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91
91. 백화산장을 쳐라
손성은 큰 걱정을 하고 있다가 소영이 쉽게 장자우의 뒤통수에서 세 개의 금침을 빼 낸 것을 보
고 기쁜 마음으로 포권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소대협께서 큰형님의 병환만 낫게 하여 주신다면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소영은 내심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짐짓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제가 영형의 병세를 관찰해 보니 그 금침의 탓일 뿐 다른 내상은 없는 것 같소.”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손성은 말을 끝내고 눈길을 돌렸다.
“넷째를 데리고 오라.”
시위가 곧 커다란 암석 뒤로 사라지고 잠시 후 두 명의 대한이 들것을 가지고 나왔다.
소영은 내심 암석 뒤의 동정을 짐작해 보았다.
‘저 커다란 암석 뒤에는 많은 대한이 있나 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다시 손을 움직여 넷째의 머리에서 세 개의 금침을 뽑아 내었다. 앞에서 물
끄러미 소영의 손놀림만 보고 있던 전중원이 입을 열었다.
“소대협, 소생의 두 형님께서는 이제 무슨 약을 먹어야 되오?..”
“그럴 필요 없소. 잠시 동안 이대로 휴식을 준 뒤 혈도를 풀어 보아서 다음을 상의합시다.”
소영은 앉았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그 동안 쌓였던 긴장감과 일종의 안도감이 한
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강호 무림에서 짱짱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남해오흉들도 지금만은 소영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
고 있었다.
전중원은 되도록 빨리 두 형의 혈도를 풀어 그 결과를 알고 싶었지만 손을 쓸 소영이 무어라 말
을 안하니 그저 갑갑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잠시가 지난 후 전중원이 못내 기다리던 소영의 말
이 드디어 무겁게 들렸다.
“좋소 이제 당신의 두 형의 혈도를 풀어 봅시다.”
손성은 누구 못지 않게 조바심을 하고 있었으므로 소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네? 정말입니까?”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반문을 하였다. 소영은 청의동자에게 들은 말대로 두 사람의 머리에 박혀
있는 금침을 뽑기만 하면 다시 본정신을 되찾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혈도가 풀린 장자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소영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사방을 두
리번거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자우라 하면 오흉 중에 우두머리로 무공도 제일 높고 견식도 풍부하여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벌써 주위의 분위기를 직감하였다. 손성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혹시 소영을 적으로
알고 손을 쓸까 봐 황급히 입을 열었다.
“형님, 깨어나셨군요. 소대협께선 소제의 부탁을 받고 큰형의 상처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장자우의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내가 상처가 심하였느냐?”
“큰형께선 암수에 걸려 금침으로 혈도를…..”
장자우는 손성에게서 한 개의 금침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큰형님께선 뒷머리에 세 개의 금침으로 기혈을 맞으셨지요. 그리고는 곧 정신을 잃으시고….”
손성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장자우는 고개를 흔들어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시위에
게로 눈길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넷째의 혈도를 풀어 주어라.”
시위가 공손히 대답을 하고 넷째의 혈도를 풀자, 장자우의 싸늘한 눈빛은 넷째의 얼굴을 뚫어지
게 쏘아 보았다.
주위는 돌연 상대의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숙연해졌다.
장자우는 넷째의 정신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소영에게 입을 열었다.
“우리 오형제가 본시 소형을 적대시해 왔는데 이제 소형에게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았으니 오늘
부터 오형제는 소형과의 적대감을 없애겠소.”
소영과 나란히 서 있던 손불사는 그의 건방진 말에,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장자우는 눈길을 돌려 손불사를 쏘아 보았다.
“소형께서 소생을 구하였으니 그 은혜를 갚는 뜻으로 지금까지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전부 풀겠
다는 것이 무엇이 나쁘오? 우린 여기에서 헤어집시다.”
장자우의 인사는 아주 간단하였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을 끝내고 암석 뒤로 사라지자 손성은 부
끄러운 표정으로 소영을 한참 동안 쳐다 보았다.
‘내가 부탁해서 일부러…..’
손성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장자우가 사라진 쪽으로 뒤따라 달렸다.
