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Mage RAW novel - Chapter (107)
7. 엘의 제안과 엘의 깨달음
왕국들의 회합이 끝난 후, 레도프 국왕은 곧장 왕궁으로 귀환했다 카시아스 왕국의 왕궁이 화려하고 더욱 편하다고 해도 자신의 집에 돌아온 기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편한 이 곳이 오히려 천국이었다.
하지만 레도프 국왕은 왕궁으로 돌아온 기분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으로 귀환한 그의 귀에 에리스 공주가 금탑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도대체 에리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이가 없는 나머지 레도프 국왕은 평소와 다르게 벌컥 화를 냈다.
그런 그의 추궁에 할 말이 없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기사들은 에리스 공주를 끝까지 만류하지 못하였기 때 문이고 마법사들은 에리스 공주와 함께 떠난 데실론 때문에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한동안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질책한 레도프 국왕은 그 들을 내보낸 뒤 자리에 털썩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에리스 그 아이는 무척 현명한 아이인데, 설마 그런 짓을 할 줄이야. 내가 왕궁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었구나.”
겉으로는 화를 내지만 실제로는 레도프 국왕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누구보다 아꼈던 딸이 바로 에리스다.
무척 영리한 그녀는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가 팽팽하게 대립할 때 레도프 국왕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뿐인가, 고민이 많을 때 항상 그 고민을 들어 주던 하나 뿐인 딸이자 상담 상대였다.
그런 딸을 정략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고, 막상 엘에 게 거절을 당했을 때 레도프 국왕은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왕국들의 회합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에게 이런 참담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도프 국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에리스가 어리석지는 않으니 스스로 손해가 될 짓은 하지 않겠지.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겠구나.”
에리스 공주의 얼굴을 떠올리니 자연히 금탑주의 얼굴 또한 떠올랐다.
금탑주를 떠올리니 레도프 국왕의 얼굴 표정이 복잡해 졌다 왕국들의 회합에서 노골적으로 금탑주에 대한 욕심을 보인 덱스론 국왕과 아드리안 국왕이 못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택권은 애초에 엘에게 있다.
그의 결심 하나면 금탑은 당장 이사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자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을 제한하지 못한다. 현실이 레도프 국왕을 더욱 착잡하게 하였다.
“제국과의 일전을 앞둔 지금 상황에 이러한 감정은 좋지 않거늘………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서린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레도프 국왕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었다.
바로 엘이었다.
엘은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일이 이렇게 악화가 되다니……..”
에리스 공주를 잘 설득하여 왕궁으로 보내야 할 일이 복잡하게 꼬이자 엘의 표정 또한 복잡하게 변했다.
설마하니 에리스 공주에게 그런 면이 존재했을 줄이야.
감성에 비해 이성이 월등히 강한 그녀라면 사태를 냉정 하게 판단하여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듣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줄 때까지 금탑에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말 난감하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방법을 강구하던 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법이 없으니 일단 국왕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에리스 공주의 청혼을 거절한 뒤로 알게 모르게 레도프 국왕을 만나는 게 꺼려졌던 엘은 하는 수 없이 레도프 국왕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데실론이 돌아가야 하니 그와 같이 간다면 조용히 입궁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왕궁으로 들어가야겠군. 어차피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같이 해 두는 게 좋겠지.”
그러면서 자리를 벗어나는 엘의 눈에는 여태까지 보이 지 않던 새로운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금탑주님?”
데실론의 노안에는 감출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에리스 공주 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바로 에리스 공주가 금탑주에게 왕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당황한 데실론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결심은 확고한 상태였다.
엘에게 달려가 그에게 설득해 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부질없는 일임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미 에리스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어 그녀의 확고한 결심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결국 데실론의 예상대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데실론은 왕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그 혼자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엘이 그와 함에 왕궁으로 입궁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 엘의 말에 데실론의 표정이 환해졌다.
엘이 함께해 준다면 그로서도 상당한 책임을 덜 수 있고, 왕궁에 온 김에 마법사들을 불러 마법 강연을 부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왕궁으로 가는 일정이 빠르게 정해졌고, 엘과 데실론은 공간 이동 마법진 위로 선 상태였다.
톨리안 왕궁에서 곧장 금탑으로 들어서는 것은 금탑주의 허락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금탑에서 왕궁으로 들어서는 것은 엘의 실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엘이 마법진을 활성화시키며 데실론에게 말했다.
“에리스 공주님에 대한 모든 사실은 제가 말씀드릴 것 입니다. 데실론 님은 그저 조용히 복귀하시면 됩니다.”
