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94
94. 가짜 기생과의 싸움
기생, 백매의 말에 소영은 귀밑까지 얼굴을 붉혔다. 만일 그가 인피가면을 쓰지 않았더라면 홍시
처럼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해 당황했을 것이다.
강호에 경험이 많고 매사에 치밀한 상팔은 소영의 마음이 움직여 일을 그르칠까 봐 걱정이 되었
다. 그래서 얼른 입을 열었다.
“이 소관은 비록 우리 공자님의 종이긴 하나 공자님과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 온 처지이니 피차간
에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요. 그러니 경박한 행동이랄 수 없지.”
백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이상하군요. 천기가 보기에 공자께선 스물이 넘으셨겠고, 소관가는 체격은 크지만 얼굴
로 보아서는 겨우 열 대여섯에 지나지 않을 것 같군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면, 칠, 팔 세의
나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어요?”
‘흥, 이 기생은 무시하지 못할 계집이구나.’
상팔은 가슴이 뜨끔했으나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는 소리요. 소관가는 마음이 천진스럽고 고민을 하지 않아 어려 보이지만 이미 스물이
넘었소.”
이때 문 밖에서 두 기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매, 녹하, 손님을 받으시오!”
두 기녀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공자, 잠시 앉아 기다리세요. 천기는 손님을 모셔드리고 곧 돌아오겠어요.”
전엽청은 기원 출입이 처음인지라 이런 경우에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자 상팔이
그녀들 앞을 가로막았다.
“두 낭자께선 어디를 가려고 그러시오?”
“손님을 영접하고 오겠어요.”
백매의 대답에 상팔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공자께선 많은 기원을 드나드셨지만 기녀가 손님을 이중으로 받는 것을 못 보셨소. 두 분
의 화대가 얼마나 되는지 청구하시오. 오늘은 우리 곁에서 아무 데도 나가면 안 되오.”
“행규에 어긋납니다. 공자께서 금이 많다 하셔도 우리는 욕심을 낼 수 없어요. 행규가 있으니까
요.”
“낭자들은 우리 공자의 신분을 아시오?”
“모릅니다.”
“강남순찰사 정대인의 둘째 아드님이시오.”
녹하가 웃으며 말했다.
“순찰사의 아드님이 아니라 황태자가 오신다 해도 천기들은 행규를 어길 수가 없사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낭자들을 꼭 데리고 있어야겠소.”
상팔은 한 마디로 잘라 말하더니 두구에게 명령했다.
“그 하인을 불러라!”
“네.”
두구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더니 방금 두 기녀를 찾던 하인을 데리고 들어 왔다.
상팔은 그를 바라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자네가 당직인가?”
“그렇습니다. 나리께서 무슨 분부라도 계십니까?”
“이 두 낭자의 몸값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 공자께서 저녁 내내 살 테니 그리 알게!”
하인은 기생들을 돌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 낭자들은 우리 삼강서우에서 가장 일류에 속하는 기녀입니다. 상대하는 분들이 모두 이곳의
유지와 유명인사들입니다. 두 아가씨를 보내지 않고는 못 배길 손님들이 왔는데 만일 손님들이
이 낭자들을 묶어 두신다면 오늘 저녁 이곳엔 큰 난리가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쥐꼬리만한 악주부의 명사들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공자께서 이미 두 낭자에게 마음을
두셨으니 절대로 놓아 줄 수는 없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소인이 두 낭자를 데리고 가서 그 손님들을 적당히 구슬려 놓고 한 시
간 이내에 다시 보내겠습니다.”
하인의 말에 전엽청이 발끈 화를 냈다.
“몹시 무례하구나. 나의 흥취를 깨뜨렸으니 뺨을 후려 갈겨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구가 하인의 뺨을 후려 갈겼다. 두구의 손놀림이 매우 빨랐으나 하
인은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두구의 왼손이 바로 뒤따를 줄은 몰랐다.
뺨을 얻어 맞은 하인은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그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눈을 부라리며 대들
었다.
