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96
96. 얼굴 없는 조력자
그 웃음소리는 쉰 듯하면서도 음험하기 그지 없어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케 했다.
소영은 그 웃음소리를 듣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외쳤다.
“심목풍!”
연못 속의 사람이 대답했다.
“맞았다. 바로 그렇다.”
소영은 내심 흠칫했다.
‘이 사람은 정말 솜씨가 대단하구나. 어떻게 연못 가운데 서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소영은 짐짓 냉랭한 음성으로 빈정거리듯 말했다.
“물 속에 몸을 숨기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거늘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대는
뻐기는가?”
그러자 심목풍이 컬컬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소제, 나의 조그만 배로 와서 얘기나 좀 나눌까?”
소영이 연못 가운데를 바라 봤지만 컴컴해서 어디쯤 그가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소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피차간에 이미 얼굴을 대한 적이 있으니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지 말기 바란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연못 한 가운데가 밝아지며 등불을 휘황하게 단 작은 배 한 척이
떠올랐다. 이 배는 여느 배와는 달라 배 모양이 모가 져 있었으며 배 안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상팔이 탄식하듯 말했다.
“그렇다! 배를 연못 한 가운데 세워 두곤 배 전체를 회색의 두꺼운 기름 종이로 덮어 씌웠구나.
어두운 밤이라 우리가 감쪽같이 속았구나.”
이때 심목풍이 또 높은 음성으로 외쳤다.
“여러분들께서도 배 안으로 와서 얘기를 좀 나누는 것이 어떨까요?”
상팔이 대답했다.
“심대장주, 배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겠군요?”
심목풍이 이내 대답했다.
“늙은 거지 한 사람과 소코(牛鼻) 노도(老道), 그리고 네 분의 귀빈이 있소이다.”
심목풍은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네 분의 귀빈은 그 이름이 매우 높이 알려져 있지만 좀처럼 강호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엔 쉽고 싶어도 뵐 수 없는 분들이오.”
소영이 다그쳐 물었다.
“무럼 사대 현인이오?”
“그렇소. 소제는 개방 사람들을 본받아 감각이 매우 예민하군.”
소영이 말을 받았다.
“나는 곧 심대장주의 배에 가서 뵙기를 원하오.”
“매우 환영하는 바이오. 그렇다면 조그만 배를 한 척 보내서 맞으러 가겠소.”
소영은 심목풍이 타고 있는 배와 이곳까지의 거리를 대략 측정해 봤다. 불과 오, 육 장의 거리였
다. 하지만 중간에서 다시 힘을 넣지 않는다면 건너 가기가 매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자기만
은 등평도수(燈萍渡水)의 경공을 발휘한다면 건너 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상팔과 전엽청
이 의문이었다.
소영은 생각이 이에 미치자 높은 음성으로 외쳤다.
“심대장주께서 배를 보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심목풍이 말을 받았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심목풍은 말을 마치고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곧 노젓는 소리가 나며 한 척의 작은 배가 육지를
향해 다가 왔다.
소영이 전엽청과 상팔에게 나직이 일러 주었다.
“두 분께서는 조심하십시오. 절대로 배 안에 있는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말을 마치자 소영은 눈길을 이쪽으로 저어 오는 배를 바라 봤다. 배를 젓고 있는 사람은 비록 경
장은 갖추었지만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았다.
경장을 한 사나이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삼장주님을 환영합니다.”
소영이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소영이오. 삼장주란 존칭은 감당키 어렵소.”
사나이는 말을 받았다.
“대장주의 분부이시니 소인들이 어찌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소영은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서 배 위에 올라 탔다.
상팔과 전엽청도 소영의 뒤를 따라 배 위에 올라 탔다. 그러자 흑의의 사나이는 곧 노를 저어 큰
배를 향해 연못 가운데로 방향을 돌렸다. 이윽고 심목풍이 큰 배의 뱃머리에 나서며 허리를 굽혀
이들을 맞이했다.
“세 분들, 안녕하셨소?”
소영도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큰 배에 올라 서며 입을 열었다.
“감히 대장주를 수고스럽게 해서…..”
그러나 그는 속으로는 은근히 경계를 했다.
심목풍의 위인됨이 워낙 비겁하고 악독하기 때문에 단지 그의 손끝에 닿기만 하더라도 혹시 중독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일대의 간웅(奸雄) 심목풍을 마주 대하자 세 사람은 모두 신중을 기했다. 그가 언제 돌연 기습을
가해 올지 모를 일이므로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심목풍은 서서히 몸을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소영을 뚫어지게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소제! 소제는 이 심목풍에게 너무 생소하게 대하는 느낌이 있소.”
