물었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이오?”
사마건은 그를 보며 말했다.
“많은 영웅들이 두 분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어서 제가 두 분은
무사하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역설했지요. 그러니 만일 두 분께서
사고라도 생겼으면 천하의 영웅들은 나 사마건의 점괘가 영험하지
못하다고 비웃을 게 아니겠소.”
두구는 다시 쌀쌀하게 말했다.
“나는 비록 죽지 않았으나 상처는 가볍지 않소이다.”
상팔은 이때 갑자기 신투 향비의 생각이 나서 황급히 물었다.
“그 늙은 도적은 어떻게 됐소?”
“향형의 부상은 비교적 가벼워서 현재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
소이다.”
손불사는 숲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현재 어디에 계시오?”
손불사도 백화산장 안에서 크게 용맹을 떨치어 군호들은 이미 그
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모두 그를 상당히 존경하고 있는 터였다.
사마건은 손불사를 보자 황급히 손을 모으고 공손히 절을 하였
다.
“노선배님, 역시 이곳에 계셨군요.”
“왜? 이 늙은이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가?”
하고 껄껄 웃었다.
사마건도 약간 미소를 띠고 말했다.
“소생은 서쪽 중원에 와서 원래 중원의 무림 인물들과 실력을 겨
룰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백화산장의 일전에서 저의 영웅심은 깨끗
이 사라져 버리고 심중에서 소형에 대해 더욱 앙모하는 마음이 솟
아 올랐지요. 그러기 때문에 중원에 남아서 미약한 힘이나마 그 분
을 도와 드리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손불사는 유쾌한 듯이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현명한 사람이외다. 이 늙은이는 당신과 사귀어 보고 싶어
졌소.”
사마건은 가벼운 기침을 하며 말했다.
“무위도장과 마문비 등은 현재 아주 은밀한 곳에서 상처를 치료
하고 계시면서 한편으로는 심목풍과 대적할 계획을 강구하고 계십
니다.”
손불사가 그에게 물었다.
“이곳과의 거리는 어떻소?”
“약 이백 리 정도 됩니다.”
“좋소. 당신은 근육도 풀 겸 한동안 걷기로 하고 부상한 두형을
말에 태우는 게 어떻소?”
“노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자기의 말을 끌어다가 두구에게 타라고 권했다. 이것을 본
소영은 속으로 크게 의아심을 느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그처럼 차갑고 교만한 태도를 보였던 이 사
람이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온화하게 태도가 변했을까?’
하고 생각할 때 상팔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 말에 올라 타게. 이처럼 사마형이 성의로 대우하니 우리
도 사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두구는 큰 걸음으로 걸어 가서 차디차게 입을 열었다.
“그럼, 수고스럽지만 길을 좀 걷구료.”
사마건은 상냥하게 말했다.
“두형은 부상당한 몸이니 제가 응당 양보를 해야 되지 않겠소.”
그러면서 두구를 부축하여 말 위에 올려 주었다.
상팔은 시선을 당원기에게 옮기고 말했다.
“당형, 아직도 부상당한 낭자가 한 분 있는데….”
하자 당원기는 다급히 물었다.
“어느 분이오? 어서 이 말에 태우도록 하시오.”
상팔은 고개를 돌려 숲 속을 향해 소리쳤다.
“금란낭자! 은란의 상처가 어떻소? 말을 타고 갈 수 있겠소?”
그러자 금란의 소리가 들려 왔다.
“손노선배님의 치료와 진기의 도움으로써 상처는 원만히 아물어
아마 말을 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그녀를 데리고 나오시오.”
금란은 대답을 하고 은란을 안고 걸어 나와 당원기의 건마에 태
웠다. 소영은 내심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고 했을 때 손불사가 크게 소리쳤다.
“심목풍이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끝까지 우리를 추격할 것이오.
이곳에서 더 이상 지체 말고 빨리 길을 재촉하도록 합시다.”
사마건은 곧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길을 안내하겠소이다.”