“왜 무고한 사람을 때리시오?”
“이놈! 그것은 약과다. 더 이상 우리 공자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간 아예 목을 잘라 버리겠다.”
두구가 호통치자 백매가 두구의 옆으로 다가 서며 차갑게 비꼬았다.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상팔은 두구가 하인의 뺨을 쳤으므로 곧 일전이 벌어질 것이라 짐작했다.
‘이놈은 두구의 손길을 피하는 동작이 매우 빨랐다. 보통 놈이 아니다. 분명 무공이 높을 거다.’
상팔은 이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것을 본 두구가 곧 몸을 날려 상팔의 곁에 서며 문을 막았다.
상팔은 하인과 백매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낭자! 빨리 자리에 가서 앉지.”
백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분이 함부로 사람을 때린 것은 지나친 행동이에요.”
소영이 전엽청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 두 계집이 몹시도 건방져 따끔한 맛을 보여 주기 전에는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지 않구려.”
전엽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번쩍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백매의 허리를 공격하며 소리쳤다.
“썩은 계집들! 뉘 앞이라고 감히 요사스런 주둥이질이냐?”
백매는 전엽청이 덤벼들자 더 숨기지 않고 민첩하게 몸을 날려 피하며 말했다.
“왜 이러세요?”
“흥, 네가 본래 무공을 지녔었군. 그래서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콧대가 높아 까불었구나.”
전엽청은 연속 삼장을 백매에게 날렸다. 이 삼장은 모두 무당 문중의 절초였다. 두 손을 놀리는
동작이 매우 빨라 웬만한 사람들은 일초도 견디기 힘든 공격이었다.
그러나 백매는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전엽청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이 아닌가.
“대단한 신법이군.”
상팔이 말과 함께 백매의 뒷덜미를 잡으려고 손을 뻗쳤다. 그러나 백매는 이번에도 재빠르게 몸
을 숙이며 상팔의 공격을 피했다.
“흥, 낭자는 제법 쓸 만한 신법을 지녔는데……”
상팔은 한 마디 비꼬며 두 손으로 연거푸 사초의 공격을 퍼부었다. 백매는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팔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해 냈다. 이것을 본 소영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계집들의 신법이 매우 빠르구나. 만일 백화산장의 계집들이라면 금란, 옥란의 위일 텐데, 무슨
신법인지 도무지 알지를 못하겠구나.’
소영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백매도 무서운 고수들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더욱 경계를 하고 있
었다.
그녀는 상팔의 공격을 피해 낸 뒤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분은 도대체 신분이 무엇이에요? 관가에 계신 분들이라면 그토록 빠른 신법을 구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데……’
“낭자의 신법은 기묘하지만 강호의 견문에는 밝지가 못하군.”
상팔의 말에 백매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피차간에 결투를 하게 되었으니 신분을 밝히는 것도 도리일 텐데!”
“낭자는 절대로 기생의 신분이 아닌 듯한데, 먼저 낭자의 신분부터 밝히는 것이 어떨까?”
백매는 대답을 않고 상팔을 노려 보더니 돌연 손톱으로 옷을 가볍게 내려 그었다. 그러자 흰 옷
이 칼로 벤 듯 곧게 베어지며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 내렸다.
백매가 흰 옷을 베어 던지니 속에는 찰싹 달라 붙은 경장차림새였다. 검정색 경장차림에 허리에
는 흰색의 띠를 매었고 거기에는 네 자루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이때 상팔은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으며 전엽청은 술상 앞에 서 있었다.
소영은 전엽청의 뒤에, 녹하는 나무 걸상에 앉아 이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경장차림을 드러낸 백매는 양쪽에 서 있는 전엽청과 상팔을 둘러 보더니 싸늘하게 엄포를 놓았
다.
“여러분들은 이미 집 안에 들어선 격이니 이제는 감추려 해도 얘기하지 않고 못 견딜 거예요.”
상팔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낭자의 엄포 그럴 듯하군. 낭자는 도대체 백화산장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 신분이지?”
