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8
8. 몰려오는 무림의 고수들
밤하늘에는 별무리와 조각달이 한데 어울려 잔잔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소영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밤도 깊고 날씨도 차가우니 소시주께서는 안으로 드십시요.”
소영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 보니 어느
사이에 달려 왔는지 한 도동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소영의 옆에 서
있었다.
소영은 상대가 나이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알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들어가지 않겠소. 참견 마오!”
그 소년 도인은 십 팔세 정도로 보였는데 나이에 비해 무척 기품
이 있어 보였고 등에는 한 자루의 보검을 메고 있었다.
그는 소영이 외치는 소리에 잠깐 주춤하더니 곧 표정을 싸늘하게
바꾸면서 불쑥 손을 뻗쳐 소영을 팔목을 잡으려고 했다.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큰 소리를 치시오! 소시주께서 정히 말
을 듣지 않으시겠다면 빈도가 수고하여 드리리다.”
소영은 재빨리 옆으로 피하며 호통을 쳤다.
“야, 이놈아! 난 절대로 들어 가지 않겠다는데 네가 왜 상관을
하느냐? 그 알량한 무공을 뽐낼 것이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년 도인은 번개처럼 빠른 동작으로 소영
에게 덮쳐 갔다. 미처 소영은 피하지도 못하고 손목을 잡혔다.
그는 보기와는 달리 무척 동작이 빨랐으며 또한 내공도 적지 않
은 듯 했다.
소영은 그에게 잡힌 팔목이 저려옴을 느꼈다. 소영은 다시 소년
도인에게 대들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동자야! 그 시주를 자기 마음대로 다니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자 소년 도인은 소영의 손을 놓고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소영은 등 뒤의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앞을 향해 성큼성큼 걸
음을 옮기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주위에는 갖가지 사철나무들이
파란 잎을 흔들며 달빛을 받아 출렁일 뿐 사위는 어두워 분간할 수
가 없었다.
소영은 걸음을 문을 찾았으나 이 정원은 얼마나 큰지 아무리 찾
아도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나무들 뿐이었다.
소영은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사방으로 뛰어 다니며 문
을 찾았다. 다시 반대쪽으로 달려 갔으나 그곳도 아니었고 또 왼쪽
으로 달려 가도 무성한 나무들 뿐이었다.
소영은 코끝이 시큰해지면 슬픔이 복받쳤다.
“악누나! 누나!”
적막한 밤을 깨뜨리는 소영의 외침을 절규에 가까웠다. 소영은
다시 소리 높이 악소채를 부르며 정원을 지나 숲을 뚫고 곧장 앞으
로 내달렸다.
“악 누나… 악 누나…”
그가 밤길을 달리면서 부르는 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절
한 감정을 느끼게 하였다.
얼마나 뛰었는지 숨이 턱까지 차고 전신에 힘이 풀려 더 뛰지를
못하고 소영은 그 자리에 털색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돌연 저 멀리서 악소채가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것이 어
렴풋이 보였다. 그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소영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겼
는지 결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악 누나! 잠깐만 기다려요. 악 누나!”
그에게 뚜렷이 나타났던 악소채는 다시 멀어져 갔다.
얼마 후 얼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
키려 하였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이곳은 숲속인가 본데 왜 이런 곳에..”
소영은 사방을 살폈으나 주위는 울창한 숲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운양
자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자신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영자는 소영의 놀라는 표정을 보더니 재빨리 입을 열었다.
“소시주, 그렇게 놀라지 말게. 이제야 깨어났나?”
소영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앉았다.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는 바로 삼원관(三元觀)의 뒷산이네.”
소영이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숲 너머로 커다란 전각이 높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운양자는 몸을 일으켜 소영의 곁으로 다가 서며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괜찮아요. 그런데 도장께서는 저의 악 누나를 만나셨습니까?”
“아니, 만나지 못했네. 그러나 자네 누나가 자네를 그리워 한다
면 언젠가는 이곳을 찾겠지!”
소영은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다그쳐 물었다.
“그럼 어제 저녁에 왔던 사람은 저의 악 누나가 아닙니까?”
“아니었네, 소시주. 우리 장문 사형이 비록 무공의 경지가 높고
의술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항상 한 곳에만 계시면서 시끄러운 세
상을 등지고 사신다네. 그래서 본 제자들도 그분을 뵙기가 무척 힘
들다네. 그런데 소시주는 장문 사형의 눈에 들어 손수 치료하시고
또 자네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영의 끼어 들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의술입니까? 저의 악 누나도 저의 병을
고칠 줄 압니다.”