하고 앞장서서 달려 갔다. 도중에서 소영이 몸소 겪은 경과를 털
어 놓자, 듣고 있던 사마건과 당원기는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다. 당원기는 소영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심목풍 하나도 상대하기 힘드는데 지금 다시 사해군주가 불어났
으니 강호의 분란은 더욱 심각해져서 수백 년래의 가장 흉악한 때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불사가 입을 열었다.
“소문에 듣기로는 무당파의 장문인 무위도장이 지혜와 두뇌가 매
우 훌륭하다던데 어떤 묘계를 써서 사해군주와 심목풍이 맞붙어서
그들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상당한 기력을
아낄 수 있 을 텐데….”
소영은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소생이 보는 바로는 그들 두 사람은 마음이 음침하고 계략이 깊
은 자들이라 그들끼리 충돌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 같소이다.”
사마건이 소영에게 물었다.
“사해군주의 무공은 어떻습니까?”
“그는 여지껏 손을 써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심(高深)을 추측할
수가 없구료.”
손불사가 말을 받았다.
“나는 소요자에 관해서 알고 있는데 그 자는 비단 무공이 고강할
뿐 아니라 심술이 또한 사납기 그지 없소. 그러나 사해군주는 이러
한 소요자를 이용해서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게 할만큼 재주가 있는
자이니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오.”
당원기와 사마건은 모두 소요자의 내력, 출신을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말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날이 훤히 밝아 올 무렵, 그들 일행은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
리고 그곳에서 소부인을 위하여 일행은 부득불 반나절을 쉬어야만
했다.
그들은 그 마을에서 한 대의 마차를 구한 뒤에 다시 길을 재촉했
다. 하룻밤을 꼬박 걷기를 계속했고 또 다시 다음 날의 태양이 서
산에 저물어 갈때 그들은 어느 호숫가에 당도하였다.
사마건이 소영에게 말했다.
“소형, 무위도장 등은 바로 이 호수의 맞은편에 있습니다.”
소영은 사마건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 보았다. 과연 맞은편에 보
이는 푸른 산기슭에 보일 듯 말 듯 아득히 오두막집이 눈에 띄었
다. 손불사는 호면의 길이가 약 이 리 정도되며 넓이 역시 그쯤되
는 것을 눈짐작으로 재어 본 후 입을 열었다.
“호수를 건너려면 배가 있어야 되는데 어디서 배를 구할 수 있겠
소?”
당원기가 나서며 대답했다.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소생이 즉시 배를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는 어깨에 메었던 활을 손에 들고 화살을 당겨 핑! 하고 쏘았
다. 그는 궁술에 조예가 깊어서 신전(神箭)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고 있었다. 그가 쏜 화살은 허공을 가르고 곧장 구름을 뚫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과연 호면에서 한 척의 배가 파도를 가르고 달려
왔다. 배의 속도는 상당히 빨라서 보고 있는 동안에 벌써 그들이
기다리는 호숫가에 와서 닿았다.
그 작은 배에는 검을 지닌 중년의 도사가 노를 젓고 있었으며 뱃
머리에는 남색 옷에 검을 지닌 전엽청이 서 있었다.
전엽청은 그 배가 탕기도 전에 몸을 날려 호숫가로 올라 왔다.
그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당원기와 사마건을 향해 소리쳤다.
“두 분께서 수고가 많으시군요.”
하더니 눈길을 손불사에게 돌리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노선배님께서 왕림해 주시니 정말로 영광이옵니다.”
그러자 손불사는 웃으며 말했다.
“영사형은 언제나 무림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마침
내 시비 속에 말려드셨군요. 정말 뜻밖이외다.”
전엽청이 말했다.
“소생의 사형은 비록 별명이 무위(無爲)라 하지만 실은 협골열장
을 지니셨습니다. 이번에 강호에 분란이 야기되자 저희들 무당파가
곧 그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었는데 그것은 소생의 사형께서 워낙
마음이 인자하셔서 일대 무뢰한의 횡포가 발생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손불사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뭐라고? 아니 그렇다면 소림, 아미, 청성 등의 여러 대문파에서
는 모두 좌시하며 상관을 하지 않고 있단 말이오?”