소영이 말을 받았다.
“나는 감히 높이 올라 가지 못합니다.”
심목풍이 다시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람이 참는데도 한도가 있는 것이오. 만약 소제가 너무 지나치게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면 나도
옛정을 돌아 보지 않을 테니….”
소영이 비꼬듯 말했다.
“심대장주는 이미 나에게 갖은 악독한 수단을 다 써 왔지만, 나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아마 천명인가 보오.”
심목풍이 냉랭하게 코웃음치며 말을 받았다.
“천명 좋아하시는군…..”
심목풍은 약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심모는 항상 사람이란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오.”
소영이 비꼬듯 쏘아 붙였다.
“대장주께선 워낙 기지와 무공이 높으시니 그런 재주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심목풍이 천천히 대답했다.
‘너무 과분한 말씀. 그건 그렇고 당신의 친구인 손불사, 무위도장 등이 모두 배 안에 있으니 들어
가 보는 게 어떻겠소?”
소영이 배 안으로 눈길을 돌리니 손불사와 무위도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었으며 그 좌
우에 두 명의 청의노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가운데 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차
있었고, 한 병의 술도 준비되어 있었다.
심목풍이 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소제, 어째서 들어 가지 않고 망설이는 거요?”
소영이 눈길을 돌려 사방을 바라 보자 배 안에는 사벽이 모두 자단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다만 북쪽 벽에 나무로 된 조그마한 문이 달려 있었다. 그것이 아마도 내창(內艙)으로 통하는 문
같았다. 외창(外艙)에는 네 명의 청의노인과 손불사, 무위도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상팔이 몸을 비스듬히 하며 소영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내가 앞장 서겠습니다.”
상팔은 말을 하면서 천천히 발을 옮겨 선실 안에 들어섰다.
소영도 시선을 심목풍에게로 돌리며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심대장주, 앞장 서십시오.”
심목풍이 짐짓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소제는 언제부터 이처럼 의심이 많아졌소?”
소영이 말을 받았다.
“당신 심대장주와 거래함에 있어서는 역시 조심하는 게 상책이겠지요.”
심목풍은 그 이상 버티지 않고 잠자코 선실 안으로 들어섰다. 소영은 심목풍의 뒤를 바싹 따랐다.
그러나 전엽청은 선실의 문앞에 서 있을 뿐 안으로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심목풍이 전엽청을 힐끗 뒤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전형은 어째서 선실 안으로 들어 오지 않으시오?”
전엽청은 소영과 상팔이 이미 선실 안으로 들어 갔으니 자기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만일 심목풍의 말에 자극을 받더라도 꾹 참고 절대로 선실 안에 들어
가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했다.
“저는 이대로 선실 밖에 남아 있겠습니다.”
소영은 전엽청이 선실 밖에 남아 있으려는 눈치를 알아 차렸다.
“심대장주를 상대해 본 사람치고 누구든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요.”
드디어 심목풍이 전엽청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미소를 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창문 밖과 창 안의 거리는 불과 수 척, 어떤 변고가 일어난다면 당신도 마찬가지로 도망칠
수는 없을 거요.”
전엽청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심대장주께선 너무 심려해 주시는군요.”
소영은 손불사와 무위도장 등을 바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네 분의 청의노인은 당신이 모셔 온 무림 사대 현인인 것 같군요?”
심목풍이 대답했다.
“그렇소. 과연 소제의 안목은 틀림없군.”
소영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여섯 분의 노선배님들을 모두 당신이 혈도를 쩍어 놓았소?”
심목풍이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빛으로 대답했다.
“소제가 만일 무공이 넓고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면, 혹시 그들의 혈도를 풀어 줄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구려.”
소영이 천천히 손불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한동안 손불사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 그 다음 천
천히 오른손을 내밀어 손불사의 등줄기를 누르며 암암리에 내공을 운기하여 손불사의 내부(內腑)
로 뻗쳐 갔다.
그러자 한 가닥 뜨거운 열기가 손불사의 내부로 스며들어 혈맥순환을 재촉하였으므로 손불사의
얼굴에는 곧 혈색이 떠돌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의 몸에는 몇 군데의 경맥이 막혀 있는 것 같
았다. 그러나 그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는 쉽사리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소영은 곧 오른손을 거두고 심목풍을 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들은 점혈수법(點血手法)으로 당한 것 같군요.”
