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05)
5. 무사귀환
엘이 루이아스의 치명적인 마수에 벗어났을 무렵, 카시 아스 왕국의 왕궁에서는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잇달아 주최 되고 있었다.
평소 왕궁을 호위하던 근위병의 숫자는 3배나 늘어난 상태였다.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던 근위 기사들은 왕궁 요소요소에 물샐틈없이 완벽한 경호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카시아스 왕궁에는 10명이 넘는 국왕들이 기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국왕들이 다스리는 국가를 하나하나 나열하면 대륙 사람들은 눈을 부릅뜰 것이다.
왕궁에 모인 국왕들 하나하나가 모두 서부 왕국에서 강대한 힘을 지닌 왕국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국왕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새로 건국된 마도 제국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 함이다.
제국에 관한 사실은 언제나 왕국들에게 갈 영향을 끼쳐 왔다.
단순히 제국이 강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대륙 문명의 시초이기도 했으며, 그 의 흐름은 곧 서부 대륙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장 제국에서 내분이 발생했다 치자.
그럼 왕국들은 촉각을 곤두세워 제국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않는다.
혹여 제국의 내분이 한쪽의 압승으로 끝날 경우 그 팽창한 힘으로 인해 한동안 제국은 안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황제들이 택하는 방법은 대개 한 가지다.
바로 그 힘을 외부로 분출하는 것이다.
내전으로 인해 극도로 팽창된 군사력을 서부의 왕국들 에게 뿜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타 제국을 침공하지 않는다.
벨로세크 제국을 제외한 타 제국들은 그 힘이 엇비슷하기에 자칫하면 기나긴 국지전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국 특유의 자존심으로 인해 어느 한 곳이 항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왕국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제국이 왕국들을 침공하기 시작하면 한두 왕국이 멸망 하는 수준이 아니다.
주변국들이 똘똘 뭉쳐 대응했음에도 제국을 견제하기 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왕국들이 제국에 흡수당했고, 서부의 강대한 왕국들과 제국의 국경선이 직접 맞닿았을 때 왕국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그리고 현재 제국과 국경을 맞닿은 덱스론, 아드리안 왕국이 주축이 되어 서부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사정이 급한 것은 비단 덱스론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뿐 만이 아니었다.
두 왕국은 서부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
만약 그들까지 무너진다면 대륙은 5개의 제국에 의해 오분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제국의 힘을 감당할 수 없기에 왕국들이 일치단결하여 제국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다음 대상은 자신이 되기에 그들로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마도 제국이 건국되었다는 선언이 대륙에 퍼져 나갔다.
이는 왕국들이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대륙의 종주국이던 벨로세크 제국과 데이제크 제국, 루이디스 제국이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이 되었다.
벨로세크 제국이 기존의 제국보다 약 3배에 달하는 국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마도 제국은 남은 블리어드, 아일라스 제국에 비해 5배에 달하는 국력을 보유했다는 말이 된다.
말이 5배지 실제 그 규모를 상상해 보아라.
지난 수백 년 동안 벨로세크 제국은 큰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이는 즉 병사들이 전쟁 경험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국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마도 제국이 벨로세크 제국과 같은 종주국으로서의 최소한의 권한만 행사하려 했다면 굳이 왕국들이 이렇게 회담까지 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도 제국의 황제 루이아스는 선언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마도 제국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제거하겠다고.
미친놈 소리를 들을 법한 소리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결코 그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무려 600명의 소드 마스터와 헬 파이어를 여러 개 전개하는 루이아스의 모습은 허황된 소리가 아닌, 진실된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각국의, 그것도 한 사람의 불참도 없는 회담 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회의의 내용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선언은 이러하였다.
마도 제국의 황제인 루이아스란 자는 대륙을 제패하기 위해 욕심에 눈이 먼 자다.
그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대륙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며, 그동안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의 야욕에 시달려 온 자신들은 모두 일치단결하여 그를 벌해야 한다.
일견 그들의 말만 듣고 본다면 그들의 말은 한없이 옳게 느껴진다.