백매는 흠칫하며 대꾸했다.
“여러분께서는 이미 나의 정체를 알고 계셨군요.”
“그럼 낭자는 이 삼강서우의 비밀이 철저한 줄 알았소?”
백매는 사태가 긴박함을 느끼자 녹하를 바라 보며 말했다.
“녹하, 이들은 정체를 가리고 이곳에 나타났지만 모두가 무림의 일류 고수들이 분명하다. 나 하나
의 힘으로는 좀 벅찰 것 같으니 너도 나서서 도와 줘야겠다.”
녹하는 담담하게 웃으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긴 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던졌다. 그녀는 녹색
의 경장차림을 드러냈는데 역시 네 자루의 비수를 지니고 있었다.
상팔은 두 소녀의 비수를 눈여겨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두 계집의 무공이 한 계통이니 우리는 한 계집의 빈틈만 찾아 내면 되겠다. 힘들이지 않고 상대
하려면 역시 빈틈을 빨리 찾아 내야지.’
녹하는 가볍게 손을 허리에 대더니 두 개의 비수를 양손에 하나씩 갈라 쥐었다. 싸움이 붙고야
말 긴박한 정세에서 소영은 다른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녹하가 소리를 질렀고 또 하인이 이곳에 잡혔는데도 아무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밖
에서는 필시 어떤 대비책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소영이 이런 염려를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상팔은 녹하의 말에 대꾸하고 있었다.
“좋아, 낭자가 손에 쥔 비수로 어떤 절초를 만들어 내는가 한 번 시험해 보겠다.”
상팔이 녹하의 앞으로 나서는 것을 소영이 급히 막았다.
“내가 먼저 상대하겠소.”
소영은 상팔을 물러서게 하고 녹하를 보며 말했다.
“낭자께서 소생을 좋게 보지 않았을 텐데. 어디, 실컷 분풀이를 해 보시는 것이 어떻소?”
“흥, 너는 죽어야 마땅해.”
녹하는 씹어 뱉듯 말하더니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두 줄기의 싸늘한 검광이 소영을 향해 비호
처럼 덤벼 들었다. 불빛 아래 번쩍이며 소영의 심장을 향해 찔러드는 비수를 본 전엽청과 상팔은
흠칫 놀랐다.
‘이 계집의 동작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초식이 절묘하구나.’
이런 생각에 그들은 상대방을 얕보는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소영은 단전의 진기를 모아 무릎을 구부리지 않은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가볍게 공격을 피했
다.
녹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정체를 밝혀라.”
“후후, 그냥 종의 몸에 불과해.”
“네 무공은 공자보다 위인 듯싶은데?”
“칭찬해 주니 고맙군.”
소영은 빈정대며 생각을 굴렸다.
‘이 계집들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니 빨리 굴복시키는 것이 좋겠다. 강적들이 밖에서 몰려 와 안
팎으로 협공을 당하면 불리하니까…….’
이 때였다. 푸른 옷을 입은 하인이 돌연 몸을 솟구치더니 상팔에게로 덮쳐 갔다. 파란 빛이 번쩍
이는 것으로 보아 그의 손에 비수가 들린 것이 분명했다.
상팔은 급히 왼손으로 하인의 오른손 맥혈을 찍으며, 오른손으로 장력을 내뿜었다. 그의 일초는
번개보다 빠르고 폭풍보다 거세었다.
“으흑!”
하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개울가에 내던져진 개구리처럼 사지를 버둥거리
더니 피를 울컥 토하고는 쭉 뻗어 버렸다.
상팔은 어제 저녁의 분풀이를 하듯 일격으로 상대방을 죽인 것이다. 그는 하인을 공격하며 그의
손에 들었던 비수를 빼앗아 들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무림의 고수들이구나.’
하인이 상팔의 일격으로 뻗어 버리는 것을 본 백매는 흠칫했다. 그러나 표정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태도로 보아 어느 파리 한 마리가 죽었는가 하는 듯 싶었다.