“허허허… 자네 말대로 자네 누나가 독특한 의술을 지녔다 하더
라도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 자네 혼자
서 이 넓은 천지를 돌아 다니며 누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대답도 못했다.
운양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만약에 내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이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자네 상처는 다시 재발하여 죽게 되네. 더군다나 장문 사형의 미움
을 받으면… 자네가 살고 싶으면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얌전
히 있게.”
소영은 내심 느끼는 것이 있어 무슨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깨물었
다.
‘그렇지! 우선 내 몸부터 돌보고 다음에 누나를 찾아도 늦지는
않다.’
“도장께서는 저보고 말을 잘 들으라고 하셨는데, 그러기 전에 우
선 제 청을 한 가지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디 말해 보게나. 빈도가 들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않겠네.”
무당파는 강호에게서도 이름난 문파로서 정의를 위하여 평소에
무림 동도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더군다나 무위도장과 운양도
장은 모두가 무당파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귀인들로
서 무공의 뛰어남은 물론 인품도 뛰어났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숭앙을 받는 무위도장과 운양도장이
어린 아이를 이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될 수 있으면 소영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다.
소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언제든 우리 악 누나가 이곳으로 나를 찾아 오면 틀림없
이 저에게 알려 주시고 또 악 누나와 같이 이곳을 떠나게 해 주시
겠어요?”
운양자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 무슨 결심을
한 듯 눈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좋네. 빈도가 자네의 청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그러자 소영의 표정은 매우 밝아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악 누나는 반드시 나를 찾아 올 것이다.”
운양자는 그의 말을 듣고 내심 짚이는 것이 있어 부끄러운 마음
이 들었다.
‘부득이 자네를 이용하는 것이니 너무 섭섭히 생각지 말게나.’
“허허허… 아직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하군. 어젯밤에 자
네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나도 자네를 찾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
네. 그리고 자네가 지쳐서 기절했을 때 나의 내공으로 자네 운기를
되살려 생사의 지경에서 구해 내었네. 벌써 자네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과연 행운아일세. 지금 자네의 체력은 좋지 않으
니 내가 업고 가지!”
운양자는 소영을 가볍게 등에 업었다. 소영은 이미 말썽을 부리
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으므로 그의 호의를 뿌리치지 않았다.
운양자는 곧 길을 재촉하여 관중으로 달려 나갔는데 몇 개의 커
다란 정원을 지나 청색으로 된 담을 지났다.
커다란 세 개의 관중에서 유독 이곳만이 담이 높았으며 좌원(座
院)의 입구는 청의 도동이 지키고 있었다.
소영은 주위를 살폈다.
운양자는 문앞에 다가서자 소영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소시주! 여기서부터는 걸어 들어 가야 되네.”
두 사람이 원문을 지나치려는데 그곳에 서 있던 청의 도동이 운
양자에게 다가 서면서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삼사숙님! 장문 사존께서 손님을 접대하고 계시니 조금 기다리
셨다가 들어 가십시오.”
운양자는 청의 도동을 날카롭게 쏘아 보며 물었다.
“어떤 손님인데 나까지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가?”
“제자는 모르옵니다. 그러나 장문 사존께서 그 손님에게 무척 겸
손하게 대하셨으며 특별히 저를 시켜 이곳에서 아무도 안으로 들여
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삼사숙께서 무슨 바쁜 일이 있으시다면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안으로 들어가 여쭈어 보겠습
니다.”
“아니다. 내가 잠시 후에 다시 오겠다.”
운양자는 소영이의 손을 잡고 원문을 나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손님일까? 나까지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다니.’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길을 재촉하여 좌원에서 멀리
떨어진 조그만 대전에 도착하였다.
무위도장의 대전에 비하면 비길 데 없이 조그맣고 위용도 없어
보였지만 오히려 깨끗하고 경치가 좋아 소영의 마음에는 흡족한 곳
이었다.
운양자가 먼저 성큼성큼 내실로 들어 가면 손짓을 하였다.
소영은 주위의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들에 정신이 팔려 그의 손
짓을 못보고 그냥 그대로 서 있었는데 운양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그렇게 보는가? 어서 방으로 들어 오게. 이곳에는 더 볼
것이 많네.”