하지만 달리 관점을 바꾸면 왕국의 국왕들에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가급적 싸움을 피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나 마도 제국이 이미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이상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으니 애당초 왕국들에게 선택권 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순히 국가를 마도 제국에게 헌납하는 어리석은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모든 국왕들의 생각이 같았기에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였다.
바로 마도 제국을 상대할 군대의 총사령관을 누구로 삼을지에 대해 치열한 의견 대립이 펼쳐졌던 것이다.
예전 같으면 덱스론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의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지휘권을 맡겼을 것이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그랜드 마스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 모를 이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재 서부 대륙에 존재하는 그랜드 마스터는 다이어드 공작이 유일했다.
그렇다는 건 다이어드 공작에게 총사령관의 자리를 맡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
허나 성국은 이번 회담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각국의 국왕들은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삼는 것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삼으려면 마치 자신들 이 성국에 고개를 숙이는 상황 같았기 때문이다.
성국이 비록 그들의 각국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국력을 보유했다고 하나 그들은 여태껏 독립된 노선을 걸어 왔다.
그리고, 지금같이 중요한 순간에도 독자적인 길을 걸으려 하는 모습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다이어드 공작이 후보에서 제외되고 남은 것은 8클래스 마법사들 뿐이 었다. 서부 대륙에는 총 4명의 8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
유클레이, 멜뤼스, 코린트, 엘리미스.
누구하나 부족함이 없는 8클래스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각국의 국왕들은 일단 금탑주 엘리미스를 먼저 후보에서 탈락시켰다.
금탑주 엘리미스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국왕들이다.
하지만 엘에게는 그러한 막강한 실력에 불구하고 한 가지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세월이 가져다주는 ‘경험’ 이다.
경험은 결코 노력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이라는 것 앞에 자연스럽게 쌓이는 경험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공평하고 때로는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왕들은 유클레이, 멜뤼스, 코린트 셋을 두고 연일 회의를 벌였다.
3명의 8클래스 마법사는 각각 지닌 장점과 단점이 있었기에 누구를 선택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우선 실력으로 따지면 유클레이가 가장 높다고 소문났으나 유클레이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런 그에게 군대를 이끌어 달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
멜뤼스는 실력에 비해 약간 행동이 경망스러운 편이고 코린트는 지나치게 신중하여 과감함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 출신으로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은 이가 없다는 것이다.
국왕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때, 여태껏 행동을 보이지 않던 성국이 나섰다.
교황이 직접 나서서 마도 제국과 맞서 싸울 것이며, 모 든 힘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한줄기 자존심으로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지목하지 않은 왕국들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성국의 사신이 카시아스 왕궁에 도착했을 때, 각국의 국왕들은 미리 정해 둔 사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회의를 열어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각국의 군 대 5만씩을 파견하여 마도 제국과의 일전을 준비하게끔 하였다.
무려 2달에 걸친 준비 기간이었다.
사방이 험한 지형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는 작은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계획적으로 지은 것처럼 아름다운 도시의 중심에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빛 탑이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주변이 험한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의 이름은 골든 벨리.
과거에는 트롤 벨리라 불리던 죽음의 장소 중 하나다.
트를 벨리에 서식하던 트롤들의 숫자가 너무나 엄청나서 강대국 톨리안 왕국에서도 감히 토벌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곳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이곳을 토벌하고 마탑을 세운 이가 있었다.
그랬으니 바로 그가 대륙에 혜성처럼 등장한 금탑주 엘리미스였다.
금탑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것이 없다.
정확한 구성원과 골든 벨리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금 탑주가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완벽한 8클래스 마법사란 점과 나이가 20대 초반에 이른 이로써 장차 9클래스를 넘볼 수 있는 대마법사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그렇게 지고한 경지에 오른 엘을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금탑주는 20대 초반에 경지에 올랐기에 무척 오만할 것이라고.
그 누가 알까.
금탑주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대륙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넓게 보면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탑에 위치한 공간 이동 마법진.