소영은 두 소녀가 하인의 주검에 눈을 돌리는 사이에 재빨리 교피장갑을 꺼내 손에 끼었다.
전엽청이 하인의 시체를 힐끗 바라 보더니 두 소녀에게 말했다.
“두 낭자께서 총명하다면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이 어떻소?”
“글쎄올시다.”
백매가 코대답을 하더니 몸을 솟구쳤다.
그녀는 양손에 하나씩의 비수를 쥐고 상팔에게 덮쳐 갔다.
백매가 몸을 날리는 순간 녹하도 소영의 앞가슴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소영은 이미 그녀가 공격
해 올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몸을 피하지도 않고 한 손으로 비수를 잡았다.
소영이 비수를 잡으려는 것을 본 녹하는 짐짓 양양해졌다.
‘흥, 이 비수가 보통 쇠인줄 아나? 아무리 손바닥에 철판을 깔았다 해도 이것을 잡진 못하지.’
일부러 찌르는 속력을 늦추어 소영의 손에 잡히게 했다.
그녀는 소영이 비수를 잡으면 내력을 가해서 좌우로 비틀려고 한 것이었다.
‘네 놈의 손가락이 모조리 잘려 나가 피투성이 손으로 앞으로는 두부도 건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
다.’
이런 생각을 한 녹하는 소영이 비수를 잡자 즉시 내력을 가해 비틀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비수는 두꺼운 철판에 박힌 듯 꼼짝도 안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고 있잖
은가?
녹하는 십분의 공력을 다 쏟아 비수를 틀어 보았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녹하는 기겁을 하도록 놀
라며 급히 왼손으로 소영의 오른 손목을 찍었다.
‘흥, 요 계집애는 매우 괘씸하게 굴었으니 어디 맛좀 보여 주자.’
소영은 내력을 발휘해서 앞으로 손을 끌어 들였다. 그러자 놀라운 힘에 의해 오른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소영에게 뻣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왼손은 이미 거두어 들일 틈이 없어 자신의 오른
팔목을 팍 때리고 말았다.
녹하의 왼손이 내려치려는 찰나에 소영이 비수를 잡아 당겼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장력으로 자
신의 팔을 때린 것이다. 그러나 녹하의 무공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장력
의 힘을 뺐다. 그래서 비록 오른팔을 맞기는 했으나 대단치는 않았 다. 소영은 비수를 뺏아 드는
것과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오른손을 뻗쳐 녹하의 왼쪽 어깨를 찍었다.
“으흑!”
녹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다가 털썩 주저 앉았다. 이때 백매와 상팔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백매는 두 자루의 비수로 기묘한 절초를 만들어 상팔을 연방 공격했다. 상팔은 맨손으로 백매의
비수를 퍼하며 그녀의 손목을 찍으려고 했다. 백매는 차츰 상팔에게 제압당하고 있었지만 소영은
시간을 단축할 필요를 느꼈다.
‘앞으로 십 합만 겨루면 상팔이 완전히 우세하게 되고 이십 합이면 백매의 손에서 비수를 뺏을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을 끌면 불리하니 상팔을 좀 도와 줘야겠다.’
소영은 곧 진기를 끌어 모아 은근히 오른손을 움직여 수라지력을 백매의 허벅지를 향해 뻗쳤다.
한 줄기 강한 기운이 그녀에게로 곧장 뻗어 갔다. 백매는 오른쪽 허벅지에 무시무시한 지력을 맞
고 깜짝 놀랐다. 다리가 찌르르 저려 오는 바람에 비틀거렸다.
상팔은 누워서 떡 먹는 식으로 백매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아 들 수 있었다. 그는 소영이 암중으
로 자기를 도와 준 것을 알아 차렸다. 백매는 넓적다리에 심한 일격을 맞고 이미 항거할 힘을 잃
었다. 그녀는 상팔에게 양쪽 어깨의 혈도를 찍히자 이를 갈며 소리쳤다.
