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87
87. 남해오흉의 가슴에 그어댄 구검지술
소영은 양친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안전하게 구출되어 갔음을 알
고는 적이 마음을 놓았다. 그는 원지로 곧 돌아가 무림 동료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손불사도 그의 뜻에 찬성하여,
“옳은 일이오. 이 늙은이도 그렇게 생각했었소. 만약 우리가 그
곳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면 심목풍이 또 다시 고수를 시켜 습격해
올 것이오. 비록 운양자 등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이 보호하고 있다
고는 하지만 그 많은 고수를 당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오.”
이때 금화부인이 돌연 일어나더니,
“여러분께서 원지로 돌아 가시니 나는 더 이상 동행할 수 없겠군
요.”
하며 눈길을 소영에게 옮기더니,
“소제, 부디 몸조리 잘하기 바라네. 그럼 이 누이는 그만 가 봐
야겠군요……”
하더니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영은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몸을 일으켜 금화부인의 앞을 가
로막았다.
“누님의 상처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 어찌 혼자서 행동하실
수 있겠소?”
금화부인은 서글픈 듯 억지로 웃음 지으며,
“그럼 소제는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가?”
“소제 생각으로는 누님이 우리와 같이 가시면 내가 다소나마 보
호를 해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금화부인은,
“동생의 뜻은 나에게 사를 버리고 귀정(歸正)하여, 백화산장을
떠나라는 말인가?”
소영은 곧 대답했다.
“소제가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우선 상처가
호전된 후 다시 가고 싶은 데로 가셔도 늦지 않소.”
금화부인은 돌연 안색이 변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만약 내가 동생과 같이 그 호반으로 가게 되면 심목풍이 당장
이 사실을 알게 될 거야.”
“누님은 심목풍이 그렇게 두렵소?”
“그가 내게 손을 뻗치는 날에는 나는 곧 중독된 독이 발작하여
죽게 되니 내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겠나. 동생은 생각해 보게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금화부인은 곧 응했다.
“물어 보게나. 혹 내가 일러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소제도 백화산장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는데 심목풍이 어째서 나
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을까요?”
금화부인은,
“그야 자네가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혹 그가 쓸 틈이 없었
든지 아니면 강호에 처음 발을 디딘 자네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
다고 생각했든지 둘 중의 하나겠지.”
소영은 잠시 주저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면서,
“누님은 꼭 혼자 가겠소?”
“내가 내 목을 지키려면 꼭 가야만 하지.”
소영이 암연(暗然)히 말했다.
“누님이 입은 상처는 대단히 커서 도중에서 아무도 보살펴 줄 사
람이 없으면 매우 위험할 텐데…..”
금화부인은 웃으며,
“걱정할 것 없네. 이 몸에 지닌 독물만으로도 내 한 몸을 보호하
기는 충분하니까.”
하고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하고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녀의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아 체력이 매우 약해져서 비틀거리며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소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그녀 앞을 막아 섰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읍을 한 후,
“누님께서는 수차례나 저의 생명을 구해 주셨는데 소제는 한 번
도 제대로 보답을 못해 드렸소. 지금 누님의 상처가 이토록 심한
데, 이 소영이 몰랐으면 모르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어찌 혼
자 가시게 할 수 있겠소?”
금화부인은 호수와 같이 맑은 두 눈으로 소영을 한참 동안 바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너무 친절하게 대해 줄 필요는 없네. 이 누나는 많은 사
람을 상대해 왔네. 그러므로 그런 겉치레의 사탕발림 같은 소리는
귓전에도 들리지 않네.”
하더니 소영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을 옮겼다.
소영은 꿈에토 금화부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몰
랐다. 그는 한동안 멍청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소영은 금화부인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서야 몸
을 돌려 무위도장 앞에 와서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저토록 고집이 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무위도장이 대답했다.
“금화부인은 워낙 꾀가 많은 사람이라 자기의 안위에 대한 계산
은 다 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그리 걱정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
오.”
“장부가 입은 은혜를 갚지 못하니 도무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손불사도 참견했다.
“창창한 내일이 있는데 무어 그리 조급히 굴 것 없네. 우리 빨리
가 보도록 하지.”
하더니 앞장서서 길을 나섰다.
무위도장이 소영에게 나지막하게,
“소대협, 금화부인이 가기 전 비록 거절은 했지만 그것이 진정은
아니었소.”
“도장께서 그걸 어찌 아십니까?”