이곳은 공간 이동을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금탑으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금탑은 금탑주 엘리미스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계 곡 전체에 마나의 흐름을 비꼬아 놓았다.
때문에 금탑은 엘과 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 이외에는 마법을 캐스팅함에 상당한 고역을 치러야 한다.
뭐…….. 그래 봤자 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기껏해야 실피르와 세레나뿐이지만 말이다. 지금 공간 이동 마법진에는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 등 많은 사람들이 걱정 섞인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엘이 함정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는 엘이 금탈을 떠나기 전에 자신들에게 계획을 알려 주었다. 초인들을 금탑으로 유인하고 자신은 마도 제국의 중추 시설 중 하나인 골렘의 생산 기지를 파괴하는 것.
적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한발 앞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엘의 계책에 모두가 감탄했다.
만약 엘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마도 제국은 한발 주춤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적의 계책이었단다.
엘리엔에 의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자 사람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깊게 생각해 보니 그녀의 의문이 하나하나 모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엘이 위험하다! 그것이 그들이 느낀 것이다.
적들이 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면 결코 그가 빠져 나을 수 없는 단단한 그물을 쳐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네 명의 초인이 이곳 금탑을 쳤으니 다섯은 마도 제국에 남아 있다.
그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엘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엘의 곁에는 골든 나이트가 있으니 말이다.
그랜드 마스터에 준하는 힘을 발휘하는 골든 나이트를 방패삼아 물러난다면 엘에게도 충분히 물러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엘리엔이 늦지 않는다면 충분히 빠져나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루이아스가 직접 나섰을 때이다.
루이아스는 9클래스의 대마법사. 그런 그가 직접 나섰 다면 제아무리 엘이 8클래스 마법사이고, 골든 나이트가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발휘한다 해도 빠져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9클래스 마법사!
그는 측정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대륙에 9클래스 마법사가 등장한 적은 없다.
워낙 지고한 경지인 탓에 대륙인들은 물론 심지어 마법사들마저도 9클래스의 경지를 환상의 경지라고,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경지라 생각했다.
마법사들의 추측은 거의 확실했다.
일반적으로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극도로 단련된 육체가 필요하다.
허나 마법사들이 육체를 단련할.리가 없는 노릇.
비록 최근에 와서 어릴 적부터 꾸준히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좋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근. 불과 이십 년도 안 된 발표였다.
그렇다 몸을 단련한다 하여도 9클래스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마법사들이 오랜 기간 연구 끝에 알아낸 것은 9클래스
마법사의 기반이 되는 건 그랜드 마스터급, 극한으로 단련된 신체여야 한다는 거 였으니 말이다.
외부의 마나를 공명시키는 마법사들은 9클래스에 가서야 그 구분아 완전히 없어진다고 한다.
즉, 이론적으로라면 9클래스 마법사들은 그랜드 마스터가 발휘하는 힘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아직 이론에 불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9클래스 마법사의 힘이다.
아무리 엘이 천재이고, 골든 나이트가 그를 보좌한다고 하나 엄연히 한단계 높은 루이아스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는 소드 마스터와 7클래스 마법사가 8클래스 마법사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더욱 치지니…… 엘 이 함정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임이 틀림없다.
실피르를 비롯한 여인들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서렸다.
‘엘이 무사해야 할 텐데……. 만약 루이아스를 만났다면…….’
정황상 엘을 제거하기 위해 루이아스가 나섰을 확률이 높기에 그녀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에리스 공주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아는 엘은 8클래스 마법사이다.
대륙에 단 9명뿐인 8클래스 마법사!
그런 지고한 경지에 든 엘은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축적된 경험 부족으로 최약체로 평가되지만 그 누구도 무시 할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한 이다.
거기에 골든 나이트까지 합세하면 엘의 힘은 단순한 1 이 아닌 2 또는 3이 될 수도 있다.
아까 전 초인들의 대결로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가라앉은 상태다.
상대가 9클래스 마법사이고 그가 엘의 힘을 월등히 웃도는 걸 모르기에 그런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걱정하는 거죠? 금탑주님은 대륙의 한 축인 8클래스 마법사잖아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에리스 공주가 의문을 던졌다.