운양자의 내실은 무척 깨끗하였다.
“어서 들어와 편안하게 앉게나. 이 방안에 있는 물건은 마음대로
보아도 좋네. 그러나 절대로 만지지는 말게나.”
소영은 방안으로 들어 서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건너편 벽에는
보검과 도포를 걸어 놓았으며 그 아래 조그만 탁상 위에는 세 개의
금화살이 놓여 있었다. 그 한쪽 구석에는 흰 비단으로 덮혀진 백혹
소반이 있었다.
운양자는 무척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소영을 아랑곳하지 않고 운
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소영은 어린아이였다. 운양자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만히 걸음을 옮겨 탁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
다. 그 세 개의 금화살에는 각각 정교한 무의가 새겨져 있었으며
무척 아름다웠다.
‘이 금화살을 사용하는 사람은 무공과 지위가 높은 사람같군. 이
촉에 새겨 있는 도안은 누가 보더라도 아주 정묘한 솜씨인데.’
금화살의 커다란 촉에는 무슨 꽃을 새겨 놓았는데 장미 같기도
하고 백합 같기도 하였다.
그는 백색 비단으로 덮여 있는 백옥 소반으로 다가섰는데 백옥
소반의 둘레에는 금화살의 꽃무의와 똑같은 것이 수놓여 있었으며,
특히 탁상에 덮여 있는 비단에도 빨간 실로 똑같은 꽃무의를 수놓
은 것이 이채로웠다.
소영은 자꾸만 호기심이 생겨 자꾸만 손이 탁상으로 올라갔다.
‘이 탁상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덮어 놓았을까? 만지지 말라
고는 하였지만 지금은 눈을 감고 있으니 이 기회에…”
소영이 살그머니 손을 들어 막 백색 비단을 들추려 했다.
이때 돌연 등 뒤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렸다.
“손대지 말게.”
소영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음성이 들렸던 곳을 보았다. 내실의 출입
구에서 십오, 육세 정도의 도동이 서 있었다.
소영은 불쾌했다. 얼마 동안 그를 쏘아 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운
양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소시주,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나. 그 백색 비단
밑에는 독약이 있네. 모두가 자네를 위한 것이라네.”
소영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리
를 잡고 앉으려는데 다시 문 밖의 도동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장문 사존께서 사부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손님은 가셨느냐?”
“제자는 청학(靑鶴) 사형의 전갈을 받고 왔기 때문에 손님이 가
셨는지는 자세히 모르옵니다.”
운양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소영에게 물었다.
“소시주도 같이 가겠나?”
소영이 대답도 하기 전에 도동이 입을 열었다.
“장문 사존님께서 저 시주님도 함께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다.”
도동이 예를 올리고 물러가자 그는 소영의 손을 잡고 내실을 나
서며 부드러운 음성을 말했다.
“소시주, 사형 앞에 가서는 예를 갖추게. 혹시 손님이 소시주가
아는 사람이라도 아는 체를 하지 말게나. 알겠나?”
두 사람은 곧 무위도장이 거처하는 단실에 당도하였다. 그곳에는
무위도장 혼자 있었는데 그의 표정은 심각하고 수심에 쌓여 있었
다. 운양자는 대뜸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운양자는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린 후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장문 사형을 뵙겠습니다.”
무위도장은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운양자와 소영을 번갈
아 쳐다 보며 자리를 권했다.
“사제! 어서 앉게. 너도 자리에 앉거라.”
운양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장문 사존께서 무슨 지시라도 있으십니까?”
그는 무위도장의 표정 속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위도장은 무당파의 모든 무공의 절기를 터득하였으며 인품이
높아 악을 모르고 헛된 욕심을 갖지 않았다. 무림에 나간다면 필시
커다란 명성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이곳에서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에
게도 될 수 있으면 산을 내려 가지 못하게 하며 선(禪)을 일깨워
주었다.
운양자는 처음으로 무위도장의 수심에 쌓인 표정을 보고 내심 크
게 걱정을 하였다.
‘조금 전에 찾아온 손님 때문인 것 같군. 무슨 일일까? 너무 심
각한 것 같아 감히 무어라 위로의 말을 못하겠구나. 혹시 무당파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나 아닐까? 아니지, 아닐 거야……’
운양자의 머리속은 여러가지 잡념으로 매우 어지러웠다. 잠시 동
안 침묵이 흐른 후에 무위도장이 소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무
겁게 입을 열었다.