무위도장은 웃으며,
“그녀가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을 했다면 울 필요가 없었겠지
요.”
소영은 의아해서,
“저는 그녀와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그녀가 우는 것은 보지 못했
는데요.”
“소대협은 유심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오. 빈도는 그녀가 몸을 돌
리고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것을 분명히 보았소.”
소영은 잠시 주저하더니,
“도장께서 똑똑히 보셨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호반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무위도장은 절벽 밑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을 느꼈는지 암연히 소
영을 바라 보며,
“우리가 또 한발 늦은 모양이군!”
소영이 급히 물었다.
“무슨 사고라도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소. 만일 그들이 전부 돌아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무슨 큰일이 난 것 같소.”
소영도 내심 그 말이 적중한 것 같았다. 만약 이 절벽 밑에 아직
무당의 제자들이 남아 있다면 그들이 비록 같은 파의 장문인을 마
중나오지는 않을지라도, 절벽 밑에 망을 보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때 손불사, 중주이고, 사마건, 그리고 왕방과 장자안 등까지도
모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무위도장은 황급히 한 채의 초가 앞으로 달려 갔다.
소영은 무위도장의 뒤를 바짝 따라 가며 암암리에 운공하여 만일
의 돌발사태에 대비했다. 그는 연거푸 몇 번의 흉험을 치름으로써
안목이 높아졌다.
‘무위도장을 따라 이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당 문하의 주
요 인물들이라 일파의 정예들이 전부 이곳에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무슨 참변이 발발했다가는 무당파가 받은 타격은 실
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이미 초가 앞에 당도했다.
무위도장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소영을 한 번 바라 보
고는 서서히 왼손을 내밀어 나무문에 손을 얹었다. 침착하게 열기
는 해도 그의 손이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 문은 아마 천근의 무게
는 더 되는 것 같았다. 무위도장이 혼신의 힘을 다 해야만 그 나무
문이 열릴 것 같았다.
소영은 속으로 탄식을 하고는 돌연 무위도장 옆으로 한 발 다가
가서 그를 보호하였다. 그는 무위도장의 표정이 매우 침울한 것으
로 미루어 이 초가 안에 무당 제자들의 시체가 흩어져 있거나, 아
니면 강적이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무위도장 옆에 바싹 붙어 섰다가 적시 에 보호해 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그 나무 대문이 활짝 열리고 실내의 광경이 시야에 들어
왔다. 모든 것은 여러 사람의 상상 밖이었다. 그곳에는 죽어 쓰러
진 시체도 없었고 적의 잠복도 없었다.
다만 운양자가 그 안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고, 그의 양
옆에는 도포를 입고 등에 검을 멘 무당 제자 여섯 사람이 앉아 있
었다. 일곱 사람 전부가 심한 내상(內傷)을 입은 듯 책상다리를 하
고 앉아 운공조식(運功調息)을 하고 있었다.
“사제, 무사한가?”
하며 안으로 들어 섰다.
운양자는 눈을 뜨고 무위도장을 쳐다 보더니 이내 눈을 무거운
듯 내려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
무위도장은,
“사제! 내상의 정도가 심한가?”
하고 물었다.
이때 소영도 무위도장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 왔다. 운양자는
다시 눈을 뜨고 무위도장을 바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어디를 다쳤는지 빨리 말해 보게!”
하며 황급히 운양자 곁으로 다가 갔다.
운양자는 여전히 정좌하여 꿈쩍도 않았다.
무위도장이 바싹 다가 서자 돌연 몸을 뒤로 솟구치더니 손가락을
날카롭게 뻗어 무위도장의 갈비뼈에 있는 대포혈(大包穴)을 찍었
다. 무위도장은 운양자가 이처림 자기에게 덮쳐 올 줄은 꿈에도 몰
랐다. 그는 순간 움찔하였다. 운양자의 손톱이 도포자락에 와 닿았
다. 너무도 의외의 일이라 황급히 진기를 모으며 옆으로 몸을 피했
다. 운양자는 민첩한 동작으로 손을 뻗쳐 왔고 또 한 번 초식을 바
꾸는데도 번개같아, 무위도장이 그 대포요혈을 피해 내자 곧 오른
팔을 쭉 뻗어 경문혈을 찍어 왔다.