손불사는 가슴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어 손을 들어 암석에다 화풀이를 하려고 진기
를 모으는데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지켜만 보던 무위도장이 앞으로 나서며 손불사의 손을
잡았다.
“손형, 우리도 돌아 갑시다.”
손불사는 마지못하여 손을 거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해오흉의 포악함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생명의 은인에게까지도…. 그럴 줄 알았다면 살려 주지는
않는 것인데.”
무위도장은 남해오흉이 사라진 곳을 바라 보며 말했다.
“남해오흉은 본래부터 조그만 무공을 믿고 무림을 유린해 오던 놈들이오. 그들은 중원의 무림에
많은 원한을 사고 있다오. 아미와 청성 두 문파를 휩쓸어 버렸을 때도 그 두 파의 많은 제자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소? 빈도가 알기로는 아미, 청성 두 파는 다시 무공을 닦아 남해오흉을 죽이지
못하는 한 다시는 강호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그들과 무슨 관계를 맺는다면 훗날
중원 무림의 동도들에게 무어라 해명을 하겠소?”
손불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우리를 없애려는 심목풍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다 하였으니 몇 명의 적을 물리친 것과 다
름이 없지 않겠소?”
하더니 소영에게 얼굴을 돌려 물었다.
“소대협은 지금 강호 무림이 혼란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소?”
소영은 그의 엉뚱한 물음에 대뜸 대답할 말이 없어 잠시 당황하였다.
“도장께서는 화근을 만들고 있는 우두머리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 오?”
“그렇소 강호에서는 심목풍으로 알고 있는데 그를 죽이면 그후 다시 악인이 없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오.”
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으로는 심목풍 하나를 없애 버린다 하여도 강호에는 표면상의 평정뿐이지 내면으로는 언
제까지나 암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위도장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역시 소대협의 총명함은 따를 사람이 없구나. 하나를 알려 주면 셋을 알고 있군.’
“그렇소 심목풍의 수단은 비록 악랄하지만 일개 사악의 표식에 불과하오. 정말로 강호의 온 무림
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금궁의 열쇠라는 것이오. 무림에서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동안 무공은 한없이 정진하여 정화(精華)의 오묘한 절학이 생겼소이다. 그런데 그것이 요 근래에
와서 금궁으로 모두 파묻혀 버렸지요.”
무위도장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 사람들을 훑어 보았다. 소영이나 손불사가 귀를 기울여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느끼자 다음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금궁에 들어 간 고수 중에서 단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지금으로서는 금궁에 대
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허황한 망상을 하고
있는 거요.”
소영은 그 망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다그쳐 물었다.
“금궁의 속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무위도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영을 보았다.
“소대협도 큰 관심을 갖고 있소? 금궁의 속에 꼭 무엇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명성과 위용을 과
시하려면 금궁에 들어 가야 된다. 또한 금궁에 들어 가기만 하면 꼭 강호를 한 손으로 통치할 수
는 없어도 강호의 일대 지존이 될 것이다’ 라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오.”
이번에는 손불사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믿음이 생겼소?”
“왜냐하면, 한때라도 수백 년의 절학을 이어 받아 재능을 날리던 고인들이 금궁 내에 기기(奇技)
를 남겼을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라오.”
소영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었군.”
그의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혼잣말이었으나 무위도장은 귀담아 들었다.
“소대협, 너무 기대를 가지지 마시오. 강호 군호들이 그렇듯 엄청난 망상을 하고 있지만 정작 금
궁을 열어 보면 그 속에 아무것도 없고 몇 사람의 뼈만 있을지도 모르오. 금궁을 열기 전에는 어
느 누구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확정을 못하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도 빈도의
추측으로 조금의 신빙성도 없으니 농담으로 흘려 버리시오.”
무위도장의 언변은 재치가 있고 명확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사게 하였다. 그는 말을
끝내고 소영에게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빈도가 소대협에게 물어 볼 말이 있소.”
소영은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오?”
“소대협은 어떻게 해서 장자우가 뒤통수에 금침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소?”
소영은 빙그레 웃음을 띠고 내심 대답할 말을 꾸며 내었다.