엘의 표정에는 무척 중요한 이야기도 함께 곁들일 것이 라는 게 포함되어 있어 데실론으로서는 순순히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그들의 몸이 사라 졌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톨리안 왕궁이었다.
이미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신호가 왔기에 상당수 마법 산들이 공간 이동 마법진 주변으로 모여든 상태였다.
데실론 혼자 공간 이동을 해 왔다고 생각하던 마법사들은 금색 로브를 걸친 젊은 마법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모습을 한 마법사는 대륙에서 단 1명뿐이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마법사들인 공손하게 인사했다.
“금탑주님을 뵈옵니다!”
마법사들이 취하는 예는 참으로 애매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얼핏 국왕에게 취하는 예와 거의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사들이 8클래스 마법사를 대하는 것과 기사들이 그랜드 마스터에게 취하는 예와 일맥상통 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수장인 국왕은 그 자체만으로 존귀한 존재이기에 예를 취하는 것이고, 8클래스 마법사나 그랜드 마스터는 극한의 수련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경지를 개척한 자들이다 당연히 그 분야에서 한 나라의 왕과도 같은 위치에서 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각국의 군주들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였다.
자신들이 충성의 대상이라면, 8클래스 마법사와 그랜드 마스터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의 숭배대상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엘의 등장으로 조용하던 왕궁이 시끌시끌해졌다.
금탑주가 등장했다는 말에 마법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에게 예를 취했고, 한동안 엘은 그들의 예를 받으면서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데실론이 만류했다.
“허허, 이만 금탑주님을 놓아주시게. 금탑주님은 국왕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것이니 말이네. 대신 왕궁 을 떠나기 전에 자네들을 불러 마법에 대한 강의를 해 주신다고 했으니 그때 꼭 참가나 하게나.”
엘이 마법 강의를 해 준다는 말에 모든 마법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8클래스 마법사가 하는 마법 강의는 자신들의 마법 경지에 새로운 한 획을 그어 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마법사들의 심정을 꿰뚫은 데실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허, 내가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이 자리에 있는가? 어서 질문할 것들과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실수했군요.”
“이따 뵙겠습니다, 금탑주넘.”
데실론의 말에 마법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평소 마법을 익혀 오면서 산더미 같은 궁금증을 쌓아 놓은 상태라 그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자칫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있음을 안 것이다.
마법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데실론이 미소 지은 채 엘을 바라보았다.
“허허, 이따가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엘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법사들이 강해진다는 건 왕국의 큰 힘이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오늘 제 밑천을 낱낱이 드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엘의 말에 데실론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허허, 그렇다면 저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저 또한 궁금한 것이 산더미같이 많으니 제 질문은 꼭 받아 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
엘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데실론이 미소를 머 금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사라진다.
데실론을 일별한 엘은 공간 이동 마법진 근처에서 있던 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국왕 전하를 뵙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기사가 부동자세를 취한 채 대답한다.
“먼저 국왕 전하께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까지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 또한 먼저 기별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 점을 인정 했기에 순순히 기사의 뒤를 따랐다. 결국 엘은 약 세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레도프 국왕이 시간을 가장 앞으로 당겨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꽤 오랜 시간 왕궁을 떠나 있던 탓에 국왕의 결재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상당히 쌓여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엘은 오히려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무척 여유 있는 모습으로 레도프 국왕을 기다렸다.
그런 엘의 모습을 보고 받은 레도프 국왕은 서두르던 업무를 제 페이스대로 처리할 수 있었고, 애초에 정해 놓은 시간보다 일찍 엘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엘은 레도프 국왕을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레도프 국왕 또한 엘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금탑주.”
엘을 반겼지만 레도프 국왕의 태도가 뭔가 어색함이 존재했다.
그에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국왕 전하?’
예리한 엘의 반응에 레도프 국왕이 움찔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 !”
웃음으로 넘기면서 그는 한 줄기 식은땀을 홀려야 했다.
왕국 회합의 자리에서 각국의 국왕들이 금탑주를 탐냈기에 자신도 모르게 금탑주를 대함에 있어 어색함이 존재 한 듯했다.
엘은 어딘지 어색한 레도프 국왕의 태도에 무언가 있음 을 느꼈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국왕 전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청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할 말이?”
레도프 국왕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태연한 안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각국의 국왕들의 반응 때문에 혹여 엘이 타국으로 망명 하겠다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레도프 국왕의 오해에 불과했다.
엘은 전혀 다른 화제를 들었다.
“우선 에리스 공주님의 건은 무척 유감입니다.”
“….!”