“누가 나에게 암수를 썼지?”
소영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소생이 했소이다.”
“당신이? 어떤 무공인데…..”
소영은 수라지력을 유선자에게서 배운 것을 심목풍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알려 줄 수가 없었다. 그
래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저 하기 쉬운 일지를 썼을 뿐이지.”
백매는 소영을 노려 보더니 녹하를 돌아 보며 물었다.
“많이 다쳤니?”
“부상당하진 않았어요. 다만 관절을 찍혀 움직일 수 없을 뿐이에요.”
녹하는 왼쪽 어깨의 관절을 찍혔던 것이다.
이때 상팔이 비수를 백매의 얼굴에 대더니 차갑게 위협했다.
“낭자가 이토록 아름다운 미모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면 내가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시오.”
“그거야 묻는 말을 들어 봐야 대답의 여부가 있지요.”
백매의 응수에 상팔은 피식 웃더니 이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낭자들은 백화산장에서 왔지?”
“그래요.”
“심목풍은 지금 어디에 있소?”
“심대장주의 신비스러운 행동을 소녀가 어찌 알겠어요? 혹시 이 객실에 돌연 나타날지도 모르지
요.”
백매는 빈정거리는 투로 대답하더니 상팔에게 반문했다.
“당신들이 이곳에 변장을 하고 나타난 것은 어떤 목적이 있을 텐데요?”
그녀는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팔에게 겁을 먹고 있었다. 고운 얼굴은
여자에게 있어서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기에 은근히 마음을 죄고 있었던 것이다.
“흥! 그건 알 필요 없고…. 낭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만일 내가 실수로 칼자국이라도 낸다면 너무
도 아까운 일인데….”
상팔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자 백매는 화를 파르르 냈다.
“당신들은 오늘 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후후, 그것은 내가 낭자에게 묻고 싶은 말인데?”
이 때였다. 돌연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일장 더 받아 보시지.”
하는 그것은 두구의 음성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전엽청은 장검을 번뜩이며 급히 밖으로 뛰어 나
갔다. 문 밖에선 기합소리와 무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 왔다. 매우 치열한 싸움이 붙
은 모양이었다.
“강적들이 이미 정면으로 덤벼 들고 있는 것 같은데 이 계집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상팔의 물음에 소영이 대답했다.
“백화산장의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행을 저질렀소. 허나 이 계집들은 이미 반항할 능력을 상
실했으니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소.”
상팔은 비수로 백매의 얼굴에 가볍게 상처를 내며 말했다.
“내가 손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야. 심목풍이 이곳 악주성에 왔지?”
백매는 날카로운 눈으로 상팔을 노려 보더니 스르르 내리 감으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당신은 질문할 권리가 있소?”
그녀는 이를 악물어 울분과 저주를 참고 있는 듯했다.
소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 낭자를 너무 탓할 수는 없지. 백화산장엔 규율이 엄하고 심목풍에게 겁들을 먹고 있기 때문
에 입을 열 리가 없소. 그녀들을 죽이진 말고 혈도나 찍어 놓읍시다.”
“그렇게 하지.”
상팔은 재빠르게 백매의 두 곳 혈도를 찍었다.
이 때였다. 벽에 늘어져 있는 천이 움직이며 차가운 바람이 소영의 등줄기를 향해 들이 닥쳤다.
소영은 이때 녹하의 혈도를 찍으려던 참이었다.
‘암습이구나!’
소영은 오른 팔꿈치로 녹하의 혈도를 찍으면서 왼손을 재빨리 뒤로 돌려 날아드는 암기를 잡았
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 들었던 녹하의 비수를 암기가 날아 온 방향으로 던졌다.
“…..윽!”
천 속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상팔이 재빨리 달려가 천을 힘껏 잡아 당겼다. 천이 쭉 찢어지
며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심장에 정통으로 비수가 꽂혀 죽어 있었다. 그 사나이의 몸 뒤에는 비
밀문이 채 닫히지 않아 약간 열려 있었다. 사나이는 그곳을 통해 나타난 모양이었다.