‘저들은 나에게 의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무어라 대답을 한다? 우연히 보았다고 할까? 아
니지. 그럼 솔직하게… 그래 솔직하게 말해 버리자.’
“만약에 도장이나 손선배께서 오늘의 광경을 보지 않으셨다면 제가 장자우의 상처를 고쳐 주었다
고 믿지 않으셨겠지요?”
손불사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받았다.
“소대협, 자네가 입을 열지 않았을 때부터 무슨 짐작이 갔었지만… 소대협이 그런 말을 하니 이
거렁뱅이 늙은이도 궁금하여 가만 있지를 못하겠군.”
“겉보기로는 제가 신묘한 의술을 지닌 것 같았지만 저는 의술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고, 솔
직하게 말씀드리면 너무나 싱거운 일이라 웃으실 것입니다. 사실은…. 사실은 그것을 알려 준 사
람이 있었소이다.”
무위도장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다급히 물었다. 손불사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설마 남해오흉끼리 싸운 것은 아니겠지요?”
소영은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아니오. 두 명의 청의동자 중에 한 사람이 알려 주었소.”
무위도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대협의 말은 믿기 어렵소. 그 금침으로 상대의 의식을 잃게 하는 것으로 보아 금침을 쓴 사람
은 틀림없이 높은 무공을 지녔을 것이오. 그런데 그 청의동자가 어찌 알고 있단 말이오?”
소영은 은근히 화가 치밀어 버럭 음성을 높여 대꾸했다.
“분명히 그 청의동자가 전음입밀로 저에게 말했소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해가 잘 안 가는구료.”
“무엇이 또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오?”
무위도장은 정녕 소영의 말을 믿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그 두 명의 청의동자는 모두 장자우의 제자인데 어찌 그들이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소대협에게
암중으로 도움을 줬단 말이오?”
소영은 손을 흔들어 말을 막고 또 다시 빙그레 웃음을 보냈다.
“그들은 아마 장자우의 제자가 아닌 것 같소. 왜냐하면 저에게 말하기를 ‘저희들은 오늘 저녁 초
경이 되기 전에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였으니 어디로 보아도 장자우의 제자가 아님이
명백한 것이요.”
무위도장도 이제는 조금씩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의 명을 받고 이곳으로 우리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오?”
손불사가 그의 말을 이었다.
“상대가 장자우와 넷째에게 거뜬하게 암수를 쓴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오. 금침으로 그들의 뒤
통수를 찔러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게 한다는 것은 보통 묘수가 아니므로 상대가 그를 죽이려면
힘들이지 않고 해치울 수도 있었을 것이오. 남해오흉 중 으뜸인 장자우가 꼼짝 못하고 당한 것을
보니 상대의 무공도 짐작이 되오. 그래서 두 청의동자를 시켜 소대협을 도왔을 것이오.”
무위도장은 무슨 생각이 난 듯 손바닥을 탁, 치고 말을 꺼냈다.
“맞소 맞아. 그 사람은 금침을 써서 장자우를 쓰러뜨리고 꾀를 써서 장자우의 제자로 분장시킨
동자를 보내 오흉의 감시를 뚫고 우리를 도와 준 것일 거요. 모든 계획이 제대로 들어 맞아 우리
도 편했고, 남해오흉도 적개심을 버린다고 하였으니 그 사람의 도움이 정말로 컸소.”
소영은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또 다른 장자우의 제자를 데리고 있단 말입니까?”
“그런 것 같소. 그 사람의 기지로 보아 장자우의 제자와 똑같은 동자를 찾아 분장을 시켰을 것이
오.”
손불사는 더 깊은 의문을 풀고 싶어 다시 물었다.
“소대협, 그 청의동자가 자신의 정체와 내력을 이야기하였나?”
“그는 다만 금침을 빼내는 방법과 초경이 되기 전에 꼭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만 말했소.”
여기까지 말을 꺼낸 소영은 갑자기 눈을 빛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무위도장은 그가 무슨 생각을 했나 직감하였지만 짐짓 모르는 체 그의 말만 기다렸다.
소영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돌연 손바닥을 세차게 쳤다.
“아, 이제 생각이 나오이다. 그 청의동자는 틀림없이 여자가 분장한 것일 거요.”