심목풍이 다그쳐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의해서 상한 것 같소?”
소영은 잠깐 생각해 보았다. 만일 이 사람들이 점혈수법에 의해서 당하지 않았다면 점혈수법과
비슷한 수법에 의해서 당한 것만은 틀림 없다.
“혹시 참맥폐혈(斬脈閉血)같은 수법이 아니오?”
심목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무학이란 원래 깊고 넓은 것. 소제는 비록 하늘의 은총을 입어 좋은 운을 지녔지만, 역시 무학에
는 풋나기군.”
소영도 냉랭한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당신 심대장주가 무슨 수단을 써서 그들을 상하게 했든간에 내가 이왕 여기 온 이상, 반드시 이
들을 구해서 이곳을 떠나 갈 것이오.”
심목풍은 웃으며 말했다.
“큰소리 치지 마오.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소영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들의 혈도를 풀지 못한다. 그러니 이들을 구하려면 다만 심목풍을 굴복시켜 그
로 하여금 이 사람들의 혈도를 풀게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심목풍은 매우 간교한
자인지라 이 배 위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치밀하게 배치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의 정세로는 도저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소영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심대장주께선 이제 나이가 들었으므로 시간이 갈수록 견디지 못하여 불리한 결과를 가져 올 것
이오. 그러나 나 소영의 체력과 무공은 날이 갈수록 더 발전하여 우리들 사이의 대결은 시간을
질질 끌면 끌수록 나에게 승산이 커질 것 같은데, 심대장주께선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심목풍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한 마디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소.”
소영은 손불사 등을 또 한번 둘러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당신이 만약 이곳에서 날 꺾으면 그 후 무림에서는 당신을 꺾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오.”
심목풍이 냉소를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소제는 나와 무예를 겨루자는 건가?”
“그렇소. 당신이 죽나 내가 죽나 사생결단을 하잔 말이오.”
심목풍은 역시 담담하게 웃었다.
“정세와 경우가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면 몰라도, 나는 역시 당신이 백화산장으로 다시 돌아오기
를 바라는 바요.”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다시 말을 이었다.
“소제의 말은 과연 옳소. 이 형은 이미 늙어 무림을 재패한다 하더라도 오래 계속되지 못할 것이
며, 나를 이어 무림을 재패할 사람은 자연 소제일 것이오.”
심목풍은 당대의 간웅인지라 그의 음흉한 간계는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 몇 마디의 말은
소영을 매우 아끼는 듯이 얘기해서 소영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영은 심
목풍을 노려 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대장주께선 이미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바 있는데 무엇 때문에 명리의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
하고, 무림의 패권에만 도취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심목풍은 낮을 붉히며 외치듯 말했다.
“닥쳐라! 나를 교훈할 셈인가?”
소영이 천천히 말을 받았다.
“나는 진심으로 충고하는 바입니다. 심대장주께선 이 이상 무림의 패권에만 도취되지 마시고, 조
금이라도 무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심목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아무래도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꼭 우리들이 생사의 담판을 지어야겠는가?”
소영이 무슨 대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심목풍이 두 손을 들어 펑!하는 소리를 내며 벽을 향해 곧
장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굳게 닫혀져 있던 내창으로 통하는 나무문이 갑자기 크게 열리며 온몸
에 붉은 비늘을 단 한 괴인이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 왔다.
소영은 그것을 보자 재빨리 뒤로 물러나 상팔에게 등을 대고 그 괴물을 주시하였다. 그 붉은 괴
인의 모습은 볼수록 무서웠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목에서 발끝까지 붉은 비늘로
덮여 있고, 두 손에는 손톱을 세 치 정도나 길러 보기에도 흉칙했다.
얼굴 역시 붉은 가면을 쓰고 다만 한 쌍의 눈만이 반짝였다.
‘이 괴인의 몸에 달린 붉은 비늘은 도대체 무슨 물건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상팔은 비늘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오른손을 들어 한 알의 보석을 퉁겨
냈다.
이 보석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으며 사면이 능형(稜形)으로 되어 있어 매우 예리했으므로 상팔이
언제나 품고 다니며 암기로 써 왔다. 하지만 매우 진귀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경우가 아
니면 좀처럼 쓰지 않았다.