엘의 말에 레도프 국왕의 표정이 굳었다.
에리스 공주의 일이 언급되자 엘을 대하던 어색함은 사라지고 한 여인의 아버지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레도프 국왕은 그 건에 대해 엘을 추궁할 수 없었다.
엘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에리스 공주의 청혼 을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에게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고, 그것을 알면서도 에리스 공주에게 청혼을 종용한 레도프 국왕 본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엘. 그럼에도 레도프 국왕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레도프 국왕이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잘못을 따지자면 나의 잘못이 큰 터! 금탑주님이 미안해 할 이유는 없습니다. ”
레도프 국왕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엘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엘은 에리스 공주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하여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공주님께서는 조금 마음을 추스를 기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주님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왕궁은 부적합하다고 여기셨는지 저희 금탑에 찾아오셔서 한동안 머물고 싶단 의견을 보이셨습니다. 국왕 전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당분간 공주님을 금탑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다.”
엘은 차마 레도프 국왕에게 에리스 공주가 자신의 마음 을 얻을 때까지 금탑에 머물겠다고 말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으음! 에리스가…….”
레도프 국왕은 엘의 말에 신음을 홀렸다.
청혼을 거절당한 이상 에리스 공주를 주목할 이는 사실 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리스 공주는 왕실에 있어 불명예스러운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금탑에 머문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혹여 그걸 가지고 입방아를 찧는 이가 존재한다면 에리스나 금탑주에게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어차피 귀족들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컥 고 있는 상태. 굳이 에리스에게 정신을 쏟고 있는 이는 없으렷다.’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를 모두 숙청한 톨리안 왕국의 왕권은 왕국 역사상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절대 넘보지 못할 왕권 아래 자그마하게 남은 이권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굳이 에리스 공주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애 쓰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도프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안 좋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엘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명성도 있고 디벨 상단도 있습니다. 공주님은 현재 저의 여 인들이 말동무도 되어 주고 있으니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
마음이 몹시 찔렸지만 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레도프 국왕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에리스 공주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왕국 회 합에 가기 전에 궁에만 있던 에리스 공주 때문에 적잖게 마음고생을 했다.
그런 점을 엘이 해결해 주겠다 하니, 레도프 국왕으로 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알겠습니다. 금탑주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지요.”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말을 모두 들어주자 엘은 레도프 국왕에게 감 의 인사를 건네고는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할 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 말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더 있단 말씀이십니까?”
레도프 국왕이 무척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는 엘이 할 말이 있어 찾아왔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이 어렴풋 에리스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모두 종결되었는데, 할 말이라니? 전혀 뜻밖의 말에 레도프 국왕은 어리둥절했다.
‘왕국 차원에서 금탑에 지원할 것이 더 있단 말인가?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결론은 없다, 였다.
현재 금탑의 능력은 굉장하단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
자체적인 골렘의 생산은 물론이며, 디벨 상단의 방대한 재력으로 못 구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왕국에서 금탑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있었지, 금탑에서 왕국에 무언가를 요구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리자 엘이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제게 땅이 필요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영지가 필요합니다. ”
“…….”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엘의 말이 무척 의외였기 때문이다.
금탑주가 도대체 왜 영지를 필요로 한단 말인가? 트를 벨리는 그야말로 1만의 군대로 백만 군대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최고의 요새다.
그런 요새를 놔두고 영지라니? 도대체 금탑주의 저의 가 무엇이란 말인가?
의아함이 서린 레도프 국왕의 의문을 엘은 풀어 주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지는 제게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내전 이후로 수 많은 영지가 국왕 전하에게 귀속된 것으로 압니다. 제값을 치르고 구입을 할 테니 국왕 전하에서는 부디 영지를 제게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영지를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치르겠단다.
레도프 국왕으로서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 이었다.
실제로 이번 내전에 의해 왕국 국토의 절반 이상이 국왕 직할령으로 귀속되었다.
본래 국왕의 직할령이 많으면 많을수록 왕권의 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왕의 힘이 강해져 귀족들을 억누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톨리안 왕국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지금 그것은 무척 위태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레도프 국왕에게 귀속된 영지 중 다수가 무척 황폐한 영지였기 때문이다.
황폐한 영지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당연히 영지를 복구하기 위해 왕실에서는 내전의 승리로 몰수한 귀족들의 재물을 모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재물을 쏟아 부어도 부어도 도저히 영지가 본래 모습을 찾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투자한 금액이 가히 엄청나서, 이번 내전으로 노획한 모든 재물들을 쏟아 붓고도 왕실의 재정을 투자해 야 할 지경이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왕실의 힘은 다시 약해질 것이 분명 하고, 귀족들의 힘이 다시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방법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영지들을 매매하는 것인데, 그 방법 역시 귀족들이 구입하게 되면 추후 위협 이 될게 분명했다.