“무림의 아홉 개 문파와 서강, 서북에 있는 웅주들은 모두 금궁
(金宮)의 열쇠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그 금궁의 비밀을
알려고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빈도도 역시 그 열쇠와 비밀을
알고 싶지만 무림의 일에 뛰어 들어 인명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했
다. 그것은 무림에서 일찍이 없었던 보물이지만 선한 사람들에게는
화가 되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금궁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 무림
의 수많은 고수들에게 적이 되고 만다. 어제의 절친한 친구가, 형
제가 심지어는 사제지간도 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명리(名利),
두 글자는 확실히 무서운 악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소영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런 말이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이때 무위도장은 잠시 숙연해지더니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갔다.
“빈도는 금궁에 있는 보물에는 욕심이 없지만 선사조(先師祖)의
유해는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선사조의 명예를 위
해서라도 부득이 나서야 되겠다. 빈도는 억지로 너를 위압하지는
않겠다. 이 문제는 네가 결정할 일이다.”
소영은 어리둥절하여 무위도장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조금 전에 빈도는 무림의 몇몇 고수들과 소림사의 두 고승들을
만났다.”
그의 말에 운양자는 크게 놀랐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아왔습니까?”
무위도장은 소영을 손짓으로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이 소시주 때문이네.”
운양자의 표정은 엄숙했다.
“사제!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네. 그들은 그 금궁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네. 사대 문파의 가보가 들어 있고 또
여섯 고인들의 절기를 지닌 보물과 열 명의 무림선배들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이 들어 있네. 지금이라도 열 명의 선배들과
관계만 맺을 수 있다면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금궁의 열쇠를 찾을
수 있네.”
무위도장은 다시 소영을 가리켰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이 소시주와 관계가 있네.”
그러자 운양자가 손을 흔들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 소시주는 무공도 없고 또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
는데 어찌 그들이 괴롭히게 둘 수 있습니까? 사제는 외면할 수 없
습니다.”
그는 소영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소시주 만약에 무림의 누군가의 손에 가게 된다면 그들은 이 소
시주를 이용하여 악운고와 악소채를 위협하여 소시주의 몸과 금궁
의 열쇠를 바꾸려 할 것입니다. 그래도 장문 사존께서는 소시주를
내보내시겠습니까?”
무위도장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
다.
“그래서 내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이 일은 소시주가 결정
하여야 할 일인데 어찌 우리의 생각만으로 결정을 하겠는가?”
운양자는 대뜸 소영의 손을 힘차게 쥐며 말했다.
“소시주, 이일은 소시주가 결정해야 되겠네. 소시주가 만약 여기
를 떠난다고 하여도 우리는 막지 않겠으며 다행히 이곳에 남는다고
하면 우리 무당파의 명예를 걸고 소시주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겠
네.”
소영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무당파는 정당한 문파이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주쌍고와는
다르구나.’
운양자와 무위도장은 조용히 소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영은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고 하나에서 열까지 신중하게
생각하였지만 웬일인지 쉽게 결정되지가 않았다.
‘저 운양도장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 잡혀 괴로움을 당하는 것
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는데. 그러나 내가 선뜻 저 사람
들의 말에 따르면 훗날 악 누나가 나를 찾으로 왔을 때 저 사람들
이 그것을 이유로 트집을 잡을 것이 두렵군. 더구나 저 사람들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때 운양자가 다그쳐 물었다.
“소시주,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나?”
무위도장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네 생각을 한 번 듣고 싶구나.”
“두 분 도장님들은 저하고 약속을 하시겠어요? 훗날 저의 악 누
나가 이곳으로 저를 찾아 올 때 누나를 따라가게 해 주겠습니까?”
무위도장과 운양자는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
다.
“두 분 도장께서는 나쁜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또 제 생
명을 건져 주신 은혜를 생각하여 이곳에 남을 생각이오나 만약 제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부득이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운양자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소시주! 자네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들처럼 인자하게 잘 대하여
줄 것 같은가?”
소영은 고개를 흔들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죽음으로써 그들의 흉계를 무너뜨리겠어요. 그럼 그들
이 저를 미끼로 우리 악 누나를 괴롭힐 수 없을 거예요.”
“무척 총명하군. 빈도는 너의 조건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마.”
