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99
99. 거만한 옥퉁소
소영은 재빨리 손을 휘둘러 한 개의 추혼전을 받아 냈다.
‘만일 내가 조금만 방심했더라도 이 암습을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천 년 묵은 교피
장갑이 없었더라면 어찌 극독이 묻어 있는 이 추혼전을 잡을 엄두를 냈겠는가?’
소영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방에서 다시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호! 훌륭한 솜씨로다. 무림에 나온 뒤로 나의 사두추혼전을 받아 낸 사람은 흔하지 않았는데…..”
잠시 음성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러나 나의 추혼전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 네가 맨손으로 그것을 받아 냈으니 아마 그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걸.”
“그렇지 않을걸.”
소영이 가볍게 응수하자 방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히히. 네가 만일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한 번 운공해서 시험해 보시지.”
소영은 추혼전을 고쳐 잡으며 대꾸했다.
“답례를 않는 것은 무림의 인사가 아니니 귀하께선 나에게 주었던 당신의 암기를 도로 가져 가시
오.”
소영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손을 쳐들어 앞으로 뿌렸다. 추혼전은 질풍같이 방을 향해 날아 갔다.
이 탄지발사(彈指發射)의 암기수법은 소영이 유선자에게서 배운 것이다. 유선자는 암기 사용에 있
어서 강호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음, 무서운 수법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소영의 일거일동을 지켜 보던 손불사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방 안에서
낄낄 새어 나오는 운음소리는 소영이 추혼전을 던지자 갑자기 뚝 끊어졌다.
이때 소영은 이미 방을 향해 뛰어 들고 있었다. 소영은 문 앞을 향해 몸을 훌쩍 날렸다가 마루를
딛는 것과 동시에 발로 힘껏 문을 걷어 찼다.
“펑!”
문이 활짝 열리는 것과 동시에 소영은 옆으로 살짝 비켜 섰다.
‘추혼전을 쓰는 놈은 무서운 놈이다. 내가 만일 무턱대고 들어 섰다가는 추혼전의 제물이 될 것
이다.’
소영은 문을 걷어 차자마자 상대방이 추혼전을 던질 줄 알고 옆으로 비켜 선 것이다. 그런데 예
상과는 달리 아무런 암기도 날아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잠시 기다리며 동정을 살피던 소영은 두 손으로 가슴을 보호하며 방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자 정
면의 창문 앞에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소영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는데, 소영이 들어 가도 전혀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소영은 가볍게 기침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나 소영은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았소.”
사내는 냉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강호에 들어 선 뒤로 줄곧 소영이란 이름을 들어 왔소. 오늘 만나 보니 과연 훌륭하군요.”
“과분한 칭찬이시오. 당신의 추혼전이야말로 소리도 없이 빠르기가 번개같았소. 나는 그런 암기술
법은 처음 보는 것이었소.”
사내는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
“당신은 이 방에 뛰어 들었는데, 무슨 볼 일이 있소?”
“내 형제가 당신의 추혼전에 맞아 부상을 입었소. 그 해독약을 좀 얻으려는 생각이오.”
“그 일 뿐이오?”
“그렇소. 다만 그 한 가지 일 뿐이오.”
사내는 잠시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소영은 그 뒷덜미를 노려 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사내가 입을 열었다.
“해독약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소. 하지만 하나의 조건이 있소.”
“무슨 조건이오?”
“내가 해독약을 드린 뒤 여러분들은 즉시 이곳을 떠나시오. 약속을 이행한다면 나는 곧 해독약을
드릴 것이며 당신이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추혼전을 맞은 사람은 극독이 발작해서 죽게 될 것
이오.”
소영이 대답했다.
“만일 내 형제가 제 삼자에게 부상당한 것을 당신이 살려 준다면 한 가지 조건이 아니라 열 가지
조건이라도 받아 주겠소. 그러나 나의 형제는 당신의 추혼전에 부상당한 것이오. 나는 일행이 많
으니 단독으로 처리할 수는 없고 의논을 해야겠소.”
사내가 짜증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얘기한다면…. 당신은 응낙할 수 없다는 것이오?”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소.”