상팔이 지금 그것을 쓰게 됐으니 지금의 형세를 그만큼 다급하게 여긴 것이다. 상팔은 보석에 십
분의 공력을 담아 보냈다. 그 보석은 촛불 아래 찬란한 빛을 발하며 그 홍린(紅麟) 괴인의 앞가슴
에 닿았으나 곧 핑!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져 창문 입구의 나무벽에 깊이 박혀 버렸다.
“오룡대진(五龍大陣)!”
소영의 싸늘한 외침에 심목풍이 말을 받았다.
“오룡 중의 하나다. 만약 자네가 그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때 가서 나와 겨루자.”
지난날, 소영이 마문비 등의 군호(群豪)를 거느리고, 백화산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을 때 십팔 금
강검순대진(金剛劍盾大陣)과 백 명에 달하는 흑의무사의 포위 공격을 무찔렀다. 그리하여 가까스
로 포위를 뚫고 나오자 다시 홍의오룡이 가로막았다.
그때 소영은 일검에 홍의오룡을 쓰러뜨렸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남궁옥이 암암리에 쇄공(鎖功)과
독분(毒粉)을 사용하여 그 오룡의 무공을 봉쇄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밤 다시 그 오룡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밤엔 남궁옥의 도움은 없는 것이다. 오
직 소영 자신의 무공으로만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소영은 진기를 잔뜩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괴인의 약점을 찾아 손을 쓰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전신에 붉은 비늘이 덮여 있었으므로 오직 두 눈을 제외하고는 아무데도 손댈 만한 곳이
없었다.
이때 심목풍이 입을 열었다.
“사전에 꼭 한 가지 자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말이 있네. 이 사람의 몸에 붙은 붉은 비늘에는 이
미 극독을 발라 놓았으므로 만일 거기에 상처를 입게 되면 순식간에 독이 안으로 침입하여 죽게
되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 독을 풀어 낼 약물이 없지.”
소영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알려 주어 고맙소!”
이런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그 홍의괴인은 침착한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소영에게로 다가
왔다.
소영은 홍의괴인의 동작이 매우 느린 것을 보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홍의괴인은 독을 바른 비늘 갑옷을 입고 있으므로 몸을 움직이는데 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을 것
이다. 그러므로 만약 넓은 곳에서 그와 상대한다면 간편한 경공으로 그를 상대할 수 있겠지만 이
배는 협소하므로 운신이 불편하니 장력으로 그를 상대할 수밖에 없겠구나.’
소영은 대강 마음 속으로 이렇게 결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가라 앉았다. 그래서 홍의괴인이 자기
앞까지 접근해 오는 데도 여전히 버티고 서서 손을 쓰지 않았다.
전엽청은 이 광경을 보자 깜짝 놀랐다.
소영과 그 홍의괴인은 거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접근해 있었으므로 피차간에 손만 내밀면 충분
히 상대방의 급소 대혈을 찌를 수 있을 거리였다.
전엽청은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이 홍의괴인은 분명히 독이 묻은 갑옷을 입고 있는데 소영이 어째서 저렇게 가까이 서 있단 말
이냐?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무기도 빼들지 않고…. 설마 육장(肉掌)으로 온몸에 극독을 바르고 있
는 홍의괴인과 싸우려는 것은 아니겠지?’
전엽청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소영이 오른손을 들어 전광석화처럼 일장을 쳐
냈다. 그러나 홍의괴인은 소영의 공격을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리하고 긴 손톱이 달린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그 괴상한 손톱이 마치 다섯 자루의 검처럼 움직여 소영의 왼쪽 어깨를 잡아
채려 했다.
그러나 소영은 왼손을 들어 그 괴인의 오른손을 막은 뒤에 다시 우장을 내밀어 그 사람의 가슴에
적중시켰다. 이 일장은 소영이 팔분 이상의 내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펑!”
소리와 함께 홍의괴인은 소영의 일장을 얻어 맞고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심목풍이 이때 하하 하고 웃어젖혔다.
“소대협! 그 붉은 비늘에 바른 극독은 위력이 대단하니 빨리 운기하여 혈도를 막게나. 만약 자네
가 생명을 보존하고 싶다면 두 팔목을 끊어 버리는 수밖에 없네.”
그러나 소영은 맨처음 심목풍을 만났을 때부터 천 년 묵은 교피장장을 끼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
에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걱정하지 마시오.”
소영은 다시 손가락 하나를 펴서 질풍과 같이 그 홍의인을 향해 찍어 갔다.