“소생의 사형께서는 벌써 사람을 보내서 소림파의 강문방장을 만
나 현재의 강호의 대국을 알렸으나 심부름을 간 사람이 아직 돌아
오지 않고 있어서 소림파의 태도가 어떠한지 회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더니 일행을 한 번 둘러 보고 다시 계속했다.
“소생의 사형께서는 여러분들을 몹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호수
를 건너도록 하여 저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십시다.”
손불사는 서슴없이 첫 번째로 배에 올라 탔다.
사마건이 전엽청에게 말했다.
“전형, 먼저 손노선배님과 소대협을 모시고 가시오. 저희들은 다
음 차례에 가겠소이다.”
그러고 보니 그 배는 너무 작아서 손불사와 소영 및 그의 양친과
금란, 은란이 배에 오르자 이미 꽉 찼던 것이다.
전엽청은 낮은 소리로 노를 젓는 노인에게 분부했다.
“그대는 여기서 내려 저 분들과 잠시 함께 있게. 내가 노를 젓고
갈 테니…..”
그의 나이는 비록 어리나 무당파 문하에 있어서는 신분이 매우
높았으므로 그 중년의 도인은 공손히 읍하고 배에서 내렸다.
전엽청이 노를 저으며 배를 밀치자 작은 배는 나는 듯 파도를 헤
치고 달려 나가 순식간에 맞은편 언덕에 도착했다.
흰 수염이 앞가슴에 드리워진 무위도장이 운양자를 데리고 벌써
마중나와 있었다.
소영은 눈길을 돌려 사방을 훑어 보았다. 이곳 반달 모양의 분지
는 뒤는 산에 의지하고 앞은 호수에 면하고 있어서 맑은 호수에 비
친 푸른 산그림자는 저녁 노을 속에서 산호빛으로 물들어 그 아름
다운 경치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위도장은 합장하고 웃는 낯으로 손불사에게 인사를 했다.
“노선배님은 세상을 등진 지 수십 년이나 되는데 기어코 이 강호
의 살생의 시비 속으로 말려 드셨소이다그려.”
손불사는 성격이 매우 호탕하여 핫하 웃으며 대꾸했다.
“이 늙은 몸은 나무토막처럼 변해서 앞으로 산다 해도 몇 년 남
지 않았으니, 여생을 무림 정의를 위해서 미약한 힘이나마 바쳐 그
것이 다소 힘이 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이다.”
소영은 무위도장이 자기를 애호해 주려고 힘쓰는 것이 고마워 급
히 두 걸음 나아가서 정중히 예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후배 소영은 도장의 만수무강을 비옵니다.”
무위도장은 몸을 굽혀 답례를 하고 인자하게 웃었다.
“소대협은 우리 무림동지들이 목하 가장 존경하는 위인인데 빈도
가 영광스럽게도 이렇게 수려한 풍채를 뵈올 수 있으니 참으로 기
쁘기 그지없습니다.”
소영은 가볍게 탄식했다.
“소생은 아직 어리고 무식해서 도장의 이와 같은 칭찬을 들을 만
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어찌 이처럼 과분한 칭찬을 들을 수가 있
겠습니까?”
무위도장은 운양자를 한 번 뒤돌아 보고 분부했다.
“둘째, 내 대신으로 군호들을 정중히 영접하게.”
운양자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무위도장은 낮은 목소리로 손불사를 향해서 권했다.
“두 분은 빈도와 함께 정실로 가셔서 차를 듭시다. 빈도는 한 가
지 어려운 일에 봉착하고 있는데 아무리 심사숙고를 해 봐도 결단
을 내리기 어려워 두 분의 가르침을 받을까 합니다.”
이때 벌써 두 명의 중년 도사가 마중을 나와 소영의 양친과 금
란, 은란을 한 채의 초가집으로 안내해 갔다.
소영과 손불사는 무위도장을 따라 한 채의 초가집으로 걸어 들어
갔다. 그 집 안의 장치는 아주 간단하였다. 침상 하나에 탁자가 놓
여 있었으며 몇 개의 대나무 의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자, 미목이 수려한 도동이 곧 세 사람 앞에 차를
날라 왔다.