“좋소. 당신은 가서 그들과 상의한 뒤 다시 오시오.”
소영은 생각했다.
‘손불사와 무위도장이 이 제의를 수락할는지 모르겠구나. 그들은 명성있는 사람들이니 순순히 물
러 서려고 들지 않을 텐데.’
소영은 사내에게 말했다.
“나는 동행인들을 설득시켜 보겠소. 그러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먼저 해독약을 주시오.”
“먼저 그들과 상의한 뒤 약을 가지러 와도 늦지 않소.”
소영은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당신은 사람을 상해 놓고 배짱을 부릴 생각이오? 약을 주는 일과 이곳에서 우리가 떠나는 일은
별개이니 혼동해서 얘기하지 마시오.”
“그럼 어떡하겠소?”
“한 가지 묻고 싶소. 우리들이 이곳을 멀리 떠나는 일 이외에 약을 구할 방법은 없소?”
사내가 대답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소.”
“그것이 무엇이오?”
“그것은…. 해독약이 내 몸에 있으니 당신이 재주껏 빼앗으면 되오.”
“그것을 제외하고 다른 방법은?”
“없소.”
잘라 대답하는 말에 소영은 화가 치밀었다.
“기왕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좀 실례되는 행동을 해야겠소.”
“체면 차리지 말고 마음껏 재주를 발휘해 보시오.”
소영은 암암리에 진기를 모아 전신의 급소를 보호하며 사내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 갔다. 사내는
줄곧 등을 보인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소영은 오른손으로 사내를 내리 치려고 하다가 멈추며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얼굴을 보이지 않소?”
그러자 사내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소영은 흠칫 놀랐다. 사내는 얼굴에 번
쩍번쩍 하는 황금색의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같지 않고 흡사 금으로 만든 조각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당신이 쓰고 있는 가면은 매우 훌륭하군요.”
소영은 말과 동시에 손을 내밀어 금가면을 쓴 사람의 왼쪽 손목을 잡아 채려고 했다. 금가면을
쓴 그 사람은 장승처럼 선 채 소영은 노려 볼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영이 상대방을 잡아 채는 기세는 매우 느렸지만 그 속에는 많은 변화를 품고 있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공격과 수비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거의 팔목을 잡
히게 되었는데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영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손목을 덥썩 쥐었다.
‘…..어!’
소영은 흠칫 놀랐다. 금가면의 손목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쇠처럼 단단했다.
이때 금가면이 돌연 오른손으로 소영의 오른팔을 그어 왔다. 금가면의 오른손에는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다. 소영은 재빨리 왼손 으로 그의 오른손을 후려 갈기며 뒤로 세 걸음 물러 섰다.
금가면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미 중독되었소.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면 극독이 발작할 테니 그만 물러 가
서 뒷일이나 준비하시오.”
그는 소영이 교피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교피장갑은 나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구나.’
소영은 자신의 왼손을 훔쳐 본 뒤 사내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나의 이 손톱에는 극독이 묻어 있소. 당신의 왼손은 나의 손톱에 그어졌으니 곧 죽게 될 것이
오.”
“하하, 당신은 암기에도 극독을 묻혔고 손톱에도 묻혔으니 독에 대해서는 가히 첫손가락을 꼽을
수 있겠군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무슨 독이든 겁내지 않소.”
“그럴 리가….. 왼손을 들어 자세히 봅시다.”
“볼 것 없소이다. 나는 백독이 내 몸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으니까.”
금가면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 손톱에 있는 독은 보통의 독과는 틀리는데…. 어떤 인물이든 이 독이 조금만 묻어도 곧 발작
하오.”
소영은 돌연 몸을 날려 일장을 상대방의 가슴으로 날렸다.
소영은 조금 전 상대방의 왼손이 쇠처럼 딱딱했던 것이 의심나 공격을 하면서 그 의 왼손을 유심
히 살펴 보고 있었다.
금가면은 소영이 공격해 오자 왼손을 들어 반격했다.
소영은 급히 물러 서면서 금가면의 왼손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노출된 그의 왼손에는 시커먼
쇠갈고리 세 개가 붙어 있었다.