원래 소영은 자기의 그 일장이 제대로 적중된다면 그 홍의괴인을 당장 절명시킬 수는 없다 하더
라도 기절을 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뜻밖에도 이 홍의괴인은 세 걸음 물러나는
데 그쳤던 것이다. 소영은 의아한 생각과 더불어 홍의괴인을 빨리 쓰러뜨려야만 심목풍을 상대한
다는 초조감에 휩싸였다.
소영은 그래서 이번에는 수라지력(修羅指力)을 발휘하여 홍의괴인의 앞가슴 자관(紫官) 요혈을 노
리고 찍어 갔다. 한 줄기의 암경(暗動)이 곧장 몰아쳐 갔다.
이때 홍의괴인은 연속 두 차계의 맹격을 받았으므로 비록 갑옷의 비늘로 호신은 하였지만 역시
맹렬한 충격을 받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쓰러
지려고 했다.
그러자 깜짝 놀라는 것은 심목풍이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몇 달 보지 못한 사이에 소영의 공격은 눈부시게 진보한 것 같구나. 그런데 소영은 천부적인 재
능과 사승(師承)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으므로 오늘 저녁에 만일 죽이지 못한다면 후일 다시 그
를 죽일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심목풍은 생각이 이에 미치자 갑자기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비틀거
리던 홍의괴인이 그 휘파람소리를 듣자 갑자기 몸을 가누고 두 줄기의 싸늘한 눈빛으로 소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 봤다.
심목풍은 이 광경을 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소영, 나는 이미 몇 차례 너에게 타일렀다. 그러나 너는 끝내 고집을 부리니 나는 이 이상 너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
심목풍은 말을 마치자, 손을 들어 소영을 향해 곧장 공격했다.
심목풍은 워낙 체구가 큰 데다 또한 두 팔이 특히 길어서 소영과는 사 척 가까이 떨어져 있었지
만, 손을 내밀자 놀랍게도 소영의 팔 뒤에 거의 닿았다. 소영은 앞뒤로 강적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홍의괴인은 두 눈에 살기를 띤 채 서서히 다가 왔다. 그러므로 소영은 어느 쪽을 막아야 할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마침 심목풍이 뒤에서 일격을 가해 왔다. 심목풍의 공격은 실로 심후했다. 그야말로 비석이
라도 가르고 돌이라도 부술 정도로 격렬했다.
그러나 소영은 이 순간 몸을 돌려 적을 맞을 계제가 못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건청기공(乾
淸氣功)을 모아 몸을 보호하고 급소를 피할 준비를 한 뒤, 그의 일격을 맞아 주기로 하고 우선 이
홍의괴인부터 쓰러뜨린 후 다시 심목풍과 겨루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상팔은 심목퐁이 소영에게 공격을 퍼붓는 것을 보자 비록 그의 적수가 못 될 줄은 알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오른손을 내밀어 번쩍이는 금산반(金貨盤)을 꺼냈다.
동시에 실목풍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쳐 냈다. 질풍같이 빠른 솜씨였다. 사람의 몸이란 관절이 있
는 곳이 제일 취약하므로 상팔은 소영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이와 같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목풍은 냉랭하게 한 번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는 재빨리 손가락을 굽혔다가 한 번
퉁겼다. 그 지풍이 바로 상팔의 금산반에 적중되었다.
그러자 상팔은 수중의 금산반이 그 지풍에 의해 빠져 달아나려는 듯함을 느꼈다. 상팔은 내력을
사용하여 가까스로 금산반이 빠져 나가져는 것을 억제했다.
이때 갑자기 싸늘한 빛이 번쩍이며 두 줄기 흰 빛이 질풍처럼 그 홍의괴인을 향해 날아 가는 것
이 보였다. 바로 전엽청이 쳐 낸 두 자루의 칠휴검이었다.
심목풍은 왼손의 지력(指力)으로 상팔의 수중에 있는 금산반을 쳐 내고,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소
영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쳐 냈다. 그러나 그의 장세가 채 소영의 오른쪽 어깨에 닿기도 전에 한
줄기의 무형의 힘에 의해 저지당했다.
심목풍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호신강기!”
그는 다시 우장에 몇 분의 힘을 가해 장을 세워 바람같이 쳐 냈다. 소영의 이 호신강기는 아직
진경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보통 강호인물은 그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심목풍은 공
력이 대단한지라 한 줄기의 강한 장력을 쳐 내 소영의 호신강기를 뚫고 그의 어깨에 적중시켰다.