아직 적의 구체적인 정체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질문 이었다.
“…….”
에리스 공주의 물음에 일순간 장내는 어색한 침묵이 지배했다.
“그건 말이죠, 공주님.”
그러고 보니 에리스 공주가 제반 사항을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알아차린 세fp나가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세레나의 이야기가 지속되자 에리스 공주의 안색이 눈 에 띄게 창백해졌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에리스 공주는 한차례 몸을 휘청 였다.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9클래스 마법사가 엘을 노리고 있다니.
에리스 공주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렇다는 건 정말 큰일이 난 게 아닌가.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8클래스 마법사인 멜뤼스와 코린트조차도 엘리엔을 힘겹게 텔레포트 시킨 것이 전부이지 않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엘과 엘리엔의 무사 기원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급격해지는 마나의 흐름에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 졌다.
“오! 이건………
조금씩 증가하던 마나의 양은 이윽고 텔레포트를 전개 할 만큼 정도가 되어 빠르게 마법을 만들어 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긴 흐름에 마법을 익힌 이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피어날 때,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스파앗!
강렬한 빛 때문에 모두가 일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공간 이동 마법진 위에 서 있는 일남일녀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엘과 엘리엔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모두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과 엘리엔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헉!”
“이런…….”
그도 그럴 것이 엘의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말라붙은 어깨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위급한 상황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게 뭐예요. 이게 무슨….”
놀란 카이나가 재빨리 엘에게 다가갔다.
엘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극심한 부상과 과도한 정신력의 사용으로 탈진한 것이
엘리엔은 그때까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찢어질 듯한 자이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곧장 정신을 되찾았다.
“흐윽!”
몸을 움직이려던 그녀는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자 가벼운 신음을 홀렸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든 그녀가 언제 이런 몸 상태를 겪어 보았겠는가.
겪었다면 과거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 전에 극도로 자신을 단련할 때밖에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이후로는 극도로 단련된 신체와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가 한데 어우러졌기에 결코 체력의 끝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라니. 오랜만에 겪어 본 이러한 현 상은 그녀에게 무척 생소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사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엘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외쳤다.
“어서, 금탑주부터 치료를 해야 해요!”
엘리엔의 외침이 장내를 휩쓸었다.
그러한 그녀의 외침은 엘의 귀환을 기뻐하던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카이나가 세레나를 보며 말했다.
“언니 ! 엘님을 어서 치료해 주세요!”
과거 성녀로 임명될 뻔한 까닭에 세레나의 몸에는 감히 신관들조차 범접할 수 없을 방대한 양의 신성력이 도사리고 있다.
세레나는 그 신성력을 바탕으로 백마법 계열을 익혔고, 그로 인해 그녀는 치료와 회복 마법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응. 알았어.”
카이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세레나는 서둘러 엘에 게 치료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엘의 상태는 그녀가 보기에도 위중했다.
파이앗!
세레나의 손과 전신에 은은한 신성력이 아른거리며 치료 마법이 캐스팅되기 시작했다. 치료 마법이 전개되자 엘의 외상이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레나가 치료 마법을 중지하자 엘의 외상은 말끔히 치료된 상태였다. 놀라운 치료 마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다.
내상과 과도한 정신력의 사용으로 인한 부상은 아직 남아 있던 것이다.
“외상은 치료했지만 내상까지는 치료해 드릴 수가 없어요. 우선 며칠간 요양을 하시게 하고 스스로 치료를 하시게 할 수밖에 없겠어요.”
그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의 치료를 끝내자 이번에는 엘리엔을 치료하기 시작 했다.
그녀는 주로 외상을 입었기에 세레나의 치료 하에 빠르게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엘을 구하기 위해 과도한 마나를 사용했다고 하나 그녀는 내상을 입지 않았기에 외상을 모두 회복하자 곧장 무리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치료해 줘서 고마워.”