‘놀랍게도 이 놈은 강철로 만든 의수(義手)를 했구나.’
소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철수(鐵手)를 무기로 사용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금가면은 소영의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양손을 번개처럼 움직여 연거푸 삼초의 공격을 퍼부었다.
이 공격은 매우 빠르고 거세어 소영을 계속 세 걸음이나 물러 서게 했다.
소영은 반격할 틈을 노리다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돌리며 연속적으로 팔초를 공격했다.
‘만일 이놈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해독약을 구하기 힘들겠구나.’
소영이 이런 생각에 잠깐 정신이 분산된 틈을 노려 금가면은 다시 공격해 들어 왔다. 철수가 번
쩍이며 소영의 정수를 찍으려고 덤벼들고 오른손이 뒤따라 소영의 가슴을 향해 덮쳐 왔다.
소영은 비록 교피장갑을 끼고는 있었지만 철수를 정면으로 받아낼 용기가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세로 물리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소영은 마음을 다져 먹었다. 두 손을 재빨리 놀려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 내며 반격의 틈을 노렸
다.
이 때였다.
“멈춰라!”
낮은 소리가 소영의 등 뒤에서 들려 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멈추고 얼굴을 돌렸다. 나타난
사람은 준수한 청년이었는데 남색 장삼을 입었고 손에는 옥퉁소를 쥐고 있었다.
그를 본 금가면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공자님을 뵈옵니다.”
“인사는 필요없네.”
싸늘한 눈초리로 소영을 훑어 보았다. 그의 미간에는 살기가 어렸으나 말투만은 공손하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소영이라 하오.”
그러자 청년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 이제 보니 소형이었군요. 몰라 뵈었소이다. 나는 보자마자 곧 소영이 아닌가 했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듯 겸손하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소영은 청년의 태도에 의아심을 품으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요? 글쎄, 남들은 모두 나를 옥소랑군이라고 부르더군요.”
이 말에 소영은 흠칫했다.
‘옥소랑군….. 그는 남옥당의 이종사촌인데……’
소영은 옥소랑군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옥소랑군이라 자칭하고 또한 손에 퉁소를 들고 있으니, 퉁소의 명수임에 분명하겠군요.”
“음률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는 정도이외다.”
‘너무 겸손하구나. 어젯밤 너의 퉁소가락을 들었는데 그 애절하고 오묘한 곡은 신의 경지에 도달
했던데…..’
소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옥소랑군이 물었다.
“소형은 음률학(音律學)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오?”
“나는 음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오.”
“너무 겸손하시군요. 그런데 소형은 어째서 나의 종인(從人)과 다투셨는지요? 나에게 얘기해 주면
소형에게 대신 사과하겠소.”
‘옥소랑군이 나에게 이토록 공손하게 대하는 것은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쨌든
나는 약을 얻어 갈 기회를 만난 것이니 얘기를 해 보자.’
소영은 금가면을 힐끗 바라 보며 말했다.
“사과한다는 말씀은 감당치 못하겠소. 나의 형제 하나가 추혼전에 부상을 입었소. 나는 그 해독약
을 얻으려는 것 뿐이오.”
옥소랑군은 금가면을 노려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또 극독의 암기를 사용해서 사람을 부상시켰구나. 어서 해독약을 내 놓지 못해?”
금가면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이 집에서 강제로 투숙하려고 하기에 따끔한 맛을 좀 보여 주려던 것이었습니다.”
금가면은 말대꾸를 하면서도 옥소랑군의 말을 거역하지는 않았다. 품 속에서 하나의 작은 옥병을
꺼내더니 환약 한 알을 소영에게 내밀었다. 소영은 서슴지 않고 손을 내밀어 약을 받았다.
옥소랑군은 금가면이 소영에게 암습을 가할까 봐 노려 보고 있었다. 금가면은 소영이 독을 두려
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순히 환약을 내주고 물러 섰
다.
그러자 옥소랑군이 입을 열었다.