무위도장은 비록 뛰어난 무공을 지니기는 했지만, 극히 상심하며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던 터라 더 이상 그 번개같이 빠르고 변화
무창한 돌연한 습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그만 상대의 손가락에 혈
도를 찔려 반신이 마비되어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일대의 장문인이었다. 무공의 성취가 매우 오
묘하여 곧 일장을 휘둘러 운양자의 오른팔 맥문을 향해 내쳤다.
그런데 운양자가 무위도장에게 덮쳐 들자 운양자 양쪽에 앉아 있
던 여섯 명의 도인도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소영에게 덮쳐 오는 것
이었다.
여섯 명은 이미 공력의 위치를 미리 지적해 놓았는지 십이의 장
심이 일제히 소영의 열두 군데의 부위를 향해 불을 뿜었다. 돌연한
사태에 소영 역시 무방비상태였다. 그는 온통 몸을 휘감다시피 한
장영(掌影)이 사면 팔방에서 공격해 들어 오자 즉시 쌍장을 동시에
들고 각 요해를 막은 후 몸을 옆으로 번쩍 날렸다.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왼쪽 어깨와 등, 두 군데에 각각 일장을
받았다. 그중 도인의 장력이 날카로웠음에도 소영은 운기하여 호신
할 여유는 없었으나 현문정동내공(玄門正東內攻)과 건청강기가 몸
에 배어 본능적인 반응으로 막아 내어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여섯 명의 도인은 소영이 장을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소영을 격동시킨 두 도인의 손목이 오히려 마비
되어 옴을 느끼고 각자 한 발짝씩 물러 섰다.
이때 왼쪽에 서 있던 도인이 소리쳤다.
“검을 뽑아 육합검진(大合劍陣)으로 그를 포위하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 안에는 검빛이 번쩍이더니 한
덩어리 검의 그림자가 소영을 향해 덮쳐 갔다.
소영은 비록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으나 조금의 방비도 없었기 때
문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하여 한동안 운기하는 바람에 반격할
수가 없었다.
그 여섯 도인이 검을 뽑아 사방을 포위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소
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대갈일성하며 연속 사장을 내뻗쳐서 사
방으로 들어 오는 검세를 일단 꺾어 놓았다. 그리고는 장검을 뽑아
운기미공의 초식으로 사방에 검기를 그려 몸을 호위했다.
일전의 쇠붙이가 맞부딪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소영을 향해 내
리치던 장검이 모두 격퇴당했다.
여섯 도인은 그가 이미 무시 못할 강적 임을 직감하고 그들의 장
검이 격퇴당한 후 더 이상 돌격하지 않고 곧 육 합검진을 운용하며
교묘하고 절륜한 배합으로 소영을 그들의 검진 안으로 충층이 포위
해 버렸다.
소영은 크게 분노했던 터라 장검이 검집을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속공으로 우선 몇 명을 쓰러뜨려 울분을 풀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데 상대방의 육합검진이 그야말로 절묘하기 그지없는 배합을 하여
소영의 번개같은 검세를 봉쇄해 버릴 줄이야……
소영은 십여 번을 연달아 공격해 보았으나 모두가 상대방의 장검
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오묘한 검진에 말려 들었음을
깨닫고 더 이상 헛된 공세를 취하지 않고 검세를 일변하여 수세로
바꾸었다.
그가 과거에 삼성곡에서 무예를 배울 때, 은사 장산패에게 검진
의 묘완에 대해서 들은 바 있었다.
이 기이하고 오묘한 검진은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둘의 위력을
지니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이건 진을 편 사람 전부의 역량이 검
마다 연결되어 일체(一體)를 이루어 합하면 전부가 연관되고 흩어
지면 각자가 묘를 살린다는 것이다.
여섯 사람으로 조직된 육합검진은 비록 소영을 겹겹이 에워싸기
는 했지만 소영은 장산패에게서 배운 오묘한 검법의 이론을 아는지
라 수세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마치 광막으로 몸을 감싼 듯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 육합
검세가 제아무리 위세가 있어도 소영의 옷자락 끝 한 번도 스치지
는 못하는 것이었다.
이때 무위도장의 몸이 비틀거리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
고 말았다.
소영은 크게 당황하여 속으로,
‘손불사 등이 아직도 당도치 않은 것을 보니 필시 강적의 저지를
받은 모양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기는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검세를 일변하여 왼손과
오른손에 든 검을 전력으로 운용했다.