손불사가 의외의 말이란 듯 다그쳐 물었다.
“그럼 그는 남장이란 말이오?”
“확실한 것은 직접 알아 보지 못했으나 그들의 음성이 가느다랗고 억지로 남자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았소.”
무위도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 사람은 장자우의 두 제자를 납치하여 그 모습 대로 화장술을 써서 변장시
켰을 것이오. 장자우의 제자들은 아직 어려 신체가 작으니까 부득이 여자를 썼을 가망성이 있소.”
손불사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 동자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렇게 관심을 쓸 필요는 없고 우리는 그 사람의 정체와 내력을
알아내는 것이 시급한 문제요.”
소영은 손에 잡히는 나뭇가지를 쓸데없이 꺾으면서 말했다.
“제가 보기로는 그 사람이 얼마 동안 이대로 몸을 숨기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 같소.”
그러자 손불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늙은 거렁뱅이가 궁금해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
고 강호를 위협한다는 것이 도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오. 어째서 그들은 억지로 신비한
체 위대한 체하는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는 바로 옆에 솟아 있는 조그만 바위에 걸터 앉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중에는 어쩔 수 없는 딱한 사정으로, 예를 들어 그들 자신을 해치려는 강적이 두려워…. 그런
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신비’라는 두 글자 때문에 그럴 것이오.”
소영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 손불사 건너쪽의 바위에 앉으면서 물었다.
“손선배께서는 도장선배와 함께 강호에 오랫동안 다니셨으니 무슨 짐작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모르겟는데…. 이미 여러가지 생각을 하여 보았으나 조금도 짐작이 가지를 않네. 내 만일 조그만
단서라도 잡았다면 벌써 입이 아프게 떠들어 대었지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이네. 소대협은 아직
까지도 이 늙은이의 성질을 모른단 말인가?”
“지금까지 얻은 경험으로 보아 그 사람은 많은 여자를 제자로 데리고 있을 뿐 아니라 번번이 우
리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지혜로 도움을 주곤 그대로 정체를 감추고 있소.”
무위도장은 뒷짐을 지고 소영과 손불사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무슨 깊은 생각을 하였다. 소영
과 손불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소를 띠기도 하였다.
손불사는 그런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도장형, 너무 신경을 쓸 것 없소. 그 사람은 심목풍의 일거일동을 훤하게 알고 있으며, 우리의 행
동도 감시를 하는 것 같소. 그렇다고 우리에게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니….”
그는 소영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소대협, 그사람이 만일 소대협을 만나자고 할때 될 수 있으면 거절하지 마시오.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바에야 이 자리에서 무작정 콩이냐 팥이냐를 논할 것은 없으니 어서 길이
나 떠납시다.”
소영은 정체 모를 상대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혹시 그가 내 부모님을 구해 간 사람이 아닐까?’
하는 희망도 가져 보았다.
이제까지 말도 없이 뒷짐만 지고 있던 무위도장이 돌연 생각난 것이 있는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무릎을 쳤다.
“그렇지! 그 사람은…..”
그가 입을 막 열려는데 갑자기 뒤편 숲 속에서 날카롭게 허공을 꿰뚫고 화살 하나가 날아 왔다.
그 화살은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오 척 정도 떨어진 조그만 나무에 꽂혔다. 화살 끝에는
흰 종이가 묶여 있어 살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무위도장이 재빠르게 몸을 날려 그 종이를 떼었다. 소영과 손불사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위도장에게 다가갔다.
그 편지의 겉봉에는 정성 들여 쓴 글씨로,
라고 씌어 있었다.
무위도장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편지를 소영에게 건네 주었다. 소영의 궁금한 마음도 누구
못지 않아 즉시 봉투를 뜯어 보았다.
그리고 편지의 끝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어 여전히 상대가 누구인지 묘연했다.
소영은 무의식중에 긴 한숨을 내쉬고 편지를 무위도장에게 전했다. 무위도장과 손불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는 무위도장도 한숨을 쉬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니 소대협은 각별히 조심하여야 되겠네.”
손불사가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게 좋은 방법이 있소. 우리는 심목풍에 대항할 계책을 세우는 것이오. 그 심목풍이 도대체 얼
마나 악독하고 간계가 뛰어난지 직접 보고 싶구료.”