“조심해야겠소. 이 객실엔 여러 가지 장치가 있을 것이오.”
상팔의 말에 소영은 문을 향해 걸었다. 그 뒤를 상팔이 따랐다.
문을 나서니 검광이 눈부시게 번쩍이고 있었다. 전엽청이 장검으로 무지개빛 검광을 뿌리며 괴한
과 싸우고 있었다.
두구는 이미 상대에게 몰려 정원으로 내려간 듯했고 전엽청은 바로 문 앞에서 싸우고 있었다.
소영은 전엽청의 곁으로 다가서며 찔러 오는 적의 장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상대방은 소영이 맨
손인 것을 보고 안심하여 검을 힘껏 찔렀으나 검은 소영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괴한이 얼떨떨하는 찰나에 전엽청이 재빨리 장검으로 괴한의 가슴을 찔렀다. 괴한은 외마디 비명
을 지르며 푹 거꾸러졌다.
괴한이 처치되자 소영은 재빨리 몸을 날려 뜰로 내려 섰다. 그 곳에서는 두구가 네 명의 장정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 네 명의 사나이들은 장검으로 두구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검술이 모
두 뛰어났다.
두구는 철필과 은권을 갈라 쥐고 네 장정과 싸우고 있었다.
소영은 괴한에게서 뺏은 장검을 휘두르며 두 괴한의 장검을 막아냈다. 소영이 나타난 것을 본 두
구는 용기백배해서 나머지 두 장정을 상대로 기묘한 초식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그의 철필이 한
장정의 어깨를 찍었다.
철필에 어깨를 찍힌 장정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을 본 소영은 재빨리 그의 왼쪽 정강
이를 걷어 찼다.
“윽!”
장정은 다리뼈가 부러지며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졌다.
소영은 그 장정의 정강이를 차는 것과 동시에 장검을 휘둘러 다른 장정의 팔을 잘라 버렸다.
두구를 협공하던 네 명의 괴한 중 이미 두 명이 소영에게 공격을 받아 나둥그러졌다. 겁을 집어
먹은 두 명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으나 도망가다가 죽으나 마찬가치다. 이 멍텅구리야!”
소영은 물찬 제비처럼 몸을 날려 두 장정에게 덮쳐 갔다. 도망가던 두 장정은 등 뒤로 따라오는
바람소리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칼을 휘둘렀다.
소영은 한 장정의 칼을 맨손으로 후려 갈기며. 장검으로는 다른 장정의 팔을 쳐서 칼을 떨어뜨리
게 했다. 한쪽 팔을 잃은 장정은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려고 도망쳤다. 소영은 재빨리 수라지력을
그 장정의 등줄기를 향해 날렸다.
“으악!”
장정은 비단폭을 찢는 듯한 비명과 함께 푹 거꾸러지더니 사지를 쭉 뻗어 버렸다.
소영은 그가 넘어져 죽는 것을 보자 아직도 칼을 들고 달아나는 장정 하나를 향해 장검을 내던졌
다. 메뚜기처럼 도망치던 장정은 급히 칼을 휘둘러 소영이 날린 장검을 후려 쳤다. 그러나 소영이
내력을 모아 던진 장검은 그 장정이 휘두른 칼을 부러뜨리며 그대로 뚫고 들어 갔다.
“으악!”
장정은 가슴에 장검을 맞고 벌렁 나자빠져 그대로 버둥대다가 숨이 지고 말았다.
이때 이머 두구는 부상당한 두 장정의 목숨을 끊어버린 뒤였다. 네 명의 장정을 모두 죽였으나
다른 사람이 공격해 오진 않았다.
뒤뜰 전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할 뿐이었다. 대낮처럼 지붕을 밝히고 있는 등불이 기분 나빴다.
두구는 무서운 침묵이 마음에 걸리는지 소영의 곁으로 다가서며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하지요?”
“글쎄…. 아무래도 수상하군요 지붕엔 등불이 대낮 같은데 뜰엔 등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으니…..”