그는 장산패, 남일공 두 기인 고수의 절세의 기예를 동시에 펼쳤
으니 그 위세는 마치 해일이 일어 격랑이 해안을 쪼개고 제방을 허
물어뜨리는 것 같아서 정연하던 육합검진은 그 검세의 격랑에 말려
들기 시작했다.
육합검진의 위세는 소영의 검세에 몰리기는 했으나, 그러나 소영
은 한동안 이 검진 속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이때 운양자는 무위도장을 꽁꽁 묶어 버렸다.
소영은 두 눈으로 무위 도장이 상대방에게 묶이는 것을 보고서도
어찌할 수 없자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랐다. 그는 오른손에 들었던
장검으로 삼 초의 절학을 연이어 휘둘러 내자, 검꽃이 온통 주위를
뒤덮는 순간 재빨리 왼손에 교룡 가죽으로 된 장갑을 끼었다.
그는 가만히 정세를 살펴 보았다. 만약 꾀를 쓰지 않고 그저 무
공으로만 육합검진의 포위를 뚫으려면 장시간의 격투가 계속될 것
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의외의 방법을 생각해 내어 일거에 강
적을 물리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때 소영은 비록 아직 그 육합검진의 변화를 완전히 파악을 하
지는 못했으나 이미 그들의 검초를 어느 정도 타진한지라 고의로
검세를 약간 죽여 빈틈을 보였다.
여섯 도인은 소영의 광풍 폭우같은 반격에 몰려 진법이 흩어질
뻔 하기까지에 이르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또한 만약 소영의
공격으로 진법이 흩어지면 십여 합 대결을 하다가 다시 육합검진을
재정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영이 맹렬한 반격을 하다가 갑자기 빈틈을 보이자 더
이상 판단도 아니하고 재빨리 두 자루의 장검이 빈틈으로 공격해
들어 왔다. 만약 소영이 팔을 돌려 그 두 자루 장검의 공격을 막아
낸다손치더라도 그 사이에 나머지 네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낼 시간
적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일격으로 알았
다. 그러나 소영은 오른쪽 검으로 두 자루의 검세를 받아치지 않고
장갑을 낀 왼손을 내밀 줄이야…..
그 검을 든 사람은 흥! 하고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하고는 일부
러 검세를 늦추어 소영으로 하여금 장검을 잡게 하고는 속으로,
‘네가 제아무리 금종조나 철포삼 같은 무공을 배웠다 해도 내 검
신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이때 소영이 자기 수중으로 들어 온 장검을 잡자
그는 암암리에 운기하여 칼을 한 번 돌려 내경을 발하여서 검신을
푹 찔러 넣어 중간에서부터 밖으로 내 긁으려 했다.
이것은 일종의 공, 경이다.
사람은 역시 피와 살로 형성된 것이라 어떠한 무공을 연마했다
해도 검을 피하고 칼을 피하는 것은 대부분이 이 한 줄기 경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도인이 소영으로 하여금 자기의 검신
을 잡게 한 후 다시 비트는 것은 곧 경기를 깨치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단번에 소영의 손가락을 잘라 내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영이 손에 이미 검과 칼을 막을 수 있는 교룡 가
죽의 장갑을 끼었을 줄은 알지 못했다. 그 도인은 검을 확 밀어 긁
었으나, 상대방의 손가락은 잘려지지 않았다.
소영이 그 틈에 맹렬히 앞으로 잡아 당기니 그 도인은 검을 잡은
채 앞으로 쓰러지려 했다.
한 사람의 방위가 움직이자 육합검진은 전체적으로 저지되었다.
소영은 한쪽 발을 날려 그 도인의 왼쪽 정강이를 냅다 걷어 찼
다. 육합검진의 한 사람이 빠지니 검진의 오묘한 변화는 곧 기능을
잃었다. 소영은 그 틈에 반격을 가해 장검에서 연속 검빛이 번쩍이
자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다시 한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운양자는 이미 무위도장을 묶어 놓고 소영이 육합진세를 격
퇴해 내는 기세가 얕볼 것이 아니로구나 싶어 곧 검을 뽑아 들고
들이 닥치며 대갈일성했다.
“너희들은 물러서라!”
여섯 명 중 셋이 부상을 당하고 나머지는 소영의 예리한 검초에
쩔쩔매며 그 검하에 곧 피를 보게 되려는 찰나에 이 소리를 듣고는
일제히 물러 섰다.
소영은 이미 그 고함소리로 이 자가 운양자가 아닌 것을 눈치챘
다. 그는 검을 가슴 앞에 가로 잡더니 냉랭히 말했다.