“소형의 친구가 추혼전에 상처를 입었다면 어서 그 약을 복용시키시오. 약을 먹고 한 시진이 지
나면 상처는 완전히 나을 것이오.”
“고맙소.”
“그런데, 소형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소?”
소영은 무슨 부탁이 있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선선히 대답했다.
“내가 해서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 봅시다.”
“다름 아니라, 나는 오늘밤 이곳에서 한 친구와 긴밀한 얘기를 나누기로 했소. 이 안에 소형의 일
행이 끼면 곤란하니 편의를 좀 보아 주시기 바라오.”
소영은 얼른 대답을 않고 금가면을 바라 보았다.
그는 옥소랑군이 소영에게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 몹시 못마땅한 듯한 눈길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주인은 나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밀히 대하고, 하인은 오히려 잡아 먹을 듯한 눈치를
보이니…..’
소영이 내심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옥소랑군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소형의 의견은 어떻소?”
소영은 옥소랑군에게 얼굴을 돌리며 대답했다.
“지금 나로서는 결정하기 곤란하군요. 밖에 가서 두 분 노선배와 의 논을 한 후 대답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당신은 그 늙은 거지와 무위도장을 말하는 것이오?”
“그 늙은 거지가 바로 개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선배요. 또한 무위도장은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
이오.”
“하하, 무당파는 텅 빈 항아리요. 실속 없는 이름만 지닌 채 자칭 오대검파의 첫째라고 하지만,
사실 그 몇 수의 변변찮은 검법은 시골뜨기 앞에서나 큰소리칠 수 있을 뿐이오.”
옥소랑군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개방은 더욱 꼴불견이지. 한 떼의 늙은 거지와 젊은 거지들의 오합지졸이지요. 인원수는
제법 많으나 단 일격이면 모두 박살나 버릴 허수아비들이지요.”
옥소랑군이 기고만장해서 떠드는 소리에 소영은 멍해졌다.
‘허풍도 이 정도 되면 입이 벌어지는구나. 심목풍도 감히 이토록 큰소리는 치지 못하는데…..’
소영은 내심 불쾌했으나 태연한 안색으로 말했다.
“당신이 개방과 무당파를 얕보는 것을 보니 놀랄 만한 절기를 지닌 모양이군요. 그러나 나는 그
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소. 또한 그들을 존경하므로 반드시 먼저 상의한 뒤에 떠나는 것을
결정 짓겠소.”
“나는 다만 소형이 이곳을 떠나기만 바랄 뿐이오. 다른 사람들이야 남든 가든 상관 없소. 그들이
남아 보았자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니까……”
“아무튼 나는 그들과 의논해서 결정하겠소. 대답할 여유를 주시오.”
소영은 옥소랑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금가면이 매우 흥분한 듯
소영을 쫓아 나가며 공격을 하려는 것을 옥소랑군이 손을 들어 막았다.
뜰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팔의 앞으로 다가 선 소영은 약을 그에게 내 주며 말했다.
“빨리 이 해독약을 먹으시오.”
상팔은 이미 실신상태에 빠져 들어 가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은 온통 땀투성이고 눈은 게
슴츠레했다.
‘과연 추혼전에 묻은 독약은 무섭구나. 독을 맞은 지 얼마 안 되어 벌써 이토록 사람의 몸에서
힘을 빼냈으니, 과연 혼을 빼낸다는 이름을 무시 못하겠구나. 그런데 약효가 한 시진 내에 신속하
게 나타날 수 있을까?’
상팔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대한 소영은 심히 마음이 괴롭고 불안했다. 상팔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약을 받더니 입에 넣고 삼켰다.
‘제발 약효가 있어서 상팔이 얼른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소영은 손에 땀을 쥐며 상팔을 주시했다. 그러자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팔의 얼굴에 생기
가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과연 무서운 독에 신통한 약이구나. 다행이다.’
소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구에게 말했다.
“상형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운기를 조식시키시오. 그 약을 준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한 시
진이 지나면 곧 회복된다고 했소.”
상팔은 두구에게 부축되어 일어 서며 소영에게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구는 그를 데리고 한 그루의 나무 밑으로 갔다. 그들은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상팔의 생명이 위기에서 일단 구제된 것을 보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손불사는 소영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을 만나 보았소?”