소영은 눈을 빛내면서 즉시 무위도장 앞에 무릎을 끓었다.
“처음에 절에서 도장님을 뵙고 무척 인자하고 어지신 분이라 생
각했어요.”
무위도장은 그의 거짓없는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운양자에
게 말했다.
“소시주는 이제 우리 손님이니, 본관의 모든 제자들에게 일러 앞
으로 어느 누구도 무당산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게나. 혹시
무림의 규칙대로 정식으로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나에게
알리라고 하게.”
운양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고 물러나자
무위도장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소영을 보면서 물었다.
“너는 지금 강호의 인물들이 온통 너의 행방을 찾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벌써 수십 년 동안 무당파의 제자들에게 엄명을 내려 무림
의 인물들과의 접촉을 끊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소시주의 안전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무림의 모든 인물들에게 칼을 겨누게 되었
다. 그렇다고 강호를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그들
을 막기만 할 것이다. 나는 너를 위해서……”
그가 말끝을 맺으려 할 때였다.
돌연 밖이 소란해지고 종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무위도장의 표
정은 일순 냉랭함이 감돌았다.
“벌써 귀찮은 손님이 찾아 온 모양이군.”
소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였다.
“내 어찌하다 어린 나이에 이러한 풍파를 겪어야 하나? 나를 서
로 빼앗으려고 무림의 고수들이 혈안이 되어 서로 살생을 하다니.’
문밖에서 젊은 제자가 외쳤다.
“장문자존께 아뢰오. 관문 밖에서 강남의 사공자(四公子)가 장문
사존님을 뵙자고 합니다.”
순간 무위도장의 안색이 약간 당황하는 빛을 띠었다. 그러나 곧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들을 청선각으로 안내하여라.”
그는 소영을 뚫어지게 바라 보며 말했다.
“소시주 나는 평생 동안 정당한 일이 아니면 하지를 않을 사람이
다. 너는 그들 앞에서 삼지관에 있겠다고 말하여라. 그러면 그 다
음 일은 내가 너를 대신하여 처리하겠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시주, 나와 같이 사공자를 만나 보러 가자.”
무위도장은 소영의 손목을 잡고 청선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시주, 지금 청선각에서 기다리고 있을 강남의 사공자는 무공
이 뛰어난 무서운 놈들이다. 아직까지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놈의 무공은 비화상인(飛花傷人)할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소시주는 무공이 없으므로 만약에 그들이 손을 써서 나와 소시주를
공격한다면 소시주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 곁을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소시주를 구할 수 있다. 알겠느
냐?”
“네. 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장님의 말씀을 명심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소시주는 무척 용감하고 말도 잘 듣는구나.”
소영은 백석으로 포장된 길을 따라 청선각으로 가면서 주의를 살
펴 보았다. 삼지관은 분위기는 살벌했으며 여기 저기에 도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세 개의 중전원(重殿阮)을 지나갔는데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며 커다란 화원이 보였고 그 화원 중앙에 빨간색 누각이 세
워져 있었다. 누각에는 큼지막하게 청선각이라고 씌어 있었으며 주
위에 샘물 흐르는 소리와 울창하게 솟아 있는 소나무 숲에서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소영의 어지러운 마음속을 달래 주
었다.
그 청선각은 조금 큰 연못 가운데에 지어진 것으로서 그곳을 잇
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다리에는 두 명의 도동이 서 있다가 무위
도장을 보자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손님은 벌써 도착하였고 지금 운양사숙께서 손님을 맞고 계십니
다.”
무위도장은 다리를 지나며 소영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소시주, 명심하여라. 내 곁에서 절대로 떨어져 있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긴장된 마음을 진정하며 누각 안으로 들어 갔다.
강남의 사공자는 운양자와 무슨 이야기인지 열심히 하다가 무위
도장이 들어 서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실은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네 명의 공자가 보내는 날카
로운 눈빛은 무위도장을 덮쳐 누를 듯한 기세였다.
그들 중 제일 왼쪽에 있는 공자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무당산을 찾은 것을 용서하십시오.”
무위도장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그들에게 예를 올린 후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빈도가 직접 네 분을 만나지 못하고 사제를 먼저 보낸 것을 크
게 허물하지 마시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왼쪽에서 서 있던 공자도 허리를 굽혔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도장 선배의 명성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
에야 도장 선배를 뵈옵게 되었으니 우리들의 소원을 이룬 것 같소
이다.”