무위도장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손선배께서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소?”
“우리끼리 논할 것이 못 되오. 우선 귀파의 제자들을 만난 다음 계책을 세우기로 합시다.”
그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생각이 난 듯 무위도장에게 물었다.
“도장께서는 영사제에게 명하여 제자들을 망양곡에 모이게 하라고 하였다는데 그것이 정말이오?”
무위도장은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늙은이는 많은 곳을 쏘다녀 보았지만 그 망양곡이라는 곳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무위도장은 빙그레 웃음을 띠며 손불사에게 미안한 표정을 보였다.
“미안하오. 그 망양곡이라는 곳은 우리 무당파에서만 쓰고 있는 암호요. 그 곳은 여기서 십 리도
못 되는 장소이니…..”
손불사는 대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무위도장이 가리키는 망양곡을 향하여 내달렸다. 세 사람의 경공은 모두 높은 경지에 달하여 있
으므로 제비가 날고 나비가 춤추듯 가볍고 빠르게 서쪽으로 질주했다.
무위도장의 말대로 약 반 시간쯤 달리자 일행의 눈앞에 조그마한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은 양쪽
벽에서 솟아난 나무에 등나무 덩굴이 빽빽하게 퍼져 있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손불사는 계곡의 입구로 걸음을 옮기면서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망양곡이라는 곳이오?”
이 말에 무위도장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로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허허허… 그렇소이다. 빈도가 이곳을 망양곡이라 이름지었소.” 그는 말을 끝내고 곧 두 손을 가
슴께로 쳐들어 손바닥을 세 번 쳤다. 그러자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등나무 덩굴이
움직이더니 전엽청이 뛰어 내렸다.
그는 무위도장 앞으로 다가와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사형, 어서 오십시오.”
무위도장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별일 없었소? 마총타주는 좀 어떻소?”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전엽청은 앞장을 서서 세 사람을 안내하였다. 소영은 맨 뒤에 따라 가며 주위 지형을 자세히 살
폈다. 계곡 입구에서 칠십여 장을 들어가니 오른쪽 절벽의 중간 정도에 천연적으로 생겼는지 밖
으로 불쑥 튀어 나온 편평한 암석이 눈에 띄었다. 그 암석은 십여 명이 둘러 앉을 수 있었으며
아무나 올라가지 못할만큼 높았으므로 일행의 휴식장소로는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전엽청은 그 바위 밑으로 세 사람을 안내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높
지는 않았다.
전엽청은 머리 위의 바위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저곳이 편히 쉬시기에 좋으실 것입니다.”
무위도장은 힐끗 그곳을 올려다 보더니 그대로 몸을 솟구쳐 올라갔다. 그 뒤를 이어 소영과 손불
사 그리고 전엽청도 따라 올랐다. 그곳은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어 그대로 바위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손불사는 주위를 훑어 보며 탄식했다.
‘무당파라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일대 명파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어찌하여 백화산장과 맞부딪
치게 되어 피해 다니다니….하루속히 심목풍의 목을 베어야만 무림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겠다.’
바위에 올라 앉은 다른 사람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는데 돌연 소영의 말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심목풍이 데리고 있다는 백여 명의 장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면 말씀
해 보시오.”
손불사가 무엇이 우스운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내가 생각해 낸 계책은 간단하지. 그렇지만 이것은 이용술을 할 줄 알아야만 되지.”
무위도장이 반갑게 말을 받았다.
“이용지술이라면 빈도도 조금 할 수 있소.”
손불사는 무릎을 탁 치며,
“그러면 아주 잘 되었소.”
하며 말을 이었다.
“심목풍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 가며 소대협의 부모님을 납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으
로 알고 있소. 물론 소대협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기 위해서요.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간계도 정체
모를 사람에게 방해를 받아 헛수고가 되었소. 그렇게 되니 심목풍은 최후수단으로 소대협을 죽이
려고 날뛰는 것이오. 그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할 것 같소. 조금 전의 편지에 그가 백여 명의
장한을 준비시켰다고 하지만 그 백여 명 장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소.”