“너는 누구냐? 네 어찌 무당파의 부하인 양 변장을 하고 잔꾀를
부리느냐? 어찌 장부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느냐?”
운양자는 싸늘한 웃음을 띠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훑었다. 눈썹
과 수염이 떨어지며 깡마르고 길쭉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서서
히,
“네가 바로 소영이라는 자렷다?”
“그렇다! 너는 누구냐?”
그 사람은 또 한번 냉소를 띠고,
“너는 남해오성(南海五聖)이란 대명을 들어 보았겠지?”
소영은 잠시 주저하더니,
“소생은 남해오성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없으나 남해오흉이
라는 이름은 들었소.”
“오성도 좋고 오흉도 좋다. 어쨌든 바로 우리 다섯 형제들의 대
명이지!”
소영은 땅에 벌렁 자빠진 세 명의 도인을 가리키며,
“바로 당신과 이 몇 사람인가?”
그 자는 고개를 젖히고,
“남해오흉이 만일 이처럼 약하다면, 오흉이라는 이름이 아깝겠
다.”
“그러면 이 여섯 명의 무당 제자를 가장한 도인들은 또 누구냐?”
“백화장의 검수들이지!”
소영은 냉랭한 웃음을 띠고,
“그 이름도 거창하던 남해오흉 역시 백화산장의 일개 앞잡이들일
줄이야…..”
그 자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여전히 담담하게,
“그거야 당신 상관할 바 아니지.”
‘이 자를 보아하니 퍽이나 교활하고 침착한 것 같은데 남해오흉
중 몇 째인가?’
“당신은 오흉의 우두머리요?”
그 사람은 냉랭히 대답했다.
“소생은 우리 형제 중에서 제일 막내인 냉수수사(冷手秀士) 전중
원(田中元)이다.”
소영은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어 그동안에 밖의 정세를 좀 살펴
보려 했다. 그러나 손불사와 중주이고 등은 마치 바다 밑에 깔려
버리기라도 한 듯 캄캄했다.
냉수수사 전중원도 무엇을 기다리는 듯 두 눈은 소영을 노려 보
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소영은 돌연 수중의 장검을 휘두르더니,
“너희 남해오흉이 전부 이곳에 왔겠지?”
그는 손불사와 중주이고가 아직껏 소식이 없음을 보자 강적을 만
나 악전고투를 하고 있지 않으면 무슨 암산에 걸렸나 보다 싶어 속
으로 매우 초조했다. 전중원은,
“그거야 대답해 줄 수가 없지!”
소영은 돌연 음성을 높여,
“당신들이 무당의 부하로 가장한 것은 모두 백화산장 심목풍의
명을 받고 온 것이냐?”
“그것도 물어 볼 필요가 없지!”
소영은 노기 띤 음성으로 고함쳤다.
“너희 남해오흉은 심목풍을 위해 일을 해 주는 모양인데 거저 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
전중원은 담담히,
“그야 물론이지. 남해오흉은 절대로 밑지는 장사는 해 본 일이
없으니 아무 대가 없이 그의 일을 해 줄 리는 만무하지.”
소영은 또 말을 이어,
“그렇다면, 심목풍이 너희 형제에게 무슨 대가를 주었기에 너희
들이 이토록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하고 덤벼든단 말이
냐?”
“소가야! 너는 그런 것을 물으면 내가 대답을 줄 것 같으냐?”
“심목풍이 당신네들 남해오흉을 모셨으니 소생도 물론 모실 수
있는 법 아니겠소?”
전중원은 수중에 든 장검을 한 번 휘두르더니 냉담하게 말했다.
“당신은 말버릇이 아주 없구먼! 아무래도 우선 나한테 맛을 좀
봐야겠는 걸.”
하며 장검이 번쩍 하더니 소영을 향해 찔러 왔다.
소영은 전중원의 검초를 막아 낸 후 내심,
‘심목풍이 남해오흉을 이곳으로 파견한 것을 보니 뒤에 많은 고
수들이 들이닥칠 것이 뻔하구나. 그렇다면 우선 이 자를 생포하여
캐어 물어 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소영으로 하여금 정묘한 검초를 발휘치 못하게 했
다. 왜냐하면 그는 혹 일검에 전중원을 죽일까 겁이 나서였다.
