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89
89. 찾아온 삼흉
소영은 천천히 전각 안으로 들어 서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 전각 안의 신상은 이미 너무도 파손되어 어느 신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전각 안은 구석구석이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대전
의 일각에는 세 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듯 소
영 등이 들어 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영은 운양자를 돌아 보며 물었다.
“도장, 소생이 저 분들의 상세를 좀 보아도 좋겠지요?”
“물론 괜찮지요……”
운양자는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이었다.
“세 사람은 지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상처가 모두 중상이라
정신을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아마 소대협을 알아 보지 못
할 것이오.”
“나는 그저 저 분들의 상세만 보고 절대 귀찮게 하지 않겠소.”
하며 조용히 다가갔다. 그들 세 사람은 밑에다 두꺼운 요같은 것
을 깔고 몸에는 흰 이불을 덮고 있었다.
마문비는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싶었고, 나머
지 두 사람은 머리를 흰 천으로 싸맸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 보기가
힘들었다.
소영이 가볍게 탄식을 하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 분들의 무공은 보존되겠지요?”
“무공이 소실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세 사람 중에 둘은 아마 불구
가 될 것 같소이다.”
무위도장도 길게 탄식했다.
“빈도는 이미 우리 무당파의 모든 영약을 다 써서 그 분들의 상
처를 치료했으나 그들이 불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할 수가 없
소.”
소영은 안타까웠다.
‘만일 독수약왕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들을 완치시킬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독수약왕의 절세 의술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그
의 가치가 느껴졌다.
이때 장자안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
“소생은 지금 배가 몹시 고픈데 무엇 좀 요기할 것이 없을까요?”
원래 장자안을 업고 전각 안으로 들어 온 두구는 그를 문 곁에
내려 놓았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두 개의 의자 다리에 묶여 일어설
수가 없어 가만히 벽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도장은 운양자를 돌아 보며 말했다.
“먹을 것을 좀 장만해 오도록 하게.”
그러자 운양자는 곧 대답했다.
“소제가 이미 준비하라고 시켜 놓았으니 이제 곧 가지고 올 것입
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두 명의 도동이 각각 여러 가지
음식을 들고 전각 안으로 들어 왔다. 군호들은 하루종일 길을 달려
왔으므로 모두 허기가 졌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라 보통
사람들보다 인내심이 강했다. 여러 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들어 오
자 곧 군호들은 허리띠를 풀어 놓고 허기진 배를 욕심껏 채웠다.
식사가 끝나자 무위도장은 소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오래 머물고 있을 곳이 못 되오. 빈도의 생각으로는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심신이 회복되는 대로 곧 길을 떠나도록 하
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에 칼을 멘 어느 중년 도사가 총
총히 들어 오더니 무위도장에게 공손히 절하고 보고하였다.
“장문사존께 아뢰오. 고찰 밖에서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무위도장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러자 그가 미처 무슨 분부
를 내리기도 전에 운양자가 재빨리 몸을 움직이더니,
“제가 가 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전각 밖으로 달려 갔다.
손불사는 혼자말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백화산장 사람들이 멀짜감치에서 우리 뒤를 미행했다면 곧
이곳 고찰로 들이닥칠지도 모르지.”
사마건도 한 마디 하고 나섰다.
“소제가 점을 한번 쳐 보겠소이다. 길흉이 어떠한가 말이외다.”
하더니 옆 사람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품 속에서 점치는 데 필요
한 거북이 가죽과 금전 여섯 개를 꺼냈다. 그리고 두어 번 흔들었
다. 그것을 흔들다가 바닥에다 확 뿌리고는 한동안 바라 보고 있었
다. 군호들은 묵묵히 시선을 사마건의 표정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점괘에 나타난 길흉을 알아 보려고 유심히 그의 표정을 살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사마건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말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군호들은 의아한 눈으로 열심히 괘상(卦像)을 바라 보고 있는 사
마건을 지켜 보고 있었다.
손불사가 몹시 답답한 듯 마른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열었
다.