손불사의 나이는 육십이 훨씬 넘었으나 성격은 여전히 급하여 자
리에 앉자마자 무위도장에게 다그쳐 물었다.
“도장, 무슨 일이오? 어서 말씀해 주시오. 이 늙은 몸은 언제나
성질이 급하고 인내성이 부족하외다.”
무위도장이 도동을 향해 손짓하자 그 도동은 소리없이 초가를 나
가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손불사는 무위도장의 행동에서 이 일이 매우 중요한 기밀에 속하
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무위도장은 가볍게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너무나 돌발적인 것이오. 빈도조차 어리둥절하고 있소
이다. 만약 소대협께서 오늘 오시지 않으셨다면 오늘 밤에 뜻밖의
살생이 벌어질 뻔했던 것입니다.”
소영은 어리둥절했다.
“후배가 관련된 일입니까?”
“그러하이다. 그 자는 소대협을 지명하여 찾았으니까요.”
소영은 더욱 이상해서 미간을 모으고 물었다.
“그 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러자 무위도장은 엄숙한 어조로 대답했다.
“북천존자이외다.”
손불사는 이 말에 안색이 변하여 입을 열었다.
“아니 그 노마두가 현재 중원 땅에 와 있소?”
“바로 이 부근 십 리 안에 있소이다. 그는 멀리 북해의 빙궁(水
宮)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중원 땅에는 발길을 끊다시피 하고 있었
는데 그 자는 요즘 중원무림의 사태에 관해서 어느새 손바닥 들여
다 보듯 자세히 알고 있더군요.”
손불사는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그 노마두도 역시 심목풍과 결탁해서 중원의 무림을 뒤흔들 작
정이 아니오?”
무위도장은 고개를 저었다.
“북천존자는 몹시 자부심이 많은 사람인데 그가 어찌 심목풍과
결탁하겠소이까? 하물며 그는 중원에서 패권을 잡겠다는 마음을 가
져 본 적이 없소이다.”
“그럼 단독으로 소영을 대항코자 온 것이겠구료?”
“그렇소이다.”
무위도장은 이렇게 대답하더니 소영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 보며
서서히 말을 계속했다.
“소대협께서는 탓하지 마시기 바라오. 빈도는 그것이 오해라고
믿지만 그래도 먼저 내정을 설명해야겠군요.”
“노선배님, 어서 말씀하십시오. 후배는 귀를 씻고 경청하겠나이
다.”
“소대협께서는 북천존자의 따님을 잘 아시나이까?”
소영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이외다.”
“그림 비록 오해이긴 하겠지만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것이 아
니었구료?”
“대체 무슨 말이오? 어서 설명부터 해 주십시오.”
“어젯밤 늦게 북천존자는 갑자기 혼자 호수를 건너 와서 곧장 빈
도의 초가로 침입했소이다. 빈도는 그 자의 이름을 들어서 그의 무
공이 대단한 줄 알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고 맞이했지만 그는 다짜
고짜 소대협의 행방을 아느냐고 물어 왔소이다.”
“도장은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소?”
“빈도는 그 자의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보고는 모른다고
딱 잡아 떼었는데, 그 자는 빈도의 말을 믿지 않고 떠나 가면서 오
늘 밤 열두 시 이전에 소대협을 찾아 내라고 엄포를 놓더군요. 만
약 그때 소대협의 행방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원망 말라
고 협박하며 무당파의 인물을 모두 박살내 버린다고 위협했소이다.”
소영은 이 말을 듣고 이상히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무위도장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가 말하기를 소대협께서 그의 딸을 유괴해 갔다고 하더군요.”
소영은 깜짝 놀랐다. 그는 눈썹을 치켜 뜨며 무위도장을 바라 보
는데 그 준수한 눈동자 속에는 강렬한 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위도장도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온화하게 말했다.
“빈도 역시 그것은 오해라고 믿지만 북천존자는 설명을 하려 하
지 않고 노여움을 지닌 채 떠났소이다.”
손불사가 화를 벌컥 냈다.
“그 노마두는 시비를 걸려고 그러는 것이 분명하외다. 이 며칠
사이에 나는 소형제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북천존자의 딸은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소이다.”