“주인과 하인, 두 사람을 만났소.”
“퉁소를 든 청년이 그 방으로 들어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이 주인이오. 방에는 왼팔에 철수를 한 하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추혼전으로 상팔을
명중시킨 장본인이오.”
“하인이 그런 재주가 있다니 주인되는 사람의 무공이 어느 정도라는 것은 가히 짐작할 수도 없겠
군.”
‘물론이오. 그 사람은 당신네 무당파나 개방의 실력을 아이들 장난보다도 낮게 평가합디다.’
소영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나 눌러 참으며 입을 열었다.
“주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시험해 보지 않았소. 그러나 얼굴에 가면을 쓴 그 하인과 몇
수 겨뤄 보았는데, 확실히 높은 무공을 지녔었소.”
“소대협은 그의 성명을 아시오?”
손불사의 물음에 소영이 대답했다.
“그는 이름을 밝히진 않았소. 자칭 옥소랑군이라 하더군요.”
“옥소랑군? 옥소랑군이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 대여섯밖에 안 되었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 옥소랑군은 나씨의
사당에서 듣던 퉁소를 불던 장본인이오.”
“그럼 우리를 도와 준 친구이니 마땅히 만나야겠군.”
무위도장의 말에 소영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손을 흔들었다.
“필요없소. 그는 성질이 매우 거만해서 우리를 상대하지도 않소. 그가 암중으로 우리를 도운 것은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요.”
소영은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 옥소랑군은 시종 나에게 친밀하게 대했는데 반대로 금가면의 하인은 나를 불구대천의 원수이
기나 한 듯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댔소. 아무래도 복잡하고 미묘한 원인이 개재(介在)되어 있는 모
양이오.”
손불사가 중얼거렸다.
“허허, 괴이한 일이군. 이 늙은이는 강호를 안방 드나들 듯했지만 친구이자 원수인 사람에 대해선
만나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했는데……”
“그 점은 이 소영도 이해 못하겠소. 아무튼 원인이 있겠지요.”
“무슨 원인?”
‘이 일은 악소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파악하기도 전에 멋
대로 지껄이는 것은 옳지 않지.’
소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물어물 대답했다.
“지금 확실히 단정해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 두고 보는 수밖에 없소.”
무위도장은 소영이 무엇인가 짐작되는 것이 있으면서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손불사에
게 더 캐어 묻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영은 말머리를 돌려 입을 열었다.
“그 옥소랑군은 해독약을 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소.”
“조건이라니?”
“우리에게 이곳을 떠나 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곁에 서 있던 팽운이 불쑥 끼어 들며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이곳은 그들의 소유도 아닌데…..”
“그는 여기서 어떤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들의 소란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오.”
“기왕 그렇다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무위도장의 말에 이어 손불사가 소영에게 물었다.
“소대협은 응낙을 했소?”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어 의논한 뒤 대답하기로 했지요.”
“그렇다면 옥소랑군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우린 이대로 물러날 수 없소.”
손불사의 강경한 태도에 소영은,
‘이 선배는 젊은 사람보다도 더 패기가 있구나.’
생각하며 말했다.
“옥소랑군은 비록 겸손하게 말했으나 매우 도도하였소. 만일 우리가 응낙을 않으면 한바탕 싸움
이 벌어지게 될 것이오.”
“우리가 이대로 물러 선다는 것도 너무 얕보이는 것이니 안 되오.”
“그럼 노선배님의 의견은?”
“하하하, 이 늙은이가 무엇이 두렵겠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체면은 세워야 되잖겠소?”
이 음성은 매우 커서 방에까지 들릴 만했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옥소랑군이 걸어 나오며 소리쳤다.
“어떤 사람의 말투가 그토록 무례하지?”
소영은 일이 난처하게 되었구나 싶었다. 또한 손불사가 궂이 이곳에 남겠다는 것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옥소랑군이 날카로운 소리로 묻자 손불사가 얼른 대답했다.
“늙은 거지.요.”