“그 점괘는 흉이오, 길이오?”
사마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점괘는 틀림없이 흉한데 그 흉 속에 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도대체 길인지 흉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군요.”
무위도장이 이어 말을 받았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이 점괘는 선흉후길(先凶後吉)이라는 말이구
료.”
그러자 사마건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점괘입니다. 제가 자세히 생각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하자 손불사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꾸했다.
“그대가 그 점괘의 길흉을 가려 낼 때쯤 되면 강적들이 이미 이
고찰 내에 들이닥친 뒤가 될 것일세.”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운양자가 황급히 뛰어 들어 왔다.
“과연 강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벌써 이 고찰에
서 삼 리 정도밖에 안 되는 곳까지 와 있습니다.”
이 말에 소영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몇 명이나 되어 보입니까?”
“대략 열 명 정도는 되어 보이더군요.”
“그렇다면 백화산장 사람들에게는 인정사정 볼 것 없어요. 무조
건 모조리 죽여 없애야 되겠군요.”
손불사가 소영의 말을 받아 말했다.
“열 명이라면 우리 힘으로 상대할 만 하구먼.”
운양자가 재빨리 말했다.
“제가 곧 전령을 내보내겠습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본문의 제
자들에게 전부 고찰로 돌아 오라고 말입니다.”
무위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 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처치해 버리고 이곳을 속
히 떠나야 되겠습니다.”
전엽청이 나서며,
“소생은 우선 대문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을 도와 주어야겠습니
다.”
하더니 민첩하게 몸을 솟구쳐 전각 밖으로 나갔다.
무위도장은 손불사를 향해 말했다.
“노선배님께서는 이 대국을 주관하시어 총지휘를 하여 주시오.”
손불사는 핫핫 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도장께서 주관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다. 나는 소제와 함께 우선 선두로 쳐들어 오는 적을 막아야겠어
요.”
하더니 무위도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소영을 끌고 전각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고찰 안에 있던 무당파의 제자들은 전부 전각 밖에 운집하
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위도장은 전각 안에 남은 군호들을 번갈아 바라 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상한 세 사람의 안전이므로 빈도는
이들을 지키기 위하여 본문 중의 제자 몇 명에게 두 사람씩 한 조
를 만들어 정문과 창문을 각각 지키도록 하고 여러분과 나는 전각
밖에서 진을 치고 적을 막으려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상팔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도장의 생각도 물론 좋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적이 어떻게 나
올지 아직 알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이군요.”
“우리는 그들을 이곳 고찰 안으로 유인하여 모조리 죽이는 길이
상책일 것 같은데 손선배님의 의견은 어떤지 알 수가 없군요.”
상팔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역시 그렇게 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제가 곧 손선배님께 가
서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
하고,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한편 손불사는 소영을 데리고 전각 문에 도착했다. 과연 십여 명
의 흑의대한이 마치 나는 듯이 이쪽을 향해 달려 오는 것이 보였
다. 전엽청은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각자 장검을 움켜쥐고 대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손불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선 대문 안에 숨어서 저 자들이 도대체 무엇하러 어디
로 가는 것인가를 확인한 뒤에 손을 쓰기로 하지. 만일 저 자들이
대단치 않은 자들이면 우리가 나갈 필요도 없으니 그냥 이곳에 숨
어서 사태를 보다가 전엽청을 도와주기로 하는 게 좋겠네.”
그는 원래가 생각했다 하면 실천에 옮기는 성격이라 소영의 대답
도 듣기 전에 그를 끌고 대문 뒤로 몸을 숨겼다. 숨어서 몰래 문구
멍으로 내다 보니 세 명의 대한은 순식간에 대문 안에 이르렀다.
왼쪽에 선 사람은 키가 팔 척이나 되고 시뻘건 얼굴에 붉은 옷을
입었으며 또한 붉은 신발을 신고 있어 전신이 시뻘건 차림이었다.