무위도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빈도 역시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이 속에는 틀림없이 무
슨 흉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더군요.”
하더니 시선을 소영에게 돌려,
“당대의 무림 안에 때를 같이 해서 두 명의 소영이 나타날 모양
이외다.”
하였다. 그러자 손불사가 껑충 뛰어 오르며 외쳤다.
“그렇군! 틀림없이 소영을 가장한 놈의 짓일 것이오.”
소영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현재 진상이 가려지기도 전에 남옥당의 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 밤에 북천존자를 만나 본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
도록 합시다.”
무위도장도 동의를 표시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소이다. 때가 되면 손노선배님
과 빈도가 소대협과 함께 그를 만나 봅시다. 만약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소영도 가벼운 표정으로 돌아 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후배의 행적은 뚜렷하여 분명하니 억울함을 깨끗이 씻을 수 있
을 것이오.”
그러나 무위도장의 의견은 달랐다.
“말은 비록 그렇지만 북천존자의 사람됨이 언제나 건방지고 잘난
척하니 그는 아마 소대협의 해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외다.”
무위도장은 백화산장의 일전에서 소영의 활약상을 들어 용맹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같은 어린 나이에 아무리 신기한 재주
를 타고났더라도 북천존자와 대항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기의 생각을 몇 마디 권고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나무문
이 삐거덕 열리더니 문을 지키던 조금 전의 그 도동이 얼굴을 내밀
고 입을 열었다.
“사숙님이 군호를 안내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고 보고하자 무위도장은 곧 몸을 일으켜 정실의 입구까지 마중
을 나가 합장하며 영접했다.
“여러분! 어서 들어오십시오.”
상팔이 맨 먼저 들어 오고 그 뒤로 두구, 당원기, 사마건, 전엽
청, 운양자가 들어 왔다.
도동은 군호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차를 나른 후 다시 소리없이
정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마건이 제일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생은 소대협을 찾아서 모셔 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다행히
도 점괘가 맞아서 도장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실천했습니다.”
무위도장도 웃었다.
“사마형, 정말 수고했소이다.”
하며 눈길을 두구에게 돌리더니 말했다.
“두형의 상처는 어떠합니까? 빈도가 두형을 모시고 조용한 방으
로 가서 휴식을 취하시도록……”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구는 차디차게 웃으며 가로막았다.
“필요 없소이다. 불초는 이대로 견딜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과 음성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얼음장 같아서 제아무리
남을 감동시킬 말이라 하여도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면 듣는 사
람으로 하여금 몹시 불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위도장은 온화하게 웃었다.
“빈도가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강적이 쉽사리 기습을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심목풍의 이목으로서는 이미 이곳 우리의 은
신처도 탐지했을 것이외다. 만약 그가 우리를 상대하기로 결정했다
면 이틀 안으로 고수들을 데리고 달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
는군요.”
여기서 말을 잠시 끊고 좌석을 주욱 훑어 보았다.
“여러분! 먼 곳에서 오시느라고 몹시 시장하실 테니 먼저 음식을
드신 다음 빈도가 다시 여러분을 숙소로 모시겠으니 푹 휴식을 취
하십시오. 만일 심목풍이 고수를 끌고 이곳에 당도한다면 그들과
겨루어야 하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 두 명의 중년 도사가 나타나더니 일제히 합장
을 하고 공손히 말했다.
“여러분, 어서 식당으로 나오십시오. 음식이 마련되었습니다.”
군호들은 그 두 명의 도사를 따라 다른 한 채의 초가집으로 들어
갔다. 그 안에는 이미 주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안쪽의 손님 상에는 고기, 생선, 닭, 오리 등 여러 가지 육류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문쪽의 상에는 몇 가지 채소 요리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무위도장과 운양자 및 현문에 몸을 투신한 제자들은 모
두 육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총총히 끝낸 후 군호들은 각기 도사의 안내로 방으로 들
어 갔다. 이곳은 원래 수십 가구의 인가가 있었다.