국왕을 따르는 충신들 중에 재력이 넉넉한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 영지들은 왕실의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레도프 국왕은 우선 사정이 궁금하지만 가장 적임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금탑의 막강한 재력이라면 황폐화된 영지도 모두 복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도프 국왕은 크게 인심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탑주. 내 어찌 왕국에 큰 도움을 준 금탑주님에게 영지를 매매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내전으로 국왕의 직할지는 넘치는 지경입니다. 그중 왕국 남부의 네 곳 영지를 금탑주님에게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매매하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레도프 국왕의 말에 엘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레도프 국왕이 영지를 공짜로 주겠다고 말할 것이 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놀란 엘을 보며 레도프 국왕은 웃었다.
“허허! 왜 그리 놀라십니까? 여태껏 금탑주님이 본 왕 국에 해 주신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영지들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탓에, 복구하는 데 상당한 자금을 소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무척 예민한 부분이었기에 말끝을 흐리면서 은근슬쩍 엘의 반응을 살피는 레도프 국왕. 그러나 엘의 반응은 레도프 국왕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국왕 전하의 선심을 정말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선뜻 승낙하는 엘의 모습에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미소 짓는 레도프 국왕을 보며 엘은 마주 미소 지었다.
다행이야 황폐화되어 있다면 내 의도대로 할 수 있겠어.’
엘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레도프 국왕은 자신의 노림수가 먹혀들자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이로써 본 국과 금탑주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레도프 국왕이 엘에게 영지를 양도한 까닭은 영지가 큰 재물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의도는 자국의 영토에 금탑주를 소속되게 하게 하기 위함이다.
타국의 실세들이 탐을 내는 금탑주의 실력이니 만큼 그를 확실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두는 것이 훨씬 이득 이니 말이다.
이제 영지를 하사받은 금탑주를 상대로 톨리안 왕국과 메어 놓으려는 왕국들은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도프 국왕은 자신의 입장에서 골치인 영지를 활용하여 금탑주를 확실한 톨리안 왕국의 사람으로 암묵적으로 선언한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엘 또한 그런 레도프 국왕의 의도를 알았지만 어차피 자신은 톨리안 왕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상관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서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어 그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특히 엘은 일이 더욱 쉽게 해결되자 마음이 무척 편했다.
‘이제 마음 놓고 일을 추진할 수 있겠다.’
그가 루이아스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고 몸이 회복되던 순간에 생각해 냈던 계책.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었다.
레도프 국왕과의 만남을 파하고, 왕궁의 마법사들에게 마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내내 엘의 눈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만의 계획이 천천히 세밀함을 갖추어 나갔다.
톨리안 왕궁에서 모든 볼일을 끝낸 엘이 이번에 찾은 곳은 바로 백탑이었다.
백탑은 엘이 4명의 초인에게 습격을 받았을 당시 비슷하게 2명의 초인이 습격해 왔다. 다행히 백탑주 유클레이의 실력은 아토빌 공작과 비견 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랬기에 마탑의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그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초인 또한 애초에 유클레이를 제거하는 것이 목져이 아니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유클레이는 나중에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그들의 진짜 표적이 금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사히 그들의 습격을 막아 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금탑의 습격까지 모두 위장이었으며, 진짜 목적 이 엘이었다는 말에 유클레이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엘이 자신을 찾아오자 유클레이는 엘을 무척 반겼다.
“어서 오게나, 금탑주. 루이아스를 만났다고 하더니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마음이 놓이는군. 자, 내가 아끼는 차를 대령할 테니 안으로 들어오게나.”
엘은 유클레이의 환대에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유클레이의 집무실에 들어선 엘은 유클레이가 대접하는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차를 들고 향을 음미하던 유클레이는 한 모금 마신 뒤 엘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루이아스에게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자네가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유클레이의 말에 엘은 차를 마시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또한 제가 그의 손에서 살아남은 것이 무척 신기하였습니다.”
유클레이가 물었다.
“어느 정도였나?”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이었습니다.”
8클래스와 9클래스의 차이는 그 정도로 컸다.
하지만 유클레이가 원하는 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법으로만 겨루었는가?”
“아닙니다. 마법을 주로 겨루었지만 루이아스에게는 카르마 링이 있었습니다. 전 마법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었고, 골든 나이트의 엄호 아래 그와 겨루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만큼 자신의 무기력함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없었다.