무위도장은 그 말에 가시가 돋혀 있음을 느끼고 내심 괘씸하게
생각했다.
“저 놈들이 벌써부터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빈도는 원래부터 게으른 탓으로 강호에 잘 나서지 않아 미처 시
주의 명성을 존경하지 못하였소이다, 오늘 뜻밖에도 네 분이나 한
꺼번에 만나니 기쁘오.”
이번에는 오른쪽 끝의 공자가 입을 열었다.
“도장 선배는 세외(世外)의 고인이므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
처럼 강호를 헤매지는 않을 것이오.”
“원 별말씀을… 너무 겸손하지 마시오.”
무위도장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빈도가 비록 강호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사공자 명성은 익히 들
었소이다. 그런데 서로 인사가 늦었구려.”
이때 왼쪽에 앉아 있던 공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먼저 입을 열었
다.
“우리를 소개하여 드리리다. 저는 일진풍(一陣風) 장평(張萍)이
라고 하오이다.”
“오독화(五毒花) 왕검(王劒)이오.”
“유월설(六月雪) 이파(李波)요.”
“한강월(寒江月) 조광(祖光)이외다.”
그들은 각각 자기 소개를 하였다.
무위도장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고맙소이다. 이렇게 만나……”
조광은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 보면서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
다.
“우리 사형제는 도장 선배께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왔소
이다.”
“오, 그래요? 그럼 말씀해 보시오. 빈도는 귀를 기울여 듣겠소이
다.”
그러자 장평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도장 선배의 뛰어난 안목으로 이미 우리 사형제의 무
공은 짐작하셨을 것이오.”
“여러 번 들었소이다.”
왕검이 겸손하게 말했다.
“별 말씀을……”
그는 무위도장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물론 강호의 소문에 우리 사 형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나쁜 평이 있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소
이다. 그러나 우리 사형제는 절대로 그렇지 않소이다. 사람의 선과
악은 신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오?”
무위도장은 웃는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소영은 왕검의 말에 상대의 의도를 직감하였다.
‘저 놈들이 나를 끌고 가려고 자신들의 자랑만 하는구나. 어리석
게도 자신을 높여 말하다니.’
이때 장평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강호의 소문을 어찌 전부 믿을 수 있겠소. 한낱 헛소문
에 불과하니 도장 선배께서는 믿지 않으시리라 믿겠소.”
하고는 잠깐 주위를 훑어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요전에 운양 도형께서 조그만 어린아이를 인질로 붙잡아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이 정말인지 알아 보려고 왔소이다.”
운양자는 울화가 치밀어 막 입을 열려는데 무위도장이 저지시켰
다.
이때 두 번째의 왕검이 소영을 바라 보며 말했다.
“도장 선배께서는 무당파의 장문인이시니 조금도 거짓말은 안 하
시리라 믿소이다.”
그의 말에는 다분히 무위도장을 조롱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위 도장은 조금의 반응도 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위께서는 너무 사실 무근한 말씀을 하셨소이다. 사실은 빈도
의 사제가 중병에 걸린 동자를 데리고 왔습니다만… 그것은 인질
이 아니라 구원이외다.”
조광이 냉랭한 음성으로 물었다.
“도장 선배는 그 동자가 누군지를 알고 계시오?”
무위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가의 검법은 온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어찌 모르겠소.
악운고를 만난 적은 없으나 그의 무공은 일찌기 알고 있소이다.”
조광이 말을 받았다.
“그 동자가 바로 악운고의 아들이오.”
그러자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소영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누가 그렇다고 하던가요? 난 소영이라고 합니다.”
강남의 사공자는 의외의 말에 모두 눈을 빛내며 소영을 쳐다 보
았다.
왕검이 부드럽게 물었다.
“소영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럼 악소채는 자네하고 어떤 관계인가?”
“내 누나요.”
옆에서 조광이 끼어 들었다.
“자넨 소가이고 그녀는 악가인데 어찌 누나라고 하는가?”
소영은 얼른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까
장평이 음험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자네가 소영이라도 좋고 악영이라도 좋네. 아무튼 악운고와 관
계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지 않나.”
풍, 화, 설, 월 사형제는 항상 행동을 같이 해 왔고, 또 깊은 뜻
을 가지고 이곳에 왔으니 서로의 의사가 상통할 수밖에 없었다.