그는 등에 쇠로 만든 커다란 지팡이를 메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남색 장삼에 등에 검을 메고 있었는데 그
가 바로 전중원이었다.
가운데에는 검은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는데 과의 눈썹은
매우 짙었으며 왼쪽 눈썹에 칼자국이 뚜렷이 나 있었다.
소영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전중원이 여기까지 따라 왔을 때에는 무슨 준비를 갖추고 왔을
것입니다. 저 양옆에 있는 자들도 혹 남해오흉 중의 인물이 아닐까
요?”
“나도 그런 짐작이 가오.”
“만일 정말로 오흉 중의 인물들이라면 전엽청 혼자의 힘으로는
당해 내지 못할 테니 우리가 빨리 나가 도와 줍시다.”
“괜찮소, 우리는 우선 여기서 동정을 살핀 다음 결정짓기로 합시
다.”
소영은 손불사의 속셈을 알 수 없어서 우선 그의 말대로 가만히
밖의 동정을 살폈다.
그 자들은 전엽청과 불과 사, 오 척 되는 곳에 와서 발을 멈추었
다. 그들 가운데 있던 흑의인이 전중원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인가?”
전중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엽청은 수중의 장검을 한 번 휘두르더니 냉랭히 물었다.
“세 분은 누구를 찾습니까?”
그러자 흑의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엽청과 네 명의 중년 도사
를 훑어 보더니 말을 이었다.
“소영.”
전엽청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소. 소대협께서는 지금 이 고찰 안에 계시오. 그러나 그 분
을 만나 보고자 한다면 우선 소생의 장검부터 물리치고 들어 가 만
나시오.”
그 흑색 도포를 입은 자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전엽청은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소영이 강호에 출현하고부터 그가 가는 곳마다 이름을 날리고
다녀 짧은 시일 내에 크게 명성을 얻었지. 그리고 은연중에 무림의
동도인물에게 제일 존경을 받고 있으며 오래지 않아 무림의 영도자
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무당파가 무림 중에 오래 보유하고 있
는 위명이 그로 인해 빛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 세 사
람이 소영에게 도전을 해 온 것으로 보아 시시한 인물들은 아닐 테
니 내가 만일 이 자들을 격퇴해 버린다면 우리 무당파의 위명을 날
리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흑의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흑의 도포를 입은 사람은 눈을 치떴다. 살기가 등등하고 격노
한 듯했으나 어쩐 일인지 꾹 참으며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시
물었다.
“너는 무당 문하의 제자인가?”
전엽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무당문하의 전엽청이라 하오. 세 분이 소대협에게 도전
하는 것으로 보아 무명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대관절 누구시오?”
그 흑의 도포를 입은 사람은 오른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좍 펴
보이더니 거만하게 말했다.
“남해오성(南海五聖)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전엽청은 흠칫했으나 곧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명은 오래 전부터 들어 왔소이다.”
왼쪽에 서 있던 붉은 옷차림의 사람과 전중원은 시종 한 마디의
말도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 가운데 있는 흑의인이 그
들보다 신분이 높은 듯 싶었다.
“기왕에 오성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빨리 들어 가서 통보해라.”
전엽청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무엇을 통보하라는 말이오?”
“소영에게 우리 남해오성이 왔다고 통보하란 말이다.”
“당신들은 세 사람인데 어찌 오성이라 자칭하는가?”
흑의인의 음산하고 시퍼런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성질이 매우 포악하고 성급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러
나 그는 어떠한 힘에 속박을 당하고 있는 듯 억지로 참으며 발작을
않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 손을 저으며 무서운 얼굴로 물
었다.
“당신은 그것을 꼭 알아야만 되겠소?”
전엽청도 결연히 대답했다.
“그렇소!”
흑의인은 갑자기 발로 땅을 힘껏 찼다. 그러자 흙먼지가 일어 두
치 가량 땅이 푹 패이고 발자국이 생겼다. 그는 냉랭한 어조로 대
답했다.
“나는 섭혼장 손성(攝魂掌孫成)이라 하오. 남해오성 중의 둘째
요.”