“하하하하……”
옥소랑군은 양천대소를 하며 서서히 다가 왔다.
‘큰일이다. 결국 싸움이 붙겠구나. 옥소랑군과 나는 겨뤄 보지는 않았지만 그 금가면의 무공으로
보아 굉장한 고수일 것이다. 손불사가 상대할 수 없을 텐테……’
소영은 여유만만한 옥소랑군의 태도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어 옥소랑군의 앞으로 나가 막아 섰
다. 그는 두 손을 앞에 모아 쥐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옥소형, 화를 참으시오.”
옥소랑군은 소영이 앞을 막아 서자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소형께서 저 늙은이를 대신해서 나설 작정이오?”
소영은 불쾌했다.
‘나는 예외로 나섰는데 이 자는 무례하구나.’
소영은 약간 냉정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조금 전에 말했잖소? 나 혼자서 일을 결정할 수 없다고 ….. 우리가 아직 상의하고 있는데
당신이 기세 등등해서 나타난 것은 너무 사람을 얕보는 행동이 아니오?”
“나는 소형과 다투기 싫으니 소형은 이 일에서 빠지시오. 쓸데없는 일에 참견 않는 것이 좋을 거
요.”
소영은 더욱 불쾌해졌다. 화가 치미는 것을 지그시 누르며 옥소랑군의 싸늘한 얼굴에 대고 말했
다.
“옥소형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관계치 않을 수가 없소.”
“그렇다면 꼭 참견해야겠다는 말이오?”
“일이 묘하게 됐으니 물러설 수는 없소.”
옥소랑군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소영을 무섭게 노려 보며 곧 손을 쓸 듯한 자세를 취했다.
소영도 지지 않고 두 손에 진기를 모으며 옥소랑군을 노려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살벌한 긴
장이 흘렀다. 그러나 먼저 긴장을 깨뜨린 것은 옥소랑군이었다.
“그녀의 체면을 보아 소형을 한 번 봐 주겠소. 여러분들은 다시 의논해 보시오. 그러나 밥 한 그
릇 먹을 동안만 여유를 주겠소. 그 시간 이후에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으면 그 때에는 내가 너무
무례하다고 탓하지 마시오.”
옥소랑군은 뱉어버리듯 말을 하더니 몸을 돌이켜 안으로 사라졌다. 소영은 들어 가는 그의 뒷모
습을 바라 보며 마음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녀라니….. 악소채를 두고 하는 말일까? 남옥당은 어젯밤 옥소랑군과 서로 감정이 좋지 못했었
다. 그들은 모두 악소채를 사모하는 모양인데, 사촌끼리의 연적이라…..’
이때 손불사가 탄식처럼 말했다.
“과연 옥퉁소로구나!”
“나는 저 옥퉁소를 본 적이 있었소. 이미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퉁소를 든 사람이 바뀌었을 뿐 퉁소는 분명 그것이오.”
소영이 자세한 이야기를 캐물으려고 하는데 먼저 무위도장이 탄식했다.
“무서운 내공을 지녔구나!”
소영은 무위도장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순간 그는 흠칫 놀랐다. 그곳엔 옥소랑군의 발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었는데 그 깊이와 간격에 조
금의 차이도 없었다.
‘암중에 내력을 발휘해서 발자국을 남겼구나. 발자국의 깊이와 간격이 고른 것으로 보아 내공의
힘도 실로 짐작조차 못하겠구나.’
소영은 발자국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다가 손불사의 옆모습을 훔쳐 보았다.
‘손불사가 이미 옥퉁소의 내력을 알고 있으니 옥소랑군의 정체를 알기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
겠군. 그러니 옥소랑군에게 더 캐물을 필요도 없겠다.’
그는 손불사에게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노선배께선 이곳에 더 머무르기로 결심하셨소?”
“필요없소. 나는 이미 옥퉁소를 보았으니 가야겠소.”
손불사의 말에 소영은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이제 보니 손불사는 그 옥퉁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옥소랑군을 격분시켜 나오게 하였구나.’
“노선배께선 돌아가기로 결심하셨단 말이오?”