그들은 낚시와 사냥을 생업으로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무위도장이 이곳을 선 택해서 군호들을 대대적으로 모아
백화산장과 상대하기로 한 후 무림의 살상이 무고한 백성에게까지
파급되는 것이 두려워 그는 특별히 후한 돈을 주어 이곳에서 살던
수십 가구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른 고장으로 보내었다.
소영의 거실은 부모의 바로 옆방이었다. 이 두 분 노인은 자기의
아들이 무림 동지들의 옹호를 받고 생사를 밥먹듯이 하는 것을 보
자 몹시 불안하였다.
그들은 강호의 분란 속에 아들이 말려 들어 어쩔 수 없이 강호의
평정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하는 수 없이 듣지 않고
묻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영의 모친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한시도
소영을 위해 걱정을 안하는 때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여러 차례 강호를 물러나서 조용한 곳을 택해
평화스러운 생활을 하자고 권하려 했으나 번번이 남편에게 제지당
해 왔던 것이다.
이날 밤 이경쯤 돼서 소영은 몰래 일어났다. 그는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라 심신이 매우 호조되었음을 느꼈다.
그는 무위도장을 찾아서 함께 북천존자를 만나러 가려고 마음을
먹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 그의 눈에 아직도 불이 환히 켜져 있는
옆방의 문이 눈에 띄었다. 그는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무한한 폐를 끼쳐 늙으신 나이에 안정된 생
활을 못하시고 여기저기 떠돌며 방랑케 하니 참으로 불효막심하구
나. 저렇게 불이 아직도 환한 것을 보니 밤이 깊었는데도 자리에
드실 생각은 없이 필시 내 걱정을 하고 계실 것이리라…..’
하고 생각한 그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려 문을 두드리고 들어 가
려 했다. 그러나 마침 그때 방 안에서 모친의 인자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아아! 아들을 낳으면 농부를 만들어서 백발이 될 때까지 편안하
게 살도록 하는 게 좋겠군요. 우리 영아는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화를 초래해서 이렇게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군요..
……”
부드러운 모친의 음성은 마디마디 천륜의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소영은 그만 코허리가 시큰해져서 순식간에 눈물이 뺨을 타고 내
렸다. 곧 부친의 음성이 뒤따랐다.
“그만 두시오. 만약 우리 영아가 정말 농부나 어부가 됐다면 당
신은 또 못난 놈이라고 탓했을 것이오. 우리는 비록 적지 않은 풍
상을 겪었지만 그만큼 견식을 넓히지 않았소? 산이며 호수며 아름
다운 달과 별- 이런 자연의 수려한 풍경은 모두가 상상도 못했던
훌륭한 경험이었소.”
모친의 소리는 노성을 띠었다.
“당신은 아들을 위해서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는군요. 영아는 온
종일 싸움 속에서 위험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우? 무기에는 사정이
없으니 그러다가 몸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합니까?”
부친은 핫핫 웃었다.
“그 점은 안심해도 좋소. 내가 보기에도 우리 영아의 솜씨는 비
범합디다. 천군만마가 덮치고 화살이 비오듯 쏟아져도 영아를 다치
게는 못할 것이오. 영아는 그토록 어린 나이에 강호의 영웅들로부
터 추대를 받고 있으니 얼마나 부모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오? 아들
을 두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모친은 더욱 목소리에 모가 났다.
“얼씨구, 참 좋구료. 당신은 강호를 쏘다니는 데에 아주 신이 나
서 찬성하시는군요. 부친이 이러니 자식이 야성을 지닐 만도 하군
요…..”
그러나 부친은 여전히 웃었다.
“영아가 만일 일신에 절세 무공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현재까지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 아니겠소? 내가 전에 당신에게 일러 준 말이
기억나지 않소? 영아는 태어날 때부터 괴상한 병을 타고 났기에 유
명한 의사들도 모두 속수무책이었으며 오래 살아야 이십 년이고 아
니면 열댓 살 무렵에 죽는다 하지 않았소? 나는 애초에 영아가 열
살 되던 해에 천하를 구경시켜 주려고 했었소. 영아에게 견식을 넓
혀 주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말이
오.”