전중원의 검초는 확실히 예리하여 점점 그 위세를 더해 갔다. 소
영은 작심한 바가 있어 절기를 십분 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
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쌍방은 사오십 합을 겨루었으나
여전히 승부가 나질 않았다.
소영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언제 상대방을 제압할지 모르겠으니 이
제는 어쩔 수 없이 독수를 써야겠구나.’
생각하고, 장검의 초식을 돌변하여 반격을 전개하여 일초 일식마
다 상대방의 급소만을 노려 갔다. 소영이 이처럼 아무 제약 없이
공격을 퍼부으니 형세는 크게 달라졌다.
전중원은 소영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다. 그는 소영과 겨룰 때,
각별히 조심하여 초식이 무척 심중했다. 이십여 합을 겨루고는 속
으로 크게 의아했다. 소영이 검초 중 매번 검의 위력이 십분 발휘
되지 않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 겨룰 때 전중원은 몹시 의혹스러웠다. 소영의 검초가 어
찌 이렇듯 기이한가 싶었으나 이십여 합을 맞선 후 그는 점점 예리
하게 검초를 펴 나갔다.
소영은 생포하려는 속셈 때문에 마음놓고 절기를 다할 수는 없었
으나 그의 검술은 본시 기묘해서 전중원의 공세가 한 푼쯤 더해 가
면 소영의 수세 또한 한 푼 정도를 높여 시종 팽팽한 국면이 전개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영이 생포할 생각을 버리고 마음놓고 반
격을 개시하자 전중원은 그제서야 강적임을 깨달았다.
그는 검을 거두고 후퇴하려 했으나 이미 뜻대로 되지를 않아 그
만 소영이 그려내는 겹겹의 검영에 사방이 막히고 말았다.
쌍방은 다시 십여 합을 겨루었다. 전중원은 이미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소영의 기초(奇招)가 번개같이 번쩍이더니 전중원의 오른손
에 들린 검을 때려 떨어뜨리고 말았다.
“당신, 패한 것을 자인하겠나?”
전중원은 두 눈에 흉광을 번쩍이더니,
“소대협은 과연 듣던 바 대로군요. 소생, 졌소이다.”
이때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도인 한 사람이 장검을 들고
덮쳐 왔다.
소영은 재빨리 그것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그 도인은 자기 수중의 검을 전중원에게 넘겨 주려던 참이었다. 소
영의 번개같은 일검은 이것을 적시에 내리친 것이다.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튀기더니 그 도인의 반쪽 팔과 그
손에 든 장검이 동시에 바닥에 뒹굴었다.
전중원은 돌연 일장을 쳐내 소영의 가슴께로 향했다.
소영은 재빨리 왼손을 내뻗어 일장을 마주 받았다.
쌍방의 장력이 맞붙자 전중원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 서고 말았
다. 전중원은 그 틈에 초가 밖으로 도주할 수도 있었는데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
소영은 부모의 행방도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전중원을 사
로잡아 그 입에서 저 편 소식을 알아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전중
원도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그를 사로잡으려면 필시 죄를 쓸 수밖
에 없다고 생각했다.
쌍방은 묵묵히 마주선 채 차 한 잔 끓일 만한 시간이 경과되었
다. 이때 전중원은 가슴을 제치고 가가대소하더니,
“소대협은 내 일장을 받는 것이 아닌데 그랬소.”
소영은 내심 움찔했다.
“그건 왜? 당신의 장력은 그리 대단한 것 같지도 않던데!”
전중원은 냉연히,
“나는 손가락 사이에 독침을 몰래 숨겼는데 당신이 내 일장을 받
았으니 이미 당신은 나의 극독에 중독이 되었을 것이오. 그 독성은
발작이 매우 빠른데 당신이 그렇게 멍청히 서서 공격을 안해 오는
것을 보니 이미 발효를 하는 모양이지?”
소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자는 과연 악독하구나!’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기 왼손에는 이미 교룡 가죽의 장
갑을 끼고 있어 예리한 검날도 까딱 없는데 그까짓 독침이 무슨 작
용을 할까 보냐 싶었다. 그는 비웃는 어조로
“소생은 백독이 불침이지!”
전중원은 냉랭히 말했다.
“남해오흉의 독침은 우리 오형제가 제조한 해독약 외에는 천하를
다 뒤져도 해독할 약이 없을 걸!”
소영은 얼마 동안 강호를 다니면서 많은 견식을 얻은 터다.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면 두고 볼 수밖에…..”