“그렇소. 이미 옥퉁소를 본 이상 여기에 남아 있다 한들 늙은 거지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소.”
소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불사의 얼굴을 멍청히 쳐다 보며 생각했다.
‘손불사는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구나. 그러나 나는 이미 옥소랑군과 감정대립이
있었으니…. 혹시 오늘 여기서 옥소랑군과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악소채가 아닐까?’
소영은 이대로 돌아가기도 멋적고 남아 있기도 곤란해서 잠시 망설였다.
소영의 표정을 살핀 무위도장이 입을 열었다.
“소대협은 이곳에 남고 싶소?”
“글쎄요. 옥소랑군은 우리보고 곧 물러 가라고 했는데, 이대로 물러 가자니 수치이고 남아 있자니
무서운 강적과 한바탕 악전고투를 해야 될 텐데……”
“빈도의 생각으론 중용지책(中庸之策)을 쓰는 것이 좋겠소.”
‘중용지책? 가느냐, 있느냐는 극단적인 것인데 거기에 어떻게 중용지책이 있단 말인가?’
소영은 무위도장의 속셈을 몰라 다그쳐 물었다.
“도장께선 방법이 있소?”
“만일 이 집에서 묵는 일 때문에 싸움이 붙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떡 한 개 때문에 어른 싸움이
붙는 경우와 마찬가지요. 그렇다고 그냥 물러 선다는 것도 체면 문제이고….. 빈도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곳을 떠나는게 좋을 것 같소. 떠나긴 떠나되……”
“떠나긴 떠나되?”
“소대협이 떠나기 전에 몇 수의 절기를 옥소랑군에게 보여 주시오. 그러면 우리는 물러 선다 해
도 크게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니까……”
소영은 그럴 듯한 생각에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장의 말은 그럴 듯하군요.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솜씨를 보여 준단 말이오?”
“그 옥소랑군은 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보아 무공이 높긴 하지만, 소대협도 그에게 뒤지지 않으리
라고 빈도는 생각하오. 그러니….”
“……”
“어떤 사람이고 무공을 나타내는 데에는 장단점이 있소.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무공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소. 소대협께서 무공을 발휘할 때 가능한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살리면 옥소랑군
도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오.”
“좋습니다.”
소영이 응낙하자 무위도장이 전엽청을 돌아 보며 말했다.
“사제는 이곳에 따라 온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먼저 이곳을 떠나게.”
전엽청은 약간 불만을 누르며 일행을 데리고 나갔다.
소영은 꽃나무 아래에 앉아 운기조식하는 상팔이 염려되었다.
‘나는 무공의 절기를 보여 주려는 데에 목적이 있지만 어쩌다 싸움이 붙어 버리면 상팔이 걱정이
로구나. 상팔은 조금만 운기조식을 하면 회복될 것 같은데…..’
손불사가 소영의 염려를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소대협이 무공을 발휘할 때에 다른 생각은 마시오. 이 늙은이와 무위도장이 상팔형의 신변을 보
호하고 있겠소.”
“그럼 두 분만 믿습니다.”
소영은 진기를 모으고 그 동안 손불사는 다른 사람들을 내 보내며 일을 안배했다.
이때 이미 시간이 되어 옥소랑군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쩔 작정이오?”
소영은 상대방의 쩌렁쩌렁한 음성을 듣고 흠칫했으나 손불사와 무위도장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
다.
“두 분은 나를 도울 필요가 없소.”
소영은 고개를 돌려 방안을 향해 말했다.
“잠깐 밖으로 나올 수 없겠소?”
“밖으로? 후후, 나는 항상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오. 만일 여러분이 끝까지 버티겠다면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오. 소형께서 나를 설득시키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헛수고에 불과하
오.”
소영은 옥소랑군의 말투에 울컥 비위가 상했다.
“우리는 지금 돌아갈 생각이오. 그러나 당신의 태도가 너무 건방지군요. 우리는 생각을 바꾸었소.”
“달리 생각하다니?”
“우리는 가긴 가되 밥 한 그릇 먹는 시간 동안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겠소.”
그러자 옥소랑군의 싸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소영! 나는 너에 대해서 이미 참을만큼 참았다.”