하더니 왼쪽에 있는 홍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나의 삼제 시위(柴威)라고 하며……”
다시 전중원을 쳐다 보며,
“이쪽은 우리 막내 전중원이오. 또 물어 볼 것이 있소?”
대문 뒤에 숨어 있던 손불사와 소영은 그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
었다.
손불사는 그의 말을 듣자 매우 의아해 하며 소영에게 속삭였다.
“남해오흉이 옛날에는 청성과 아미의 양대문파를 쑥밭으로 만들
었네. 성질이 악하기로 이름난 그들이 오늘은 어찌 이다지도 얌전
할까?”
소영도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의 얼굴에 살기가 등등한 것이 몹시 격분한 것
같은데 다만 억지로 참고 아직 발작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글쎄, 그것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가 격노를 참는다는 그 자체
가 말이오….. 아마 소제를 만나려고 그러나 보오.”
이때 전엽청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세 분은 무슨 일로 소대협을 만나고자 하는지요?”
손성이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소영이 이곳에 있소, 없소? 내가 참는 데도 한도가 있소.”
소영이 대문 밖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으나 손불사는 그를 꽉 붙
들며 귀에다 속삭였다.
“조급히 서두르지 말게.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듯하네.”
전엽청은 무당 문파의 이름을 날려 보려는 속셈으로 장검을 휘두
르며 말했다.
“이곳부터 통과하고 만나도록 하시오.”
손성은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
“당신이 이렇게 트집을 잡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하며 왼손을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왼쪽에 있던 홍의대한이 돌
연 앞으로 들이닥치며 전엽청의 칼을 잡아 채려고 했다.
전엽청은 상대의 내세가 이토록 번개같을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
에 수중의 장검을 하마터면 뺏길 뻔했다. 재빨리 뒤로 오 척쯤 물
러나며 수중의 장검을 휘둘렀다. 순간 한 가닥 검꽃이 공간에 그려
졌다.
시위는 기합소리도 우렁차게 휙 한 줄기 권풍(拳風)을 내뻗으며
앞으로 두 발자국 다가 서는 것과 동시에 왼손은 벌써 어깨의 쇠지
팡이를 뽑아 들었다. 그의 동작은 아주 대담했으며 공세 역시 매우
민첩하여 전엽청의 손에 있는 장검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전엽청은 상대의 권풍이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며, 한 줄기 강경
한 잠력이 검세를 누르고 뻗쳐 오자 크게 놀라 부지중에 속으로 외
쳤다.
‘이 자의 권풍이 이토록 강경하니 무시할 수 없구나.’
전엽청은 성하도괘(星河倒掛)의 일초로써 반격을 하니 검빛이 온
통 하늘에 난무했다. 이 일초는 무당검법 중의 정묘한 초식으로 검
세가 매우 면밀하고 또 그 공세 중에 엄중한 수세마저 내포되어 방
위에 상당히 유리한 것이었다.
그러자 시위의 쇠지팡이가 면밀하고 예리한 검빛 속으로 찌르고
들어 올 줄이야. 갑자기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전엽청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발 물러섰으며 손이 은은히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시위의 일격은 전엽청의 검세를 흩어지게 했으며 오른손으로는
또 하나의 쇠지팡이를 뽑아 들고 공격을 가해 왔다. 그러나 이때
손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멈춰라!”
시위는 그 말에 곧 쇠지팡이를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손성은 전엽청을 향해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당신과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소영에
게 급한 볼 일이 있어 온 것이오.”
전엽청은 속으로 자기의 성하도괘 검중에 숨겨진 기묘한 변화를
저 시위가 대단치도 않은 지팡이 장법(章法)으로써 어떻게 파괴했
을까에 대하여 한편 놀라며 한편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위는 여전히 전엽청이 자기 형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크게
격노하며 소리쳤다.
“혹 소영이 이곳에 있지도 않은데 이 자가 어물어물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소제가 이 자
와 저 네 명의 중놈의 목을 자르겠소. 처치한 후 들어 가 보도록
합시다.”