왕검이 농담을 하듯이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강호의 아홉 문파들이 일찍부터 우리 사형제를 흑도라는 이름의
문파로, 진정 흑도의 인물들은 우리 사형제를 가리켜 백도라고 하
였소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형제를 꺼린 겁장이들이 지은 이
름일 거요.”
그는 이 몇 마디의 말로써 무위도장에게 많은 뜻을 암시하였다.
자신들의 행동은 선과 악에 구애받지 않고 또한 흑도와 백도의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무위도장은 재빨리 그의 말뜻을 짐작하였지만 운양자는 그가 엉
뚱한 말을 하고 있다고 눈치챘다.
“왕형의 말씀은 무척 이해하기 어렵소이다. 좀 쉬운 말로 해 주
겠소?”
이파가 대답했다.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온 것은 다만 저 공자 때문이오.”
그의 음성은 무척 음험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공포감
을 느끼게 하였다.
운양자는 참을 수 없는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네 분은 어떻게 하시겠소?”
조광은 손에 들었던 찻잔을 천천히 탁상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
다.
“우리 사형제는 쓸데없이 나돌아 다니지를 않소이다. 무당파는
항상 정직한 일로 온 무림의 선망이 되고 있는데 이제 어린 동자를
인질로 데려다가 괴롭히고 있으니 그것은 무당파의 명성을 더럽히
는 일이오. 만약 강호에서 그것을 알게 된다면 무당파는 물론 도장
선배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그러나 다행히 그 동자를 우리에
게 넘겨 준다면 지금보다 더 큰 명성을 얻게 될 뿐더러 우리 사형
제와도 친구가 될 수 있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운양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
서 일어났는데 무위도장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사제, 참게.”
무위도장이 강남의 사공자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분의 성의는 매우 감사하오. 우리 무당파를 염려하여 주시
는……”
무위도장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밖에서 떠들
색한 음성이 들려 오더니 청의 도동이 누각 안으로 달려 왔다.
그는 무위도장에게 예를 올린 후 한 장의 빨간색 종이 쪽지를 전
하였다. 무위도장은 재빨리 그것을 받아 쥐고 펴 보았다.
무위도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청의 도동에게 말했다.
“귀빈을 한 분 초대하는 것과 열 분 초대하는 것이 무엇이 다를
까! 어서 이곳으로 모시고 오너라.”
풍, 화, 설, 월, 등 네 명은 갑자기 나타난 또 하나의 상대를 매
우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새로 나타난 놈은 누구일까? 늙은이 말투로 보아 예사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일에 방해자는 아닐지 모르겠군. 점점 일이
묘하게 되어 가는데.’
그들은 점점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마음이 다급하여 조광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장 선배, 지금 찾아 온 분은 어느 고인이시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시오. 자연히 알게 될 터이니……”
그러자 조광이 무위도장 앞에 놓여 있는 빨간 종이에 장풍을 일
으켜 재빨리 집어 들었다.
“미안하오이다. 우리 형제들은 성질이 급해서… 우리들도 그분
의 이름을 알아야 조금 후에 당황하는 결례를 면할 수 있지 않겠
소?”
운양자는 내심 조광의 손바람의 절기에 감탄하였다.
‘오래 전부터 이 사공자들에 대해 절세 무공에 대해 소문을 들어
왔 데 이제 보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군. 조금 전의 일수 휘장(徽
章)만 보더라도……”
운양자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길을 돌려 무위도장을 보았으나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조광이 종이에 써 있는 글을 보려고 손에 펴는 순간 왕검이
그가 재빨리 잡아 챘다.
“하하하… 난 또 누구라고. 초곤산이 었군.”
이파가 뒤따라 말했다.
“바로 성수철단 초곤산이란 말인가?”
왕검이 손뼉을 치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 사람 아니면 또 누가 초곤산이란 이름을 쓰겠나?”
장평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영감의 그 삼십육초 용호윤법(龍號輪法)은 깔볼 수 없는 것이
네.”
왕검이 뒤따라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로는 그 늙은이가 두 철단을 가지고 사람의 눈을 어지
럽히는 정도로는 우리 사형제에게 신통치 않을 것같소.”