“나도 이토록 화를 누르며 참아 보긴 처음이오.”
소영이 지지 않고 대꾸하자 옥소랑군의 차가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잠깐만 시간을 준다. 빨리 이곳을 나가라!”
소영은 그 말이 무척 건방져 화가 났다.
“당신 태도가 이토록 건방지니 정말로 참기가 어렵소. 아무래도 우리는 이곳에 남아야겠소.”
벌컥 화를 내는 옥소랑군의 외침이 들려 왔다.
“흥, 당신들은 자결해서 죽겠소? 아니면 내가 직접 손을 쓰길 원하오?”
옥소랑군이 얼굴에 살기를 띤 채 문을 박차고 나와 섰다. 그 곁에는 금가면을 벗은 하인이 섰는
데 그 사내의 얼굴은 물감을 칠한 듯 시퍼랬다. 수염은 없었으나 옥소랑군보다는 오, 륙 세 더 먹
어 보였다. 소영은 다시 불같은 화가 치밀었다. 손불사도 화를 참지 못해 입술을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겠다.’
소영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도전적인 음성으로 빈정거렸다.
“옥소랑군! 당신은 우리 보고 자결해서 죽으란 말이오?”
“그렇소. 만일 내가 손을 대면 여러분들은 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테니…..”
“흥, 멋대로 지껄이는군. 당신은 이런 말을 아시오?”
“……”
“대장부는 죽일 수는 있지만 욕보일 수는 없다는 말…..”
“흥, 여러분들은 죽으면 죽었지 욕을 보진 않겠단 말이지?”
소영이 대꾸했다.
“그렇소. 우리는 자결하고 싶은 생각이 없소.”
“어떻게 죽든 그것은 당신들이 선택할 권리가 있소.”
소영은 상대방의 어린애 다루듯 하는 태도에 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가 너에게 진다손 치더라도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다. 승패야 어찌 되었든 너하고 꼭 한
판을 싸워야 분이 풀리겠다.’
소영은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제하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자결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자연 당신이 손을 쓰기를 기다리겠소.”
옥소랑군은 낯빛이 푸르락 붉으락해지며 입을 열었다.
“역시 죽고 나서야 후회할 사람들인 것 같군. 당신들 중에서 누가 먼저 내 손에 죽겠소?”
“내가 먼저 당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소.”
소영이 가슴을 펴며 말하자 옥소랑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소형 먼저? 내 손에 죽고 싶단 말이오?”
“내가 언제 죽고 싶다고 했소? 더욱이 당신 손에 죽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소.”
“그렇다면?”
“나는 다만 당신의 콧대가 너무 높기에 얼마나 높은가 재어 보려고 먼저 나섰을 뿐이오.”
소영은 잠깐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만일 내가 자칫 실수해서 당신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겁나는군요.”
이 말은 옥소랑군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게 했다. 그는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소영을 노려 보더
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모두들 소영을 거만하고 담대하다더니 막상 만
나고 보니 과연 배짱 하나는 쓸 만하군. 네가 먼저 죽기를 원하고 그토록 날뛰니 더 이상 사양할
수도 없다.”
이 말은 소영이 금방 죽기라도 할 것 같이 들렸다.
‘이 옥소랑군이 자기가 거만하다는 것은 모르고 오히려 나보고 배짱이 세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건 그렇고 도대체 저놈은 얼마만한 무공을 지녔기에 이토록 큰 소리를 치고 있을까?’
소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구의 손에 먼저 죽을지는 조금 후에 자연히 판명나게 될 테니 너무 큰소리는 치지 마시
지.”
옥소랑군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소영을 노려 보기만 했다.
소영도 진기를 잔뜩 모으며 상대방의 공격에 대비했다.
무위도장과 손불사는 옥소랑군의 거만한 태도에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 은근히 겁도 났다.
‘저놈이 큰소리를 치는 것으로 보아 기막힌 절기를 지닌 모양인데…..’
양편에는 잠시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옥소랑군이 몸을 훌쩍 날리며 옥퉁소로 소영의 가슴을 찍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