엘리엔의 인사에 세레나가 빙긋 웃었다.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인걸요.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해야지요. 엘리엔 님이 가 주셨기에 저희 엘 님이 살아 돌아오실 수 있었던 건데요.”
“…….”
세레나가 되레 고맙다 하자 엘리엔의 표정이 모해졌다.
그녀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든 것이다.
‘무슨 이유로?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여기며 엘리엔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을 털어 버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끈질기게도 엘리엔의 마음에 남았고,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숨긴 채 세레나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는 어느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며칠 뒤, 몸이 회복된 금탑주를 대동 하여 하도록 하겠어요.”
엘리엔의 말에 누구·도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몸이 모두 회복되어야 하니 말이다.
“이의가 없다면 이만 쉬도록 하겠어요.”
루이아스에 의해 생사가 오가는 경험을 해서일까.
엘리엔의 음성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렇게 그들은 청탑에서 살아 돌아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면서 창에 의해 산산조각 부서져 방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절로 나른해질 듯한 온화한 햇빛, 그것이 비추는 곳에는 한 청년이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눈부신 금발이 햇빛에 반사되며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으음…….”
햇빛 때문일까?
눈부신 빛에 적응을 못했는지 침대에 누워 있던 청년이 몸을 뒤척이며 살며시 눈을 떴다·.
흐릿한 푸른색 눈동자. 초점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모습이 지금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었나……..”
엘은 눈 안에 들어오는 익숙한 광경에 흥분에 겨워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최후에 모든 마나를 쥐어짜서 전개한 텔레포트가 성공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실 그는 마법을 전개하면서 가능성을 반반으로 점쳤다.
정신력의 고갈로 마법의 확률이 하락한데다가 엘리엔이 루이아스를 상대했기에 그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이 전개한 텔레포트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마법이었을 게 분명했다.
여기에서 혹시나 모를 때를 대비하여 한 가지 안배를 한 게 빛을 발했다.
금탑의 공간 이동 마법진에 유도 마법을 걸어 놓은 게 주효했던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불완정한 마법은 골든 벨리 어딘가로 전개되었을 것이고, 잘못했으면 계곡의 틈에 끼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후, 일단 살았구나.’
살아났다는 것에 엘은 안도치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아스의 힘을 직접 목격했을 때 이재로 끝이 아닌가 싶었다.
압도적인 힘과 빈틈없는 전투의 진행. 자신의 공격 하나하나가 실패할 때 엘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여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전투능력, 경험 등 모든 면에서 뒤처졌고, 모든 변수를 예측하는 면에서도 루이아스를 넘지 못했다.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을 때 엘은 자살하고 싶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여겨 온 자신이다.
누구도 모르는 차원이동으로 새 삶을 얻었으며,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20대에 8클래스의 경지를 이룩했다.
그렇게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 사이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칭하는 것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가소로운 벽에 불과하게 되었다.
루이아스를 상대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불가능한 벽이지만 자신에게는 충분히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벽.
상대가 비록 자신보다 한 단계가 높은 존재라지만 자신과 다른 이들의 힘을 합하고, 전생에서 얻은 상황 판단력을 적절히 사용하면 충분히 그를 제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엘은 자신이 이곳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토록 자신 있어 해 놓고 이렇게 되다니….. 정말 얼굴을 들기 힘들구나,’
자신 때문에 하마터면 엘리엔이 목숨을 잃을 뻔하였고, 골든 나이트가 파괴당할 뻔하였다 ‘전부 내 탓이야. 이렇게 적의 함정에 빠져드는데 내가
앞으로의 일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한 번의 실괘는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졌고, 자신감의 상실은 현 상태에 대한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점점 그 크기를 키 워 나갈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줄기 목소리가 엘에게 들려왔다.
“우음….. 깨셨어요, 엘 님?”
긴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까. 엘을 간호 하다가 잠든 듯한 카이나가 침대 머리맡에서 일어나서 엘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의 보이지 않겠지만 백옥같이 새 하얀 카이나의 피부에 약간 거무스름한 것이 생겨 있었다. 그것은 필시 피로하다는 증거일 터.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아도 카이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그녀가 몇 날 며칠을 잠들었을 자신을 밤새 간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소드 마스터인 카이나의 몸에 피로가 축적될 리 없으니 말이다.