전엽청이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출현이 삼강서우를 발칵 뒤집을 만한데 지금 이처럼 조용하기만 하니….. 분명 어떤 흉계
가 있을 것이오.”
이 때였다.
남쪽에 있는 방 안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희들은 이미 완전히 포위되었다. 사방에 쇠털처럼 가는 독침이 수만 개 깔려 있어 내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너희들이 파리나 잠자리로 둔갑을 한다 해로 이 독침을 피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소영은 진기를 모아 사방을 경계하며 전엽청에게 소곤거렸다.
“전형, 저놈에게 말대꾸 좀 하시오. 나는 그 사이에 형세를 살피겠소.”
전엽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노부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것보다 너희들의 생명이 내게 달렸다는 것을 알면 된다. 지금 너희
들에겐 두 갈래의 길이 있다. 그 하나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침에 맞
아 죽는 것이다.”
전엽청은 코웃음을 쳤으나,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려 당장 독침세례를 받고 싶지는 않아 입을 다
물었다. 그러자 다시 암실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이 뒤뜰의 객실에는 여러 가지 비밀장치가 되어 있다. 단 한 자의 공간도 없다. 너희들이 잘난
무공을 믿고 까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 둬라.”
전엽청이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소영에게 물었다.
“어떡하죠?”
“사방의 형세를 보니 저놈의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소. 우리는 우선 아까 앉아 있던 객실로 들
어 가서 탈출할 방법을 뚫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때 상팔의 음성이 들렸다.
“두 낭자는 점잖게 구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야. 나는 여자라고 해서 봐 주는 성질은 아니니까.”
상팔은 백매와 녹하를 양 어깨에 하나씩 걸머지고 나오고 있었다. 이것을 본 두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빨리 객실로 돌아 가시오.”
“그 안에는 있을 곳이 못 되네.”
“그건 왜요?”
“독연기를 뿜어 내고 있네. 들어가야 독연기의 밥이 될 뿐이네.”
“알고보니 우릴 그 방에 가두어 놓고 독연기로 죽이려고 했군.”
전엽청이 상팔과 두구 사이로 비집고 들며 말했다.
“이 뜰의 사방엔 암기가 꽉 차 있소. 우린 적의 포위에 걸렸소.”
상팔은 사방을 훑어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이 암기를 퍼붓는다면 우리는 이 두 낭자를 방패 삼을 수밖에 없겠군.”
이때 북쪽의 방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관을 보고서야 눈물을 흘릴 어리석은 놈들이군. 좋아 내가 한 가지 보여 주지.”
소영은 급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방에 전부 암기가 있으니 각자 한쪽씩 맡으시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장정의 시체 하나를 끌어 안고 들어 왔다.
“내 너희들의 눈을 뜨도록 해주겠다.”
북쪽 방에서 다시 음성이 들리더니 갑자기 두 마리의 새가 날아 올랐다. 두 마리의 새가 지붕 위
까지 솟아 올랐을 때였다. 싯! 하는 소리와 함께 수천 개의 은빛이 새를 향해 날아 갔다. 그러자
두 마리의 새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음, 몹시 가느다란 암기에 독이 묻어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소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너희들 중 누가 소영이냐?”
소영이 흠칫 놀라며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상팔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무엇을 착각한 모양이군. 만일 여기에 소영이 있다면 너희들은 벌써 소영의 장풍에 날
아 갔을 것이다.”
그러자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가슴을 죄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을
깨뜨리며 두구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남, 북, 양쪽 객실에 적이 숨어 있으니 그 객실로 덮쳐 들어가 우선 충돌을 한 뒤 방법을 모색합
시다.”
잔꾀가 많은 상팔도 이런 형세 속에서는 묘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객실로 뛰어든다는 것
도 쉬운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수한 암기가 객실에서도 뿜어 나올 텐데…..’
네 사람은 입을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숨막힐 듯한 침묵만이 점점 밀도를 좁혀 오고 있을 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