손불사는 마치 백화산장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세밀하게 그곳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심목풍은 금은 보화로 강호의 고수를 매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소. 더군
다나 소대협의 무공이 높아 강호의 고수들 만으로는 당해 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백여 장한들
에게 특수한 무기를 주었을 것이오.”
소영이 말을 받아 성급하게 물었다.
“그 특수 무기가 무엇이오?”
손불사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위도장과 전엽청도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독이오! 그는 독을 쓸 것이오.”
주위 사람은 의외의 말에 깜짝 놀라 멍하니 손불사만 쳐다볼 뿐 한마디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
다. 손불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심목풍의 장한들이 어떤 독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 내야 되오. 나의 계책은 도장의 제자
들 중에서 소대협과 비슷한 사람을 몇 명 뽑아 소대협으로 분장시키는 것이오. 그리고 나와 소대
협은 다른 모습으로 분장을 하여 그들이 가짜 소대협에게 독을 쓰는 것을 알아 내자는 말이오.”
무위도장은 소영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보더니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손선배의 계책은 고명하긴 하나 소대협의 얼굴과 닮은 제자가 몇 없을 것이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오. 단지 소대협과 비슷하게만 분장하면 되니까. 우리는 낮에는 객점에 숨
어 있으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되도록 하지 말고 소문만 내면 되오. 그러면 간악한 심목풍도 별
생각없이 찾아 올 것이오.”
무위도장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손형의 이야기는 백화산장과 정면으로 대결하자는 것이로군.’
이런 생각을 하며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각 대문파 전부가 심목풍의 백화산장이 너무나 비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어 감히 맞서질 못
하는 실정이오. 그런데 소대협께선 단신 백화산장에 도전을 하니 온 강호 무림이 들떠 있소. 아마
거의 모두가 소대협을 도울 것이오. 우리 무당파는 백화산장과의 거리가 제일 가까워 그가 제일
의 공격 목표로 삼을 것이오.”
무위도장의 눈살은 차츰 크게 찌푸려졌다.
“흠! 무당파는 우리 장삼봉(張三峰) 사조께서 세우신 이래 아직까지 적에게 쫓겨 유랑을 하며 지
내지는 않았는데…. 빈도는 본파의 장문으로서 비단 무당 문하의 명성을 높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장을 버리고 떠도는 신세이니 이대로 죽고만 싶은 심정이오.”
손불사가 위로의 말로 무위도장의 마음을 달래었다.
“도장형, 아무 상심하지 마시오. 강호에서는 소림파를 태산북두로 여기며 무림의 정의 수호를 떠
맡기려 하였지만 이 늙은이가 보기에는 별로 신통치가 않소. 역시 강호에서는 무당파가 으뜸이오.
심목풍이 다른 문파를 제쳐 놓고 귀파를 제일의 목표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당파가 중요
하다는 뜻이 아니겠소? 도장형은 강호의 기대를 어긋나게 해서는 안 되오.”
무위도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과분한 칭찬은 마시오. 무당파가 심목풍의 목표가 된 것은 지리적인 여건 때문이오.”
소영이 입을 열어 말참견을 하였다.
“소생, 도장께 한마디 여쭈어 볼 것이 있소이다.”
“소대협, 무슨 고견이라도 있소?”
“도장께선 무당 문하의 정예 제자들만을 데리고 나오셨는데 그렇다면 무당산 삼원관에는 아직도
많은 제자가 있을 게 아니오? 만약에 심목풍이 고수들을 그곳으로 보내어 삼원관을 습격하게 한
다면 그 남은 제자들은 제대로 손을 쓰지도 못하고 참사를 당할 것이 아니오?”
“그거야 빈도가 어찌 생각을 안하였겠소. 그러나 심목풍은 너무나 간계가 뛰어나 빈도와 무당 문
하의 정예가 삼원관을 떠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오. 삼원관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쓰러
뜨린다 하여도 빈도와 정예 제자들이 남아 있으니 무당파는 존재할 것이라는 것도 생각 하였을
거요. 약한 제자들을 이유없이 해한다면 그의 평이 더욱 나빠져 더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니 약삭빠른 그가 그런 손해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오.”