무위도장은 그들이 아무리 떠들고 약을 올려도 눈을 감고서 마치
잠을 자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에 운양자의 주먹은 자꾸만 불끈불끈 주어졌다. 그러나 무위
도장 앞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전의 그 청의 도동이 훤칠한 몸집에 흰 수염을 가
슴까지 늘어뜨린 노인을 안내하며 들어 왔다. 그 노인은 조금도 주
저하는 기색이 없이 누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 섰다.
그는 어깨에 청강일월륜(靑鋼日月輪)을 메고 있었다.
무위도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표했다.
“초대협께서 이곳까지 와 주셨으니 빈도는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초곤산은 겸손한 태도로 허리를 굽히며 그 특유의 냉랭한 음성으
로 입을 열었다.
“별 말씀을…제가 오히려 무위도형의 신세를 지는 것 같소이다.”
그는 말을 끝내고 주위를 훑어 보다가 소영을 발견하고는 눈을
빛내며 반갑게 말했다.
“너 정말 여기에 있었구나.”
소영도 반갑게 그를 맞았다.
“네. 초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그래. 난 언제나 이렇게 떠돌아 다니지만 밥은 굶지는 않지.”
그러자 장평이 큰 소리로 초곤산에게 말했다.
“초영감! 너무 거만하군. 우리 사 형제를 알겠는가?”
그제서 야 초곤산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하나하나 바라 보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철단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이어 갑자기 허공에 큰 원을 그리자 둔탁한 금속성이 울렸다. 그
는 오른손으로 강남 사공자를 가르키며 입을 열었다.
“풍, 화, 설, 월……”
왕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직 우리 사형제를 잊지 않고 있구나.”
“그렇소. 소문에 들어……”
초곤산이 몇 마디 하려는데 왕검이 그의 말을 막았다.
“흥! 늙은이 말조심 하시지!”
“네가 감히 노부에게 욕을 하다니… 반드시 따끔한 맛을 보여
주마……”
옆에서 보고만 있던 조광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외쳤
다.
“늙은이! 우리 사형제를 모독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네 운은 오
늘로 마지막이다. 섭섭하게 생각지 마라.”
강남의 사공자는 초곤산을 무당파가 보는 앞에서 때려 눕히면 앞
으로의 일에 더욱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왕도가 소리쳤다.
“늙은이! 어서 덤벼 봐라.”
그러나 초곤산은 청선각을 둘러 보더니 씁쓸한 웃음을 띠며 누각
밖으로 나갔다.
“이 청선각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찌 우리들의 싸움으
로 피해를 입히겠느냐? 만약 나와 싸우고 싶다면 밖에서…”
이때 장평의 비웃는 말이 들렸다.
“어리석은 늙은이군.”
“노부는 너희를 겁내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다만 이 누각을…”
무위도장은 그의 언어와 행동이 모두 무당파를 위한 것이리라 생
각하고 내심 그를 돕고 싶었다.
그래서 무위도장은 두 손을 들어 모두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모두 먼 곳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 오셨으면서 이
렇게 만나자마자 싸워서야 어디 체통이 서겠소이까? 자, 모두 마음
을 가라앉히고 차나 드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합시다.”
초곤산도 그의 본뜻을 알아 차렸다.
“도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장평이 코웃음을 쳤다.
“이제보니 대명 높고 위세가 당당하다던 초곤산도 별것이 아니로
군. 자꾸 엉뚱하게 피하기만 하니……”
장평은 초곤산의 비위를 건드렸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이파는 내심 한가지 계략을 짰다.
‘저 늙은이는 워낙 고집에 세어서 여간해서는 싸움에 응하지 않
을 것 같군. 그러니 그의 말대로 밖으로 나가 싸우면서 기회를 보
아 소영이라는 꼬마를……’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곧 실행에 옮겼다.
“저 영감은 강호에서 이름난 고집장이니 별 도리가 없다. 그의
말대로 청선각 밖으로 나가 저 영감의 높은 콧대를 꺾어 놓자.”
장평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초곤산에게 몇 발 다가섰다.
“늙은이 기어이 싸울 텐가!”
“좋다. 밖에서 싸운다면 내 목숨을 걸고라도 끝까지 싸우겠다.”
초곤산은 벌써 청선각의 문을 나서고 있었으며 그 뒤를 이어 강
남의 사공자와 무위도장, 소영과 운양자가 뒤따랐다.
바로 이때, 청선각의 다리를 다급하게 건너 오는 도동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두 장의 빨간 종이가 또 들려 있었다.
‘또 누가 찾아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