그러자 소영은 어깨에 마치 칼을 맞은 듯 오른팔이 쑤시고 저려 왔다. 소영은 이를 악물고 아픔
을 참으며 옆으로 삼척 가량 물러났다.
심목풍은 소영이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않았으므로 그의 상처가 중한지 가벼운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도 소영의 호신강기에 울림을 받아 오른팔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지 눈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격이었다. 그리고 전엽청이
쳐 낸 칠휴검이 소리를 내며 홍의괴인의 어깨에 적중되었다.
원래 이 홍의괴인은 비록 창, 칼이 뚫기 힘든 갑옷으로 호신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소영의
웅혼한 장력에 일격을 맞아 심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전엽청이 쳐 낸 두 자루의 단검을
피하지 못해 모두 맞고 말았다.
그러나 이 예리한 보검도 그 붉은 인갑을 뚫지는 못했다. 두 자루의 검이 인갑에 부딪치는 순간
모두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상팔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낭당초암(浪撞礁岩) 일초를 발휘하여 전력을 다해
심목풍을 향해 부딪쳐 갔다.
심목풍은 오른팔이 저려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몸을 돌려 피하며 왼손으로 재빨리 일장을 쳐 냈
다. 이 장세는 상팔이 일장을 쳐 내 명중시키지 못하자 제 이초를 발하려는 순간에 그에게로 당
도했던 것이다.
순간 상팔은 싸늘한 빛을 번쩍이며 한 자루의 장검이 질풍처럼 심목풍의 왼팔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전엽청이 재빨리 뛰어 들어 이 일검을 쳐 낸 것이다.
그러자 심목풍은 왼손을 내리고 칼을 피한 다음 비스듬히 일장을 쳐 냈다. 이 일장의 변화는 너
무도 빨라 전엽청은 곧 몸을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 줄기 강한 힘이 밀려 오는 것을 보자 재
빨리 창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심목풍이 냉랭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영, 이 연못 위의 나무배가 아무래도 너의 뼈가 묻힐 곳이 되겠구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딩딩딩! 하는 세 마디의 현(鉉)소리를 내며 한 줄기의 금빛이
허공을 뚫고 날아 그 홍의괴인을 향해 갔다.
이때 홍의괴인은 이미 소영을 선실의 한 모퉁이까지 몰고 가 예리한 손톱이 달린 열 개의 손가락
을 뻗쳐 서서히 소영을 향해 잡아 채려는 참이었다.
소영은 궁지에 몰리자 하는 수 없이 오른쪽 어깨의 아픔을 견디며 왼손을 내밀어 전력을 다해 일
격을 쳐 낼 준비를 하였다. 비록 그 손톱에 긁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장으로써 홍의괴인에
게 중상을 입히려고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찰나에 한 줄기의 금빛이 당도했던 것이다. 그러자 홍의괴인은 외마디 괴상한 비명을 지
르며 소영을 향해 잡아 채려던 손을 갑자기 되돌려 자기의 눈을 가리며 한동안 부들부들 떨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소영은 뜻밖에 다급했던 위험에서 벗어났으므로 어리둥절했다.
이때 비파소리가 어디선가 유유히 들려 왔다.
심목풍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왼손을 휘둘러 상팔을 두 번씩이나 곤두박질치게 한 다음 몸을
날려 홍의괴인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그 홍의괴인을 옆구리에 끼고 창문을 뛰어 나가 한 척의
작은 배에 올라 타고는 물결을 헤치며 달아나 버렸다. 이 순간의 동작은 마치 나는 듯 빨랐다.
전엽청이 비록 선실 밖의 갑판에서 지키고 있었지만 막지를 못했다. 전엽청은 심목풍이 작은 배
에 올라 탄 다음에야 그것을 알 정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때 전엽청은 조금 전에 심목풍의 일장에 날려 선실 밖으로 뛰어 나왔지만 이미
심목풍의 강한 장력에 의해 중상까지는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상을 입어 암암리에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영은 심목풍이 그 홍의괴인을 끼고 선실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보자 꿈에서 깨어난 듯 혼잣
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만약에 심목풍이 그 홍의괴인을 끼고 선실 밖으로 나가는 기세를
이용하여 나에게 일장을 가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그의 일장을 맞고 알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소영은 그 짧은 동안에 이미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겪었으므로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는 이미 비파소리가 그치고 조용했다.
상팔은 역시 노강호답게 위험한 고비가 지나자 곧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 우리 이 사람들을 빨리 구해서 떠납시다.”