엘은 그런 카이나에게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직까지 자괴감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응. 이런, 안색이 안 좋네. 밤새 간호해 준 거야? 고마 워, 카이나…..”
고마움을 표하는 엘의 모습에 카이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예? 아, 아니에요. 전 그저 엘 님이 언제 깨어나시나 본 것밖에 없어요.”
엘의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단순히 고민에 빠져 있다 카이나를 본 것뿐인데 그것만 으로도 엘의 기분은 급속도로 나아졌다.
그것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집에 대한 편안함이었다.
엘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이 편안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감았다.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나에게는 여기가 집이고, 이곳이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곳이었지.’
최근 들어 워낙 바쁘게 움직인 탓에 엘은 금탑에 붙어 있는 날이 드물었다.
각지의 초인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야 했고, 성국을 설득하고 톨리안 왕국도 드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금탑에 있는 날은 줄어들었고, 세레나와 카이나의 얼굴을 보는 날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카이나의 얼굴을 보니 엘은 반가움이 치밀어 올랐다.
‘밖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정작 소중한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 진짜 소중한 이들은 여기, 금탑에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세레나의 얼굴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동하니 그것은 절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아, 안 돼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는데……”
카이나는 엘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 하자 깜짝 놀라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엘은 그런 카이나에게 미소 지어 보이며 손을 들어 자신을 부축하려는 카이나를 제지했다.
“몸은 괜찮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물론 움직이면 통증이 느껴졌지만 엘은 그걸 달게 감수 했다.
몸을 일으킨 엘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나에게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카이나. 날 모두 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엘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이나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이미 그녀는 엘의 몸 상태에 대해 엘리엔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9클래스 마법사인 루이아스에게 벗어나기 위해 한계 이상으로 마법을 전개한 엘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극한의 상태로 몰렸다고 했다.
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좋은 법이 없는 법이다. 정신과 육체가 한계까지 간 상태에서 마지막에 무리를 했으니 엘의 몸 상태가 좋을 리 없었던 것이다.
당장 엘의 안색이 극도로 창백한 것이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완력을 써서라도 엘을 말리고 싶은 카이나였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카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가 어찌 엘 님을 말리겠어요. 하지만 제발 무리는 하지 마세요. 엘 님은 저와 언니는 물론 어머님의 모 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말한 카이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엘의 면 전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은 당신이라 말했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뭐랄까. 고백과도 같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카이나를 보며 엘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카이나가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곰곰이 돌이컥 보면 자신은 여인들에게 해 준 것이 거의 없었다.
어릴 적 보살펴 준 것과 각자의 특기를 살리는 데 약간 의 도움밖에 준 게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주려 한다. 정말 남자로서 기쁠 수밖에 없다. ‘부족한 나에게 이런 사랑이라니….정말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건너온 탓인지 엘은 지금 세레나와 카이나의 행동 모두가 너무나 고맙게 여겨졌다.
엘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알았어. 카이나를 위해서라도 무리는 절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하면 내가 무리 안 하기도 힘 들어지니까.”
“네, 엘 님.”
카이나는 엘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평상시보다 더욱 자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커 왔으니 엘의 사소한 변화도 금방 알아차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자신의 남자가 더욱 자상해지는데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카이나는 엘에게 다시 한 번 빠져 드는 마음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를 안내했다.
카이나가 엘을 안내한 곳은 금탑에 마련된 회의실이었다. 평소에는 회의할 일이 거의 없는 금탑은 그곳을 가족간의 대화 장소로 종종 이용했다.
엘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여러 시선이 그에게 꽃혔다.
엘은 회의실에 있는 인물들을 훑었다.