소영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느끼는 것이 있었다.
‘무위도장이 이렇게 무당산을 나와 정예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유랑하는 이유가 심목풍의 대거 공
격을 피하려는 것이었군.’
이때, 갑자기 손불사가 자신의 무릇을 탁 치면서 소리쳤다.
“오늘날 무림의 구대 문파가 동심 협력하여 심목풍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정말
이상하오. 시일을 끌면 끌수록 심목풍의 세력은 비대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발등이 다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단 말이오. 난 강호의 모든 문파가 썩었다고 생각하고 있소.”
무위도장은 긴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손형의 말씀이 맞소. 그러나 각 대문파 역시 그만한 고충이 있지요. 빈도가 알기로는 각 대문파
의 장문인들이 그런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목풍의 세력이 너무나 커서 누가 먼저 감
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물론 보복이 두려워서요. 한번 잘못 나섰다가 온 문파를
망치기 싫어서 모두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는 것이니 그들을 너무 믿지 맙시다.”
무위도장의 이야기는 점차 깊은 일에까지 파고 들어 갔다.
“지금 각 대문파는 비밀리에 몇몇 고인들을 풀어 열쇠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소이다. 그들은
금궁에 들어 가기만 하면 생각도 못한 높은 무공의 절기가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오. 그래서 그
것을 터득하여 심목풍을 누르고 무림의 군왕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려는 욕심들이오.”
그는 이야기를 끝내고 천천히 눈길을 돌려 소영을 쳐다 보았다.
“빈도가 몇 마디 어려운 질문을 하여도 팬찮겠소?”
소영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되물었다.
“금궁의 열쇠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그렇소이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금궁의 열쇠가 악운고의 수중에 들어 갔다는데 그것이 사
실이오?”
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소생이 악운고를 만났을 때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였었소. 그러므로 악운고가 금궁의
열쇠를 가지고 있나의 여부는 무어라 대답을 못하겠소이다.”
“악운고가 이미 유명을 달리하였다는 것이 정말이오?”
소영은 옛날의 쓰라린 추억이 새삼 생각나는 듯 눈을 감고 잠시 말이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옛
날 생각을 하는 것이므로 덧붙여 악소채에 대한 그리움도 샘물처럼 솟아났다.
“그것은 결코 헛소문이 아닙니다. 소생의 이모인 악운고는 이미 선계(仙界)의 사람이오.”
무위도장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였다.
“빈도, 하나만 더 묻겠소이다. 그 금궁의 열쇠가 악소채의 수중에 있는지요?”
“하하하….그렇소이다. 확실히 악소채의 수중에 들어 있소.”
소영은 깜짝 놀라 눈길을 돌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중주이고와 사마건, 운양
자, 이렇게 네 명이 서 있었다. 조금 전에 말을 꺼냈던 것은 상팔이었다.
그들은 각각 몸을 솟구쳐 바위 위로 올라 섰다. 상팔은 의외로 소영의 모습이 보이자 놀라는 표
정으로 멍청히 서 있기만 하였다. 소영은 무표정하게 상팔을 쳐다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일에 대해선 나의 두 형제께서 더 잘 알고 있으니 그 분들에게 물어 보시오.”
상팔은 그제서야 걸음을 옮겨 소영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싱겁게 웃음을 흘렸다.
“악낭자께서 직접 소인에게 일러 주었소이다. 금궁의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러나 몸에 지니지는 않은 것 같았으며 그것을 어디에다 두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소.”
무위도장은 무슨 결심을 하였는지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악낭자께서 하루속히 금궁에 들어가 심목풍을 제압할 수 있는 대책을 찾기 바라오.”
소영의 마음 한구석은 무엇을 잃은 사람처럼 허전하였다.
‘이모님의 장례는 지내지 못하였고 악누나의 생사도 모르니….. 지금쯤 악누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까? 누나도 나를 생각할까? 심목풍을 누르고 누나를 찾아 길을 떠나야겠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
고 험준한 역경을 이겨 내어 주었는데…..’