소영은 네 명의 청의노인과 손불사, 무위도장 등을 둘러 보며 말했다.
“우리는 우선 이분들의 혈도를 풀어 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하오.”
상팔은 이미 두 명의 청의노인을 옆구리에 꼈다. 그러자 소영도 한 손에 한 사람씩 무위도장과
손불사를 껴안고 전엽청도 나머지 두 청의 노인을 안아 일으켰다. 그리하여 세 사람은 갑판 위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한 척의 작은 배는 이미 심목풍이 타고 가버렸기 때문에 타고 건너 갈 배가
없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물에는 익숙치 못하였다.
소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상팔이 말을 받았다.
“이 연못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육지까지의 거리도 얼마 되지 않으니 우리들은 물 속에 뛰어 들
어서라도 육지까지 가야겠습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전엽청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까닭은….?”
“이 배 위엔 아무래도 무슨 장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소영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빨리 갑시다.”
소영이 막 물 속으로 뛰어 들려고 할때 상팔이 두 청의노인을 내려 놓고 펑, 펑 하고 이장을 쳐
내 두 개의 창문을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물 속에 던졌다. 소영은 곧 물 속으로 뛰어 들어
한 짝의 창문 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그 위에다 무위도장 손불사를 내려 놓고 자신은 다시 물 속
으로 뛰어 들었다.
상팔과 전엽청도 잇따라서 뛰어 내렸다. 이 두 짝의 창문의 부력은 여섯 사람을 무사히 육지까지
운반할 수가 있었다.
전엽청은 육지에 올라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내려다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정말 스스로 불러 일으킨 화다. 만약 우리들이 조금만 침착했더라도 이와 같은 낭패는 당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자 이때 갑자기 펑펑! 하는 폭음이 울렸다. 연못 가운데 떠있던 배가 산산조각이 나서 불길에
싸여 버렸다. 아마도 그 배는 매우 잘 타는 물질로 만들어 놓은 듯 폭발 소리가 나자마자 곧 불
길이 일어나 활활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전엽청은 방금 자기가 했던 생각이 오히려 부끄럽게 되었다. 그래서 상팔을 바라 보며 변명 비슷
하게 말했다.
“만약 상형이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우리가 여태껏 저 배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쯤 우리
는 모두 저 불 속에 화장되고 말았을 거요.”
상팔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말로 다행한 일이지만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소영이 이 말을 듣자 가볍게 탄식조로 말했다.
“한 사람이 강호에서 활동하는 데는 무예만 가지고는 살아 나가기가 힘들며 역시 기지와 운이 있
어야 하는 것 같소.”
상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으니 우리는 이제 이 여섯 사람의 혈도를 어떻게든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
다.”
상팔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무림 사대현은 그동안 강호의 은원(恩怨)에는 휩쓸리지 않은 지 이미 수십 년이었는데 지금 심
목풍이 이 네 사람을 해치려다 미수에 그쳤으므로 우리가 만약 그들을 구해 낸다면 백화산장은
네 명의 강적이 더 생기는 셈이 됩니다.”
소영은 말을 받았다.
“내가 보건데 심목풍은 이 여섯 사람의 혈도를 단순히 찍는 데만 그치지는 않은 것 같소.”
전엽청이 이 말을 듣자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소대협의 뜻은?”
소영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은 심목풍이 이 여섯 사람의 혈도를 찍은 다음 무슨 수작을 썼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
니 이들을 구할 수 있을는지도 의문입니다.”
상팔이 물었다.
“형님께서는 그럼 심목풍이 이 여섯 사람에게 무서운 독을 주입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소.”
소영은 이번에는 말머리를 돌렸다.
“조금 전에 배에서 격투를 벌였을 때는 우리가 매우 불리했소. 만약 누가 암암리에 도와 주지 않
았다면 나는 벌써 그 홍의괴인의 손에 상했을 것이오. 그의 비늘 갑옷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었
소. 실로 도검(刀劍)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웠소이다.”
소영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 옥란, 금란의 말이 맞았소. 심목풍이 부리는 오룡은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악독한 사람이었
소. 그런데 오늘 저녁엔 일룡을 부렸기 망정이지 만약 한꺼번에 나왔다면 심목풍이 손을 쓸 것도
없이 우리 세 사람은 그 배에서 살아서 나오기 어려웠을 거요.”
상팔도 그 말에는 수긍이 간다는 듯 잠깐 동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가 암암리에 도왔을까요?”