회의실에는 실피르와 세레나를 비롯하여 아이넨스, 그리고 금탑 방어를 위해 도움을 요청한 멜뤼스, 코린트도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뜻밖인 것은 엘리엔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루이아스와 겨루면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을 그녀가 이렇게 자리해 있다는 것이 엘에게는 무척 의외였다.
회의실에 들어선 그를 보며 모두가 반색했다.
“몸은 괜찮은 거니, 엘리?”
실피르가 안색이 창백하고 걸음걸이가 아직 불안정한 엘을 보며 불안한 얼굴로 물어 왔다.
그녀의 걱정 담긴 말에 엘은 미소 지으며 짐짓 활기찬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면서 엘의 시선이 세레나에게 향한다.
그녀의 얼굴 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심각한 상태였던 나를 이렇게 치료할 사람은 세레나 밖에 없지, 고마워, 세레나 ”
엘의 변화에 민감한 세레나는 그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금세 파악했다.
허나 그의 표정이 자상하고 따뜻하게 변한 것이었기에 세레나는 그런 엘의 변화를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엘 님이 한층 더 우리를 사랑하게 된 거야.’
죽음의 위기를 넘긴 그가 곁에 있는 자신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게 분명하다. 무척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녀는 엘에게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에요. 저는 응급처치를 한 것에 불과한걸요. 일단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몸이 다 나은 게 아니에요. 그러니 무리하지 마시고 치료를 하셔야 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능력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건 가능하지만 내상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상이란 것이 오래 간직하면 나중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세레나는 혹시 엘 이 내상을 별거 아니게 여길까 봐 조언한 것이다.
그녀의 그런 걱정이 어찌 엘에게 전해지지 않으랴. 엘은 고개를 끄덕 였다.
“알았어. 한동안 요상을 할게.”
미소 지으며 말한 엘의 시선이 이번에는 엘리엔에게 향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루이아스의 마수에 살아남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엘은 진심으로 감사함을 담아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루이아스의 함정에 빠진 저를 도와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엘리엔 님.”
엘리엔은 그런 엘의 인사에 모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짐짓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넌 우리 엘프들에게 무척 중요한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이 말해 놓고도 그 내용이 무척 냉정한 것임을 꼈다.
그녀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넌 혼자의 몸도 아니다. 넌 우리 엘프들을 중 간에서 연결하는 인간이자 대륙의 초인들을 한데 규합하는 인물이다. 즉, 너의 목숨이 혼자의 목숨이 아닌 셈이 지, 그러니 앞으로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라.”
엘은 엘리엔의 말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있었다.
정말 자신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은 대륙에 서 무척 비중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라지면 여태껏 힘들게 엮어 온 초인들 간의 관계가 단번에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작은 깨달음이지만 이것은 한층 자신의 목숨을 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될 깨달음이었다. 엘의 목숨이 자신만의 목숨이 아니게 된 만큼 작은 깨달음이라도 추후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했다.
엘은 양손을 모아 엘리엔fl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엔은 그런 엘의 인사에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엘리엔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엘은 이번엔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금탑을 방어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분도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두 분의 도움이 없었 다면 이렇게 금탑이 온전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두 분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엘의 인사는 세레나와 엘리엔에게 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레나는 자신의 여인이고, 엘리엔은 대륙의 평화를 위해 엘프 숲에서 자신을 지원해 준 여인 이다.
하지만 멜뤼스와 코린트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큰 마탑을 다스리는 수장 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놓고 단순히 감사함을 표한 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좁게는 금탑에 먹칠하는 것이 고 나아가서는 두 대마법사를 모욕한 꼴이 된다.
때문에 엘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그들이 무얼 해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노회한 각국의 귀족들과 마법사들을 상대 한 그들이 엘의 그러한 말뜻을 모를 리 없다 때문에 그들 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엘리엔이 말해 주었기에 자신의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한 엘이지만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큰 존재 이다. 그건 제국들이 존재하는 대륙 동부보다 왕국들이 난립한 대륙 서부에서 더욱 그러했다.