하며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공격을 하려고 했다.
이때 돌연 낭랑한 웃음소리가 그의 귀를 울렸다. 고개를 들고 그
곳을 바라 보니 경장을 한 소년 하나가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때 재빨리 전중원이 외쳤다.
“형님! 저 자가 바로 소영입니다.”
소영은 대문 뒤에서 시위와 전엽청이 겨루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의 지팡이가 무지무지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
전엽청이 위험하다고 느꼈으므로 마침내 대문 밖으로 나와 손성
에게 다가 갔던 것이다.
전엽청은 소영이 나오는 것을 보자 얼굴을 붉히며 검을 거두어
칼집에 넣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소영은 시위의 악랄한 출수가 간단하기 그지없건만 그 중에 단지
신기한 위력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지고의 수법이 아니라
이 사람이 천성적으로 그러한 놀라운 신력을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
였다. 그는 적을 얕보지 않고 서서히 다가갔다. 그리고 진기를 암
암리에 끌어 모으며 이 자를 어떻게 상대해 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손성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하고 절을 한 뒤,
“그대가 소영이시오?”
하고 물었다. 소영은 상대편을 한 번 살폈다. 그 세 사람 뒤에는
따라 온 아홉 명의 흑의대한이 멀찌감치서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보
였다.
“소생이 바로 소영이오만, 세 분께서는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어
오셨습니까?”
손성은 뒤에 서 있는 전중원을 힐끗 쳐다 보더니 말했다.
“조금 전에는 저의 동생이 큰 죄를 지었소이다. 소생이 대신 사
과드립니다.”
소영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을……”
그러나 그는 속으로 몹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 자들이 이곳에 온 것은 조금
전에 전중원이 당한 화풀이를 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손성을 건성으로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시 말했다.
“우리 남해의 오형제는 소대협과 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소이
다. 다만 일이 좀 뒤틀린 데다가 심목풍이 중간에서 기름을 치는
바람에 소대협에게 그만 죄를 짓게 됐습니다.”
소영은 얼떨떨해서 간단히 대꾸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며 한동안 남해오흉의 속셈을 알 길이 없어 어떻게 말을 받아
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손성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절을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첫째는 사죄를 하러 왔습니다만 그 외에
한 가지 복잡한 일을 부탁도 드릴 겸해서 왔습니다.”
소영이 힐끗 뒤돌아 보니 손불사는 이미 자기 뒤에 바짝 와서 붙
어 서 있었다. 그러나 강호에 오래 다니며 경험이 풍부한 손불사조
차도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손성 일행의
속셈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손성은 소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읍하며 입을 열었다.
“소대협께서 좀 도와 주실 뜻이 있으실는지?”
소영은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을 들려 주셔야 소생이 가부를 말할 수 있지 않습니
까?”
손성은 눈을 내리 뜨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 남해 오형제는 강호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아직 한 번도 남
의 도움을 청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소대협의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은 실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
다.”
소영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귀하께서 우선 일의 전모에 대해 설명부터 해 주심이 좋겠소이
다.”
손성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오형제는 중원 무림에서 많은 원한을 맺어 왔지요. 과거에
우리 형제가 청성, 아미 등 두 문파를 피바다로 만든 일에 대하여
소대협께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소영은 그것에 관하여 자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했으나 들은 적
은 있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성은 다시 말했다.
“제가 만일 입을 열어 모든 것을 말씀드린 다음 소대협께서 도와
주시는 것을 거절하신다면 남해 오형제는 더 이상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면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비록 평범했으나 그 말 속에는 만일 이야기를 들은 후
소영이 도와 주지 못하겠다면 절대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이 담
겨 있었다.
소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하의 부탁이 정대광명(正大光明)한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나는 기꺼이 전력을 기울여 도와 드리겠습니다만 만약 하
늘을 대할 수 없는 비겁한 일이라면 칼이 모가지에 들어 오는 한이
있더라도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엽청은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몹시 부끄러웠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소영의 이토록 광명하고 넓은 흉금과 정대한 기개는 나같은 사
람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위인이구나.’