“나도 그것을 알 수 없소. 아무튼 내가 가장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는 손을 써서 암기로 그 홍
의괴인의 두 눈을 명중시킨 것이오.”
상팔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전형께선 줄곧 갑판 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혹시 무슨 그럴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소?”
전엽청이 힘없이 대답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와 같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소.”
상팔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는 혹시 그 금침이 어느 쪽에서 날아 왔는지 기억할 수 있는지요?”
소영이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금침은 창문 밖에서 쳐 나온 것 같았는데…”
전엽청이 의아한 듯 말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갑판 위에서 금침을 쳐 냈다면 반드시 내 눈에 띄었을 텐데…..”
소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형께선 혹시 무슨 소리를 못 들었소?”
“그리고 보니 소대협께서 그 홍의괴인과 격투를 벌이고 있을 때 일진의 은은한 비파소리가 들려
온 것 같았습니다.”
소영이 말을 받았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날 손 노선배님이 호반에서 심목풍이 거느린 고수와 만나 쌍방이 손을 쓸
때도 일진의 악성(業聲)이 들려 왔었소. 심목풍은 그 악기소리를 듣자 곧 달아나 버렸소. 나중에
사형과 손 노선배님은 그 악성은 퉁소와 비파소리가 배합된 소리라고 얘기했소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도 그 비파소리가 들리자 심목풍은 여전히 놀라서 도망쳐 버렸소. 사전에 장치해 놓았던
악독한 수단이 채 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상팔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심목풍이 비파와 퉁소소리를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보오. 이번에는 비파소리뿐이었는데도 그는 놀라서 달아나 버렸으니까……”
상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그와 같이 높은 무공을 지닌 사람이 누구인데 단지 소리만 듣고도 당대의 간웅 심목풍이
도망을 치다니…..”
“나는 그 한 개의 금침도 그 탄금인(彈琴人)이 쳐 낸 것이라고 생각하오.”
소영은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는 줄곧 몸을 숨긴 채 우리를 도우며 금침자혈(金針刺穴)법을 사용하여 암암리에 남해오흉(南
海五兇)중의 첫계와 넷째를 상하게 하였소. 또한 그 교정(交情)을 나 소영에게 넘겨 주어 오흉으
로 하여금 내가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여 다시는 심목풍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몇 명
의 강적을 덜게 한 것이오.”
상팔이 말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줄곧 우리와 만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소영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전엽청은 속으로 사형의 안위를 걱정하며 입을 열었다.
“소대협, 손 노선배님과 저의 사형은 다같이 경험이 풍부하고 지모가 많은 분이므로 만일 그들의
혈도를 풀어 준다면 혹시 이 의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영이 대답했다.
“전형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성공할 확률은 크지 않지만 어쨌든 전력을 다해 시험해 보겠습
니다.”
전엽청이 말했다.
“제가 먼저 한 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되지 않을 때는 소대협께서 손을 쓰셔도 늦지 않으
리라고 생각합니다.”
상팔이 이 말을 듣자 곧 말참견을 했다.
“이곳은 불편하니 우리 다시 그 나씨 종사로 갑시다.”
그는 말을 마치자 청의노인을 안고 앞장 서서 걸었다. 이들은 각각 두 사람씩을 끼고 사당의 대
청으로 향해 걸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상팔이 말했다.
“내가 사방의 동정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전엽청이 말을 받았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전엽청은 두 손을 내밀어 먼저 무위도장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소영은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무위도장은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
았다.
전엽청은 계속해서 추궁과혈의 수법을 발휘하며 한참 동안 주물렀으나 무위도장은 조금도 깨어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전엽청은 손을 멈췄다. 그는 얼굴에 맺힌 땀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일종의 독문점혈(獨門點穴)수법인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자신이 없으니 소대협께서 역시
손을 써 보시기 바랍니다.”
소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나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소이다.”
전엽청이 말을 받았다.
“소대협께서는 너무 겸손해 하지 마십시오.”
소영은 몸을 굽혀 서서히 우장을 내밀어 무위도장의 등줄기에 대고 암암리에 운기를 가했다. 그
러자 한 줄기의 뜨거운 기류가 무위도장의 명문혈(命門穴) 안으로 스며 들어 갔다.
잠시 후 소영은 다시 우장을 거두고, 왼손을 재빨리 내밀어 무위도장의 몸에 있는 네 군데의 대
혈(大穴)을 연거푸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