상팔은 오랜만에 만나는 소영이 반가워 눈길을 돌려 무어라 입을 열려다가 소영의 침통한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자 손불사가 재빨리 입을 열어,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악운고는 이미 선계의 분이 되셨소. 악소채의 행방도 전연 모르니 금궁의 열쇠는 마치 바다에
가라앉은 모래알 같소. 그것을 가지고 자꾸만 이야기를 꺼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악독한 심
목풍을 쓰러뜨리고 강호에 다시 평온을 되찾나가 더 시급한 문제요.”
소영은 악소채와 작별하고 난 후 지금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으로 인해 악소채를 잊고 있었
다. 그러나 이제 다시 악소채의 이야기가 나오자, 보고 싶은 연연한 심정이 온 가슴을 메우는 것
이었다. 소영은 수심중에도 손불사의 이야기에 심목풍이란 말이 나오자 대뜸 입을 열어 말대꾸를
하였다.
“지금 강호의 각 대문파와 각 방의 호걸들이 심목풍에게 항거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제일 큰 원
인은 심목풍의 세력과 그 악명이 두려워서요. 그러니 우리가 먼저 손을 써서 심목풍에게 약간이
나마 피해를 주면 그 소문이 강호에 퍼져 각 대문파가 용기를 얻어 일어설 가망성도 있지 않소?”
손불사가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맞았네. 소대협의 기지에 노부도 감탄하였네. 과연 영웅은 나이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으로
되는 것이구먼.”
무위도장의 생각도 소영의 계책이 옳다고 느꼈다.
“소대협의 말은 백 번 옳소. 그러나 그에 따르는 계략을 이야기하시면 더욱 쉽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오.”
소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게도 소인의 견식으로는 좋은 계략이 떠오르지 않소이다. 소인은 도장께 가르침을 받고
싶소.”
무위도장은 주위 인물들을 돌아가며 쭉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얼마간이나마 득세를 한 뒤, 심목풍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어느 문파를 공격한다고 헛소
문을 퍼뜨린다면 많은 동조자를 얻을 것이오. 이렇게라도 수를 써서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무림
의 동도들이 우리의 계획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방법이오.”
손불사가 손을 흔들며 정색을 하였다.
“아니오 그런 악독한 자를 상대하는데 있어 무슨 수단 방법을 가리려고 하오? 우리가 만약에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목풍을 눌렀다 하여도 강호의 동도들이 문어라 핀잔은 없을 것이오.”
소영은 고개를 돌려 계속 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얼마 동안을 그렇게 있더니 돌연 자기 혼자 이야기를 하듯 중얼거렸다.
“한 가지 일만은 소생이 미리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소영에게 집중되었다.
“소생이 알고 있기로는 강호의 각 대문파에 심목풍의 첩자가 잠입해 있소이다. 마방과 신풍방에
까지도 말이오. 이런 사정이 있으니 우리가 무작정 두들기다가는 심목풍의 귀에 틀림없이 들어갈
것이오. 미리 신중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오.”
무위도장은 의외의 말을 듣고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동안 소영의 얼굴만 쳐다 보았다.
그는 이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것은 소생이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던 것이라 조금의 거짓도 없소. 그 첩자들은 심목풍을 만
났을 때 모두 인피가면을 쓰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얼굴과 정체는 모르고 있소이다.”
소영의 날카로운 눈빛은 계곡 사이를 오가고 있는 무당 문하의 제자들을 쏘아 보고 있었다. 그는
무위도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귀파에도 그의 첩자가 있으니 도장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오이다.”
무위도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협의 말씀 대단히 고맙소. 앞으로는 만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소.”
하더니 소영의 앞으로 선뜻 나와서 일행의 가운데로 자리를 잡고 말을 꺼냈다.
“우리는 너무 힘을 분산해서는 안 되오. 그러니 두 패로 갈라집시다. 만약 심목풍을 만나게 된다
면, 양면 협공으로 전력을 기울이면 그도 별다른 수를 못 쓸 것이오.”
손불사는 찬성하며 말했다.
“도장의 말씀이 맞소. 우리는 몇 사람의 가짜 소영을 더 만들어 심목풍의 이목을 흐리게 만들어
야 하오.”
무위도장과 소영이 동시에 대답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되어 여덟 군호들은 심목풍을 누를 계획을 신중하게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