모친의 목소리는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말이야 그렇지요. 그러나 현재와 과거는 달라 영아의 괴질은 이
미 완치됐어요. 그런데 어찌 옛말을 자꾸 꺼내어 말을 하십니까?”
“과거에 있던 영아는 이미 괴질로 죽었고 현재의 영아는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이오.”
“제가 낳아 제가 길렀는데 어찌 우리의 아들이 아니란 말이에요?
”
소대인은 줄곧 말씨가 부드러웠다.
“지금의 영아는 이미 우리 개인의 자식이 아니라 무림 일대의 구
성(救星)이며 만인의 생사가 그의 양 어깨에 달려 있소. 당신이 만
약 영아를 독점하려고 그 애를 졸라 조용히 살자고 한다면 영아는
날 때부터 효성이 지극한 아이라 틀림없이 당신의 소원을 따를 것
이나 천하는 이로써 파국을 초래하는 것이 되오. 얼마나 많은 부모
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아들을 잃을 것이며 또한 얼마나 많은 부인
네들이 가장을 잃게 되는가, 당신은 생각한 적이 있소?”
모친은 잠시 묵묵히 있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영아는 아직 약관의 나이인데 천하의 창생들에게 있어 정말 그
렇게 중요한 사람인가요?”
“그는 몸에 무림의 절기를 계승하고 있는데 비록 약관의 나이지
만 이미 당세에는 필적할 상대가 없는 무공을 지니고 있단 말이오.
무림의 살상은 비록 무림 안의 인물들의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여파가 미치는 곳에 사는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까지도 그 화를 면
치 못할 것이오. 당신은 영아 한 사람의 생사만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대국적으로 볼때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오.”
소영은 창 밖에 꼼짝 못하고 서서 방 안의 이러한 대화를 듣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부친의 말에 용기백배하여 몸을
돌려 곧장 무위도장의 정실로 향해서 몸을 날렸다.
무위도장과 손불사는 벌써 밖에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소영이 오는 것을 보자 즉시 가까이 다가갔다.
소영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한발 늦었군요. 두 분은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손불사는 밤하늘을 쳐다 보며 대답했다.
“때마침 잘 왔네그려.”
무위도장도 말했다.
“북천존자의 일에 빈도는 군호들을 깨우고 싶지 않소이다. 그래
서 특별히 손형과 소대협에게 청컨대 우리의 배를 타고 호수를 건
너가 맞은편에서 그와 회합을 나눕시다. 만일 회담이 결렬되어 싸
움이 벌어진다 해도 군호들을 격동시키지 않을 것이니까요.”
소영도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들이 호숫가로 걸어 나가자 전
엽청이 경장을 하고 벌써 배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위도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알고 이곳에 왔는가?”
“사형께서는 저의 행동을 용서하십시오.”
손불사는 웃으며,
“이 늙은이가 영사제를 자세히 보니 훗날 반드시 당신들의 무당
문하를 빛낼 인물이오. 그러니 함께 가서 견식을 넓히는 것도 과히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외다.”
무위도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전엽청에게 말했다.
“손노선배님의 말씀이 없으셨더라면 배에서 자네를 쫓아 버렸을
것일세.”
전엽청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손불사에게 깊이 절을 했다.
“노선배님의 말씀에 감사를 올립니다.”
손불사는 대답도 없이 배에 뛰어 올랐다. 그는 일행이 배에 오르
자 전엽청에게 말했다.
“어서 떠나도록 합시다.”
전엽청은 쌍노를 잡으며 무위도장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노를 저을 제자는 소제가 되돌려 보냈습니다.”
하고 그는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갔다.
작은 배는 기슭을 떠나 쏜살처럼 미끄러져 나갔다.
밤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호수도 몹시 어두웠다.
무위도장은 열심히 전시력을 모아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
었다.
“우리는 모두 각별히 주의하여 앞을 살펴야 되겠습니다. 만약 북
천존자가 미리 한 걸음 빨리 와서 곧장 저희들의 본거지로 침입하
게 된다면 결과도 매우 비참해지니까요.”
그러나 그때 이미 한 척의 작은 배가 물거품을 튀기며 나는 듯
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