유클레이가 계속해서 물었다.
“그의 실력은 어떻던가?”
“공격과 수비가 완벽했습니다. 단순한 마법이었다면 제가 어떻게든 수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상대하는 데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제련제강의 마법으로만 저를 농락하듯 천천히 죽이려 들었습니다.”
골든 나이트를 꿰뚫던 제련제강의 마법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반면 유클레이는 루이아스가 제련제강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제련제강의 마법을? 어떤 종류던가?”
“다이아몬드였습니다.”
“허어……..
유클레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이아몬드 제련제강의 마법은 여러 가지 제련제강의 마법들 중에서 최강에 속한 것이다 “허허, 이건 완전 오우거에 날개가 달린 격이로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였지만 유클레이가 할 수 있는 비유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엘은 그런 유클레이의 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그는 정말 지독하게 강했습니다.”
“방법이 없어 보이던가?”
한 번 겪어 본 것과 안 겪어 본 것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심하다.
유클레이는 비록 처참하게 괘했지만 루이아스와 겨루어 본 엘의 경험을 무척 중시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엘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루이아스에게 있어 초인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이아몬드, 그 제련제강의 마법이 있는 한 그에 게 공격과 수비는 완벽함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9클래스 마법까지 곁들여진다면 오히려 다수의 초인이 순식간에 몰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홉 명의 초인까지 있잖은가?”
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단순히 루이아스를 상대하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문제 는 그의 휘하에 다수의 초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이 더욱 문제입니다. 저는 루이아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다섯 명의 초인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아토빌 공작님과 유클레이 님, 그리고 엘리엔 님과 아이넨스 님, 그리고 저까지 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전개하는 제련제강의 마법은 그의 것 보다 더욱 약하기 때문이죠.”
“그 정도란 말이로군.”
루이아스가 혼자라면 10명이 넘는 초인들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결말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이 불가능한 만큼 사태는 절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클레이가 암담한 심정을 담은 채 물었다.
“그럼 정녕 루이아스를 상대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그의 물음에 엘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방법 이 있습니다.”
“뭣이? 정말, 정말 방법이 있단 말인가?”
유클레이가 대경허서 엘에게 되묻는다. 루이아스를 상대할 방법이 있단다!
다수의 초인도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말하던 엘이다.
아마 초인들 중에서 가장 루이아스의 힘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게 바로 엘이란 말이다.
그런 엘의 말인 만큼 결코 허언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루이라스, 그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니!
“어서, 어서 말해 보게.”
평소 성격답지 않게 유클레이가 엘을 재촉했다 유클레이는 엘이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루이아스만 쓰러뜨린다면 사실상 마도 제국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 승리에 가까운 열쇠라 할 수 있다.
유클레이의 물음에 엘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길 꺼려한 것이고요. 제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바로 유클레이 님에게 이 방법이 루이아스에게 적용될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대륙에서 루이아스를 제외하고 가장 마법에 박식한 분이 바로 유클레이 님이시니까요.”
엘의 말대로 유클레이는 대륙에서 마법에 박식한 것으로 무척 유명했다.
그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백마법을 비롯하여 청마법, 적마법은 물론 흑마법까지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라면 엘에게 속시원하게 길을 제시해 줄 것이 분명했다.
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은 유클레이가 눈을 냈다.
“그렇군. 무언가를 깨달은 상태이고, 그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었군”
기분이 나쁠 법했지만 유클레이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타인에게 볼일이 생기지 않으면 거의 찾지 않으니 말이다.
마법사들이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다
그걸 알았기에 유클레이는 엘을 타박하지 않았다.
“따라오시게.”
유클레이가 앞장서자 엘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수련실이었다.
수련실에 들어선 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마나와 마나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더욱 응축된 것으로 끌어들인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진 현상들을 말이다.
수련실에서 엘의 몸에 벌어진 현상을 함께 연구하던 유클레이가 엘에게 말했다.
“이건 나로서도 함부로 결단을 내리기 힘든 현상이네. 충분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그 결과를 입증해야 하네. 그리고 이론적으로 성립하게 되면 분명 큰 무기가 될거야.”
만족할 만한 유클레이의 말에 엘이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협력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클레이는 미소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나 또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서로가 도움이 되었을 뿐이네.”
그 모습에 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추후 결과가 나며 그때 고마워하는 게 옳겠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허, 살펴가시게”
유클레이에게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엘은 금탑에 들어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이다. 각오하라, 루이아스.”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계획. 그것이 엘의 내면에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