손성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연히 말했다.
“좋소! 형제는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소대협이 도와 주시든 도와
주지 않든 간에 억지는 쓰지 않겠습니다.”
소영도 쾌히 대답했다.
“그럼 소영도 귀를 기울여 경청하겠습니다.”
손성은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남해 오형제 중 큰형님과 넷째가 갑자기 풍병에 걸려 우리
형제까지도 알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무림에서는 단지
소대협만이 그 질병의 치료를 해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데, 소대협
께서 도와주시겠다면 큰형님과 넷째가 의식을 회복하는 날 우리 남
해 오형제는 반드시 보답해 드릴 것을 맹세합니다.”
소영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질병을 고치는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소생의 큰형님과 넷째의 병은 너무 돌발적이라 증
세가 나타난 지는 불과 열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이미 모
든 기억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미 부근 수십 리 안에 있
는 열세 분의 명의를 모셔다가 진찰도 해 봤습니다만 전부가 속수
무책이더군요. 그래서 마침내 소대협을 이렇게 모시러 온 것입니
다.”
‘병을 치료하는 일이라면 저 무위도장께서 훨씬 고수이거늘 나
소영은 의술에 대해선 백지인데 어찌 나를 찾아 왔을까?’
이렇게 생각한 소영은 손성에게 물었다.
“귀하께서는 어느 분에게 제가 그런 풍병에 걸린 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손성은 품 속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내더니 물었다.
“소대협제서는 이 쪽지를 남긴 분을 잘 아시겠지요?”
소영이 그 쪽지를 받아 보았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
다.
이 쪽지는 아주 간단하게 글을 써 놓았다. 서명도 없고 표시도
없었다. 소영은 두 손으로 쪽지를 들고 보고 또 보았으나 도무지
누구의 농간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때 손불사가 나서며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쪽지에 무엇이 씌어 있소?”
소영은 구원을 청하듯이 그것을 손불사에게 넘겼다.
“노선배님께서 이것 좀 보십시오.”
손불사도 그것을 한 번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짐작되는
것이 없었다.
이때 궁금한 듯이 손성이 물었다.
“소대협께선 그 분을 아시겠지요?”
소영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거…..”
손불사가 나서며 말했다.
“그야 물론이오. 모르면 어떻게 소영을 지명하겠습니까?”
소영은 터무니없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속으로 이것은 사람의 생사에 관한 문제인데 농을 할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부인을 하려고 하는데 재빨리 손불
사가 다시 입을 열고 물었다.
“질병에 걸린 두 분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오?”
손성이 손불사에게 대답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농가에 있습니다.”
손불사는 전중원을 흘끗 바라 보더니 다시 태연하게 말했다.
“소대협의 인의지명(仁義之名)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이미
그런 변고를 알게 된 마당에 절대 전력을 다해야지요.”
손성은 정중히 인사했다.
“소생은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손불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당신네들은 심목풍과 한 패인데 심목풍과 앙숙인 우리
소대협이 만일 당신네 두 형제를 치료해 준다면 그것은 강적을 도
와주는 격이 되지 않소?”
손성은 급히 대답했다.
“만일 소대협께서 우리 큰형님과 넷째를 치료해서 낫게만 해 주
신다면 절대로 심목풍을 도와 소대협을 적대시하지 않겠습니다.”
손불사는 껄껄 웃더니 전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의 막내 동생이 산장 내의 고수를 대동하고 독이 묻은 암기
로써 독수를 내려 소대협의 몇몇 형제를 상하게 했는데 그 일은 어
찌하시겠소?”
전중원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소생이 이곳에 온 것은 바로 그 분들의 치료를 하기 위해서입니
다.”
손불사는 코웃음을 쳤다.
“당신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가는 그들은 벌써 죽었을 것이오.”
금검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