전중원은 이미 약물이 발효할 사간이 된지라 헛기침을 한 번 하
고는,
“내가 열을 세는 동안 당신 몸에 든 독이 발작을 않을 때는 나
전토는 금후 소영을 만나도 싸움을 않으리라.”
소영은 담담히 웃으며,
“너무 감사하여 나 소모는 감당을 못하겠구료.”
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어,
“소생이 독의 발작이 없을 경우 다만 나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
해 주면 만족하겠소.”
“핫핫핫. 네가 정말로 발작을 않는다면 세 가지 아니라 삼십 가
지라도 대답해 주겠다.”
소영은 엄숙한 어조로,
“너희 남해오흉은 모두가 무림에 이름을 날린 자들이니 절대로
거짓은 아니겠지?”
“남해오흉은 위인이 비록 좀 거만하기는 하나, 한 번 입 밖에 내
어 놓은 말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 우리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럼 셈을 시작해 보시지?”
그는 손불사와 상팔, 두구 등이 아직까지 오지 않는 것을 보니
필경 적의 저지를 받아 쌍방이 죽음을 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거
나 아니면 적의 암계에 걸린 것이리라 생각하고, 우선 눈앞에 있는
이 자를 굴복시켜야만 되겠기에 꾹 참고 기다리리라 생각했다.
이때 전중원은 하나, 둘, 셋, 넷 하고 큰 소리로 셈을 시작했다.
계속 아홉까지 세었으나 소영은 여전히 끄떡 없이 웃음을 띤 채 서
있지 않은가?
전중원의 깡마른 얼굴이 돌연 일변하더니 멍청하게 서서 소영을
바라 보며 망연히 묻는 것이었다.
“당신 정말 중독이 안 되었소?”
소영은 빙그레 웃으며,
“내 이미 얘기한 바대로 백독의 침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
소? 당신이 정 믿지 못하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고 잠시 말을 끊더니 음성을 돋구어,
“당신 아직 열 자가 남았는데 빨리 마저 세구료!”
전중원은 연신 눈을 껌뻑이더니 담담히 웃었다.
“만일 소생이 마지막 한 자를 세지 않으면 우리의 약속은 영원히
그 승부를 가릴 수 없는 법이겠지요?”
소영은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해오흉의 이름은 껍질뿐이구먼. 이처럼 치사한 소인배들일 줄
이야……”
“병법은 꾀로 승리를 얻는 법, 당신 소대협의 강호 편력이 부족
했기 때문이거늘 어찌 이 전모를 나무라실까?”
소영은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너는 그 따위 시시한 몇 마디를 지껄이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갈 줄 아느냐?”
“그야 소대협이 무공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다면 모를 일이지.”
“흥,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격분하여 이미 살기가 동했다. 서서히 수중의 장검을 치켜
들고는,
“네가 나 소영의 삼 초만 받아 낸다면 너희들을 그냥 보내 주겠
다.”
전중원은 소영이 치켜 든 검을 보자, 상대가 이미 검도에 깊은
조예가 있음을 알았다. 이 일초가 나온다면 반드시 경천동지(驚天
動地)하리라 짐작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운기하여 방비를 하고, 또 한편 눈을 굴리며 퇴로
를 찾았다. 그리고 암암리에 전음지술로 무당 제자를 가장한 두 명
의 도사에게 합력하여 소영을 대적하자 일렀다.
소영은 대갈일성하고 장검을 휘둘렀다. 은빛을 번쩍이며 사람과
검이 동시에 전중원을 향해 덮쳐 갔다.
전중원은 검을 들어 소영의 검세를 막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 섰
다. 이것은 바로 장산패가 소영에게 전수해 준 구검지술(驅劍之術)
인데 검도 중의 최고의 절학이었다.
소영이 스승 곁을 떠난 후 계속 강호에 분주하여 그가 배운 구검
지술은 겨우 그 방식을 깨달은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형세가 급
박하여 할 수 없이 시전해 낸 것이었다.
그런데 일진의 강철이 맞부딪는 소리와 함께 검광이 온통 세 사
람을 에워싸더니 두 가닥의 비명이 들려 왔다. 무당 제자를 가장한
백화산장의 고수들이 무참히 죽은 것이다.
하나는 허리가 두 동강이가 나 죽고, 하나는 목이 잘리어 선혈을
공중에 뿜으며 머리가 육칠 척 밖으로 날아 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