추후 금탑주가 9클래스의 관문에 돌파하여 제국을 정 벌하고 왕국들의 세상을 만들 것이라 여길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니 금탑을 도와준 것치고 는 엄청난 대가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중한 성격을 지닌 코린트와 다르게 상당히 유쾌한 성 격을 지닌 멜뤼스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큼! 아, 물론 그렇다고 안 받겠다고 하는 건 아닐세. 단지 말이 그 렇다는 거지 금탑주가한말, 난꼭 기억하고 있겠네. 허 허헛!”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멜뤼스의 반응에 코린트가 눈총 을 주었으나 그 또한 기분이 상당히 좋았기에 굳이 그의 말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이넨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 엘은 그가 그레시오스 공작을 상대로 압도했다는 말에 감탄했다.
“그레시오스 공작이라면 아토빌 공작님과 비견되는 그랜드 마스터인데 정말 대단하군요!” 엘의 감탄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넨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조금 과장된 것이더군. 실제로 겨뤄 보니 그레시오스 공작은 아토빌 공작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어. 순수 실력으로 겨룬다면 채 백 초도 견디지 못 하고 패할 게 분명하지. 아마 신검을 쓴다면 한 세 번의 공격이면 충분히 벨 수 있을 거야.”
그런 아이넨스의 말에 엘리엔이 제지를 걸었다.
‘마검과 겨루면서 잠시 소강상태일 때 겨루는 걸 봤지. 그 당시 신검의 위력을 거의 봉쇄당한 상태에서 압도한 것이니 굳이 자신의 실력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실제로 그레시오스 공작은 무척 노련한 검사로 상대방의 약점을 잘 파악하는 검사다.
그는 아이넨스와 겨루면서 디멘션 소드의 힘을 단번에 파악하고는 그 힘을 봉쇄한 채 아이넨스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넨스는 순수한 검술로 그레시오스 공작을 몰아쳤으니 그의 실력이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엘리엔이 말을 덧붙였다.
“나와 걱룬다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예전이라면 자신했겠지만 무척 강해졌거든. 인간, 네 가 강해진 걸까, 아니면 내가 약해진 걸까?
아이넨스가 손을 저었다.
“그렇게 말하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만 전 아직 엘리엔 님에게 멀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굳이 절 그렇게 띄워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일부러 인간을 띄워 줄 만큼 입이 가벼운 존재가 아니야. 그리고 내 말은 사실이고. 특히 너의 검술을 펼칠 때는…….”
엘리엔의 말에 아이넨스는 바짝 정신을 차린 채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딱히 네이처 소드의 힘을 발휘하지 않고서도 마검의 주인이자 천재인 자신의 누이와 대등한 대결을 펼친 존재다.
현존하는 그랜드 마스터들 중 그녀를 뛰어넘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검술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해 주니 절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엔의 설명에 아이넨스뿐만 아니라 멜뤼스와 코린트도 귀를 기울였다.
마법을 단순히 그 테두리에 고정시키면 절대 발전시킬 수 없다.
끝없는 탐구심과 외부에서 오는 깨달음을 얻어야 마법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끝자락에 오른 엘리엔의 말은 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백탑주 유클 레이와는 또 다른 그녀의 설명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초인들의 교류는 그들을 서로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순식간에 네 초인이 정신없이 토론을 펼치자 엘은 빙그레 웃었다.
자신들과 루이아스가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한 나머지 끝없이 편협한 길로 빠져 들고 있고, 자신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실력 증진 을 위해 아낌없이 공개하는 점이 말이다.
엘은 실피르를 비롯하여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시선을 한 번씩 주며 말했다.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질 것 같으니 저희는 잠시 자리를 비켜 주지요.”
마음 같아서는 엘 본인도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카이나의 염려대로 몸이 썩 좋지 않았다.
서둘러 상처를 치교하여 온전한 몸 상태를 만들어야 다 음 사태에 대비할 수 있기에 엘은 아쉽지만 회의실을 벗어났다.
자신의 수련실로 돌아온 엘은 서둘러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루이아스에게 죽음의 위기를 넘긴 후 깨달은 점이 무척 많았기에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몸 회복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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